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 Chapter 431 - Chapter 440

1603 Chapters

제431화 권한 술을 마시다

나무그늘 아래에 있던 권하윤이 덤덤하게 대답했다.“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말고 할 게 있나요? 그게 제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하긴, 할아버지가 하윤 씨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아마 도준 오빠랑 관련되었을 거예요.”권하윤의 묵인에 이시영이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할아버지도 참 종잡을 수 없다니까요. 아마 연세가 드셔서 이제 마음도 약해지셨나 봐요.”들어보니 의아했다.집안에 추문이 생겼는데 자기를 놓아준 것도 모자라 손자와 결혼까지 시키려 하다니.그건 진짜 접신이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없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권하윤은 가던 걸음을 멈췄다.“솔직히 저도 조금 의아해요. 시영 언니가 저를 도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민시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 일은 저도 이해가 안 돼요. 그 사이 하윤 씨도 조심해요. 이 일은 수소문하는 대로 알려줄게요.”“고마워요.”민시영은 싱긋 웃으며 권하윤의 팔짱을 끼더니 농담조로 말했다.“고마워할 거 없어요. 나중에 결혼식에서 나한테 술이나 따라 줘요.”“술이요?”권하윤은 순간 흠칫했다.하지만 민시영은 그런 권하윤의 속마음을 모르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몰랐어요? 새색시는 시가댁 사람들한테 술 한 잔씩 권해야 하잖아요. 다행히 우리 집에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술 깨는 약이라도 준비해 둬요. 결혼식 시작 전에 취하지 말고.”“모든 분께 권해야 하나요?”살짝 놀란 권하윤의 반응에 민시영은 재밌다는 듯 눈을 찡긋거렸다.“네, 한 명도 빠짐없이. 물론 도준 오빠도 포함이에요.”‘응? 왜 멍해 있지? 설마 도준 오빠가 난처하게 굴기라도 할까 봐 걱정하는 건가?’갑자기 든 생각에 민시영은 얼른 설명을 보탰다.“걱정하지 마요. 하윤 씨가 권하는 술 도준 오빠가 거절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러면 할아버지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그렇다면 다행이네요…….”권하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희미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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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들떠 있을까 봐

욕실 안에서 들리는 물소리에 권하윤은 생각이 복잡해졌다.하지만 얼마 안 되는 사이, 침대 옆이 웊푹 파이더니 민도준이 옆에 누워버렸다.그러다가 여전히 또렷한 권하윤의 눈을 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왜 아직도 안 자? 나 기다린 거야?”남자의 품에 안긴 권하윤은 나지막하게 “네.”라고 대답했다.그 대답에 민도준은 웃음을 자아냈다.“오늘 왜 이렇게 착해?”권하윤은 시선을 내리깔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듯 입술을 짓씹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왜 왔어요?”“하윤 씨가 들떠서 혼자서 잠 못 이룰까 봐 왔지.”부드러운 말투에 권하윤의 마음은 점차 불편해졌다.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제가 애도 아니고.”“비슷하지.”민도준은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농담조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아이보다도 손이 더 많이 가긴 해. 때리지도 못하고 꾸짖지도 못하고 달래기만 해야 하잖아.”남자의 말에 권하윤의 눈시울은 왠지 모르게 점점 촉촉해지더니 눈가에 고이다가 끝내 또르르 흘러내렸다.그 촉촉함이 손에 느껴지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이것 봐. 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또 울기나 하고. 여자는 물로 만들어졌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어디 봐, 물이 어디에 제일 많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게 가까이 와 봐.”“아-”권하윤은 거절할 힘도 없었다.점차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 가자 권하윤은 민승현이 옆 방에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지 얼른 민도준의 팔을 꽉 잡았다.“옆 방에 사람 있어요.”“응, 그러니까 소리 작게 내.”뜨거운 입술이 점차 물의 원천을 찾는다는 핑계로 권하윤의 몸 위를 이리저리 훑었다.며칠 동안 떨어져 지낸 터라 두 사람은 점차 걷잡을 수 없었다.도중에 민도준은 마지못해 권하윤의 입을 막더니 낮은 웃음을 지어내며 밭은 숨을 쉬었다.“자기야, 계속 소리 내다간 사람들 깨겠어.”하지만 이미 반쯤 넋이 나간 권하윤은 남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저 작게 흐느낄 뿐.어쩌면 이럴 때만 권하윤은 자기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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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웨딩드레스

소파 중앙에는 민도준이 주인인 것처럼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고 민승현은 그 옆에서 어두운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이러한 광경은 너무 고요하고 이상했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은 마침 계단에서 머뭇거리는 권하윤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젖힌 채 눈썹을 치켜올렸다.“왜 그래? 계단 내려오는 법도 잊었어?”그제야 권하윤을 발견한 민승현의 얼굴을 확 구겼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권하윤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쭈뼛쭈뼛 걸어 내려왔지만 한동안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권하윤의 멍한 표정에 민도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향해 턱을 들었다.“와서 봐.”잡지 위에 있는 웨딩드레스와 정장 사진을 보고 나서야 권하윤은 오늘 드레스를 골라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빠듯한 준비 시간 때문에 당연히 맞춤 제작이 아닌 이미 완성된 드레스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모두 유명 디자이너의 회심작이기에 디자인은 당연히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건 민도준의 말투였다.분명 민승현과 권하윤의 결혼인데, 말투로 봐서는 민도준이 주인공인 듯싶었다.역시나 민승현이 그 태도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물론 권하윤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자기 것을 민도준이 제것인양 손에 쥐고 주무르려 하는 게 남자의 자존심으로 용납할 수 없었다.끝내 참지 못한 민승현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먼저 양복부터 골라. 드레스는 양복에 맞춰서 고르면 되잖아.”이건 자기가 주인공이고 권하윤은 그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뜻이었다.자기 결혼식이니 민승현은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민도준이 끼어드는 게 이상하지.하지만 민도준은 원체 자제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권하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먼저 사람 좋은 말투로 끼어들었다.“드레스에 맞는 정장은 찾기 쉬워. 네가 먼저 고르고 있어, 내가 너 대신 우리 제수씨 드레스 좀 골라 줄게.”권하윤에게 멈춰 있던 시선이 자기 옆자리를 슬쩍 가리켰다.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 관계를 숨기려는 듯 거절하는 것도 이상했다.곧이어 민승현은 두 눈 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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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나랑 결혼하고 싶어?

다시 생각해 보니 남성 정장은 모두 비슷한 디자인이니 민도준이 결혼식 하객으로서 옷을 고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이에 권하윤은 얼른 잡지를 손에 들었다.열심히 정장을 고르고 있는 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탓에 가는 목덜미가 그대로 드러났고 긴 머리카락은 나른하게 흐트러져 부드러움을 더해주었다.모든 페이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는 모습은 심지어 꽤 진지해 보였다.민도준은 그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더니 손에 쥔 담배를 꺼버리고는 권하윤을 뒤에서 안으며 그녀의 손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다 골랐어?”“네.”권하윤은 검은 정장 하나를 가리키며 물었다.“이거 어때요?”민도준의 온 신경은 옷이 아니라 축 늘어진 그녀의 진주 귀걸이에 집중됐다.“검은색은 경사스럽지 못하잖아.”말투마저 가볍고 느릿했다.권하윤은 이번에 회색 정장을 가리키며 물었다.“이건 어때요?”“회색? 별로.”“그렇다면 다크그린은 어때요?”“오, 이건 승현이 한테 어울리겠네.”“…….”민도준이 자기를 놀린다는 걸 알아차린 권하윤은 잡지를 덮어버리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민도준의 눈에도 살짝 뿔 나 있는 권하윤의 모습이 들어왔는지 경망스럽게 그녀의 귀걸이를 톡톡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인내심이 이것밖에 안 돼?”애석하게도 진주마저 주인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 듯 신이 나서 흔들거리며 권하윤의 속을 뒤집었다.“그저 격식 차리는 것뿐이니 도준 씨도 신경 쓸 거 없어요.”“응?”민도준은 중독되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권하윤의 진주 귀걸이를 괴롭혔다.“격식 차리는 거라니? 그건 모르는 일이지.”“네?”권하윤은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린 순간 마침 민도준의 고혹적인 눈과 마주쳤다.이윽고 남자의 눈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무슨 뜻이냐면, 하윤 씨가 죽기 살기로 나한테 시집오겠다고 하면 내가 승현이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소리야.”순간 멍해졌다.물론 농담조로 한 말 같았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이윽고 애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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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어울리지 않으면 됐어

권하윤은 민도준이 당연히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민도준은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울리지 않으면 됐어. 나중에 결혼 선물 좋은 거 챙겨줄게. 어때?”이토록 변덕스러운 민도준의 성정 때문에 권하윤은 오히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그렇다면 미리 감사드립니다.”어색한 미소로 대답하며 어디에 둘지 몰라 허공에서 헤매던 손을 다시 무릎 위에 올려놓은 잡지 위에 올렸다.“저기, 정장은 계속 고를까요?”“필요 없어.”민도준은 가볍게 웃으며 손등으로 권하윤의 얼굴을 톡톡 두드렸다.“드레스나 잘 골라.”이윽고 권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먼저 일어났다.권하윤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민도준의 외투를 손에 든 채 조건반사적으로 물었다.“가시려고요?”“응.”“그러면 밤에 올 거예요?”민도준은 차키를 움켜쥐며 권하윤을 흘겨보았다.“아니.”남자의 단호한 말투에 권하윤은 한참 동안 입을 뻥긋거리다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내리깔았다.“네. 조심히 가세요.”민도준이 떠나자 거실은 다시 적막이 흘러들었다. 정교한 천장이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사람을 답답하게 했다.권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테이블 위에 엉망진창으로 널린 잡지를 다시 펼쳐 들었다.그러다가 결국은 민도준이 예쁘다고 했던 드레스를 고르고 식 끝나고 입을 한복을 골랐다.민씨 가문이 아무리 유서 깊은 집안이라 할지라도 전통 혼례를 치를 건 아니기에 호텔 식장을 빌려 손님을 맞이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을 치러야 했다.그렇다고 디자인만 고른다고 끝나는 건 아니었다. 옷을 권하윤의 사이즈와 이미지에 맞게 수선해야 하기에 디자이너와 연락을 취해야 했다.하지만 권하윤은 매원에 계속 남이 있고 싶지 않아 직접 웨딩 숍으로 찾아갈 생각이었다.그러다가 권하윤은 고민 끝에 권희연도 불러냈다.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권씨 집안의 일을 잘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웨딩 숍.“드레스에 어울리는 베일은 총 세 가지가 있는데 서로 다른 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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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결혼 전날 밤

권희연의 도움으로 민도준의 돈은 절반 넘게 남았다.펜션과 요양원의 보수 작업에 필요한 돈을 제외하고 남은 돈을 권하윤은 모두 권희연에게 건네며 결혼식 일주일 뒤 해외로 송금해달라고 부탁했다.하지만 권희연은 카드를 받아 들면서 머뭇거렸다.“그게 무슨 뜻이야? 네가 결혼식에 무슨 일을 당하든 돈만 송금하라니? 네가 무슨 일을 당하는데?”권하윤은 이내 웃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별 뜻은 없어. 결혼식 날 내가 바쁠 것 같아 그러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을 수 있잖아. 그런데 이 일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줘. 로건 씨한테도 말하지 마.”“그래. 약속할게.”하지만 권희연은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권하윤의 손을 꼭 잡았다.“윤아, 너 무슨 일 하려면 나한테 무조건 말해 줘. 우리가 물론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나는 항상 너를 친동생으로 여겨왔어. 너한테 무슨 일 생기는 거 절대 용납 못 해.”부드러운 말투에 섞인 걱정과 배려에 권하윤은 애써 시큰거리는 눈시울을 깜빡거리며 여상스럽게 미소 지었다.“언니,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 걱정하지 마.”물론 권하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권희연은 여전히 불안했다. 때문에 집에 도착해서도 정신이 딴 데 팔린 바람에 방문 앞에 사람이 온 것도 한참 후에야 발견했다.권희연은 숨소리도 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행동하는 로건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왔으면서 왜 말을 안 해요?”“책 보시는 데 방해 될까 봐요.”덩치가 문짝만 한 로건이 문틀을 손가락으로 긁으며 어색한 듯 대답했다.이에 권희연은 이내 책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그냥 킬링타임 용이에요. 다음번에는 그냥 저 불러요.”“아닙니다.”로건은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사실 저도 별일이 아니라 희연 씨가 저녁에 뭘 드시고 싶은지 물어보려고 왔어요. 말하시면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남자의 말에 권희연은 잠시 고민했다.“어제 로건 씨가 만들었던 닭볶음 요리요. 만약 번거로우면…….”“번거로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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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좋은 기운을 얻다

결혼식 전날 밤, 민씨 가문 룰대로 혼자 제국 호텔 스위트 룸에서 보내게 된 권하윤은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몽롱한 정신으로 겨우겨우 잠들려고 할 때 벌써 날이 밝아왔다.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도착했을 때, 권하윤은 마치 솜 위에서 걸어 다니는 듯 현실감이 없었고 아침부터 가슴은 가꾸만 불안감에 콩닥거렸다.하지만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려는 찰나,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이내 선생님을 막아섰다.“이걸로 해주세요.하트 모양 목걸이를 권하윤의 목에 걸어주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싱긋 웃었다.“이 목걸이가 무슨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 봐요?”“약혼자가 선물해 준 거예요.”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권하윤이 대답했다.“아하, 어쩐지 예쁘네요.”“네.”거울 속의 권하윤은 손으로 펜던트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신부 화장을 곱게 한 덕에 창백하던 낯색은 어느 정도 가렸지만 얼굴에는 결혼하는 신부다운 기쁨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그 뒤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권하윤은 심지어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그저 영혼 없는 도자기 인형처럼 낯빛이 어두운 민승현의 팔짱을 끼고 문 앞에서 가식적인 미소로 하객들을 맞이한 기억밖에. 싱글벙글하며 보내오는 하객들의 축복에도 표정은 여전히 펴지지 않았다.하객이 거의 도착하여 홀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느 때처럼 장난기 섞인 목소리였다.“승현아, 축하해.”곧 죽기 직전 아드레날린이라도 몸에 주입한 것처럼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두근거렸다.날아갔던 영혼도 어느새 다시 주인의 몸을 찾은 듯했고 흐릿해진 눈빛이 점점 또렷해지며 느릿느릿 다가오는 민도준을 바라봤다.민도준은 심플한 차림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장조차 입지 않았다.하지만 뭘 걸쳤든 나타나는 순간부터 모든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소란스럽던 주위도 어느새 조용해졌고, 이따금 서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조심하는 모양새였다.오직 민승현만 건들거리는 민도준을 보는 순간 눈에서 불을 내뿜었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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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매정한 사람

어쨌든 민승현도 민씨 가문의 일원이기에 그의 결혼식에 민씨 가문 식구가 모두 모였다.식장부터 응접실까지 레드카펫이 길게 깔려 있었고 응접실 맨 상석에는 민상철, 그리고 잇따라 촌수대로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권하윤은 먼저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인 민상철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차를 받들고 공손하게 권했다.“할아버님, 차 드세요.”민상철은 고분고분한 권하윤을 흘깃 스쳐보더니 고개를 돌려 민도준을 바라봤다.삐딱한 자세로 다리를 꼬고 앉아 마치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자세는 권하윤의 결혼식을 별로 마음 쓰지 않는 듯했다.판을 망칠 의도가 없어 보이는 민도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민상철은 염주를 빙빙 돌리다가 차를 받았다.“너도 이제는 우리 민씨 집안의 며느리가 됐구나. 너의 모든 언행과 행실이 우리 민씨 가문 체면에 영향 준다는 걸 잊지 말고 본분을 지키고 격식을 차리거라. 알겠느냐?”“할아버님의 가르침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신 말씀은 꼭 마음에 새기겠습니다.”권하윤은 여전히 쟁반을 공손하게 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민상철이 차를 마신 뒤 빈 잔을 위에 올려놓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빈 찻잔을 가져갔다.그렇게 잇따라 두 번째 쟁반을 들어 올렸다.눈 깜짝할 사이에 첫째 숙부네 가족이 술을 집어 갔다.식구들이 하나둘씩 술잔을 비우는 동안 권하윤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심지어 빈 잔을 받아들 때 손이 떨리는 바람에 잔끼리 부딪혀 “쨍” 하는 소리가 났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할 여력도 없이 세 번째 쟁반이 권하윤의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아까와 달리 이번에 쟁반 위에는 오직 술잔 하나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잔의 주인은 바로 민도준이었다.숨을 크게 들이쉬고 난 뒤, 권하윤은 공손히 쟁반을 받아 들었다.술잔에 담긴 맑은 액제가 한층 한층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권하윤의 심장도 따라서 요동쳤다.매캐하고 씁쓸한 알코올 향이 있어선 안 될 냄새를 그새 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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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내가 죽었으면 좋겠어?

축제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친척들 모두 민도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눈치였지만 그간 습관이 되었는지 티를 내지는 않았다.하지만 민상철의 얼굴이 유독 어둡게 가라앉았다.“민도준, 이렇게 좋은 날 분위기를 망치지 말거라.”“분위기를 망친다고요?”민도준이 느릿느릿 의자에서 일어나자 강압적인 분위기가 주위에 감돌았다.그는 겁에 질렸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는 권하윤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입꼬리 한쪽을 씩 올리며 비아냥거렸다.“우리 제수씨가 내 침대에서 신음 소리를 낼 때는 분위기가 꽤 좋았었는데.”충격적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장 전체가 조용해졌다.사람들은 저마다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민도준이 이런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말한 것에 놀란 눈치였고, 모르는 사람들은 황당한 사실 자체에 놀란 눈치였다.특히 강수연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몇 초 사이 얼굴색이 몇 번이고 변했다.맨 처음은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가 그다음은 황당하고 놀라 하더니 나중에는 수치스러운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그러다가 끝내 파리라도 삼킨 듯 잿빛으로 변했다.며느리가 아들의 사촌 형과 바람이 난 것도 모자라 모든 친척 앞에서 그 사실이 밝혀졌으니, 체면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던 강수연에게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추잡한 일이 벌어졌으니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고 다닌담.“너…… 너희들…….”강수연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더니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다섯째 숙모?”“수연아?”어느새 아수라장이 된 방안에서 민도준은 민상철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더 상세하게 예기해 드릴까요?”민상철은 잔뜩 어두워진 얼굴을 한 채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비틀 일어섰다.그때 민시영이 얼른 다가가 민상철을 부축했다.“할아버지, 조심하세요.”민시영은 얼른 민도준을 바라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오빠, 아무리 농담을 좋아해도 정도껏 해야지, 이러다 할아버지의 심장에 무리라도 생기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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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기회는 줬을 텐데

민도준의 손에 쥐여 있는 새하얀 알약을 보는 순간 권하윤의 흐려졌던 초점이 다시 맞춰지면서 믿기지 않는 듯 민도준을 바라봤다.‘이 약, 내가 아까 잔 안에 넣지 않았나?’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권하윤의 모습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잘 숨긴 줄 아나 봐? 감히 내 앞에서 이런 같잖은 수법을 사용하다니. 그것도 두 번씩이나.”혼란 속에서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진, 진작에 알고 있었어요?”민도준은 대답 대신 반문했다.“이렇게 좋은 물건은 어디서 났대? 공태준이 준 거야?”“…….”권하윤은 여전히 민도준이 진작에 발견했다는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자기의 침묵이 묵인으로 작용하였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순간, 커다란 손이 가는 목을 꽉 움켜쥐었다.살기가 가득한 눈빛과 무자비한 손끝, 팔뚝 위로 튀어 오른 핏줄과 쇠를 긁는 듯한 낮은 목소리에는 원망과 한이 서려 있었다.“늑대 새끼를 키웠어도 이 정도 키웠으면 주인을 알아보겠어.”“…….”권하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심지어 발버둥 치지도 않았다.그저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축 늘어진 채 점점 보랏빛으로 물든 얼굴을 한 채 죽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목이 부러질 듯 으득 수리가 나는 찰나, 민도준은 권하윤을 힘껏 밀쳐버렸다.중심을 잃고 넘어진 권하윤의 손은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파편 위로 짚었고 거의 한순간 피가 손바닥을 타고 바닥을 적셨다.극심한 통증이 권하윤의 정신을 겨우 현실로 끌어당겼다. 이윽고 바닥을 짚고 일어서더니 고개를 든 채 민도준을 바라봤다.그때 마침 눈이 마주친 민도준이 질문을 툭 던졌다.“이유는?”“도준 씨가 은우를 죽였잖아요.”권하윤은 갈라 터진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죽인 것도 모자라 시체까지 훼손했잖아요.”여자의 말에 약 2초간 멈칫하던 민도준은 무릎을 짚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그래서 나를 죽여 복수하려 했다? 나한테 발각도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생각은 해봤고?”일이 이 지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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