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291 - Chapter 300

987 Chapters

제291화

어떤 새X면 어때서.정주현에 대해 아직 잘 모르지만, 그래도 구승훈보단 안전할 것 같았다.그리고 뭐, 쫄래쫄래 따라가?택시 잡아 집에 갈 거었거든?강하리는 제멋대로 넘겨짚는 구승훈 때문에 화가 났지만, 해명조차 귀찮았다.“주현 씨가 흑심 품고 있단 거 말하고 싶은 거였어요?”“알면서 따라가는 거야?”구승훈이 으르렁대듯 물었다.강하리가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 보았다.“흑심이라면 구 대표님도 만만치 않으신 것 같은데요.”구승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강하리를 잡아끌고 엘리베이터를 나왔다.강하리는 안깐힘을 썼지만, 구승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주위 사람들이 이쪽을 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강 부장?”구승훈이 차에 욱여넣다시피 강하리를 태우자, 운전석에 앉아있던 구승재가 놀란다.그제야 강하리가 저항을 멈췄다.구승재 앞에선 구승훈이 조금은 얌전해질 거니까.“형, 강 부장, 어디로 갈까요?”“아파트.”“로터스가든이요.”강하리가 대답한 곳은 손연지의 집 주소, 구승훈의 대답은 전에 둘이 같이 살던 그 아파트.엇갈리는 두 사람의 대답에 구승재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별 다른 말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도중에 정주현의 전화가 걸려왔다.강하리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바로 받았다.“하리 씨, 구 대표가 데려갔어요?”옆에서 똑똑히 들은 구승훈의 얼굴이 차가워졌다.저 새끼가.“강 부장님”에서 “하리 씨”로 바뀐 호칭이 그렇게 귀에 거슬릴 수가 없다.“네. 별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알겠어요. 집에 도착하는 대로 연락 줘요.”“네.”“정 걱정되면 운전해 쫓아오든가.”빈정대듯 끼어든 구승훈의 한 마디.정주현이 술을 마신 걸 뻔히 알면서 하는 소리다.강하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멈춰섰고, 강하리가 흠칫했다.아파트 주차장.“난 일이 있어서 이만.”주차를 마친 구승재는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다.차 문을 열려는 강하리의 손목을 낚아챈 구승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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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구승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강하리를 바라보았다.인정도 부정도 없었다.사실 그 자신도 잘 몰랐다. 강하리한테 남은 미련이 도대체 뭔지.“내가 어떻게 하면 속이 풀리시겠어요? 깨끗이 놔 주고, 다신 내 주위에 나타나지 않으시겠냐고요. 그럴 수만 있다면, 시키시는 건 다 할게요.”강하리의 팔목을 잡은 구승훈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너한테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인 거야?”묵직하고 차거운 음성이 구승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심술 난 거? 맞아. 왜? 네가 중도에서 계약 해지하려고 했으니까.““…….”“내가 네 몸이 망가지든 말든 신경도 안 썼더라면, 계약 해지가 그렇게 순조로울 수 있었을 것 같아?”겁이 났었다. 강하리가 잘못될까 봐.그래서 마음이 약해졌었다. 놔 주기로 했다.그래준 내 마음도 모르고.양심 없는 여자 같으니라고.강하리가 할 말을 잃었다.사실 계약 해지는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자신을 향한 구승훈의 최소한의 배려에 올인한 도박.하지만 그 배려는, 송유라의 만행을 커버하기엔 택도 없이 부족했다.“강하리, 그만 하고 우리 화해하자. 응?”강하리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이쪽을 보지도 않는다.구승훈의 미간이 좁혀졌다.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잡아 얼굴을 이쪽으로 돌렸다.그리고 보았다. 강하리의 눈 속에 꽉 차 있는 고통을.구승훈은 가슴 한 켠이 찔린 듯 아파왔다.정주현과 있을 때는 웃음이 떠나질 않던 그녀가, 그와 마주하니 고통스러워한다.하지만 이대로 놔 주고 싶지는 않았다.강하리를 끌어당겨, 품 속에 안았다.강하리의 어깨에 코를 박고 탐욕스럽게 숨을 들이마셨다.여인의 향기가 술기운에 무뎌졌던 말초신경을 짜릿하게 자극한다.너무나도 그리웠던 체향.구승훈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걷잡을 수 없이 욕정이 치솟는다. 더불어 소유욕도.“대양과 계약하지 마.”“다른 회사도 안돼.”“계약하는 회사마다 작살내 버릴 거다.”술냄새가 섞인 거친 숨소리와 함께 우악스런 말을 뱉어내는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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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강하리는 가슴이 아려왔다.그걸 꾹 참고, 고개를 들어 꼿꼿하게 구승훈을 노려보았다.“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구승훈의 눈동자에 강하리의 모습이 비쳤다.일말의 감정의 일렁임이라도 캐치하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실망과 결연함만 그득 차 있을 뿐.“문 열어주시죠.”남자의 손가락이 강하리의 입술에 다가갔다. 강하리가 목을 틀어 피했다.허공에 손가락이 그대로 멈춰선 구승훈.한참 지나서야 헛웃음을 터트렸다.“마음고생 참 많았겠네, 강 부장. 일말의 감정도 없으면서 나와 3년을 잤으니.”“다 대표님이 잘 가르친 덕이죠.”강하리가 냉랭하게 대꾸했다.한 번 뿐이 아니었다. 그저 거래일 뿐이라고, 감정 따윈 섞지 않겠다고 구승훈이 일러준 게.그러고는 말로, 행동으로 그걸 지켜왔었다.홀대와 버림 속에서 강하리가 구승훈을 향한 감정은 조금씩 깎여갔고.마음이 점차 식어갔다.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더이상 좋아할 엄두가 안 날 만큼 말이다.강하리의 말이 구승훈의 심기를 건드렸다. 몹시 불편했다.얌전하고 말 잘 듣던 강하리는 어디 가고.온 몸에 가시를 꼿꼿이 세운 고슴도치 한 마리가 곁에서 캬르릉대고 있다.싫었다. 짜증이 났다.“꼬박꼬박 대드는 꼬라지 하고는.”“대표님과는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말 시키시니까요. 우린 끝났다고요. 끝났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요?”“끝나면 다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넌 고분고분 내 곁에 돌아올 수밖에 없어.”강하리는 목이 꺽 막혔다. 고개를 푹 숙였다.저건 부인할 수가 없다.강력한 수단과 권세 앞에서 그녀는 그저 개미 같은 존재일 뿐.구승훈이 작정하고 앞길을 막는다면 그녀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몸부리칠 거다.그녀도, 그녀 주위 사람들도,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강하리가 고개를 쳐들었다.눈가가 벌개진 채, 구승훈을 꼿꼿하게 노려보았다.“차라리 날 죽여요.”구승훈이 움찔했다.그 말에서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져서였다.단식으로 저항하던 그 결연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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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가전제품들, 인테리어 소품들, 식기들까지.모두가 강하리가 알심들여 골라온 것들이었다.구승훈과의 행복한 일상을 꿈꾸면서.‘다 망상이었지.’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다.“버리세요. 좋아하는 것도 그때 뿐이지, 지금은 그저 쓰레기에 불과하니까요.”구승훈은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어떻게 되어먹은 여자가 뭘 해도 씨알도 안 먹혀.입술을 일직선으로 꾹 다문 채 강하리를 노려보았다.강하리는 눈 앞에 이 남자가 또 슬슬 화가 치민다는 걸 직감했다.한시 빨리 나가고 싶었다. 이 자가 또 미친 짓을 저지르기 전에.“이제 문 좀 열어주실 수-.”“창문 박살내고 기어나가시든가!”꽥 소리지르는 구승훈. 강하리가 흠칫 놀랐다가 남자를 매섭게 쏘아보았다.구승훈, 이렇게 유치한 사람이었나?그러더니 신고있던 하이힐을 벗어, 뾰족한 굽으로 유리창을 후려쳤다.구승훈은 가슴이 철렁했다.차 유리가 아까와서가 아니었다. 강하리의 모습에서 꼭 자신을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너무나도 뚜렷하게 보여서였다.강하리는 유리창을 몇 번이고 내리쳤지만, 힘이 부족한 탓에 유리창은 끄덕도 없었다.“그만 쳐. 사는 데 데려다줄게.”결국 백기를 든 구승훈.“문만 열어주신다면 고맙겠네요.”구승훈이 대답 대신 운전석에 몸을 욱여넣더니 시동을 걸었다.그렇게 도착한 로터스가든. 차가 멈춰서자마자 강하리가 도망치듯 차에서 내렸다.구승훈은 착잡한 얼굴로 멀어져 가는 강하리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몇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구승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그 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무슨 일이지?”“오빠, 와서 나랑 같이 있어주면 안돼? 나 흉터 남을까 봐 너무 무섭단 말야. 오빠…….”울먹이는 송유라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작게 흐느끼는 소리까지 들려왔다.“최상의 의사에 최상의 약이야. 흉터 안 남으니까 걱정 말고.”울음소리에 마음이 살짝 누그러 든 구승훈이 부드럽게 달랬다.하지만 핸드폰 저 편, 송유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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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하리야, 괜찮아?”손연지의 격정스런 말투.한 시간째 욕실에 짱박혀 있다 겨우 나온 강하리를 향해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개한테 물려서.”“……구승훈이 또 찾아갔었어?”“마주쳤는데 억지로 끌려갔어.”“저기,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손연지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구승훈이 여자가 없어서 너한테만 집적대는 건 아닐 거고. 혹시 진짜 너 좋아하게 된 거 아니야?”“퍽이나. 있을 땐 먼지 취급 하다가 없어지니까 매달리는 건 뭔데.”손연지의 입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참 여러모로 답이 없네, 구승훈.……그 뒤로 며칠은 거짓말처럼 구승훈이 보이지 않았다.물론 왜 그런지는 강하리는 하나도 안 궁금했지만.그 대신 강하리가 매일 마주한 건, 산더미처럼 밀려 들어오는 일이었다.대타로 오기로 한 부장은 아직이고, 연말이 다가오다 보니 업무 양이 말도 안 되게 늘어나고 있었다.덕분에 강하리는 일정이 차다 못해 넘쳐나는, 알찬(?) 마지막 한 달을 보내야만 했다.정주현의 식사 요청도 번번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밤 열한 시를 훌쩍 넘겼으니까.모처럼 정시 퇴근한 어느날, 막 퇴근 카드를 찍으려는 강하리애게 구승재의 전화가 걸려왔다.“강 부장, 묻고싶은 게 있는데.”“네, 얘기하세요.”“통화로 하긴 좀 그렇고, 어디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싫어요, 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누르고 승낙했다.요즘 들어 사내에서 만나기만 하면, 뭔가 할 얘기가 있는 것처럼 입을 벙긋거리던 구승재였다.무슨 얘기가 나올지는 대충 생각해도 짐작이 갔다.강하리와 구승훈 사이를 가장 응원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구승훈과 끝났다는 걸 철저하게 확인시켜 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강하리는 회사 건물을 나와 승재가 주소를 보내온 근처의 한 음식점에 도착했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주문을 마치는 구승재가 보였다.“강 부장이 단 거 좋아한다고 형이 그래서, 달착지근한 맛 위주로 시켰어요.”겸연쩍게 웃는 구승재.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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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강하리가 고개를 들자, 정장 차림으로 꼿꼿하게 서 있는 구승훈이 보였다.의미를 알 수 없는 고요한 눈길로 강하리를 주시하고 있었다.“형, 여긴 어떻게 왔어?”승재가 벌떡 일어섰다.어색한 말투, 드디어 왔냐는 듯 빛나는 눈.강하리에겐 그저 대놓고 “작전 성공”이라고 들렸다.그러자 구승훈이 기다렸단 듯 옆에 앉는다.“퇴근길에 지나가다 승재가 보이길래.”짤막한 대답과 그렇지 않은, 강하리를 향한 눈길 속에 꾹꾹 눌러 담은 그리움.정말 미치도록 보고싶었다.모닝회의나 서류 이관을 핑계로 눈도장이라도 찍으려 했지만.강하리는 작정하고 자신을 피할 생각인 모양이었다.모닝 회의는 안예서를 대신 보냈고, 서류는 비서실장에게 맡기고 도망치듯 사라지곤 했다.그래서 미웠다. 화가 났다.하지만 조바심을 낼 수록 더 멀리 달아날 거란 걸 알기에 꾹 참았다.그런 구승훈과는 달리, 강하리는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옆에서 전해오는 구승훈의 시선이.아니, 둘을 감싼 공기마저도 껄끄러웠다.“저기, 승재 씨.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구승재가 흠칫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이렇게 보낼 거냐고, 뭐라도 좀 해 보라고 구승훈에게 바쁘게 눈짓했다.“거참, 밥 한 끼도 같이 못 먹나?”강하리의 손목을 덥석 잡는 구승훈.“배불러서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하지만 구승훈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정주현 만나러 가는 거야?”“네, 맞아요. 그러니까 이거 놔 주세요.”그러자 조롱 섞인 웃음을 날리는 구승훈.“확실해?”강하리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이건 또 무슨 수작이지?“네. 확실합니다.”문득 강하리 앞에 핸드폰 한 대가 슥 내밀어졌다.강하리의 눈길이 화면에 멈췄다.사진 한 장이었다.정주현이 한 여자과 마주 앉아, 화기애애하게 식사하고 있는.여자는 강하리가 아는 사람이었다.심준호의 조카, 고이선.“여기 끼러 간다고? 진짜?”강하리가 무덤덤하게 사진에서 눈을 떼었다.“진짠데요.”망신살 한 번 뻗쳐 보라는 듯한 구승훈의 비아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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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예?”강하리가 멈춰섰다. 귀를 의심했다.“담당 프로젝트 중 하나가 계약에 문제가 좀 생겨서, 강 부장님 출장 일정이 잡혔어요.”확인 사살이라도 하듯 다시 들려오는 신도윤의 목소리.“……꼭 본인이 가야만 하나요?”“네, 협업사 쪽에서 꼭 담당자와 대면해 얘기해야겠다고 해서요.”“알겠습니다. 수하 직원 동반도 가능하죠?”신도윤이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곧 대답이 돌아왔다.“안예서 씨 말씀하시는 거죠? 그럼요. 내일 공항에서 합류하라고 일러둘게요.”다음날 아침.공항 터미널에 도착한 강하리에게 정주현의 전화가 걸려왔다.“주말인데 시간 되시죠?”강하리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죄송해요. 출장 일정이 잡혀서 지금 공항이에요.”“……주말인데 출장이요?”정주현의 어이 없다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이거 냄새가 확 나는데? 구승훈이 일부러 그런 거죠?”“그러게요. 이직 전에 아주 골수까지 쪽쪽 빼먹을 기세네요.”“언제 돌아와요? 지사 입사 전에 의논할 디테일이 있는데, 돌아오면 데리러 갈게요.”강하리는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정주현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어제 봤던 사진에 대해선 한 마디도 언급이 없었다.정주현과 통화를 마친 후, 강하리는 서류들을 보며 안예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이륙 1시간 전이 되었지만 안예서는 나타나지 않았다.강하리는 연거푸 시간을 확인하며 미간을 좁히다가 결국 안예서한테 전화했다.“부장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어지간히 놀란 듯한 안예서의 목소리.강하리의 얼굴이 급 어두워졌다.“어제 신 실장한테서 연락 못 받았어? 오늘 출장이라고.”“네? 출장이요? 오늘요?”“…….”강하리는 지끈거려 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아니야. 주말인데 잘 휴식하고.”통화를 마친 강하리가 깊게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구승훈의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웬걸, 바로 끊어버리는 구승훈.‘이 인간이!’깊은 빡침(?)이 밀려왔다.설마 설마 했는데. 업무에서만큼은 장난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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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표정이 왜 그렇지? 정주현의 차 옆 자리엔 잘도 앉더만.”“…….”강하리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피곤해 보이네. 수면 부족인가?”“…….”아예 눈을 꼭 감아버린 강하리.참자. 참아야 한다.저 깐족거림이 양아치 뺨치는 인간이 아직 내 대표님이다.왜 피곤한지 몰라서 물어, 라고 빼액 외치고 싶었다.갑작스레 잡힌 출장 때문에 관련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날 새다시피 했으니까.우우우웅-.비행기 이륙 소리와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강하리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얼마나 지났을까.구승훈의 눈길이 그녀의 얼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눈 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이윽고 커다란 손으로 강하리의 머리를 받쳐, 조심스럽게 자신의 어깨에 내려놓았다.강하리가 깼을 때 비행기는 이미 착륙해 있었다.승객들이 분주하게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자신은 옆 남자의 넓은 어깨에 머리를 기대…….잠깐!강하리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그러고 보니 자신의 몸에는 어느샌가 수트 상의 한 벌이 덮어져 있었다.그 남자한테 선물했던 바로 그 수트.문득 강하리는 지금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지난 3년동안, 몸에 배어버릴 정도로 익숙한 광경.매번 함께 출장갈 때마다 기대던 넓은 어깨.매번 잠에서 깨면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던 수트 상의.그리고, 그 모든 게 깨져버린 지금.아름답던 기억의 파편들이 날카롭게 목구멍에, 가슴에 파고든다.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었다.“옷, 감사해요.”“말로만?”부르퉁한 남자의 목소리.강하리는 대답이 없었다.흥, 콧방귀를 뀐 구승훈이 일어나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강하리는 캐리어를 내려 끌고 그 뒤를 따라갔다.출구를 나서자마자 갑자기 엄습하는 추위.보경시의 연말은 혹한기였다.훅 들어오는 찬 바람에 강하리가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바로 그때, 두툼한 외투가 어깨에 내려앉았다. 외투에 배어 있는 깊은 우드향이 강하리의 코 끝을 간질였다.“얌전히 걸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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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알겠습니다. 딴 데 알아볼께요.”휙 돌아선 강하리가 밖을 향해 걸어갔다.대뜸 구승훈에게 잡혔지만.“놔요!”안간힘을 쓰며 벗어나려는 강하리를 보는 구승훈의 눈이 위험하게 번득였다.“한 방 쓰면 죽기라도 해?”“아니, 지금 한 방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난 괜찮아.”“내가 안 괜찮거든요!”강하리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구승훈의 손을 뿌리쳤다.와락!다시 강하리를 잡은 구승훈이 거칠게 그녀를 끌어당겨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강하리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었다.엘리베이터에 다른 사람들도 타고있어 가만히 있었지만.온 몸의 모든 신경세포들이 외치고 있었다.왜? 도대체 왜 매번 이러는 거냐고. 제발 좀 놔 달라고.엘리베이터가 멈췄고, 구승훈이 그대로 강하리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문이 닫히는 순간, 우악스럽게 강하리를 문에 밀어붙인 구승훈.강하리는 버둥거렸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광기로 물든 남자의 시선이 강하리에게 꽂혔고.곧 이어 묵직하고 거친 숨소리가 강하리의 입술을 덮쳤다.딩! 디리리딩! 딩!조용한 룸 안에 느닷없이 울려퍼진 전화벨 소리.콱!“으윽!”구승훈이 주춤한 순간, 강하리가 온 몸의 힘을 실은 힐로 그의 발을 밟았다.고통스런 신음과 함께 구승훈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그 틈에 구승훈을 밀쳐낸 강하리는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멀어져가는 강하리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구승훈의 얼굴에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핏줄 돋아난 손으로 그때까지 멋 모르고 울려대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중요한 일 아니면 죽여버린다.”성난 야수의 으르렁거림에 핸드폰 저 쪽, 승재가 얼어붙었다.“……그, 뭐야, 형, 알아낸 게 있는데.”한참 뒤에야 승재가 말을 이어갔다.“강 부장이 납치당하기 바로 전, 송유라가 둘째 형을 만난 것 같아.”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구승훈의 손이 멈췄다.“확실한 증거는?”승재가 잠시 침묵했다.“……길가 CCTV에 포착된 화면이 있는데, 거리가 멀어서 좀 희미하지만 누가 봐도 송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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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한참동안 승재는 할 말을 잃었다.물론 안다. 확실한 증거 없이는 송유라를 어쩌지 못하다는 걸.하지만…….“물어볼 수는 있잖아.”“어떻게? 혹시 그 납치 사건, 네가 주도한 게 아니냐고? 아니면 날 따돌리려고 일부러 얼굴 망가뜨린 거냐고?”승재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물어 봤자, 수박 겉 핥기다.“계속 둘째 추격해. 다른 건 모른 척 하고.”구승훈이 전화를 끊었다.한편, 근처 다른 한 호텔에 찾아간 강하리는 로비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호텔마다 온라인 예약이 꽉 차 있었다.임시로 예약 취소된 방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직접 왔지만 허사였다.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 화면은 메시지들로 도배되어 있었다.-어디야?-전화해.-여기 투룸이야. 안 건드릴게. 돌아와.-강하리, 전화하라고!구승훈의 전화번호를 수신 거부로 설정해 놓은 탓에, 애꿎은 톡만 잔뜩 보낸 모양이다.-요즘 바빠?이건, 주해찬이 보낸 톡이었다.-좀 많이요 ㅋㅋ-그래? 내일 보성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 개막식에 연수 차 부르려고 했는데.이런 우연이 있나.-선배, 저 지금 보성이에요.주해찬이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하리야, 진짜 보성이야?”목소리에서 뛸 듯이 기쁜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미리 얘기라도 해 주지. 섭섭하다 강하리?”“급하게 잡힌 출장이라서요. 오늘 막 도착했어요.”“어느 호텔이야? 관련 서류 보내주러 갈 테니까 잠시 내려올래?”“하, 예약이 너무 어려워요 선배. 가는 데마다 꽉 찼네요.”“아직 방 못 구헸어? 이 늦은 시간에?”주해찬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 테니까 위치 보내봐.”강하리는 톡으로 위치를 보낸 뒤, 몇 마디 더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낯빛이 푸르딩딩한 구승훈이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호텔에서 나와 강하리를 찾는 내내 톡을 보냈지만 답장 한 글자 없다.‘내 이럴 줄 알고.’다른 유심이 꽂혀있는 핸드폰을 꺼내 강하리에게 전화했다.“어디야.”추운 날씨만큼이나 서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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