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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Author: 재인
잘 된 거다.

구승훈이 영원히 못 봐야 한다. 강하리가 완전히 마음을 돌릴 때까지.

다른 한 당사자, 강하리는 더이상 구승훈 얘기는 하기 싫어진 모양이었다. 대신 연성 지사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대화를 나누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두사람은 웨이터를 따라 룸 앞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심준호.

다른 한 풍채 좋은 어르신을 강하리는 대양그룹 소개 자료에서 본 적이 있었다.

대양그룹 회장, 정주현의 아버지, 정양철.

강하리를 보는 순간, 정양철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색다른 감정이 눈가에 스쳐 지나갔다.

“아버지. 강 부장님 모셔왔어요. 예쁘죠?”

정주현이 씩 웃으며 불렀다.

정양철의 위엄 섞인 눈길이 강하리를 향했다.

한참 뒤, 모든 걸 꿰뚫어볼 듯한 눈길을 거두고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 뛰어난 건 진작에 알았디민, 미모 또한 뒤처지지 않는군.”

정주현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안색도 전보다 많이 좋아보이네요.”

심준호가 한 마디 거들었다.

“기분이 좋아지니까 컨디션도 저절로 좋아지나 봐요.”

강하리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자, 심준호의 눈길이 더없이 부드러워졌다.

“둘이 아는 사이었나?”

정양철이 심준호를 돌아보았다.

“요즘 강하리 씨 사안 하나를 맡았거든요.”

심준호가 짧게 대답했다.

정 회장이라면 아마 눈치 챘을 거다.

강하리, 그리고 행방불명된 심준호의 누나, 심미현.

하지만 모든 게 불명확한 지금은 말을 아끼는 게 상책.

정양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묻지 않았다.

몇 마디 더 나눈 후, 심준호가 먼저 자리를 뜨려고 했다.

찰나, 저만치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구승훈을 보았다.

티 안 나게 고개를 돌려 강하리에게 물었다.

“하리 씨는, 주현 도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좋은 분이시죠. 저 많이 도와주시고.”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강하리가 무심결에 대답하자, 심준호의 입가게 은근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두 사람 친해져 봐요.”

그 말들이 고스란히, 구승재 송유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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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동근은 갑자기 침묵하더니 지팡이를 짚고 다소 힘겹게 걸으며 창문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하지만 구승훈은 그를 부축하지 않았고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지만 피우지 않고 손에 쥔 채 시선을 내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구동근은 말없이 창가에 서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구승훈도 다그치지 않으며 인내심을 가지고 구동근이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창밖으로 보이는 아래층 정원에서 기사가 가정부와 연정이를 데려다주었다.연정이는 진태형이 얼마 전 사준 작은 패딩에 토끼 목도리를 두르고 곱슬곱슬한 머리에 예쁜 머리핀 두 개를 하자 작고 하얀 얼굴에 까만 눈동자가 인형처럼 귀여웠다.차에서 내려와 강하리를 보자마자 아이는 신이 나서 가정부가 내려주기 바쁘게 뒤뚱거리며 강하리를 향해 달려가면서 깔깔 웃었다.강하리가 다가가 연정이를 안고 볼에 입 맞추었다. 정원의 조명은 그리 밝지 않았지만 이 장면은 유난히 선명하게 구동근의 눈에 각인되었다.희미한 눈동자에 잠시 복잡한 감정이 섬광처럼 번쩍이다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가 말을 꺼냈다.“솔직히 나도 어디 있는지 몰라.”구승훈은 그의 대답에 놀라지 않은 듯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뒤 옅은 웃음을 터뜨렸다.“괜찮아요. 난 기다릴 수 있어요. 아시게 됐을 때 다시 물어볼게요.”말을 마친 구승훈은 뒤돌아 문을 나섰고 단호한 발걸음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구동근은 순간 불안한 마음에 주름진 노인의 얼굴엔 금세 화난 기색이 돌았다.“이 자식, 무슨 뜻이야? 날 가두는 거야?”구승훈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한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고개를 돌려 소위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상대를 바라보았다.“그럴 리가요. 할아버지 안위가 걱정돼서요. 오늘 피까지 토하셨는데 제가 잘 챙겨드려야죠.”“이놈 자식이!”구동근이 지팡이를 내리쳤지만 구승훈은 이미 문을 닫고 나간 뒤 문 앞에 있던 사람에게 잘 지켜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방을 나선 구승훈은 혼자 3층 테라스로 올라갔다.저녁 바람은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44화

    구동근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이 장면을 지켜보던 구민성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가 났다.“구승훈! 할아버지에게 강요해서 무덤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이젠 억지로 결혼까지 밀어붙여? 우린 다 앞 못 보는 장님인 줄 알아? 네가 오늘 할아버지를 강요해 결혼을 진행해도 우린 인정하지 않아!”구승훈은 눈썹을 치켜들고 구동근을 내려다보았다.“할아버지, 제가 강요했어요?”구동근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구승훈을 노려보았다.손자 하나는 참 잘 키웠다.구승훈을 노려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구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결혼 허락받으러 온 거야. 심씨 가문에서 동의하면 앞으로 강하리는 구씨 가문의 당당한 며느리가 될 거야.”구동근의 말이 떨어지자 구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한 겹 내려앉은 듯 어두운 표정이 역력했다.“아버지, 미쳤어요?” 구민성이 성큼성큼 다가왔지만 구동근은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는 한숨을 쉬며 거실로 들어서면서 마음속으로는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뭐라고 해도 반대하지 말았을걸. 그러면 이 지경으로 되지도 않았고 구씨 가문도 망하지 않았을 텐데.구동근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바라보았다.백아영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구동근의 체면을 생각해 별다른 거친 말을 하지 않았다.구동근 역시 빙빙 돌리지 않고 자리에 앉은 뒤 곧장 입을 열었다.결혼 허락은 물론 예물까지 전부 준비할 생각이었다.SH그룹은 무너졌지만 구동근은 여전히 많은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고 그중 일부는 구승훈의 예비 신부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선물이다. 연성 중심가에 있는 사무 빌딩, 그리고...원래 여초연의 손에 있던 팔찌까지.“승훈이 엄마가 며느리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보낸 겁니다.”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고 말을 마친 구동근은 강하리에게 팔찌를 건넸다.하지만 강하리는 팔찌를 받을 생각이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43화

    강하리의 말에 진시연은 물론 이정숙도 당황했고 곧바로 이정숙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강하리, 주제넘게 굴지 마!”강하리가 웃었다.“앞으로 저한테 잘해준다는 게 이런 건가요?”이정숙의 말문이 막히자 진시연이 곧장 입을 열었다.“난 무릎은 꿇을 수 있지만 할머니는 그냥 두면 안 될까요? 연세가 있고 그쪽 할머니인데 아무리 그래도 어른은 존중해야죠.”또다시 강하리에게 잘못을 덮어씌우는 말에 강하리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아주머니, 손님 내보내세요.”오영숙이 서둘러 달려왔다.“어르신, 진시연 씨, 나가시죠.”오영숙이 말을 마치자 진시연은 이를 악문 채 정말로 무릎을 꿇었다.“시연아!”소리를 지르며 이정숙은 진시연을 끌어당기려 했고 진시연의 몸도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앞으로 다시는 건드리거나 성가신 일 만들지 않을게요. 강하리 씨, 제가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강하리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진시연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난 후 이렇게 말했다.“꺼져요. 앞으로 나랑 내 가족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고.”진시연은 나지막이 고맙다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이정숙과 함께 떠났고 거실에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구씨 가문 사람들은 저마다 복잡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그들 눈에 강하리는 줄곧 만만하고 연약한 상대였다.그게 아니면 구승훈이 아니라 바로 강하리의 회사로 찾아가지도 않았을 거다.그런데 지금 보니 구승훈이 만나는 여자가 진태형의 양딸과 어머니도 몰아붙일 만큼 독한 사람이고 거실에 있는 심씨 가문 사람 중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구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표정이었고 구동근은 더더욱 그러했다.그는 강하리가 구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늘 생각해 왔다.출신이 비천한 데다 안주인이 될 만한 자질도 갖추지 못했다고 여겼다.시골 출신인 계집이 성격도 연약하고 소심해서 훌륭한 안주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의 섣부른 판단이었다.거실에서 심준호는 눈썹을 치켜들고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42화

    이정숙은 구씨 가문 사람들을 슬쩍 보았고 그들도 하나같이 신기한 듯 이쪽을 보고 있었다.도우미가 한쪽으로 데리고 갔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전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그들은 오늘 특별히 사과하러 온 것이었다.그날 병원에서 돌아온 뒤 진강석은 모습을 감췄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 직후 진시연은 외출을 하다가 실수로 차에 치여 얼굴에 상처를 입을 뻔했고, 다음날 외출을 하러 나갔다가 또 차에 치여 긁히자 겁에 질린 진시연은 감히 외출조차 하지 못했다.그뿐만 아니라 누가 퍼뜨렸는지 친손녀를 학대했다는 소문이 떠돌자 요즘은 외출만 하면 손가락질을 받았다.진강석은 보이지 않고 진시연은 교통사고를 당했으며 이정숙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데 진태형은 업무 때문에 해외에 있어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했다.며칠 사이 진씨 가문은 바람 잘 날이 없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이제야 심씨 가문을 찾아와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사실 사과는 이미 했고 백아영과 심준호 모두 그 말을 똑똑히 들었다.그들이 어쩔 수 없이 살가운 말을 다 뱉고 나서야 심준호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그 사과는 하리한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저희한테 하시죠?”진시연과 이정숙은 순식간에 분노로 얼굴이 빨개졌다.소용없는 짓이었으면 왜 도중에 멈추지 않았을까.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강하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그런데 강하리가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올 줄이야.그들이 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강하리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뜻인가?차라리 죽는 게 낫지.사과할 생각은 전혀 없고 분노로 가득 찬 이정숙의 얼굴을 보며 구승훈은 웃었다.“그럴 거면 이만 돌아가세요. 저희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이정숙은 구승훈과 강하리를 노려보았다.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바뀌지 않으니 한참이 지난 후 결국 그녀는 포기하고 말았다.“하리야, 할머니가 너한테 못되게 굴어서 미안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41화

    구씨 가문 사람들이 다시 심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구동근은 정말로 비틀거리고 있었다.토해낸 피에 모든 힘을 담은 듯 그의 얼굴은 늙고 초췌해 보였다.구승훈은 차에 오른 뒤 뒤따라오던 의사에게 구동근의 상태를 물어보았고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홧김에 피를 토한 거다.구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은 구승훈을 무슨 악마를 보듯이 쳐다봤다.구승훈이 정말 노인을 이 지경까지 몰아붙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하지만 구승훈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냉정하고 차가운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고 구씨 가문 전체에서 구승재를 다소 특별하게 대하는 것 말고는 친어머니한테도 살갑게 군 적이 없었다.그래도 겉으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는데 이젠...구승훈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강하리의 허리를 팔로 감싸며 조용히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그는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기껏해야 무례하고 자비 없는 냉혈한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사건을 이용해 그를 또다시 곤경에 빠뜨릴 궁리나 하겠지.그런데 조금 전 소리 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와서 머리를 조아리라는 그의 말이 먹혔는지, 아니면 어르신에게 강요하는 모습에 겁을 먹었는지 다들 화가 나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모습이었다.강하리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묘지에 도착하는 순간 진씨 가문 사람들이 다시 심씨 가문으로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았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집안 분위기가 생각만큼 살벌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고 거실에는 백아영이 침울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있고 그 옆에서 심준호가 차분하게 차를 끓이고 있었다.진시연은 눈이 충혈된 채 거실에 서 있었고 이정숙도 평소처럼 건방지게 굴지 않았다.이 모습은...강하리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데 옆에서 남자의 비웃음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남자의 얼굴엔 싸늘함이 사라지지 않은 채 조롱까지 섞여 있었다.“무슨 짓을 한 거야?”구승훈은 눈썹을 치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40화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뒤돌아 걸어 나갔고 구동근은 구승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씩씩거리느라 가슴에 찌릿한 통증까지 느껴졌지만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았다.구동근은 가는 내내 아무 말이 없다가 비행기 탑승 직전에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너 대단한 놈이잖아. 네가 결혼하는데 내가 굳이 가야 할 필요가 있어?”구승훈은 창밖의 구름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난 하리가 구씨 가문의 당당한 안주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 구승훈이 원해서 결혼하는 여자는 한명 뿐이라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구씨 가문에서 조금의 괴롭힘도 당하지 않게 할 거예요.”그가 곁에 없더라도 말이다.“그래서 B시에 도착하면 둘째 삼촌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러 오라고 연락하세요. 하리는 할아버지가 인정한 손자며느리라는 걸.”“너...”구동근은 문득 구승훈이 미쳤나 싶었다.그 여자한테 이렇게까지 미친 걸까.하지만 이제 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자신은 이 망할 손자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걸.구승훈은 연성에 다녀온다는 걸 강하리에게 말하지 않았고 당일 일정이라 강하리는 구승훈이 출근한 것으로만 생각했다.그런데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심씨 가문 저택 마당에서 구동근을 비롯한 구씨 가문 일가 10여 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강하리의 표정이 확 바뀌며 저도 모르게 이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러 찾아왔다고 생각하는데 그녀가 아무 말도 하기 전에 구승훈이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어떻게 된 거야? 이 사람들 소란 피우려고 찾아온 거야?”강하리가 깊은 목소리로 묻자 구승훈은 강하리에게 다가가 허리를 낚아챘다.“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는 없어?”강하리는 구씨 가문 사람들이 던지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눈빛을 보며 도저히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구씨 가문 사람들에 대해선 구승훈과 구승재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구승훈은 잠시 침묵했다.“어머니 뵈러 가자.”강하리는 당황했고 구승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39화

    늙은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이렇게 물었다.“사모님, 여씨 가문의 조상 묘에 대해서...”휴대폰을 잡은 여초연의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얼굴에 분노가 서린 듯했지만 잠시 후 그녀는 차가운 웃음을 내뱉었다.“걔가 서두르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집사는 침묵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여초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을 향해 걸어갔다.추운 겨울날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깔끔한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고 집사가 그녀의 어깨에 숄을 둘러주자 여초연은 자연스럽게 숄로 몸을 감쌌다.나이를 지긋하게 먹었지만 여전히 40대처럼 보이는 그녀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테이블로 걸어갔고 테이블 위에는 매화로 만든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여초연이 가위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듬자 집사는 다소 초조한 듯 말했다.“그래도 조상님 묘를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여초연은 멈칫하다가 이내 차갑게 웃었다.“우리가 가서 구씨 가문의 조상 무덤도 같이 파면 되잖아.”그렇게 말하던 중 갑자기 가위를 꽉 쥐었다.“그리고 구동근 그 늙은이도 언젠가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야.”...구동근은 구승훈의 전화를 받고 또 한 번 분노에 휩싸여 쓰러질 뻔했다.살면서 이렇게 화가 났던 적이 또 있을까.지난번엔 심문석의 체면 때문에 심씨 가문으로 갔고 당시 구승훈과는 물과 불같은 사이라 그와의 관계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찾아갔는데 백아영에게 뺨을 맞을 줄이야.그런데 이젠 심미현의 무덤에 찾아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라니.아무리 그래도 그가 웃어른인데 자존심을 굽힌다고 한들 심미현이 그걸 받을 자격이 있을까.구동근은 기가 막혀 무슨 일이 있어도 B시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구승훈이 자신을 데리러 사람을 보낼 줄은 몰랐다.데리러 오는 것이라기엔 사실 납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경호원 몇 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구동근의 앞으로 다가와 순식간에 그를 둘러쌌고 그 순간 방 안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구동근은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죽기 전까지 구씨 가문은 내 말에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38화

    강하리가 무심코 흘깃 쳐다보니 임희주였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거두며 심문석 쪽으로 다가갔다.구승훈이 슬쩍 강하리를 돌아보자 그녀는 이미 심문석 옆에 자리를 잡고 웨딩 촬영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그는 시선을 내린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어젯밤 두 시 넘어서 임희주가 보낸 메시지도 그제야 눈앞에 나타났고 구승훈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메시지를 읽은 후 휴대폰을 도로 넣었다.강하리는 그의 행동을 못 본 척 심문석 옆에 앉아 애교를 부렸고 구승훈은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이 떠나서야 강하리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옅어졌고 백아영은 강하리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몇 번이나 그녀를 불러서야 강하리는 마침내 다시 정신을 차렸다.“할머니, 왜 그래요?”백아영은 눈가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건 내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강하리는 입술을 다물며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하지만 백아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침묵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증조할아버지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 그렇게 심각한 상태 아니야. 근데... 승훈이랑 싸웠니?”강하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지 구승훈을 걱정하는 것뿐이었지만 그가 얘기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물어볼 생각이 없었다.굳이 끝까지 파고들 필요가 없으니까.한편 병원 밖으로 나온 구승훈의 표정도 살짝 어두워졌고 준봉이 병원 앞에 차를 세우자 구승훈은 곧바로 차에 올랐다.“대표님, 회사로 갈까요?”“정신과로 가.”임희주는 구승훈을 보자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다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기분은 좀 어때요?”구승훈은 문 앞에 서서 선을 긋는 듯 차가운 아우라를 풍겼다.“사람이라도 보내 임 선생한테 적당한 거리가 뭔지 가르쳐 드려야 할까요?”임희주는 멈칫하다가 정신을 차렸다.“메시지 말하는 거예요? 죄송해요. 어젯밤 노민준 씨랑 두시까지 그쪽 병에 대해 연구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937화

    이정숙은 강하리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당황한 듯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강하리는 이미 의사 진료실로 걸어가고 있었다.진시연의 얼굴은 뺨을 맞아 두 개의 손자국이 남았고 창백한 얼굴에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강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에 담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강하리가 그런 말을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저 협박이라는 건 알지만 괜스레 겁이 났다.이정숙과 진강석이 지켜주기에 그동안 선 넘는 짓을 수없이 했었다.진태형이 없어도 이정숙과 진강석은 그녀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줄 테니까.하지만 이 또한 그녀가 감옥에 가지 않게 하거나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며 강하리를 막을 순 없었다.지금의 강하리는 심씨 가문을 등에 업고 곁엔 구승훈이 지키고 있으니 만약 정말로 그녀에게 어떠한 고통을 선사하려고 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였다.그동안 강하리가 나서지 않고 반격하지 않은 건 전부 진태형 때문이란 걸 안다.하지만 지금은...강하리가 떠난 것을 확인한 이정숙이 병동으로 들어가 따지려고 하는데 진시연이 갑자기 그녀를 끌어당겼다.“할머니, 가지 마세요.”여전히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이정숙을 말린 진시연은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승훈 씨, 이걸로 나도 오늘 벌을 받은 거니까 강하리 씨한테 나 좀 내버려두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내가 강하리 씨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거 알아요. 강하리 씨 곁엔 지켜주는 사람이 많고 난 할머니와 할아버지밖에 없는데...”“진시연.”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구승훈이 가로챘다.“그쪽이랑 하리를 비교하지 마.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진시연의 얼굴이 또다시 하얗게 질리며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구승훈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그리고 고작 뺨 두 대 맞은 걸로 벌을 받았다는 거야? 진시연,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어?”진시연의 입꼬리가 파들거렸다.“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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