나 말고 다의 모든 챕터: 챕터 461 - 챕터 470

549 챕터

제461화

서준혁은 좋지 않은 안색으로 신유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다친 그녀의 왼발을 보고는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아까는 왜 달린 겁니까?”신유리는 그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렸던 거고 서준혁의 다가와 묻자 얼른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해버렸다.서준혁은 그녀의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신유리는 그의 숨소리에 원래부터 불편하던 마음이 폭발한 듯 입을 열었다.“제발 제 앞에 나타나주시지 않으면 안돼요?”그녀의 말에 서준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고 한참동안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자신의 말에 서준혁이 당연히 떠날 줄 알았던 신유리가 안도하려는 그때, 서준혁은 갑자기 그녀를 들어 안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심하게 부상을 당한 것 같은데, 이럴 때에는 제 말 좀 들으세요.”자신의 몸이 붕 떠있는 느낌에 불쾌감을 느낀 신유리는 차디찬 목소리로 외쳤다.“저 좀 내려놓으세요!”“다쳤잖습니까.”“그쪽이 상관할 일 아니니까 내려놓으라고요.”서준혁은 날선 그녀의 태도에 발걸음을 멈췄고 신유리는 그의 몸에서 나는 그 익숙한 냄새에 속은 더욱 더 불편해졌다.그는 신유리를 내려놓기는커녕 더욱 꽉 안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죄송합니다.”서준혁은 항상 신유리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짜증이 나 죽겠다는 듯 썩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미안하다는 말 진즉에 했어야 했는데 이미 늦은 걸까?]서준혁은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후회로 가득 차버렸다.신유리는 서준혁에게 안겨있을 때, 풍기는 향기에 사람의 기억력이란 참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분명 그들은 오랫동안 이렇게 친밀한 행동도, 말도 한 적이 없지만 그까짓 향기와 온도 하나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생각이 나면 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른 신유리는 서준혁을 조롱이라도 하듯 물었다.“김가영 씨 혼자 두고 오면 안 삐져요?”서준혁은 신유리의 물음에 멈칫하는 것도 잠시 곧 대답을 했다.“저랑 김가영 씨는 아무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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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호텔은 조금 옛날식이라 스스로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했지만 신유리는 서준혁의 품에 안겨 오르고 있었다.뜨거운 그의 체온과 강한 팔 힘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서준혁의 손, 신유리는 그의 품에 안겨 쿵쾅거리는 그의 심장소리마저 들리는 것 같았다.서준혁에게서 나는 향기는 비가 와서 그런지 아까보다 많이 옅어져있었다.서준혁은 그녀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천천히 내려주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 왼쪽 발에 신고 있던 양말과 신발을 조심스레 벗겨 다친 곳을 확인했다.차가운 손이 피부에 닿자 신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피했지만 서준혁은 그녀의 발목을 툭 잡더니 말했다.“움직이지 말아요, 다친 곳에 약을 발라야 할 것 같습니다.”신유리는 침묵하다 서준혁의 다정한 모습에 천천히 말을 했다.“서준혁 씨, 지금 되게 본인답지 못한거 아세요?”분명 서준혁은 다정하고 자상한 스타일이 아니지만 그는 지금 억지로 그런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정말 조금이라도 서준혁답지 못하게 말이다.그는 그녀의 말에 멈칫하더니 무릎을 꿇은 상태로 대답했다.“다 고칠 겁니다, 그게 뭐가 됐든.”신유리가 말했다.“아니요, 고치고 바뀐다 해도 저는 서준혁 씨가 마음에 안들 것 같아요.”서준혁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에 신유리의 마음에 입혔던 상처들은 좀처럼 치유되지가 않았고 지금 신유리가 바라는건 오직 앞으로 남은 삶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었다.서씨 가문도, 서준혁도 없는 그런 안정적인 삶.서준혁이 신유리의 말에 답하려는 순간 장다혜가 자두를 안고 신유리의 방에 들어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서준혁을 발견하고는 당황하더니 물었다.“제가 지금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건가요?”서준혁은 그녀의 물음에 몸을 일으키며 신유리를 바라보더니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내려가서 약 좀 찾아보고 오겠습니다.”장다혜는 뒤돌아 떠나는 서준혁의 모습에 얼른 신유리의 곁으로 가 앉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예요? 그 작은 숲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거예요? 왜 두 사람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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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서준혁은 국내에 있을 때에는 회사 업무로 인해 거의 매일이다시피 회사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했기에 숨 돌릴 틈도 없었다.겨우 나온 여가시간에는 얼른 달려와 신유리를 찾은 그는 어제 숲에서 외투도 없이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밤에는 신유리의 동태를 살피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아예 휴식을 제대로 못 취한 그의 몸에서 지금 적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신유리가 체온계로 서준혁의 열을 재줬고 그는 현재 무려 39도로 열이 펄펄 끓는 상태였다.서준혁은 소파에 앉아 힘없는 상태로 축 처져있었는데 아픈 원인인지 평소 그의 날카로운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신유리가 먼저 말을 했다.“열나시는데 병원에 가보셔야죠.”서준혁은 그녀의 말에 더는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뜨리지 않았고 조용히 자신의 외투를 집어 들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압니다, 열은 전염가능성이 있다는거. 자두도 어려서 면역력이 없을 테니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키가 180이 훌쩍 넘는 그는 허리까지 얇아 섹시하기 그지없었지만 신유리는 왜인지 서준혁이 야위었다는 생각이 들었다,입구까지 걸어 나가던 서준혁은 연신 기침을 해대더니 신유리의 눈치를 살피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기침은 참을 수가 없어서.”신유리는 아까보다 더 빨개진 서준혁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차가운 말투로 입을 뗐다.“저쪽 창고 같은 방에 사람이 없이 비어있어요, 별 일 없으면 거실로 나오지 마시고요. 될 수록이면 우리 하율이한테 가까이 다가서지 마세요.”그녀의 말에 서준혁은 하던 기침을 멈췄고 얼른 신유리를 돌아봤지만 그녀는 이미 자두를 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서준혁은 손으로 자신의 올라가는 입 꼬리를 겨우겨우 막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신유리는 서준혁을 내보내지는 않고 남겨두었지만 그래도 그와 많이 접촉하기는 싫어 온 종일 방안에만 머물렀다.날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서준혁은 조심조심 신유리의 방문을 두드리며 말을 했다.“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던데 마트 가서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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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서준혁에게 손목을 잡혀있던 신유리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서준혁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한참동안 대답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서준혁에게 물었다.“서준혁 씨, 정말 어떨 때는 참 이상해 보여요.”“저 말입니까?”신유리는 고개를 숙여 곧 서준혁의 힘에 부서져나갈 것 같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며 그간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 뱉었다.“젤 처음 먼저 저를 건드린 사람도 서준혁 씨였어요, 그때는 새로운 여자니까 신선해서 계속 저를 따라다니셨겠죠.”“나중에는 저한테 질리셔서 먼저 저를 버린 사람도, 제 손을 놓은 사람도 서준혁 씨 본인이고요. 한번 또 한 번 더러운 행동으로 제가 수치심을 느끼게 절벽 끝까지 밀어버린 사람조차도 서준혁 씨였어요, 버티다 못한 제가 지금 당신 옆에서 떠나버리겠다는데 왜 자꾸만 저를 붙잡는 거예요?”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서준혁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서준혁 씨의 그런 장난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은.”신유리는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다 서준혁에게 해버렸다. 요 며칠 그의 과도한 챙김에 신유리는 기쁜 감정이 아닌 그저 피곤하다고만 생각했었다.서준혁은 자신의 일상이 지루해졌을 때 쯤, 막무가내로 다가와 조금 놀아주고는 또 떠나버리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라는 것을 신유리는 잘 알고 있었다.신유리는 마치 서준혁이라는 사람을 다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아닙니다.”“저랑 김가영 씨는 유리 씨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저희는 그저...”떨리는 목소리로 변명을 하던 서준혁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할지 몰라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자신의 옆에 두면 신유리가 위험해지지만 그녀와의 소중한 추억을 다 잃어버리긴 싫고 그래서 억지로라도 자신의 눈에 신유리가 들어오지 않게끔 애를 썼지만...이런저런 생각들은 서준혁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어버려 그는 차마 입을 쉽게 떼지 못했다.점점 거세게 뛰는 심장은 서준혁의 피부를 뚫고나오려는 듯 강했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서준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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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서준혁은 당시 본인의 선택이 후회스럽고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시간은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밤은 깊었고 서준혁은 혼자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싶었다....신유리는 어젯밤 자신의 말들을 듣고 서준혁이 떠났을 거라고 확신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밥상에 아침이 차려져있고 주방에서도 인기척이 들려왔다.서준혁은 마지막 아침을 꺼내다가 잠에서 깬 신유리를 발견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아침 드시죠, 제가 마스크를 끼고 한 거니 별 문제없을 겁니다.”신유리가 대답하려는 찰나 신연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그녀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서준혁을 힐끔 쳐다본 신유리는 자두를 먼저 소파에 잘 앉혀놓고는 통화를 하러 자리를 피했고, 신연은 업무상의 일로 몇 마디 말을 꺼내다가 문득 물었다.“서준혁 씨가 신유리 씨랑 같이 있습니까?”“네.”예상치 못했던 신연의 사적인 물음에 당황하던 신유리가 대답했다.“그래도 신유리 씨를 찾아갈 기분은 있었나 봅니다.”신유리는 그의 말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했고 그대로 통화를 끝마쳤다.거실로 다시 돌아간 신유리는 서준혁이 자두에게 우유를 데워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치 큰일을 하는 듯 그의 표정은 진지하고 엄숙하기 그지없었다.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온도계를 들고 우유의 온도를 시시각각 재고 있었다.자두는 바쁜 서준혁의 뒷모습을 보고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웃고만 있었다.신유리는 그런 자두를 슥 쳐다보고는 얼른 서준혁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서 우유를 낚아채고는 빠르게 데워 자두에게 먹이려고 했다.그러나 서준혁은 신유리의 숙련된 행동에도 의심이 가는지 그녀에게 먼저 물었다.“인터넷에서 우유는 60도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제가 온도계로 다시 재볼까요?”자두는 이미 배가 고팠는지 우유를 정신없이 마시고 있었고 신유리는 주방에서 본인이 마실 커피를 만들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저는 회사로 나가봐야 돼서요. 베이비시터분도 와서 자두를 돌봐주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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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신유리는 서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오해한 거야.”“오빠라고 부른 게 아니야, 유도가 아니라 자두라고 알려주는 거야.”신유리가 말을 마치자, 품에 안겨 있던 자두는 바로 덧붙였다.“자두!”서준혁은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더니 억지로 웃으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응, 자두는 뭔가를 강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거든? 특히나 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신유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유도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더 이상 그렇게 부르지 말아줘.”서준혁은 자두의 맑고 순진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설렜던 기분은 서서히 가라앉았다.결국 그의 오해였다.서준혁은 자조하듯 웃었다. 그는 자두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자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뿐이었다.신유리는 새로 배치된 가구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두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오전 내내 놀았던 자두는 피곤했는지 곧 잠들었다.오후, 서준혁이 주문한 카펫이 도착했다. 신유리는 두툼한 양모 카펫을 보더니 서준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서준혁은 이내 설명했다. “아까 유... 자두를 봤더니.”유도라는 이름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삼켜버린 채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두가 바닥에서 놀려고 하는데 원래 카펫이 너무 얇아서 좀 더 두꺼운 걸 주문했어.”“고마워.”서준혁은 긴장했던 마음이 그제야 내려앉았다. 그는 속눈썹을 내리깔며 말했다. “앞으로는 자두라고 부를게.”아직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아서인지, 그는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섞여 있었어 서운함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마치 무언가를 약속하는 듯했다.“서준혁.”신유리는 그의 말을 가볍게 끊고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언제 떠날 생각인데?”서준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녀의 발을 내려보았다.신유리는 발은 크게 다친 게 아니라 거의 나았지만 여전히 걷는 속도가 느렸다.“네가 좀 나으면 그때 떠날게.”신유리는 바로 물었다. “서창범 사건 곧 재판이야, 안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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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신연은 사람을 보내 신유리를 호텔로 데려갔다. 그녀는 성남시로 돌아온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녀는 반짝이는 야경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신연은 현재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서준혁은 서창범을 풀어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서창범 쪽에서는 서준혁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므로 인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서창범은 복수심이 강한 사람이라 아마 유리 씨를 사건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유리 씨가 법정에 서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겁니다.”신유리는 그의 의도를 꿰뚫어 보며 물었다.“그럼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나한테 계속 돌아오라고 암시하는 거죠?”“저 사람들이 이렇게 질질 끌다가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니까요.”신연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 서준혁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거든요.”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다만 무의미하다고 여긴 사건이 실제로는 신유리의 안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알겠어요.”신연처럼 이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또 있었다.하정숙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녀는 광기가 도는듯한 눈빛으로 날카롭게 말했다.“신유리를 데려오면 끝인데 왜 그 딴식으로 하는 건데? 이미 끝났어, 서창범이 빽을 찾아버렸으니.”하씨 저택, 하정숙은 일그러진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는 몇십 년간 기다려 온 복수의 기회가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쉽게 해결될 문제였는데 서준혁이 여자 때문에 서창범에게 빠져나갈 틈을 줬다고 여겼다.하정숙은 화를 못 이겨 소리를 질렀다.“어떤 방법을 쓰든 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서창범 때문에 평생을 역겹게 살아왔어.”“잊지 마, 내가 네 외삼촌에게 부탁해서 도와준 게 아니었다면 넌 지금쯤 넌 그 서자에게 짓눌려서 화인 그룹 지사의 사장은 무슨, 화인 그룹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거니까.”“네 아버지라고 생각해서 봐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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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신연이 갖고 있는 증거와 신유리가 증인으로 출석하며 서창범의 변호사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변호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증거가 하나씩 드러날수록 신유리의 얼굴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겪었던 고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누구한테나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신유리한테서 직접 전해 들은 서준혁은 뼛속까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신유리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리에 선 채 마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인 것처럼 보였다. 신유리의 증인 출석으로 서창범의 사건 판결은 거의 확정적이었다. 결국 8년의 유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 신유리는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다. 서창범에게 내려진 형벌은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았다. 신유리는 별로 홀가분하지 않았다. 서창범의 사건이 판결되고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뉴스에서도 여러 번 다루어졌다. 서창범 측의 변호사는 항소 신청을 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건의 파장은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너 요즘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 난 서창범의 사건이 터지면 당연히 그를 비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서준혁이 욕먹고 있어.”“서준혁이 배은망덕하고 불효자라며 저주까지 하고 있어. 아버지가 얘기하시는 걸 들었는데 이 때문에 서준혁이 몇 개의 계약을 잃었대. 오히려 오담윤은 그 틈을 타 많은 이익을 챙겼고.”임아중은 안타까움과 함께 신유리에게 소식을 전했다. 다들 서창범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결국엔 서준혁이 비난받을 줄이야.비록 임아중은 평소에 서준혁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편에 서고 싶었다.신유리의 안색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눈빛은 살짝 어두워졌다. 이런 결과를 서준혁이 몰랐을 리 없다.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감옥에 보낸 사람과 누가 협력하려 하겠는가. 분명히 그는 결과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대표님, 휘현 그룹에서도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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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신유리는 어르신께서 먼저 만나자고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녀는 서창범의 사건 이후로 어르신께서 다시는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르신은 자두를 보자 여전히 기뻐하며 자두에게 장난감을 주라고 유 아저씨를 시켰다. 신유리는 고개를 숙인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르신께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나랑 말도 못 하겠니?”신유리는 망설이며 고개를 들었다. “할아버지...”어르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랑 준혁이 많이 닮았어. 준혁이도 내가 화날까 봐 두려워하더구나. 내가 말했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법이라고. 이건 서창범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누구도 탓할 수 없다.”“게다가 서창범은 내 아들이고 준혁이는 내 손자다. 자두도 내 손녀고 내 아들이 내 손녀를 해치려고 했다니...” 어르신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얼굴에 쓴웃음을 띠며 손을 흔들었다. “유리야, 미안해할 것 없어. 우리 서씨 가문에서 너한테 미안하단다.” 신유리는 자두를 안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자두는 워낙 성격이 밝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어르신을 바라봤다. 어르신은 신유리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두를 안아봐도 될까?”신유리는 잠시 망설였지만 어르신의 기대 찬 눈빛에 이내 자두를 건네주었다. 자두는 어르신의 품에 안겨서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어르신은 감탄하며 말했다. “자두를 보니 준혁이 어렸을 때가 떠 오르는구나. 준혁이도 내가 손수 키웠지, 엄마 아빠라는 사람들은 그를 신경 쓰지도 않았어.”“내 기억으로 준혁이가 여덟, 아홉 살쯤이었을 거야. 그때 둘은 집에서 싸우다가 꽃병을 준혁이한테 던졌지. 그는 소리 없이 나에게 달려왔고 저녁을 다 먹고 나서야 팔에 큰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았어.”어르신의 목소리에는 후회와 자책이 가득했다.“내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를 곁에 데리고 키우지 못했지. 준혁이는 고집이 세고 바보 같고 직설적이어서 무슨 일이든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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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신유리는 바에 도착하자마자 서준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신유리는 어르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서준혁은 혹여나 다른 자리에 앉으면 찾지 못하기라도 할 듯 같은 자리만 고집했다.신유리는 자신도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몰랐다. 그냥 서준혁이 바에서 취했다는 말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이미 와 있었다. 신유리는 그날 어르신을 만난 이후로 서준혁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특히 서준혁이 이번 사건 때문에 화인 그룹과의 협력을 잃은 데다가 그 틈을 타 이사회 사람들이 압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그가 받은 영향은 이미 자신과 이 사건과의 관계를 넘었다. 재판이 끝난 이후, 잡담을 즐기는 사람들이 물어보는 것 외에 신유리에게는 다른 영향이 없었다. 하정숙조차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모든 악의는 서준혁에게 향했다. 신유리는 서준혁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신유리의 기억 속 서준혁은 결코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일로 그는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했다. 신유리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 완전히 잠겨 있는 서준혁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야맹증 때문에 어두운 환경에서 핸드폰 조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단번에 서준혁을 찾았다. 아마 습관이 되었다.신유리는 예전에 서준혁을 데리러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녀는 서준혁의 체형과 습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리 어두워도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예전에도 신유리는 여러 번 경고했었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못 볼 수도 있다고.서준혁은 한 번도 해명한 적 없었고 그렇다고 자리를 바꾼 적도 없었다. 이제야 신유리는 아마도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꿈속에서 봤던 어린 서준혁에게 생긴 상처와 고집스러움에 신유리의 눈에 깊은 감정이 담겼다. 신유리는 천천히 서준혁의 옆으로 다가갔다. 우서진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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