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언젠가 다시 만나요: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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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SY 판매팀으로 돌아간 조유진은 컴퓨터를 열어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사직서」계속 써 내려가려고 했을 때 옆에 있던 동료가 흥분하면서 말했다.“방금 단톡방에서 이번 주에 지리산에서 워크숍 한대요! 지리산 호수공원 캠핑장 정말 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가볼 수 있게 되었네요!”“저번 회사창립 기념일에 워크숍에 대해 언급하지 않길래 저는 올해 워크숍이 없을 줄 알았어요.”“유진 씨는 참 운도 좋아.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워크숍도 가보고.”조유진은 작성하려던 사직서를 꺼버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북한산 캠핑장 재밌어요?”“그럼요. 거기 호수도 엄청 넓고 바다같이 맑아서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올 거예요.”‘바다같이...’조유진은 끌리기 시작했다.지금까지 살면서 바닷가도 가보지 못한 촌놈이었다.예전에는 나이가 어려서이기도 했고 조씨 가문에서 잘해주지 못한 것도 있었다.나중에는 배현수와 헤어지고 조선유도 생기면서 생활의 무게로 더욱이 여행을 갈 기회가 없었다.죽기 전에 바다 같은 호수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워크숍이 끝나고 사직서를 내려고 다짐했다.조유진이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신준우였다.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에 있는 복도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선생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신준우가 대제주시를 떠난 이후 처음 하는 통화였다.“아무 일도 아니에요.”그냥 조유진이 보고 싶어서 전화했을 뿐이었다.신준우는 쑥스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보고 싶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조유진이 물었다.“서울병원에서 습관은 되세요?”“방금 왔을 때는 습관이 안 되었었는데 한 달이 지나니까 많이 적응되었어요. 참, 유진 씨는요? 잘 지냈어요?”“저는 그대로죠. 뭐.”전화기 너머의 신준우는 몇 초간 망설이더니 그래도 그녀에게 미리 알려주리라 다짐했다.“깜짝 놀래주려고 했는데 유진 씨 목소리를 들으니까 더는 숨기지 못하겠네요.”“뭔데요?”“그게... 저희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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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조선유가 산성 별장의 전화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최소 한 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아빠가 주말에 만나는 것을 동의했다고 말했다.통화를 마치고, 결국 미련이 남는지 창문을 닫았다.조선유가 곁을 떠난 일주일간,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별거 없는 인생이었지만 주말에 딸을 만나는 것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동기가 될 수 있었다....곧 관광버스가 지리산 근처에 도착하고, 옆에 있던 동료가 그녀를 깨웠다.“유진 씨, 그만 자요. 지리산 다 왔어요. 이제 내려야 해요.”조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호수를 마주하게 되었다.그전까지만 해도 동료가 지리산 호수가 바다 못지않게 아름답다는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보니 정말 바다와도 같았다.차에서 내리자 시원하고 산듯한 호수 바람이 불어왔다.교외는 시내보다 시원했고 더욱이 오늘은 햇빛도 강렬하지 않아 날씨가 아주 적당했다.지리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이라 각 팀은 호숫가에서 바비큐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조유진은 산에 가서 땔감을 찾아와야 했다.땔감을 한 웅큼 안고 돌아가려다 배현수 일행과 마주하게 되었다.육지율과 강이찬, 강이진도 함께 있었다.강이진은 조유진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유진 씨, 땔감이 다 젖었는데 불이 붙겠어요?”조유진은 텅 빈 그녀의 두 손을 보더니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말랐든 젖었든 일단 줍긴 했잖아요. 빈손인 강이진 씨보단 낫죠.”“너...”강이진은 지난번 일로 조유진을 더 증오하게 되었다.“퍽!”강이진은 조유진이 품에 안고 있던 땔감을 손으로 툭 내리쳤다.며칠 전 배현수가 조선유만 받아들이고 조유진에게는 자식 덕에 팔자 고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배현수 앞에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었다.조유진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조유진이 그래도 아이 엄마인데 이 정도로 냉철한 걸 보면 조유진을 미워하는 것이 틀림없어.’조유진을 괴롭히는 것이 배현수 대신 복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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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조유진은 눈썹을 움찔하더니 강이찬의 손에서 약 봉투를 낚아채고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비타민이에요. 어디 아픈 데 없어요.”강이찬은 바보가 아니었다.“유진 씨, 제가 비타민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줄 알아요?”“믿고 싶은 대로 믿어도 좋아요.”조유진은 땔감을 안고 뒤돌아 캠핑장으로 돌아갔다.더는 배현수 일행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오랫동안 이 약을 먹지 않았지만, 어제저녁 조선유가 주말에 만나자는 말에 요 며칠 약을 먹으면서 컨디션을 조절하려고 했다.안 좋은 얼굴로 조선유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죽기 전에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주고 싶었다....캠팽장에서 사람들은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판매팀과 멀지 않은 곳에 앉아있던 강이찬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유진을 바라보았다.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에 아까 약 봉투에 쓰여있던 약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우울증 치료제라니.’순간 멈칫하더니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강이진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오빠, 바비큐 먹어. 핸드폰으로 뭘 보고 있는데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강이진이 보려고 하자 바로 화면을 잠그고 핸드폰을 거뒀다.“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바비큐 먹으러.”고위층은 파라솔 아래에 모여있었다.다른 팀원들은 고위층에게 권하려고 이미 구워놓은 바비큐를 들고 왔다.그중에는 남자직원도 있었고 여직원도 있었다.극히 정상적인 일이었지만 여자직원이 바비큐를 들고 오자 강이진은 불쾌했는지 바비큐를 먹으면서 비아냥거렸다.“무슨 사심이 있어서 자꾸 여기를 와?”바비큐를 들고 오던 여직원은 강이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강이찬의 여동생인 줄도 모르고 그녀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고위층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반격했다.“이봐요. 그쪽도 저희가 구워놓은 바비큐를 드시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이 구운 것을 먹기 싫으면 직접 구우시던가요.”강이찬의 손에서 곱게 자란 강이진은 이런 말을 듣고 차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그깟 바비큐 안 먹어! 누가 먹고 싶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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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그래요.”카톡을 추가한 강이찬이 백만 원을 계좌 이체해주자 여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말했다.“사장님, 제 치마 백만 원 안 해요. 너무 많이 보내주셨어요.”“괜찮아요. 제 마음이에요. 얼른 식사하러 가보세요.”여직원은 기쁜 마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옆에 있던 육지율이 캔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이찬아, 너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바로 계좌 이체해도 되는데 친구추가는 왜 했어.”강이찬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여직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저 좋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익숙해서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것이다.“괜찮아. 친구 추가해도 문자 안 보내면 되지.”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던 배현수가 갑자기 강이찬에게 말했다.“이진이 성격 좀 고쳐야겠어. 고치지 못하겠으면 우리 회사 떠나라고 해.”말투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았지만, 위엄과 포스가 넘쳐났다.“알았어. 내가 말해볼게.”배현수는 이런 일로 농담할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바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그리고 강이찬도 여동생이 SY그룹에 남아있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강이진이 SY그룹에 남아있는 이상 배현수만 만나면 사심이 드러나기 일쑤였고 도가 지나치면 잘못된 길에 들어설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강이진이 아니라 조유진이었다.배현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결국 참기로 했다.그가 더는 조유진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 신경 쓰고 싶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이다.배현수가 조유진의 우울증을 모르고 있는 것은 조유진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저 말을 아끼기로 했다....저녁이 되자 호수는 더욱 아름다워졌다.붉은 노을이 길게 드리워져 호수 면을 붉게 물들였다.조유진은 사람들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사람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핸드폰을 꺼내 호수경치를 찍기 시작했다.호수의 끝이 바로 지리산이었고 산속에는 절이 있었다.오기 전에 미리 검색해보았더니 정취암에서 소원을 빌면 많이들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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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산속은 시내보다 날이 더 빨리 어두워졌다.조유진이 산꼭대기에 있는 정취암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7시가 되었다.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부처님 앞에서 두 손 모아 합장을 하고서 염원을 담아 소원을 빌었다.조선유가 무탈하게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랐고 또 배현수가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새로운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세 번째 소원으로는 안정희가 건강하게 말년을 보내다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딱 이 세 가지 소원만 빌었다.딸과 배현수, 그리고 엄마를 위해 기도했지만... 자신은 까맣게 잊었다.그렇게 무릎 꿇고 한참 동안 기도했다.이때 법의를 입은 한 스님이 걸어오더니 말했다.“오랫동안 여기 계신 것 같은데 무슨 고민이 있으신지요? 저희가 오늘 이곳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부적을 하나 추첨할 기회를 드리지요.”조유진은 사실 이런 것을 별로 믿지 않았지만 죽게 된 마당에 혹시라도 부처님이 불쌍하게 여겨 소원을 이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여러 장 뒤집혀 있는 부적 중에서 한 장을 뽑아보더니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스님, 제가 운이 안 좋아서 별로 좋지 않은 부적을 뽑았나 봅니다.”스님은 부적을 확인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나쁜 부적을 뽑았다고 해서 운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이는 것이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군요. 가끔은 내려놓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련을 많이 가질수록 욕심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스님.”“앞으로 인생에서 갈 길도 먼데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욕심을 버리면 마음속 응어리도 없어질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많으면 오히려 많이 잃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무소유이기 때문에 욕심을 버려주세요.”조유진은 스님 따라서 중얼거렸다.“욕심을 버리면 마음속 응어리도 없어지니라...”“맞습니다.”조유진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그런데 스님,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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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한밤중, 산속은 습한 데다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조유진은 두 시간 가까이 호숫가에 앉아있었다.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서서히 호수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수심이 점점 깊어지고, 종아리까지 잠기던 물이 무릎까지 잠기게 되고...조선유가 호수 중심에서 웃으면서 엄마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너무 보고 싶어서 가까이 가서 안아주고 싶었다.그렇게 점점 더 수심이 깊은 곳으로 빠져들면서 허벅지까지 잠기게 되었다.이때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유진!”조유진은 순간 정신을 차리더니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았다.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숨이 목젖까지 차올라 헐떡이면서 어딘가 조급해 보였다.조유진은 그 사람이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았다.그 남자가 입고 있던 검은 셔츠는 어둠과 함께 점점 빗물에 적셔졌다.성큼성큼 다가가기까지 조유진은 호수 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가까이 다가와서야 누군지 똑똑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눈이 마주치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 바라만 볼 뿐이었다.배현수는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혼자 여기 있어?”“혼자 돌아다니다 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몰랐어요. 관광버스가 이미 떠난 줄도 몰랐어요.”“그럼 왜 호수에 빠진 건데?”“더워서요. 제가 더위를 못 견디는 거 아시잖아요.”조유진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듯이 아주 평온하게 대답했다.배현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내고 싶어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그렇게 한참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현수은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더니 조유진의 손을 꽉 잡고 호수 밖으로 걸어 나갔다.두 사람은 온몸이 흠뻑 젖었다.배현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매주 선유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약속할게.”마지막 양보와 타협에 조유진은 동공이 흔들렸다.이때,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배현수의 차가 산 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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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배현수는 방 카드를 들고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조유진이 그 뒤를 따랐다.방에 도착해서야 야릿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라는 것을 확인했다.조유진은 물침대를 보더니 말했다.“저는 소파에서 잘게요.”침대를 양보하기로 했다.아무 말도 하지 않던 배현수는 흠뻑 젖은 그녀의 옷을 보더니 말했다.“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해.”작은 모텔이라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조유진은 어지러운 느낌에 후딱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샤워실에서 나오려던 순간, 가슴이 아파 나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콜록콜록...”결국, 피를 토해내고 말았다.조유진은 세면대에 묻은 피를 보더니 동공이 확장되었다.고개 들어 거울을 보았을 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마치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배현수는 심각한 기침 소리에 샤워실 문을 두드렸다.“일회용 수건은 밖에 있어.”“네. 알았어요.”조유진은 얼른 물을 틀어 세면대에 묻은 피를 씻어내렸다.얼굴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몇 번이고 냉수 마찰해서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그렇게 어질어질한 상태로 욕실을 벗어나자 배현수가 마른 수건을 건넸다.“머리부터 말려.”방금 샤워해서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수건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의 손가락을 터치하게 되었다.배현수는 이상하리만큼 유난히 차가운 그녀의 손 온도에 미간을 찌푸렸다.“어디 아파?”“아니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따뜻하고 건조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니 심각하게 뜨거웠다.“열이 나?”조유진도 이마를 짚어보더니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요. 비 맞아서 감기 걸렸나 봐요. 한잠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예요.”배현수가 말했다.“얼른 머리부터 말려.”그녀가 욕실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왔을 때 배현수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그렇게 5분이 지나고, 체온계와 해열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배현수는 체온계를 건네면서 말했다.“체온 재봐.”퉁명스러운 한마디는 명령 식으로 들렸다.하지만 조유진은 그런 그에게 놀라고 말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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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더는 배신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아무나 자신을 배신할 수 있었지만 유독 조유진은 그러면 안 되었다.조유진은 그의 마음의 벽을 넘어서 완전히 그의 세계로 들어간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녀가 직접 그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더이상 아무에게도 열어줄 수가 없었다.“조유진, 이거 놔.”차가운 말투였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그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고개 들어 눈물을 머금고 키스했다.“나랑 서해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아직 보러 못 갔잖아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면서 그 약속 지켜야 하는 거 아니에요?”배현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유진아, 나 시험하지 마.”조유진은 침을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고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웃으면서 말했다.“제가 언제 시험했다고 그러세요. 대표님도 느끼고 있는 거 아니에요?”배현수가 미간을 찌푸린 채 반박하려고 하자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고개 들어 또 키스했다.절망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말이다.키스를 나누던 중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현수 씨, 저 아직 사랑해요?”“뻔히 알면서 왜 물어. 조유진, 주제 파악 좀 해.”조유진은 피식 웃더니 그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방안의 불빛은 어두웠고,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영원히 남기려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그러다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괜찮아요. 나만 사랑하면 돼요...”상대방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잣말을 했다.조유진은 그에게 밀어낼 기회도 주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키스를 퍼부었다.그의 몸이 굳어버린 틈을 타 침대까지 밀고 가더니 품에 안긴 채 함께 침대에 넘어졌다.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애써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오늘 밤만 지나면 다시는 볼 일이 없었다.주말에 선유와의 만남 후 충남 법원으로 가서 6년 전의 진상을 밝히려고 했다. 조범을 도와 거짓 증언으로 배현수를 용의자로 지목한 것을 말이다.그러면 대제주 대학교 법학과 배현수는 당당하게 사람들의 앞에 설 수 있었다.사랑에 빠졌을 때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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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지리산 아래, 모텔 밖에는 비와 바람이 불고 있었다.커다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렸고 창문에는 습기가 차 있어 방안은 어둡고 습했다.작고 좁은 침대가 움직이고 있었다.배현수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가냘픈 손목을 침대에 누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깍지를 낀 채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조유진의 눈시울은 붉어 있었고 배현수를 등지고 있어 그의 표정을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끝났을 때는 이미 새벽이라 밖은 점점 날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비도 멈추었다.조유진은 그의 옆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피곤한 몸을 이끌고 살금살금 침대에서 일어나 젖은 옷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배현수는 웃옷을 입고 있지 않았고 하체는 이불에 가려져 있었다.감옥에 있을 때 생긴 왼쪽 가슴에 남은 칼자국을 보더니 살며시 손으로 그 상처를 어루만졌다.투박한 상처가 이미 나았다고 해도 그 흉터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조유진은 고개 숙여 그 상처에 키스했다.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 잘못인 것만 같았다.그리고는 또다시 배현수의 입술에 이별의 키스를 하더니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리고 말았다.은반지가 걸려있는 목걸이를 벗었다.지난번 인천에서 대신 칼을 맞아 마음이 약해졌는지 반지를 다시 조유진에게 돌려주었다.하지만 그녀는 이 반지를 소유할 자격이 없었다.그 반지를 원래의 주인인 배현수의 베개 머리맡에 살며시 내려놓았다.이 반지로부터 시작된 인연을 이 반지로 끝내고 싶었다.더는 배현수, 그리고 조선유와 함께할 수 없었다.그렇게 한참 동안 침대 옆에서 배현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떠나기 직전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문을 연 채로 뒤돌아 거의 흐릿한 마지막 모습을 기억에 남겼다.“현수 씨, 안녕.”문이 열리고 다시 닫히면서 조유진은 눈물을 닦아내고 모텔을 떠났다.영원함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고 잠깐이라도 행복했으면 되었다....다음 날 아침.배현수는 눈을 감은 상태로 무의식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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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온정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내가 네 엄만데 모를까 봐? 너는 네가 고생해도 선유를 고생시키지 않는 애야. 아빠한테 가서 편하다고? 난 하나도 안 편해 보이는데? 유진아, 네가 무슨 결정을 하든 난 네 편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네가 손해 보는 일은 하지 마.”조유진은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엄마 최고.”“얘는. 내가 모를까 봐? 너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느라고 맨날 자신은 뒷전이지. 몇 년동안 나도 돌보고 선유도 키우느라고 힘들었지?”“안 힘들었어. 엄마랑 선유만 행복하다면 난 그거면 충분해.”온정희도 눈시울이 붉어졌다.“선유는 안 울었어? 너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떨어졌대?”“엄마가 곁에 없어서 울고불고하는 것이 정상이에요.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현수 씨도 잘해주고, 선유도 현수 씨를 좋아해서 조금만 있으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그러면 현수 씨랑은... 더는 가능성이 없는 거야? 그렇게 사랑했으면서. 유진아, 만약 말 꺼내기 어려우면 엄마가 대신 가서 빌어볼까? 그때도 나 때문에...”조유진이 말을 끊었다.“엄마,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거예요. 말 꺼내기 어려워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더는 저한테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 빌어봤자 소용없어요.”“어떻게 너한테 감정이 없을 수 있어? 너는?”조유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저도 별로 감정 없어요.”“또 거짓말. 분명 잊지 못했으면서.”조유진이 화제를 돌렸다.“엄마, 현수 씨는 이제 잊고, 요즘 건강은 어때요?”“난 괜찮아. 여기 있다 보면 외로울 때도 있지만 평온해서 좋아. 유진아, 자주 보러와야 해. 요즘 안 좋은 꿈을 꾸고 있는데 건강 조심하고 너무 무리하지 마.”온정희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당부했다.조유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에서 은행카드 하나를 꺼내 온정희 손에 쥐여주었다.“엄마, 이 카드 받아요. 얼마 들어있지도 않아요. 1400만 원 정도 있는데 전에 선유 삽입 수술 위해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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