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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그게 아니다.계획대로라면 이영화는 3개월 전 이미 기증자의 심장을 이식받고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3개월 전 기증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게 아니라 시골 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 우려마시며 꿀이냐 설탕이냐를 여유롭게 논하고 있었겠지? 현 상황에 어쩔수 없이 후회가 몰려오는 유월영이다.숨을 크게 들이쉰다. 하지만 호흡기를 뚫고 들어오는건 비릿한 피냄새뿐.몸을 돌린 유월영은 곧장 내려가 연재준을 찾아나선다.......병원 주차장.내렸던 곳으로 가보니 연재준의 차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고 하정은이 우산을 들고 서있는게 보인다. 분명 그들은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무리 아득바득 애를 써도 당최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수 없는 듯한 느낌. 상위 10%의 의료진이 어쩌고 할 때부터 이미 자신의 그의 손바닥 안이라고 확신했었으니 말이다.교도관에게 잡혀간 아빠와 ICU에서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모습이 밀물처럼 몰려와 머릿속을 잠식시킨다. 유월영은 곧바로 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하정은이 다급히 문을 여니 느긋하게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는 연재준이 보인다.달려오는 유월영을 본 연재준은 지난 3년동안 늘 사랑스럽고 진심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봐줬던 그녀를 회상한다. 애석하게도 퇴사한 뒤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하지만 별 일 아니다, 앞으로 기회야 많으니까.입꼬리를 살짝 올린 그는 휴대폰 너머에 대고 “알겠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유월영은 차에 타지도 않으면서 우산을 씌워주려는 하정은마저 밀쳐낸다. 온 몸은 이미 흠뻑 젖어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런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것 같다. 하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오늘따라 구멍이라도 뚫린듯 장대비를 쏟아부었고 세찬 빗물은 떡하니 서있는 그녀의 몸에서 연신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연재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물론 입술조차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하다.연재준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할 말 있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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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짧은 침묵이 지나고 이내 유월영이 입을 연다.“---그래요.”연재준이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본다.유월영이 입꼬리를 들썩이더니 조금 쉰 소리로 말한다.“사장님, 그렇게 놀란척 할 필요 없으시잖아요?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던거 아니에요?”그제야 연재준은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다 예상하고 있었지.”유월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윽고 물었다.“의료팀은 언제 건너올수 있는거예요? 엄마 길어봐야 3일밖에 못 버티신다는데.”“약속했으니까 할 수 있어.”연재준은 이마를 지그시 짚은 채 묻는다.“어머니 오늘 수술 한 번 더 받으실수 있나?”“그게 무슨 말이에요?”“감당하실수만 있으면 오늘 바로 수술할수도 있어.”흠칫 놀란 유월영은 뭔가 이상한지 되묻는다.“의료팀은 미국에서 온다면서요?”비에 쫄딱 젖은 모습이 거슬렸는지 연재준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유월영의 손목을 끌어당겨 곁에 앉힌다.“지금 모든건 다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거 안다며. 내가 미리 의료팀 데려온게 그렇게 이상해? 의료진, 기계는 벌써 3일 전에 신주시에 와있었다고. 어머니만 견뎌낼수 있으시면 언제든지 수술할수 있어.”차가운 빗물을 맞은 유월영은 히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수술이 가능한지는 저도 잘 몰라요. 주치의 선생님한테 여쭤봐야 돼요.”연재준은 밖에 있던 하정은을 쳐다본다.“가서 잘 말씀드려.”하정은은 분부를 받고는 차 문을 닫았다.그 모습을 본 루장월이 몸을 틀어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연재준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다.“동해안으로 가.”운전기사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거는데.전엔 잠자리를 가지고 싶을때만 그녀를 동해안으로 데리고 갔었다.유월영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화를 꾹꾹 참는다.“돌아오겠다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그런 짓을 하려는거예요? 엄마 ICU에 누워계시는데 도대체가 양심이라고는 없는거예요?”잠시 주춤한 연재준은 이윽고 웃기다는 듯 말한다.“과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네가 착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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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연재준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다.그러자 이혁재가 차갑게 웃어보이며 말한다.“사무실 입구에 가드 두 명 세워놓고는 못 들어가게 막는거 있지! 남편을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것도 아니고. 재산 협의서에 사인 안 했다고 이렇게까지 할 노릇이야? 환상 속에 갇혀 사는거라고 생각 안 해? 애초에 그 거액의 유산 아니었으면 내가 왜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했겠냐고.”연재준이 이윽고 묻는다.“고작 그 돈이 너희 집에 그렇게 막대한 돈도 아니잖아.”이혁재가 웃으며 말한다.“그건 결코 고작이라고 할수 있는 액수가 아니야.”하긴.부모님이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뒤, 막대한 유산이 전부 이승연에게 쥐어졌으니 그럴만도 했다. 더우기 변호사인 그녀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는건 꿈도 못 꿀 일이었고 유독 남편이란 명목하에야만 나눠가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이혁재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턱 기대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돈이 화를 불러 일으키는 법인데 그걸 모른단 말이지. 보기엔 똑똑해 보이는데 사실......휴, 능력 있는 여자들은 이렇게 고분고분 말을 안 듣더라.”“재준아, 너도 이 말엔 동의하지?”연재준이 눈썹을 씰룩거린다.“누가 동의한대?”“아 그러셔? 너 그 유 비서라는 사람 내가 듣기론 SK그룹 입사제안까지 받았다던데 진짜 가버리는거면 3년이나 길들이지 못한거고 그건 곧 말을 안 듣는다는 거지.”“억지로 이승연이 네거라고 우길 자격도 없어 넌. 그리고 유월영은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문제지, SK그룹인지 뭔지에 갈 일도 없고.”연재준이 술잔을 가볍게 흔들며 말한다.“유 비서라고 불리는건 내 비서니까 그런거겠지? 알아들어?”이미 반쯤 넘게 취한 이혁재는 냅다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잘 못 알아 듣겠는데.”연재준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여보세요?”묵묵부답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누구세요?”그제야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사장님......”연재준의 얼굴이 사악 굳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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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연재준이 고개를 숙인다. 그의 호흡마다엔 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가 진동했다.유월영이 고개를 돌려 피한다.“......술 마셨어요?”미간이 찌푸려진다. 병원 중환자실인데다 밤이라 적막이 흐르는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도 저도 모르게 낮아진다.“여기서 뭐하세요?”“내가 좀 보상이 필요해서 말이야.”“무슨 보......읍!”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재준이 냅다 입을 맞춰버린다.전개도 없고 예고도 없이 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딥하게 입을 맞췄다.취기를 동반한 입맞춤은 강한 소유욕에 불타있었고 입술부터 시작해 치아를 지나 어느새 혀를 감싸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두 손은 몸 뒤에 묶인 채 뒤통수는 벽에 단단히 붙어버리고 만다. 이런 입맞춤은 또 처음이다.갑작스런 입맞춤에 호흡이 가빠지던 그녀는 불편한 듯 신음소리를 냈고 그제야 연재준도 동작을 멈추고 입을 뗐다.“......미쳤어? 여기 병원이야!”연재준은 촉촉하면서도 빨개진 그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스윽 어루만지더니 쉰소리로 말했다.“지금 여긴 밤 열시 반을 지나는 인적 없는 중환자실이지.”넋이 나간 유월영의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뭘 어쩌려고?”“너.”“......”잠시 멍하니 서있던 유월영은 이내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씩씩거렸다.“미친 소리 작작해!”연재준이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제법 술기운이 올라온 그는 평소 딱딱하고 차가운 모습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유해보였다. 그가 목젖을 위아래로 연신 움직이며 말한다.“움직이지 마, 난 그냥 입맞춤이 하고 싶을 뿐이니까.”유월영이 고개를 들어 까아만 그의 눈동자와 아이컨택을 한다.남자들은 별로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상대를 안달나게 만든다더니.그 말이 제격이다.지금 이 순간 연재준의 눈빛은 따뜻하고도 빠져들것 같은것이 마치 그녀가 세상 전부인 사람처럼 보였다.당연히 이런 거품 잔뜩 낀 거짓에 속아 넘어갈 유월영이 아니었지만 말이다.축축하게 습기 찬 호흡은 온 몸에서 풍겨오는 달콤함과 어우러져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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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병원을 빠져나온 연재준은 차에 올라타 말했다.“동해안으로 가.”기사가 분부를 듣고 차에 시동을 건다.백미러로 바라본 연재준의 입가엔 전엔 본 적 없는 미소가 띄어져 있다. 보아하니 유 비서를 만나러 갔던 30분동안 꽤나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기사가 간 크게 입을 연다.“사장님, 유 비서님 곧 다시 복귀하실건가 봐요?”“다른 뜻은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출근길에 업무 보고하던 비서들 가운데 가장 똑똑하신 분인것 같아서요. 비서님 계시면 사장님도 업무 부담 많이 줄어드시잖아요.”평소의 연재준이라면 기사와 한가히 수다 떠는 법이 없었겠지만 오늘은 제법 기분이 좋은지 입을 열었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 비서는 내가 키운건데.”완벽히 그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그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비서였다.그러니 어찌 다른 이들이 성에 차겠는가?저 멀리 동해안 3층 저택이 보인다. 문어구에 누군가 서 있는것 같다.여자다.그녀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 때문인지 결국엔 비에 젖어있었다. 자동차 라이트가 비춰졌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게 보였다. 기사가 주춤하더니 속도를 늦추며 말했다.“사장님.....백 아가씨세요.”연재준이 눈을 천천히 뜬다.백유진도 그들을 보고는 재빨리 빗속으로 달려들었다. 놀란 기사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뒷좌석으로 달려간 그녀는 차창을 두들기며 소리친다.“연 사장님! 사장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가 다 설명드릴게요!”연재준이 차창을 천천히 내린다.장장 몇개월이 지나 드디어 그의 얼굴을 마주본 백유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연 사장님!”연재준은 온 몸이 홀딱 젖은 그녀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묻는다.“나 신주 돌아온건 어떻게 안 거지?”어제 금방 돌아와 오늘 유월영 때문에 회사에도 안 갔는데 소식 한 번 빠르다.그의 말 뜻을 눈치챈 백유진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저, 전 사장님 미행한게 아니에요. 사장님 측근들 매수할 엄두는 더욱 못 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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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그 말에 유월영이 카톡을 켠다.조서희가 보낸건 한 장의 찌라시 전단지였다.이 곳은 상권과 금융권 가십거리들만을 모아 터뜨리는 정보지같은 곳이었다.이번 찌라시는 연재준이 오늘 참석한 이벤트 자리에 데려온 파트너에 관한 것이었다. 연재준이 유난히 그녀를 챙겨주며 돈독한 사이를 뽐내더니 심지어 옷 매무새까지 섬세하게 정리해줬다는 거다.그간 세간에 보여진 연재준이 이미지라고 하면 차갑기 그지없고 무뚝뚝한것이 다였는데 갑자기 바뀐 모습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다들 여자에 대해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다.누구는 연재준의 비서다, 또 누구는 연재준의 여자 친구라고 말했다.이 점에 대해 연재준 본인은 물론 해운 그룹마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허나 유월영과 조서희는 앞구르기를 하면서도 그녀가 누군지를 단번에 알아챌수 있었다.조서희가 씩씩대며 말한다.“저 년은 에르메스 한정판을 입혀놔도 그 시꺼먼 속내가 안 가려지네! 쟤한테 입힐거면 차라리 공장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편이 훨씬 낫겠다!”유월영은 별다른 반응 없이 웹 사이트를 꺼버렸다.결국엔 화해하고 재결합 했나보다.앞서 했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서희 말이 백번 맞았다. 나쁜 놈인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달까.저기 어딘가에 있는 연재준 애를 가진 여자를 두고 또 백유진과 재결합이라니. 거기다 자신더러 돌아오라면서 또 자고싶다나 뭐라나......참 나.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주스를 사 병원으로 돌아간다.오늘도 여전히 비 내리는 하루다. 하지만 어제같은 장대비는 아니었고 우산이 없었던 유월영은 건물 지붕 아래로 걸어가고 있었다.계단 내리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유월영은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다. 이윽고 나무 아래 서있는 연재준의 모습이 보인다.깔끔하게 다림질 된 블랙 슈트를 빼입은 그는 진한 갈색 코트를 입고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우산을 든 채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묵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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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진 아저씨 식당 여기잖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왜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걸까?유월영이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본다.“게장 기가 막히게 하시는 그 진 아저씨요?”“그래.”“......”유월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근데 왜 여기로 가? 아무리 지구가 둥글다 한들 한바퀴 돌면 다시 돌아올수 있는줄 아나 봐?”이건 분명 불평을 털어놓는거다. 연재준이 표정이 어두워진다.진흙바닥을 한참이나 걸었는데 그것마저 틀린 길이라니, 화가 안 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아저씨네 식당은 이 길이 아니잖아. 아까 말했어야지, 내가 데리고 가게.”“여기 아니야?”연재준이 흠칫 놀라는 눈치다.그걸 말이라고.왔던 진흙탕 길을 또다시 돌아가는 그들이다. 유월영은 귀차니즘이 제대로 도졌는지 물웅덩이 하나를 지나치며 “부주의로” 돌멩이를 탁 차버린다.차인 돌멩이는 흙탕물을 여기저기 튕기더니 연재준의 슈트 밑단을 더럽혔다. “......”양말도 젖은 느낌이 들더니 이내 스며든 흙탕물이 그의 발목을 적신다. 연재준의 미간이 배배 꼬이더니 단번에 유월영의 목덜미를 홱 잡아끈다.“일부러 그런거야?”“뭐가?”연재준은 실눈을 뜨더니 정말 영문을 모르는것 같은 유월영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시 손을 놓으며 투덜댄다.“똑바로 걸어.”“자기가 길 잘못 들어서놓고 왜 성질이야......전에 고객 모시고 와 봤잖아?”입맛 까다로운 그를 만족시킬만한 음식점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진 아저씨 식당이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자주 다녀갔을텐데 아직도 길을 모른다니.“평소엔 차로 다녀서 몰랐어.”“차는 길가까지 데려다주고 내려서 걸어가야 되는거잖아. 아저씨네 식당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인데 진흙바닥 걸으면서도 감이 안 잡혔나 보지?”말문이 막혀버린 연재준이다.유월영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길치면 길치지, 뭔 변명이 많아.”“......”드디어 진흙길을 벗어나자 연재준은 또다시 그녀를 우산 안으로 끌어오며 말했다.“난 가치있는 것들만 기억해. 이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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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유월영이 무뚝뚝하게 내뱉는다.“사장님, 저희 엄마 내일 아침에 수술하시는데요.”“그래서 오늘은 밤을 새시겠다?”연재준이 국자로 국을 퍼담는다.“병원에서도 잘 수 있거든요.”유월영이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을 바라보며 조금은 나긋해진 말투로 말한다.“지금은 엄마 걱정 뿐이라서 최대한 곁에 있어드리고 싶어요. 내일 돼야 수술하신다는데 엄마가......내일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무섭거든요. 그래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기 싫고요.”연재준이 눈을 푹 드리우고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기다란 속눈썹에 가려져 기분을 읽어낼수는 없었다.“내일까지 버텨서 수술하시는건 시작일 뿐이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게 첫번째 관문이지.”“알아요, 많이들 수술 뒤 24시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던데 치사율 10%도 대부분 그때를 말하는거래요.”유월영이 속상해하며 말한다.“그 24시간을 견뎌내야만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하고요.”연재준이 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알면 됐어. 지금은 자기를 지키는게 더 중요해.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그러면서 그가 국그릇을 그녀의 앞에 놓는다.“자, 혈기 보충하자.”그녀를 위해 떠줬던거라니.유월영은 잠깐 굳어버린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이렇게 누구를 챙겨줄 사람이 아닌데, 보기 드문 광경이다.그는 어느새 벌써 국그릇을 다시 채워주고 있다. 유월영이 입을 오므리며 말한다.“전 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엄마 곁을 지킬수 밖에.”연재준이 차가운 말투로 말한다.“알아, 오늘 밤 동해안 가기 싫다고 하는 뜻인거.”그가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쳐다본다. 무쌍에 기다랗게 뻗은 눈매는 매스칼마냥 날카롭게 그녀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내가 동해안 가자고 하는건 너더러 잠이라도 푹 자게 하려는거야. 내가 뭘 할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뭘 어떻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가 뭘 하려는게 아닌가.그게 아니면? 고작 밥이나 먹이려고 그녀를 찾아왔다?그런 사람이었나?유월영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꾼다.“맞다, 집도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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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뭘.....손해 본다는 거예요?”연재준의 입꼬리가 들썩인다.“보상을 안 낸다고 쳐, 이자까지 안 주는건 좀 그렇지 않나?”그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멈춰져 있었다.입맞춤을 하려는 거다.......할거면 하지. 뭘 이상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고 있어. 무슨 뜻이지?유월영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잠시 뒤 말한다.“사장님은 원하는게 있으면 늘 직접 가지지 않으셨어요?”“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너가 주동적인걸 보고싶은데.”유월영은 그가 날이 갈수록 자신을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여기 밖이에요.”연재준이 우산을 내리워 두 사람을 가렸다.“이러면 못 보는데?”어차피 꼭 입을 맞춰주길 기다리고 있는거다.옷소매에 손을 넣고 잔뜩 움켜쥐는 유월영이다.한숨을 내뱉고는 결국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가에 뽀뽀를 한다.그리고는 일초도 머무르지 않고 입을 뗀다. 연재준이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아예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고개를 틀어 눈을 마주본다.“초등학생이야? 어른이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그의 혀가 예고도 없이 쑥 들어온다. 애초에 피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로 그녀를 제압해버리는 연재준이다.강압적인 그의 입맞춤에 또다시 유월영은 숨이 가빠온다.이내 참지 못한 그녀가 남자의 셔츠 옷깃을 잡고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는 유월영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휘감았다.길지도 짧지도 않은 입맞춤은 그렇게 몇 분을 지속됐고 사람들에 의해 발각되기 직전에야 연재준은 그녀를 놓아줬다.유월영이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자 연재준이 입을 연다.“올라가 봐.”그리고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데.“내일 어머니 수술 원만하게 끝나길 바래.”유월영은 호흡을 가다듬은 채 알겠다고 말하곤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연재준은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느긋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다급히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줬다.연재준은 우산을 그에게 건네주곤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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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조금 넋이 나간 듯한 유월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끄덕인다.“감사합니다, 실례가 많네요.”“별 말씀을요.”기사는 침대를 놔주고는 자리를 떴다. 정말이지 그 남자가 이런걸 생각해낼줄은 꿈에도 몰랐다.잠시 침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길을 막지 않을만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담요를 덮고는 몸을 뉘었다.이틀 내내 힘을 딱 주고 있어 뻣뻣해진 몸에서 서서히 힘이 풀린다.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다.......한 편, 연재준은 동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집 안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있는걸 싫어했다. 아주머니 역시 그가 회사에 나간 뒤에야 청소를 할 수 있지, 그가 집에 있는 날엔 누구도 발을 들일수 없었다.겉옷과 슈트를 소파에 던지고는 샤워할 준비를 하려는 찰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아버지다.“아버지.”휴대폰 너머 윤미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잘 말씀 드려요. 화 내지 말고.”연재준의 눈가에 증오가 피어오른다. 대꾸도 업싱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는데.“오늘 기사 보니까 어젯밤 연회에 백유진 데리고 갔더라?”“이미 보셨으면서 뭐하러 또 물으세요?”연재준이 무뚝뚝하게 말한다.“어쩔 생각이야?”연 회장은 더는 명령조로 무조건 떼어놓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아들의 생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연재준은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뭘 어쩔 생각이냐고요.”연 회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남자는 말이지. 커리어나 생활에서 조력자가 되거나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돼. 우리 연씨 가문은 오늘 여기까지 올라와서도 너더러 재벌집 딸이랑 결혼하라는 강요는 안 하잖니. 혼인 관계를 발전을 도모해야지. 만약 정말 백유진을 좋아하고 있는거라면......예술특기생이니 해외로 보내서 스펙이라도 쌓게 하는게 좋겠구나.”연재준은 넥타이를 풀어 손에 칭칭 감더니 헛웃음을 친다.“아버지마저 백유진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하시면 더우기 제 일엔 관여하실 필요 없죠.”“난 우리 가문의 청렴결백함이 너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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