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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벼락처럼 구승훈의 귀에 꽂혔다.

구승훈이 감전이라도 된 듯 움찔했다. 정수리까지 치밀었던 화와 욕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강하리를 꽉 잡았던 손이 스르르 풀렸다.

눈가에 고통스런 빛이 스쳐지났다.

날 선 비수가 가슴을 긋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그 사건 이후 강하리가 언급한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지나간 줄로만 알았다.

입에 담지 않으면 천천히 나아지겠지.

시간이 어루쓸다 보면 아물겠지.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물기는 커녕, 점점 더 깊어지기만 한 상처였다.

강하리한테도, 자신한테도.

살짝만 건드려도 쫙 갈라져, 두 사람을 갈라놓는 깊은 골짜기로 변해버렸다.

구승훈의 울대뼈가 아래위로 요동쳤다.

비틀비틀 뒤로 두 발작 물러났다.

강하리가 지금 이 일을 다시 꺼낸 의도는 분명했다.

이 상처 보이냐고.

나 지금 이런 상태니까, 제발 건드리지 말라고.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는 거였다.

“아플 거 뻔히 알면서, 그런데도 굳이 헤집어서 나를 밀어내는 거야?”

구승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강하리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안 그러면 더 아플 거니까.”

어느덧 강하리의 목소리와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잔잔해져 있었다.

그만큼 차갑기도 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지나갈 거예요. 앞으로의 시간에 비하면 3년은 아무것도 아닐 거니까. 대표님이나 나나 아직 젊잖아요.”

“그러니까, 더이상 피차 상처 내면서 엉켜있지 말자구요. 네?”

담담한 강하리의 눈빛과 마주하는 구승훈의 눈동자에 복잡한 감정이 차올랐다.

‘자존심 따위에 이러는 거 아니라고!’

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 끝까지 올라왔던 말을 다시 삼켰다.

자존심이 아니면?

사랑?

X랄.

어렸을 적부터 알았다.

사랑, 결혼 따위는 세상에서 가장 무의미한 것이란 걸.

“그러니까 내가 뭘 하든, 우리 둘은 일말의 가능성도 없다는 거네?”

“네.”

외마디 대답을 끝으로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진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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