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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구승훈은 별로 이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리야, 넌 끝내자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걸 너도 잘 알 텐데. 임신한 사실을 속인 건 따지지 않겠지만, 그걸 빌미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할 생각은 마!”

그의 냉담한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강하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맞다. 그녀가 헤어지자고 말할 자격이 없는 거였지.

둘이 사인한 그 계약서 내용에는 그녀한테 유리한 조건은 하나도 없이 그저 노예계약 같은 거였다. 그저 복종하는 것 말고는, 그의 앞에서 그녀는 아무런 자격도 없다.

화를 낼 자격도 없고, 성질낼 자격도 없으며, 헤어지자고 말할 자격조차 없었다.

“왜, 억울해?”

구승훈이 물었다.

“아니요.”

강하리는 그저 웃었다.

미친 듯이 발광하지도 않고, 그저 고스란히 슬픔을 받아들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조차 가슴이 답답해지게 말이다.

화가 갑자기 치밀어 오른 구승훈은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하게 했다.

“너 애초에 그 애를 낳을 생각 했을 때부터,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다 알아야 했던 거 아니야? 지금 와서 누구 보라고 이 청승맞은 얼굴인데?”

그의 무정한 말들이 한 글자 한 글자 강하리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들어와 박혔다.

그녀의 하얀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눈시울은 몹시 시큰시큰하고 입가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승훈 씨, 당신은 마음이라는 게 있어?”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런 말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그 말에 구승훈은 가볍게 웃기만 했다.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도 잘 몰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없는 거겠지...

그는 일어나 협탁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었다.

불은 안 붙이고 그냥 물고만 있었다.

“하리야, 이 세상일들이 마음 갖고 되는 게 아니야. 네가 마음이 있으면 뭐 해. 애가 살아남기라도 했어?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보다, 손에 쥐고 있는 돈과 권력이야말로 진짜라는 걸 알아야 해. 난 너처럼 마음이 없지만, 권력이 있고 힘이 있어.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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