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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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강하리는 손연지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너 어젯밤에 다쳤다며?”강하리는 웃으며 대답했다.“응, 심각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미치겠네.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방금 인터넷에서 소식 보니까, 송유라 팬이 그런 거라던데?”“응, 맞아.”강하리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송유라와 구승훈 사이에 껴서 훼방 놓고 있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송유라 대신 나한테 매운맛 좀 보여준다면서.”“웃기지 말라 그래! 누가 누구한테 훼방 놓았는데?! 송유라랑 구승훈이 지금 뭐 반 푼어치도 되는 사이라고 그래? 구승훈도 그냥 X 여자친구라고만 그랬잖아. 그럼 구승훈과 송유라는 아무 사이도 아닌데, 뭘 훼방 놨다는 거야. 너 봐라, 너. 구승훈과 3년이나 같이 지내고 애까지 생겼는데, 대체 누가 세컨드인데?”강하리는 이 말을 듣고 씁쓸하기만 했다.“어쩔 수 없지 뭐. 내겐 떳떳한 명분이 없잖아.”손연지는 그녀의 자조적인 말에 목이 메었다.“그럼 뭐 송유라는 명분 있어? 걔도 마찬가지잖아. 걔가 너보다 더 잘난 게 뭔데? 누가 누굴 얕보고 있어! “강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아이는? 네가 지금 이리 올래? 내가 초음파 검사 다시 해줄게.”강하리는 입꼬리가 보기 좋게 올라갔다.“어젯밤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의사가 괜찮대.”손연지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이가 무사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내가 그 송유라를 확 죽여버릴 거야!”“걱정하지 마, 아이는 괜찮다니까. 배 속에 잘 있어.”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 일은... 송유라랑 관련이 없대.”“하,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아?”손연지는 콧방귀를 꼈다.“이 일이 송유라랑 관련 없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강하리는 가볍게 웃었다. 그녀도 이 일이 반드시 송유라와 관련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하지만 증거가 없잖아. 방금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인데, 이 사건은 이미 그렇게 결론이 났어.”그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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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다 너 때문이야, 이 빌어먹을 나쁜 년! 네가 내 딸을 해쳤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왜 합의를 안 해주는 거야, 왜! 걔 아직 어린앤데!”잔뜩 노하여 울부짖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러나 강하리는 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배에서 오는 막심한 통증, 그것 때문에 숨도 바로 쉬어지지 않았다.“하리야, 괜찮아?”구승훈은 큰 보폭으로 몇 걸음 뛰어와 그녀의 창백한 안색을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강하리는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배 아파요, 병원, 병원으로 빨리!”구승훈은 실눈을 뜨더니 얼른 그녀를 안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방금 그 남자를 힐끔 보았다.“경찰서 입구에서 사람이 다 다쳐요? 이 일, 엄중히 조사해 주세요.”경찰들은 순식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급히 응대했다.“구 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말을 마치자 경찰들은 바로 남자에게 수갑을 채웠다.그러자 남자는 예상하지 못한 얼굴로 멍해 있더니 변명했다.“난 그냥 저 여자를 좀 밀었을 뿐이야. 저거 생트집이라고. 이건 모함이야, 저 악독한 여자가 날 지금 모함하는 거야. 여기 CCTV 다 있잖아. 다 날 증명해 줄 수 있어. 저년이 내 딸을 해친 거로 모자라서 나까지 해치려고 한단 말이야. 강하리, 너, 이 나쁜 년, 넌 내연녀로 욕먹어도 싸!”그 남자는 아직도 발버둥 치며 소리치고 있었다.경찰은 그걸 보고 서둘러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그 입 다물어, 어쨌든 네가 사람을 민 거 맞잖아!”변호사를 데리고 막 도착한 구승재는 구승훈이 강하리를 안고 밖으로 걸어 나가자 같이 따라 나가며 물었다.“형, 이거 뭐야, 왜 이래? 강 부장님이 뭐 잘못됐어?”구승훈은 그를 힐긋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길가에 주차된 차 쪽으로 걸어갔다.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를 걸어 나오며 구승훈은 낯빛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강하리의 창백한 얼굴에 이젠 핏기 하나 없었고 이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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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이 순간까지도 그는 그녀에게 일말의 희망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그는 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시종일관 그의 태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매우 심플하면서도 단호한 대답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한 줄기 희망을 끊어버렸다.구승훈의 손을 꽉 잡고 있었던 그녀의 손은 천천히 힘이 풀렸다.“미안해.”강하리는 나지막이 말했다.누구한테 이 말을 한 건지 그녀도 알지 못했다.구승훈한테 한 말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또 배 속의 아이한테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그것도 아니면 그녀 자신한테 한 말이었거나.“미안해......”눈을 스르르 감으며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왔다.이쯤 되니 몸이 더 아픈지 마음이 더 아픈지 헷갈릴 정도였다.그저 찬 기운이 온몸을 적시고, 하체에서는 뜨거운 샘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그녀의 입술은 더 하얗게 변해갔다.어떤 소중한 것이 그녀를 점점 떠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구승훈은 한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손은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텅 빈 손바닥이 처음으로 허전하게 느껴지며 마음마저 무거워졌다.그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었고, 손등에는 핏줄이 불거졌다.컬리넌 차가 빛의 속도로 병원에 들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강하리를 차에서 안고 내렸을 때 그는 손바닥이 축축해지는 감을 비로소 느꼈다.새빨간 피가 그의 눈동자를 자극해 흔들리게 했다.어려서부터 어둠 속에서 살아온 그는, 지금까지 그 어떤 일도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할 거라 자부했다.하지만 이 순간 숨이 가빠져 오는 것만 같았다.그는 강하리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그녀를 의사에게 넘겨주고 나서야 그는 넋이 나간 듯 빨갛게 피로 물든 자기 손을 바라보았다.뒤따라온 구승재가 구승훈의 손에 묻은 피를 보고 놀라 눈을 껌벅였다.“형... 강 부장님이...”구승훈은 다시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구승재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아마 유산한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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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저 여자는 처음부터 내가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어. 날 속이지 말았어야 했다고.”구승훈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갔고, 구승재는 그의 뒤를 바짝 따라나섰다.“형,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강 부장이 형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는데, 형은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는 거야? 그렇다면, 왜 강 부장을 계속 곁에 두는 거야? 그냥 보내주지? 그럼 형도 송유라랑 잘 지낼 수 있잖아!”구승훈은 발걸음을 갑자기 멈춰 실눈을 뜨며 구승재를 흘겨봤다.“구승재, 네가 내 동생이라고 내 사생활에 간섭할 수 있다고 생각해?!”구승재는 말문이 꽉 막혔다.“형, 난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됐어, 솔직히 말할게. 난 강 부장을 형수처럼 생각했어, 어쨌든 송유라보다는 나은 것 같아.”구승훈은 그를 힐긋 쳐다보고는 입술을 약간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응급실 밖.손연지는 부리나케 달려왔다.그리고 응급실 밖에 서 있는 구승훈을 보자 곧장 그리로 뛰어갔다.“어떻게 된 거예요? 하리가 왜 유산해요? 방금 저한테 전화했을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구승훈 씨! 대체 왜 유산했냐니까? 걔가 이 아기를 얼마나 원했는데! 아니 왜, 왜 하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왜?!”“구승훈! 너 이 나쁜 새끼! 애를 안 가질 거면 네가 꿰매, 네가 정관수술을 받으라고! 네가 싸질러놓고 왜 하리가 이 고생을 해야 하는데! 이 개 쓰레기, 나쁜 놈아!”구승재는 손연지의 욕설에 적잖게 놀랐다.저도 감히 구승훈과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그는 서둘러 앞에 막아서며 손연지의 팔을 붙잡았다.“당신 미쳤어?”“이거 놔, 내가 하리 대신해서 이 형편없는 쓰레기한테 욕 좀 퍼부어 주려니까!”구승재는 마구 몸부림을 치는 손연지의 허리를 힘껏 껴안고 한쪽으로 끌고 갔다.구승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손연지가 잡아당겨 흐트러진 옷을 정리했다.그리고 정리가 끝나자, 그는 손연지한테 눈길을 돌렸다.의외로 화난 얼굴은 아니었고, 그저 눈빛만 냉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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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병실 안에서는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구승훈은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그대로 문 옆에 계속 서 있었다.그 후 한참 지나, 안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멎자, 그는 그제야 손에 든 부서진 담배를 내려다보며 그걸 쓰레기통에 버리고, 또 새 담배를 꺼내 흡연 구역으로 걸어갔다.손연지는 퇴근 후에 바로 또 찾아왔다.병실에는 강하리 혼자 병상에 누워있었고, 그녀의 눈가에는 촉촉한 이슬이 맺혀있었다.그걸 보자 손연지는 억지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사실 없어도 괜찮아, 오히려 잘 됐을지도 몰라... 너 혼자서 아줌마도 돌봐야 하고 애까지 돌보면 너무 힘들잖아.”강하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안간힘을 다해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아.”자신의 상황이 어떤지 그녀도 모르지는 않았다.아기가 지워진 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그렇지 않으면 태어나서부터 그녀를 따라 고생해야 하니까.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고통스러웠다.손연지는 그녀의 슬픈 표정을 보며 가슴이 아파, 애써 말머리를 돌렸다.“배는 안 고파? 내가 뭐 좀 사다 줄까?”강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나 병원에서 얼마나 있어야 해?”“하룻밤 지내보고, 아픈 데 없으면 내일 아침에 퇴원하면 될 거야. 퇴원하면, 나랑 같이 갈래? 내가 네 산후조리 돌봐줄게.”“그래.”강하리는 지금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는데 다행히 손연지는 하지 않았고 그저 그녀의 이불을 위로 걷어 올렸다.“왜 갑자기 유산하게 된 거야? 그전에... 통화하고 있을 때만 해도 괜찮았잖아.”손연지는 말하면서 눈시울을 약간 붉혔다.그녀조차도 이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데, 강하리는 오죽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강하리는 천장을 보고 있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한마디 꺼냈다.“계단에서 누가 날 밀어서 넘어졌어.”손연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널 밀었다고? 누구야 그 사람? 난 구승훈이 널 이렇게 만든 줄...”그녀는 말하다가 멈췄다.강하리는 씁쓸하게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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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구승훈은 강하리를 부축하여 일어나 앉혀, 죽 한 그릇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탓인지, 그녀는 그릇을 제대로 쥐지 못하고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하였다.다행히 구승훈은 재빨리 그 그릇을 잡았고, 눈에는 보기 드문 측은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왜 그릇도 못 받아?”말을 마친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먹여줄까?”“아니에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강하리는 그릇을 다시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구승훈은 주지 않았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 매우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강하리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아이를 가지려고 한 건 제 선택이에요. 지키지 못한 것도 제 탓이고요. 대표님은 저한테 빚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그러자 구승훈은 그릇을 협탁에 올려놓고 손을 닦기 시작했다.굳어진 표정으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 눈을 들어 입을 열었다.“강하리, 우리 사이는 공평한 거래 관계였어. 난 당연히 너한테 빚진 거 없고. 오히려 네가 임신을 숨겼고 계약을 위반했잖아.”강하리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목구멍이 막혔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자조하듯 입을 열었다.“네, 내 잘못이에요.”짤막한 몇 글자를 내뱉는 것이 그녀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만 가능했다.그러고는 힘이 풀려 침대에 기대어 앉으며,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얬다.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또 말을 꺼냈다.“하지만 어쨌든 네가 임신한 건 내 책임 맞아. 그러니까 널 이렇게 돌보는 거로, 그동안 너한테 소홀했던 거 보상하는 셈 치자. 미안해, 너한테 임신시켜 놓고 유산까지 하게 만든 거, 고생했어.”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그 죽그릇 들었다.강하리는 그의 미안하다는 들으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턱밑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녀가 여태 원했던 건 그의 미안함이 아니었는데 말이다.하지만 인제 와서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을까.아이가 이미 없어졌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눈가가 시큼해져 오는 걸 애써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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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구승훈은 별로 이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하리야, 넌 끝내자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임신한 사실을 속인 건 따지지 않겠지만, 그걸 빌미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할 생각은 마!”그의 냉담한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강하리는 씁쓸하게 웃었다.맞다. 그녀가 헤어지자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였지.둘이 사인한 그 계약서 내용에는 그녀한테 유리한 조건은 하나도 없이 그저 노예계약 같은 거였다. 그저 복종하는 것 말고는, 그의 앞에서 그녀는 아무런 자격도 없다.화를 낼 자격도 없고, 성질낼 자격도 없으며, 헤어지자고 말할 자격조차 없었다.“왜, 억울해?”구승훈이 물었다.“아니요.”강하리는 그저 웃었다.미친 듯이 발광하지도 않고, 그저 고스란히 슬픔을 받아들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듣는 사람조차 가슴이 답답해지게 말이다.화가 갑자기 치밀어 오른 구승훈은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하게 했다.“너 애초에 그 애를 낳을 생각 했을 때부터,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다 알아야 했던 거 아니야? 지금 와서 누구 보라고 이 청승맞은 얼굴인데?”그의 무정한 말들이 한 글자 한 글자 강하리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들어와 박혔다.그녀의 하얀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그리고 눈시울은 몹시 시큰시큰하고 입가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승훈 씨, 당신은 마음이라는 게 있어?”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런 말이 가능했을까.그러나 그 말에 구승훈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도 잘 몰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아마 없는 거겠지...그는 일어나 협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불은 안 붙이고 그냥 물고만 있었다.“하리야, 이 세상일들이 마음 갖고 되는 게 아니야. 네가 마음이 있으면 뭐 해. 애가 살아남기라도 했어?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손에 쥐고 있는 돈과 권력이야말로 진짜라는 걸 알아야 해. 난 너처럼 마음이 없지만, 권력이 있고 힘이 있어.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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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야심한 밤, 차 한 대가 병원에서 출발하여 외곽에 있는 한 폐쇄된 낡은 공장 밖에 멈추었다.구승훈이 발을 들어 작업장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자, 안에서는 분에 겨운 욕설이 한창이었다.“그 빌어먹을 년이 내 딸을 해치고 나까지 모함했어! 너희들이 정경유착까지 해서 날 이렇게 만들어? 그년은 벌 받을 거야, 내가 나가면 그년 죽여버릴 거야!”구승훈은 약간 뻣뻣해진 손목을 좌우로 회전하며 바닥에서 나무막대기를 집어 들어 무게를 짚어보고는 다른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막대기를 휘둘러 남자의 정강이를 한 대 세게 내리쳤다.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폐기된 작업장 안에서 메아리쳤다.구승훈은 몽둥이를 버리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누가 그러라고 시켰어?”그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구승훈을 쳐다봤다.“그 여자가 내 딸을 해쳤어. 분명 그 여자가 먼저 그런 거라고. 그래서 내가 그냥 좀 밀쳤는데, 그것도 안 돼?”류덕구 서장은 옆에 서서 머리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대로 때려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그도 난처하게 될 판이다.“구 대표님, 저희도 오늘 하루 동안 취조했는데, 줄곧 이 말밖에 없습니다. 강하리 씨가 이 사람 딸과 합의를 안 하니까 홧김에 강하리 씨를 밀어버린 거라고요. 이것도 사실 말이 되긴 하거든요.”구승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서장은 그의 표정을 살피더니 서둘러 또 물었다.“혹시 의심 가는 상대가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가 조사해 보겠습니다.”구승훈은 오랫동안 침묵했다.“아닙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다음 날 아침이 되자 손연지는 병실에 와서 강하리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괜찮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퇴원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는 어두운 낯빛의 구승훈을 보며 물었다.“구 대표님, 혹시 불편하시면 제가 하리 몸조리를 맡을게요.”구승훈은 짙은 눈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약간 언짢은 말투로 대답했다.“다른 사람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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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병원 안의 숱한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봤다.강하리는 이런 모습으로 그들의 주목을 받는 게 좀 거북했다.“나 절로 갈 수 있어요.”구승훈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걸을 수 있는 게 확실해?”“네.”구승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막 들어가려 할 때, 구승훈의 발걸음이 멈칫하였다.강하리가 고개를 돌려보니, 엘리베이터 안에 송유라와 안현우가 있었다.뜻밖에도 송유라의 팔목에는 거즈가 감겨 있었다.구승훈은 그걸 보고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야?”송유라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며 대답했다.“괜찮아요.”안현우가 웃으며 말했다.“승훈아, 너 어젯밤 유라 씨가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어제 유라 씨가 다쳐서 우리가 데리고 병원에 왔잖아.”구승훈은 송유라의 거즈로 감긴 팔목에 시선을 떨궜다.“어떻게 다쳤는데?”송유라는 눈시울을 붉히며 새침해서 말했다.“그게 걱정되긴 한 거예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말하기 싫으면 안 물을게.”“오빠!”두 사람은 이렇게 강하리를 사이에 두고 한마디씩 대화가 오고 갔고, 중간에 끼어 있는 강하리는 민망할 따름이었다.구승훈의 눈매가 부드러워진 걸 그녀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송유라의 팔목에 시선이 떨어질 때 그의 눈에 스치는 안타까움도 오롯이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다.그의 품에 안긴 사람은 그녀인데, 그의 눈에는 온통 다른 여자에 관한 관심뿐이었다.그 순간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이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의 차이구나...“대표님.”강하리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했다.“내려줘요, 저 이제 걸을 수 있어요.”혼자 애쓰며 버티고 서 있을지라도, 그 둘 사이에 끼어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구승훈은 그녀를 내려다보더니, 아마 송유라한테 자신이 다른 여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인지, 결국 그녀를 내려놓았다.강하리는 벽에 겨우 버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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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송유라는 옆에 서서 눈시울을 붉혔다.“현우 씨, 그만 해요, 난 그저 강 부장님의 화가 좀 가라앉으라고 그런 거예요. 누굴 책임지게 하려고 그러진 않았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안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유라 씨, 유라 씨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송유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구승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강 부장님이 더는 화만 안 내면, 난 어떡해도 좋아요.”구승훈은 아까부터 계속 어두운 눈빛을 하고 안색이 매우 나빴다.그는 강하리를 쳐다봤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타협할 의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송유라 씨가 그렇게 사과하고 싶으시다면 하세요, 사과.”그녀가 말을 마치자 송유라는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크게 떴다.송유라 뿐만 아니라 안현우도 멍하니 정신을 못 차린 듯 보였다.“무슨 말이에요, 그게?”강하리는 안현우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아까 안 대표님이 제가 송유라 씨 사과를 안 받아들인다면서요. 그러니까 사과하시라고요, 사과하시면 받아줄게요. 그리고...”그녀는 이번엔 고개를 돌려 송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송유라 씨도 제가 화만 풀린다면 무엇이든 한다면서요. 그럼 사과하세요. 사과하시면 저도 화 풀릴 겁니다.”“강 부장님...”송유라는 강하리가 이렇게 나올지 몰랐다.“정말 제 사과를 받으실 거예요?”“그렇지 않으면요? 송유라 씨가 또 저한테 미안해서 자해하는 일을 더 벌이기 전에, 사과하시라는 건데, 이것도 송유라 씨를 위한 일이 아닌가요?”“강 부장님, 전 이미 다쳤어요. 더 이상 뭘 바라요?”송유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그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사람이라면 다 가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을 만큼 마음을 측은하게 했다.그에 비하면 강하리는 악랄한 요부 같았다.그녀는 한 치도 물러설 기색이 없이 버티고 섰다.안현우가 옆에서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구승훈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승훈아, 너 강하리가 유라 씨를 이렇게 괴롭히는데 보고만 있을 거야?”구승훈의 어두운 눈빛은 송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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