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21 - 챕터 1030

1603 챕터

제1021화 새로 알게 된 사실

“아빠가 공은채를 도우려고 했다는 게 무슨 뜻이죠?”“그게…….”입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킨 채 되묻자 석지환이 설명하기 시작했다.공은채가 석지환에게 얘기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두 사람은 사생관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이 없는 데다 공은채의 상황을 알게 된 이성호가 공은채의 도망을 도우려 했다고.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걸 공천하가 알게 되었고 그러한 비극이 생겼던 거다.공천하는 이성호에게 보복하기 위해 학생들을 매수해 그의 이름에 먹칠했고 자살하지 않으면 그의 가족이 화를 입게 될 거라고 협박하면서 투신 자살을 종용했다.하지만 이성호가 투신한 뒤 공천하는 이성호의 가족을 놓아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점점 망가트렸다.그걸 들은 하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 모든 게 너무 말이 되니까. 심지어 공은채에 대한 공천하의 집착이라면 이러는 게 충분히 가능했다.하지만 그 배후는? 게다가 공은채는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지…….하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 없는 석지환은 낮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은채도 이 일에 죄책감을 품고 있어, 심지어 자살 시도도 했었고.”“자살이요?”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하윤이 믿지 않는 눈치에 석지환이 증언했다.“은채 팔목에 재해 흔적이 있어. 공씨 집안 사람들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하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 공은채가 아버지를 따라 죽으려고 했다는 걸 충동적으로 말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이미 제가 한 일에 그럴싸한 변명을 붙였는데, 하윤이 그런 말을 했다면 오히려 공은채를 비방한 것밖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어쩐지 석지환의 여자친구 신분으로 당당하게 내 앞에 나타난다 했어. 이미 모든 시나리오를 다 짜 놓았던 거네.’“그래서요? 그간 어디 있었대요?”“교수님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가 어렵사리 다시 살아난 뒤 죽은 척하고 공씨 저택을 떠나 살았대. 그곳에서 공은채라는 이름도 신분도 숨기고 지내다가 나랑은 우연한 기회에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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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2화 공은채의 수많은 얼굴

텅 빈 제 소매를 보자 석지환의 눈에 파문이 일었다.원래라면 그해 골든 홀에서 스승인 이성호와 함께 연주해야 할 사람은 석지환이다.하지만 무대 일주일 전, 그에게 사고가 난 거다.그날은 신입생 환영회였다. 원래 학생 대표로 환영회에 연주해야 할 주림은 그날 저녁 갑자기 열이 나면서 무대를 석지환에게 부탁했다.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늘 돌보던 석지환은 주림의 부탁에 동의한 것도 모자라 약국에서 약까지 사 들고 공연이 끝나면 가져다주려고 했다.하지만 약을 다시 주림에게 전해준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신입생 환영회 무대가 갑자기 무너지면서 무대에서 연주하던 석지환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으니까. 물론 목숨은 건졌지만 그 사고로 한쪽 팔을 영원히 잃었다.당사자뿐만 아니라 목격자의 마음에도 큰 그림자로 남은 이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곤 한다.회상을 멈춘 석지환은 눈을 감았다.“나도 이 일이 단순한 사고인 줄로만 알고 있었어. 마약 공은채가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모른 채로 살았겠지.”가방 속에 손을 집어넣던 하윤은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뭐라고요? 누가 말해줬다고요?”“은채.”“…….”공은채를 언급하자 추억 속에 잠겨 있던 석지환의 눈은 다시금 빛났다.그러더니 갑자기 물었다.“윤아, 네 눈에 나는 어떤 사람이야?”잠깐 멈칫하던 하윤이 대답했다.“다정하고 친절하고 다른 사람 챙길 줄 아는 큰오빠 같은 사람이요.”석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 그런데 은채가 그러더라. 사실 나는 다른 사람 보살핌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고.”……팔을 잃은 뒤 석지화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취약했다. 겉으로 팔을 잃은 게 아무 일도 아닌 척해왔지만 매번 균형을 잃고 넘어질 때면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그래도 늘 혼자서 고통을 묵혀왔는데, 공은채를 만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당시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그저 해외에서 오랜만에 만난 학교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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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3화 만회할 수 없는 국면

하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무력감이 몰려왔고 어디로 가든 앞길이 막힌 미로에 갇힌 기분이었다.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석지환은 하윤이 제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운을 뗐다.“나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 주림이 성질머리는 좀 있어도 순수하고 착한 동생인 줄 알았거든. 그런데 은채 말에 의하면 주림이 그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정신 상태도 불안정해서 나를 경쟁 대상으로 여겼나 봐. 그리고 은채가 주림을 위로하려고 가까이했더니 자꾸 둘이 사귀는 거로 착각해 은채도 나중에 멀어졌다고 하더라고.”그토록 자신만만했던 일기의 존재가 순식간에 내놓을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공은채의 완벽한 포장 덕에 일기를 꺼낸다 해도 석지환은 그게 모두 주림의 억측이라고 여길 테니까.다시 입을 열었을 때 하윤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았다.“공은채는 주림 선배가 한 짓인 거 어떻게 알았대요?”“우연히 알았나 봐. 은채가 나보다 먼저 귀국했는데 그때 주림의 룸메이트를 만났대. 그런데 룸메 말로는 주림이 그때 아팠던 게 아니었대.”석지환이 아무리 다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이야기를 입에 담을 때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주림은 나 대신 교수님과 무대에 서기 위해서 이런 일을 꾸몄던 거야.”석지환이 사고를 당하면서 주림이 그 기회를 잡은 건 사실이다.때문에 모든 게 완벽히 맞아 떨어지는 양상이 되어버렸다.순간 손발이 꽁꽁 묶인 기분이 들어 하윤은 어떻게 해야 이 국면을 만회할 지 몰랐다.심장이 제멋대로 쿵쾅거렸고 뇌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아버지의 사인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하윤의 마음은 이미 심란했다. 방금까지도 애써 침착해야 한다고, 공은채의 진짜 모습을 밝혀야 한다고 자기에게 최면을 걸었다.하지만 지금, 그 마지막 희망마저 깨져버렸다.‘내 가족은 그저 공은채의 손에 놀아날 운명인 걸까?’하윤은 눈앞이 깜깜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석지환의 질문이 정곡을 찔러왔다.“시윤아, 주림이 지금 경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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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4화 혹독한 나날들

지난 몇 년 간 지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하윤은 가족을 이끌고 지금껏 살아 남았다.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지만 전에는 본 적도 없는 세상의 추악한 면모를 보았고, 그로 인해 점점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하윤에게 인생은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나락이었으니까.공태준이든 공은채든 아니면 민도준이든 모두 이 게임의 설계자라면 하윤은 그 속에 갇혀 살길을 찾아 헤매는 플레이어에 불과했다.세 사람처럼 상위자의 시야도 없었기에 생사의 기로에서 매순간 허덕이기 바빴다.그리고 지금도, 만약 도준이 하윤을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지 않았다면 하윤은 아마 계속 그 심연 속에서 허덕였을 거다.……분명 제 과거를 얘기면서 하윤은 마치 남 얘기하듯 무덤덤했다.그리고 무덤덤하게 제 이야기를 풀어가는 하윤을 보면서 석지환은 하윤이 더 이상 제가 알던 천진난만하던 동생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석지환 기억 속의 하윤은 분명 매일 이승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꼬마였다.게다가 승우는 그런 하윤을 무척 아꼈다. 등 하교할 때마다 데리러 가고 데리러 오고, 조금만 아프면 달래서 재우고 먹이면서 엄마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돌봤다.그래서 석지환은 매번 동생이 시집가면 승우도 혼수로 함께 따라가겠다며 놀려댔었다.그런 보살핌 속에서 자란 하윤은 애교 많은 꼬맹이였고 뭐든 오빠 의견을 따르는 귀여운 동생이었다.하지만 현재, 하윤은 이미 석지환과 승우가 보지 못한 곳에서 천진난만하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온갖 시련을 겪어도 아픈 기색도 내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석지환은 미안한 마음이 앞서 하윤의 팔을 꼭 잡았다.“미안해. 오빠들이 너 지켜주지 못했어. 막 해외에 도착한 1년 간은 나 혼자 좌절에 빠져 너희가 이런 고생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 오빠가 미안해.”석지환이 아직도 지난 나날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하윤은 이내 확신이 들어 간절히 말했다.“제가 어떻게 오빠를 탓하겠어요. 오빠도 피해자잖아요.”“피해자? 그게 무슨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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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5화 원수

하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오빠, 지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하윤이 경계하는 모습을 내비치자 석지환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그러니까 네 말대로 은채가 정말 주림과 교수님의 일과 연루되었다면 그걸 민 사장이 몰랐을까?”‘도준 씨…….’민도준이 흥덕 마을과 이성호가 투신한 빌딩에 모두 나타난 적이 있다면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거다.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하윤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을 꺼냈다.“난 도준 씨 믿어요. 도준 씨는 내가 다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요.”석지환은 헛웃음이 나왔다.“이제 다 컸다더니 여전히 어린애네? 그때 민 사장은 너 알지도 못했을 텐데 어떻게 너까지 고려하겠어?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두 사람 사이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너도 알았음 해서. 네가 나더러 은채 의심하라고 하는 게 내가 너더러 민 사장 의심하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거.”하윤은 몇 마디 말로 공은채에 대한 석지환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문에 할 수 없이 한 발 물러섰다.“좋아요. 증거가 없으니 오빠 난처하기 안 할게요. 그런데 하나만은 꼭 약속해 줘요. 내가 오늘 했던 말 공은채한테 말하지 않겠다고.”석지환은 피식 웃으며 새끼 손가락을 내밀었다.“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할까?”익숙한 동작은 순간 하윤의 옛추억을 소환했다. 학생 시절 승우가 바쁠 때면 항상 석지환이 승우 대신 하윤을 데리러 오곤 했는데 그때만 되면 하윤은 승우가 먹지 못하게 하던 음식을 몰래 사먹고는 석지환과 새끼 손가락 걸고 맹세하게 했었다.지난 추억에 코끝이 찡해난 하윤은 새끼 손가락을 내 밀어 석지환의 손가락을 감았다.……경매장을 나선 하윤은 천천히 걸으며 오늘 들은 일들을 소화했다.애초의 목적은 세뇌된 석지환을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도리어 미궁속에 빠지게 된 것 같았다.‘공은채, 감히 내 식구 목숨을 도망치는 발판으로 삼아? 찢어 죽일 X.’공천하가 공은채의 꾀임에 넘어갔든 아니면 정말로 제 딸을 죽은 아내와 겹쳐 보았든, 딸이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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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6화 전 애인 VS 현 애인

한민혁은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하윤의 앞을 가로막은 채 공은채와 대치했다. 그 모습은 제 새끼 지키는 암탉이 따로 없었다.“하윤 씨 먼저 가세요. 여긴 제가 막고 있을게요.”공은채는 아무 정서도 읽을 수 없는 담담한 눈으로 잔뜩 긴장한 민혁의 얼굴을 한번 훑었다.“민혁 씨, 아무리 그래도 저 도준 씨 약혼녀였던 사람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요?”상사의 전 애인과 현 애인 사이에서 도준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 안 들리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이내 고개를 돌리더니 하윤에게 말했다.“차 안에 히터 켜 놓고 있으니 먼저 타요.”“혹시 지환 오빠 찾아왔어?”“안 돼?”하윤은 민혁의 말을 무시한 채 공은채를 바라봤다. 그 시각 공은채도 하윤을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얼핏 보면 채 얼지 않은 물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먹어봐야 얼마나 차가운지 알고, 목구멍으로 넘겨봐야 목구멍을 찢을 듯이 날카로운 얼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하윤은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당연히 되지. 지환 오빠 여자친구잖아. 그런데 지환 오빠는 알아? 네가 지환 오빠랑 사귀면서 도준 씨를 위해 몸은 깨끗하게 남겨두고 있다는 거?”“…….”너무 충격적인 대사에 민혁의 동공은 일순 확대되었다. 심지어 너무 놀라 아무 말조차 하지 못했다.‘이, 이거 너무 자극적이잖아?’그날 일부러 하윤이 듣도록 말한 지라 하윤이 다시 그 일을 입에 담자 공은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 쳤다.“아하, 혹시 들었어?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넌 도준 씨랑 어울리지 않아. 도준 씨는 너처럼 평범한 사람은 알 수 없는 사람이야.”공은채의 말에 하윤은 화가나 웃음이 나왔다.“그럼 누가 더 어울리는데? 너?”“응.”“도준 씨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도준 씨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포악한지 나만 알거든.”공은채는 하윤을 힐끗 바라봤다“도준 씨가 힘든 나날을 보낼 때 곁에 있어준 사람도 나고 도준 씨가 이토록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걸 지켜본 사람도 나야. 그러니 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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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7화 편애

한민혁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든 석지환은 방금 전 자기가 얼마나 충동적으로 말했는지 알아챘다.“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하지만 이미 기운이 빠진 하윤은 더 이상 석지환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민혁을 돌아봤다.“우리 가요.”석지환을 째려본 민혁은 이내 대답했다.“그래요. 저런 사람들이랑 똑같이 굴면 안 되죠.”……차에 오른 민혁은 뒷좌석에 앉은 하윤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그리고 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윤은 전화를 받게 되었다.전화기를 귓가에 갖다 대고 말하는 순간 하윤의 목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다. 딱 들어도 밖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모습이었다.곧이어 남자의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나지막한 음성이 전화기를 타고 귓가에 들려왔다.“정말 밖에 내 놓으면 안 되겠어. 나가기만 하면 넋이 나가서는, 또 누가 심기를 건드렸는데?”하윤은 머리를 창가에 기대더니 살짝 부딪쳤다.“아니에요.”“응? 옳고 그른 것도 판단 못하는 지환 오빠 때문 아니었어? 걱정돼서 구해주러 갔더니 오히려 여자한테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서.”“알면서 왜 물어봐요?”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됐어. 뭐 그렇게 불쌍하게 있어? 성질 사납게 공은채 뺨도 때렸으니 손해 본 거 아니잖아.”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 전까지 기운이 없었던 하윤은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지금 누구더러 성질 사납다는 거예요? 설마 마음 아파서 그래요? 아하, 그래서 그러는 구나? 무슨 의도로 전화했나 했더니 역시나 옛 애인 대신해서 따지려는 거였네요!”도준은 테이블 위에 겹쳐 올려 놓았던 다리 위치를 바꾸면서 피식 웃었다.“한쪽만 편애하는 건 자기의 그 지환 오빠인데 왜 나한테 화를 내?”도준의 가벼운 한마디는 마침 하윤이 답답했던 점을 지적했다.그건 편애가 맞았다.제가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시하든, 공은채의 말에 얼마나 많은 허점이 있든 석지환은 믿지 않을 테니까.이런 인식에 하윤은 좌절감이 들었다. 석지환이 주림과 제 아버지 같은 일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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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8화 미인계

“은채야, 우선 얼음찜질 하고 있어. 내가 이따 의사 불러줄게.”공은채는 얼음주머니를 받아 쥐어 얼굴에 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살을 살짝 찌푸린 모습에서 불편해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석지환은 마음이 아파 공은채 옆에 앉았다.“아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다 봤잖아.”공은채는 한참 동안 찜질을 하다가 얼음 주머니를 내려 놓았다.“내가 교수님을 해쳤다고 미워하는 것 같아. 이런 일 당해도 싸지 뭐.”공은채가 오히려 모든 죄를 제가 떠안는 모습에 석지환은 오히려 마음이 아팠다.“아니야. 이건 다 공천하 짓이잖아. 너도 피해자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지환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공은채가 그의 어깨에 기댄 것이었다. 그 순간, 공은채한테서 나는 특유의 시원한 향기가 석지환을 그물처럼 감쌌다.“나 이해해줘서 고마워.”석지환에게 고마운 게 아니라 석지환이 저를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오해당한 게 억울하다는 걸 충분히 나타냈다.그 때문에 마음도 따라서 철렁 내려앉아 석지환은 손을 들어 공은채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그동안 고생한 거 알아. 나도 이런 거 원치 않아. 너무 자책하지 마.”공은채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석지환의 위로를 듣기만 했다.그러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난 네가 시윤이 만난 뒤로 나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는데.”“그럴 리가 없잖아.”석지환은 피식 웃었다.공은채는 그런 석지환의 어깨에서 일어나더니 애교 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두 사람 나 없는 데서 내 뒷담화 하지 않았어?”말을 꺼내려는 순간 석지환은 엄지가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건 하윤과 약속한 증거였다.다시 눈을 내리 깐 석지환은 천천히 말을 꺼냈다.“시윤은 그저…… 네가 교수님 해쳤다고 오해하고 있어. 그게 뒷담화는 아니잖아.”석지환이 여전히 하윤의 편을 들자 공은채는 미간을 좁혔다.“그럼 주림 데려오는 건 물어봤어?”석지환은 잠시 머뭇거렸다.“주림의 정신이 아직 온전치 못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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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9화 달라진 대우

하윤은 입을 삐죽거렸다.“나처럼 호강만 할 줄 아는 쌀벌레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도준은 나른하게 침대 머리에 기대 되물었다.“누가 자기더러 쌀벌레래?”“누구긴 누구겠어요? 도준 씨 전 약혼녀죠. 자기는 도준 씨와 함께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하며 걱정도 나눠줬는데 나처럼 호강만 할 줄 아는 여자는 도준 씨랑 어울리지 않는대요.”그 말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걱정을 나눴다고? 그 정도 능력이 되면 집구석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겠어? 그런 말도 믿어?”하윤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는지 투덜거렸다.“뭐 어쩌겠어요? 도준 씨를 늦게 알게 된 제 잘못이죠. 도준 씨 걱정도 나눠주지 못하고.”“하.”장난기 섞인 웃음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방 안에 울려 퍼졌고 핸드폰을 쥐고 있는 하윤의 손마저 찌릿찌릿하게 했다.“자기가 미리 나타났어도 난 응석받이를 데리고 싸우러 다닐 생각 없어. 껍질이라도 까지면 또 얼마나 달래 줘야 한다고.”하윤은 불만인 듯 투덜거렸다.“지금 제가 도준 씨 발목 잡는다는 거예요?”“당연하지.”하지만 하윤이 화를 내기 전에 도준이 느긋하게 말했다.“맨날 자기한테 홀려 침대에서 기운 다 쏟으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겠어?”“말은 똑바로 해야죠. 누가 누굴 홀린다는 거예요?”시끄러운 소리는 전화기를 통해 두 방안의 적막을 깨트렸다.……다음날 아침.경성의 추운 겨울 기온 때문인지 백제그룹 대문을 들어선 사람들은 저마다 찬공기를 몸에 휘감은 채 오돌오돌 떨었다.하지만 걸음을 재촉하는 회사원들 사이에서 한 쌍의 모자는 유독 어울리지 않았다.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여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옆에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이번에 프로젝트 부장이 새로 부임됐다면서? 왜 나와서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송민우는 저들을 보는 시선에 어색한 지 자꾸만 몸을 숨겼다.“가서 물어보면 되죠.”그러다가 한참 뒤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고 돌아왔다.“지금 회의 중이래요.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회의 끝나는 대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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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0화 망신

사무실 안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 건너편, 가죽 광택을 띤 회전 의자는 마침 문을 등지고 있었다.양태린은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아부 섞인 웃음을 지으며 먼저 인사했다.“부장님, 저희가 방해한 건 아니죠?”그러면서 준비해온 선물을 슬쩍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오늘 새로 부임했다고 해서 작은 선불 좀 준비했습니다. 저희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그 말소리가 떨어지는 찰나, 의자에 앉아 있던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빙 돌아 앉았다. 분명 자리에 앉아 상대를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여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기고 있었다.“양 여사님, 다 아닌 사이에 뭘 이런 선물까지 준비합니까?”민시영을 본 순간 양태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너…… 네가 여기 어떻게, 너는…….”한참을 더듬거렸지만 양태린은 온전한 문장조차 구사하지 못했다.그러자 시영의 웃음은 더 짙어졌다.“제가 뭐요? 회사에서 쫓겨났다고요? 오빠랑 말다툼 좀 해서 홧김에 한 말인데, 어떻게 그걸 믿어요?”양태린의 얼굴은 순간 당황함으로 물들었다.“그게…….”그 시각, 문 앞.민도준은 핸드폰을 든 채 영상 속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이 각도는 어때?”그러자 곧이어 여자의 불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각도가 틀렸잖아요. 앵글을 양 여사님쪽으로 돌려야죠. 이러면 뒤통수밖에 안 보이잖아요.”“요구가 참 많네.”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양태린과 송민우가 고개를 홱 돌렸다. 가뜩이나 굳었던 입은 부르르 떨리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했다.“민, 민 사장님…….”“아무 일도 아니니 계속 하시죠. 저는 없다고 생각하고.”도준은 온화한 얼굴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더니 핸드폰을 든 채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그런 상황에 송민우와 양태린은 서로의 눈치만 살피며 도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하기 바빴다.고요한 사무실 안에서, 유독 도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핸드폰을 바라보며 제 할말을 계속했다.“여기는 괜찮지?”하윤은 고개를 갸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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