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11 - 챕터 1020

1603 챕터

제1011화 과거의 기억

하윤은 도준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뭐가 10년 만에 본다는 거예요? 제가 공은채도 아니고, 도준 씨랑 10년 전에 만났을 리 없잖아요.”도준은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하윤을 보자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연주하면서 울던 게 누군데?”“피아노 배우면서 우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에요?”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던 하윤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어? 이상하다? 제가 연주현서 울었던 건 어떻게 알았어요?”도준은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아 하윤의 얼굴을 훑어 내렸다.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은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자기가 연주할 때 우는 울보라는 것만 아는 줄 알아? 겁쟁이인 것도 아는데? 잠깐 놀렸다고 뒤꽁무치 치는.”하윤은 점점 멍해졌다.“무슨 말이에요? 겁쟁이라니요? 지금 일부러 화제를 전환하는 거 맞죠? 미리 말해두는 데, 이번 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얼른 말해요. 공은채와 10년 전에 어디에서 만났는지!”“해원의 강남 콘서트홀. 홀 안이 너무 시끄러워 밖에서 산책하다가 마침 웬 꼬맹이가 초상 난 사람처럼 울며 연주하는 걸 들었거든.”‘남 콘서드홀? 초상?’‘왜 이렇게 익숙하지?’하윤은 자꾸만 기시감이 들었다.그때 도준이 깊은 생각에 빠진 하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초상 난 것 같다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라면서 반나절 연습하더라고.”그제야 하윤의 기억도 예전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해, 주 숙제에 불합격이라는 성적을 받은 하윤은 아버지에게 끌려 연습실로 갔었다.분명 오빠와 동물원에 가기로 약속한 날 연습 때문에 갈수 없게 되자 하윤은 연습할수록 더 심하게 울어 댔다.그렇게 한창 슬피 울고 있는데 창밖에서 행인의 비아냥소리가 들려왔다.상대의 말투는 해원 본토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이제 갓 소년미를 벗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약간 오만함이 섞여 있었다.“누가 들으면 연주가 아니라 초상 치른다고 해도 믿겠어.”심지어 비웃음도 가득 묻어 있었다.가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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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2화 엇갈린 인연

도준은 하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더니 왜 또 못되다는 거야?”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내보이던 하윤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어? 잠깐만요. 그대 저를 만났다면서 공은채는 왜 그때 도준 씨가 자기를 만났다고 하는 거예요? 설마 저한테 겁주고 그 길로 공은채 만나러 간 거예요?”하윤의 상상력에 도준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고?’하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뭔가 알아차렸다는 듯 도준의 다리를 탁 내리쳤다.“알았어요! 도준 씨가 만났던 사람이 자기라도 공은채가 그랬다면서요!”귀찮은 듯한 도준의 콧소리에 하윤은 눈 앞이 캄캄해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그러니까 공은채는 도준 씨가 만났던 게 본인인 척 속여 제 발판으로 삼았다는 거네? 젠장!’“그러니까 도준 씨는 그 때문에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공은채가 운명의 여자라고 생각한 거예요?”입에 담배를 물고 있던 도준은 하윤의 말에 피식 웃으며 담배를 손에 쥐었다.“대체 나를 뭘로 본 거야? 연주곡 하나에 평생을 기약하다고? 그냥 연주 몇 번 들은 게 다야.”USB 영상에서 도준이 듣던 게 바로 공은채가 연주한 ‘기억’이었다.‘그러니까 도준 씨는 원래 내 연주를 들으려고 한 거였네?’그제야 모든 걸 알아차린 하윤은 가슴이 헛헛해 나며 구멍 났던 마음에 새 살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 덕에 시큰거리며 아프던 마음도 괜찮아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가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천하의 민도준이 사람을 잘못 보다니요?”도준은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자기가 그때 도망만 안 쳤어도 내가 잘못 볼 리 있겠어?”하윤은 제 화를 풀 곳이 없어 속으로 화를 삭이며 팔짱을 꼈다.“그럼 언제 저라는 걸 알았는데요?”“그 정도로 엉망인 실력이 자기 말고 더 있을까?”“…….”솔직히 도준은 하윤에게 장난 친 거다. 지금 하윤의 연주 실력은 엉망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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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3화 꿍꿍이

“응, 시영이한테 문제가 좀 생겼어. 주주들이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지금 난리도 아니래.”도준은 가볍게 말했지만 듣는 하윤은 조급함이 휘몰아쳤다.“그럴 수가. 시영 언니 쪽은 지금껏 아무 문제도 없지 않았어요?”“하, 이게 다 그 개새X 때문이야.”하윤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민시영과 케빈의 사이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혔다. 시영은 분명 케빈을 미워하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소란을 피운 게 회사의 임원진들인 데다 그 수가 적지 않다는 말에 하윤은 걱정이 앞섰다.“그 사람들이 갑자기 이러는 걸 보면 혹시 진작 계략을 세워 둔 건 아니에요? 도준 씨가 경성을 오래 떠나 있어서 기회를 틈탔을 수도 있잖아요.”제 생각을 말하던 하윤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어깨를 들썩이며 외투를 걸치던 도준은 잔뜩 풀이 죽어 죄책감을 느끼는 하윤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그게 왜 자기 탓이야? 쓸데없는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얼른 와서 옷 입고 출발하자.”눈깜짝할 사이에 준비를 마친 도준은 여전히 꾸물대는 하윤을 도와 옷을 입혔다.하지만 이제 막 팔을 들어 옷을 입으려던 하윤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어? 잠깐만, 도준 씨가 떠나면 그 일기를 지환 오빠한테 보여줄 수 있잖아.’만약 도준이 있다면 절대 도준의 눈을 피할 수 없을 텐데, 도준이 없다면 달랐다.갑자기 든 생각에 하윤은 팔을 내렸다.“도준 씨 혼자 돌아가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뭐라고?”남자의 목소리는 위험하기 그지없었다.등불을 등진 채 하윤을 집어 삼킬 것처럼 바싹 붙어 있어 가뜩이나 작은 체구가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하윤은 버둥대며 일어나더니 자세를 바꾸어 침대에 꿇고 앉았다. 그러더니 두 손을 뻗어 도준의 목을 감쌌다.“제가 따라가면 도준 씨가 일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 그래요. 저는 여기에서 기다릴게요. 도준 씨가 다녀올 때까지 절대 아무 사고도 치지 않을게요. 맹세!”도준은 피식 웃었다.“내가 집중하지 못할까 봐 그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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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4화 장 형사의 고충

도준은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고 하윤을 빙글 돌렸다.“시간 없으니 말 들어.”이불 속에 얼굴이 파묻힌 채 하윤은 당황한 듯 손을 마구 허둥대며 뒤에 있는 남자를 밀었다.“급하다면서요. 이러지 마요.”하지만 남자는 그 말을 무시한 채 하윤의 허리를 잡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출장 가기 전에 기르던 식물에게 물은 줘야하잖아?”“그게 무슨…… 읍…….”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는 남자의 큰 손에 막혀 버렸다.“착하지? 자기 신경 쓸 시간 없으니 좀만 참아.”“…….”이윽고 도준은 시간 없다는 핑계를 대며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 옆에 우뚝 섰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도준은 가죽 벨트를 다시 차며 큰 손으로 하윤의 머리를 꾹 눌렀다.“정신 차리고 나서 혼자 씻어. 나 올 때까지 착하게 기다리고. 알았지?”이별의 아쉬움은 어느새 모두 흩어져 하윤은 귀찮은 듯 손등을 보이며 휘휘 저었다. 그건 빨리 가라는 손짓이었다.저를 내쫓는 하윤의 행동에도 도준은 트집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하윤의 손을 들어 손등에 입을 맞췄다.“갈게.”……늦은 밤, 차 안에서 한참동안 기다린 한민혁은 기다리다 목이 빠질 지경이었다.‘아까는 급하다면서 당장 튀어 오라더니,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야?’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며 설마 바람 맞힌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민혁은 제 옆을 힐끗 거리더니 이내 눈을 둥그렇게 떴다.“형, 목은 왜 그래?”손으로 쓱 문지른 순간, 따끔한 느낌이 들자 도준은 이내 거울을 내려 제 목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목덜미에 손톱자국이 나 있는 게 아니겠는가?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하윤이 버둥대며 긁은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조금도 밑지려 하지 않는다니까.’“아무것도 아니야. 우선 출발해.”“오케이.”민혁은 도준을 계류장에 내려 주고 뒤따라 전용기에 오르려 했지만 도준이 그를 막아섰다.“너는 여기 남아 있어.”“아하, 알겠어. 걱정하지 마. 형 뒤뜰은 내가 잘 지키고 있을 게, 절대 다른 놈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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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5화 참교육

장 형사는 어색하게 웃었다.“무슨 그런 농담을. 저는 그저 소통을 담당할 분입니다.”“아하, 제가 낯을 가릴까 봐 일부러 배려해 준 건가요?”도준은 서장을 향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이런 마음도 다 써주시고, 고맙네요.”이장훈은 도준의 미소에 소름이 돋아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해댔다.“다름이 아니라, 민시영 씨가 외부인과 결탁하여 회사 내부 기밀을 누설했다는 내부인의 신고를 받았습니다. 현재 민시영 씨는 그 일로 조사받고 있고요.”“그래요? 신고자가 누구죠?”“백제 그룹 사장입니다.”이상훈의 대답에 도준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아하, 임원이네요.”솔직히 촌수를 따지면 도준은 민병철한테 셋째 할아버지라고 해야 한다.민병철은 민성철의 가까운 형제이자 한 때는 가문의 주축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줄을 잘못 서서 민재혁 네 식구와 어울린 것도 모자라 회사를 노려 계속 잔머리를 굴리는 인물이다.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도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웬 노인 한 분이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심지어 저를 부축해주는 경찰관에게 이것저것 명령하며 큰 소리를 쳤다.“우리 민씨 집안에서는 절대 그런 야심을 품고 있는 버러지를 용납할 수 없어. 감히 그룹 이익에 손실을 내? 이건 반드시 엄히 스려야 한다고!”민병철은 저만의 세상에 빠져 제 앞에 그림자가 드리울 때까지 도준이 온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금 누구를 말하는 거죠?”민병철은 제 앞에 나타난 도준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윽고 말까지 더듬었다.“아니……, 네, 네가 어떻게 여기 있어?”솔직히 민병철은 이번 기회에 저에게 방해가 되는 세력을 모두 쳐낼 작정이었다. 때문에 도준이 경성에 없는 틈을 타 시영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거다.그렇게 되면 시영이 가지고 있던 권리가 모두 저한테 돌아올 거고, 도준이 돌아온 뒤 그에게 맞설 수 있었으니까.하지만 도준이 이런 야밤에 경성에 나타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도준의 미소는 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스산한 분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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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6화 가식적인 관심

미안한 기색은커녕 되려 억울한 듯 두 손을 들어 올린 도준은 싱긋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다들 보셨죠? 저는 위협을 받아 정당방위를 한 것뿐입니다. 제가 피해자라고요.”장 형사는 배를 끌어안은 채 연신 앓음 소리를 내는 민병철과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도준을 번갈아 보며 아픈 머리를 눌렀다.“민 사장님, 민시영 씨의 조사가 끝났다고 하는데, 우선 그쪽으로 가보는 게 어떻습니까?”그렇게 되어, 도준은 이내 장 형사를 따라 취조실로 향했다.그걸 본 민병철은 또 지팡이로 땅을 쿵 내리 찍으며 버럭 소리쳤다.“나 오늘 여기에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그 누구도 민시영을 빼낼 생각 하지 마!”여전히 일어나지 못하는 민병철의 모습에 도준이 입꼬리를 올렸다.“여기서 지키고 있기 전에 우선 일어나 나고 말씀하시죠?” “…….”민병철의 고함 소리는 이미 저 멀리 걸어간 도준과 장 형사의 귀에까지 들렸다.도준을 만나기 전, 시영은 곧바로 심문을 끝마친 상태였다.늦은 밤 갑자기 끌려와 조사를 받았음에도, 시영의 옷차림은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었고 얼굴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도준을 본 순간 흔들림 없던 시영의 얼굴에 파란이 일었다.“오빠……, 미안해. 걱정했지?”도준은 취조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이번 사건 덮죠? 사람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취조를 담당한 경찰은 도준이 누구인지 몰라 장 형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다 장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렇게 풀려나는 가 싶었는데, 밖으로 나가기 전 또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그 사람은 다름 아니라 겨우 일어난 민병철이었다.“민시영이 회사 기밀을 누설했어. 이대로 풀어줄 수 없다고!”도준은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 갔다. 하지만 손만 들었는데 민병철은 잔뜩 쫄아서 연신 뒷걸음쳤다.“기밀? 누구 기밀?”“당연히 백제 그룹 기밀이지!”“아하.”도준은 부러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그럼 백제 그룹이 누구 거죠?”민병철이 더 이상 대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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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7화 저런 것도 마음에 들어?

살짝 굳어진 송민우의 얼굴에 어색함이 더해졌다.“네, 저는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오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좀 보수적이라서요. 이런 일에 연루되는 걸 원치 않으셔서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하긴, 송씨 집안 부자는 그나마 시영에게 예의를 갖추지만 송경석의 부인 양태린은 겉으로 뭐라 한 적은 없지만 늘 시큰둥해했다.지난 번 프러포즈 파티에서 시영에게 무례를 범한 그 사촌도 사실은 양태린 쪽 친척이다. 그런 자리에서 서슴없이 그런 말을 하는 걸 봐서는 뒤에서 시영의 호박씨를 얼마나 깠을지 짐작할 수 있다.게다가 예전에는 그나마 재벌가 아가씨라는 신분 때문에 뭐라 하지 않았을 테지만, 사건에 연루된 지금, 더 이상 시영의 체면을 봐줄 필요가 없었을 거였다.눈치 빠른 시영은 당연히 송민우의 말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중간에서 난처했겟네요.”그 말을 듣자 송민우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영 씨는 항상 이렇게 제 마음을 이해해 주네요. 가요, 제가 데려다 줄게요.”시영은 송민우의 손을 슬쩍 피했다.“저 오빠랑 할 얘기가 있어서요. 먼저 돌아가요.”도준을 내세우자 송민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얘기 잘 나눠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네, 안전 주의해요.”송민우는 도준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형형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을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쫄아 어색한 폴터 인사만 남긴 채 떠나갔다.차 후미등이 어둠속에서 사라지자 도준은 이내 조소 섞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저런 것도 마음에 들어?”시영은 눈을 내리 깔았다.“결혼이 원래 이런 거잖아.”도준은 손에 쥔 라이터를 빙빙 돌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꼭 그렇지만은 않아.”도준의 편안한 말투에 옆에서 듣고 있던 시영마저 따라서 미소 지었다.“오빠는 결혼 생활이 행복한가 보네?”도준은 대답 다신 시영을 바라봤다.“사흘간 휴가 줄 테니까 해결할 일 있으면 해결하고 와. 또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했다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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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8화 쓸모를 다한 사람에 대한 태도

“엄마, 저 이미 시영 씨한테 청혼도 했어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건 시영 씨지 백제 그룹과는 상관없어요.”“너 엄마가 화병 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양태린은 버럭 소리쳤다.“그런 더러운 추문에 휘말리지 않으면 권력이 없어도 내가 뭐라 안 해.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겉으로 너를 축하하고 뒤에서 얼마나 수군댈지 네가 몰라서 그래!”“이제는 손에 쥔 권력도 없으니 사람들마다 짓밟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거라고. 이러면 내가 사모 모임에서 어떻게 고개를 들겠어?”하지만 송민우는 여전히 양태린을 설득하려고 애썼다.“엄마, 시영 씨 정말 좋은 여자예요. 저도 시영 씨 좋아하고요. 시영 씨가 모든 걸 잃은 이 시점에 제가 헤어지자고 하면 제가 뭐가 되겠어요?”“뭐가 되든 그게 중요해? 이건 네 평생이 달린 문제야!”양태린의 좀처럼 뜻을 굽히지 않았다.“너는 신경 쓰지 마. 내가 내일 식사 약속 잡고 말 꺼낼 테니까.”“그건 좀…….”“뭘 머뭇거려? 엄마가 화병으로 죽는 꼴 보고싶어서 그래? 그래, 몇 십년 동안 뼈빠지게 고생해서 키웠더니 남의 자식이었네, 이러고도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엄마, 절대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건강 주의하고요.”“내가 건강 챙겨 뭐해? 그 여자랑 결혼하겠으면 앞으로 이 에미는 없는 셈 쳐!”“아니…….”한창 고민하던 송민우는 끝내 타협했다.“우선 알겠어요. 그런데 시영 씨한테 예의만은 지켜 줘요.”시영은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반대하는 어머니의 앞에서 대충 헤어진 척하고 화가 가라앉으면 다시 만나면 그만이라고 송민우는 생각했다.……다음 날.송민우의 초대를 받은 시영은 점잖은 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양태린은 시영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대신 평소 사모 모임에 자주 가던 찻집에서 작속을 잡았다.약속장소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들이 시영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저를 향하는 시선들을 무시한 채 시영은 등을 곧게 펴고 미소 지으며 맨 안쪽으로 걸어갔다.“어머님, 오래 기다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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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9화 사이다 반격

민시영의 목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헤어지는 것조차 뒤에 숨어 엄마 말을 따르다니 저랑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시영의 말을 듣던 사모들은 곧바로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가끔씩 약하다는 둥, 마마보이라는 둥 하는 단어까지 튀어나왔다.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되려 당한 양태린은 얼굴이 싸늘해진 채로 대꾸했다.“나는 그저 민우가 마음이 여려 여자가 울면 마음 약해질까 봐 대신 나선 거야. 제가 가질 수 없다고 이렇게 폄하할 필요는 없잖니?”시영은 더 이상 양태린과 실랑이를 벌이지 않고 제가 끼고 있던 다이아 반지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았다.“민우 씨가 직접 오지 않았으니 이 청혼 반지는 여사님께서 대신 전해주세요.”자리에서 일어나 미련없이 떠나가던 시영은 다시 몸을 돌려 싱긋 웃으며 말을 보탰다.“참, 그리고 한가지 말 못한 게 있는데, 이거 제가 껴본 반지 중에서 알이 제일 작은 거였어요.”송씨 가문의 몇십 개 집안 중, 민씨 집안의 재력을 능가하는 집안은 하나도 없다. 때문에 누가 더 우위에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시영이 떠난 뒤에도 양태린의 낯빛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뭐라고요? 송민우가 그 자식 안되겠네!”호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던 하윤은 송씨 집안 식구들의 악행을 듣자마자 핸드폰을 꽉 그러쥐며 몸을 빙글 돌렸다.“경성에 있으면서 해원에서 운전해 간 사람보다 늦게 도착하다니 얼마나 성의 없는지 안 봐도 뻔하네요.”당장이라도 달려와 송민우를 물어 뜯을 것처럼 화내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피식 웃었다.“사람 진심이 다 그렇지 뭐.”“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평생을 약속했으면서 어떻게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있어요? 자꾸 말 돌리지 말고 계속 말해 봐요. 그래서요? 송씨 집안 식구가 시영 언니를 불러내 파혼한 다음은요?”계속 꼬치꼬치 캐묻는 하윤을 당해내지 못해 도준은 아예 송씨 집안에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그걸 듣고 있던 하윤은 화를 냈다가 가끔은 시영을 동정하기도 하고 쉴새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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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0화 공은채의 또다른 모습

하윤은 차에 오르자마자 재촉했다.“지환 오빠가 개인적으로 여는 경매 맞아요? 혹시 들킨 건 아니죠?”“걱정 붙들어 매세요. 이미 시뮬레이션도 끝냈으니까. 이따 맨 뒤쪽으로 달려가면 제가 밖에서 망 볼 게요. 절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막을 게요.”한민혁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하윤은 만족스러운 듯 가방 안의 일기책을 톡톡 두드렸다. 심지어 가는 길 내내 석지환 앞에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생각했다.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차는 이내 경매장 뒷문에 도착했다.석씨 집안은 보석 사업부터 시작해 점차 몸체를 키워왔다. 게다가 이제는 수많은 경매장까지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막 해외에서 귀국한 석지환이 가업을 발전시키려면 이곳저곳 많이 둘러봐야 하는 건 당연했다.마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석지환은 제 앞에 나타난 하윤을 보고 어리둥절해했다.“시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하윤은 안쪽으로 고개를 쑥 들이 밀고 방 안을 살피며 말했다.“지환 오빠. 여기 오빠만 있는 거 맞죠?”“응, 왜 그래? 무슨 불시 점검이라도 하러 왔어?”석지환은 농담조로 말했다.“선배 참 농담도 잘하네요.”하윤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 치며 안으로 들어가 공은채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살폈다.그러다 진짜로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했다.석지환은 하윤의 행동이 우스웠는지 문을 닫으며 말했다.“대체 뭘 찾는 거야?”하윤은 그제야 몸을 돌려 사뭇 진지한 투로 말했다.“지환 오빠, 저 사실 오빠한테 할 말이 있어요.”석지환은 하윤을 의자로 안내했다.“응, 우선 앉아. 나도 마침 너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 지난 번에 미처 말하지 않고 공은채와 너를 만나게 한 거 내 잘못이야. 솔직히 그날 너한테 설명하고 싶었는데 밖에 손님들이 많기도 했고 민 사장님이 곁에 있어줄 거니까 올라가지 않았어. 설마 화난 건 아니지?”석지환은 이승우와 마찬가지로 거의 하윤을 키우다시피 했기에, 하윤과 대화할 때면 늘 동생 달래듯 다정하게 말하곤 한다.하윤은 익숙한 말투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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