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윤미숙이 계속해서 말했다.“시은이 3개월 지나면 출산해. 우리는 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공개하기로 했어. 그래서 월영이 너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으면 해.”유월영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입술을 깨물었다.설탕을 두 스푼이나 넣은 커피에서 쓴맛이 느껴졌다.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은 뒤, 윤미숙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사모님, 제 친구가 일부러 그분을 알아보러 다닌 건 아니에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서 그래요. 어디에 소문 내고 다닐 만큼 철이 없는 아이는 아니에요.”“혹시 기분 나쁘셨다면 제가 친구를 대신해서 사과 드릴게요. 그러니 사모님도 제 친구를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윤미숙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월영이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 네 엄마는 입원해 있고 아버지도 나오면 치료를 받아야 해서 힘들 텐데. 네가 곧 SK로 들어간다는 얘기는 들었어. 너도 바쁠 텐데 그런 걸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겠어.”유월영은 이야기를 들으며 윤미숙이 자신의 일정에 대해 너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일종의 경고가 아닐까?그녀는 다른 시선으로 윤미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온화하고 자상한 이 사모님의 내면에 다른 모습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윤미숙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했다.“비가 점점 더 세게 내리네. 이만 돌아가야겠어. 월영이 너도 어서 집으로 돌아가. 비 맞으면 감기 걸려.”“네, 살펴가세요.”윤미숙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유월영을 향해 손을 젓고는 혼자 커피숍을 나갔다.유월영은 자리에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서희한테 전화해 봐야겠어.’하지만 핸드폰을 꺼낸 순간 액정이 깨졌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쓴웃음을 지었다.망가진 건지 아예 켜지지도 않는 핸드폰을 보며 유월영은 짜증을 삼켰다.조서희한테서 들은 바로는 시은이라는 그 여자는 윤미숙을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했다.그렇다면 시은은 윤미숙의 숨겨둔 자식이거나 며느리라는 얘기였다.만약 후자라면 연 회장에게는
유월영은 미처 표정을 수습하지도 못하고 착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연재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모르게 저 여자랑 따로 만난 게 미안하기는 한가 보네.”유월영은 가까스로 표정을 수습하고 담담히 물었다.“그걸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하죠?”그는 윤미숙이 마시던 커피를 옆으로 밀고 차갑게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했어?”“그걸 대표님께 보고해야 하나요?”유월영은 짜증스럽게 대꾸하고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연재준은 다 안다는 듯이 질문을 계속했다.“네 아버지가 사고친 거 수습해 달라고 불렀어?”핸드폰은 여전히 전원이 돌아오지 않았다.빗소리가 거세질수록 유월영은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서 가슴이 갑갑했다.그녀는 결국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핸드폰은 그냥 새로 사는 게 나을 것 같았다.지금 시대에 핸드폰이 없으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연재준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거 놔요.”“분명 눈앞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건 무슨 심보야? 게다가 다들 능력도 없는 것들을 상대로 말이지.”유월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이 말씀하신 능력 없는 사람들은 저를 도와줄 때 부가조건이 붙지 않잖아요.”연재준이 웃으며 받아쳤다.“또 내가 한 말 잊었어? 값을 매길 수 없는 게 가장 비싼 법이야. 난 대놓고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를 하자는데 넌 안 된다고 거부만 하잖아. 그리고는 어디 제대로 도움도 줄 수 없는 인간들이나 찾아 다니고 말이야.”여태까지 반응 없던 핸드폰에 갑자기 진동이 들어왔다.그녀는 억지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향했다.깨진 액정을 통해 간신히 확인해 보니 언니에게서 여덟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언니는 전화를 안 받는다고 계속 전화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유월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수화기 너머로 언니의 울음 섞인 목소
이영화는 금방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다.가족들은 면회를 할 수 없기에 언니와 형부가 병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유월영은 그들을 보자마자 달려갔다.“언니!”눈물범벅이 된 언니가 그녀를 보자마자 달려와서 그녀의 어깨를 치며 울부짖었다.“왜 전화를 안 받았어! 왜!”유월영은 간신히 버티고 서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엄마 대체 무슨 상황이야?”그녀는 울부짖는 언니를 보자 숨이 막혀왔다. 그녀도 어제 한가하게 보낸 건 아니었다. 아버지 일 때문에 안 그래도 잠을 못 잤는데 지금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형부는 유월영과 함께 병실 창문이 있는 곳으로 갔다.유리 창 너머로 호흡기를 달고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깜빡이며 그래프를 그리는 바이탈 기계만이 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유월영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왜 이렇게 된 거지?어쩌다가….분명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도 괜찮다고 했고 아빠가 나오면 엄마 컨디션 봐서 집으로 돌아가 가족끼리 밥을 먹자고 했었다.무슨 요리를 하고 누가 장을 보고 설거지를 할지 의논하기도 했는데 대체 왜 갑자기 이렇게 도니 걸까?이영화는 전에도 병증이 발작한 적 있지만 지금처럼 온몸에 삽관하고 멀리 떠날 사람처럼 누워 있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너무 큰 충격에 눈앞이 캄캄했다.형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선생님은 지금 상황으로는 오래 못 버틸 거라고 했어. 이제 어떻게 할지는 우리한테 결정하라는데… 치료 포기할 거면 사인하고 장치 제거할 거래. 차라리 이럴 거면 편하게 보내드리는 게 좋을까 싶기도 하고.”유월영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사고 났다고 했을 때는 그나마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어차피 최악의 결과라고 해봐야 형기가 며칠 더 늘어날 뿐이고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하지만 엄마는 어쩌면 영원히 그들을 떠날 수도 있었다.어떻게든 치료는 포기할 수 없었다.형부가 계속해서 말했다.“처제,
그게 아니다.계획대로라면 이영화는 3개월 전 이미 기증자의 심장을 이식받고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아갔을지도 모른다.3개월 전 기증을 받았더라면 지금처럼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게 아니라 시골 집에서 따뜻한 차 한 잔 우려마시며 꿀이냐 설탕이냐를 여유롭게 논하고 있었겠지? 현 상황에 어쩔수 없이 후회가 몰려오는 유월영이다.숨을 크게 들이쉰다. 하지만 호흡기를 뚫고 들어오는건 비릿한 피냄새뿐.몸을 돌린 유월영은 곧장 내려가 연재준을 찾아나선다.......병원 주차장.내렸던 곳으로 가보니 연재준의 차는 여전히 그대로 있었고 하정은이 우산을 들고 서있는게 보인다. 분명 그들은 유월영을 기다리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무리 아득바득 애를 써도 당최 이 남자에게서 벗어날수 없는 듯한 느낌. 상위 10%의 의료진이 어쩌고 할 때부터 이미 자신의 그의 손바닥 안이라고 확신했었으니 말이다.교도관에게 잡혀간 아빠와 ICU에서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모습이 밀물처럼 몰려와 머릿속을 잠식시킨다. 유월영은 곧바로 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다.하정은이 다급히 문을 여니 느긋하게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는 연재준이 보인다.달려오는 유월영을 본 연재준은 지난 3년동안 늘 사랑스럽고 진심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봐줬던 그녀를 회상한다. 애석하게도 퇴사한 뒤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하지만 별 일 아니다, 앞으로 기회야 많으니까.입꼬리를 살짝 올린 그는 휴대폰 너머에 대고 “알겠다”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유월영은 차에 타지도 않으면서 우산을 씌워주려는 하정은마저 밀쳐낸다. 온 몸은 이미 흠뻑 젖어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런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것 같다. 하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지 오늘따라 구멍이라도 뚫린듯 장대비를 쏟아부었고 세찬 빗물은 떡하니 서있는 그녀의 몸에서 연신 물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연재준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물론 입술조차 핏기 한 점 없이 창백하다.연재준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인다.“할 말 있으면 해.
짧은 침묵이 지나고 이내 유월영이 입을 연다.“---그래요.”연재준이 뚫어져라 그녀를 쳐다본다.유월영이 입꼬리를 들썩이더니 조금 쉰 소리로 말한다.“사장님, 그렇게 놀란척 할 필요 없으시잖아요? 이미 다 예상하고 있었던거 아니에요?”그제야 연재준은 콧방귀를 뀌며 말한다.“다 예상하고 있었지.”유월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이윽고 물었다.“의료팀은 언제 건너올수 있는거예요? 엄마 길어봐야 3일밖에 못 버티신다는데.”“약속했으니까 할 수 있어.”연재준은 이마를 지그시 짚은 채 묻는다.“어머니 오늘 수술 한 번 더 받으실수 있나?”“그게 무슨 말이에요?”“감당하실수만 있으면 오늘 바로 수술할수도 있어.”흠칫 놀란 유월영은 뭔가 이상한지 되묻는다.“의료팀은 미국에서 온다면서요?”비에 쫄딱 젖은 모습이 거슬렸는지 연재준은 옆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유월영의 손목을 끌어당겨 곁에 앉힌다.“지금 모든건 다 내 예상대로 흘러가는거 안다며. 내가 미리 의료팀 데려온게 그렇게 이상해? 의료진, 기계는 벌써 3일 전에 신주시에 와있었다고. 어머니만 견뎌낼수 있으시면 언제든지 수술할수 있어.”차가운 빗물을 맞은 유월영은 히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수술이 가능한지는 저도 잘 몰라요. 주치의 선생님한테 여쭤봐야 돼요.”연재준은 밖에 있던 하정은을 쳐다본다.“가서 잘 말씀드려.”하정은은 분부를 받고는 차 문을 닫았다.그 모습을 본 루장월이 몸을 틀어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연재준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는다.“동해안으로 가.”운전기사는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거는데.전엔 잠자리를 가지고 싶을때만 그녀를 동해안으로 데리고 갔었다.유월영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화를 꾹꾹 참는다.“돌아오겠다고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그런 짓을 하려는거예요? 엄마 ICU에 누워계시는데 도대체가 양심이라고는 없는거예요?”잠시 주춤한 연재준은 이윽고 웃기다는 듯 말한다.“과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네가 착각에
연재준이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다.그러자 이혁재가 차갑게 웃어보이며 말한다.“사무실 입구에 가드 두 명 세워놓고는 못 들어가게 막는거 있지! 남편을 무슨 도둑놈 취급하는것도 아니고. 재산 협의서에 사인 안 했다고 이렇게까지 할 노릇이야? 환상 속에 갇혀 사는거라고 생각 안 해? 애초에 그 거액의 유산 아니었으면 내가 왜 일사천리로 결혼까지 했겠냐고.”연재준이 이윽고 묻는다.“고작 그 돈이 너희 집에 그렇게 막대한 돈도 아니잖아.”이혁재가 웃으며 말한다.“그건 결코 고작이라고 할수 있는 액수가 아니야.”하긴.부모님이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뒤, 막대한 유산이 전부 이승연에게 쥐어졌으니 그럴만도 했다. 더우기 변호사인 그녀의 재산을 나눠 가지려는건 꿈도 못 꿀 일이었고 유독 남편이란 명목하에야만 나눠가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이혁재는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턱 기대더니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돈이 화를 불러 일으키는 법인데 그걸 모른단 말이지. 보기엔 똑똑해 보이는데 사실......휴, 능력 있는 여자들은 이렇게 고분고분 말을 안 듣더라.”“재준아, 너도 이 말엔 동의하지?”연재준이 눈썹을 씰룩거린다.“누가 동의한대?”“아 그러셔? 너 그 유 비서라는 사람 내가 듣기론 SK그룹 입사제안까지 받았다던데 진짜 가버리는거면 3년이나 길들이지 못한거고 그건 곧 말을 안 듣는다는 거지.”“억지로 이승연이 네거라고 우길 자격도 없어 넌. 그리고 유월영은 너무 말을 잘 들어서 문제지, SK그룹인지 뭔지에 갈 일도 없고.”연재준이 술잔을 가볍게 흔들며 말한다.“유 비서라고 불리는건 내 비서니까 그런거겠지? 알아들어?”이미 반쯤 넘게 취한 이혁재는 냅다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잘 못 알아 듣겠는데.”연재준이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여보세요?”묵묵부답에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누구세요?”그제야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사장님......”연재준의 얼굴이 사악 굳어버린
연재준이 고개를 숙인다. 그의 호흡마다엔 코를 찌르는 알콜 냄새가 진동했다.유월영이 고개를 돌려 피한다.“......술 마셨어요?”미간이 찌푸려진다. 병원 중환자실인데다 밤이라 적막이 흐르는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도 저도 모르게 낮아진다.“여기서 뭐하세요?”“내가 좀 보상이 필요해서 말이야.”“무슨 보......읍!”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재준이 냅다 입을 맞춰버린다.전개도 없고 예고도 없이 그렇게 그는 처음부터 딥하게 입을 맞췄다.취기를 동반한 입맞춤은 강한 소유욕에 불타있었고 입술부터 시작해 치아를 지나 어느새 혀를 감싸고 놓아주지 않고 있다.두 손은 몸 뒤에 묶인 채 뒤통수는 벽에 단단히 붙어버리고 만다. 이런 입맞춤은 또 처음이다.갑작스런 입맞춤에 호흡이 가빠지던 그녀는 불편한 듯 신음소리를 냈고 그제야 연재준도 동작을 멈추고 입을 뗐다.“......미쳤어? 여기 병원이야!”연재준은 촉촉하면서도 빨개진 그녀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스윽 어루만지더니 쉰소리로 말했다.“지금 여긴 밤 열시 반을 지나는 인적 없는 중환자실이지.”넋이 나간 유월영의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돋는다.“뭘 어쩌려고?”“너.”“......”잠시 멍하니 서있던 유월영은 이내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씩씩거렸다.“미친 소리 작작해!”연재준이 입꼬리를 스윽 올린다.제법 술기운이 올라온 그는 평소 딱딱하고 차가운 모습에 비하면 지금이 훨씬 유해보였다. 그가 목젖을 위아래로 연신 움직이며 말한다.“움직이지 마, 난 그냥 입맞춤이 하고 싶을 뿐이니까.”유월영이 고개를 들어 까아만 그의 눈동자와 아이컨택을 한다.남자들은 별로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상대를 안달나게 만든다더니.그 말이 제격이다.지금 이 순간 연재준의 눈빛은 따뜻하고도 빠져들것 같은것이 마치 그녀가 세상 전부인 사람처럼 보였다.당연히 이런 거품 잔뜩 낀 거짓에 속아 넘어갈 유월영이 아니었지만 말이다.축축하게 습기 찬 호흡은 온 몸에서 풍겨오는 달콤함과 어우러져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는 또 한 번
병원을 빠져나온 연재준은 차에 올라타 말했다.“동해안으로 가.”기사가 분부를 듣고 차에 시동을 건다.백미러로 바라본 연재준의 입가엔 전엔 본 적 없는 미소가 띄어져 있다. 보아하니 유 비서를 만나러 갔던 30분동안 꽤나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기사가 간 크게 입을 연다.“사장님, 유 비서님 곧 다시 복귀하실건가 봐요?”“다른 뜻은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출근길에 업무 보고하던 비서들 가운데 가장 똑똑하신 분인것 같아서요. 비서님 계시면 사장님도 업무 부담 많이 줄어드시잖아요.”평소의 연재준이라면 기사와 한가히 수다 떠는 법이 없었겠지만 오늘은 제법 기분이 좋은지 입을 열었다.“그걸 말이라고 해? 유 비서는 내가 키운건데.”완벽히 그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그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비서였다.그러니 어찌 다른 이들이 성에 차겠는가?저 멀리 동해안 3층 저택이 보인다. 문어구에 누군가 서 있는것 같다.여자다.그녀는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지만 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 때문인지 결국엔 비에 젖어있었다. 자동차 라이트가 비춰졌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게 보였다. 기사가 주춤하더니 속도를 늦추며 말했다.“사장님.....백 아가씨세요.”연재준이 눈을 천천히 뜬다.백유진도 그들을 보고는 재빨리 빗속으로 달려들었다. 놀란 기사가 다급히 브레이크를 밟는다.뒷좌석으로 달려간 그녀는 차창을 두들기며 소리친다.“연 사장님! 사장님!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가 다 설명드릴게요!”연재준이 차창을 천천히 내린다.장장 몇개월이 지나 드디어 그의 얼굴을 마주본 백유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연 사장님!”연재준은 온 몸이 홀딱 젖은 그녀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묻는다.“나 신주 돌아온건 어떻게 안 거지?”어제 금방 돌아와 오늘 유월영 때문에 회사에도 안 갔는데 소식 한 번 빠르다.그의 말 뜻을 눈치챈 백유진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저, 전 사장님 미행한게 아니에요. 사장님 측근들 매수할 엄두는 더욱 못 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