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희는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윤이야, 아버지가 밖에서 진 빚 때문에 지율 씨와 이혼하려는 거야?”“사채를 썼잖아요. 육씨 집안은 이런 것들을 제일 혐오해요.”“그럼 그 사채를 다 갚으면 지율 씨와 이혼하지 않아도 돼? 이혼하면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말하면 할수록 문명희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고 남초윤이 말했다.“나 아직 젊잖아요. 조금 참으면 다 지나갈 거예요. 엄마, 엄마는 아빠와 어떻게 살지 생각하세요. 집을 팔면 작은 집으로 이사해야 하는데 그러면 앞으로 부잣집 사모님의 생활을 할 수 없어요. 대제주시 물가가 만만치 않을 텐데 어쩌면 나가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도 몰라요. 아빠가 만약 계속 도박을 한다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요.”담담하게 말하는 남초윤에 문명희는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생각을 정리하는 듯했다.사실 처음에는 남초윤이 낮에 했던 말들이 모두 홧김에 한 말일 뿐이라며 육지율과 이혼하지 않을 것이고 육지율도 예전처럼 그들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문명희는 다급히 말했다.“육씨 집안에서 정말 우리가 죽는 꼴을 볼 거래? 참, 조유진은? 배현수가 육지율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배현수보고 육지율을 설득하라고 하면 안 돼?”남초윤은 그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엄마, 육씨 가문이든 육지율이든 아니면 조유진과 배현수... 그게 누구든 결국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다른 사람에게 빌붙어 살았어요. 우리를 잠시 도울 수 있겠지만 예전처럼 사치스러운 나날을 계속 보낼 수는 없어요.”남초윤은 미련 가득한 얼굴로 집을 둘러보더니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이번에는 지율 씨든 유진이든 우리를 도와줄 수 없어요. 그러니까 아빠 설득해서 얼른 이 집을 팔고 빚을 갚으세요. 지금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으니 별장을 사려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적당히 가격을 낮춰서 빨리 팔아요.”“윤이야...”남초윤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우산을 쓰고 차에 올랐다.밖에 비
루루를 데리고 차에서 내렸을 때 배희봉이 깜짝 놀라자 선유가 다급하게 말했다.“할아버지, 무서워하지 마세요. 루루는 말을 잘 듣고 사람을 물지 않아요.”그리고 선유를 루루를 보며 말했다.“루루야, 이분은 할아버지야. 할아버지한테 세배해야지.”루루는 앞다리를 들고 육중하게 점프를 했다. 이 모습을 본 배희봉은 웃음을 터뜨렸다.“강아지가 참 재밌구나.”조유진은 차에서 물건들을 가득 가지고 내렸다.“아저씨, 이것들을 받으세요.”“아가씨가 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무슨 선물까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어요.”배현수는 조유진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방으로 들어갔다.“아버지, 호칭을 바꿔야죠. 유진이는 지금 아버지 예비 며느리예요.”배희봉은 이마를 치면서 장난스레 말했다.“이렇게 부르는 게 습관이 돼서 고치기가 쉽지 않네.”방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에는 많은 간식과 과일들이 놓여있었다. 배희봉이 말했다.“앉아서 쉬고 있어. 나는 가서 음식을 준비할게. 선유야,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먹어.”선유는 귀엽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할아버지!”“아저씨, 제가 도와드릴게요.”말하면서 조유진이 따라가려고 하자 배현수가 그녀를 잡았다.“시골에서 음식을 하려면 기름 냄새랑 연기가 많이 나. 너는 가지 말고 있어. 내가 가서 도와주면 돼.”배희봉은 주방의 문을 닫으며 말했다.“둘 다 오지 마. 오늘은 내 솜씨를 제대로 맛보면 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있어!”조유진이 의아해서 물었다.“예전에 아저씨한테 가사도우미를 찾아주지 않았어요? 그분은요?”“아버지가 불편하다고 오지 말라고 하셨어.”배희봉은 아직 몸이 건강해서 홀로 시골에 살면서 마당에는 채소도 많이 심었다. 선유와 루루는 시골에 오자마자 마음대로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둘이 문 앞의 밭에서 뛰어다니며 놀자 강아지가 너무 시선을 끄는 탓에 같은 마을의 다른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선유는 자랑스레 아이들에게 자신의 강아지를 소개했다.조유진은 루루가 낯선 사람을 물가 봐 걱정
저녁을 먹고 나서 배현수 가족들이 떠나려던 때, 배희봉이 조유진을 잡으면서 그녀의 손에 두꺼운 돈 봉투를 건넸다. 조유진은 깜짝 놀라 황급히 거절했다.“아저씨, 너무 많아요. 저는 이걸 받을 수가 없습니다.”배희봉이 웃으며 말했다.“왜 못 받는다고 그래요. 현수랑 곧 혼인신고도 할 텐데, 제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적다고 생각해서 안 받으려는 거예요?”조유진은 배현수를 바라보았다. 배현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받아. 여기는 여기만의 법이 있어. 네가 안 받는다면 아버지는 아마 오늘 저녁에 잠이 들지 못하실 거야.”그제야 조유진은 마음 놓고 받으면서 말했다.“아저씨, 다음에 현수 씨랑 내려올 때는 그렇게 많은 걸 준비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가 손님도 아니고 아저씨를 뵈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근데 현수 씨가 도시로 와서 지내시라고 하는데 왜 안 오시는 거예요?”선유가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할아버지, 혼자서 시골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아빠 집은 크고 방도 많아요. 예삐와 루루도 독방이 있어요!”“아이고, 나는 늙어서 시골에 있는 게 조용하고 좋아. 내 걱정은 하지 마. 아주 건강해!”말하면서 배희봉은 사전 준비했던 돈 봉투를 하나 더 꺼내서 선유의 패딩 주머니에 넣었다.“귀염둥이, 이건 할아버지가 너에게 주는 세뱃돈이야. 절대 아빠한테 주면 안 돼.”“할아버지, 감사합니다!”선유는 거절하지 않고 입꼬리를 올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배희봉은 마을 어귀에 서서 그들의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을 어귀에는 소식통인 마을주민들이 모여있었다. “아이고, 배 씨, 정말 입이 무겁네! 저번까지만 해도 아들이 여자친구가 없고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하더니 이렇게 엄청난 미인을 데리고 왔어!”“우리한테 말을 안 한 이유가 있었네. 배 씨가 아주 꼭꼭 숨겼어!”“배 씨가 아주 복이 있어. 손녀까지 생기고 말이야!”이웃들은 말을 한마디씩 주고받았고 배희봉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산성 별장으로 돌아가는
조유진은 웃으며 말했다.“아빠 말 듣지 마. 아빠가 너 놀리는 거야. 그 봉투는 네 금고에 넣고 있어. 함부로 쓰지만 않으면 돼.”선유는 돈을 다시 넣은 봉투를 주머니에 넣으며 아주 소중하게 다뤘다.“네! 제가 보관하고 있을래요! 저도 이제 커서 엄마처럼 예쁜 아내와 결혼할 거예요!”선유는 예쁜 아내와 결혼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고 여겼다. 조유진이 웃음을 터뜨렸다.“선유는 아내를 맞을 필요 없어. 물론 선유는 데릴사위를 데리고 올 수 있지. 아빠처럼 말이야.”선유는 배현수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리더니 황급히 작은 손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온몸으로 거부했다.“싫어요! 아빠는 너무 무서워요! 숙제만 시키고 공부하라고만 하잖아요! 엄마, 저는 제 아기가 저처럼 힘들게 지내게 하지 않을 거예요!”“...”아이가 좋은 대로 하는 말이지만 말이 되는 부분도 있는 게 신기했다. 배현수가 말했다.“지금 고르기까지 하는 거야?”선유는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내 아내인데 당연히 골라야죠.”...산성 별장에 도착해서 루루가 예삐를 쫓아다니자 예삐는 겁에 질렸다. 선유는 두 손으로 허리를 짚고 루루와 예삐의 중간에 서서 강아지와 고양이의 대전을 말렸다.“그만해!”잠깐 휴전하더니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어린이는 함께 뒹굴었다. 거실에서는 강아지, 고양이와 아이의 소리가 뒤섞여서 들려왔다. 생활의 정취가 부족하던 별장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아늑해졌다.배현수는 선유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조유진을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큰 손은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며 가벼운 웃음을 짓고 물었다.“200만 명 가운데서 고르고 골라야 만날 수 있는 아내인데 언제 혼인신고를 하러 갈까?”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고 시선은 불타올랐다. 조유진은 얼굴과 목이 다 빨개졌고 시선은 배현수의 목젖을 보고 있었다.“아직 혼인신고도 안 했는데 벌써 아내라고 부르는 거예요?”배현수는 시선을 내려 그녀를 보면서 유혹적인 말
배현수가 계속해서 관계를 맺으려 할 때, 문밖에서는 소란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선유가 문 앞에서 소리쳤다.“엄마! 샤워할래요! 샤워하고 나서 부루마블 게임을 할래요!”조유진은 배현수를 밀어내면서 말했다.“선유를 샤워시키러 가야겠어요. 비켜요.”“...”배현수는 조유진의 목에 쓰러지며 한숨을 내뱉었다.“겨울방학이 끝나면 바로 성남으로 돌려보내.”“...”조유진은 웃음을 터뜨렸다.안방 문이 열리고 선유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배현수의 긴 다리였다. 선유의 시선은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다가 고개를 위로 쳐들고 물었다.“아빠, 표정이 왜 또 그래요? 아까까지 기분 좋았잖아요.”배현수는 고개를 숙이고 다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너 때문이야.”“네?”선유는 어리둥절했다. 조유진은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달려와서 말했다.“가자. 엄마랑 가서 샤워하자.”선유는 배현수를 흘겨보더니 조유진의 손을 잡고 욕실로 갔다. 선유는 작은 목소리로 조유진한테 중얼거렸다.“엄마, 아빠는 왜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왔다 갔다 해요? 아빠를 정신과 의사한테 보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욕구불만인 남자들은 성격이 다 좋지 않다. 저녁에 선유는 조유진에게 매달려서 조유진의 목을 안고 잠이 들었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배현수는 조유진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어린아이의 손은 엄마의 목을 너무 꽉 잡고 있어 떼어낼 때 힘이 좀 들었다. 배선유가 7살이 되고 보니 정말 미운 7살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었다. 아이를 성남의 할아버지한테 보내는 게 좋은 선택인듯했다.조유진은 배현수의 품에 엎드려서 잠이 쏟아지는 눈을 거슴츠레 뜨고 웃음을 터뜨렸다.“다른 집은 딸바보다 뭐다 난리인데 우리 집은 왜 둘이 그렇게 안 맞아요?”배현수는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는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뭐라고?”“둘이 안 맞는다고요.”“그 앞에 말.”조유민은 배현수가 묻는 말을 뒤늦게 알아듣고 고개를 돌려
남씨 가문 별장의 문 앞에는 많은 사람과 공무집행 차량이 모여있었다. 남재원은 지금 나가지 않으려고 방안에서 버티고 있었다.“당신들은 내 집을 빼앗아가지 못해! 이건 내 집이야. 당신들이 무슨 근거로 우리 집을 빼앗는 거야?”법원의 직원은 사원증을 보여주면서 말했다.“남재원 씨, 이 집은 예전에 이미 은행에 저당 잡혔습니다. 남재원 씨가 채무를 계속 이행하지 못하고 기한을 늘려줬는데도 기한이 지나도록 채무를 갚지 못했기에 우리는 당신의 집을 회수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협조해주십시오.”남초윤은 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황급히 달려가서 남재원에게 물었다.“언제 집을 저당 잡힌 거예요?”남재원은 우물쭈물하면서 얘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직원이 말했다.“남재원 씨는 지난해 6월에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현금 95억을 대출받았습니다. 현재 96억 현금을 단 한 푼도 갚지 못했기 때문에 대출 이자의 130%에 해당하는 벌금을 지급해야 합니다.”대출 이자의 130%에 해당하는 벌금... 이 말을 들은 문명희와 남초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문명희는 남재원을 때리면서 울며불며 욕을 퍼부었다.“정신 나갔어요? 어떻게 우리 집을 담보로 대출할 생각을 해요! 남재원, 당신 진짜 미친 거예요? 차라리 가서 죽어버려요!”직원이 말을 덧붙였다.“남재윤 씨, 만약 지금 은행의 대출금과 벌금을 지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바로 돌아가고 당신의 집에 대해 법적 경매를 진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갚지 못한다면 이 집은 법적인 경매 절차에 들어가게 되고 경매에서 낙찰된 금액으로 은행의 대출을 갚을 것입니다.”남재원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남초윤을 잡고 얘기했다.“육지율의 외할아버지가 이 부분의 법적 분쟁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 않았어? 얼른 육지율에게 전화해서 사람을 찾아 얘기 좀 해달라고 해! 대출을 갚아주지 못하더라도 법원에 얘기해서 우리한테 방법을 생각할 시간을 며칠 더 달라고 해!”남초윤은 그를 째려보았다.“며칠 더 주면 갚을 돈이 생겨요?”이 지경
법원 관계자들이 문 앞에 붙은 테이프를 떼고 물러났다. 남재원은 배현수를 보더니 어두웠던 눈빛이 갑자기 밝아지며 마치 구명줄이라도 잡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배 대표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역시 대표님이세요! 대표님 한마디에 모두 떠나버리다니, 몇 마디만 더 하셨더라면, 그럼 이 집은…” 남재원의 엉큼한 속셈을 눈치챈 남초윤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 “며칠 더 유예기간을 준 거지, 집을 돌려주는 게 아니에요! 날로 먹을 생각 하지 마세요!”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문명희는 눈물을 닦으며 서둘러 맞이했다. “배 대표님, 진아 씨, 편하게 앉으세요. 차 한 잔 타 드릴게요.” 유진아가 말했다. “이모님, 그러지 마세요. 우선 집부터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재원은 배현수의 비위를 맞추며 담배 한 대를 건넸다. “배 대표님, 담배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배현수는 차갑게 거절했다. “담배 끊었습니다.” 남재원이 불붙이려는 순간 남초윤은 그의 담배를 꺼버리며 말했다. “아이들도 있어요. 피우려면 나가서 피세요!” 선유는 루루를 잡은 채 둘은 눈을 크게 뜨고 남재원을 바라봤다. 남재원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이구, 이 강아지 사람은 안 물겠지?” 선유는 입술을 오므리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루루는 착한 사람은 안 물지만 나쁜 사람은 물어요.” 루루는 남재원을 향해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왕!” 남재원은 놀라서 몇 걸음 물러나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해하지 마, 나 나쁜 사람이 아니야! 배 대표님, 대표님을 닮아서인지 아이도 대담하네요. 이렇게 큰 개를 키우다니, 정말, 너무 귀엽습니다!” ‘귀엽긴, 무서워 죽을 뻔했네.’‘한입에 사람도 먹어 치우겠다!’배현수는 가볍게 꾸짖었다. “배선유, 장난치지 마.” 선유는 짧게 대답하고 목줄을 잡은 채 조유진 옆에 얌전히 앉았다. 문명희는 남재원을 향해 눈짓했다. “여보, 멍하니 서 있지 말고 배 대표님께 차도 타 드리고
“그런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초윤 씨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 소란을 피울 수도 있어요. 그럼 초윤 씨도 계속 일하기 어려울 거예요. 만약 감당하기 힘드시면 제 생각엔 육지율한테 나서서 깔끔하게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배현수는 매번 현실적으로 이야기했다.남재원의 이런 지저분한 문제들은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완벽히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위와 인맥이 필요하다.은행 빚은 그래도 해결하기 쉬웠다. 최악의 경우, 집을 경매로 넘겨도 낙찰 금액으로 대출금을 갚기에 부족하면 부실 채무로 끝날 뿐이다. 하지만 남재원이 은행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수억 원을 현금화한 이유는 도박 때문이다.빚을 독촉하는 양아치들은 규칙이라고 없다. 가족 간의 관계는 안중에도 없이 본인이 빚을 갚지 못하면 딸을 찾아가 갚으라고 한다. 딸도 갚지 못하면… 팔을 자를지 다리를 자를지 선택하라는 식이다.특히 호성시 쪽 사채업자들은 보통 인맥으로 해결하기 어렵다.호성시는 도박이든 사채든 모두 합법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배현수도 분명 남 씨 집안의 골칫거리를 처리할 능력이 있지만 그의 신분과 입장은 참으로 애매하고 민감한 상황이었다.육지율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친구의 아내를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서 집안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남초윤은 고개를 내리더니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조유진은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육 변호사남도 알고 있어?”남초윤은 눈에 서린 감정을 애써 숨기며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알 필요 없어. 나도 알리고 싶지 않고. 걱정 마, 육 씨네 할아버지께서 도와주기로 약속했어. 깨끗하게 처리해 주겠대.”조유진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럼 할아버지께서 아무런 조건도 안 걸었어?”예를 들면, 대가로 이혼한다거나, 아니면 아이를 낳는다거나?그들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감정보다는 등가 교환을 더 좋아하는 법이다.남초윤은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