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꽃은 파란색과 보라색의 잘 어울리는 아이리스 꽃다발이었는데 예쁜 포장지에 싸여져 있어 더 아름다워 보였다. 게다가 오늘 신유리가 입은 연보라색 셔츠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녀는 꽃다발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서준혁이 말했다. “네가 아이리스 꽃을 좋아한다고 한 말 기억해.”신유리는 꽃을 좋아하지만 수많은 꽃 중에 아이리스 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어릴 때 이연지과 외할아버지가 꽃을 키우기를 즐겨하셔서 신유리는 늘 작은 의자를 끌어다 놓고 꽃을 보았기 때문에 꽃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않았었다.게다가 꽃은 서준혁이 건네준 것이니 신유리는 받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신유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그 꽃다발을 받지 않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밖에 천천히 황혼이 지고 있었다.어제 도우미 아줌마가 퇴직했기 때문에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 자두를 근처의 보육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사실 자두의 나이로는 보육원에 맡길 수 없는 것이 정상이지만 신유리와 그곳의 책임자는 어느 정도 아는 사이여서 어찌 저찌 맡길 수 있었다.자두를 데리러 가는 길 내내 서준혁은 신유리의 뒤를 따랐고 책임자는 외국인 여성이라 서준혁을 발견하고는 농담을 던졌다. “자기야, 이분은 누구? 남편인가요? 정말 멋져 보이네요.”신유리는 책임자의 물음에 얼른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럼 당신의 남자친구군요. 둘이 잘 어울리네요.” 신유리는 할 말을 잃었고 조용히 자두를 받아 안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서준혁이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준혁의 눈에는 끝없는 애정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는 듯했지만 신유리는 마음이 이상해져 그의 시선을 피하며 곧바로 떠났다. 최근에 변태 스토커가 동네를 누비고 다닌다는 뉴스가 떠들썩했기에 신유리는 자두를 보육소에 혼자 두는 게 걱정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와 하려고 결정을 내렸
갑작스러운 사고에 신유리는 입맛이 없어져버렸고 잔뜩 긴장한 채로 경찰에 상황을 설명한 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서준혁 또한 굳은 얼굴로 어딘가로 몇 통이나 전화를 걸더니 신유리에게 다가오며 말했다.“사건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내가 있을게, 아마 상습법인 것 같아. 너랑 자두만 집에 있으면 내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신유리는 핸드폰으로 최근 뉴스를 확인했고 그 변태는 이미 이 주위에서 꽤 오랜 시간을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창문에 가득 묻은 페인트는 사람을 불러 해결을 마쳤지만 흔적은 조금 남게 되었다. 신유리는 서준혁과 거실에 있는 모든 창문을 꼼꼼하고 세게 잠가버렸다.지금 이 상황에 신유리는 자꾸만 예전에 주국병이 진 빚으로 인해 사채업자가 들이닥치던 일들이 생각이 나 더욱 두려웠다.서준혁이 집에 남겠다고 결정했으니 신유리도 그를 내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필경 무서운 변태보다는 서준혁이 더 믿음직하니까 말이다.게다가 집에 어린 자두로 있어 홀로 긴급 상황을 대처하기보다는 남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심각한 어른들 뒤로 해맑은 자두는 방실방실 웃고만 있었다.서준혁이 해준 이유식을 먹고 나서는 혼자 땅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자두는 요즘 그가 사온 장난감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곰 인형을 손에 들고는 뭐라는지 모를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자두의 모습을 본 서준혁은 아이를 번쩍 안았고 자두도 안기자마자 서준혁의 목을 꽉 감싸며 애교를 부렸다.서준혁은 자두가 자신을 어떻게 막 대해도 그저 웃기만 하다가 옆에 있는 신유리를 달래며 입을 열었다.“아까 통화하면서 물었는데 이 동네 치안이 그래도 꽤 괜찮대, 방금 꺼는 그냥 겁주기였을 거야.”“겁?”신유리가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그래도 조심하는게 좋을 거야, 이미 그 사람은 우리를 노리고 있을 수도 있어. 너만 괜찮다면 내가 사는데 같이 가서 지낼래?”서준혁
신유리는 바뀌어가는 서준혁의 표정에 왜인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핸드폰을 다시 건네받은 신유리는 자두를 안아 들었고 아이가 조금씩 걸음마를 떼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서준혁이 깐 카펫은 유난히 두꺼워 넘어진다 해도 다치지 않으니까.서준혁은 자두가 핸드폰 영상 속 강아지 한 마리에게 아빠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는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 사실에 혼이 나간 듯 앉아 있다가 나지막한 소리로 신유리에게 물었다.“저녁 뭐 먹고 싶어?”“아무거나.”신유리는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대답을 했지만 서준혁은 요 며칠 반찬과 국, 심지어는 자두의 이유식까지 다 다르게 만들어주었다.자두의 입맛을 알아차린 서준혁이라 밥 먹을 시간만 다가오면 아이는 먼저 밥상으로 다가가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밥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신유리도 그가 한 모든 음식들이 다 자신의 입맛에 맞춘 사실을 발견했지만 유일하게 하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두에게 아빠라고 부르라고 가르쳐주려는 서준혁의 의지였다.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아빠라는 단어를 배워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교육을 하고 있었다.여전하게도 몇 개의 외국어들을 막 섞어가며 가르치고 있었지만 서준혁 또한 고집이 센 사람이라 어떻게 해도 그 영상은 자두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그러나 서준혁이 자두에게 매달린 뒤로 신유리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일을 할 수가 있었고 그러는 도중 자두에게 언어적인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서준혁 또한 이 점을 알아차렸는지 계속 몇 개 국어로 자두랑 소통을 하려고 했고 신유리는 가끔 서준혁이 정말로 자두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준다는 착각이 들었다.그 순간,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 벨소리에 신유리는 정신을 차렸고 발신자는 이신이었다.“나 이제야 뉴스 봤는데 넌 좀 어때?”그는 신유리 집 주위에 발생하는 변태 일을 제일 먼저 물었다.“괜찮아, 요 며칠 별 다른 일은 없어.”신유리가 대답했다.“그럼 됐네.”이신은 머뭇대다가 신유리에게 말했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침 마트가 있어 두 사람은 자두의 분유를 사러 가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저녁에는 먹고 싶은거 있어?” 서준혁은 신유리에게 저녁 메뉴에 대해 물었다. 최근 정기적으로 집안청소를 청소부에게 맡겼고 먹고 마시는 것은 다 서준혁이 책임지고 있었다. 사실 서준혁 또한 밥을 잘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를 찾고 영상을 보며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요리에 꽤 재능이 있었는지 그가 한 음식들은 신유리는 처음에는 인정하지는 않았지 서준혁이 만들어준 이유식을 너무나도 맛있게 먹는 자두를 보고는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중식 아니면 한식? 더 아니면 서양식?” 그는 신유리에게 끈질기게 물었고 신유리는 하는 수 없이 대답을 했다. “다 괜찮아.” 그러자 서준혁은 자두에게 시선을 돌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자두에게 물었다. “네가 한번 말해봐, 엄마는 뭐가 먹고 싶대?” 자두는 눈을 깜빡이며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옹알거렸다. “저거! 줘!” 아이가 가리킨 방향을 본 서준혁의 눈에 잘 구운 닭 한 마리가 들어왔다. 곧 자두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단호히 말했다. “안 돼, 저건 네가 못 먹는 거야.” 자두는 누구를 닮은 건지 이상하게도 튀김이나 구운 음식을 먹기 좋아했다. 전에 혼자 몰래 서준혁이 상 위에 놓은 구운 닭고기를 먹고 난 뒤부터는 닭고기를 볼 때마다 사달라고 서준혁에게 졸라댔다. 서준혁은 처음에 자두가 원하는 대로 다 사주다가 몇 번이나 반복이 되자 아이의 음식 습관이 잘못될까 봐 마음을 굳게 먹고 사주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두는 서준혁의 단호함에 속이 상한 듯 그를 끌어안고는 칭얼거렸고 신유리는 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었고 왜인지 모르게 착잡해졌다. 신유리가 업무 때문에 아이를 돌 볼 시간이 없어 자연스럽게 서준혁이 자두랑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는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걸음마도 연습하며 각종 언어까지 가르쳤다. 신유리는 당연하게도 요즘 자두가 서준혁을 어색해하기는커녕
저녁 식사는 다소 침묵 속에 진행되었고 유일하게 기뻐하는 사람은 자두뿐이었다. 서준혁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유식을 만들었다. 자두는 서준혁이 만든 이유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일 적극적으로 먹었다. 그는 신유리를 바라보며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 “사실 그렇게 서둘러 이사할 필요 없어. 나도 요즘 여기서 지낼 거야.” 신유리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말했다. “남의 집에서 지내는 게 별로 익숙하지 않아서.”서준혁은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그는 자두를 한 번 보더니 말했다. “박지훈이 자두가 이유식을 좀 더 먹는 게 좋다고 했어, 그리고 자두도 내가 만든 걸 좋아하고.”신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당연히 자두가 서준혁이 만들어준 이유식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두를 데리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습관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만약 자두가 서준혁의 존재에 익숙해진다면 그때 가서 자두를 데리고 가는 게 더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전문적인 도우미를 다시 찾는 중이야, 요즘 자두 달 돌봐줘서 고마워.”“신연과 계약을 체결해서 그때면 일이 많아질 것 같아. 여기 지내는 게 더 편할 거야.”“일은 회사에서 처리할 거야.”신유리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아무런 표정도 없이 말했다. “다 먹었어. 이만 일어날게.”거절의 뜻은 명확했다. 서준혁은 비록 마음이 아팠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두에게 주의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두는 입을 크게 벌리며 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나머지 마음이 녹아내렸다. 신유리는 자두의 독립성을 키우기 위해 일찍이 스스로 밥을 먹도록 했다. 그래서 자두는 자신의 자그마한 숟가락으로 애써 먹었다. 자두는 서준혁의 시선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추더니 서준혁을 향해 웃었다. 서준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분명 그는 자두의 성장과 함께해야 하는데 그녀의 탄생조차 환영하지 못했으니. 식사 후, 신유리는 떠나려고
우서진과 통화를 마치고 서준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테라스 밖의 리시안셔스를 바라보았다. 집을 처음 구입할 때 그는 이 리시안셔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유리가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가까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준혁은 이 집을 구입하자마자 꽃가루 방지 구조를 설치하도록 했다. 그는 신유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녀는 꽃을 좋아하지 그를 좋아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서준혁의 싸늘한 눈매에 서서히 절망의 빛이 번진 채 리시안셔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리시안셔스의 꽃말도 신유리가 전에 알려준 것이다. 진실한 사랑. 서준혁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눈을 감았다. 그는 손목으로 눈을 가린 채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진실한 사랑? 신유리를 속이려 했던 순간부터 그는 이미 진실을 논할 자격을 잃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그를 믿지 않았고 그를 떠난 것이다. 거짓말쟁이는 사탕을 받을 수 없다. 벌을 받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배운 교훈이기도 하다. 서준혁은 소파에 앉은 채 거실에 있던 핸드폰이 울릴 때까지 깊은 침묵 속에 빠졌다. 하정숙이 전화를 걸어왔다. 서창범의 사건이 끝나고 서준혁이 이곳에 온 후로 두 사람은 거의 연락한 적이 없었다. 하정숙이 먼저 그를 찾지 않았고 그 역시 하정숙과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모자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낯설었다. 서준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로 하정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성남으로 돌아올 거니?”그녀의 말투에는 질책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네가 해외로 나간 이유를 모를 줄 알아? 서준혁, 여자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겠니?” “하씨 가문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세요?”하정숙은 이미 하씨 가문으로 돌아갔고 지금도 살고 있었다. 서준혁의 말투는 더없이 차가웠다.“하씨 가문에서 또 뭘 원하는 거죠?”하정숙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씨 가문에서 뭘 원
이신은 신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일에 대해 몇 마디 얘기를 나눴다. 김가영과 계약을 체결하고 남주시 쪽의 작업 진행 상황을 전했다. 그러고 나서 사적인 질문을 했다. “서준혁이 그쪽에 있다며?” 신유리는 잠시 멈칫했다. 사실 이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특히 이신이 서준혁에 대해 물어볼 때면 더욱 난처했다. 그러나 굳이 이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응, 요즘 신연과 계약하고 있어서.”“그래서 너를 찾아갔네.”그는 물음이 아닌 확신을 했다. 신유리는 부인하지 않았다. 침묵은 최선의 응답이었다. 이신도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조금 긴장된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냈다. “전에 네가 사는 동네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그게… 서준혁이 있어서?”이신은 전에 신유리가 걱정되어 보러 오겠다고 하자 그녀가 단칼에 거절했었던 일을 떠올렸다. 신유리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채 이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솔직히 그녀는 이제 곧 서른이고 순수했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이신이 전에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줬던 것에 대해 감동하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로 집 안을 바라보았다. 마침 자두는 서준혁과 함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자두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다. 비록 아직도 어리지만 이목구비는 서준혁과 정말 많이 닮았다. 특히 둘이 함께 앉아 있을 때면 더욱 선명했다. 누구나 그들이 부녀 사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때때로 신유리는 혈연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전화 너머로 이신은 그녀의 대답을 듣지 못하고 결국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이신은 부드럽고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 모든 결정을 존중할 거야, 너한테 좋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신유리는 그의 말투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내 잘못이야.” “왜?”
신유리는 그림자를 보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신유리는 회사를 나올 때부터 눈치챘다. 그녀는 기억력이 좋아서 그가 입고 있던 옷 색깔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며칠 전 소란을 일으킨 스토커 사건 때문에 신유리는 경계심이 매우 강해져 있었다. “뭔 일 있어?”서준혁은 이내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신유리는 다시 유리 진열장을 보자 그 그림자는 이미 뒤쪽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신유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서준혁의 시선 끝에는 작은 디저트 가게가 있었다. 진열대에 놓인 디저트는 작고 정교했으며 보기만 해도 달콤해 보였다. 그는 신유리를 보며 물었다.“하나 사 갈래?”신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당분 섭취를 엄격히 신경 썼고 디저트를 거의 먹지 않았다. 서준혁도 마찬가지로 단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며 별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유리보다 더 엄격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하정숙과 서창범의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규칙은 그대로 따랐다. 재벌가에서 자란 그는 재료 하나하나까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서준혁은 디저트에 별로 관심이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다만 집 앞에서 예상치 못한 손님을 만났다. 우서진은 담배를 입에 물고 얼굴에는 약간의 짜증이 묻어 있었다. 신유리의 가사 도우미는 얼굴에 경계심이 가득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신유리와 서준혁이 돌아온 것을 보고서야 가사 도우미는 안심하며 말했다. “사모님, 이분께서 사모님의 친구라고 자칭하셨지만 사모님의 확인을 받지 못해서 열어드리지 않았어요.”신유리는 계약을 체결할 때 이미 도우미에게 지인들이 방문할 때는 미리 알려줄 테니 함부로 사람을 들이지 말라고 당부한 바 있었다. 신유리는 우서진을 보고 별로 반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녀가 아직 인사를 하기도 전에 우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