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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시 만나요의 모든 챕터: 챕터 851 - 챕터 860

967 챕터

제851화

육지율이 물었다.“짐 다 챙겼어요? 여권도 잊지 말고 챙기세요.”남초윤은 2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갈래요.”이미 캐리어에 정리해 넣었던 옷들을 다시 옷걸이에 걸기 시작했다.육지율은 약간 짜증이 난 듯 물었다.“또 왜 그래요?”남초윤은 삐친 듯 대답했다.“그냥 가기 싫어졌어요. 안 되나요?”육지율은 쉽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육지율의 얼굴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눈동자에는 뚜렷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육지율은 남초윤 앞에 서서 검은 눈동자를 반쯤 내리깔고 냉담하게 남초윤을 응시했다. 주변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변덕스러운 것도 이유가 있어야죠.”이유? 육지율이 무슨 자격으로 이유를 묻는 거지?남초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육지율을 노려보았다.“지율 씨, 나를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재밌어요?”남초윤이 화가 치밀어 올랐던 것과는 달리 육지율은 그저 살짝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내가 무엇을 가지고 놀았다는 거죠?”“설날 밤에, 당신은 나에게 유설영과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틀도 안 되어 당신은 유설영의 스튜디오 법률 고문이 되었잖아요. 왜 날 속였어요?”남초윤은 눈가가 희미하게 붉어지며 육지율을 비난했다.육지율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고작 그거 때문이에요?”“...”고작 그거 때문에?남초윤은 자신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남초윤은 그들 사이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육지율은 그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남초윤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이 떨렸고 두 팔로 자신을 감싸 안으며 감정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를 애써 억누르려 애썼다.육지율은 남초윤을 달래려 손을 뻗었지만, 남초윤은 그 손을 단호하게 뿌리쳤다.“만지지 마세요!”남초윤이 육지율의 손을 뿌리치면서 손이 드레스룸의 옷장에 부딪혔다. 손등에 통증이 조금씩 느껴졌다.육지율은 손을 거두며 얼굴에 자연스럽게 어두운 기색이 드리웠다. 그리고 육지율은 차분하게 해명했다.“우리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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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남초윤의 눈에 붉은 핏줄이 서렸다.남초윤은 손가락을 움켜잡으며 조롱하듯 말했다.“지율 씨는 유설영과 업무적으로 연락할 수 있고 저는 성혁 씨와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요? 지율 씨, 너무 이중 잣대 아닌가요?”육지율의 얼굴은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남초윤을 냉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유설영은 저에게 과거일 뿐이에요. 다시 만나도 저는 완전히 공적인 태도로 대할 수 있어요. 저는 공과 사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어요.”“초윤 씨가 성혁 씨에 대해 저와 같이 공과 사를 구분하는 태도를 가졌다면 저는 초윤 씨와 그 사람이 업무적인 관계에 간섭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초윤 씨가 성혁 씨를 인터뷰하는 것이 초윤 씨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월급이 오르거나 승진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무 이익도 없고 오직 골치 아픈 일만 늘어나는 건데 왜 그렇게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려 하는 거죠?”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려 비웃으며 물었다.“그러면 지율 씨와 유설영의 협업의 의미는 뭐죠? 업무를 빌미로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건가요?”육지율은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유설영은 단순히 많은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 로펌에 더 많은 유명인을 소개해 줘요. 지금 초윤 씨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좀 차분해진 후에 다시 이야기하죠.”바보가 아닌 이상 유명인들의 위탁을 포기하지 않는다.몇 개의 공문을 작성하고 법률 지원을 해주며 가끔 악성 팬들에게 법원 소환장을 보낸다. 그리고 명예훼손 같은 소소한 소송은 거의 항상 승소한다.이런 간편하고 유익한 비즈니스를 포기할 로펌은 없다.남초윤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차분하게 물었다.“그래서 지율 씨는 유설영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겠다는 거죠?”육지율은 떨리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사적인 문제로 내 의뢰자와의 계약을 깨는 건 불가능해요.”이런 행동은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직업적 신뢰도도 떨어뜨린다.어느 로펌도 이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는다.이런 선례가 남겨지면 앞으로 군달 로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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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핸드폰 화면에 ‘본가’라고 뜨자 육지율은 몸을 돌려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로 강란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율아, 빨리 본가로 와봐! 네 장인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오늘 아침 일찍부터 집에 찾아와서 너희 할아버지께 새해 인사를 드리겠다고 하는 거야. 너희 아버지가 그에게 차를 권했는데, 차를 몇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100억원을 빌려 달라고 요구하지 뭐야! 너희 할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 화가 많이 나셨어! 어떡하면 좋아?”“알겠어요, 바로 갈게요.”...육씨 가문의 본가 거실에는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하지만 남재원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하고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저는 그저 급히 쓸 돈이 필요해서 사돈한테 잠시 빌리려는 겁니다. 나중에 꼭 갚을게요!”육성일은 남재원을 원래부터 좋게 보지 않았다.더구나 이전에 육지율이 집안 몰래 남재원에게 얼마나 많은 구멍을 메꿔줬는지를 그는 알고 있었기에 이 사돈을 더욱 못마땅해했다.그는 지팡이를 쥐고 소파에 앉아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갚는다니? 무슨 돈으로 갚을 건가? 나중에 지율 그 녀석한테서 돈을 받아다가 우리한테 갚을 생각이겠지?”“어...어르신, 그건 오해입니다!”남재원은 원래 육근우 쪽에서 100억원을 빌리고, 나중에 사위에게서 또 100억원 을 받아서 육근우에게 갚을 생각이었다.그는 사위의 돈은‘효도'를 위해 쓰는 거니 갚을 생각이 없었으며 다만 사돈한테 빌린 돈은 그래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육성일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자 남재원은 순간 당황하여 할 말을 잃었다.육지율과 남초윤은 부랴부랴 본가로 달려갔다.남초윤은 아버지 남재원을 보자마자 눈썹을 찌푸리며 급히 다가가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아버지, 여기는 왜 오셨어요? 도대체 여기는 뭐 하시냐고요!”“지율 할아버지께 새해 인사를 드리고 인삼을 좀 가져왔을 뿐이야. 근데 네가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육성일은 지팡이를 쥐고 옆에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집사는 눈치를 채고 테이블 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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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이 여러 큰 금액의 빚들은 대부분 올해 9월 이후에 빌린 것이었다.남초윤은 10월 초에 블랙카드를 육지율한테 돌려주고 남재원보고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말라고 엄하게 말한 바 있었다.‘이게 도대체 다 뭐야?’반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또다시 거의 백팔십억원이라는 큰 금액을 빌려 갔다.장부를 꽉 쥔 남초윤의 손마디가 하얗게 변했다.“아버지, 내가 지율 씨한테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왜 제 말을 듣지 않으세요!”남재원은 자신의 행적이 들통나자 딸을 볼 체면이 없어 약간 당황했다.그는 이내 손을 뻗어 딸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아버지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네가 우리 집의 재정 상황을 잘 몰라서 그래. 이제 집에 가서 얘기하자...”남재원은 서둘러 딸을 데리고 육씨 가문을 떠나려 했다.그때, 육성일은 손에 있던 지팡이를 쥐고 돌리면서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율아, 넌 장인어른을 배웅해 드리고 초윤이는 남아라. 이 할아버지가 할 말이 있다.”육지율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더니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이 돈들은 제가 제 장인어른께 자발적으로 드린 겁니다. 초윤이와 상관이 없어요.”육성일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그의 눈빛은 시종일관 평온하여 그의 기분을 알 수 없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육지율의 말을 무시한 채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남초윤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윤야, 서재로 따라와.”한 마디 한 마디가 강력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었다.남초윤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네.”그녀가 육지율의 옆을 지나갈 때 육지율이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그는 눈을 들어 육성일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할아버지, 남초윤과 저는 아직 부부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시려거든 제 앞에서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육성일은 지팡이를 땅에 가볍게 두드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초윤이가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는 걸 원한다면 너도 함께 들어도 돼. 난 너희 두 사람 앞에서 말해도 상관없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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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너와 지율이 아직 부부 사이고 네 아버지가 육씨 가문의 사돈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도 다 알아. 그가 사채까지 받은 일이 알려지면 육씨 가문에 큰 타격을 줄 거야. 너도 알다시피 지율의 부모님도 지금 중요한 자리에서 일하고 계시고, 네 아버지의 이런 행동은 육씨 가문에...”육성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초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할아버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지율 씨랑 이혼하겠습니다. 이 빚들은...제가 다 갚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이라도 갚아보겠습니다.”육성일이 입을 열었다.“초윤아, 이 빚들은 네가 다 갚지 못해. 네가 지율이랑 이혼하면 네 아버지의 회사는 3개월도 버티지 못할 거야. 네 아버지가 육지율에게 진 빚은 천천히 갚을 수 있겠지만 밖에서 진 빚은 그럴 여유가 없을 거야. 그쪽 사람들은 무법자들이라, 정말로 빚을 갚지 못하면 네 아버지나 너의 팔 하나를 가져가는 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야.”“할아버지,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요?”육성일은 침착하게 말했다.“지율과 이혼하고 육씨 가문에 아이를 하나 낳아줘. 그러면 이 빚들은 다 없던 일로 해주겠다. 네 아버지가 밖에서 진 빚도 지율이 혼자서는 다 물어 줄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네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나서서 그 빚들을 처리해 주마. 그쪽 사람들도 지율은 잘 모르지만, 내 체면은 어느 정도 봐줄 테니까.”남초윤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고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가려 흐릿해졌다.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물었다.“왜 저인가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사실 육지율에게 아이를 낳아주려는 여자는 많았으며 유설영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육성일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너와 지율이가 결혼 기간 동안 낳은 아이는 명분도 확실하여 외부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을 거야. 지율도 너를 거부하지 않는 것 같고, 네가 임신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다른 여자를 데려와서 지율이와 아이를 낳게 하려면 또 몇 년이 더 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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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육성일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 사실 그녀도 어렴풋이 짐작했다.남초윤도 자신이 신데렐라처럼 운이 좋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멍청하지 않다.유리구두 하나 없는 신데렐라에게 육지율이 오래 감정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안타깝지만 육성일의 이런 말들은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개와 3년을 지내면 정이 들기 마련이다.하물며 맞은편에는 육지율이라는 사람이다.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움직인 이상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다.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마치 정해져 있는 것 같다.사랑이 부족한 사람은 사랑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고 늘 더 많이 사랑한다. 그런 사람은 상대방이 조금만 잘해주면 쉽게 함락된다.육지율에게 마음이 흔들리다니, 뭔가 병이 나도 단단히 났다....육씨 저택에서 나온 후 남초윤은 홀로 남씨 집으로 돌아갔다.문명희가 남재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설날 이튿날부터 육씨 가문에 가서 돈을 빌리면 어떡해요? 당신 늙은 얼굴이야 체면이 필요 없겠지만 윤이가 앞으로 육씨 집안사람들을 어떻게 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시댁에서 평생 얼굴도 못 들고 살면 어떡해요!”말을 하면서 남재원에게 주먹을 날렸다.짜증이 난 남재원은 한참이나 가만히 있더니 손에 든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끄고는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나도 설날부터 망신당하고 싶어서 간 줄 알아? 당신 그 좋은 사위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빌려주기는커녕 앞으로 다시는 자기에게 돈을 빌리는 전화를 하지 말라면서 독설을 퍼부었어! 어느 집안 사위가 이렇게 날뛰어? 육씨 성을 가진 사람들만 그런 거라고! 채권자들이 집 앞까지 왔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저 사위 아버지에게 가서 손을 내밀 수밖에!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그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일 줄 누가 알았겠어!”문명희가 눈살을 찌푸렸다.“채권자요? 몇 년 전에 이미 그 밑에 있는 부하들에게 돈을 갚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집까지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하는 건데요?”그 말에 주눅이 든 남재원은 뭔가 감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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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원래 주식투자가 취미였어. 그런데 시장이 안 좋아 갑자기 많이 떨어졌어. 그래서 이를 악물고 주식을 보충했지. 이것도 다 당신 그 사위 탓이야, 그 집안 지위로는 주식시장에 대해 빠삭할 텐데 어떤 주식을 사는 것이 적당한지 알려달라고 하면 늘 나를 상대하지 않았어! 오히려 비웃었지. 주제넘은 짓을 한다고. 네가 말해봐. 너무한 거 아니야? 본인도 주식하면서 장인어른한테 좀 알려주면 어때? 육지율과 그 친구 배 대표 모두 주식에 대해 잘 알잖아. 조금이라도 정보를 입수하고 내가 걔네들 따라 주식에 투자하면 손해 볼 일은 없었잖아?”남재원은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굳은 얼굴로 핑계를 늘어놓았다.“카지노에 간 것도 자전거를 오토바이로 변신시키기 위해 간 거야. 너희 두 모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내가 왜 카지노에 가겠어.”남초윤은 씩 웃었다.말인지 막걸리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남초윤은 한 마디 반박도 하지 않고 바로 물었다.“밖에서 진 빚이 대체 얼마인데요?”남재원이 머뭇거리며 말했다.“얼마 안 돼. 얼마 전에 좀 갚았으니 이제 몇억 원 정도면 돼.”남재원은 아직도 잘못한 줄 모르고 거짓말만 하고 있다.남초윤이 일부러 따지고 들었다.“지율 씨에게 진 빚만 몇백억이 넘어요. 남재원 씨, 당신 그 썩은 빚을 나는 갚아 줄 생각도 갚을 수도 없어요. 사채업자들이 나와 우리 엄마를 찾지 못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 데리고 같이 죽을 테니까!”“육씨 가문이 얼마나 큰데 내 빚도 갚지 못해? 사위에게는 껌값이잖아? 가서 한번 부탁해봐. 윤이야, 이 아빠가 그동안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니? 어렸을 때부터 네가 원하는 거면 다 사줬잖아. 그러니까 아빠 지금 힘들 때 네가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남재원은 그녀의 손을 잡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의자에 앉아 있는 남초윤의 안색은 점점 더 새하얘졌고 많이 힘들어 보였다.“아빠, 지율 씨와 이혼할 거예요. 이번엔 진짜예요. 더 이상 아빠를 도울 수 없어요. 육씨 가문도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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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빈털터리로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정판 가죽 가방, 장롱 가득히 진열된 명품 브랜드의 옷들과 주문제작품들, 오래 걸을 수 없는 빨간 바닥의 하이힐들... 원래 모두 그녀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3년 동안 이것들을 사용하면서 확실히 어느 정도 감정이 생겼지만 아무리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이것들의 주인이 아니다. 물건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줄 뿐이다.어려운 건 이혼하기 전에 육씨 가문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다.원래 모든 것들에는 가격이 있고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즐기다가 어느 날 자리를 털고 떠나려 한다면 긴 청구서가 눈을 찌를 것이다.육성일이 서재에서 그녀에게 말한 일에 대해 그녀는 남재원과 문명희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만약 남재원이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그녀더러 빨리 임신해 아이를 낳은 후 육씨 가문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육씨 가문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지 않았을 것이다.만약 육성일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남재원은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남초윤은 차갑게 말했다.“이혼은 내 일이예요. 신경 안 써도 되니 사채 빚이나 어떻게 갚을지 고민해 보세요.”말을 마친 남초윤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남재원은 그녀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말했다.“집과 차를 팔면 너는 길바닥에 나앉아야 해! 육지율에게 가서 싹싹 빌어, 그래도 3년 동안은 부부였잖아!”계단을 올라가던 남초윤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부탁할 수 있는데요?”부탁해서 소용이 있다면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 부탁은 유설영과 연락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그런데 소용이 있었는가?앞으로 다시는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을 것이다.남재원은 그래도 체념하지 않고 목을 쳐들며 말했다.“너의 그 친구는? 걔 남자 친구가 SY그룹의 배 대표, 아니야? 배 대표가 육지율보다 돈이 더 많았던 것 같은데, 가서 물어봐? 혹시 알아? 마음이 착한 사람이면 너의 말을 들어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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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육지율이 여자를 잘 달래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특히 침대 위에서는 전혀 아끼지 않았고 그의 입과 돈, 그리고 방탕하게 잘생긴 얼굴 때문에 조금만 달래도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하지만 기분이 나빠 참을성이 없어지면 육지율은 언제든지 상대방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끌어내릴 수 있었다.싫어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은 모두 그의 생각에 달렸다.바보 같은 남초윤은 김성혁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으면서 아직도 교훈을 섭취하지 못하고 또 늑대 같은 육지율에게 마음을 빼앗겼다.이때 갑자기 밖에서 천둥이 치더니 찬바람이 창문을 세게 두드렸다.비몽사몽인 상태일 때 갑자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남초윤은 눈을 뜨지도 않고 바로 받았다.“여보세요?”“자요?”전화기 너머의 육지율은 그녀의 잠기 어린 목소리를 바로 알아챘다.몇 초 동안 넋을 잃은 남초윤은 이내 손을 뻗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아직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실눈을 뜨고 발신자 표시를 본 순간 그 짐승보다 못한 남자임을 확인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네’라고 대꾸했다.“시간이 늦었는데 내가 데리러 갈까요?”“아니요. 내가 운전해서 갈게요.”육지율이 데리러 온 것이 남재원에게 들키면 남재원은 그들 사이가 좋아졌다고 생각해 또 돈을 요구할지도 모른다.아침까지도 말다툼하던 사람이 갑자기 고분고분해지자 육지율은 신기해했다.“갑자기 왜 이렇게 얌전해졌어요? 할아버지가 뭐라고 한 거예요?”남초윤은 입꼬리를 올렸다.“아무 말도 안 했어요.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밖에.”그녀의 말투는 별다른 이상한 감정이 없이 매우 정상적이었다.육지율은 남초윤이 드디어 생각을 정리한 줄 알고 물었다.“그럼 내일 아침 오로라를 보러 아이스란드로 갈래요?”잠깐 멈칫한 남초윤은 이내 말했다.“아니요. 오로라가 뭘 볼 게 있다고요. 설 지나면 일이 많아질 텐데 요즘은 좀 쉬고 싶어요.”전화기 남자의 목소리가 한껏 낮아졌다.“아직도 유설영 일로 나에게 화가 난 거예요?”아무리 화를 내도 육지율은 그저 그녀가 히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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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문명희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윤이야, 아버지가 밖에서 진 빚 때문에 지율 씨와 이혼하려는 거야?”“사채를 썼잖아요. 육씨 집안은 이런 것들을 제일 혐오해요.”“그럼 그 사채를 다 갚으면 지율 씨와 이혼하지 않아도 돼? 이혼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말하면 할수록 문명희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남초윤이 말했다.“나 아직 젊잖아요. 조금 참으면 다 지나갈 거예요. 엄마, 엄마는 아빠와 어떻게 살지 생각하세요. 집을 팔면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 부잣집 사모님의 생활을 할 수 없어요. 대제주시 물가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쩌면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도 몰라요. 아빠가 만약 계속 도박을 한다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담담하게 말하는 남초윤에 문명희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사실 처음에는 남초윤이 낮에 했던 말들이 모두 홧김에 한 말일 뿐이라며 육지율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고 육지율도 예전처럼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문명희는 다급히 말했다.“육씨 집안에서 정말 우리가 죽는 꼴을 볼 거래? 참, 조유진은? 배현수가 육지율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배현수보고 육지율을 설득하라고 하면 안 돼?”남초윤은 그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엄마, 육씨 가문이든 육지율이든 아니면 조유진과 배현수... 그게 누구든 결국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살았어요. 우리를 잠시 도울 수 있겠지만 예전처럼 사치스러운 나날을 계속 보낼 수는 없어요.”남초윤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집을 둘러보더니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이번에는 지율 씨든 유진이든 우리를 도와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빠 설득해서 얼른 이 집을 팔고 빚을 갚으세요. 지금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으니 별장을 사려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히 가격을 낮춰서 빨리 팔아요.”“윤이야...”남초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우산을 쓰고 차에 올랐다.밖에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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