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301 - Chapter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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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1화

소홀했다.정주현을 피해 강하리를 연성시에서 멀찍이 데려갈 생각만 했다. 꿈에도 몰랐다. 주해찬이 여기서 나올 줄은.그야말로 늑대 피해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격.구승훈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택시를 세워둔 뒤, 성큼성큼 걸어갔다.가까이 가기도 전,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구승훈의 이마에 핏발이 섰다.두 사람 곁에 구승훈이 나타나는 순간, 강하리의 웃음이 그대로 굳어졌다.“선배, 가요 우리.”구승훈을 본 주해찬이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디 가려고.”들은 척도 않고 주해찬의 차 문을 여는 강하리.“귀 먹었어? 어디 가냐고 묻잖아!”한 데시벨 높아진 구승훈의 차가운 음성이 고막을 때렸다.“직원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하시는 거 아닌가요? 대. 표. 님.”강하리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출장 와서 한밤에 남자 만나는 직원의 행보를 묻는 게 지나친 간섭이다?”“대표님이 한밤에 여자 만나러 가면서 그러셨잖아요. 지나친 간섭이라고.”“…….”구승훈은 할 말이 없어졌다. 뭔가가 터질 듯 차올랐다.-이 밤중에 어디 가시게요?-지나친 간섭은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자다가 송유라의 전화 한 통에 벌떡 일어나 옷을 주워입으며, 강하리에게 던진 말이다.강하리가 코웃음을 치며 문을 열려는 순간.구승훈의 손이 우악스레 문을 밀쳐 막았다.“구 대표님.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주해찬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강하리는 출장 온 겁니다. 그쪽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내일 협상회에 대해 의논할 게 있으니까 그쪽이야말로 방해하지 마시죠.”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받아치는 구승훈.주해찬은 어이가 없어졌다.시커먼 속이 다 보이는데 의논은 개뿔.이 한밤중에 의논할 게 뭐가 있다고.“하리의 명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으시네요. 다 끝난 마당에 같은 방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하십니까?”“명예 좋아하시네. 그러는 그쪽이랑 같은 방 쓰는 건 괜찮고?”구승훈의 말투가 위험하게 삐딱해졌다.“나야 3년이나 같이 잤으니까 거리낌 없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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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미안해요, 선배.”차 안.한참동안 말이 없던 강하리가 입을 열었다.어느모로 보나 빠진 구석 하나 없는 주해찬이었다.그런 사람이 자신 때문에 구승훈에게 비하당한 게 속상했다.“뭐가 미안해. 구승훈이 틀린 말 한 것도 아닌데.”웃으며 대답하는 주해찬의 따뜻한 목소리에 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나 따위가 뭐가 좋다고.’자신이 주해찬에게 어울리는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그만큼 높은 곳에 서 있는 선배였으니까.강하리가 말이 없어졌지만, 주해찬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다 보였다. 아직 지난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급할 건 없었다. 3년이나 기다렸는데, 몇 년쯤 더 기다린다고 해도.“저녁 먹었어?”“아직이요.”“그럼 우선 밥 먹으러 가야겠네.”“대충 요기만 하면 돼요. 편의점 가서 컵라면이나 먹으려고 했는데.”주해찬이 문득 차를 세우고 내렸다. 옆에 아직 불이 켜진 디저트 가게가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해찬이 디저트 가게에서 나왔고, 손에는 케익 한 조각이 들려있었다.‘어, 저건?’강하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학생시절, 중독됐단 소리를 들을 정도로 사족을 못 쓰던 초코케익.구승훈과 함께일 때 한 번도 못 먹어봤던.주해찬이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가슴 한 구석에서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뭔가가 차올랐다.받아들어 한입 베어문 강하리는 저도 모르게 함박 웃음을 지어버렸다.기억 저 편, 잊혀졌던 맛이 미각을 깨웠다.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고 목구멍이 간질여졌다. 그 정도로 맛있었다.‘저렇게나 행복하게 웃는다고?’뒷쪽 택시에서 지켜보는 구승훈은 죽을 맛이었다.초코케익 좋아하는 걸 알았더라면 한 트럭이라도 사줄 수 있었는데.‘3년동안 나는 뭐 한 거지?’어쩌다가 이렇게 남의 데이트나 훔쳐보는 변태 같은 꼬라지가 됐냐고.주해찬의 차가 어느 호텔에 들어섰다.“여기 심씨 가문이 경영하는 호텔이야. 여분으로 비워두는 방이 언제든 있으니까, 앞으로 보성에 출장 오면 준호한테 바로 전화하도록.”“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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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어쩔 새도 없이, 강하리의 뺨이 데인 듯 홧홧해났다.룸서비스 직원 옆에 서 있는 고이선이 보인 건 다음 순간이었다.“X년이, 구승훈 꼬신 것도 모자라서 주현 오빠까지 넘봐? 제 주제도 모르고!”악다문 이빨 사이로 말을 뱉으며 고이선이 다시 손을 드는 순간.짜악-!찰진 소리와 함께, 강하리의 손이 고이선의 뺨에 날아들었다.룸서비스 직원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저, 손님? 경찰 불러드릴까요?”“네. 경비원도요.”직원의 물음에 강하리가 냉랭하게 대답했다.“……심씨 가문 호텔에서 감히 나를 때려? X년이 죽을라고!”강하리의 반격을 예상하지 못했던지 잠시 멍해졌던 고이선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고이선의 고함과 함께, 험상궃은 인상의 우락부락한 사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번들번들한 사내의 눈길이 목욕가운 하나만 입은 강하리의 몸에 멈췄다.순간 소름이 쫙 끼친 강하리가 문을 닫으려고 돌아서는 순간.고이선이 그녀의 머리채를 콱 잡았다.“어디 가려고? 남자라면 환장하는 거 아니었니? 맘껏 놀라고 데려왔는데 왜 빼?”콰직-!“끼아아악!”무기로 쓸 수 있는 식기들은 많았다.예를 들면, 강하리의 손에 들려있던 디저트용 포크라든지.디저트용 포크가 머리채를 움켜쥔 고이선의 손에 꽂혔고,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저 년 죽여! 당장!”고이선이 미친듯이 소리쳤고, 험상궃은 사내가 강하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하지만 그 주먹은 강하리에게 닿지 못했다.으스러질 듯 팔목을 잡힌 사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다음 순간.사내가 뒤로 날아갔다.쿠당탕!벽에 부딪쳐 스르르 무너지는 사내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구승훈.온 몸에 시커먼 아우라가 감돌고 있었다. 눈 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시퍼렇게 타오르고 있었다.퍼억!사내의 면상에 한번 더 강펀치를 날린 구승훈이 휙 고이선을 돌아보았다.고이선이 흠칫 몸을 떨었다.“고이선 씨,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어둠의 심연에서 나올 법한 목소리에 고이선은 소름이 쫙 돋았다.구승훈이 여기 나타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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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쾅!문이 닫히면서 고이선의 시선을 가로막았다.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진 고이선.“야 강하리! 죽여버릴 거야! 잡히기만 해 봐!”히스테리에 찬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방 안.착 가라앉은 눈길로 구승훈이 강하리를 바라보았다.피투성이가 된 강하리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얼마나 놀랐을까.구승훈은 마음 한 켠이 아프게 찔려왔다.떨리는 강하리의 손을 꼭 잡고 화장실로 들어가, 묵묵히 손에 묻은 피를 씻어주었다.얼굴에 튄 핏자국까지 꼼꼼히 닦아준 뒤 찬찬히 뜯어보았다.“다친 데는 없고?”“없어요.”그제야 한 시름 놓은 구승훈은 눈빛이 다시 차가워졌다.강하리의 아랫턱을 잡아 들어올려 눈을 맞췄다.“봤지? 이게 너 좋아한다는 남자한테 붙어있은 대가야. 정주현이 보이는 대로 깨끗하기만 할 것 같지? 남자는 다 한통속이야.”말없이 구승훈의 손을 벗어나 화장실 밖으로 향하는 강하리.“야! 내 말이 말 같지 않아?”구승훈의 얼굴이 또 일그러졌다.“구해주신 건 고마웠어요. 대표님이 안 오셨더라면 무슨 꼴을 당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죠. 하지만.”강하리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렇다고 대표님이 내 일에 간섭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보답하겠습니다.”“그래서? 여전히 정주현에게 붙어 있으시겠다?”구승훈의 눈매가 위험하게 가늘어졌다.강하리는 눈을 내리 깔았다.솔직히 정주현에 대해선 업무를 제외한 다른 건 생각해 본 적 없었다.감정 쪽으로 발전할 일도 없을 거고.정주현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복잡한 관계라면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으니까.정주현이 그걸 받아들이면 좋고, 감정적으로 물고 늘어진다면 다른 길도 생각해 볼 예정이었다.하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게 구승훈과는 상관없는 일.“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강하리.”“그건 내가 할 말 아닌가요? 대표님이야말로 점점 더 꼬여가는 걸 뻔히 보면서 왜 자꾸 질척거리시는 거예요?” “내가 질척거린다고? 정주현이 싸지른 똥을 막아 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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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예상했던 대로 구승훈이 미간을 좁힌다.“우리 둘 사이 일에 왜 자꾸 송유라는 끌어들이는 거지?”데자뷰 저리가라 할 익숙한 레퍼토리다.엄한 사람 멕인다는 듯한 핀잔 섞인 저 말투.‘내가 끌어들이고 싶어서 끌어들이는 거냐고.’날이 갈수록 버라이어티해지는 수작질로 자꾸 언급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데.가만히 있는다고 멈출 송유라도 아니고.구승훈과 엮여있는 한, 점점 더 심해질 거다.“송유라와 상관이 없다고요? 셀프최면 거는 게 재밌으세요? 송유라를 입 밖에 내지 않으면 대표님의 그 무책임함이 가려질 거라고 생각하세요?”싸늘한 눈빛만큼이나 차가운 말투가 구승훈의 눈과 가슴을 쿡 찔렀다.그 한기에 꽁꽁 얼어버린 심장이 발치에 툭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그런 뜻이 아니라…….”습관적으로 뱉은 말이었다. 급 후회가 밀려왔다.잠시 멈췄던 구승훈이 힘없이 한 마디 물었다.“내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는데?”강하리가 침묵에 빠졌다. 좀 의외였다. 구승훈의 이런 반응은 처음이라.하지만 곧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고의상해죄,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거예요. 나쁜 짓을 했으니 벌은 받아야죠. 대표님은 가만히 보고만 계시면 돼요.”구승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아직도 안 잊었어?”“안 잊은 게 아니라 안 잊혀지는 겁니다.”아직도 눈만 감으면 끔찍했던 기억이 번뜩번뜩 튀어나오는데.아이의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데.그 모든 걸 저지른 장본인이 발 편히 뻗고 자게 놔둘 수가 있을까.하지만 구승훈은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강하리를 놓치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송유라를 나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그 오랜 세월 동안 버릇처럼 몸에 배어버린, 송유라에 대한 책임감이 너무나도 끈덕졌다.“그러잖아도 송유라한테서 멀어지느라 노력하는 중이야. 그러니까-.”“그래 봤자 일 나면 한걸음에 달려가실 거잖아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강하리가 냉소를 흘렸다.뒷말은 뻔했다. 그러니까 뭐? 적당한 선에서 그치라는 거겠지.‘웃기지도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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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뭐라고?”구승훈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얌전하던 고양이가 한 순간 살쾡이로 변할 수도 있단 말인가?“당장 꺼지라고! 귀 먹었어?”환청이 아니다. 살쾡이가 날카롭게 하악질을 하며 이빨을 드러낸다.이빨을 꽉 악다문 강하리가 눈가에 독기가 어린 채, 잇새로 다시 한 번 내뱉었다.그동안의 고통과 울분이, 찢겨져 너덜너덜한 가슴에서 맹렬히 폭발하는 순간이었다.더이상 참는 건 의미가 없었다.사실 애초부터 송유라와 관련된 일로 재협상을 시도할 필요조차 없었다.그냥 구승훈의 반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정도.어쨌거나 송유라 편일 테니까.뭘 하든 그건 변하지 않으니까.몇 번이고 자신은 버려졌고, 이 남자는 송유라한테 가 있었으니까.지금도 이 남자는 내가 여태 받은 고통 따윈 안중에도 없으니까. 근본적으로 이 남자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구승훈의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너 지금 뭐라고?”경악으로 물들었던 눈동자에 분노가 차올랐다.“맞아죽을 뻔한 걸 구해 줬더니 이게 어따 대고 소리를!”차가운 그 한 마디가 폭주하던 강하리의 이성 한 조각을 건드렸다.“보답하겠다 그랬지.”강하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가웠다.“그 보답이란 거, 지금 당장 받아내야겠어!”하지만 구승훈은 그 목소리의 냉랭함 따윈 고려할 겨를이 없었다.그 역시 끓어오른 가슴속 뭔가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으니까.정주현과 주해찬과 있을 때는 잘도 헤실거리다가 나한테만 못되게 군다 이거지?“몸으로 때워.”“?”강하리가 움찔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하지만 구승훈의 진지한 표정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나왔다. 또라이 전술.’“미치려면 좀 곱게 미치든가.”거침없이 악담을 뿜어내는 강하리를 가라앉은 눈빛으로 응시하는 구승훈.“섹스 마려워? 출장마사지라도 불러 줘?”“너가 마려워. 강하리 너가.”어쩔 새도 없이, 남자의 뜨겁고 거친 숨결이 강하리를 덮쳤다.“야 이 미친 새-.”뒷말은 우악스럽게 밀고 들어온 남자의 입술이 막아버렸다.강하리의 반항은 가볍게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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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벼락처럼 구승훈의 귀에 꽂혔다.구승훈이 감전이라도 된 듯 움찔했다. 정수리까지 치밀었던 화와 욕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강하리를 꽉 잡았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눈가에 고통스런 빛이 스쳐지났다.날 선 비수가 가슴을 긋고 지나간 기분이었다.그 사건 이후 강하리가 언급한 건 처음이었다.그래서 그냥 그대로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입에 담지 않으면 천천히 나아지겠지.시간이 어루쓸다 보면 아물겠지.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아물기는 커녕,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 상처였다.강하리한테도, 자신한테도.살짝만 건드려도 쫙 갈라져, 두 사람을 갈라놓는 깊은 골짜기로 변해버렸다.구승훈의 울대뼈가 아래위로 요동쳤다.비틀비틀 뒤로 두 발작 물러났다.강하리가 지금 이 일을 다시 꺼낸 의도는 분명했다.이 상처 보이냐고.나 지금 이런 상태니까,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는 거였다.“아플 거 뻔히 알면서, 그런데도 굳이 헤집어서 나를 밀어내는 거야?”구승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강하리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안 그러면 더 아플 거니까.”어느덧 강하리의 목소리와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잔잔해져 있었다.그만큼 차갑기도 했다.“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거예요. 앞으로의 시간에 비하면 3년은 아무것도 아닐 거니까. 대표님이나 나나 아직 젊잖아요.”“그러니까, 더이상 피차 상처 내면서 엉켜있지 말자구요. 네?”담담한 강하리의 눈빛과 마주하는 구승훈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자존심 따위에 이러는 거 아니라고!’라고 외치고 싶었다.하지만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자존심이 아니면?사랑?X랄.어렸을 적부터 알았다.사랑, 결혼 따위는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란 걸.“그러니까 내가 뭘 하든, 우리 둘은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는 거네?”“네.”외마디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모든 소리가 사라진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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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모락 모락.파아란 연기가 허공에 감돌다가 흩어진다.그 아래에는 어두운 얼굴의 구승훈이 있었다.그가 서 있는 곳은 강하리의 방 앞 복도.‘처음 해 본 생각이지만, 저거 부럽네. ’금방 풀려 흩어지는 저 연기처럼 강하리를 향한 마음도 풀렸으면.딱딱하게 응어리가 진 그게 뭔지는 확실하진 않았다.확실한 건, 강하리를 이대로 포기하는 게 아직도 안 된다는 거였다.둘이 시작한 일인데, 혼자만 그 자리에 갇혀 지지부진하는 것만 같은 기분.강하리의 마음이 자신에게 머무른 적이 있단 건 확실했다.뭐든 들어줬고 뭐든 받아줬었다.그런데 지금 혼자만 쏙 빠지려고 한다.‘여태껏 길들여 놓고 버리는 건 좀 너무하잖아.’이래서 습관이 무섭다고 하는 거였구나 싶었다.연기는 오랫동안 구승훈을 감돌았다.줄담배를 태운 탓이었다.지나가던 사람들이 코를 싸쥐며 미간을 찌푸리건 말건.바닥에 쌓여가는 담배 꽁초에 보다 못한 직원이 재떨이를 가져올 때에도.한 대, 또 한 대, 끝낼 줄 모르고 씁쓸함을 태웠다.그러다가 날이 희끄무레 밝아올 무렵, 접근하는 사람이 없단 걸 확인하고서야 자리를 떴다.호텔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승훈의 핸드폰이 울렸다.딩! 디리리리딩 딩!액정에 송유라가 떴다.“오빠, 언제 돌아와요? 나 곧 수술인데.”“걱정 마. 수술 전에는 돌아갈 거니까.”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구승훈이 대꾸했다.“진짜?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오빠!”막 통화를 마치고 고개를 든 순간, 저만치에서 음식 포장을 들고 호텔에 들어가는 주해찬이 보였다.또 가슴이 답답해났지만, 애써 눌러 내렸다.뭐, 어때. 아침밥 갖다주는 것 뿐인데.택시를 잡고 호텔로 돌아간 구승훈은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바로 회의장으로 향했다.……주해찬이 방에 들어섰을 때 강하리는 막 외출 준비를 하던 차였다.음식 포장을 벗기자 짠 나타나는 불고기 밥버거에 강하리가 환호성을 질렀다.“선배는 내 학창시절 식습관을 어디 적어라도 놓은 거예요? 이 아침에 밥버거는 어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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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강하리는 대답이 없었다. 입만 벙긋하면 이 남자가 또 화르륵 타오를 거니까.하지만 구승훈은 할 말이 남은 모양.“아침밥 맛있었어?”“네. 대표님은 아침 뭐 드셨어요?”엉겁결에 강하리가 대답하고 보니, 구승훈이 썩은 표정이다.내가 밥이 넘어갈 것처럼 보여? 라고 말해주는 듯한.아차 싶었다.“강 부장은 참 순진한 여자야. 고작 아침밥 한 끼에 좋아죽는 걸 보면.”더 한층 시큼텁텁해진 구승훈의 말투.누군 3년 간의 감정을 갈무리하느라 죽을 맛인데.강하리는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지금부터 구승훈의 업무 관련 외 질문은 사절하기로 했다.그때 마침 마중나온 부드러운 인상의 협력사 비서실장.“구 대표님, 강 부장님, 오셨어요?”비서실장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강하리가 웃으며 대답하자, 비서실장이 친근하게 그녀의 곁에 다가갔다.“처음 뵐 때부터 느낀 건데, 우리 강 부장님은 어쩜 이리도 예쁘실까. 방금 남자친구분 차에서 내릴 때 아침햇살인 줄 알았다니까요.” “그……. 남자친구가 아니고 그냥 친구예요.”평소에 서류를 주고받으며 가끔씩 수다도 떤 친분이 있는 비서실장의 너스레에 강하리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암요! 남자친구였다면 이마 쓱으로 끝나지 않으셨겠죠. 잘 생기신 분이 어쩜 그리 스윗하기까지 하실까. 우리 강 부장님한테 너무 잘 어울리지 뭐예요.”옆 구승훈이 썩소를 지었다.어울리긴 개뿔!비서실장, 사람 보는 눈이 동태 눈깔이었네. 그렇게 안 봤는데.강하리는 그런 스타일 안 좋아한다고.사실 강하리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는 미스터리지만.여태껏 자신이 강하리 스타일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지금은 영 모르겠다.저렇게나 매정하게 자신을 버리는 걸 보면.생각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나고 기분이 언짢아졌다.그게 강하리에게 고스란히 보였다.또, 또 시작이다. 또!“정 실장님, 진짜 그런 사이 아니에요.”다시 한 번 정정했지만.“압니다. ‘아직은’ 아닌 거죠.”비서실장, 정은숙이 눈까지 찡긋한다.이거야 원, 해명할수록 역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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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강 부장님, 남자친구분 데리러 오셨어요.”정 실장의 목소리에 협상회를 마치고 서류를 정리하던 강하리가 흠칫했다.회의장 밖에 심플한 정장 차람으로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주해찬이 보였다.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임원들마다 남자 여자 할것 없이 힐끗거릴 정도.“조 대표님, 죄송하지만 먼저 가 봐야 될 것 같아서요.”강하리가 미안한 얼굴로 조 대표를 돌아보았다.조 대표가 은근슬쩍 구승훈을 돌아보았다.두 사람의 수상한 관계를 알고있는 조 대표였다.딱 봐도 그림이 나왔다. 이윤을 양보할테니 식사자리 마련에 협조 좀 해달라는 은밀한 부탁까지 받은 마당인데.그랬는데. 지금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강 부장이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단 칼에 거절한다?밖에 남자친구란 사람은 또 뭐고?설마 구 대표님이 여자 뺏긴 건가? 천하에 구 대표가?담담한 표정과는 달리, 구승훈의 속에는 천불이 일어나고 있었다.‘저 낄끼빠빠를 모르는 새X가.’기어코 회의장에 돌아오냐.꺼지라고 좀!“강 부장, 그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애써 평온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했지만.이미 조 대표의 눈은 가십거리를 포착한 파파라치의 그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이윤도 양도받고 구 대표님 연애사도 라이브로 직관하고.이거 이거, 웬 떡이냐.그러다가, 막 회의실에 들어서는 주해찬과 눈이 마주쳤다.‘히익! 주씨 가문 도련님??’조 대표는 삽시에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보경시에서 조용하기만 한 주씨 가문이지만.잠잠한 호수가 더 깊듯, 그 실력이 어마어마한 가문이었다.외교부 해찬 도련님 얘기도 익히 들어온 터라 너무 잘 알고 있었다.뿌리부터 될성부른 다이아 미스터.명문가 위 명문가의 후계자.그런 분이라면 구 대표와의 경쟁구도가 너무나도 합리적이었다.대신 골치가 아파오기 시작했다.‘아, 이럴 줄 알았더라면 넙적 받아먹는 게 아닌데.’구승훈의 영향력이야 전국에 퍼져 있다지만.적어도 보경시에서만큼은 주씨 가문에 한 수 접어줘야 했다.그만큼 보경시에서 주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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