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Chapter 281 - Chapter 290

987 Chapters

제281화

말을 마친 강하리는 그대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심준호가 구승훈의 휴대폰을 힐끗 바라보고는 일어나 그의 어깨를 툭 쳤다.“정말 잡고 싶으면 주위를 깨끗하게 잘 정돈하고 다시 오든가.”구승훈이 담배 한 대를 꺼내들었다.“네가 가로막지만 않으면 돼.”심준호가 웃음을 터트렸다.“강 부장이 싱글로 컴백하면 가로막는 게 나뿐이 아닐 텐데.”그 말을 남기고 심준호도 서류 가방을 들고 나가버렸다.수박 겉 핥기.지금 구승훈이 하는 짓거리가 딱 그랬다.강하리를 붙잡는 태도부터가 영 글러먹었다.큰 상처를 입은 여인에게, 가지 말라고 우악스럽게 붙잡기만 하는 게 통할 리가.하지만 귀띔해줄 생각은 없었다.스스로 깨우치지 않으면 누가 말하든 소 귀에 경 읽기인 것들이 있으니까.……-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구승훈이 받지 않자 상대방이 전화를 끊었다.액정에 뜬 “송”자를 보며 구승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잠시 뒤,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이번에는 받았다.“응, 유라야. 무슨 일이야?”“오빠, 나 이마가 너무 아파요.”구슬프게 지저귀는 듯한 송유라의 목소리.느닷없이 강하리가 생각났다.꿈 속에서마저 아프다고 중얼거리던.자면서까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던.그리고, 그날 이후로 아프단 소리 한 번 없던.“진통제 먹었어?”욱하고 치미는 뭔가를 가까스로 누르며, 구승훈이 애써 평온한 말투를 지어냈다.“먹었는데 효과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한참동안 말이 없어진 구승훈.던지듯 한 마디를 뱉었다.“의사 선생님을 찾는 게 날 찾는 것보다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오빠, 그게 무슨 말이에요?”구승훈은 강하리가 사용했던 물컵을 집어들고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가볍게 문질렀다.“용하다는 의사 찾아 놨으니까 이마에 흉터 안 남을 거야. 걱정 마.”“와서 나랑 같이 있어줘요, 오빠!”구승훈이 희미하게 웃었다.“유라야, 너도 이제 새로 시작할 때가 되지 않았어? 나만 싸고돌지 말고.”“……뭐, 뭘 새로 시작해요?”핸드폰 너머 송유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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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하리 씨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싫어하는 건?”심준호가 물었다.“단 거 제일 좋아히긴 하는데, 견과류 알러지 있어서 그 쪽으로는 못 먹는 거 빼고 다 잘 먹어요.”심준호가 멈칫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우리 어머니인 줄. 언어 천재에다가 단 것 마니아, 견과류 알러지까지 꼭 닮았네요.언제 한 번 어머니한테 하리 씨 소개시켜 줘야겠네.”“백 장관님 말씀인가요?”강하리의 눈이 반짝 빛났다.“밖에서나 백 장관님이지 집에서는 그냥 남편바라기 응석쟁이 아줌마예요.”엄마 흉 보는 심준호의 눈이 행복으로 빛났다.그게 강하리는 새삼 부러웠다.가족애란 건 어려서부터 사치였으니까.“다 좋아질 거예요. 하리 씨도. 모두가.”심준호가 강하리의 기분을 캐치한 듯 따뜻하게 말해주었다.강하리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근처 맛집을 찾아, 밥을 먹으면서 송유라 소송건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다.“충분한 심리적 준비가 되어야 할 거예요. 송유라의 유명세로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될 거고, 하리 씨가 유산했단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가급적 파급을 줄이는 쪽으로 제가 노력해 볼게요.”“잘 알겠습니다. 고마워요.”자신의 유산 사실이 알려지는 건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언제든지 여론에 밝혀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하지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써 주는 심준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강하리를 바라보는 심준호의 마음이 일렁였다.정말이지, 너무 닮았다. 자신의 누나와.생김새나 표정, 몸짓 하나하나까지.“하리 씨, 부탁이 있는데.”뭔가에 홀린 듯 심준호가 입을 열었다.“언제 한 번 하리 씨 어머님을 뵐 수 있을까요?”강하리는 기꺼이 허락했다.그동안 도와준 게 있는데, 그 정도 부탁은 얼마든지.……이틀 동안 푹 휴식한 강하리가 회사에 나갔다.“부장님! 이직하신다던데 사실이에요?”가장 먼저 마주친 건, 하늘이 무너진 듯한 얼굴의 안예서였다.안예서의 입을 통해 강하리는, 자신의 이직 소식이 회사에 쫙 퍼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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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고의적인 의도가 다분한 정주현의 말투.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정주현을 마주 향해 섰다.“주현 도련님께서 우리 강 부장과 이렇게 친했었나? 남 여자 눈독 들이지 말라던 경고는 귓등으로 들은 거고?”강하리가 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찰나.“남의 여자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에비뉴가 아닌, 우리 ‘대양 그룹’의 미모의 싱. 글, 강 부장님을 불렀을 뿐인데.”햇살처럼 환한 얼굴로 정주현이 또박또박 반박했다.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너님 여자가 아니라고 쐐기를 박는 듯, 대양 그룹과 싱글에 특별히 더 악센트를 넣으면서.강하리가 입술을 짓씹었다.얼굴에 찬 서리가 쫙 깔린 구승훈이 강하리를 돌아보았다.“대양 그룹과 계약하려던 거였어?”차가운 음성이 잇새로 새어나왔다.강하리가 고개를 들어 구승훈의 차가운 눈길을 마주 보았다.“제시한 조건이 꽤 좋아서요. 저 돈 필요한 거 아시잖아요. 안 갈 이유가 없죠.”“주현 도련님께서 뭔가 오해를 한 모양인데.”구승훈의 눈길이 점점 더 서늘해졌다.“누가 에비뉴에서 강 부장의 이직을 허락한다 그랬지?”“지금 말씀 번복하시겠다는 건가요?”강하리가 구승훈을 노려보았다.구승훈의 입가가 느슨하게 위로 휘어졌다.“번복이라니. 내가 언제 승낙을 했다고.”“하지만 이직 신청은-.”“부장직 이상 이직은 대표이사 심의 절차가 있단 걸 잊은 모양이군.”그러고는 정주현을 돌아보았다.“아니면, 주현 도련님께서 위약금을 대신 물어주겠다는 건가?”“이게 에비뉴에서 사람 붙잡아 두는 방식인가요? 참 저질이네요.”정주현이 쯧, 혀를 찼다.“까짓 거, 대양이 물어줍니다. 저희 대양 그룹은 그 정도로 쪼잔하진 않아서요.”그러고는 구승훈을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구승훈의 눈에서 분노의 불씨가 튀어올랐다.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다.“저기, 두 분 먼저 들어가 보세요.”구승재가 급급히 두 사람 사이에 막아섰다.강하리는 정주현을 잡아끌어 밖으로 향했다.저만치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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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강하리: …….……약속 장소인 어느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려고 하는 강하리를 정주현이 붙잡았다.“뒤에 구승훈. 이따가 내려서 내 팔짱 껴요.”소근거리는 정주현의 말에 강하리가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뒤에 구승훈의 차가 따라붙어 있었다.“송유라 스토리 보니까 여기 있던데, 구승훈과 여기서 데이트하려나 봐요. 우리가 질 수는 없죠.”차 문을 열어주며 정주현이 강하리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강하리는 그런 연출은 필요없다고 말하려다가, 결국은 차에서 내려 정주현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그게 구승훈의 눈에 똑똑히 보였고.서리가 내린 듯하던 얼굴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앞 자리 구승재가 팔짱 낀 두 사람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형 앞에서 대놓고 팔짱을?형을 이렇게 도발하는 건 아마 정주현 뿐일 거다.슬쩍 구승훈을 돌아보니, 차갑게 굳은 얼굴로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이렇게 또 보네요. 구 대표님.”정주현의 말은 무시한 채, 구승훈이 저벅저벅 두 사람을 지나쳐갔다.구승재가 부랴부랴 차에서 내려 구승훈을 따라갔다.“오빠!”레스토랑에서 나온 송유라가 구승훈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어왔다.“오빠, 왜 이렇게 늦었어요.”나무라듯, 응석 부리듯 구승훈에게 말하다가, 고개를 돌려 강하리와 정주현을 보았다.눈길이 두 사람이 낀 팔짱에 멈춘 송유라가 픽 웃었다.“어머, 강 부장님.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쾌차하셨나 보네요. 남자랑 데이트를 즐기시는 걸 보니.”구승훈이 그 말에 미간을 확 구겼다.팔짱을 낀 강하리의 팔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걸 감지한 정주현이 웃으면서 송유라를 마주 보았다.“많이 부러우신가 봐요? 하긴, 남자 뒤꽁무니나 쫓는 입장에선 강 부장님이 부러울 만도 하겠네요.”티 한 줌 없는 해맑은 얼굴로 거침없이 독설을 뿜어내는 정주현.하지만 강하리도 만만치 않았다.얼굴이 마구 구겨졌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고 활짝 웃었다.“강 부장님께 미안해서 그래요. 나 때문에 승훈 오빠한테 버려지고 여러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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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구승재는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송유라.폭발 직전의 얼굴인 구승훈.X발, 이거 어떻게 수습해야 되냐.아까 그들 셋을 지나치는 강하리를 슬쩍 눈여겨 봤었다.너무나도 담담한 표정이었다.구승훈이 송유라와 데이트를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라는.사실 그게 정확하게 지금 강하리의 심정이었다.강하리와 함께일 때부터 송유라를 끼고 다니던 구승훈인데.강하리가 물러나 준 지금은 정도가 더 심해지겠지.레스토랑이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 앞에서 마주친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한편, 구승훈은 이를 꽉 악물고 있었다.어찌나 힘을 줬던지 아랫턱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그러지 않으면 분노의 불길이 뿜겨저 나와 온 몸을 뒤덮을 것만 같아서.당장 이성을 잃고 광란에 빠져들 것 같아서.자신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도 몰랐다.냉정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지금 자신의 모습.고작 계약으로 이어진 여자 하나 때문에.호주머니 속으로 꽉 쥔 주먹에도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아랫입술을 꽉 말아 올렸다.참아내야 했다. 눌러야 했다.여자 하나 때문에 미쳐 날뛰는 꼴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면.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허파가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가까스로 정신줄을 붙잡았다.그리고 후- 길게 내 뱉었다.“오, 오빠. 내가 뭐 잘못 말한 건 아니지? 난 그냥-.”“잘못 말했는지 아닌지는 네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송유라의 말을 단 칼에 잘랐다.“아니 나는, 강 부장님이 화내실까 봐…….”송유라가 한 마디 더 하려다가, 구승훈의 눈길과 마주치자 다시 얼어붙었다.그건 성난 야수의 눈길이었다.“화는 충분히 냈을 거니까, 앞으로 저 여자 앞에 나타나지 마.”감정 없는 구승훈의 목소리에 송유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아, 알았어, 오빠.”하지만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한 순간이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꼈으니까.“들어가자. 의사선생님 기다리고 계셔.”뒤도 안 돌아보고 저벅저벅 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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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잘 된 거다.구승훈이 영원히 못 봐야 한다. 강하리가 완전히 마음을 돌릴 때까지.다른 한 당사자, 강하리는 더이상 구승훈 얘기는 하기 싫어진 모양이었다. 대신 연성 지사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두사람은 웨이터를 따라 룸 앞에 도착했다.두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심준호.다른 한 풍채 좋은 어르신을 강하리는 대양그룹 소개 자료에서 본 적이 있었다.대양그룹 회장, 정주현의 아버지, 정양철.강하리를 보는 순간, 정양철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색다른 감정이 눈가에 스쳐 지나갔다.“아버지. 강 부장님 모셔왔어요. 예쁘죠?”정주현이 씩 웃으며 불렀다.정양철의 위엄 섞인 눈길이 강하리를 향했다. 한참 뒤, 모든 걸 꿰뚫어볼 듯한 눈길을 거두고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능력 뛰어난 건 진작에 알았디민, 미모 또한 뒤처지지 않는군.” 정주현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쳐들었다.“안색도 전보다 많이 좋아보이네요.”심준호가 한 마디 거들었다.“기분이 좋아지니까 컨디션도 저절로 좋아지나 봐요.”강하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심준호의 눈길이 더없이 부드러워졌다.“둘이 아는 사이었나?”정양철이 심준호를 돌아보았다.“요즘 강하리 씨 사안 하나를 맡았거든요.”심준호가 짧게 대답했다.정 회장이라면 아마 눈치 챘을 거다.강하리, 그리고 행방불명된 심준호의 누나, 심미현.하지만 모든 게 불명확한 지금은 말을 아끼는 게 상책.정양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 않았다.몇 마디 더 나눈 후, 심준호가 먼저 자리를 뜨려고 했다.찰나, 저만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구승훈을 보았다.티 안 나게 고개를 돌려 강하리에게 물었다.“하리 씨는, 주현 도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좋은 분이시죠. 저 많이 도와주시고.”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강하리가 무심결에 대답하자, 심준호의 입가게 은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두 사람 친해져 봐요.”그 말들이 고스란히, 구승재 송유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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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그러지요.”정양철의 대답에, 이 불편한 식사 자리가 성사되었다.일동의 표정들이 가관이었다.강하리는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무슨 심보로 저러는 거지?혹시 이직에 훼방 놓으려고?송유라의 얼굴은 구겨질 대로 구겨져 있었다.성형외과 의사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인 건지.“오빠, 우리 다른 일 땜에 온 거잖아요.”초조하게 귀띔해 줬지만.“승재 네가 유라랑 의사 만나러 가.”무슨 짐짝 던지듯, 자신을 구승재에게 던져버리는 구승훈.“갑시다, 유라 씨.”야속하게도 구승재는 그걸 냉큼 받아들인다.“오빠! 나랑 같이 가기로 했잖아요!”송유라가 참다 못해 빼액 소리지르자 정주현이 피식 웃었다.“구 대표님, 약속 까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구승훈이 서늘한 눈길로 송유라를 돌아보았다.“전에 내가 했던 말, 잊었어?”그토록 매정한 말을 잊을 수 있을 리가.귀국한 이후로 매번 그녀가 필요할 때 와 준 구승훈이었지만.사실 너무 가깝게 지내진 않았었다.먼저 송유라에게 연락한 적이 도통 없었으니까.더군다나 그날 그 통화 이후로는 아예 대놓고 그녀를 멀찍이 밀어내고 있다.둘 사이에 그어진 선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었다.그게 송유라는 원통하고 분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그럼, 이따가 저 집에 데려다 주면 안 돼요?”한발 물러서는 수밖에 없다. 지금껏 가까워진 거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난동을 피워도 눈썹 한 번 까딱이지 않을 구승훈이란 걸 잘 알기에.구승훈은 대답 대신 강하리를 쳐다보았다.강하리가 그 눈길을 피했다.아니, 다투려면 둘이 조용히 다투든가. 보긴 뭘 봐.강하리가 나몰라라 하자, 구승훈은 또 짜증이 솟구쳤다.젠장, 역시나 거들떠보지도 않는군.“끝나면 그때 가서 보자.”승낙도 거절도 아닌 두루뭉술한 대답을 남기고, 구승훈이 정양철 일동과 함께 룸에 들어가 버렸다.쾅 닫히는 문.순간, 송유라의 얼굴에서 상심한 기색이 감쪽같이 사라졌다.차가운 얼굴로 송유라가 까드득, 이를 갈았다.기껏 갈라 놨더니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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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들키면 또 어때.구승훈이 어쩌지도 못할 건데.강하리의 사이버 폭격 사건과 유산 사건의 진상을 구승훈이 모를 리 없다.그런데도 자신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거기까지 생각한 송유라는 한 시름 놓았다.……룸 안.정주현이 아니꼬운 눈길로 구승훈을 바라보고 있었다.상석에 앉으라고 정양철이 손짓하는 구승훈을.하지만 구승훈은 보란 듯이 강하리의 곁에 다가가, 옆 자리에 털썩 앉았다.“정 회장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인데 당연히 회장님이 상석에 앉으셔야죠.”표정이 급 어두워지는 강하리.그녀의 다른 한 쪽 자리를 정주현이 질세라 차지했다.그 미묘한 구도를 본 정양철은 짚이는 데가 있었지만, 별 다른 말은 없었다.식사가 시작되었고, 정양철이 구승훈에게 구씨 가문 어르신의 근황을 물었다.그 사이에 낀 강하리는 뻘쭘해 젓가락만 만지작거렸다.“먹고싶은 거 있으면 더 시켜요.”갑자기 정주현이 강하리의 귓가에 소근거렸다.“저 음식 안 가린다고 했죠.”웃으며 대답하는 강하리.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리다 보니, 둘의 거리가 자연스레 가까워졌다.거의 맞닿다시피 한 두 사람의 머리가 구승훈의 시야에 들어왔고, 구승훈의 눈빛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탁!구승훈의 손에 들고있던 컵을 상에 내려놓았다.“우리 강 부장이 곧 대양과 계약한다고 들었습니다.”“연성 지사에서 영입할 예정이라더군요.”정양철이 대답했다.“정 회장님은 우리 에비뉴의 직원에 대해 잘 알고 계시네요.”“그만큼 인재를 아끼시니까요. 막 다루는 누구랑은 다르게.”정주현의 깐족임에 구승훈의 눈메가 무섭게 가늘어졌다.“축하드립니다.”“별 말씀을요.”구승훈과 정주현의 술잔이 허공에서 매섭게 부딪쳤다.그 사이에 끼어있는 강하리는 당장 투명인간으로 변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졍양철의 눈길이 그런 강하리에게 멈추더니 술잔을 들었다.“하리 씨, 대양 연성 지사 잘 부탁드립니다.”강하리가 웃으며 자신의 술잔을 드는 순간, 커다란 손 하나가 술잔을 채갔다.“지 몸 상태를 몰라서 술까지 마시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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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강하리가 순간 뚝 멈췄다.작정하고 밉보이겠단 듯 비아냥으로 찬 저 말투.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휴지로 손을 깨끗이 닦은 뒤, 구승훈을 돌아보았다.“구 대표님 눈에는 내가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다른 가치도 보이거든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구승훈의 눈썹이 꿈틀했다.유유히 곁을 스쳐 지나려는 강하리의 손을 콱 잡았다.“대양이 네 실무능력만 보고 위약금까지 물어줄 호구로 보여?”“그러는 구 대표님은 내가 어떻게 대해도 안 도망갈 호구로 보이세요?”강하리가 구승훈을 매섭게 쏘아보았다.도대체 어쩌자는 건지.안 좋아한다면서 이제 와서 질척거리기나 하고.“그런 뜻이 아니잖아.”“아, 그래요? 송유라랑 붙어 다니더니 그새 옮으셨나 봐요? 오해 사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요.”“야! 강하리!”구승훈이 저도 모르게 꽥 소리질렀다.“정주현 그 새X가 나보다 나은 게 뭔데.”“나를 사람으로서 존중해 주는 거요. 부속물이 아니라.”“…….”구승훈이 할 말을 잃었다.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강하리를 향한 집착에 ‘존중’이란 태그는 없었으니까.그저 새장 속 카나리아 같은 존재로 여겼을 뿐.“아, 그리고.”강하리가 환하게 웃었다.“대양과는 협력 관계에 그칠 수 있었는데, 대표님 덕분에 이렇게 몸까지 팔려가는 신세가 됐네요. 고마워서 어쩌죠.”얼굴에 만개한 웃음과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냉랭한 음성.얼어붙은 구승훈을 뒤로 한 채, 강하리가 멀어져갔다.구승훈은 한참을 꼼짝 않고 그렇게 서 있었다.이마에 실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전에 만났을 때까지 들먹였던 위약금.그건 단지 강하리를 잡아두기 위해 꺼낸 핑곗거리일 뿐이었다.그게 강하리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갈지는 관심 밖이었다.대양에서 그걸 물어주면 강하리는 대양에 뼈를 묻어야 할 터.그야말로 강하리를 꽁꽁 묶어 정주현의 품에 안겨준 셈.도끼로 제 발등 찍은 격이었다.한편으론 그걸 감수할지언정 자신 곁을 떠나겠다는 강하리가 야속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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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구승훈이 집어준 요리가 앞접시에 수북이 쌓였다.짜증이 확 치밀었지만, 강하리는 꾹 참았다.정양철 회장 앞에서 구승훈을 깔 수 없었으니까.이쪽을 향한 정양철의 시선이 자신을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이쯤하면 대양으로의 이적도 물 건너간 것 같았다.구승훈과 얽힌 여자를 대양에서 들이려고 할 턱이 없었으니.그런데 의외로, 한참 뒤 정양철 회장이 대양과의 계약 얘기를 꺼냈다. 구승훈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정 회장님은 아들을 극진히도 아끼시네요.”“허허, 우리 아들내미 잘 좀 부탁드립니다.”구승훈의 말 속에 숨겨진 뼈를 모른 척, 정양철이 사람 좋게 웃었다.여러모로 불편한 식사가 그렇게 끝났고, 일동이 룸에서 나왔다.정양철이 정주현에게 강하리를 데려다 주라고 지시했다.구승훈이 자기가 데려다 주겠다고 자진해 나섰지만.“아닙니다. 대표님은 유라 씨를 데려다 줘야 하니까요.”강하리가 딱 잘라버렸다.마침 송유라가 복도 저 쪽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그걸 본 구승훈이 미간을 좁히는 사이, 강하리는 정주현과 함께 멀어져갔다.“주현 도련님은 남이 버린 장난감을 잘도 주우시네요.”송유라와 마주치자, 셋만 들을 수 있는 낮은 목소리로 송유라가 중얼거렸다.강하리의 발걸음이 멈춰섰고, 정주현이 픽 웃었다.“누가 누굴 버린 건지 잘 모르시네요. 장난감 구도에도 들어보지 못하셔서 그런가.”말빨로 밀릴 정주현이 아니었다. 송유라의 얼굴이 하얘졌다 새파래졌다를 반복했다.“……아무 여자나 들였다가 뒤통수 맞으실까 봐 귀띔해드리는 것 뿐이에요.”“그래서 기피하는 부류가 있죠. 예를 들면 송유라 씨 같은.”겨우 한 마디 뱉은 송유라를 또 가뿐히 눌러버린 정주현.“다신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쪽 이마에 흉터, 좀 많이 징그러워서요.”결정타를 날리고는 강하리를 에스코트하며 유유히 걸어나갔다.남겨진 송유라는 영혼이 빠져나간 듯 그 자리에 굳어있다가, 온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어찌나 화가 났던지, 잇몸이 다 간질거렸다.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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