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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1화

유월영은 이가 갈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렀다.연재준은 차라리 이런 모습의 그녀가 예전의 싸늘하고 차분한 모습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머금었다.“애기야, 가만히 있어.”그의 입술에서 알싸한 담배 향기가 풍기면서 유월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하지만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지 말자고 이를 갈면서 차갑게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 역겨워!”연재준은 이 상황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이 계속 울려대며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유월영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신연우라면 연재준과 같이 있는 것을 알고 한번 안 받으면 더 이상 통화 시도를 할 리가 없었다.그가 전화를 걸어댈수록 연재준을 자극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가 그런 판단을 했을 리 없었다.그녀는 불안한 얼굴로 바둥거렸다.“연재준! 비켜! 누구 전화인지 확인은 해야 할 것 아니야?”그는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노려보았다.멀리서도 발신자가 똑똑히 보였다.“이승연 변호사.”그 말을 들은 그녀는 급하게 그를 밀쳐냈다.이번에 연재준은 그녀를 막지 않았다. 낯익은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이혁재 아내라는 것이 떠올랐다.이승연이 유월영 아버지 사건을 맡았던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유월영은 재빨리 몸에 가운을 걸치고 바닥에 주저앉아 통화버튼을 눌렀다.“이 변호사님….”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그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이승연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월영 씨, 아버님이 사고를 당하셨어요.”유월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머리가 어지러웠다.이승연이 간단한 상황을 설명했고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지금 영안에 있어요. 지금 바로 출발할게요.”전화를 끊은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밖으로 향했다.옆에 있던 연재준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어디 가?”유월영은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마!”연재준은 그녀를 빤히 보며 말했다.“말 안 하면 못 나가.”유월영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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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2화

유월영은 부랴부랴 옷을 입고 그대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그녀는 어두운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항공편을 검색했다.가장 빠른 탑승이라고 해도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공항까지 가는 것도 한 시간이 걸렸다.유월영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항공편을 예약한 뒤 콜택시를 불렀다.하필이면 퇴근 시간이라 콜택시도 안 잡히고 길에 오가는 택시도 없었다.그녀는 낯선 도시의 길가에 홀로 서서 반짝이는 등불들을 바라보며 절망감을 느꼈다.그러던 순간 외제차 한 대가 그녀의 앞에 멈추었다.“타.”연재준이었다.찬밥 가릴 신세가 아니었기에 유월영은 재빨리 차에 올랐다.차는 곧장 공항으로 질주했다.연재준은 덜덜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었다.“무슨 일인데 그래?”유월영은 반사적으로 소리쳤다.“아무 말도 하지 마!”운전 중이던 하정은은 저도 모르게 백미러로 뒷좌석 눈치를 살폈다.연재준은 그녀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그가 옆에 다가와서 앉을 때도 유월영은 그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세 시간 뒤, 비행기가 신주 공항에 착륙했다. 유월영은 출구를 나오자 마자 택시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연재준이 다가와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내 차 타고 가. 이 시간에 택시 잡기 힘든 거 알잖아.”유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차에 오르자 하정은이 물었다.“어디로 갈까요?”“승형 로펌이요.”잠시 후, 그들을 태운 차가 로펌에 도착했다. 유월영은 차가 멈추자마자 밖으로 튀어나갔다.연재준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유월영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좀 알아봐.”“네, 대표님.”다 퇴근한 로펌 사무실에 이승연만 남아서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월영을 보고는 따뜻한 우유를 건넸다.“일단 진정하고 이거부터 마셔요.”유월영은 우유컵을 두 손으로 붙잡고 온기를 느끼며 물었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조금 전 통화에서 이승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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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3화

유월영은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집이 여기서 안 멀어요. 택시 타면 30분 정도면 도착해요.”“최근에 계속 출장 가 있었다면서요? 서희 씨도 고향에 돌아갔으니 장기간 비어 있었던 집인데 불편해서 안 돼요.”이승연이 말했다.“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같이 병원에 가요.”유월영은 부부가 사는 집에 가기가 난감했다.이승연도 그녀의 우려를 눈치챈 건지 솔직하게 말했다.“최근에 남편이랑 싸워서 집에 안 가고 내 명의로 된 오피스텔에 혼자 있어요.”그렇다면 유월영은 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둘은 가치 로펌을 떠나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유월영은 샤워를 마친 뒤에 이승연의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무거운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숨이 막히고 제대로 잠이 들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아침이 되자 접견 신청을 마친 이승연이 그녀의 방으로 와서 말했다.“이제 출발해도 돼요.”유월영은 그녀와 함께 길을 나섰다.수감자 신분이라 유현석은 일인 실에 수갑에 묶인 채로 누워 있었다.유월영은 안색이 퍼렇게 질리고 흰 머리가 부쩍 많아진 아버지를 보고 눈물이 나왔다.“월영아!”그녀를 본 유현석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유월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를 부축했다.“움직이지 마.”옆에 있던 교도관이 경고를 주었다.“마음 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유현석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교도관님!”유월영은 울먹이며 아버지를 부축해서 침대에 앉혔다.유현석은 미안해서 고개도 들지 못했다.“월영아, 네 엄마는 이 일 모르지?”“엄마는 아직 몰라. 알려서도 안 되고.”의자에 앉은 유월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그런데 어쩌다가 수감자랑 싸움이 난 야? 이러다 추가건으로 형기가 연장될 수도 있어. 며칠만 참으면 집에 올 수 있었는데 왜 그랬어?”“나… 난 먼저 싸움을 걸지 않았어.”유현석이 다급히 말했다.“성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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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4화

유월영은 성주라는 인물에 대해 더 묻고 싶었지만 교도관이 그녀를 재촉했다.“시간 다 됐으니까 그만 돌아가세요.”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변호사랑 상애해 볼게. 아빠는 아무 걱정 말고 치료나 잘 받아. 집 걱정은 하지 말고. 아빠 무사히 나오는 날 가족끼리 모여 맛있는 거 먹자.”유현석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너희만 괜찮으면 됐어.”밖으로 나오자 이승연이 기다리고 있었다.“조금 전에 교도관들한테 상황을 알아봤는데 다른 수감자들 증언을 종합해 보면 성주라는 수감자가 일부러 아버님을 도발한 게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쌍방 폭행이라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얼마나요?”“7일 정도요.”결국 유현석의 형기는 며칠 더 연장된다는 얘기였다.하지만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였다. 그녀가 접견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관들이 와서 들것에 유현석을 싣고 구치소로 압송했다.유월영은 경찰차에 실려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승연은 그녀를 데리고 벤치로 갔다. 그리고 슈퍼에 가서 간단한 먹을 것도 사다 챙겨주었다.그 시각 연재준은 회사로 가는 차 안에 있었다.하정은이 조수석에서 업무 보고를 했다.“영안 프로젝트의 초반 준비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머지는 서 대표님과 심 대표님이 맡아서 할 거예요. 며칠만 지나면 아마 완공하고 돌아올 것 같습니다.”연재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하정은은 그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는 느낌에 서류를 내려놓고 말했다.“유 비서님 아버지는 수감자랑 싸우다가 둘 다 크게 다치면서 어제 병원으로 이송되었대요.”“구치소 안에서 싸워?”연재준이 싸늘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런 사람이니까 칼 들고 의료진을 협박했겠지.”하정은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연재준은 그녀가 그런 가족들에게 왜 돌아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3년 전에 그들과 연을 끊고 그가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라고 말했던 그녀였다.그는 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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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5화

전화를 받은 이승연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곧 갈게.”유월영은 바쁜 사람을 잡고 싶지 않아서 웃으며 말했다.“나 혼자 갈 수 있어. 그런데 지금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됐네. 병원에 보조 배터리 대여하는 거 있을 것 같은데 언니가 대여 좀 해줘.”이승연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안내데스크로 가면 있을 거야. 지금 가자.”병원 로비로 향하며 유월영은 고민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엄마한테는 아빠 형기가 연기되었다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돼. 싸웠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 되고… 지금 입원해 있거든.”“그런 건 사실을 말하면 안 되지.”유월영은 먹구름이 낀 하늘을 바라보며 씁쓸히 말했다.“그거 알면 엄마 쓰러질 거야.”그 시각, 신주 병원.의사가 회진을 돌기 전이었다. 간병인은 따뜻한 물수건으로 이영화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유신영은 아침을 사러 나가고 자리를 비웠다.이영화는 오늘 따라 기분이 좋은지 웃으며 간병인에게 말했다.“수고가 많아요.”“수고는요. 제 할 일인걸요.”간병인도 흔쾌히 이영화와 담소를 나누었다.“딸이 출장 중이라던데 올 때가 되지 않았나요.”유월영 얘기가 나오자 이영화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렇죠. 며칠 전에 전화했을 때는 오늘이나 내일 안으로 돌아올 거랬어요.”“남편도 곧 나온다면서요.”그래서 그런지 이영화는 오늘 따라 기분이 아주 좋았다.“기억력도 좋으시네요. 내일 나오는 날이에요.”그런데 눈알을 굴리던 간병인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말했다.“내일은 못 나올걸요?”이영화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죠?”간병인은 환자복을 가져오며 주절거렸다.“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어제 남편분이 구치소에서 같은 방 수감자랑 피 터지게 싸우다가 둘이 같이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들었어요.”이영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리더니 벌떡 일어났다.“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요?”간병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수감 중에 폭행 사건을 일으키면 엄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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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화

유신영은 넋이 나간 채로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인공심장… 위험하다면서요….”‘하지만 사람이 죽을 판에 그런 게 무슨 소용일까.’‘월영이도 결정을 못한 건데 내가 할 수 있을까?’‘혹시 수술이 실패하면… 비싼 수술비랑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하지?’유신영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고막을 자극하는 기계음이 그녀에게 결정을 재촉하고 있었다.다시 유월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꺼진 상태였다.의사가 계속 재촉했다.“가족분! 빨리 결정을 내려주셔야 합니다!”유신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흘렸다.살면서 남들 다 다니는 일반 대학에 다니고 부모님 뜻에 따라 결혼하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온 여자였다. 그녀는 한 번도 스스로 결정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이렇게 중대한 일을 앞두고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의사를 붙잡고 절규했다.“다른 방법은 없나요? 방법 좀 생각해 주세요. 차라리 할 수 있다 없다로 얘기해 주세요! 선생님들 말에 따를게요.”하지만 의사가 가족 대신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곤란하시면 일단은 ECMO생명 연장 장치로 잠깐 시간을 끌 수는 있어요. 동생이 오면 그때 결정하죠.”유신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뭔데요?”“중태에 빠진 환자에게 체외에서 호흡순환을 도와주는 기계입이다. 임시방편일 뿐 시간을 많이 끌 수는 없어요.”유신영이 물었다.“위험한가요?”“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환자의 생명을 잠깐 연장하는 용도예요.”유신영은 주저없이 대답했다.“할게요! 그렇게 해주세요!”의사가 계속해서 말했다.“다만 장치를 가동하는 비용이 천문학적 숫자예요. 수술 후에는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고요. 결정을 내릴 때까지 시간만 연장해 주는 용도예요.”하지만 유신영에게는 엄마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말만 중요했다.“그렇게 할게요! 동생이 와서 비용 지불할 거예요!”유월영은 보조배터리를 연결하고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뒤에서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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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화

윤미숙이 말했다.“네 아빠 병원에서 난동 부린 사건 회장님이 뒤를 봐주셨잖니. 그 뒤로 아래 직원들은 회장님이 이 일에 관심을 갖고 계신 줄 알고 약간 무슨 소식 있으면 우리한테 보고하더라. 아부하는 거지.”주변을 둘러보던 윤미숙이 말했다.“여기 서서 얘기하지 말고 어디 들어가자. 커피숍은 어때?”유월영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병원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유월영은 운전기사에게서 우산을 받아 들고 윤미숙과 함께 커피숍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마침 병원 근처로 왔던 연재준이 보게 되었다.그의 두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커피숍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들이 창가에 자리하자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다가왔다.“주문하시겠습니까?”윤미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월영이 네가 주문하렴.”“화이트 모카랑 카페라떼로 따뜻한 거로 주세요.”윤미숙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내가 화이트 모카만 마시는 거 기억하고 있었네. 너처럼 다른 사람 취향을 다 기억하는 애들도 흔치 않아. 작년에 회장님 생일에 네가 바둑판을 선물한 뒤로 회장님은 지금도 그 바둑판만 사용하고 계시잖아.”유월영은 비서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두 분께 도움을 받은 게 얼마인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죠.”윤미숙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예쁘니까 잘해주는 건 당연한 거야. 우린 여전히 널 며느리로 생각한다고.”“사모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랑 대표님 이제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래, 알았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그래도 난 널 딸처럼 생각하는 거 알지?”윤미숙은 흐뭇한 얼굴로 유월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월영은 조금 불편한 감을 느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윤미숙이 화제를 돌렸다.“아버지는 좀 어때?”유월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골절상이라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사람이 나이가 들면 뼈가 잘 안 붙어. 게다가 구치소 환경이야 안 봐도 뻔하지. 제대로 치료나 되겠어? 빨리 나오게 하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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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8화

아니나 다를까, 윤미숙이 계속해서 말했다.“시은이 3개월 지나면 출산해. 우리는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공개하기로 했어. 그래서 월영이 너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면 해.”유월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입술을 깨물었다.설탕을 두 스푼이나 넣은 커피에서 쓴맛이 느껴졌다.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윤미숙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사모님, 제 친구가 일부러 그분을 알아보러 다닌 건 아니에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서 그래요. 어디에 소문 내고 다닐 만큼 철이 없는 아이는 아니에요.”“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제가 친구를 대신해서 사과 드릴게요. 그러니 사모님도 제 친구를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윤미숙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월영이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네 엄마는 입원해 있고 아버지도 나오면 치료를 받아야 해서 힘들 텐데. 네가 곧 SK로 들어간다는 얘기는 들었어. 너도 바쁠 텐데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어.”유월영은 이야기를 들으며 윤미숙이 자신의 일정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일종의 경고가 아닐까?그녀는 다른 시선으로 윤미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온화하고 자상한 이 사모님의 내면에 다른 모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윤미숙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했다.“비가 점점 더 세게 내리네. 이만 돌아가야겠어. 월영이 너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비 맞으면 감기 걸려.”“네, 살펴가세요.”윤미숙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유월영을 향해 손을 젓고는 혼자 커피숍을 나갔다.유월영은 자리에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서희한테 전화해 봐야겠어.’하지만 핸드폰을 꺼낸 순간 액정이 깨졌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쓴웃음을 지었다.망가진 건지 아예 켜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보며 유월영은 짜증을 삼켰다.조서희한테서 들은 바로는 시은이라는 그 여자는 윤미숙을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했다.그렇다면 시은은 윤미숙의 숨겨둔 자식이거나 며느리라는 얘기였다.만약 후자라면 연 회장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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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9화

유월영은 미처 표정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착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모르게 저 여자랑 따로 만난 게 미안하기는 한가 보네.”유월영은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하고 담담히 물었다.“그걸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하죠?”그는 윤미숙이 마시던 커피를 옆으로 밀고 차갑게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했어?”“그걸 대표님께 보고해야 하나요?”유월영은 짜증스럽게 대꾸하고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연재준은 다 안다는 듯이 질문을 계속했다.“네 아버지가 사고친 거 수습해 달라고 불렀어?”핸드폰은 여전히 전원이 돌아오지 않았다.빗소리가 거세질수록 유월영은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갑갑했다.그녀는 결국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핸드폰은 그냥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지금 시대에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연재준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거 놔요.”“분명 눈앞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건 무슨 심보야? 게다가 다들 능력도 없는 것들을 상대로 말이지.”유월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이 말씀하신 능력 없는 사람들은 저를 도와줄 때 부가조건이 붙지 않잖아요.”연재준이 웃으며 받아쳤다.“또 내가 한 말 잊었어? 값을 매길 수 없는 게 가장 비싼 법이야. 난 대놓고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를 하자는데 넌 안 된다고 거부만 하잖아. 그리고는 어디 제대로 도움도 줄 수 없는 인간들이나 찾아 다니고 말이야.”여태까지 반응 없던 핸드폰에 갑자기 진동이 들어왔다.그녀는 억지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향했다.깨진 액정을 통해 간신히 확인해 보니 언니에게서 여덟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언니는 전화를 안 받는다고 계속 전화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언니의 울음 섞인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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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0화

이영화는 금방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가족들은 면회를 할 수 없기에 언니와 형부가 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월영은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갔다.“언니!”눈물범벅이 된 언니가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녀의 어깨를 치며 울부짖었다.“왜 전화를 안 받았어! 왜!”유월영은 간신히 버티고 서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엄마 대체 무슨 상황이야?”그녀는 울부짖는 언니를 보자 숨이 막혀왔다. 그녀도 어제 한가하게 보낸 건 아니었다. 아버지 일 때문에 안 그래도 잠을 못 잤는데 지금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형부는 유월영과 함께 병실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유리 창 너머로 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깜빡이며 그래프를 그리는 바이탈 기계만이 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유월영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왜 이렇게 된 거지?어쩌다가….분명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도 괜찮다고 했고 아빠가 나오면 엄마 컨디션 봐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밥을 먹자고 했었다.무슨 요리를 하고 누가 장을 보고 설거지를 할지 의논하기도 했는데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도니 걸까?이영화는 전에도 병증이 발작한 적 있지만 지금처럼 온몸에 삽관하고 멀리 떠날 사람처럼 누워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너무 큰 충격에 눈앞이 캄캄했다.형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선생님은 지금 상황으로는 오래 못 버틸 거라고 했어. 이제 어떻게 할지는 우리한테 결정하라는데… 치료 포기할 거면 사인하고 장치 제거할 거래. 차라리 이럴 거면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좋을까 싶기도 하고.”유월영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사고 났다고 했을 때는 그나마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어차피 최악의 결과라고 해봐야 형기가 며칠 더 늘어날 뿐이고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하지만 엄마는 어쩌면 영원히 그들을 떠날 수도 있었다.어떻게든 치료는 포기할 수 없었다.형부가 계속해서 말했다.“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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