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유월영이 카톡을 켠다.조서희가 보낸건 한 장의 찌라시 전단지였다.이 곳은 상권과 금융권 가십거리들만을 모아 터뜨리는 정보지같은 곳이었다.이번 찌라시는 연재준이 오늘 참석한 이벤트 자리에 데려온 파트너에 관한 것이었다. 연재준이 유난히 그녀를 챙겨주며 돈독한 사이를 뽐내더니 심지어 옷 매무새까지 섬세하게 정리해줬다는 거다.그간 세간에 보여진 연재준이 이미지라고 하면 차갑기 그지없고 무뚝뚝한것이 다였는데 갑자기 바뀐 모습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다들 여자에 대해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다.누구는 연재준의 비서다, 또 누구는 연재준의 여자 친구라고 말했다.이 점에 대해 연재준 본인은 물론 해운 그룹마저 별다른 응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허나 유월영과 조서희는 앞구르기를 하면서도 그녀가 누군지를 단번에 알아챌수 있었다.조서희가 씩씩대며 말한다.“저 년은 에르메스 한정판을 입혀놔도 그 시꺼먼 속내가 안 가려지네! 쟤한테 입힐거면 차라리 공장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편이 훨씬 낫겠다!”유월영은 별다른 반응 없이 웹 사이트를 꺼버렸다.결국엔 화해하고 재결합 했나보다.앞서 했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다.서희 말이 백번 맞았다. 나쁜 놈인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달까.저기 어딘가에 있는 연재준 애를 가진 여자를 두고 또 백유진과 재결합이라니. 거기다 자신더러 돌아오라면서 또 자고싶다나 뭐라나......참 나.전화를 끊은 유월영은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주스를 사 병원으로 돌아간다.오늘도 여전히 비 내리는 하루다. 하지만 어제같은 장대비는 아니었고 우산이 없었던 유월영은 건물 지붕 아래로 걸어가고 있었다.계단 내리는데 정신을 집중하고 있던 유월영은 갑자기 누군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다. 이윽고 나무 아래 서있는 연재준의 모습이 보인다.깔끔하게 다림질 된 블랙 슈트를 빼입은 그는 진한 갈색 코트를 입고 한 손은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우산을 든 채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묵직하게
“진 아저씨 식당 여기잖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왜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는걸까?유월영이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본다.“게장 기가 막히게 하시는 그 진 아저씨요?”“그래.”“......”유월영이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근데 왜 여기로 가? 아무리 지구가 둥글다 한들 한바퀴 돌면 다시 돌아올수 있는줄 아나 봐?”이건 분명 불평을 털어놓는거다. 연재준이 표정이 어두워진다.진흙바닥을 한참이나 걸었는데 그것마저 틀린 길이라니, 화가 안 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아저씨네 식당은 이 길이 아니잖아. 아까 말했어야지, 내가 데리고 가게.”“여기 아니야?”연재준이 흠칫 놀라는 눈치다.그걸 말이라고.왔던 진흙탕 길을 또다시 돌아가는 그들이다. 유월영은 귀차니즘이 제대로 도졌는지 물웅덩이 하나를 지나치며 “부주의로” 돌멩이를 탁 차버린다.차인 돌멩이는 흙탕물을 여기저기 튕기더니 연재준의 슈트 밑단을 더럽혔다. “......”양말도 젖은 느낌이 들더니 이내 스며든 흙탕물이 그의 발목을 적신다. 연재준의 미간이 배배 꼬이더니 단번에 유월영의 목덜미를 홱 잡아끈다.“일부러 그런거야?”“뭐가?”연재준은 실눈을 뜨더니 정말 영문을 모르는것 같은 유월영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시 손을 놓으며 투덜댄다.“똑바로 걸어.”“자기가 길 잘못 들어서놓고 왜 성질이야......전에 고객 모시고 와 봤잖아?”입맛 까다로운 그를 만족시킬만한 음식점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고 진 아저씨 식당이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자주 다녀갔을텐데 아직도 길을 모른다니.“평소엔 차로 다녀서 몰랐어.”“차는 길가까지 데려다주고 내려서 걸어가야 되는거잖아. 아저씨네 식당 가는 길은 아스팔트 길인데 진흙바닥 걸으면서도 감이 안 잡혔나 보지?”말문이 막혀버린 연재준이다.유월영이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길치면 길치지, 뭔 변명이 많아.”“......”드디어 진흙길을 벗어나자 연재준은 또다시 그녀를 우산 안으로 끌어오며 말했다.“난 가치있는 것들만 기억해. 이런건
유월영이 무뚝뚝하게 내뱉는다.“사장님, 저희 엄마 내일 아침에 수술하시는데요.”“그래서 오늘은 밤을 새시겠다?”연재준이 국자로 국을 퍼담는다.“병원에서도 잘 수 있거든요.”유월영이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을 바라보며 조금은 나긋해진 말투로 말한다.“지금은 엄마 걱정 뿐이라서 최대한 곁에 있어드리고 싶어요. 내일 돼야 수술하신다는데 엄마가......내일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무섭거든요. 그래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기 싫고요.”연재준이 눈을 푹 드리우고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기다란 속눈썹에 가려져 기분을 읽어낼수는 없었다.“내일까지 버텨서 수술하시는건 시작일 뿐이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게 첫번째 관문이지.”“알아요, 많이들 수술 뒤 24시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던데 치사율 10%도 대부분 그때를 말하는거래요.”유월영이 속상해하며 말한다.“그 24시간을 견뎌내야만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하고요.”연재준이 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알면 됐어. 지금은 자기를 지키는게 더 중요해.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그러면서 그가 국그릇을 그녀의 앞에 놓는다.“자, 혈기 보충하자.”그녀를 위해 떠줬던거라니.유월영은 잠깐 굳어버린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이렇게 누구를 챙겨줄 사람이 아닌데, 보기 드문 광경이다.그는 어느새 벌써 국그릇을 다시 채워주고 있다. 유월영이 입을 오므리며 말한다.“전 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엄마 곁을 지킬수 밖에.”연재준이 차가운 말투로 말한다.“알아, 오늘 밤 동해안 가기 싫다고 하는 뜻인거.”그가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쳐다본다. 무쌍에 기다랗게 뻗은 눈매는 매스칼마냥 날카롭게 그녀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내가 동해안 가자고 하는건 너더러 잠이라도 푹 자게 하려는거야. 내가 뭘 할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뭘 어떻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가 뭘 하려는게 아닌가.그게 아니면? 고작 밥이나 먹이려고 그녀를 찾아왔다?그런 사람이었나?유월영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꾼다.“맞다, 집도의 선생
“뭘.....손해 본다는 거예요?”연재준의 입꼬리가 들썩인다.“보상을 안 낸다고 쳐, 이자까지 안 주는건 좀 그렇지 않나?”그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멈춰져 있었다.입맞춤을 하려는 거다.......할거면 하지. 뭘 이상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고 있어. 무슨 뜻이지?유월영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잠시 뒤 말한다.“사장님은 원하는게 있으면 늘 직접 가지지 않으셨어요?”“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너가 주동적인걸 보고싶은데.”유월영은 그가 날이 갈수록 자신을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여기 밖이에요.”연재준이 우산을 내리워 두 사람을 가렸다.“이러면 못 보는데?”어차피 꼭 입을 맞춰주길 기다리고 있는거다.옷소매에 손을 넣고 잔뜩 움켜쥐는 유월영이다.한숨을 내뱉고는 결국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가에 뽀뽀를 한다.그리고는 일초도 머무르지 않고 입을 뗀다. 연재준이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아예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고개를 틀어 눈을 마주본다.“초등학생이야? 어른이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그의 혀가 예고도 없이 쑥 들어온다. 애초에 피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로 그녀를 제압해버리는 연재준이다.강압적인 그의 입맞춤에 또다시 유월영은 숨이 가빠온다.이내 참지 못한 그녀가 남자의 셔츠 옷깃을 잡고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는 유월영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휘감았다.길지도 짧지도 않은 입맞춤은 그렇게 몇 분을 지속됐고 사람들에 의해 발각되기 직전에야 연재준은 그녀를 놓아줬다.유월영이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자 연재준이 입을 연다.“올라가 봐.”그리고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데.“내일 어머니 수술 원만하게 끝나길 바래.”유월영은 호흡을 가다듬은 채 알겠다고 말하곤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연재준은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느긋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다급히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줬다.연재준은 우산을 그에게 건네주곤 자리 잡는다
조금 넋이 나간 듯한 유월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끄덕인다.“감사합니다, 실례가 많네요.”“별 말씀을요.”기사는 침대를 놔주고는 자리를 떴다. 정말이지 그 남자가 이런걸 생각해낼줄은 꿈에도 몰랐다.잠시 침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길을 막지 않을만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담요를 덮고는 몸을 뉘었다.이틀 내내 힘을 딱 주고 있어 뻣뻣해진 몸에서 서서히 힘이 풀린다.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다.......한 편, 연재준은 동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집 안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있는걸 싫어했다. 아주머니 역시 그가 회사에 나간 뒤에야 청소를 할 수 있지, 그가 집에 있는 날엔 누구도 발을 들일수 없었다.겉옷과 슈트를 소파에 던지고는 샤워할 준비를 하려는 찰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아버지다.“아버지.”휴대폰 너머 윤미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잘 말씀 드려요. 화 내지 말고.”연재준의 눈가에 증오가 피어오른다. 대꾸도 업싱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는데.“오늘 기사 보니까 어젯밤 연회에 백유진 데리고 갔더라?”“이미 보셨으면서 뭐하러 또 물으세요?”연재준이 무뚝뚝하게 말한다.“어쩔 생각이야?”연 회장은 더는 명령조로 무조건 떼어놓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아들의 생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연재준은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뭘 어쩔 생각이냐고요.”연 회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남자는 말이지. 커리어나 생활에서 조력자가 되거나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돼. 우리 연씨 가문은 오늘 여기까지 올라와서도 너더러 재벌집 딸이랑 결혼하라는 강요는 안 하잖니. 혼인 관계를 발전을 도모해야지. 만약 정말 백유진을 좋아하고 있는거라면......예술특기생이니 해외로 보내서 스펙이라도 쌓게 하는게 좋겠구나.”연재준은 넥타이를 풀어 손에 칭칭 감더니 헛웃음을 친다.“아버지마저 백유진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하시면 더우기 제 일엔 관여하실 필요 없죠.”“난 우리 가문의 청렴결백함이 너에 관
엄마의 수술 전날 밤을 당연히 뜬 눈으로 지샐줄 알았던 유월영은 어찌나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지 눈 떠보니 벌써 아침 7시임을 깨달았다.이영화의 수술은 한 시간 뒤다. 유월영은 침대를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뒤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큰 언니와 형부는 벌써 와 계신다.8시 정각이 되자 의료진들이 엄마를 수술실로 데려갔고 이윽고 ‘수술중’이라는 빨간색 표시등이 켜졌다.유월영의 걱정도 동시에 시작된다.수술 잘못되면 어쩌지, 돌발상황 생기면 어쩌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것 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속으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현재 상황엔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라는걸 말이다.큰 언니도 긴장됐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형부가 큰 언니를 토닥여주며 말한다.“걱정 마, 잘 되실 거야. 다들 해외에서 온 의료진들인데 100% 아무 일 없어. 맞지, 월영아?”유월영도 그럴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연재준이 거액으로 맞바꿔온 의료팀은 꼭 할 수 있을거라 말이다. 허나 그 고작 10%밖에 안 되는 감염률이 문제였다.어쩌다 운 나쁘게 그 10%에 걸려드는게 무서웠던 거다.연재준에게서 문자가 왔다.“수술 시작했어?”유월영은 네라고 보냈다가 다시 한 마디를 거들었다.“저 너무 긴장돼서 그래요. 끝나면 문자 할게요.”엄마가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나기 전까진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까.연재준은 더이상 답장이 없다. 유월영도 신경쓰지 않고 휴대폰을 잠궈버린다.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봤을땐 네다섯시간이면 된다고 하셨는데 여섯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수술실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큰 언니가 투덜대며 말한다.“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다른 환자들 있나 보지. 나 맹장 수술할때도 환자들 몇명이서 수술방 대기하고 있었는데.”형부가 큰 언니를 안심시킨다.“근데 저 의료팀은 엄마 수술만 맡은거 아닌가?”“마취 빠지길 기다리고 있을수도......”모르겠다, 그들은 수술실 안쪽 상황을 알리가 만무하니 말이다.유월영도 덩달아 가
큰 언니와 형부도 자리에 있었다.하지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그들은 의사가 유월영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더우기 월영이가 달려가 저 안긴 저 사람은 누군지 알리가 없었다.연재준이 하정은을 힐끗 쳐다보자 단번에 눈치챈 하정은은 언니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얼른 그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유월영이 이마는 마침 연재준의 쇄골이 있는 위치에 닿아있다.무사히 수술을 마친 엄마 생각에 눈물 흘리며 드디어 안심한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감격스럽고 기분이 좋았었다.감격에 냅다 그의 품에 안긴것 또한 진심으로 우러나온 순간의 행동임을 그녀 자신은 잘 알고 있고 있었다.마음을 진정시키고 연재준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는 유월영이다.허나 이번엔 연재준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 채 허리를 감싸 안았다. 깜짝 놀라 유월영이 소리 친다.“사장님?”연재준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생각을 되뇌어본다.“네가 처음으로 먼저 나 안아준 거지?”유월영은 그의 옷깃을 꽉 움켜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조이 선생님 아직 저기 계세요.”“앞으론 이렇게 나한테 의지하고 기대는거야.”연재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중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가슴팍에 바짝 붙어있던 유월영이 귀도 따라서 윙윙 울린다.“말 좀 들어. 무슨 일이든 내가 다 도와서 해결해 줄수 있으니까.”유월영이 입술을 꽉 깨문다.그가 다시금 자신을 소유물로 지정했기에 당연하다는 듯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다는걸 유월영은 알고 있었다.그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할순 있으나 그 전제는 고분고분 말을 듣는거다.유월영이 살짝 몸부림치자 연재준도 그제야 그녀의 허리를 놔주고는 손을 잡은채 조이에게로 다가갔다.“보호자가 유념해야 할 점이 더 있을까요?”조이가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음, 지금은 환자 자신의 몸 상태가 중요하지 보호자가 할 수 있는건 극히 드물어요. 편히 쉬세요, 아가씨 너무 피곤해 보여요.”연재준이 그녀를 내려다 본다.유월영의 눈 밑 다스써클은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연재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돌발상황 생긴다 해도 의료진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이 못하면 너라고 할 수 있을것 같아?”그렇게 유월영은 별다른 반박도 못한채 동해안으로 끌려갔다.한 편, 동해안으로 운전해 가던 백유진도 멀지 않은 곳에서 연재준의 차를 보게 된다. 순간 얼굴이 활짝 핀 백유진이 그를 만나기 위해 속도를 올리는데.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차에서 내려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는 유월영을 보게 된다.잠시 넋이 나가있던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아니 이건---!...... 안방에 들어온 연재준은 옷장을 열어 슥 훑더니 유월영이 전에 입던 잠옷을 무심하게 건네주며 말했다.“깨끗이 씻어.”그리고는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가버린다.옷장을 마주하고 있던 유월영은 손에 들린 잠옷을 꽉 움켜쥔다. 방금 겨우 걱정을 내려놨더니 이젠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해온다.수술이 끝났으니 그가 말하는 소위 보상이라고 하는걸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어진거다.닫기지 않은 안방 창문 밖으로 짙게 깔린 먹장구름으로 뒤덮은 도시의 밤하늘이 보인다. 습하고 쌀쌀한 밤바람이 그녀의 옷 틈 사이를 파고든다.또 비가 오려나 보다.별안간 뭔가 떠오른 듯한 유월영은 갑자기 옷장 밑을 뒤지기 시작한다.아주 오래 전, 연재준과 하룻밤을 보냈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이튿날 먼저 눈을 뜬 연재준은 무심코 하늘색 침대 커버의 붉은색 자국을 보고는 넋을 일고 말았다. 너무 거칠었던 탓에 그녀를 다치게 한건 아닌지 재빨리 다리를 들어봤다.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그제야 생리 주기에 들어섰다는걸 깨달았다.그때 동해안 저택엔 생리대가 없었기에 어쩔수 없이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었는데......아마 지금도 남아있을거다.한참을 뒤져보니 과연 남아있다.눈이 반짝 빛난 유월영은 생리대 하나와 긴팔 긴바지 잠옷을 가지고 나서야 욕실로 들어갔다.영안에서 부랴부랴 돌아오자 마자 부모님 일을 해결하다 보니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한건 맞았다.연재준과 단 둘이 있는걸 피하기 위해 유월영은 아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