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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절대 안돼의 모든 챕터: 챕터 301 - 챕터 310

1465 챕터

제301화

오후 4시. 비록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이안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유선우는 일찍 회사를 나왔다.물론 조은서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요즘 날씨가 유난히도 추운지라 그녀에게 어울릴 것 같은 루이뷔통의 연한 핑크색 캐시미어 머플러를 하나 골라 샀다.검은색 캠핑카가 백화점 지하 주차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보라가 점점 거세져 땅에는 눈이 벌써 얇게 깔려있었다.차는 한 길목 앞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그 사이에 기사는 백미러를 닦으며 말했다.“눈이 제법 많이 내릴 것 같은데요. 아마 또 도로가 막힐 겁니다. 대표님, 내일 아침은 제가 일찍 도착해서...”“내일은 크리스마스라서 집에서 아이랑 같이 보낼 겁니다.”뒷좌석에 앉아 이안이에게 주려고 산 장난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유선우가 말했다.기사가 듣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애가 있으니, 대표님도 가정적이 되신 것 같아요.”그 말에 유선우도 가볍게 웃었다.파란불이 되어 차가 다시 시동을 거는데, 한 젊은 여자애가 차창을 두드렸다.백서윤이 조심스러우면서 살짝 수줍어하는 얼굴로 밖에 서 있었다.몇 초 동안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창문을 내렸다.백서윤이 조급한 듯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말을 꺼냈다. “대표님, 저 좀 급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좀 태워주시면 안 될까요? 눈이 와서... 택시가 안 잡혀요.”대표님 차가 손 흔들어 세워 타는 택시로 아는지.기사는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싶었는데, 유선우는 백서윤의 얼굴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추워서 그런가, 새하얀 얼굴에는 연한 핑크빛이 돌고 있었다. 생기 있는 얼굴이었다. 조은서의 차가운 얼굴과는 다르게.한참 후, 유선우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한테 차에 타라고 했다.잠깐 망설이더니 백서윤은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사실 이건 매우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평소 진 비서가 이 차에 탈 때도 앞좌석에만 탔었는데 고작 인턴일 뿐인 그녀가 대표님과 같이 뒷좌석에 앉는다는 게.뭔가 눈치를 챈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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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유선우가 별장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7시가 거의 돼가는 때였다.조은서는 이미 저녁 식사를 마쳤다. 요즘 그녀는 컨디션이 조금 돌아왔다.하지만 별장의 경계는 풀리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눈을 맞으며 별장 곳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차가 마당에 멈춰 섰고, 유선우는 빈손으로 차에서 내렸다. 의외의 선물로 조은서한테 서프라이즈를 안겨주고 싶었다.현관을 지나 검은색 코트를 벗어 고용인에게 넘겨주며 습관적으로 거실을 훑었다.“작은 사모님은 식사했어요?”고용인은 코트를 넘겨받으며 정겹게 웃었다.“네. 드셨어요. 오후에는 작은 아가씨를 안고 1층 통창 앞에서 눈 내리는 구경도 시켜줬어요. 작은 아가씨 고 어린 것이 뭘 알긴 아는지, 눈을 보고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눈을 아주 좋아하나 봐요.”유선우의 남성적인 이목구비에 부드러움이 번졌다. 슬리퍼를 갈아신고 2층 안방으로 곧장 향했다.방안에는 노란 등불이 켜져 있었고, 난방이 따뜻하게 실내를 데워 포근하기 그지없었다.연분홍색의 울 원피스를 입은 조은서는 아기침대 옆에 기대 부드러운 눈길로 아이랑 놀고 있었다. 집에만 계속 있은 그녀는 머리를 대충 말아 올렸다. 하얗고 긴 목선은 여실히 드러나 우아함이 묻어났고 얼굴 옆 라인은 여전히 정교했다.유선우는 촉촉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기척을 내지 않았다.꿈에 그리던 장면 아니었는가.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한 집안 분위기를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예전의 상처들은 깡그리 사라지고 사랑하는 부부가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이때 눈을 든 조은서는 그의 부드러운 눈길과 시선이 닿았다.유선우는 걸어와 그녀와 아기침대 앞에 서서 다정한 말투로 얘기했다.“크리스마스 선물을 사 왔는데 깜박하고 차에 두고 내렸어. 가서 가져올래?”그는 아이랑 눈을 마주치며 손으로 아이의 볼을 만졌다. 이안이가 그를 알아보고 기뻐서 새물새물 웃으며 개구리가 헤엄치듯 발을 버둥거렸다.유선우의 표정이 더 부드러워졌다. 그는 딸아이의 조막만 한 얼굴에 뽀뽀하고 또 뽀뽀했다.외투를 걸친 조은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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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유선우는 이안을 아기침대에 눕혀놓고 뒤에서 조은서를 껴안았다. 얇은 입술을 그녀의 귓전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네 선물도 한번 봐봐.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유선우와의 신체접촉이 싫은 듯 조은서는 그가 껴안은 손을 풀어헤치며 박스를 열었다.박스 안에는 연분홍색의 머플러가 들어있었다.유선우는 머플러를 꺼내 둘러주며 나직하게 말했다.“너랑 잘 어울려.”그녀의 컨디션이 괜찮아 보여, 유선우는 저도 모르게 그녀와 살갗을 맞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난번부터 그는 꽤 오래 그녀의 살결을 만져보지 못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하니, 분위기에 이끌려 그녀가 받아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백허그를 하며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귀 안에 불어넣었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목소리까지 한껏 잠겼다.“은서야... 우리, 그거 할까?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하면 멈출게.”말하자마자 그녀를 들어 소파에 앉혔다.소파 등받이에 한 손을 짚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얼굴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강한 키스가 아닌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가며 낮게 읊조렸다. 네가 기분 좋은 방식으로, 뭐든 다 너한테 맞춰서 하겠다고.길고 검게 윤기 나는 머릿결이 순백의 등에 떨어지며 부채처럼 펼쳐졌다.눈초리를 내리깔아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없이 다정한 모습의 이 사람. 그는 알기나 할까, 몸에서 딴 여자의 향수 냄새가 나는지는?그건 옅은 오렌지 향, 풋풋한 소녀의 향기였다.고개를 돌리며 조은서는 밋밋한 반응으로 그를 거부했다.창문으로 아래층에 있는 검은색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을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선우 씨, 난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대체 난 언제 나갈 수 있어요?”그 말에 유선우는 멈칫했다. 그녀를 올려다보며 일말의 욕구도 없는 냉담하기만 한 그녀의 눈동자를 눈에 담았다.여자의 호응을 받지 못하는 수컷의 욕구는 점점 사그라들었다.아무리 몸에서 불덩어리가 타올라도 이런 반응은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었다.그녀의 어깻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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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그들은 또 여느 때와 같이 불쾌하게 대화를 끝냈다.그 후, 그들의 관계는 점점 살얼음판과도 같았다. 오로지 유선우만의 집념만으로 이 불안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듯싶었다.하지만 그는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그가 몰랐던 건, 백서윤의 출현으로 조은서의 산후 우울증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우울증 치료를 위해 약을 먹기 시작했고, 부득이 모유 수유를 중단해야만 했다. 생후 몇 달 안 되는 어린 이안의 수유는 전부 분유로 바뀌었다.이 또한 유선우는 모르고 있었다.잘 보상하겠다고 했던 남자의 약속은 금이 간 부부관계 앞에서 그토록 취약하고 보잘것없었다.마음속에 품고 있는 건 여전히 조은서일지는 몰라도, 차가운 그녀의 얼굴보다 그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을 더 마주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남자는 밖을 나돌며 집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연말에 가까워지며 조은서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렸고 매일 밤 수면제로 간신히 잠을 청할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 알씩 먹다가 나중에는 세 알씩 먹어야 잠이 들까 말까 했고 가끔은 약을 먹고 나서도 밤중에 애가 우는 기척만 나면 쉽게 놀라 깨곤 했다. 그렇게 깨어나면 아이를 안고 방안에서 밤새 왔다 갔다 하며 애를 달래는 자장가를 불러주었다.이러한 상황 역시 유선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한 지붕 아래에서 살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얘기처럼, 익숙하고도 낯선 사람, 그게 바로 그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날 선 가시가 되어 상대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약속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외면으로 일관했다.그렇게 찬 기운이 계속 유지되는 사이, 유선우는 여전히 남성 매력을 발산하며 뭇 여인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지만 조은서는 시들기 시작한 장미꽃처럼 하루하루 말라가고 있었다....왕년 YS그룹 송년회에서 조은서는 그룹 안주인으로서 자리를 비운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달랐다.그들 부부가 금실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아마 B시 전체가 알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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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백서윤은 그와의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었다.하지만 유선우는 그녀의 어깨 옆을 스치며 쓱 가버렸다.망연했다. 분명 자신이 방금 나타났을 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자신한테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저번에도 차에 타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도 그의 표정과 눈빛은 그녀한테 관심 간다는 것밖에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그런데 왜 그녀의 마음을 알고도 외면하는 거지?실망에 빠져 있는 백서윤을 함은숙은 예리한 눈으로 아래위 훑었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는 진 비서한테 물었다.“쟤가 바로 그 인턴?”진유라는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네. 주제 파악을 영 못하는 어린애예요. 별 같지도 않은 핑곗거리로 대표님 주변을 맴돌고 있는데, 대표님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요.”함은숙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씨익 웃었다.“꿩 대신 닭이 기승을 부리네. 그래봤자 지는 닭일 텐데 말이야.”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백서윤은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저도 유부남한테 치근덕대고는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을.유선우를 좋아하는 마음을!......이틀 후, 진유라는 서류를 전달하러 별장으로 왔다.서재에서 유선우는 한창 화상회의 중이었고, 진유라는 서류를 위층 거실에 갖다 놓고 온 김에 조은서와 이안을 보고 갈 생각이었다.그런데 마침 거실에 조은서가 앉아있었다.진유라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일부러 그중에 있는 연간지를 제일 위에 올려놓았다. 무언의 귀띔이었다.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조은서는 그 연간지를 펼쳤다. 남편과 젊은 여자애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으로 일면이 채워져 있었다. 여자애가 입은 드레스도 예전에 그녀가 입었던 드레스라 눈에 익었다. 백서윤이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을 텐데. 신경을 이만저만하게 쓴 게 아니란 티가 팍팍 났다.그런데 그것보다도 재미있는 건 유선우의 눈빛이었다. 그냥 눈길이 아니라 남자 대 여자로 보는 눈빛. 여자인 그녀가 장님이 아닌 이상 못 느낄 수가 없었다. 둘은 매우 친밀한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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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화상회의를 마치니 이미 저녁 8시였다.유선우는 침실로 바로 가지 않고 서재의 통창 앞에 서서 담배를 두어 대 피웠다.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서재를 뽀얗게 뒤덮었다.통창 유리에는 김이 서려있었다. 손으로 닦아내고 보니 바깥 땅바닥에는 이미 눈이 10센티 정도 쌓여있었다.이번 겨울은 눈이 유난히 많이 내리는 것 같았다.기다란 손가락사이에 담배를 끼고 유선우는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바깥을 내다보는 새카만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손에 쥔 담배가 거의 다 타들어 갈 때쯤 그는 꽁초를 비벼 불씨를 꺼버리고 서재를 나왔다.안방 바깥에 딸린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 연간지를 발견했다.아주 보란 듯이 놓여있었다.연간지를 집어 들어 대충 몇 페이지를 펼치니 그와 백서연의 모습이 찍힌 사진이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사진상 분위기는 좀 야릇하였다.그는 조은서가 이 연간지를 봤을 거라 확신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연간지를 덮어버리고 그는 안방에 들어갔다.밖에서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조은서는 아기를 안고 창밖에 앉아 상냥하게 아이를 달래며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한참을 지켜보다가 유선우는 셔츠 단추를 두세 개 풀어헤치며 덤덤하게 물었다.“왜 모유 수유는 안 해?”젖을 끊은지 반달 남짓 되었지만 유선우는 모르고 있었다.“수면제를 먹고 있어서 모유를 끊었어요.”조은서는 무심한 듯 얘기했다.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항상 뭔가 조짐을 보이거나 주변 사람에게 신호를 내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하지만 냉전 중인 남자는 그걸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쳤다.아이 곁으로 와 머리를 쓰다듬고는 말했다.“분유도 나쁘지 않아.”순간 조은서는 입매가 살짝 굳어지며 눈을 끔벅였다.그 후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고, 유선우는 이 무미건조함을 견디기 싫어 욕실로 들어갔다.샤워하면서도 가끔 조은서의 그 서늘하고 쌀쌀한 얼굴이 떠올랐다. 슬슬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결혼생활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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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유선우는 방을 나갔다.방문을 열자 찬 바람이 조금 불어 들어왔는데 아기 침대에서 자고 있던 이안이가 그걸 느꼈는지 낮은 소리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조은서는 얼른 일어나 아이를 안고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잠시 후, 유선우가 돌아왔다.조은서를 한 번 힐끔 하고는 옷을 갈아입으러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그의 말소리가 드레스룸에서부터 들려왔다.“나갔다 올게. 이안이랑 먼저 자.”조은서는 아이를 안고 드레스룸으로 가서 입구에 섰다.몸에 입고 있던 가운을 벗어 던지고 그는 셔츠와 편하고 맵시 있는 난방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눈바람이 불어치는 심야에 젊은 여자애를 만나러, 그가 스타일에 꽤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곁눈질로 조은서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물었다.“안 자고 뭐 해?”품에 안긴 이안을 내려다보며 조은서는 대답했다.“애가 좀 보채서요... 선우 씨, 그 여자애가 그렇게 신경 쓰이면 그냥 그 여자랑 결혼하지 그래요.”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늘에는 백아현, 내일에는 정아현, 이아현이 또 나타나겠지... 항상 이런 식이었고 그녀는 지쳤다. 이 집구석에서 하루빨리 해방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에서 유선우는 옷매무시를 정리했다.그가 반듯하게 차려입기까지 하니,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녀의 모습이 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한참 후에 그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럼 너도 나한테 애원해 보지 그래, 나가지 말라고.”그녀는 그럴 리 만무했고, 몸을 돌려 애를 안고 침실로 갔다. 부드러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계속하여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이안을 보는 그녀의 표정은 더없이 다정하고 상냥했다.유선우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다.아이를 대하는 다정함의 십분의 일이라도 그한테 할애했더라면 이 지경에 이르지도 않았을 것인데.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쯤 둘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한 쌍의 부부였을 것이다.끝내, 유선우는 집을 나섰다. 칠흑 같은 밤에 다른 여자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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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새벽 시간. 유선우의 차는 한 오피스텔 앞에 멈췄다.온밤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얀 세상이었다.정문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여자애는 유선우를 보자 달려와 와락 끌어안고 품속을 파고들었다.“대표님, 저 너무 무서워요. 미정이가 수면제를 네 알이나 먹었대요. 목숨이 위태로운 줄 알았어요.”백서윤은 유선우의 품에 고개를 파묻고 작게 읊조렸다.유선우는 한 손으로 차 문을 닫으며 품 안에 안긴 여자애를 고개 숙여 바라보았다. 예상치 않은 스킨십. 그녀가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넘기 시작한 것이다. 꾸짖음 따위는 없이 유선우는 그저 가볍게 그녀를 밀어냈다.“사람은 지금 괜찮아?”백서윤은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큰 눈망울로 유선우를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미정이 가족들이 와서 한창 돌보는 중이에요. 지금은 아마 숙소에 들어가기 좀 그럴 것 같은데...”다 말하고 나서 백서윤은 부끄럽고도 불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녀가 우물쭈물하는 그때, 유선우는 이미 조수석의 차 문을 열고는 담담하게 얘기했다.“일단 타.”백서윤은 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심야에 그녀 때문에 와주었으면서, 품에 안긴 그녀를 또 밀어내었다.또 이제는 차에 타라고 한다. 그것도 조수석에.남자의 조수석은 아내나 여자친구만 탈 수 있는 자리라고 들었는데, 그 자리에 앉으라는 건 그녀의 위치를 인정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될는지?마음속에서는 기쁨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조수석에 올라탔다.유선우는 차 문을 닫아주고 차 머리를 빙 돌아 운전석에 올라탔다. 히터를 켜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였다.차 안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그 둘을 휘감고 있었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매우 매력적이었다.백서윤은 넋이 나갈 뻔하였고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며 얼굴이 붉어졌다.그러나 한참 동안 기다려도 그는 담배만 피울 뿐 말이 없었다. 그녀한테 눈길도 주지 않았다.조금은 들뜨고 기뻤던 마음이 실망으로 가라앉았다.차 밖에는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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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유선우는 바로 밀어내지 않았다,아내를 얼핏 닮은 이 얼굴을 보며 그는 어린 시절의 조은서가 기습적으로 자기를 끌어안던 그때를 떠올렸다.[선우 오빠, 나 오빠 좋아하는데, 내 남자친구 해주면 안 돼요? 나 잘하는 거 엄청 많아요.]조은서가 그를 끌어안으며 했던 말이다.그러고 나서 그녀는 한참이나 머리를 쥐어짜며 자신의 장점이 뭔지를 생각했지만 결국 한 개도 대지 못했다.옛 추억에 빠졌다가 유선우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품속에 있는 여자애를 밀어냈다.“난 유부남이야.”거절을 당한 백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속삭였다.“전 큰 욕심이 없어요. 대표님의 가정을 파괴할 생각도 없어요. 언니처럼 바라는 게 많지도 않아요. 전 그냥 조금이면 만족해요.”오늘 밤처럼 가끔 만나주기만 하면 그녀는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마음을 유선우는 물론 빤히 다 알고 있었다.오늘 이 걸음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왔다.허나 방금 백서윤이 한 말에 그는 재미를 잃었다. 더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는 차에 올라탔다.차 문이 닫히기 전에 백서윤은 문을 붙잡고 잘게 떨리는 입술로 힘들게 말을 뱉었다.“대표님, 대표님이 말씀한 그 레코드판은 제가 가능한 한 빨리 찾아서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유선우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가는 길에 그는 스타벅스 커피 한잔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귀여운 스티커까지 붙여져 있었다. 만져보니 아직 따뜻하였다. 백서윤이 그에게 사 준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하지만 그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옅은 미소가 잠시 번졌다가 금세 사라졌다....별장에 돌아오니 이미 아침 여섯 시.눈은 멎었고 땅에는 두터운 눈이 쌓였다.아침 일찍 일어난 고용인이 마당의 눈을 쓸어 길을 트고 있었다.돌아온 유선우를 보더니 반갑게 뛰어왔다.“대표님, 오셨어요?”외투를 벗으며 유선우는 물었다.“작은 사모님은 일어났어요? 이안이는 저녁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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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YS병원 병실.다행히 응급 처치를 거쳐 위험한 고비를 넘긴 조은서는 지금 눈을 감은 채로 병상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몸이 허약해 며칠 더 입원하여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유선우는 통창 앞에 서서 바깥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뒤에서 의사가 말했다.“사모님은 한꺼번에 스무 알이 넘는 수면제를 복용하셨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산후우울증으로 인한 자살행위로 보입니다. 사모님께 체계적인 정신 치료를 권장합니다. 그리고 발병의 근원을 멀리하면 우울증이 더 빨리 나을 수도 있어요.”한참 후, 유선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알았어요.”의사는 병실을 나갔다. 유선우는 돌아서서 병상에 누워 있는 조은서를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조금 전 두려움에 떨렸던 가슴이 아직까지 진정되질 않았다.그녀는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만약 그가 30분만 더 늦게 집에 도착했더라면 그는 아내와 사별했을 것이고, 어린 이안은 엄마를 영영 잃었을 것이다.문득, 유선우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들고 있었다.오후 2시가 되자 조은서는 천천히 눈을 떴다.따스한 햇볕이 유리를 뚫고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온기가 느껴졌다. 인간 세상에만 있는 온기였다.유선우는 병상 옆 소파에 줄곧 앉아있었다.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 두 손바닥은 세워서 맞댄 자세로.새카만 눈동자에는 오로지 조은서만 담고 있었다.“깼어? 너 수면제 스무 알 넘게 먹었어.”조은서는 기억하고 있다. 그때 당시의 무력함과 몸부림, 그리고 끝내 수면제 스무 알을 목구멍 안으로 꾹꾹 밀어 넣을 때 목이 메었던 느낌까지, 전부 기억에 남아있었다.그녀는 나직하게 말했다.“선우 씨, 우리 얘기 좀 할까요?”고요히 바라보기만 하며 유선우는 말이 없었다.조은서는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말투는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우리 이혼해요. 그날 일, 난 마음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어요. 아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이런 관계 정말 지겹지 않아요? 처음부터 우리 둘의 혼인은 잘못된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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