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마치 심장이 날카로운 칼에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이 남자에게 자기가 더 이상 임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말하면 마치 또 책임을 지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하지만 구승훈의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심장을 찔러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 제대로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웠다.그녀는 심호흡하며 구승훈에게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그럴게요.”구승훈은 찌푸린 미간이 더 깊어졌다. 분명 그가 한 말이었지만 그녀가 대답하는 찰나 그의 마음 또한 더 불편해졌다.설마 정말로 다른 남자와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그의 어두운 눈빛이 강하리의 몸에 떨어졌다.“하지만 너무 좋은 생각은 하지 마. 요즘 남자들은 너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널 반드시 사랑하는 건 아니니까. 이다음에 남자를 만날 때는 잘 보고 만나.”강하리는 웃었다.“적어도 아이를 낳게 하겠죠.”구승훈의 얼굴은 순간 더욱 굳어졌다. 한참이 지난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쉬어.”강하리는 눈을 감았다.“나가 줄래요?”구승훈은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왜? 내가 여기 있으면 너 쉬는 데 방해 돼?”“네.”강하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대표님이 내 휴식을 방해하고 있어요. 구 대표님, 나가 주시겠어요?”구승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이런 강하리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속으로부터 그와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그제야 그는 계약서로 그녀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이 여자는 반드시 멀리 숨어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움켜쥐었다.“강하리, 얌전하게 굴어.”강하리는 웃었다.“이미 아주 얌전하게 있는 거 같은데요?”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떴다. 확실히 강하리는 얌전했다. 지난 3년 동안 그녀는 말대꾸조차 거의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질문을 하면서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더 얌전하게 굴어.”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
강하리는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괜찮아. 그냥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힘이 있는 게 더 이상한 거야. 너 어젯밤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알지?”강하리는 몰랐지만 차에서부터 출혈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구승훈은 너 잘 챙겨주니?”강하리가 대답했다.“응 잘 챙겨줘. 전문 도우미까지 구해줬어.”“어머.”손연지는 조금 놀랐다.“그래도 완전히 양심이 없는 건 아닌가 보네.”강하리는 웃었다. 비록 계약을 맺은 사이였지만 구승훈은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편에 속했다.그녀가 숨긴 것에 대해 그녀를 비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고용해 그녀를 챙겨주었다.“집에서 푹 쉬어. 내가 시간 나면 너 보러 갈게.”“그래.”두 사람은 몇 마디 더 나눴고 전화를 끊기 전에 손연지가 한마디 덧붙였다.“맞다, 우리 고등학교 동창회 때면 너 몸도 거의 회복될 텐데 참석할래?”강하리는 당황했다. 지난번 단톡방에서 동창회가 열린다는 말은 확실히 있었지만 그 당시 그녀는 송유라의 일 때문에 짜증이 나서 무시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날짜를 정했을 줄은 몰랐다.“그러자.”강하리는 전화를 끊은 뒤 다시 잠에 들었다. 도우미가 깨우는 소리에 그녀는 잠에서 깼다.“아가씨, 일어나서 뭐 좀 드셔야죠.”강하리는 눈을 뜨며 물었다.“승훈 씨는 돌아왔어요?”도우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예상대로였다. 이런 시기에 그녀의 앞에서 송유라의 전화를 받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는 최대한 그녀의 체면을 생각해 준 것이었다.게다가 송유라가 다쳤는데 그는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첫사랑은 송유라였고 그는 순정파였다.오늘 병원에서 그녀를 집에 데려다준 뒤 바로 송유라와 함께 드레싱을 하러 가지 않은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강하리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네, 조금 있다가 나갈게요.”“네.”강하리는 겨우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아랫배와 허리에서 통증이 느껴졌고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녀는 도우미를 불러 부축해달라고
강하리는 구승훈이 그날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쪽에서 송유라가 계속 그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그는 밤에 다시 돌아왔다.“구 대표님, 돌아오셨어요?”도우미는 구승훈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물었다.“좀 어때요? 밥은 먹었어요?”“네, 아가씨께서 조금이라도 드시긴 했습니다.”구승훈은 다시 고개를 끄덕인 뒤 침실 문을 열었다.방안에는 강하리가 손에 영어 원본 책을 들고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그녀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마침 구승훈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구승훈은 조용히 침대 옆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을 뺏었다.“너 지금 책 읽으면 안 돼. 요즘에는 보지 마.”강하리는 잠시 말이 없더니 대답했다.“알겠어요.”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고 여전히 그에게 무관심과 거리감을 보여줬다.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더니 잠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온 뒤 그는 서재로 향했다.잠시 뒤 그는 한 서류를 갖고 들어왔다.“읽어 보고 괜찮으면 사인해.”강하리는 서류를 살펴보니 재산 양도 계약서였다. 구승훈 명의 아래에 있는 별장 중에 하나를 그녀의 명의로 넘긴다는 것이었다. 서류를 들고 있는 강하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적어?”강하리는 고개를 들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충분해요.”충분하다 못해 넘친다.존재하지 말았어야 할 아이로 몇십억짜리 별장을 바꿔준다는 데 어떻게 감히 적다고 할 수 있을까?구승훈은 감정도 없는 냉혈인이었다. 하지만 이런 거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강하리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웃었다.구승훈은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바라보았지만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강하리, 웃고 싶지 않으면 웃지 마. 보기 힘들어.”그러나 강하리 얼굴에 미소는 지워지지 않았다.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일찍 자. 난
구승훈이 물었었다.“왜 또 단 음식을 만드는 거야?”그 당시에 그녀는 아직 그에게 기대를 가득 품고 있었다.그래서 그가 물었을 때 그녀는 항상 기대하며 대답했었다.“내가 단 걸 좋아해요.”하지만 그다음에도 구승훈은 테이블 위에 단 음식이 놓여 있으면 또 물었었다.그 뒤로는 강하리는 단 음식을 하지 않았고 새로운 요리를 배워 전부 구승훈의 입맛에 맞게 밥을 차렸다.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가 물었다.구승훈은 그녀를 쳐다보았다.“좋아하면 말해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알아.”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아무리 표현한다고 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소용이 있었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굳이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강하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구승훈도 더 말하지 않았다. 방금 한 말도 그저 무심코 한 말인 것 같았다.밥을 다 먹고 나서야 그는 입을 열었다.“네 자리는 임시로 다른 사람에게 넘겼어. 한 달 정도 휴가처리 해줄 테니까 건강 잘 회복한 뒤에 출근해.”강하리는 침묵하다가 말했다.“회사 그만두고 싶어요.”그녀는 정말로 이런 식으로 계속 지내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계약 때문에 바로 떠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남자와는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게다가 만약 그녀가 구승훈을 떠날 운명이라면 그녀는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했다.구승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왜?”강하리는 눈을 내리깔며 강정을 숨겼다.“이유는 없어요. 단지 계속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요.”구승훈은 의미심장하게 낮은 웃음을 터트렸다.“강 부장이 너무 겸손하네. 네 능력은 나도 인정하는데.”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 전에는 그녀에게 일을 못 하겠으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그만두겠다고 하니 또 허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인내심을 갖고 구승
구승훈의 뒤에 있는 법무팀이 얼마나 강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만약 구승훈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겠다고 하면 아마도 법무팀에서는 그녀를 뼈까지 잘근잘근 밟아줄 수도 있었다.강하리는 씁쓸한 감정을 느꼈다.“승훈 씨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그녀는 구승훈이 도대체 왜 자기를 옆에 두려고 하는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구승훈은 테이블 앞에 앉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사람이 날 배신하는 걸 내가 가장 싫어한다는 거 강 부장 잊었어?”강하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당연히 잊지 않았다. 구승훈 이 남자가 얼마나 안하무인에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는 다른 사람이 배신하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강제로 그녀를 머물게 했다.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하는 것까지 생각하지도 않고 거절했다.이제야 이유를 이해한 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네. 이해했어요.”“강 부장이 이해했다니 다행이야.”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라 와서 더 먹어.”강하리는 입맛이 없었지만 이 남자가 얘기한 모든 것은 거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테이블에 앉아 억지로 앞에 놓인 수프를 더 먹었다.구승훈은 옆에 앉아서 그녀가 다 먹을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더니 입을 열었다.“만약 휴가가 짧다고 느껴지면 더 연장해 줄게. 푹 쉬어. 다른 일들은 이후에 다시 얘기하자.”강하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그녀는 어떻게 되든 다 상관없다고 느껴졌다.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그 팬에 아버지는 내가 처벌받을 수 있게 조치할게.”강하리가 말했다.“알아서 해요.”구승훈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하리는 구승훈이 이내 떠날 줄 알았다. 예상외로 그는 전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강하리는 그와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출근 안 해요?”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계약서에 사인은
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뜨며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입술을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송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승훈 오빠.”구승훈은 입구로 걸어갔다.“여긴 어떻게 왔어? 사진이라도 찍히면 어쩌려고?”목소리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워졌다.아무리 많이 들어도 강하리는 여전히 불편하게 느껴졌다.“난 친구 병문안도 오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오빠 보러 온 게 아니라 강 부장님 만나러 온 거예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허락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강 부장님, 괜찮아요? 어제 돌아가서 생각해 봤는데 그래도 정식으로 부장님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초대도 없이 불쑥 왔어요. 혹시 기분 나쁜 건 아니죠?”강하리는 비웃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송유라의 가식에 맞장구쳐주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사과할 거면 바로 사과해요. 이렇게 거창한 말로 힘 빼지 말고요.”송유라는 순간 화가 났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는 바로 사과했다.“강 부장님, 미안해요. 내 팬이 철이 없어서 부장님을 다치게 했어요. 내가 이렇게 팬을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부장님이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요.”그녀는 말을 마친 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구승훈은 강하리를 조금 어두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강하리는 그것이 경고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구승훈의 돈을 받았기에 그녀는 이 일로 더 이상 송유라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그래요. 사과받을 테니까. 이제 떠나줄래요?”송유라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강 부장님, 내 팬도 용서해 줄래요?’강하리는 눈살을 찌푸렸다.송유라가 목적 없이 이렇게 집까지 찾아와 사과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목적은 이것이었다.그녀는 송유라를 바라보았다.“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네요. 송유라 씨는 좋은 사람이 되고 오히려 피해자인 제가 이런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게 맞는 건가요?”송유라의 미간도 순간 찌푸려졌다.“강 부장님, 손해 배상은 원하시는 만큼 해드릴게요. 내
안현우는 구승훈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흥미롭게 구승훈과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승훈아, 너 설마 이 여자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송유라는 이미 눈가가 살짝 붉어진 채 불쌍한 표정을 하고서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구승훈은 온몸에서 싸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네가 오해한 거야.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고.”그는 이 말을 끝으로 이 주제를 매듭지어버렸다. 그런 다음 송유라를 바라보았다.“팔에 상처는 어때?”송유라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눈물을 닦으며 화가 난 듯 구승훈을 째려보았다.“날 관심하긴 하는 거예요?”구승훈은 기분이 복잡했다.강하리의 창백한 얼굴이 그의 마음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송유라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조금 짜증이 났다.“내가 언제 널 관심하지 않았어?”송유라는 멈칫했다. 구승훈이 이런 말투로 그녀에게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녀는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난 오빠가 날 좀 더 걱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다른 뜻은 없어요.”그녀는 평소에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구승훈도 그런 그녀를 귀여워했다.사실 이런 말은 그녀에게는 평소에 자주 하는 애교 섞인 말일 뿐이었지만 구승훈이 왜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구승훈은 어두운 얼굴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송유라를 바라보며 그제야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다쳤으면 집에서 잘 쉬고 있어.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알겠어요.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조금 있다가 나하고 드레싱 바꾸러 같이 가면 안 돼요? 드레싱 바꿀 때 나 정말 무섭단 말이에요. 이번에는 나하고 같이 가줘요. 네?”구승훈은 다친 그녀의 팔을 바라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송유라의 눈물은 순식간에 미소로 바뀌었다. 안현우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강하리는 안현우의 시선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피했다.그녀는 더 이
송유라의 말은 강하리의 가장 아픈 곳을 콕콕 찔렀다.아이를 지키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아이를 지켰다고 해도 구승훈이 낳을 수 있게 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가슴이 너무 아파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송유라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지 강하리의 귓가에 속삭였다.“강하리 씨,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은 그저 잠자리 파트너일 뿐이에요. 그런데 임신했다고 정식으로 여자 친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그녀는 비웃음을 날렸다.“한 번 생각해 봐요. 임신한 게 나라면 승훈 오빠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만약 송유라였다면?'강하리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구승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와 그녀를 지켰을 것이다.강하리는 손을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움켜쥐었고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송유라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송유라 씨 힘내요. 돌아온 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승훈 씨가 아직 당신하고 화해할 마음이 없는 걸 보면 임신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송유라는 그녀의 말에 이를 악물었다.강하리의 한마디가 송유라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소유라가 돌아온 지도 이미 긴 시간이 지났는데 구승훈은 아직도 그녀와 화해하려는 뜻이 하나도 없었다.지난번 구승훈은 비록 두 사람이 전에 사귀었던 사이였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했지만 그 뒤로 인터넷에서 어떠한 소란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심지어 소유라의 팬들은 에비뉴 주얼리 홈페이지에 올라가서 그를 형부라고 불렀는데도 구승훈은 여전히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강하리, 당신 기다려. 당신은 결국 승훈 오빠한테 차일 거니까.”강하리는 미소를 지었다.“그래요. 기다릴게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더 입을 열지 않았다.송유라도 이만하면 충분히 그녀를 자극했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평소 강하리는 구승훈의 서재에 들어갈 때면 항상 노크를 했지만 송유라는 노크도 없이 바로 문
가서 팔찌를 가지고 백아영의 생일을 보낸 후 출국할 생각이었고 그 외 일은 지금 당장 처리할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손연지의 집 밑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주해찬이었다.비 오는 밤, 가로등에 반사된 남자의 모습은 약간 서늘한 기운을 풍겼다.구승훈이 피식 웃었다.“무척 적극적이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렬한 불빛이 주해찬에게 비추자 뒤를 돌아본 그가 구승훈의 차에서 내려 걸어오는 강하리를 발견했다.구승훈은 보지 못한 듯 강하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검은 우산이 머리 위로 드리워지며 주해찬의 낮은 톤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걱정돼서 보러 왔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난 괜찮아요. 걱정시켜서 미안해요.”그때 주해찬이 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하리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구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가벼운 웃음을 내뱉으며 주해찬을 향해 시선을 들어 올렸다.“주해찬 씨가 뭐라고 저한테 감사 인사를 하는 거죠?”주해찬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하리의 선배로서요.”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집에 가서 쉬어.”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해찬이 우산을 들고 건물 쪽으로 따라나섰다.구승훈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에 서리가 낀 것 같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헤드라이트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비를 맞으며 우산 아래서 두 사람의 어깨는 단단히 맞닿은 것 같았다.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야 강하리가 나지막이 말했다.“선배, 나 혼자 올라가면 돼요.”주해찬의 시선이 강하리의 입술에 닿았다.입술이 어딘가 부딪힌 것처럼 살이 갈라져 있었다.갈 때는 괜찮았는데 돌아올 땐 입술이 찢어진 채로 왔다.구승훈에 대한 강하리의 쌀쌀맞은 태도는 다 지켜보고 있었다.“구승훈이 강요했어?”주해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강하리는 몸이 굳어지더
한편 여초연은 거실 소파에 앉아있고 도우미가 옆에서 옷을 걸쳐주었다.“사모님,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쉬세요.”여초연은 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옷을 두른 채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승훈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요?”도우미는 얼굴을 찡그렸다.“잘 지내지 못해요. 강하리라는 여자가 우리 집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세요. 어르신까지 들여보냈는데 큰 도련님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여자한테 홀딱 넘어간 게 틀림없어요.”여초연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었다.“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요. 승훈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 며느리니까.”도우미가 입술을 달싹였다.“그래도 구씨 집안이 그 여자 때문에 이 모양이 됐잖아요!”SH그룹이 합병되면서 구씨 집안은 뿌리 없는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도우미들의 일자리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정작 여초연은 조금의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큰 도련님도 그 여자 때문에 사모님께 화를 냈잖아요.”여초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우산을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따라오지 마요.”그녀가 속삭이자 도우미는 즉시 발걸음을 멈췄다.비 내리는 어느 날 밤, 검은색 승용차가 구씨 집안 저택에서 시내 반대편 목란정원을 향해 유유히 달렸다.목란정원은 여초연이 소유한 정원인데 그녀는 때때로 며칠씩 이곳에 오곤 했다.구승재는 그녀를 따라 목란정원 입구까지 갔다가 차를 멈췄다.그는 목란정원의 출입구를 바라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그동안 형의 지시로 구씨 저택에 머물면서 집안사람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사실은 여초연을 감시하는 것이었다.여초연의 차가 목란정원에 들어가는 것을 본 구승재는 휴대폰을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고요한 밤, 구승훈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의 입술은 그녀의 귀에 닿은 상태였다.“전화 좀 받고 올게.”구승훈이 떠난 후 강하리 휴대폰도 울렸다.주해찬의 전화였다.“하리야, 비행기표 샀으니까 내일 데리러 갈게.”“그래요.
구승훈은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가볍게 웃었다.“하리야, 넌 늘 그렇듯 매정하네.”강하리가 뒤돌아 휴대폰으로 택시를 부르려는데 구승훈이 그녀의 휴대폰을 움켜잡았다.“딱 하룻밤만. 너 안 건드릴게, 응?”강하리의 몸이 굳어졌고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하리야, 내 소원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해. 네가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몇 번이나 상상했는지 몰라. 여기가 우리 집이야.”강하리의 코끝이 시큰거렸지만 그래도 결국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너무도 분명한 그녀의 거절에 구승훈은 답답한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고 쓴웃음을 짓던 그는 더 그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샤워하고 나오면 다시 데려다줄게.”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강하리는 통화 중이었다.발걸음이 멈칫한 그는 통화 상대가 주해찬이란 것을 알아차렸다.“선배, 전 괜찮아요.”“알았어, 항공편 예약해. 나도 같이 갈게.”강하리가 전화를 끊는데 구승훈이 갑자기 다가와 그녀를 껴안고 고개를 숙여 입 맞추었다.“구승훈!” 강하리는 그의 키스에 깜짝 놀라 그를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구승훈은 점점 더 꽉 그녀를 붙잡았다.그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깊숙이 파고들며 조금의 부드러움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마치 화풀이나 비난하듯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는 벽에 단단히 밀려서 몸부림을 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그녀가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도리를 가격하려는데 구승훈이 먼저 그녀의 다리를 붙들었다.강하리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구승훈의 키스는 점점 더 격렬해졌다.힘의 격차로 인해 그녀는 반격할 방법이 없었다.강하리는 화가 나서 얼굴마저 하얗게 질렸고 구승훈은 실컷 헤집어놓은 뒤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가 그의 뺨을 때렸고 이내 구승훈의 얼굴엔 손자국이 생겨났다.그러나 그의 손가락은 키스로 인해 부어오른 그녀의 입술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하리야, 나 생각이 바뀌었어.”강하리가 멈칫했다.“무
그리고는 강하리를 곧장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빗속을 뚫고 달려 나갔다.구승훈의 차는 굉장히 빨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시내를 벗어나 한 별장 앞에 멈춰 섰다.구승훈은 주차가 끝나자마자 차에서 내려 강하리를 빌라 안으로 끌어당겼다.빌라는 강하리가 선호하는 스타일로 안팎을 의도적으로 꾸몄다.안으로 들어선 강하리는 몸이 굳어버렸다.“여긴 내가 준비한 신혼집이야.”구승훈이 문득 등 뒤에서 이렇게 말했다.“결혼하면 여기서 지내려고 했어. 하리야, 정말 이대로 날 버릴 거야?”강하리는 꾸며진 방을 둘러보며 마음이 씁쓸했지만 애써 두 눈에 담기는 감정을 감추었다.“구승훈, 내가 그렇게 고통받는 걸 어떻게 지켜보기만 했어?”말문이 막힌 구승훈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미안해.” 남자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다 내 잘못이야.”강하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며 낮은 웃음을 지었다.너무 지쳤다.한때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이제는 고문처럼 느껴졌다.그날 구승훈이 아직도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강하리는 답을 알 수 없었다.어쩌면 오랫동안 사랑했던 남자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컸다.강하리는 구승훈이 진심으로 미웠다.그의 무자비함과 강압적인 성격이 싫었다.둘 사이에서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했고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입장이었다.그래, 어쩌면 그는 그녀를 위해, 아이를 위해 그랬을 수도 있다.하지만 자신이 해준 것들이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인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강하리가 발버둥쳤지만 구승훈은 더 꽉 끌어안았다.“구승훈, 그만하자.”구승훈의 목소리가 잠겼다.“그만하자니, 무슨 말이야? 하리야, 우리 사이가 이대로 끝날 것 같아? 문씨 집안도, 구씨 집안도 망했고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다 사라졌는데 이제 와서 그만하자고?”“우리 아이가 죽었잖아!”뒤돌아선 강하리의 눈엔 온통 고통만이 가득한 채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구
“어떻게 알았어?”구승훈은 웃으며 눈을 내리깔고 테이블 아래 두 사람이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이상해?”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리야, 내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당연히 네 일에 대해선 다 알고 있지.”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손을 빼냈다.“그럴 필요 없어.”유난히 침착한 그 말이 구승훈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필요한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야. 강하리,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일이야.”강하리가 비웃었다.“하지만 난 이제 당신이랑 더 엮이고 싶지 않아.”구승훈의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몇 마디 말로 두 사람 사이는 또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강하리는 그제야 휴대폰을 꺼내 안예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는 최소한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는 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구승훈이 옆에 앉아있자 마치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치유할 수 없는 상처, 두 사람의 목숨이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이...강하리가 가정에서 나오는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데 문득 연정이가 사고를 당한 날 밤도 비 오는 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그날 밤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연정이가 이렇게 비 오는 밤에 춥고 무서워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강하리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비를 바라보다가 눈가에 차오르는 시큰함을 꾹 참고 빗속으로 걸어가는 순간 머리 위로 드리워진 우산이 그녀를 덮었다.고개를 들자 미소를 머금은 주해찬의 눈동자와 마주쳤다.“그렇게 비속우로 달려가면 감기 걸리잖아.”강하리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우산 챙기는 걸 깜빡해서.”“왜 전화 안 했어?”주해찬의 우산은 완전히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내가 마침 저녁을 먹으러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고 했어?”주해찬의 눈에는 나무람과 관심이 가득했고 강하리는 웃으며 시선을 다른 곳
B시 대양그룹.정양철이 사무실로 들어가니 이미 비서가 대기하고 있었다.“강하리 검색어는 어떻게 된 거야?”비서는 잠시 머뭇거렸다.“사모님께서 대양그룹 명의로 매수한 것인데 아마도 회장님을 시험하려는 의도 같습니다.”정 회장이 강하리를 아낀다면 이 일을 거론할 것이고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하든 말든 넘어가겠지.정양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고 그가 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주현이 통해 강하리에게 연락해서 대양그룹이 JM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라고 해.”말을 마친 그가 멈칫했다.“집사람이 물어보면 강하리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고.”비서의 눈이 번뜩이더니 대답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강하리는 정주현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지난번 구승훈과 함께 대양그룹 입찰을 뺏은 이후 정양철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정양철이 무슨 꿍꿍이로 합작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지금은 정양철을 상대로 놀아줄 기분이 아니었다.“정주현 씨, 대양그룹에서 마음만 먹으면 파트너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겠죠?”정주현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강하리 씨, 우리랑 같이 일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강하리가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려던 찰나, 정주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B시에 언제 와요? 얼굴 보고 얘기할까요? 협업 안 해도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봐요. 우리 안 본 지 오래됐잖아요.”강하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알았어요, 그럼 가면 연락할게요.”정주현이 전화를 끊자 사무실 앞에 서 있는 연미숙의 모습이 보였다.“엄마, 여기서 뭐 해?”연미숙이 웃었다.“우리가 강하리랑 같이 일해?”정주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구씨 집안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밖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 같아.”연미숙은 인상을 찌푸렸다. “꼭 강하리여야만 대외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거야?”정주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강하리가 왜?”연미숙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자신도 모르게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그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두 사람이 차 안에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하리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전혀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화사한 아침 햇살 같은 그 미소가 구승훈은 왠지 모르게 눈에 거슬렸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구승훈의 차가 보였다.그녀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지만 시선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리가 안으로 들어간 후 주해찬은 차에서 내려 구승훈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그가 창문을 살며시 두드리자 구승훈이 창문을 내렸다.“구 대표님 시간 있으세요? 얘기 좀 할까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었다.“주해찬 씨는 남의 연애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나 봐요?”구승훈의 가시 돋친 말에도 주해찬은 계속 웃기만 했다.“구승훈 씨, 당신과 하리가 잘 지낸다면 나도 굳이 끼어들고 싶진 않은데 당신은 하리를 행복하게 해준 적이 있긴 한가요?”그의 말에 구승훈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말을 시작했다.“주해찬 씨, 행복하든 아니든 그건 다 나와 강하리 사이의 일이지 당신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주해찬은 조롱 섞인 그의 말을 무시한 채 웃었다. “구승훈 씨, 내가 하리 데려간다고 했죠. 이번엔 말한 대로 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다시 차로 향했다.구승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완전히 사라진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보았다.그는 한참 동안 손에 쥔 휴대폰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강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을 참지 못했다.[그 자식이랑 떠날 거야?]강하리가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전화벨이 울렸고 그녀는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그냥 대화창을 닫아버렸다.구승훈은 전송된 메시지에 답장이 오지 않자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입안의 쓴맛을 삼키고 휴대폰을 치우려던 찰나,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 왔다.“형, 큰어머니가 그
“죽기 전엔 안 해.”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구승훈의 손가락이 한참을 굳어 있다가 말을 꺼냈다.“안 해.”하고 싶었지만 그게 그녀를 더 멀리 밀어낼까 봐 더 두려웠다.심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 문제의 핵심은 아이였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곧바로 아이 문제로 말을 돌렸다.“아이는 어떻게 된 거야? 문연진이 어떻게 아이의 존재를 안 거야?”구승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구승재가 통화하는 걸 들었어.”심준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정말 문연진이 아니야?”구승훈은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그 여자가 아니야.”문연진은 이미 연정이를 죽였다고 인정했는데 굳이 연정이를 차로 치어 산에서 떨어뜨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그녀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도중에 가정부가 연정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 사실을 모른다는 것.“그럼 문연진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어?”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여초연, 문연진 말로는 그날 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침 여초연이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어.”멈칫한 심준호의 눈에서 차가움이 번뜩였다.여초연이란 사람은 솔직히 줄곧 속내를 알 수 없었다.전에는 여러 번이나 구승훈을 죽이려고 했다가 지금은 무척 다정하게 굴었다.그 여자는 지금까지도 끔찍한 존재로 느껴졌다.“설마 그 사람이?”심준호는 문득 구승훈이 안타까웠다.정말 여초연이라면 구승훈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아직 확인하고 있어.”심준호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만 해.”구승훈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심준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그도 떠났다.심준호를 배웅하고 차로 돌아온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형, 어제 강하리 씨 인기 검색어가 대양그룹과 관련이 있어.”구승훈의 눈에 냉기가 감돌았다.“최근 정양철 측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었어?”“아니, 이 검색어 말고는 그동안 잠잠했
강하리의 입꼬리가 굳어지며 다시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하려던 찰나, 한 대의 자동차가 도로변에 멈춰 서는 것을 목격했다.주해찬이 차에서 내려 이쪽으로 걸어왔다.심준호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에게 눈썹을 치켜세웠고 강하리는 길 건너편에 주차된 너무나도 낯익은 차를 보았다.검은색 마이바흐 창문은 반쯤 내려져 있고 차에 탄 남자는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멀리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승훈이 이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쪽을 힐끗 쳐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그러면 나중에 메시지 보낼게요.”심준호는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해찬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면 그동안 잘 돌봐주세요.”주해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이끌고 나가려는 순간 갑자기 강하리의 손목이 잡혔다.어느 틈엔가 구승훈이 길을 건너 이쪽으로 걸어왔고 주해찬이 얼굴을 찡그리며 막으려는데 심준호가 옆에서 말렸다.강하리의 손가락이 살짝 조여졌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었다.“하리야, 이제 고맙다는 말도 안 할 거야?”강하리의 몸이 굳어지고 입꼬리가 몇 번 움직이다가 말을 꺼냈다.“고마워요.”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이제 놔줄래요?”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나한테 꼭 이래야겠어?”강하리가 시선을 피했다.“구승훈 씨,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잖아요.”그가 원망스러웠다.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그를 보면 연정이가 생각난다는 사실이었다.숨도 쉴 수 없을 것만 같은 고통은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구승훈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놔주지 않겠다고 했잖아. 하리야, 얘기 좀 하자.”강하리의 눈이 빨개지며 입을 열자 목소리까지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