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이 무뚝뚝하게 내뱉는다.“사장님, 저희 엄마 내일 아침에 수술하시는데요.”“그래서 오늘은 밤을 새시겠다?”연재준이 국자로 국을 퍼담는다.“병원에서도 잘 수 있거든요.”유월영이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을 바라보며 조금은 나긋해진 말투로 말한다.“지금은 엄마 걱정 뿐이라서 최대한 곁에 있어드리고 싶어요. 내일 돼야 수술하신다는데 엄마가......내일까지 버티지 못할까 봐 무섭거든요. 그래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기 싫고요.”연재준이 눈을 푹 드리우고 있는 그녀를 바라본다. 기다란 속눈썹에 가려져 기분을 읽어낼수는 없었다.“내일까지 버텨서 수술하시는건 시작일 뿐이고 수술이 무사히 끝나는게 첫번째 관문이지.”“알아요, 많이들 수술 뒤 24시간에 문제가 생긴다고 하던데 치사율 10%도 대부분 그때를 말하는거래요.”유월영이 속상해하며 말한다.“그 24시간을 견뎌내야만 안정기에 접어든다고 하고요.”연재준이 눈썹을 살짝 들어올린다.“알면 됐어. 지금은 자기를 지키는게 더 중요해. 앞으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그러면서 그가 국그릇을 그녀의 앞에 놓는다.“자, 혈기 보충하자.”그녀를 위해 떠줬던거라니.유월영은 잠깐 굳어버린 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이렇게 누구를 챙겨줄 사람이 아닌데, 보기 드문 광경이다.그는 어느새 벌써 국그릇을 다시 채워주고 있다. 유월영이 입을 오므리며 말한다.“전 뭘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엄마 곁을 지킬수 밖에.”연재준이 차가운 말투로 말한다.“알아, 오늘 밤 동해안 가기 싫다고 하는 뜻인거.”그가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쳐다본다. 무쌍에 기다랗게 뻗은 눈매는 매스칼마냥 날카롭게 그녀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내가 동해안 가자고 하는건 너더러 잠이라도 푹 자게 하려는거야. 내가 뭘 할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뭘 어떻게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가 뭘 하려는게 아닌가.그게 아니면? 고작 밥이나 먹이려고 그녀를 찾아왔다?그런 사람이었나?유월영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꾼다.“맞다, 집도의 선생
“뭘.....손해 본다는 거예요?”연재준의 입꼬리가 들썩인다.“보상을 안 낸다고 쳐, 이자까지 안 주는건 좀 그렇지 않나?”그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멈춰져 있었다.입맞춤을 하려는 거다.......할거면 하지. 뭘 이상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고 있어. 무슨 뜻이지?유월영이 호흡을 가다듬고는 잠시 뒤 말한다.“사장님은 원하는게 있으면 늘 직접 가지지 않으셨어요?”“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너가 주동적인걸 보고싶은데.”유월영은 그가 날이 갈수록 자신을 더욱 난처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여기 밖이에요.”연재준이 우산을 내리워 두 사람을 가렸다.“이러면 못 보는데?”어차피 꼭 입을 맞춰주길 기다리고 있는거다.옷소매에 손을 넣고 잔뜩 움켜쥐는 유월영이다.한숨을 내뱉고는 결국 까치발을 들어 그의 입가에 뽀뽀를 한다.그리고는 일초도 머무르지 않고 입을 뗀다. 연재준이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아예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고개를 틀어 눈을 마주본다.“초등학생이야? 어른이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그의 혀가 예고도 없이 쑥 들어온다. 애초에 피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거친 숨소리로 그녀를 제압해버리는 연재준이다.강압적인 그의 입맞춤에 또다시 유월영은 숨이 가빠온다.이내 참지 못한 그녀가 남자의 셔츠 옷깃을 잡고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는 유월영의 허리를 더욱 단단히 휘감았다.길지도 짧지도 않은 입맞춤은 그렇게 몇 분을 지속됐고 사람들에 의해 발각되기 직전에야 연재준은 그녀를 놓아줬다.유월영이 고개를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자 연재준이 입을 연다.“올라가 봐.”그리고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데.“내일 어머니 수술 원만하게 끝나길 바래.”유월영은 호흡을 가다듬은 채 알겠다고 말하곤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연재준은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느긋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다급히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줬다.연재준은 우산을 그에게 건네주곤 자리 잡는다
조금 넋이 나간 듯한 유월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고개를 끄덕인다.“감사합니다, 실례가 많네요.”“별 말씀을요.”기사는 침대를 놔주고는 자리를 떴다. 정말이지 그 남자가 이런걸 생각해낼줄은 꿈에도 몰랐다.잠시 침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길을 막지 않을만한 구석진 자리를 찾아 담요를 덮고는 몸을 뉘었다.이틀 내내 힘을 딱 주고 있어 뻣뻣해진 몸에서 서서히 힘이 풀린다.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오랜만에 단잠에 빠져들었다.......한 편, 연재준은 동해안으로 돌아왔다.그는 집 안에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있는걸 싫어했다. 아주머니 역시 그가 회사에 나간 뒤에야 청소를 할 수 있지, 그가 집에 있는 날엔 누구도 발을 들일수 없었다.겉옷과 슈트를 소파에 던지고는 샤워할 준비를 하려는 찰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린다.아버지다.“아버지.”휴대폰 너머 윤미숙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잘 말씀 드려요. 화 내지 말고.”연재준의 눈가에 증오가 피어오른다. 대꾸도 업싱 셔츠 단추를 풀어헤치는데.“오늘 기사 보니까 어젯밤 연회에 백유진 데리고 갔더라?”“이미 보셨으면서 뭐하러 또 물으세요?”연재준이 무뚝뚝하게 말한다.“어쩔 생각이야?”연 회장은 더는 명령조로 무조건 떼어놓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아들의 생각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연재준은 여전히 무심한 태도로 일관한다.“뭘 어쩔 생각이냐고요.”연 회장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남자는 말이지. 커리어나 생활에서 조력자가 되거나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돼. 우리 연씨 가문은 오늘 여기까지 올라와서도 너더러 재벌집 딸이랑 결혼하라는 강요는 안 하잖니. 혼인 관계를 발전을 도모해야지. 만약 정말 백유진을 좋아하고 있는거라면......예술특기생이니 해외로 보내서 스펙이라도 쌓게 하는게 좋겠구나.”연재준은 넥타이를 풀어 손에 칭칭 감더니 헛웃음을 친다.“아버지마저 백유진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하시면 더우기 제 일엔 관여하실 필요 없죠.”“난 우리 가문의 청렴결백함이 너에 관
엄마의 수술 전날 밤을 당연히 뜬 눈으로 지샐줄 알았던 유월영은 어찌나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지 눈 떠보니 벌써 아침 7시임을 깨달았다.이영화의 수술은 한 시간 뒤다. 유월영은 침대를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 뒤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갔다.큰 언니와 형부는 벌써 와 계신다.8시 정각이 되자 의료진들이 엄마를 수술실로 데려갔고 이윽고 ‘수술중’이라는 빨간색 표시등이 켜졌다.유월영의 걱정도 동시에 시작된다.수술 잘못되면 어쩌지, 돌발상황 생기면 어쩌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한것 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속으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의 현재 상황엔 수술이 유일한 방법이라는걸 말이다.큰 언니도 긴장됐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형부가 큰 언니를 토닥여주며 말한다.“걱정 마, 잘 되실 거야. 다들 해외에서 온 의료진들인데 100% 아무 일 없어. 맞지, 월영아?”유월영도 그럴거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연재준이 거액으로 맞바꿔온 의료팀은 꼭 할 수 있을거라 말이다. 허나 그 고작 10%밖에 안 되는 감염률이 문제였다.어쩌다 운 나쁘게 그 10%에 걸려드는게 무서웠던 거다.연재준에게서 문자가 왔다.“수술 시작했어?”유월영은 네라고 보냈다가 다시 한 마디를 거들었다.“저 너무 긴장돼서 그래요. 끝나면 문자 할게요.”엄마가 완전히 위험에서 벗어나기 전까진 그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되니까.연재준은 더이상 답장이 없다. 유월영도 신경쓰지 않고 휴대폰을 잠궈버린다.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봤을땐 네다섯시간이면 된다고 하셨는데 여섯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수술실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큰 언니가 투덜대며 말한다.“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다른 환자들 있나 보지. 나 맹장 수술할때도 환자들 몇명이서 수술방 대기하고 있었는데.”형부가 큰 언니를 안심시킨다.“근데 저 의료팀은 엄마 수술만 맡은거 아닌가?”“마취 빠지길 기다리고 있을수도......”모르겠다, 그들은 수술실 안쪽 상황을 알리가 만무하니 말이다.유월영도 덩달아 가
큰 언니와 형부도 자리에 있었다.하지만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그들은 의사가 유월영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더우기 월영이가 달려가 저 안긴 저 사람은 누군지 알리가 없었다.연재준이 하정은을 힐끗 쳐다보자 단번에 눈치챈 하정은은 언니 부부에게 상황을 설명했다.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얼른 그들을 내보내는 것이었다.유월영이 이마는 마침 연재준의 쇄골이 있는 위치에 닿아있다.무사히 수술을 마친 엄마 생각에 눈물 흘리며 드디어 안심한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감격스럽고 기분이 좋았었다.감격에 냅다 그의 품에 안긴것 또한 진심으로 우러나온 순간의 행동임을 그녀 자신은 잘 알고 있고 있었다.마음을 진정시키고 연재준의 품에서 떨어지려 하는 유월영이다.허나 이번엔 연재준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은 채 허리를 감싸 안았다. 깜짝 놀라 유월영이 소리 친다.“사장님?”연재준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더니 생각을 되뇌어본다.“네가 처음으로 먼저 나 안아준 거지?”유월영은 그의 옷깃을 꽉 움켜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조이 선생님 아직 저기 계세요.”“앞으론 이렇게 나한테 의지하고 기대는거야.”연재준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중저음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가슴팍에 바짝 붙어있던 유월영이 귀도 따라서 윙윙 울린다.“말 좀 들어. 무슨 일이든 내가 다 도와서 해결해 줄수 있으니까.”유월영이 입술을 꽉 깨문다.그가 다시금 자신을 소유물로 지정했기에 당연하다는 듯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있다는걸 유월영은 알고 있었다.그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할순 있으나 그 전제는 고분고분 말을 듣는거다.유월영이 살짝 몸부림치자 연재준도 그제야 그녀의 허리를 놔주고는 손을 잡은채 조이에게로 다가갔다.“보호자가 유념해야 할 점이 더 있을까요?”조이가 두 손을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음, 지금은 환자 자신의 몸 상태가 중요하지 보호자가 할 수 있는건 극히 드물어요. 편히 쉬세요, 아가씨 너무 피곤해 보여요.”연재준이 그녀를 내려다 본다.유월영의 눈 밑 다스써클은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연재준이 덤덤하게 말했다.“돌발상황 생긴다 해도 의료진들이 있잖아. 그 사람들이 못하면 너라고 할 수 있을것 같아?”그렇게 유월영은 별다른 반박도 못한채 동해안으로 끌려갔다.한 편, 동해안으로 운전해 가던 백유진도 멀지 않은 곳에서 연재준의 차를 보게 된다. 순간 얼굴이 활짝 핀 백유진이 그를 만나기 위해 속도를 올리는데.하지만 이윽고 그녀는 차에서 내려 함께 저택으로 들어가는 유월영을 보게 된다.잠시 넋이 나가있던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아니 이건---!...... 안방에 들어온 연재준은 옷장을 열어 슥 훑더니 유월영이 전에 입던 잠옷을 무심하게 건네주며 말했다.“깨끗이 씻어.”그리고는 휴대폰을 들고 방을 나가버린다.옷장을 마주하고 있던 유월영은 손에 들린 잠옷을 꽉 움켜쥔다. 방금 겨우 걱정을 내려놨더니 이젠 또 다른 불안감이 엄습해온다.수술이 끝났으니 그가 말하는 소위 보상이라고 하는걸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어진거다.닫기지 않은 안방 창문 밖으로 짙게 깔린 먹장구름으로 뒤덮은 도시의 밤하늘이 보인다. 습하고 쌀쌀한 밤바람이 그녀의 옷 틈 사이를 파고든다.또 비가 오려나 보다.별안간 뭔가 떠오른 듯한 유월영은 갑자기 옷장 밑을 뒤지기 시작한다.아주 오래 전, 연재준과 하룻밤을 보냈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이튿날 먼저 눈을 뜬 연재준은 무심코 하늘색 침대 커버의 붉은색 자국을 보고는 넋을 일고 말았다. 너무 거칠었던 탓에 그녀를 다치게 한건 아닌지 재빨리 다리를 들어봤다.눈을 번쩍 뜬 유월영은 그제야 생리 주기에 들어섰다는걸 깨달았다.그때 동해안 저택엔 생리대가 없었기에 어쩔수 없이 온라인으로 주문을 했었는데......아마 지금도 남아있을거다.한참을 뒤져보니 과연 남아있다.눈이 반짝 빛난 유월영은 생리대 하나와 긴팔 긴바지 잠옷을 가지고 나서야 욕실로 들어갔다.영안에서 부랴부랴 돌아오자 마자 부모님 일을 해결하다 보니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못한건 맞았다.연재준과 단 둘이 있는걸 피하기 위해 유월영은 아예
연재준은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갈비찜을 그녀 앞에 밀어준다.“어제 엄청 잘 먹던데? 그대로 하라고 한거야.”그러니까 이건 그가 먹으려는게 유월영만을 위해 주문했던거다.유월영이 입술을 깨물며 손에 있던 국자를 들었다.“일종의 거래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마워요. 사장님 아니었으면 엄마 수술 순조롭게 못 받으셨을거예요.”연재준이 피식 웃으며 말한다.“내가 시켜준거로 감사인사를 한다고?”유월영이 생각도 없이 말을 내뱉는다.”이제 제가 대접해드릴게요.”지그시 바라보던 연재준도 국자를 들어올리고 ‘건배’를 한다.“그래, 기억하고 있을게.”......식사를 마친 유월영은 자각적으로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그녀는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그럴만한 이유를 만들어 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할 말을 다 생각해둔 그녀가 주방에서 나왔을때 연재준은 거실이 아닌 서재에 있었다.말도 없이 가버리기 뭣했던 유월영은 할 수 없이 서재로 걸음을 옮겼다.연재준은 책상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컴퓨터를 마주하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영어가 들리는걸 보니 아마 화장 회의를 하고 있는것 같다.속으로 옳다구나 생각하는 유월영이다.연재준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자 유월영은 얼른 문 쪽을 가리키며 간다는 손짓을 했다.연재준이 이어폰을 빼고 손에 쥐더니 말한다.“먼저 자.”그리고는 다시 이어폰을 낀 채 더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유월영은 몇초동안 서있다가 그제야 천천히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침대 맡에 앉은 그녀는 일단 큰 언니에게 병원 있냐는 문자를 보냈다.큰 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하 비서라는 분이 병원에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돌아왔어. 무슨 일 있으면 어차피 의사가 알려준다고 하면서.”큰 언니가 한 마디 더 보탠다.“서우도 나 찾더래.”“알겠어.”큰 언니가 또 문자를 보내왔다.“수술도 무사히 끝났는데 너도 걱정 말고 푹 쉬어.”“언니 잘 자.”홈에 나오자 신연우가 보낸 문자가 보인다.
연재준은 잠시 망설이다 그제야 휴대폰을 집어들었다.백유진의 횡설수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사장님! 사장님! 제, 제 차가 사람을 친것 같아요. 어떡해요? 어떡해야 돼요?”연재준이 미간을 찌푸린다.“지금 어딘데?”“지금......”백유진이 울먹거리며 위치를 말해준다.“사장님, 저 너무 무서워요......”물을 잠근 그가 침착하게 말한다.“괜찮아, 지금 바로 갈게.”욕실에서 나온 그는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다 다시 고개를 돌려 침대에 누워있는 유월영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렸다.문이 닫기는 소리에 유월영이 잠시나마 눈을 뜬다.연재준이 나갔을거라 짐작하긴 했으나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뒤척이다가 다시 잠에 든다.연재준이 자기 발로 나갔다니, 이보다 좋을순 없다.그렇게 유월영은 이튿날 아홉시가 넘어서야 잠에서 깼다.집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고 연재준도 아직 돌아오지 않은듯 하다.간단히 세수를 하고 떠나려고 할때 마침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서재 책상 맨 위에 있는 서류 열어서 봐봐, 마지막 사인한게 누군지. 마침 너 오늘 할 일도 없으니까 서류도 보면서 미리 적응 좀 해두고.”“사장님, 저 한참전에 벌써 나왔는데요.”그러면서 빠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관으로 이동하는 유월영이다.다음 순간 ‘띠--’하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잠긴다.깜짝 놀란 유월영이 다급히 손잡이를 흔들어보지만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연재준의 홀가분해하고 조롱 섞인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흘러나온다. “거긴 감시 카메라 없는줄 알아?”“......”유월영이 다급히 말을 바꾼다.“사장님, 전 아직 정식 해운그룹 직원이 아니라서요. 함부로 손대기가 그렇네요.”“내가 방금 한 말 못 들었어?”미리 적응 좀 해두라던 그의 말.“얼른.”유월영이 또다시 손잡이를 들썩이자 그걸 본 연재준이 냉랭하게 말한다.“이미 원격으로 잠겼으니까 넌 오늘 못 나가.”유월영은 한숨을 푹 쉬고 서재로 들어가려 한다.하지만 서재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