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401 - 챕터 410

1603 챕터

제401화 뭐 하려는 거지?

엄화진은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 보아하니 그녀의 고민도 없는 말투에 살짝 의심을 품는 듯했다.그도 그럴 것이, 권씨 가문은 오랜 세월 경성에 자리 잡고 있던 재벌가로서 망했다 할지라도 남은 자산이 천문학 숫자에 달한다. 재벌가 고문 변호사로 일해오던 엄화진마저 본 적 없는 액수를 권하윤은 고민도 없이 포기했으니 의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그렇다고 그녀는 고객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니다.오히려 계약서를 덮으며 알았다는 간단한 답변을 내놓았다.확인차 권희연에게 전화해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동의했다. 심지어 권하윤이 그녀 대신 남겨두겠다던 배상금마저 거절했다.이미 권씨 가문 사람이 아니니 권씨 가문의 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며 말이다.덤덤한 말투를 보니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때문에 권하윤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권하윤이 통화를 끝내기 바쁘게 엄화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이 자산 외에도 체인 레스토랑, 요양원, 그리고 온천 펜션이 남아있습니다. 확인해 본 결과 모두 적자가 계속되고 있는데, 만약 기부를 원하신다면 레스토랑은 영업을 중지하는 걸 권장드립니다. 물론 가게 임대료 기간이 아직 남아 있어 조금 낭비이긴 하지만 계속 오픈하기보다 문을 닫는 게 손해가 가장 적습니다.”“온천 펜션 같은 경우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부지도 넓지만 온천을 제외하고 특별한 부분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주위에 이미 다른 리조트가 들어서 계속 영업하려면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만큼 빨리 수입을 창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행히 권씨 가문의 개인 부지라서 원하신다면 그곳에 다른 사업을 해보실 수는 있습니다.”권하윤은 위치를 슬쩍 확인해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고마워요.”“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엄화진은 이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떠난 뒤, 권하윤은 얇은 종이 쪼가리 몇 장을 꽉 잡은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오전 8시, 아침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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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성은우의 유해가 어디 있죠?

길모퉁이에 서 있는 차 안.조수석에 앉은 이남기가 권하윤을 바라봤다.“인사가 늦었네요, 이남기라고 합니다. 은우 형과 마찬가지로 공태준 가주님의 사람입니다.”서은우라는 이름 세 글자를 듣는 순간 권하윤의 심장은 욱신거렸다.하지만 그런 고통은 공태준이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경계로 바뀌었다.‘공태준? 공태준의 사람이 나를 왜 찾아왔지? 설마 뭔가 눈치챘나?’이남기는 그녀의 의심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계속 말을 이어갔다.“저는 은우 형과 같은 보육원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만약 은우 형이 없었다면 저도 지금까지 살지 못했을 거고요.”권하윤은 상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돌렸다.“죄송하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왜 찾아오셨죠?”“은우 형한테서 많이 들었습니다, 이시윤 씨.”“…….”놀라기도 잠시, 권하윤은 애써 감정을 억제하며 입을 열었다.“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저 권 씨예요, 권하윤이라고 불러주세요.”그녀의 말과 함께 공기 속에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그러던 그때.“제 말 안 믿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은우 형이 저에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라서 형의 유해를 해원에 데려가고 싶어요. 만약 권하윤 씨가 알고 있다면 저한테 알려주세요.”말을 마친 뒤 이남기는 그녀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남기고 가버렸다. 그가 남기고 간 쪽지에 쓰인 숫자를 보는 순간, 권하윤은 눈앞이 어질해 났다.사람은 정말 이상한 생물인 듯싶다. 분명 성은우가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유해라는 두 글자를 듣는 순간 그녀는 가슴이 미어질 것처럼 아프니 말이다.아마 그의 시신을 보지 못해 아직 살아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남기의 말은 그녀를 현실로 끌어왔다. 더 이상 현실을 부정할 수 없도록 말이다.‘은우는 나 때문에 죽은 거야…….’그녀는 운전대에 엎드려 등을 한껏 움츠러뜨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그 시각, 멀지 않은 차 안.“가주님.”“물어봤어?”“네, 하지만 시윤 씨는 모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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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파혼을 꺼내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민상철은 침대에 누워있는 대신 정신을 바짝 차린 채 중앙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한눈에 봐도 뭔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그때 강수연은 권하윤을 떼어내야 한다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입을 열었다.“아버님, 저희는 왜 부르셨어요? 혹시 발표할 일이라도 있나요?”하지만 민상철은 언짢은 듯 그녀를 흘겨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강수연도 그제야 자신이 너무 조급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그러던 그때, 민상철은 흐릿한 눈으로 권하윤을 바라보며 날카롭게 훑어보았다.“혼자서 권씨 가문을 맡게 됐으니 고생이 많다.”권하윤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충 마무리됐습니다.”“음, 내가 도울 일 있으면 장 집사한테 말해두거라.”그녀는 당연히 이런 겉치레적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리 없다. 때문에 그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그렇게 한참 얘기하다가 민상철은 손에 걸린 염주 팔찌를 돌리며 겨우 본론으로 들어갔다.“네가 우리 승현이와 약혼한 지도 꽤 됐지 아마? 약혼식 때 두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있으면 정식으로 식을 치르게 하겠다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미뤄졌구나.”암시가 섞인 말에 강수연은 똑똑한 척 끼어들었다.“아휴, 그때 약혼을 너무 급하게 치렀죠. 사실 그저 두 집안 아이들이 잘 지내다 보니 같이 모여서 밥 한 끼 한 것뿐이니 약혼식이랄 것도 없습니다.”권하윤은 순간 웃음이 났다. 강수연의 말은 그녀와 민승현의 약혼은 무효이니 이 기회에 파혼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이건 그녀가 바라던 바인지라 반박을 하지않고 민상철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런데 그때.“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민상철은 오히려 버럭 화를 냈다.그의 반응에 강수연은 어리둥절했다.“아버님…….”“약혼이 무슨 어린애들 장난인 줄 아나? 경성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이 약혼했다는 거 다 알 텐데 그걸 없던 일로 하겠다고?”평소에도 위엄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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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싫어도 결혼해야 해

강수연은 밖으로 나가기 전 권하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민승현에게 어렵게 차려진 기회를 권하윤이 망칠까봐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하지만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기는커녕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권하윤의 행동에 그녀는 일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발만 동동 굴렀다.그러던 그때.“크흠.”경고가 섞인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민상철의 어두운 눈과 마주치자 강수연은 더 이상 꾸물거리지 못하고 목을 한껏 움츠린 채 도망치듯 사라졌다.분명 사람 하나 줄었을 뿐인데 공기는 일순 희박해졌다.민상철은 역시나 오랫동안 비즈니스계를 주름잡던 인물이라 그런지 아무리 연세가 있다해도 카리스마가 줄지 않았다. 더욱이 이 순간 권하윤에게 겁을 주려는 생각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언의 압박만 가했다.그렇게 침묵이 지속되는 동안 권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물론 압박감 때문은 아니었다. 민도준과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이런 압박감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다.그것보다는 민상철이 갑자기 그녀와 민승현의 결혼을 밀어붙이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권씨 가문이 진 뒤로 그녀는 일반 가정집 여식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권씨 가문에 아직 남은 돈이 있다고는 하지만 민씨 가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아니다.‘설마…… 민도준 씨 때문인가?’하지만 생각해 보니 또 그런 건 아니었다. 민상철이 팔에 염주를 차고 있는다고 마음이 부처님 같은 건 아니기에 그녀와 민도준 사이의 관계를 알았다면 당장 그녀를 처리하면 그만이지 민승현을 내세울 필요가 없었으니까.‘민씨 가문 정도면 나를 처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텐데.’그렇게 한참 동안 생각하던 그때, 민상철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내가 왜 너랑 승현이 결혼을 밀어붙이는지 알겠느냐?”권하윤은 이내 눈을 내리깔았다.“말씀해 주십시오.”“흥, 역시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어 무서울 거 없다 이건가?”그 말에 권하윤의 심장은 철렁 가라앉았다. 솔직히 민상철이 일부로 떠보는 건지 아니면 이미 확답을 얻은 건지 긴가민가했다.하지만 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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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합방도 도와줄 수 있어

민상철의 낯빛은 순간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이냐? 설마 거절하겠다는 뜻이냐?”권하윤은 낮은 한숨을 내뱉었다.“거절이라니요. 할아버님께서 저한테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제가 거절하면 너무한 거죠. 권씨 가문이 이렇게 됐는데도 저를 받아주고 잘먹고 잘 살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니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게 있다면…….”권하윤이 말끝을 흐렸지만 민상철은 당연히 이해했다. 그녀가 민도준이 방해를 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한편, 권하윤은 말하면서 민상철의 눈치를 살폈다.솔직히 그녀가 이 한마디를 내뱉은 건 엄청난 모험이다. 만약 민상철이 그녀가 귀찮다고 생각해 뒤탈을 없애려고 한다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는 도박을 하는 거다. 물론 뭔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상철이 아직은 자기 목숨을 함부로 하지 않을 거라고.침묵이 이어질수록 권하윤의 심장도 따라서 쪼그라들었다.그녀를 바라보는 민상철의 눈빛은 마치 붉게 물든 칼날 같아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녹이 쓸어 사용할 수 없어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그 붉은 자국이 모두 핏자국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권하윤은 심지어 민상철이 이미 자기를 죽이려고 결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민상철의 덤덤한 말투가 귀에 들려왔다.“그렇다면 어찌해야 한다는 거냐? 네 뜻을 말해보거라.”그 말에 권하윤은 겨우 낮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 모든 게 저 때문에 일어났으니 제가 떠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하.”민상철은 입가에 냉소를 지었다.“떠나려는 거니? 아니면 시간을 벌려는 거니?”권하윤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녀가 어렵사리 민도준이라는 뒷배가 생겼으니 그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을 거다. 민상철의 그런 의심을 한두 마디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권하윤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이에 그녀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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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도준 형이 저런 스타일 좋아하나?

전화 반대편.민도준은 손에 쥔 방망이를 흔들거리며 벽에 걸린 채 입이 막혀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고진태를 힐끗 바라봤다.이윽고 고개를 살짝 움직이더니 방망이를 들어 그대로 상대를 내리쳤다.“젠장, 시끄러워 죽겠네.”“읍-”벌써 지하실에 이틀째 감금된 채 뜬눈으로 이틀을 꼬박 지새운 고진태는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의 심기를 거스를까 겁나 옆에 있는 고은지만 내내 노려보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만 있다면 고은지는 아마 그의 눈빛에 수백 번도 죽었을지 모른다.이윽고 입을 막고 있던 물건을 빼내는 순간, 그는 곧바로 욕설을 퍼부어 댔다.“고은지! 너 이년! 은혜도 모르고, 역시 어미가 천것이라서 딸도 그 모양이네!”욕설을 퍼붓고 난 뒤, 그는 민도준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태도가 이내 누그러들었다.“민 사장, 나 정말 알고 있는 거 다 말했어. 제발 나 좀 풀어줘…….”그 말에 민도준은 피식 웃었다.“풀어달라고? 그래.”고진태는 희망이라도 얻은 것마냥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그가 기뻐하기도 전에 민도준의 말소리가 천천히 귓가에 들려왔다.“상체부터 풀어줄까요? 아니면 하체부터 풀어줄까요?”장난 같지 않은 그의 말에 고진태의 얼굴은 이내 잿빛이 되었다.“민…… 민 사장…… 잘못했어. 그때는 내가 뭐에 홀렸나 봐…….”그의 애원에 민도준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거 참 잘됐네요. 귀신에 홀린 사람 손봐주는 건 제 전문이거든요. 아저씨가 선택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으니 제가 대신 선택할게요.”이윽고 몽둥이로 고진태의 갈비뼈를 꾹꾹 눌러댔다. 당장이라도 가슴에 구멍을 낼 것만 같은 힘에 고진태는 이내 비명을 내질렀다.“귀신한테 홀렸다니 심장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네요. 이 중간부터 가르는 게 좋겠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아니, 아니! 내가 고르겠네. 내가…….”고진태는 너무 놀란 나머지 벌써 눈물범벅이 되어버렸다.“상체는 놔줘, 상체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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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누구랑 결혼하고 싶은데?

민도준은 고은지에게 반응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손으로 그녀의 팔을 낚아채더니 창가에 밀쳐버렸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은지는 눈앞이 컴컴해져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눈을 깜빡거렸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아래층을 향해 고개를 까닥이며 입을 열었다.“저기 분수 보이지? 저기 가서 씻어.”컴컴하던 눈이 다시 광명을 찾기 바쁘게 들려오는 충격적인 말에 고은지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네, 알겠어요. 바로 가볼게요.”하지만 그녀가 움직이자마자 민도준은 그녀를 다시 잡아끌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뭐 하러 걸어 내려가? 다이빙하면 더 빠르겠는데.”“민도준 씨, 저…….”고은지는 애써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댔다. 하지만 그러던 중 그의 시선이 자기한테 있지 않다는 걸 발견했다.민도준은 아래층을 바라보며 눈썹을 약간 치켜올렸다. 그 시선 끝에는 웬 여자가 서 있었다. 다만 거리가 멀어 상대가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할 수 없었다.고층 건물의 그림자 아래에 선 작은 인영은 앞으로 걸었다 뒤로 물러났다 하면서 뭔가 갈등하는 모습이었다.‘만약 이 순간 사람이 떨어진다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하.”민도준은 피식 웃으며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명령했다.“꺼져.”그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몰랐지만 고은지는 겨우 목숨을 건진 것마냥 다급하게 방문을 나섰다.그 시각, 아래층.건물 밖에서 한참 동안 서성이던 권하윤은 이남기가 성은우를 고향에 묻어주고 싶다던 말이 생각나 끝내 블랙썬의 대문에 들어섰다.하지만 건물에 들어서기 바쁘게 마주친 고은지의 온몸을 적신 시뻘건 피를 보는 순간 그녀는 속으로 경악했다.고은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곧바로 다른 생각에 의해 대체 됐다.“권하윤 씨.”“고은지 씨.”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인사를 나눈 뒤, 고은지는 떠나버렸다.하지만 권하윤의 눈살을 이내 찡그러졌다. 그녀가 아무런 연락도 없이 찾아온 건 민도준이 없는 틈에 성은우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그런데 고은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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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성은우를 정말 개밥으로 줬나요?

권하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민도준이 답을 맞히기 시작했다.“민승현은 아닐 테고, 성은우는 이미 죽었으니 기회가 없을 테고. 나는, 하, 목숨 걸고 도망치지 못해 안달이니 더욱 아닐 테고. 그렇다면 남은 건…….”민도준의 길게 늘어뜨린 끝 음에 권하윤의 심장 박동은 마구 흐트러졌다.이윽고 민도준이 따져 물을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 피식하는 그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한민혁?”당연히 공태준의 이름을 들을 거라고 생각한 권하윤은 말문이 턱 막혔다. 이미 머릿속에 생각한 말들도 모두 소용없어지자 저도 모르게 억지 미소를 지어냈다.“무슨 그런 농담을…….”“하긴.”그녀의 얼굴에 대고 있던 민도준의 손가락은 그녀의 볼을 한 번 슥 문질렀다. 이윽고 장난기 섞인 남자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흘러들었다.“제수씨처럼 까탈스러운 여자를 한민혁이 감당할 리가 없지. 적어도 신분 높고 여자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돼야지. 안 그래?”끝 음을 살짝 올린 그의 한마디가 내뱉어지는 순간 아슬하게 걸려있던 담뱃재가 툭하고 떨어졌다.쇄골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온도에 권하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뜨렸다.그 순간 선명하던 그녀의 쇄골은 하층 더 움푹 파였다. 하지만 부드럽고 연약하기만 하던 그녀는 오히려 어느때 보다도 강인하게 허리를 곧게 폈다.이윽고 이를 꽉 악문 채 신음소리를 참으며 눈을 내리깔았다.“신분 높은 사람은 바라지 않습니다. 전 그저 평범하고 무탈하게 지내고 싶거든요.”그녀의 긴 속눈썹 아래에 드리운 그림자와 검푸른 다크써클 한데 어우러져 색을 분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그녀를 한참 바라보던 민도준이 끝내 입을 열었다.“요구가 의외로 낮네?”“제가 어찌 감히 요구를 내걸겠습니까?”자조적인 웃음과 함께 내뱉은 한마디를 끝으로 주위는 일순 조용해졌다.무거운 공기 속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덩어리져 권하윤을 눌러댔다.고개를 들지 않고도 자기를 찍어 누르는 듯한 남자의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체념한 듯 민도준의 괴롭힘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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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여자 때문에 크게 싸우다

“어.”한민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하려던 말을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왠지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한민혁 씨…….”이윽고 그는 자기의 이름에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저기, 하윤 씨, 먼저 먹고 있어요. 저 급한 일 때문에 잠깐 나가야 할 것 같아요.”권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물기 어린 두 눈에 한민혁은 몸을 흠칫 떨었다. 이윽고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헐레벌떡 달려 나오더니 놀란 가슴을 내리 쓸었다.‘휴, 권하윤 씨 정말 무섭네. 하마터면 설득당할 뻔했잖아.’하지만 이런 일은 민도준의 의견을 물어야 했다.-민씨 저택.다리를 꼰 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흘겨보는 민도준의 태도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민상철의 표정은 어두워졌다.“너 때문에 과학기술단지가 지금 텅 비어있어. 이대로 칩 기술을 들이지 않는다면 문 닫을지도 모른다고!”“그래서요?”“그래서라고 물었어? 어쩜 그리 뻔뻔할 수가 있지?”느긋하게 하품하며 묻는 민도준의 말에 민상철은 버럭 화를 냈다.“비즈니스가 네가 하는 그 짓거리와 같은 줄 아느냐? 때리고 죽이고 하면 끝인 줄 알아? 비즈니스계의 전쟁은 그런 무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강하게만 나간다면 누가 너를 위해 일하겠니?”“할아버지의 훌륭한 아들이 있잖아요.”민도준은 종이를 손가락으로 튕기더니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그의 태도에 민상철의 낯빛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네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일주일 내로 여전히 이 꼴이면 과학기술단지는 네 큰 숙부한테 맡길 거다.”민도준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서류를 테이블 위에 툭 던져버렸다.그것으로 일 얘기가 끝나자 장 집사가 차를 내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도준 도련님, 차 드세요.”차가 입안으로 감겨 들어간 순간 약 2초간 머금다가 삼킨 민도준은 이내 입꼬리를 씩 올렸다.‘어쩐지 영감탱이가 우리 제수씨의 결혼을 서두르신다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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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설마 안 죽었나?

따뜻한 오후의 햇살은 사람을 노곤노곤하게 내리쬤지만 권하윤은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한민혁이 간 뒤로 그녀는 줄곧 그의 반응을 되새겼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그런 반응은 이상하기만 했다.‘은우가 이미 죽었는데, 시체가 있는 곳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렵나? 난 그저 고향에 묻어주려는 것뿐인데, 누가 다시 살려낸다고 했나? 설마…….’갑자기 든 생각에 권하윤은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전류라도 흐르는 것처럼 등줄기로부터 손끝까지 저릿해 났다.‘설마, 은우가 안 죽었나? 그날 총소리만 들었을 뿐 은우 시체는 못 봤잖아. 설마 죽이지 않고 어디 가뒀나?’그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권하윤의 가슴은 뜨거운 물을 부어 넣은 것처럼 끓기 시작했다.이윽고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방 안을 계속 서성이며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모든 장면을 되새겼다.‘은우를 개밥으로 던져줬다는 것도 속인 거라면, 은우가 죽었다는 것도 속일 수 있잖아.’분명 이 모든 게 현실성 없는 신기루 같은 생각이라지만 그녀는 기쁨을 제어할 수 없었다.‘은우가 죽지 않았다면…… 만약 안 죽었다면…….’너무나도 깊이 몰두한 나머지 그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듣지 못했다.때문에 민도준이 들어왔을 때 그의 앞에는 선 자리에서 뱅뱅 도는 권하윤이 보였다.“귀신이라도 들렸어?”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권하윤은 눈앞에 나타난 사람을 본 순간 모든 생각을 고이 접었다.“도준 씨.”이윽고 참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눈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민도준을 쫓았다. 마치 그의 머리를 꿰뚫어 성은우의 생사를 알아내기라도 하듯이.민도준은 자기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권하윤이 아예 자기를 빤히 쳐다보자 재밌는 듯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쿡쿡 찍었다.“왜? 안 본 새에 나 잊은 거야? 못 알아보겠어?”“아니거든요. 저는 그저…….”권하윤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더니 무의식적으로 그의 비위를 맞추는 듯 나긋한 한마디를 내뱉었다.“보고 싶어서요.”“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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