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441 - 챕터 450

1603 챕터

제441화 죽었어

베일을 덮으니 눈앞이 흐릿했다.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결혼 행진곡이 귓가에 들려왔지만 권하윤은 여전히 영혼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부축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권하윤에게 있어 눈앞에 펼쳐진 이 길은 새 삶으로 직행하는 길이 아닌 지옥으로 향하는 황천길이나 마찬가지였다.길 끝 편에서 서 있는 민승현마저 신부를 맞이하는 신랑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안한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시계를 들여다보는 모습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그리고 마침 권하윤이 다이아몬드가 박힌 하이힐을 내딛는 찰나 “펑”하는 굉음이 울리더니 발아래가 세게 진동했다.“삐-”요란하게 울리는 호텔의 화재 경보음 때문에 하객들은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어디에서 난 소리야?”“무슨 일이래?”민상철도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무슨 일인가?”그때, 호텔 직원이 다급히 달려와 상황을 전했다.“죄송합니다, 손님 여러분. 지하 주차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는데 경위를 알아보는 중이니 다들 안전지대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민씨 가문의 초대를 받은 집안은 당연히 그 신분도 귀하기에 위험이 있다는 소리에 모두 피신하기 바빴다.그때, 인파에 밀려 나가던 권하윤은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잠깐. 도준 씨가 방금 떠났는데? 설마 지하 주차장에 있는 건 아니겠지?’갑자기 드는 생각에 권하윤은 얼른 직원 하나를 붙잡아 캐물었다.“주차장 쪽에 사람이 있던가요?”“죄송합니다. 불길이 너무 세서 저희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무책임한 대답에 곧바로 캐물으려 할 때, 민시영이 권하윤의 등을 두드렸다.“하윤 씨, 왜 그래요?”“시영 언니.”권하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시영을 붙잡았다.“민 사장님이, 민 사장님이…….”민시영은 그제야 눈치챘는지 얼른 민도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이 되지 않아 소리 샘으로 연결되니 삐 소리 이후…….”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안내음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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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2화 옛 지인을 만나다

공태준은 눈을 내리깐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권하윤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끝내 돌아서며 문을 닫았다.문틈 새로 흘러들던 빛이 사라지는 순간, 권하윤의 눈가에 맺혔던 눈물도 끝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 뒤로 연속 이틀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권하윤 때문에 메이드는 할 수 없이 공태준에게 상황을 보고드렸다.“가주님, 권하윤 씨가 아직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말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큰일 날 것 같습니다.”“그래요, 알겠어요.”이틀 만에 두 번째로 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방에 발을 들이는 거였다.공태준은 메이드의 손에서 몇 시간 동안 끓인 죽을 받아 창백한 권하윤의 얼굴을 바라봤다.그리고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뭐라도 먹어요.”“왜 날 죽이지 않지?”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그런지 목소리는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었다.심지어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주먹만 한 얼굴은 여윌 대로 여위어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 보였으며 평소와 다른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공태준은 권하윤의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각 권하윤의 모습에 반쯤 넋이 나갔으니까.2년 만에 본 여인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많이 변한 것도 같았다.예전의 이시윤도 온갖 시련을 겪었지만 언제나 맑은 눈을 한 채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의 권하윤은 얼굴에 생기가 없고 영혼을 잃은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것처럼 그저 한만 남아있었다.도자기 같은 예쁜 손은 죽을 침대맡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나는 하윤 씨 죽일 생각 단 한 번도 한 적 없었어요.”죽의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지만 여전히 공태준한테서 나는 짙은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위화감은 더 강해졌다.권하윤은 공태준이 어머니와 오빠가 있는 곳을 캐물을까 봐 여전히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다.하지만 공태준은 이미 눈치챈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리 준비된 접이식 상을 펴서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하는 탓에 모든 행동이 어색하기만 했다.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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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3화 책임질 필요 없어

권하윤은 한참 동안 어리둥절해 있다가 그제야 얼마 전 민시영더러 할아버님이 왜 자기와 민승현의 결혼을 서두르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고작 며칠 전 일이었지만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했다.현재 머릿속에 온통 민도준의 사고에 대한 생각뿐이어서 다른 건 들어올 틈이 없었다.당장이라도 진실을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 또 다른 문제가 놓여 있었다.권하윤은 끝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공태준을 바라봤다.“공태준, 당신이 이남기 씨더러 나 찾아오게 한 거지? 내가 경성에 있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지?”“그래요.”공태준의 말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하윤 씨가 내가 알기를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나타나지 않았어요.”답을 듣자 권하윤은 그저 당황하기만 했다.“왜?”애초 해원에 있을 때, 공씨 가문이 압박을 가하는 바람에 권하윤의 가족은 해원 전체에 버림을 받다시피 했다.지금도 오빠가 위독할 때 그 어느 병원도 오빠를 받아주지 않던 기억이 또렷하다.그때, 심지어 동네의 작은 진료소마저도 주사 한번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매일 밤낮을 공씨 집안 문 앞에 꿇어앉아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오빠의 병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진실이 어떻든 속죄하겠다고도 했고 오빠가 병을 치료받지도 못한 채로 죽는 꼴은 죽어도 볼 수 없어 자발적으로 공씨 집안에 하인으로 들어갔었다.하지만 가족들은 살길을 찾지 못했고 수많은 죄명을 뒤집어쓴 채 원래의 집에서마저 쫓겨났다.병원비, 생활비, 집세 이 모든 것들이 부담이 되어 가족들을 짓눌렀다.솔직히 이씨 집안은 재벌가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고 살 걱정 없이 편하게 지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무너진 집을 위해 권하윤은 몇 번이고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였다.그제야 권하윤은 기개건 자부든 모두 그럴만한 뱃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공씨 저택 집사가 돈 한 뭉치를 바닥에 뿌리며 주워 가라고 할 때 권하윤은 자존심이 상하다는 생각보다는 가족의 집세와 생활비 오빠의 병원비 생각뿐이었고,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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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4화 떳떳할 수 있어요?

민씨 저택.민도준이 사고를 당하자 민씨 집안도 따라서 흔들렸다.민상철은 민도준의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병으로 쓰러졌지만 응급처치를 한 뒤 곧바로 퇴원했다.이 틈에 회사에 눈독 들이는 식구들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아무리 힘을 내보려 해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었다.이틀 동안 서로 기회를 탐하는 형제들은 새로운 기회를 놓치기라도 할까 봐 상황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그 시각, 본채 밖 정원에서 민시영은 핸드폰 액정을 보며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하윤 씨? 며칠 동안 왜 아무 소식도 없었던 거예요? 지금 어디 있어요?”“일이 조금 있어서요. 민 사장님이 정말…….”이미 여러 번 확인했지만 권하윤은 참지 못하고 또다시 물어봤다.하지만 전화 건너편에서 민시영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맞아요.”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권하윤은 연신 애써 눌러 참으며 되물었다.“누가 그랬는지 범인은 잡았어요?”“조사 중이긴 하지만 집안이 워낙 어수선해서 쉽지 않아요.”민도준이 살아 있을 때는 그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지만 이미 죽은 마당에 사람들은 당연히 겁날 게 없었다. 더욱이 민도준에게 속해 있던 자산도 적지 않았기에 모두 자기한테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느라 누가 민도준을 죽였는지는 완전히 관심 밖이었다.“…….”한참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권하윤은 결혼식 날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둘 떠올렸다. 그러던 그때, 민시영의 떠보는 듯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하윤 씨, 혹시 공 가주랑 아는 사이에요?”잠깐의 침묵 끝에 권하윤은 입을 열었다.“인연이 조금 있어요.”“아, 그렇구나…….”민시영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결혼식 이튿날부터 하윤 씨가 사라져서 걱정했어요. 혹시 시간 나면 요즘 잠깐 볼 수 있을까요?”의미심장한 말에서 권하윤은 민시영이 뭔가 말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이내 알아차렸다.게다가 그 일이 민도준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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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5화 하윤 씨를 원해요

성은우의 이름을 들먹이자 이남기는 이내 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권하윤 씨, 뭔가 오해한 것 같네요. 제가 하윤 씨를 찾아갔을 때는 정말 은우 형 유해를 찾기 위해서였어요. 은우 형 유해를 찾은 뒤에 가주님도 그저 모든 걸 하윤 씨 뜻에 맡기라고 하시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이남기는 조심스럽게 권하윤의 표정을 살폈다.“그 약도, 권하윤 씨가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드리지 않았을 거고요.”이어지는 이남기의 말에 권하윤은 침묵했다.확실히 그 약은 권하윤이 직접 요구한 거다.공태준은 단지 사살을 권하윤의 눈앞에 드러내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에 한 것뿐.진정으로 모든 걸 결정한 건 권하윤 본인이다.모든 일을 돌이켜보니 권하윤은 순간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지 몰랐다.돌고 돌다 보니 가장 원망하고 미워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일 지도.권하윤은 성은우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이 미웠고 복수심에 차 있으면서도 품지 말아야 할 민도준을 마음에 새겨넣은 자신이 미웠다.“권하윤 씨, 괜찮습니까?”권하윤은 아무 일 없는 듯 눈물을 슥 닦았다.“괜찮아요. 밖에서 기다리세요.”이남기는 밖에서 걸리기 마음에 걸렸지만 권하윤이 한 말을 듣고 미안함이 들었는지 뒤따르지 않았다.커피숍.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한참 동안 기다리고 나서야 민시영이 도착했다.하지만 권하윤을 보는 순간 민시영은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며칠 못 본 사이에 권하윤은 그새 여위었는지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날 것만 같았고 화장기 없어 창백한 얼굴에 간밤에 울었는지 팅팅 부은 두 눈을 하고 있었다.살짝 놀란 민시영은 자리에 앉으며 한탄했다.“민씨 가문에서 도준 오빠를 위해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사람은 아마도 하윤 씨뿐일걸요.”권하윤은 그 말에 그저 눈을 내리깔았다.“시영 언니도 요즘 바쁘죠? 저는 왜 만나자고 했어요? 혹시 무슨 일 있어요?”“네.”민시영은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사실 하윤 씨가 전에 알아봐 달라고 했잖아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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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6화 나랑 해원으로 돌아가요

이남기는 권하윤이 계속 고집을 부리자 끝내 차에서 내려 공태준에게 전화했다.그리고 한참 뒤 다시 차에 올라타더니 사뭇 진지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가주님 있는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이남기의 말에 권하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권하윤 인상 속의 공태준은 겉으로는 겸손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은 공아름과 마찬가지로 고고하고 오만한 사람이다.그런 사람이 이토록 고분고분한 태도를 보이니 이상했다.차가 개인 클럽 앞에 멈춰선 건 그로부터 얼마 뒤였다.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는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보아하니 권하윤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공태준의 접대를 방해한 모양이었다.하지만 공태준은 인내심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감정 없는 눈동자에 부드러움이 일렁였다.“남기한테서 들었는데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면서요?”“당신 짓이야?”단도직입적인 물음에 공태준의 눈에 드리웠던 기쁨은 어느새 흩어져 버렸다.“무슨 말이죠?”“민도준 씨 일 말이야. 당신과 상관있냐고?”계속 피하기 바쁘던 권하윤의 두 눈이 어쩌다 오롯이 공태준의 눈을 직시했다.그것도 다른 남자의 일에 대해 따지려고.하지만 공태준의 눈은 여전히 흔들림 없었다.“난 하윤 씨가 나 미워할 짓 안 해요.”“그럼 누군데?”권하윤은 여전히 따져 물었다.“그때 마침 그곳에 나타났다면 뭔가 안다는 뜻이잖아.”이윽고 마지막 한마디가 끝나는 순간 공기는 고요해졌다.그와 동시 공태준의 차가운 두 눈동자는 마치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킬 듯 어두워졌다.“민도준을 좋아하네.”확신이 담긴 말투였다.“맞아.”권하윤 역시 고민 없이 대답했다.분명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듯싶다.그 남자를 보고 가슴이 뛰지 말아야 하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 하나만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은 것만 같았다.생각을 접어두고 권하윤은 목소리가 한층 더 높였다.“대체 누구냐고?”“왜지?”대답 대신 되묻는 공태준의 말에 권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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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7화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권하윤은 싸늘하게 웃었다.“차라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설마 나한테 잠자리 요구하는 거야?”“절대 하윤 씨 모욕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공태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명했다.“단지 나 배척하는 게 싫었을 뿐이지. 하윤 씨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은 하지 않을 거예요.”이토록 신사적인 모습에 권하윤은 오히려 솜을 주먹으로 때린 것처럼 힘이 쭉 빠졌다.분출하지 못한 분노를 마음속에 쌓아둔 채 권하윤은 입꼬리를 올렸다.“공 가주님의 배려에 감사할 따름이네요. 하지만 그쪽이랑 있다간 내가 토할 것 같아서.”권하윤은 공태준이 당연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공태준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알겠어요. 생각 바뀌면 말해줘요. 이 제안은 계속 유효하니까.”그런 침착한 태도에 권하윤은 짜증이 극에 달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돌아섰다.그 길로 곧장 클럽을 나서자 이남기가 어느새 앞에 나타났다.“권하윤 씨, 어디로 모실까요?”높고 푸른 하늘과 넓은 땅을 보고 있음에도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숨이 막혔다.이에 몇 번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블랙썬으로 가줘요.”권하윤이 블랙썬 문 앞에서 내렸을 때 주위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예전과는 확연히 달랐다.그 이유는 한민혁이 문 앞에서 몇몇 사람들과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당신들이 뭔데 이래? 여기 도준 형 구역이야. 들어가려거든 지옥에 가서 도준 형 의견 물어보고 와!”“한민혁 씨,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안 되죠. 민 사장은 민씨 가문 사람인데 이제 본인이 없으니 그분 재산은 당연히 가족에게 맡겨야죠. 이건 한민혁 씨가 동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가족은 개뿔! 주인이 없으니 그 틈에 도둑질하려는 쥐새끼들이면서! 난 있는 거라곤 이 목숨밖에 없으니까 들어가겠으면 좋아, 오늘 아주 끝장을 내자고!”고용되어 온 변호사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그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변호사들도 모두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지라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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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8화 잘못 봤나?

민도준이 사고가 난 뒤로 문을 닫은 블랙썬의 복도는 조용하다 못해 한산하기까지 했다.하지만 한참을 걸었더니 시선 끝에 웬 사람의 인영이 걸리는 듯했다.“거기 누구죠?”고개를 홱 돌려 뒤를 돌아봤지만 등 뒤는 텅 비어있었다.‘설마, 내가 잘못 봤나?’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선 순간, 분명 방안의 모든 배치는 예전과 달리진 게 없었지만 권하윤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차갑게 식었다.한기가 발밑에서부터 퍼지면서 몸이 오싹해졌다.안방의 텅 빈 침대를 보자 권하윤은 귀신에 홀린 듯 다가가 누워 몸을 이불 속에 파묻은 채 방 주인의 숨결을 찾으려고 애를 썼다.은은하게 느껴지는 담배 냄새는 마치 생명줄처럼 잠시나마 권하윤에게 자그마한 위안이 되어주었다.너무 오래 잠들지 못한 탓인지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 권하윤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그러다가 눈을 떴을 때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머리가 어지럽고 무거웠지만 정신은 그나마 조금 맑아졌다.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을 때, 권하윤은 머리 아래에 놓인 베개를 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내가 자기 전 분명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베개를 안고 있었는데? 아무리 숨 막혀 이불 밖을 나왔다고 해도 베개까지 반듯하게 놓을 수 있나?’갑자기 복도에서 봤던 인영이 뇌리를 스쳐 지나자 권하윤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설마 도준 씨인가?’“도준 씨?”권하윤은 허공에 대고 조심스럽게 불러봤다.“도준 씨 안 죽었죠?”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뿐이었다.그럼에도 권하윤은 포기하지 않은 채 안방에서 거실까지 마구 달려 나왔다.“도준 씨? 거기 있어요?”“도준 씨처럼 대단한 사람이 그렇게 갈 리 없잖아요.”“지금 나 놀리는 거죠?”“…….”문밖.한민혁과 로건은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뱉었다.방해하는 것도 마음 아팠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미치게 둘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권하윤 씨…….”“한민혁 씨.”권하윤은 다급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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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9화 당신 곁에 있을게

이남기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습을 보자 권하윤은 이내 의심을 접었다. 킬러인 이남기보다 감각이 뛰어날 리는 없을 테니까.하지만 누군가 따라오는 듯한 느낌만은 확실했다.‘설마 한민혁 씨 말대로 헛것이라도 보나?’그러한 생각은 권하윤을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그저 괜찮다는 대답만 얼버무린 채 안으로 들어갔다.침실에서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은 권하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하지만 갓 두 걸음 정도 떼었을 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메이드가 갑자기 권하윤 앞에 나타났다.“권하윤 씨, 무슨 시키실 일이라도 있습니까?”“공태준은 어디 있죠?”“가주님은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이 시간에 가주님은 이미 주무셨을 겁니다.”“할 말 있으니 불러와 줘요.”메이드는 바로 거절하려다가 가주의 지시가 생각났는지 얼른 허리를 굽혔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얼마 지나지 않아 공태준이 방으로 들어왔다.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켰지만 공태준은 여전히 반듯한 옷차림이었다.유독 머리 스타일만 평소와 다르게 조금 흐트러진 모습이었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었다. 보아하니 메이드의 말대로 이미 씻고 잠자리에 들었던 모양이었다.남자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말투는 여전히 온화했다.“나는 무슨 일로 보자고 했어요?”“민씨 집안 식구들이 오늘 블랙썬으로 변호사를 보냈던데, 그 사람들이 도준 씨 재산에 손대는 거 막을 방법 있어?”공태준은 미간을 주물렀다.“민 사장은 상속인을 정하지 않았으니 재산은 가족들이 처리하는 게 맞아요. 물론 예외는 있지만…….”“그 예외란 게 뭔데?”“민 사장이 안 죽었다면 얘기는 달라지죠.”‘이건 뭐 하나마나 한 얘기 아닌가?’공태준도 권하윤의 표정에서 짜증을 읽어냈는지 말을 보탰다.“그 폭발 사고로 남은 증거가 모두 사라지고 심지어 사망자 신원까지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때문에 그 시체가 민도준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사망통지서를 발부받기 어려울 거고 당연히 재산분할도 할 수 없겠죠.”권하윤은 그럴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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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0화 누가 왔다고?

“민 사장이 안 죽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누르려면 민상철 어르신부터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해요.”공태준의 말에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님이 동의할까요?”“현재 민씨 가문이 동요하고 있는 데다 회사 내부에서도 싸움이 일어나고 있고 민 사장의 산업까지 더해지면 정말 내란이 일어날 게 뻔하거든요.”만약 잘나갈 때의 민상철이라면 이 정도쯤은 아마 신경도 쓰지 않았을 거다.하지만 현재는 건강 상태도 안 좋아 겨우 버티고 있기에 다른 사람을 누를 힘이 없다.그런데 그중 한 가지 문제라도 해결이 된다면?민성철은 그 틈에 회사에 신경 쓸 여력이 있을 거다.생각을 마친 권하윤은 고개를 홱 돌려 공태준을 바라봤다.“나랑 같이 밖에 나오자고 한 게 여기 오려고 그런 거였다고?”“그럼요. 하윤 씨가 민 사장과 민 사장 쪽 사람들 걱정하는 거 알아요. 이렇게 데리고 나와 직접 보면 안심이 될 거잖아요.”하긴, 공태준이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어도 권하윤은 완전히 안심하지 못했었다.그런데 공태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앞에서 보면 확실히 안심할 수 있었다.권하윤이 차에 오를 때처럼 혐오감 가득한 눈빛으로 자기를 보지 않는다는 걸 발견하자 공태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직접 나서는 게 어려우면 여기에서 소식 기다려요.”권하윤에게 일부러 공간을 내주려는 건지 아니면 떠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는지 공태준이 차에서 내릴 때 이남기도 함께 뒤따랐다.그제야 권하윤의 팽팽하던 긴장감도 어느새 느슨해졌다.그렇게 한참 동안 차에 앉아 있던 권하윤은 갑갑했는지 끝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차 문과 저택 대문 사이에 거리가 꽤 있다 보니 권하윤은 멀리에서 멍하니 한곳을 응시했다. 하지만 문을 보면 볼수록 민도준과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심지어 누군가 자기를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지도 못했다.그 시각, 민씨 저택으로 들어가려던 민승현은 공태준과 권하윤이 잇따라 같은 차에서 내리는 걸 보자 눈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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