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언젠가 다시 만나요: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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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전화기 건너편에서 선유를 향한 배현수의 부드럽고 인내심이 넘치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아빠는 내일 온라인 회의가 있으니 엄마랑 같이 가. 아빠가 서정호 아저씨보고 데려다 주라고 할게.”배현수의 말에 선유는 조금 실망한 듯 입을 삐죽이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시금 기운을 차리고는 입을 열었다.“그래요, 아빠. 그럼 다음에 꼭 우리와 같이 가줘야 해요!”배현수는 낮은 목소리로 간단히 응하고는 더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선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계속하여 조유진과 통화를 이어갔다.“엄마, 우리 내일 몇 시에 만날까?”“음... 선유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겠어?”선유는 아침에 늦잠을 자기 좋아했기에 항상 늦잠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그 때문에 선유의 카톡 아이디마저도 ‘학교 가기 싫어'였다.“학교에 갈 때는 못 일어나지만, 내일은 엄마와 만나는 날이기 때문에 8시에도 일어날 수 있어!”선유의 자신만만한 말에 조유진이 참지 못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그러면 내일 8시에 만나자.”“오예! 내일이면 엄마 만날 수 있다! 엄마, 나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엄청 많아.”선유의 귀여운 목소리를 듣다 보니 조유진의 눈가가 점차 젖어 들기 시작했다.“엄마도 선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엄청 많아.”한참 동안 이어진 통화끝에야 전화 건너편의 녀석이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겨우 전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핸드폰 속에서 전화가 끊겼음을 알리며 울리는 ‘뚜-뚜-뚜’ 소리를 들으며 조유진은핸드폰을 손에 꼭 움켜쥐고는 오랫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조유진은 더는 이 세상에 별다른 미련이 남지 않았다. 하지만 선유만큼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미련이었다.시간이 흐르고 조유진은 결국 핸드폰을 다시 내려놓고 계속하여 책상 앞에 앉아 유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펜을 들고나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녀에게는 더는 할 말조차 없음을 깨달았다.‘무슨 말을 하지? 배현수더러 선유 잘 부탁한다고, 선유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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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그들은 육개장과 떡볶이, 그리고 튀김을 주문했다.선유가 입에 기름칠을 가득 묻히고는 조유진에게 물었다.“엄마, 나 정말 아빠 친자식 맞아?”“뭐?”선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유진은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깜짝 놀라 물었다.“난 완전 수다쟁이인 데다가 떡볶이, 튀김을 좋아하는데 아빠는 집에서 종일 몇 마디 안 하신단 말이야. 엄마, 아빠 좀 비정상이지?”그 말에 조유진은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네 아빠는 성격이 줄곧 내향적이었어. 너와 아빠가 단둘이 집에 있을 때 심심하면 아빠한테 찾아가서 얘기해. 아빠가 놀아주실 거야.” “정말? 아빠는 마치 얼음장 같으셔서 아무 말 없이 혼자 앉아서 일하실 때는 엄청 무서워. 게다가 아빠는 다른 사람을 해고하기도 한다고. 엄마, 아빠가 나 해고해버리면 어떡해?”선유의 과장되고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조유진은 푸흡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선유는 아빠 딸인데 아빠가 널 어떻게 해고하시겠어.”조선유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더니 팔짱을 끼고는 배현수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넌 이 일을 맡으면서 결과도 생각 안 해? 구체적인 방안이 어떻게 겨우 한 장짜리 계획일 수가 있어? 이 계획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어?”녀석의 흉내는 제법 배현수의 모양새를 갖추었다.조유진이 배를 부여잡고 숨이 넘어갈세라 웃음을 터뜨렸다. 배현수가 집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앞에 훤히 그려지는 느낌에 도무지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이어 선유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또 배현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선유야, 거기 서서 뭐해? 저녁은 뭐 먹고 싶어? 잠자기 전 이야기? 난 그런 거 할 줄 몰라. 나 상대하기 싫으면 마음이 바뀔 때 다시 나한테 얘기해.”조유진은 너무 웃어 숨이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네 아빠가 너무 정직한 사람이라서 그래. 사람을 달랠 줄 모르거든.”조선유가 한숨을 푹 내쉬며 작은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하... 아빠는 나와 이 몇 마디밖에 할 줄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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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관람차가 천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선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관람 차를 타보는 것이었기에 기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며 관람차 안에 앉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한편, 조유진은 관람 차를 타자 배현수와 첫 데이트를 하던 날에도 관람 차를 탔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다.선유가 관람차가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이 말은 6년 전, 18살이었던 조유진도 굳게 믿었었다.당시 관람차가 정점에 다다랐을 때 조유진은 배현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그때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조유진은 그녀와 배현수의 연애가 반드시 결실을 보리라고 생각했었다.앞으로 그들은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도 낳을 것이며 검은 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 서로의 곁을 지키며 함께 할 것이다.와중에 웃긴 건 확실히 둘만의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바램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하지만 결혼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하는 것... 곧 죽을 운명에 놓인 조유진에게 있어 여생이란 존재하지 않았기에 파 뿌리는 존재할 수가 없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관람차는 어느덧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선유가 갑자기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더니 조유진의 볼에 쪽 뽀뽀를 하며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엄마, 난 엄마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영원히...선유를 바라보던 조유진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선유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동시에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조유진은 선유의 얼굴을 품에 묻고 턱을 그녀의 작은 고개 위에 기대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아가야, 앞으로 엄마가 곁에 없어도 항상 즐겁고 행복해야 해. 아빠가 조금 차갑고 말을 잘 안 하더라도 너무 미워하지는 마. 아빠도 선유 많이 사랑하니까 선유도 아빠와 잘 지내야 해. 표현하는걸 어려워할 뿐이지 아빠의 사랑도 결코 엄마보다 작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아빠한테 말하면 돼. 아빠는 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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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조유진의 말을 듣자 일리가 있다고 판단한 선유가 결국 타협했다.“그래. 내가 감자 갈비찜을 갖고 가서 아빠와 함께 먹을게.”그렇게 서정호가 선유를 데려가고 조유진은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선유가 없는 집안은 그저 쓸쓸하기만 했고 조유진의 마음 역시 텅 빈 것만 같았다....산성 별장 안. 선유가 한 손으로 러버덕을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감자 갈비찜을 들고 돌아왔다.마침 배현수도 식탁 앞에 앉아있었고 그의 앞에는 풍성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아빠, 저 왔어요!”선유의 밝고 귀여운 목소리를 듣자마자 배현수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조선유는 천 주머니를 들고는 잔뜩 신이 난 모습으로 뛰어와 이 기쁜 소식을 배현수와 공유하기 시작했다.“아빠, 제가 엄청 맛있는 것을 가져왔는데 아빠 혹시 저녁 드셨어요?”“아직 안 먹었어. 너 기다리고 있었지.”음...선유는 사실 이미 저녁을 먹고 왔다.하지만 상관없었다. 야식으로 한 끼 더 먹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이건 뭐야?”“이건 엄마가 해준 감자 갈비찜이에요. 엄청 맛있어요! 아빠, 제가 특별히 아빠와 함께 먹으려고 갖고 온 거예요. 빨리 드셔보세요.”배현수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기대로 가득 찬 선유의 얼굴에 도무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결국, 배현수는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들어 감자 하나를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다.오랜시간 끓인 듯 감자는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다.“아빠, 맛있어요?”“응. 맛있어.”“그럼 갈비도 하나 드셔보세요.”그렇게 배현수는 갈비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갈비 위에 붙은 고기가 매우 감칠맛이 돌았다.예삐도 고기 향을 맡고는 우아한 고양이 발걸음으로 다가왔다.선유가 치즈 고양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예삐야, 너도 감자가 먹고 싶어?”‘야옹.’ 예삐는 고기가 먹고 싶었다.“하지만 안돼. 이건 엄마가 아빠 드시라고 만들어 주신 거란 말이야. 넌 먹으면 안 돼.”선유의 말을 듣자 배현수의 동공이 잠깐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눈빛이 변했다.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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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1호동, 대표 사무실.서정호는 마케팅 부문 과장의 전화를 받은 뒤 황급히 문을 박차고 사무실 내부로 달려갔다.“대표님, 아가씨께서 사직서를 내셨다고 합니다.”책상 위에 쌓인 서류에 고개를 파묻고 일에 집중하고 있던 배현수의 눈빛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왔다.배현수는 시선을 컴퓨터 모니터에 고정한 채 미지근한 어투로 덤덤하게 말을 꺼냈다.“항상 제멋대로 오고 가고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놀라울 것도 없어.”“그럼... 아가씨께서 퇴사하시려는 일은...”“신경 쓰지 마.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보름 전부터 조유진은 배현수의 눈 밑에서 대놓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한 사람의 마음이 이미 이곳을 떠났는데 상대방의 몸을 붙잡아 두고 있는 건 헛수고와 다름없었다.서정호는 자신의 눈앞에 앉아있는 회사대표의 속내를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전임 마케팅 부서 과장인 진우민이 사고를 친 후 배현수가 직접 나서 새로운 과장을 뽑아 마케팅 부서에 파견했다.그러고는 당시 마케팅 부서 직원들을 달래주기 위함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었다.하지만 고위층도 아닌 마케팅 부서의 일개 과장일뿐일 텐데 배현수가 굳이 직접 나서서 뽑았어야 했는지가 의문이었다.배현수의 선택 속에 대체 얼마나 많은 본인도 알아채지 못한 사심이 들어갔을지는 서정호도 알 리가 없었다.새로운 과장이 선임한 뒤부터 조유진의 회사생활은 말 그대로 정말 평화로워졌다.그런데 조유진이 지금 퇴사를 하려는데 배현수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하지만 이 또한 결국 배현수의 개인감정이었기에 외부인인 서정호가 곁에서 왈가왈부 할 처지는 되지 못했다. 서정호가 사무실을 나가고 컴퓨터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현수의 시선이 점차 초점을 잃어가더니 그대로 허공에서 흩어졌다.그렇게 결국 멍하니 그 자리에서 한참 멍을 때렸다.배현수는 노트북을 덮고 책상 서랍을 열어 담배 한 갑을 잡으려 했다.그러자 서랍 안에 놓여 있던 전에 찢어놓았다가 다시 붙인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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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조유진의 강력한 요구에 배현수는 그녀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그 후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조유진은 당시 배현수가 보냈던 음성 메시지들을 전부 녹음해 두어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귀에 걸어놓은 이어폰 속에서 배현수의 부드럽고 인내심이 깃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아직 안 끝나서 좀 이따 데리러 갈게.”“왜 갑자기 배가 아플까? 지금 바로 갈게.”“조개구이가 먹고 싶다고? 저녁에 갈 때 사서 갈게.”“자기야, 자기가 좋아하는 밀크티 사 왔어. 잠깐 내려와 봐.”...당시 사소한 일상들이 조유진의 눈시울을 붉혔다.조유진은 한참 동안 녹음을 듣다가 마지막 음성 메시지를 클릭했다.“자기야, 나 사랑해?”“응. 사랑하지. 엄청나게 사랑해.”“유진아, 나 이제 너밖에 없어. 날 떠나지 마.”“자기야, 난 자기가 갖고 싶은 거 다 줄 수 있어. 조금만 시간을 주면 이 세상의 모든 걸 다 가져다줄게.”이건 배현수가 한 번 술에 취해 조유진을 끌어안고 그녀의 귀에 매달리며 해준 말이었다.배현수는 성격이 차갑고 내성적이었기에 이렇게 직설적으로 고백을 하는 경우가 매우 적었다.사랑이 백이라면 배현수는 줄곧 절반 정도만 표현하곤 했었다.하지만 술에 취해 감정이 통제되지 않을 때 배현수는 그녀의 이마에 맞대고 한번, 또 한 번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했다.그러나 이 또한 모두 지난 일이었다.얼마나 들었는지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조유진은 이어폰을 빼고 휴대폰을 도로 가방 안에 넣고는 버스에서 내렸다....충남시 법원.“뭐라고요? 진술을 번복하시겠다고요?”법원장이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조유진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지만 조유진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법원장님, 6년 전 충남 법원에서 뺑소니 교통사고 사건에 관한 재판이 열렸었는데 당시 제가 증인으로 법정에 섰었습니다. 조범 시장님 권세의 압박하에 제가 어쩔 수 없이 거짓 증언을 하게 되었죠. 그 사건의 피해자는 유성진이었고 판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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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조범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충남 법원에 도착했다.사무실에 도착한 뒤 보이는 조유진의 모습에 조범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조유진도 눈앞에 나타난 조범의 모습에 이미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현재 충남시는 조범의 담당하에 충남시의 모든 사람이 조씨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으니 법원장이 조유진의 등장을 조범에게 알렸다는 것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유진아, 지금 이게 무슨 짓이니? 왜 여기까지 와서 헛소리하고 그래? 충남에 돌아왔으면 집으로 올 것이지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집에 가자.”말을 이어가며 조범이 조유진을 잡아당기려 손을 뻗었다.그러나 조유진은 결코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겠죠.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말이 헛소리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지 않겠어요?”이번만큼 조유진은 결코 소란을 피우려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그녀는 이미 이 모든 일을 각종 언론사들에게 털어놓았었다.곧이어 조범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것이고 만약 정말 이 일이 모두 폭로된다면 조범의 시장 자리도 곧 위태로워지고 말 것이다.그렇다면 조씨 가문 전체가 함께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조유진 역시 이 사건의 ‘범인’ 중의 한 명으로서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조범은 법원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먼저 나가보세요. 얘가 제 딸인데 그냥 소란 피우러 왔나 봐요. 업무를 방해해서 정말 죄송합니다.”그러자 법원장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됐습니다. 시장님, 부녀 사이에 화는 내지 마시고 잘 얘기해보시기 바랍니다.”모든 외부인이 자리를 뜨자 사무실 안에는 조유진과 조범,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그러자 조범은 부드러운 어투로 조유진을 달래기 시작했다.“유진아, 너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 이 일은 이제 6년이나 지났어. 인제 와서 소란 피우면 뭐하니? 배현수는 이미 3년 동안 감옥에 있었고 네가 지금 그를 위해 진술을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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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그러나 조유진은 조범의 말을 믿지 않았다.“조 시장님, 시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말 못 하는 말이 없네요.”“정말이야! 난 널 속이지 않아! 배현수는 단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이 없어. 배현수는 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배현수가 정말 너를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해?”순간 조유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배현수의 아버지 육성준이 그해 나와 함께 창업하다가 나중에 운이 나빠 그렇게 죽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육씨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내가 범인이라고 의심하고 있어. 유진아, 내가 아무리 못돼도 설마 내 친구까지 죽여버리겠어?”조유진은 그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채 무뚝뚝한 얼굴로 조범을 응시했다.“당신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너... 너 이놈 자식, 소란 피우지 말고 당장 나와 집에 가. 그 배현수 아니, 육현수는 우리 집안 원수야. 앞으로 멀리하도록 해! 너만 괜찮다면 선유도 데리고 충남으로 돌아와. 요 몇 년 동안 너희 모녀 밖에서 고생 많이 했을 텐데 조씨 집안에 돌아오면 그래도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다른 수법이 먹히지 않자 조범은 감정 패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유진은 이미 조범의 가스라이팅에 습관이 되었는지라 조범의 카드는 조유진에게 먹히지 않았다.이들은 모두 인자하고 정의로워 보이는 조범의 가면이었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조범의 목적은 결국 시장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눈앞의 중년남성은 그녀의 친아버지 이다.비록 지금까지 조유진에게 사랑을 준 적이 거의 없었지만 막상 자신의 손으로 직접 친아버지를 망치려니 조유진 역시 마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하지만 더는 조범이 계속하여 악행을 저지르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소용없어요. 제가 당신을 따라 집에 간다고 해도 이제 곧 사직당하고 조사를 받게 될 거예요.”조유진의 말에 조범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무슨 짓을 한 거야?”조유진은 그저 담담하게 미소를 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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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저녁 8시.배현수는 사무실에 앉아 줄곧 떠나지 않았다.그때 핸드폰이 울리고 다름 아닌 산성 별장에서 걸려온 전화였다.“아빠, 야근하세요? 왜 아직도 집에 안 오세요?”서랍 안에 들어있던 작은 그림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배현수의 싸늘한 눈빛이 순식간에 사르르 부드럽게 녹아내렸다.“응. 오늘은 좀 늦을 것 같아. 저녁은 혼자 먹어.”“전 이미 저녁 먹었어요. 오늘 장 셰프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반찬 잔뜩 해주셨어요. 심지어 튀김도 해주셨다니까요!”“선유야.”배현수의 낮은 목소리가 선유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울렸다.“아빠, 왜요?”“너 전에 네 이름이 선유인 이유가 엄마가 나를 무척 그리워해서라고 했었나?”“맞아요! 엄마가 저한테 아빠를 엄청나게 사랑하신다고 하셨어요. 아빠가 곁에 계시지 않는 그 몇 년 동안 저보다도 아빠가 더 그리웠다고 하셨는걸요.”침묵이 몇 초간 이어지더니 배현수가 담담하게 답했다.“응. 알겠어.”선유와의 전화가 끊긴 뒤 배현수가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육지율은 배현수의 전화를 받은 뒤 놀랍지도 않다는 듯 전화가 통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이 늦은 시간에 설마 같이 조유진을 데리러 충남에 가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난 그저 선유가 속상한 게 싫을 뿐이야.”“하, 배현수 넌 진짜... 아까 남초윤이 미친 듯이 선유한테 전화를 걸어서 선유 더러 너한테 조유진을 구해달라고 빌게 하려는 걸 겨우 막았더니 이젠 네가... 넌 정말 그냥 조유진한테 완전히 빠져버렸구나.”“15분 줄게. 그룹 건물 밑에 나 데리러 와.”“이런 젠장...”이 늦은 밤에 배현수와 함께 사람 데리러 충남 법원에 가야 한다니.전화를 끊은 육지율이 옷방으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남초윤은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와 육지율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보자 싸늘하게 물었다.“이 야밤에 그렇게 꾸미고 어딜 나간대? 여자 꼬시러 가요?”“내가 여자 꼬시러 나갈 새가 어디 있어요? 배현수도 정말 미쳤지. 이 야밤에 나더러 자기와 함께 충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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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그러게요. 유진이가 구속당할 필요도 없고 감옥에 갈 필요도 없다면 현수 씨는 왜...”배현수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무뚝뚝한 얼굴로 해명했다.“선유가 갑자기 울며 오늘 밤 조유진이 보고 싶다고, 못 보면 절대 잠을 자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데 무슨 수가 있겠어.”그러자 육지율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조유진을 못 봐서 못 잔다는 사람이 정말 선유인 거야 아니면 너인 거야?”배현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운전이나 해. 쓸데없이 말만 많아서는.”남초윤은 뒷좌석에 기대앉아 배현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배현수, 생각보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적어도 조유진한테만큼은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 듯했다.그때 육지율이 입을 열었다.“근데... 그러고 보니 조유진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모험했네. 조범이 어떤 짓을 할지 무섭지도 않나? 조범이 충남시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패권을 차지했었는데 이번에 직무가 정지당하고 조사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충남시에서 쌓아온 두터운 인맥을 보면 얼마 안 지나 바로 풀려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그저 조사만 받을 뿐이겠지. 내 보기엔 이번 일로 조범 절대 안 무너져.”“조범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유진이가 앞으로 위험한 거 아니야? 유진이 친아빠, 그 인간은 원한이 있으면 무조건 갚는 인간이야. 절대 착한 인종이 아니라고!”그때 조수석에 가만히 앉아있던 배현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내가 절대 그놈에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지난달 인천 중구 월미도에 간 이유도 바로 그해 사건의 증인인 여정민을 데려오기 위함이었다.여정민은 전에 성빈 그룹에서 청소부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사무실에서 육성준이 조범과 말다툼을 하는 과정에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하며 약을 가지려 하자 조범이 약병을 발로 차버린 것을 똑똑히 보았었다.이는 엄연한 고의적 살인이었다.만일 살인죄가 성립된다면 사형이거나 무기징역은 확정된 셈이다.그때 육지율이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뗐다. “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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