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1603 챕터

제411화 유혹

권하윤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민도준은 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하윤 씨가 인색하다지만 공태준은 아니던데? 하윤 씨랑 놀려고 집안 밑천까지 탈탈 털어낸 걸 보면.”“네? 집안 밑천이요?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요?”밑도 끝도 없는 한마디에 권하윤은 일순 멍해졌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그녀의 얼굴에 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그래, 오해했다고 쳐.”자비 없이 꽉 눌러대는 그의 손가락 아래의 피부는 점점 붉게 물들었다. 이윽고 뻘건 자국이 날 때쯤 권하윤은 끝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찡그렸다.그녀가 고통을 호소하자 민도준은 그제야 자비를 베풀 듯 손을 놓더니 별로 먹지도 않은 만둣국을 보며 댐배를 꺼내 들었다.“왜 안 먹었어?”권하윤은 얼른 그의 손에 있는 라이터를 받아 그를 도와 불을 붙였다.“도준 씨가 오면 같이 먹으려고요.”고분고분한 한마디를 내뱉으면서 말이다.하지만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은 담배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오르자 민도준은 몸을 뒤로 젖히며 권하윤과 거리를 두더니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또 무슨 꿍꿍이지?”권하윤의 손은 일순 멈칫했다.하지만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한민혁이 무조건 말할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한참을 머뭇대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저…… 요즘 은우가 자꾸 꿈에 나와요. 그래서 말인데, 이왕 죽었는데 고향에 묻게 할 수는 없나요?”그녀는 말하면서 민도준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그가 조금이나마 소식을 흘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모두 헛수고였다.민도준의 검은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고, 흔들림 없는 표정에서마저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었다.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는 갑자기 피식 웃었다.“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망자가 꿈에 나타나 부탁한다고 하나?”권하윤은 당연히 그의 말속에 담긴 경고를 캐치했다. 이에 곧바로 눈을 피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토막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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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대접받는 데 익숙해지다

민도준은 애써 머리를 굴리며 그의 모에 불을 지피고 있는 권하윤을 여유롭게 바라보더니 살짝 풀린 손으로 두근대는 그녀의 맥박을 매만졌다.이게 풀어진 표현이라고 생각한 권하윤은 얼른 그의 팔을 끌어안았다.그러면서도 그가 머리를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생각났는지 얌전히 그의 등에 매달리면서 부드러운 입술로 꾹 다문 그의 입술을 문질렀다.그제야 민도준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였었다.“자기야, 설마 성은우가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게…….”꿍꿍이가 상대에게 까발리자 그녀의 숨소리는 단번에 빨라지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다음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민도준은 그녀의 얼굴을 들어올렸다.분명 웃는 얼굴이었지만 권하윤은 저도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심지어 목덜미 뒤에 붙어있는 따가운 손바닥 때문에 뼛속까지 오한이 느껴졌다.그러던 끝에 참지 못한 그녀가 애원하려고 할 때 목덜미가 갑자기 차가워지며 민도준이 그녀를 놓아주면서 한순간에 다시 나른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아까 잘 놀았잖아. 계속해 봐.”이렇듯 반복된 상황에 권하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도준 씨, 은우가…….”“경고하는데…….”소파에 기댄 남자는 권하윤의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무심한 듯 말을 이었다.“나 지금 기분이 안 좋아서 성격도 안 좋을 거야.”그 한마디에 권하윤은 하려던 말을 도로 목구멍으로 삼켰다.그는 권하윤에게 성은우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자기의 화를 돋우는 거라고 경고하고 있었다.아무리 마음이 급하다지만 권하윤도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때문에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살짝 말아 올린 그의 입술에 다시 자기 입술을 갖다 댔다.이번에 민도준은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 동작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권하윤이 눈을 들었을 때 마침 남자의 장난기 섞인 눈동자와 마주치고 말았다.“왜? 그동안 대접 받는 데 너무 익숙해져 혼자서는 못하겠어?”민도준은 눈길로 아래를 가리키며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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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불합격

“뭐, 그럭저럭.”민도준은 그녀의 머리를 쓸어 넘기는 동작을 멈추지 않은 채 나른한 콧소리로 대답했다.“그런데 알아서 한다고 했었잖아?”이윽고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그의 손가락이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리며 권하윤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불합격이야.”“다, 다음에 할게요.”권하윤은 말문이 막힌 듯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민도준의 눈치를 살폈다.“저기, 기분이 괜찮다면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민도준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그 개자식이 아직 살아 있냐고?”숨이 턱 막혔지만 권하윤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죽었어.”짤막한 세 글자는 권하윤의 희망을 반쯤 꺼버렸다.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애써 몸을 일으킨 그녀는 민도준과 눈을 마주하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도준 씨도 그때 오해였다고 말했잖아요. 그러니까 장난치지 마세요. 네?”민도준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꾹꾹 눌러댔다.“꿈은 하윤 씨가 꿨으면서 내가 깨웠다고 탓하는 거야?”권하윤의 머리는 그의 힘에 밀려 앞으로 살짝 치우쳤다.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반짝거리던 눈빛은 어느새 희망이 완전히 점멸된 듯 어두워졌다.따뜻하던 몸의 온도마저 이내 식어버려 벗어나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민도준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왜? 그 개자식이 죽었다니까 방금 전 행동이 후회 돼?”권하윤은 이내 고개를 피했다. 하지만 아직 부탁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하는 수 없이 그의 비위에 맞춰야 했다.솔직히 그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귀에 너무나도 거슬렸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또 진짜일까 봐 겁이 났다.이에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피곤해서 그래요.”민도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까발리지는 않았다.이윽고 침대에서 내리더니 따라 내리는 권하윤의 어깨를 눌러 다시 침대에 앉혔다.“여기서 자.”“여기서요?”권하윤은 어리둥절했다.그때 겉옷을 입은 민도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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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빛을 빌리다

이렇게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온천 펜션은 대부분 개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내비게이션을 따라 그곳으로 향하던 중 권하윤은 펜션의 위치가 공씨 가문 리조트와 멀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 하지만 모든 방면에서 리조트보다 많이 떨어졌다.게다가 엄 변호사의 말대로 주위에 건물도 없고 가로등도 없어 펜션이라기보다는 귀신의 집에 더 가까웠다.때마침 날이 어두워 어둑어둑한 주위 환경 때문에 권하윤은 감히 내리지 못하고 차에 앉은 채로 이남기를 기다렸다.고요한 주변 환경은 왠지 모르게 김장감을 안겨주었다.그 때문인지 차 문손잡이가 움직이는 순간, 권하윤은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그러다가 차창으로 이남기를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물 마실래요?”이남기는 고개를 저으며 직설적으로 물었다.“그런데 아까 전화로 은우 형의 시신에 관한 소식을 들은 적 있다고 하셨죠?”“네.”권하윤은 짤막한 대답을 끝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훑어보더니 뜬금없는 말을 내뱉었다.“참, 전에 보육원에서 입양되셨다고 하셨죠? 혹시 어느 보육원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이남기는 그녀의 물음에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말은 다 사실이니까.”이윽고 그는 자기가 성은우와 있었던 일을 모두 사실대로 설명했다. 어느 보육원 출신이고, 공씨 가문에 들어간 지는 몇 년이고, 또 성은우의 습관 심지어는 성은우가 입었던 상처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다.그 답은 권하윤이 알고 있던 것과 모두 일치했다.그때 이남기가 공손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저 권하윤 씨의 생활을 방해할 생각 없어요. 단지 은우 형의 유해를 해원으로 데려가고 싶은 것뿐입니다. 그러니 알고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이남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권하윤은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은우 안 죽은 것 같아요.”“네?”이남기는 그녀의 말에 흥분한 태도를 보였다.“은우 형이 안 죽었다고요? 그럼 지금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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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오빠한테 사고가 나다

차 안.공태준은 백미러를 통해 권하윤이 떠나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시선을 거두었다.“유턴해.”몇 분 뒤, 그 차는 온천 펜션 문 앞에 다시 멈춰 섰다.상향등이 어둠을 가르며 길을 비추자 공태준은 차에서 내려 권하윤이 걸었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수제 구두로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느릿느릿 걷던 그는 선명한 발자국이 나 있는 한 자리에 멈춰서더니 바닥의 낙엽을 주어 들었다.곧이어 어두운 밤처럼 깊고 무거운 목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아까 무슨 얘기 했어?”등 뒤에서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남기는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권하윤 씨가 말하는데 은우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대요.”“살아 있다고?”공태준의 눈에 약간의 놀라움이 피어올랐다.이윽고 이남기의 말을 듣고 난 뒤 그의 어둡던 눈동자는 먹물처럼 검게 변해버렸다.하지만 이남기는 여전히 기쁨에 겨워 공태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성은우는 공씨 가문의 가장 날카로운 칼 같은 존재다. 만약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공태준 한테건 공씨 가문 한테건 모두 좋은 일이기에 그는 공태준이 당연히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가주님, 저 내일 바로 확인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됩니까?”긴 손가락을 점점 그러쥐는 힘에 손안에 있던 낙엽이 부스러졌다.“그래.”-저녁 9시.다시 블랙썬으로 돌아가는 길에 권하윤은 갑자기 암호가 걸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하루 종일 그 소식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 그녀는 얼른 차를 길가에 세우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엄마, 오빠는 어떻게 됐어요? 만났어요?”“만났어, 너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는 잘 있으니까.”전화 내내 양현숙은 모든 일이 순조롭다고 계속 강조했다. 하지만 딸인 권하윤이 엄마가 이상하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그럼 오빠더러 전화 받으라고 해 봐요.”“네 오빠는…… 지금 자고 있어.”뭔가 숨기는 듯한 어머니의 말투에 권하윤은 이내 자기 생각을 확신했다.“엄마, 사실대로 말해 줘요. 대체 무슨 일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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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다른 남자를 만나다

“도준 씨가 간 뒤 잠이 오지 않아 권씨 가문의 온천 펜션에 다녀왔어요.”역시나 바로 탄로나자 권하윤은 미리 준비해 뒀던 핑계를 댔다.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건너편에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 내가 떠나기 전 하윤 씨 잠재우지 않은 탓이라 이거네?”“아니 그게 아니라…….”“아니면 얼른 돌아와. 혼자 산속에 놀러 갔다가 모르는 사람이 하윤 씨 잡아먹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상대의 말에 가시가 있다는 걸 느낀 권하윤은 이내 말소리를 가다듬었다.“바로 갈게요.”그와 동시에 한참 동안 세워뒀던 차의 시동을 걸었다.민도준이 전화까지 걸어 재촉하는 바람에 그녀는 더 이상 꾸물대지 않고 곧바로 블랙썬으로 돌아갔다.밤 10시.권하윤이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을 때, 민도준은 창가에 서 있었다.마침 밤 생활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블랙썬도 한산하던 낮과는 달리 북적거렸고 네온등이 번쩍거리며 검은 방안을 밝혀주었다.어지러운 불빛 아래에 선 민도준의 뒷모습은 마치 안개가 짙게 낀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기까지 했다.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권하윤은 문 닫는 동작마저 한결 조심스러워졌다.하지만 그 작은 소리에도 방해 됐는지 민도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왔어?”아무 일 없다는 듯한 가벼운 말투에 권하윤은 더 긴장한 듯 대답을 얼버무렸다.그렇게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고 있던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그녀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이에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치다 결국은 등이 문에 바싹 붙어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하지만 잔뜩 경계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민도준은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몸을 숙인 채 바싹 달라붙었다.순간 눈이 무의식적으로 감겨버렸다.민도준은 일부러 그녀의 얼굴과 목덜미에 자기의 숨결을 불며 노골적으로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닿을 듯 말 듯한 거리 때문에 권하윤의 목덜미에 난 솜털마저 바짝 곤두섰다.이윽고 잔뜩 흐트러진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도준 씨, 뭐 하는 거예요?”“하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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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돈을 뜯어내다

어쨌든 민도준이 돈을 대주기로 한 덕에 병원비는 그럭저럭 해결되었다. 그 덕에 권하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멩이도 사라진 기분이었다.하지만 신세를 지게 되어서인지 민도준을 마주할 때 권하윤은 편하지가 않았다.“저기, 돈은 투자로 생각해요. 제가 영업하기 시작하면 수익을 나눠줄게요.”그녀는 말하면서도 민도준이 한바탕 비웃을 거라고 생각해 마음속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의외의 대답을 내왔다.“나한테 얼마나 줄 건데?”권하윤은 비즈니스에 영 젬병인지라 솔직히 이런 거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민도준이 돈을 냈다는 생각에 아무 숫자나 마구 불러댔다.“도준 씨가 6, 제가 4요.”“오, 통이 크네.”상대의 말이 진짜인지 아니면 비웃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권하윤은 잠깐 뜸을 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사실 7을 가져도 돼요.”그녀의 말에 민도준은 아예 웃음을 터뜨렸다.“뭐가 그렇게 쉬워? 설마 7이라는 게 다 빚은 아니겠지?”“에이…… 설마요.”권하윤이 오랜만에 이토록 고분고분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이자 민도준도 인내심이 생겼는지 그녀의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농담을 해댔다.“괜찮아, 빚이라도 내가 대신 갚아줄 수 있어.”그의 말에 권하윤은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눈을 들어 민도준을 보려던 찰나 마침 빤히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순간 가슴이 따끔해나 입을 뻐금거리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망설인 끝에 그녀는 결국 감사하다는 한마디를 내뱉었다.늦은 밤.권하윤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계속 뒤척였다.오빠가 깨났을지, 또 깨어났다면 정말 의료진의 말대로 다시 일어설 수는 있을지 하는 수많은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그러고 보니 은우 일은 어떻게 됐지? 이남기 씨가 조사하기 시작했나? 정보를 캐낼 수 있을까?’생각할수록 잠은 점점 달아났다.하지만 민도준이 깰까 봐 움직이지 못한 채 눈을 껌뻑이며 어둠 속의 천장을 바라봤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시선을 민도준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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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사람을 물다

의미심장한 민도준의 마지막 한마디에 권하윤은 꿈속에서마저 그의 말을 되새겼다.밤새 꿈에 시달린 그녀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허리를 감고 있는 손에 아직도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뭐 하는 거예요?”가슴을 밀어내며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민도준은 그녀의 손을 자기 어깨에 올려놓으며 허리를 꽉 감쌌다.“아침 운동.”그렇지 않아도 흐릿하던 머리는 너무 흔들리는 바람에 더 흐리멍덩해졌다.그러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옆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오늘 해야 할 일이 많은지라 그녀는 무거운 몸을 애써 일으켜 세우며 샤워실로 향했다.그리고 다시 샤워실에서 나왔을 때 몸에는 실크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밖에 입을 옷이 보이지 않았다.‘밖에 있나?’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어 틈새로 확인한 권하윤은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한 듯 밖으로 걸어 나왔다.‘하긴, 민도준 씨 집에 누가 마음대로 쳐들어오겠어.’그렇게 한참 동안 옷을 찾던 그녀는 소파 뒤에서 겨우 자기 것으로 보이는 옷을 찾아냈다.그제야 어제 샤워할 때 민도준이 그녀 대신 옷을 벗겨주고는 아무 데나 버려뒀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하지만 이미 쭈글쭈글해진 원피스를 보는 순간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결국 그대로 입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집안 이곳저곳을 뒤지며 다리미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문이 열렸다.…….“공 가주님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오기 전에 미리 인사라도 주시지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제대로 대접했을 텐데.”누군가 대화를 하며 방에 들어선 민도준은 집안에 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품에 와락 안기는 여자 때문에 일순 넋을 잃었다.하지만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던 공태준의 눈에는 오직 여자의 뒷모습만 보였다.여자는 민도준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두 팔로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키 차이가 많이 나 까치발을 한 탓에 무릎까지 드리웠던 원피스가 위로 조금 당겨졌다.그 시각, 권하윤의 가슴은 미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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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권하윤을 감시하다

“쾅”하는 소리에 이를 악물고 있던 공태준은 천천히 힘을 풀었다. 입안 전체에 퍼진 피비린내를 맡으며 고개를 돌린 그는 시선을 굳게 닫힌 문에 고정했다.문 위에 작게 나 있는 유리로 뒤엉킨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언뜻 보였다. 하지만 흐릿한 화면이 오히려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했다.공태준은 그걸 무시하려고 애써 고개를 돌렸지만 머리는 저도 모르게 자꾸만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상상했다.하지만 민도준은 그에게 엿들을 기회를 주기 싫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밖으로 나왔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소파에 기대앉은 그는 공태준이 아직 서 있자 손을 흔들며 그를 불렀다.“공 가주님도 앉으세요.”공태훈은 소리 없이 소파에 앉았다. 하지만 민도준처럼 흐트러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허리를 곧게 펴고 양복이 다리 양쪽에 반듯하게 놓이게끔 반듯한 자세를 취했다.그때, 담배를 피우려던 민도준은 담뱃갑이 텅텅 비어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휙 내팽개치고 차이터를 돌려대기 시작했다.이윽고 껄렁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며 아쉬운 듯 입을 열었다.“참 아쉽네요.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블랙썬의 애들을 불러 공 가주님을 잘 모시게 하는 건데. 그러면 무료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공태준은 그의 말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마음만 받겠습니다. 오늘은 일에 관한 얘기를 하러 온 거라서요.”“…….”그 시각, 방 안에 있는 권하윤은 밖에서 오가는 대화를 듣고 싶어 문 쪽으로 걸어갔다.하지만 방금 민도준에게 된통 당하고 난 지라 다리가 후들거려 문에 바싹 붙기까지 한참이 걸렸다.들어보니 두 사람은 간단한 사업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권하윤은 민도준이 공씨 가문과 손잡은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욱이 민씨 가문에 있을 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프로젝트였다.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두 사람의 대화는 이미 본론으로 들어간 듯했다.“듣기로 지난번 민 사장님이 약혼하기로 했던 고은지 씨가 우리 은채랑 많이 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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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명을 재촉하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온천 펜션에서 약속을 잡았다.권하윤이 도착했을 때 이남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이에 그녀는 곧바로 시동을 끄며 그에게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무슨 소식인데요?”그때 이남기가 그녀에게 모자 하나를 건넸다.“혹시 이거 알아요?”희뿌연 먼지가 쌓인 모자 끝부분에 검붉은 자국이 이미 마른 상태로 묻어 있었다.그걸 보는 순간 권하윤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모자를 터치하는 순간 귓가에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윤아…….’머릿속에 맴도는 익숙한 부름소리에 권하윤은 모자를 꽉 움켜잡았다. 그녀는 그 모자가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었는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희망이 남아 있었다.“은우는 찾았어요? 무사한가요?”이윽고 이남기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말을 보탰다.“혹시 많이 다쳤던가요? 걔가 원래 그래요, 다쳐도 아프다는 소리도 하지 않고 사람을 걱정시켜요. 앞으로 그런 나쁜 버릇은 꼭 고치라고 타일러야겠어요.”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권하윤의 모습에 이남기의 눈빛은 복잡해졌다.“권하윤 씨, 은우 형 정말 죽었어요.”“그럴 리가요.”권하윤은 혼잣말로 중얼댔다.“블랙썬에서 분명 개를 안 기른다고 했는데. 분명 나 속인 건데, 그러니까 은우가 죽었다는 것도 거짓말이어야 하는데.”말하면 할수록 그녀의 소리는 점차 작아지더니 이윽고 옹알이처럼 제대로 들리지조차 않았다.절망보다 희망 끝에 다가온 실망이 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은우는 어디 있는데요? 어디 있어요?”권하윤의 눈빛에 이남기는 안타까운 듯 고개를 돌렸다.“권하윤 씨, 그만 물어보세요.”“왜요? 은우가 어디 있는데요?”이남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은우 형의 시신이 완전하지 않아요.”관자놀이에 전해지는 찢어질 듯한 고통에 권하윤은 간단한 문제도 답을 얻지 못하고 되물었다.“완전하지 않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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