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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구승훈은 강하리를 부축하여 일어나 앉혀, 죽 한 그릇을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은 탓인지, 그녀는 그릇을 제대로 쥐지 못하고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하였다.

다행히 구승훈은 재빨리 그 그릇을 잡았고, 눈에는 보기 드문 측은한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릇도 못 받아?”

말을 마친 그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먹여줄까?”

“아니에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강하리는 그릇을 다시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구승훈은 주지 않았다.

그는 침대 옆에 앉아, 매우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강하리는 그의 시선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가지려고 한 건 제 선택이에요. 지키지 못한 것도 제 탓이고요. 대표님은 저한테 빚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러자 구승훈은 그릇을 협탁에 올려놓고 손을 닦기 시작했다.

굳어진 표정으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서 눈을 들어 입을 열었다.

“강하리, 우리 사이는 공평한 거래 관계였어. 난 당연히 너한테 빚진 거 없고. 오히려 네가 임신을 숨겼고 계약을 위반했잖아.”

강하리는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목구멍이 막혔다.

한참 후에야 그녀는 자조하듯 입을 열었다.

“네, 내 잘못이에요.”

짤막한 몇 글자를 내뱉는 것이 그녀의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만 가능했다.

그러고는 힘이 풀려 침대에 기대어 앉으며,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얬다.

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또 말을 꺼냈다.

“하지만 어쨌든 네가 임신한 건 내 책임 맞아. 그러니까 널 이렇게 돌보는 거로, 그동안 너한테 소홀했던 거 보상하는 셈 치자. 미안해, 너한테 임신시켜 놓고 유산까지 하게 만든 거, 고생했어.”

그는 말을 마치고 다시 그 죽그릇 들었다.

강하리는 그의 미안하다는 들으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턱밑까지 차올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여태 원했던 건 그의 미안함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을까.

아이가 이미 없어졌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눈가가 시큼해져 오는 걸 애써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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