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인연, 약혼남의 형과 사랑에 빠지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01 - 챕터 1010

1603 챕터

제1001화 다시 살아 돌아오다

“이 봐요 공 가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아직도 소년처럼 꿈만 꾸면 안 되지”비웃음이 다분한 도준의 말에 옆에서 듣는 하윤마저 등골이 오싹했다.하지만 당사자인 공태준은 오히려 무덤덤한 태도로 느긋하게 말했다.“사람일은 모르는 거죠. 민 사장님이야 말로 제 동생과 평생을 기약했는데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니 저도 기다리다 보면 알 게 뭐예요?”대화가 오갈수록 분위기는 점점 굳어졌고, 두 사람 사이에 낀 하윤만 점점 숨막혔다.하지만 이제 막 뭐라 말하려는 순간, 하윤의 어깨를 누르던 손에 힘이 더해졌다.만약 예전 같았으면 눈치껏 입을 다물었을 하윤이지만, 방금 전 상황을 생각하자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이에 하윤은 도준의 경고도 무시한 채 태준을 바라봤다.“아버지의 피아노를 찾아준 거 고마워. 나 먼저 갈게.”말을 마치지마자 하윤은 도준의 팔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솔직히 도준에게 붙잡힐까 봐 꽁무니를 내빼는 거였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화가 나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도준도 하윤이 이토록 무모하게 행동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오호라, 팔이 밖으로 굽는다 이거야? 딱 기다려.’……태준은 뒤를 쫓아가지 않고 잇따라 떠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경매장을 떠났다.그가 차에 오르자 차 안에 있던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 놓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한참을 기다린 듯해 보였다.공은채는 태준의 기색을 살피며 피식 웃었다.“웬일로 기분 좋아 보이네?”“뭐, 그냥 그래.”태준이 미처 건네지 못한 티슈를 바라보며 낮게 대답했다.공은채는 더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아마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거야.”태준은 무라 더 대답하지 않고 운전석에 놓인 쇼핑백을 바라봤다.“쇼핑했어?”“응.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꾸민다고 하잖아. 그러니 나도 잘 꾸며야지.”분명 스윗한 멘트를 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눈빛은 차갑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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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2화 도구 or 고문 기구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어색한 웃음소리에 기사도 더 이상 들어주기 힘들었는지 창문을 내렸다.“탈 거예요, 말 거예요? 안 탈 거면 손 좀 떼 주시죠?”기사가 짜증 섞인 말투로 투덜대고 있을 때,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이 차 안으로 던져졌다.돈을 받아 든 기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었다.“천천히 얘기하십시요. 아니면 차 안에 에어컨도 있는데 들어와서 얘기하는 건 어때요?”하지만 하윤을 어떻게 혼내 줄지 생각하느라 도준은 귀찮은 듯 손을 휘휘 저었다.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기사는 얼른 시동을 걸더니 백년해로 하고 떡 두꺼비 같은 자식도 낳으라는 덕담과 함께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제 자유가 택시와 함께 멀어져가는 걸 눈뜨고 바라보던 하윤은 이내 위험을 감지하고 사과를 건넸다.“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하.”도준이 헛웃음을 쳤다.“사과를 아주 밥 먹듯 하네? 이젠 믿지 못하겠어.”“도준 씨부터 연기한 거잖아요. 저는 그저 맞춰줬을 뿐이고요. 이건 애드리브잖아요…….”하윤은 말하면 말할수록 목소리가 작아졌고 따라서 기도 죽었다.도준은 그런 하윤에게 맞춰 주기라도 하는 듯 싱긋 웃었다.“애드리브를 좋아해? 좋아. 이따가 내 앞에서 어디 잘해 봐.”“어? 뭐 하는 거예요? 내려줘요…….”도준이 하윤을 차 안으로 던진 순간, 운전석에 앉아 있던 한민혁은 상황을 감지하고 얼른 시동을 걸었다.차에서 내린 하윤은 그 길로 질질 끌려 침대에 던져졌고, 다시 일어나려는 순간 도준이 제 벨트를 풀어 헤쳤다.그 모습에 놀란 하윤은 눈을 둥그렇게 뜬 채 발을 구르며 뒷걸음 쳤다.“저기, 지금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거 하려는 건 아니죠?”한쪽 무릎을 구부린 채 침대 위에 올려 놓은 도준은 웃옷을 벗어 탄탄한 복근을 드러냈다. 그 모습은 마치 사냥을 시작하려는 표범을 방불케 했다.아니나 다를까 도준은 느긋하게 하윤의 종아리를 움켜 잡으며 입을 열었다.“어떻게 하길 원해?”반으로 접힌 채 잡혀 있는 벨트와 핏줄이 울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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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3화 영업 끝

가죽 벨트는 마치 리본처럼 하윤을 선물처럼 꽁꽁 묶은 동시에 도준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해 주었다.이윽고 도준은 몸소 하윤에게 가죽 벨트가 아닌 제가 바로 고문 기구라는 걸 시전해 보였다.그렇게 겨우 다시 숨을 돌리게 되었을 때, 하윤은 나른하게 녹아내려 도준의 가슴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다리뿐만 아니라 팔까지 부러질 것 같아 꿈쩍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오히려 도준은 만족해하며 땀으로 젖은 하윤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겨 붉게 상기된 하윤의 얼굴을 드러냈다.“이번에는 교훈 제대로 얻었겠지?”하윤은 더 이상 화 낼 힘도 없어 아예 눈을 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덜 짜증 날 것 같으니까.그때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하윤의 귀를 파고 들었다.“아직도 성깔 부릴 힘이 남아 도나 봐?”방금 시달리고 나서인지 하윤은 이내 겁을 먹고 작은 소리로 투덜거렸다.“제가 언제 또 성깔 부렸다고 그래요? 당장 힘들어 죽을 것 같구먼.”나른해진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재밌다는 듯 하윤을 이리저리 주물러 댔다.“차라리 죽기라도 하면 딴 놈이 눈독 들일 일 없어 마음은 편하겠네.”도준의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 챈 하윤은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듯 말머리를 돌렸다.“저 씻을래요.”지금 상황에 제 힘으로 씻을 수 없었기에 하윤은 도준의 도움이 필요했다.족히 서너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욕조에 엎드린 채 하윤은 도준의 손길을 즐겼다.약간 뜨거운 물이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며 거품을 씻어 내리자 물에 촉촉하게 젖은 머리카락은 마치 생명력이라도 지닌 듯 여자의 흰 피부를 더 돋보이게 해주었다.다만 예쁜 곡선을 그리는 어깨 위에 눈에 띄는 키스마크가 있어 순수한 모습에 색기를 더했다.심지어 손목과 발목에 난 쓸린 자국이 파문을 따라 일렁이며 아까 얼마나 뜨거웠는지 상기시켜 주었다.하윤이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어깨 위에 부드러운 입술이 포개졌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도준이 아니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흠칫 놀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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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4화 사랑에 눈을 뜨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친 하윤은 도준을 끌고 쇼핑에 나섰다.“오늘 저녁 지환 오빠의 파티에 참석해야 해서 대충 가면 안 돼요.”잔뜩 신나 있는 하윤의 모습에 도준은 하윤의 뒷덜미를 낚아챘다.“어제부터 하루 종일 그 놈의 지환 오빠만 찾네? 설마 처음 사랑에 눈 뜬 게 그 지환 오빠 때문이야?”솔직히 말해서 석지환은 썩 잘 생겼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뼛속까지 귀공자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데다 다정하기까지 해서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다.도준의 말에서 위기감을 느낀 하윤은 얼른 도준의 비위를 맞추었다.“제가 사랑에 눈을 뜬 건 도준 씨를 만나고 나서니까. 좀 많이 늦어요.”“흥, 누가 믿을 줄 알고?”“정말이예요. 오빠가 이성 관계에 대해서는 특히 단속이 심해서 연애하고 싶어도 그럴 배짱이 없었어요.”투덜거리며 불만을 털어 놓던 하윤은 도준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말을 바꾸었다.“무엇보다 저는 그때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요. 제가 진심으로 좋아한 건 도준 씨뿐이에요.”그제야 도준은 피식 웃으며 하윤에게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몇 군데를 돌아보던 끝에 하윤은 결국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흰색 머메이드 드레스를 골랐다.“어때요? 예뻐요?”잘록한 허리를 감싸는 드레스를 입은 채 한 바퀴 빙 돌며 기대에 찬 듯 눈을 반짝이는 모습은 아마 그 누가 봐도 쉬이 흥을 깨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거다. 도준 역시 그랬다.“응. 예뻐.”도준의 대답에 하윤은 신이 나서 활짝 웃었다.“그럼 이거로 할게요. 이거 포장해 주세요.”그때 가게 직원이 활짝 웃으며 하윤에게 말을 걸었다.“남편 분 양복은 안 고르나요? 이 양복이 드레스와 어울리거든요.”그 말은 한순간에 하윤의 관심을 끌었다.“어? 진짜네요?”직원의 손에서 옷을 받아 든 하윤은 그 옷을 도준의 몸에 대보았다.“이거 한 번 입어 봐요.”이윽고 도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거절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먼저 말을 꺼냈다.“입는 거 도와줄게요.”기대에 부푼 하윤의 모습에 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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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5화 신비로운 초대 손님

스크린 속에는 남자를 위해 넥타이를 매주는 여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게다가 남자는 살짝 고개를 들었는데 눈빛만은 아래로 향해 있었다.하윤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 일부러 직원과 연락처까지 교환해 사진을 받았다.반나절 동안 쇼핑을 하고 나서 쇼핑몰을 나오자 어느새 파티 시간이 임박했다.석씨 저택은 해원에서 중상류 층에 속한다. 물론 지난 몇 년 간 주로 해외 사업을 발전했지만 전에 쌓은 인맥 덕에 파티는 매우 떠들썩했다.하윤과 도준이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도준의 사업은 주로 경성에 있다지만 그의 이름은 해원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조관성과 손을 잡았던 일이 알려져서인지 도착하자 마자 친분을 쌓으려는 사람들이 적잖게 모여들었다.“이곳에서 민 사장님을 다 보다니. 이번 주말 제 아들의 백일잔치가 있는데 혹시 자리를 빛내 주실 수 있나요?”“이번 주 제가 새로 차린 계열사에서 커팅식이 있는데 한번 구경 오세요.”“제 할머니께서 이번에 팔순 잔치를 여지는데 민 사장님을 그렇게 보고 싶다네요.”“…….”순식간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행사와 잔치를 들먹이며 도준에게 초대장을 건넸다.행사의 진위여부는 당장에 확인할 수 없었지만 도준과 친분을 쌓으려는 목적은 다분했다.하지만 도준은 몇 마디 채 들어주지도 않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내가 뭐 소원 비는 연못도 아니고.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저한테 하지 마시죠?”사람들은 도준과 교류해본 적 없지만 그의 성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 둘 물러갔다. 그도 그럴 게, 도준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재수 없는 일을 당할 게 뻔했으니까.하지만 모두 멀리 물러났으면서도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미련 넘치는 얼굴로 도준을 힐끔거렸다.“너무 무섭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하윤이 보다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도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왜? 내가 다정한 태도를 보이길 원하는 거야? 뭐, 좋아. 심심하던 참에 잘 됐네. 마침 저들이 나를 위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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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6화 원수의 만남

“그게 누군데요?”의아한 듯 묻는 하윤의 모습에 석지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네가 알면 아마 놀랄 걸.”그 말에 하윤은 더 궁금해졌다.“누군데요? 혹시 선배 첫사랑?”“그렇다고 할 수 있지.”석지환은 도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래도 민 사장님이 결혼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나도 그 사람 초대하지 못했을 거야.”의미심장한 말에 하윤의 미소는 인내 굳어버렸다.“그 사람 설마…….”“지환아.”때마침 부드러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석지환이 저를 부른 사람 쪽으로 반갑게 걸어갔다.“마중 가겠다니까 왜 혼자 올라왔어?”시선 속에 들어온 여자는 여전히 흰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심지어 그런 분위기와 아름다운 외모가 어우러져 겨울에 활짝 핀 붉은 매화를 연상케 했다. 물론 그 붉은색이 꽃잎인지 핏빛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시윤아, 오랜만이네.”너무나 담담한 인사말에 지난 날 겪은 아픔도 상처도 모두 허상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윤은 아무런 흔들림 없는 공은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바라볼수록 오히려 저만 가슴이 답답하고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석지환은 온 정신이 공은채에게 팔려 있어 하윤의 표정은 눈치채지 못했다.“서로 아는 사이라 소개가 필요 없지만 그래도 소개할 게. 은채, 내 여자친구야.”“…….”‘여자친구?’뻐끔거리는 석지환의 입술이 슬로우 모션으로 움직이는 듯했고 목소리 역시 실감이 나지 않았다.“아직 아버지와 공씨 집안 어르신들은 몰라. 너랑 네 남편에게 처음으로 말하는 거야.”그런데 그걸 눈치 채지 못한 석지환은 이내 도준을 바라보며 농담 섞인 말을 건넸다.“만약 저를 때리고 싶다면 제게 옷 갈아 입을 시간 정도는 주세요.”그때, 공은채가 도준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도준 씨한테는 이제 시윤이 있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안 그래요?”도준의 눈빛은 순간 싸늘해졌다. 심지어 그 속에는 경고가 숨어 있었다.주위를 맴도는 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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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7화 민낯

휴게실.도준은 차가운 하윤의 손을 잡은 채 따뜻한 물을 건넸다.“자, 입 벌려.”부들부들 떨리던 몸은 뜨거운 물을 몇 모금 넘기자 그제야 사르르 녹았고, 호흡도 제 속도를 되찾았다.“아까는 지환 오빠 앞에서 왜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어요?”하윤은 여전히 떨리는 손끝으로 도준의 팔을 꽉 잡았다.“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내가 말한다고 석지환이 믿을까?”도준의 반문에 하윤은 말문이 막혔다.‘하긴, 그렇게 오래 알고 지낸 내 말도 안 믿는데 도준 씨 말을 믿을 리가 없지.’“그런데 공은채는 도준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요? 왜 지환 오빠랑 사귀는 거죠?”도준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말이 되는 소리를 해. 자기 하나 케어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공은채가 죽든 살든 그게 나랑 뭔 상관인데? 착하지? 공은채 상대할 방법도 생각해 뒀잖아. 언젠가 죽을 사람 때문에 화낼 필요가 뭐 있어?”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하윤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제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만나면 아무리 차분한 사람이라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없을 거다.아빠가 투신한 것도,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두 공은채랑 관련이 있을 게 뻔했다.그 뿐만 아니라 공은채가 했던 몇 마디 말은 자꾸만 하윤의 마음을 후벼 파 의심이 솟구쳤다.‘나를 의심하면 도준 씨도 의심한다는 거야?’전에 봤던 사진을 떠올려 보면 아버지가 투신하기 전 도준을 만난 게 확실하다.도준을 보자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하윤은 이를 악물며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물어보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다. 다만 그 물음을 던지는 순간 두 사람의 감정이 상할 게 뻔했다.도준은 하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손을 들어 하윤의 볼을 감쌌다.“날 믿지 못한다면 당장이라도 공은채를 죽여줄 수 있어. 그 심장도 필요 없어.”도준의 눈에는 장난기 하나 섞여 이지 않았다. 마치 하윤이 고개만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와 오빠의 복수를 해줄 것처럼.하지만…….아버지의 피아노를 손에 넣고 나니 하윤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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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8화 혹시 질투해요?

도준의 시선은 하윤의 미간에서부터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그럼 그 증거는 어디서 찾으려고?”“증거는…….”하파터면 일기에 관한 말을 꺼내려던 하윤은 이내 말머리를 돌렸다.“공은채가 한 짓이라면 증거는 무조건 남을 거예요.”하윤이 말하는 사이, 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소파에 기대 하윤을 놀리는 듯 바라볼 뿐.그 눈빛에 하윤은 제 발이 저려 도준을 밀어냈다.“배고파요. 먹을 것 좀 가져다줘요.”“아래층에 있잖아. 직접 내려가서 먹으면 될 텐데, 왜 나를 부려먹어?”하윤은 발끝으로 도준을 툭툭 건드렸다.“꼴 보기 싫은 사람 때문에 내려가기 싫어요. 저는 마음 좀 추슬러야겠으니 얼른 다녀와요.”도준은 하윤의 이마를 쿡 찔렀다.“원하는 게 참 많네.”도준이 떠난 방안은 마치 새장처럼 하윤의 숨통을 조여왔다.이에 하윤은 창문을 열어 갑갑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해원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간 이유 때문인지 창문을 연 순간 싸늘한 냉기가 밀물처럼 방 안에 흘러 들었다.내려가는 계단에 막아선 여자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 아래로 내려오는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말없이 저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 때문에 압박감이 더해졌을 법도 한데, 공은채는 물러나지도 않은 채 손에 쥔 가는 담배를 흔들었다.“불 좀 빌려줄 수 있어요?”“얼마든지.”“도준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피어오르는 불길은 여자의 담배 뿐만 아니라 손가락까지 함께 태웠다.불길이 살갗을 스치는 순간 타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씁!”공은채는 순식간에 볼록 튀어 오른 제 손의 물집을 보며 불만조로 투덜거렸다.“아무리 그래도 저 여자예요. 이건 너무 잔인한 거 아니에요?”도준은 느긋하게 라이터를 거두었다.“제가 지른 불에 제가 타 죽는다는 말 못 들어봤어?”공은채는 계단 윗쪽을 흘겨봤다.“본인 와이프가 삐진 걸 지금 저한테 푸는 거예요?”이윽고 말을 꺼내며 도준의 반응을 살폈다.그 누구라도 원수가 뻔뻔하게 제 앞에 알짱거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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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9화 10년 전

공은채의 목소리는 오롯이 하윤의 귀에 전달되었다.난간 너머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남녀는 보고 있자니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시샘이 솟아났다.많은 일들은 직면하기 싫다고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공은채와 도준의 과거가 바로 그러하다.층계 아래에서 두 남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공은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혹시 기억 나요? 도준 씨가 18살 되던 때 해원에 와서 제가 연주한 ‘기억’을 들었잖아요. 이게 하늘이 맺어준 인연 아니면 뭔데요?”10여 년 전, 민시영은 기어코 싫다는 도준을 끌고 해원에 연주회룰 들으러 간 적이 있다.원체 음악에 관심이 없던 도준은 시영을 콘서트 홀에 남겨 두고 저 혼자 주위를 맴돌았다.그러다 마침 콘서트 홀 뒤편에 있는 연습실에서 더듬거리는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된 거다.가뜩이나 형편없는 실력에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 연주는 그야말로 엉망이었다.하지만 흐느껴 울면서 연주는 멈추지 않는 여자애 때문에 도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하필이면 방음이 안 되는 연습실 벽 때문에 안에 있는 여자애가 도준의 웃음 소리를 듣게 되었다.“웃긴 뭘 웃어?”블라인드가 쳐진 연습 실 안에서 곧장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너무 울어서 짙은 콧소리가 섞여 있었다.도준은 그 상황이 웃겨 피식 웃었다.“누가 들으면 연주가 아니라 초상 치른다고 해도 믿겠어.”“…….”흐느끼는 소리는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곧이어 더 높은 소리로 울려 퍼졌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마저 더 힘이 실렸다.하지만 창가에 앉아 한참을 듣다 보니 지 모르게 듣기 좋다는 느낌마저 들었다.그제야 안에 있던 여자애도 자신감을 되찾았는지 다시 말을 걸어왔다.“아직 거기 있어?”도준은 일부러 대답하지 않았다.그랬더니 여자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역시 멧돼지는 사료를 먹지 못한다더니.”도준은 겁도 없는 여자애 때문에 화가 나 피식 실소하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깔며 겁주었다.“지금 나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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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0화 하늘이 이어준 인연

도준은 동정심 많은 사람이 아니다. 심지어 공은채가 집안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진작 알았으면서도 어머니의 심장만 손에 넣으면 공은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정도로 무관심했다.하지만 그날, 공은채에게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도준은 점차 공은채의 생일에 참석하면서 공씨 집안 식구들 앞에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공은채는 도준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도준 씨가 저를 얼마나 아껴줬는지 저 다 기억해요. 하지만 그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답을 주지 못했어요. 그 때문에 도준 씨가 상처받았다는 것도 알고요. 저한테 보상할 기회 줄 수 있어요?”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하윤의 가슴은 갑갑해 미칠 지경이었다.‘두 사람의 인연이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시작된 거였다니.’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도준이 공은채를 거절하지 맗아야 한다. 도준을 온전히 차지했다고 경계를 풀어야만 공은채가 수술받을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으니까.하지만 그걸 눈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걸 눈 뜨고 볼 수 없었다.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가 모든 걸 망칠 것 같다는 생각에 하윤은 비틀거리며 돌아섰다.“철컥.”문을 닫자마자 힘 빠진 듯 소파에 엎드린 하윤은 도준이 돌아올 때까지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도준은 밖에서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하윤의 허리를 툭툭 쳤다.“배가죽이 등에 붙겠어. 얼른 와서 이것부터 먹어.”하윤은 도준에게 제 뒤통수만 보일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안 먹어요.”도준은 피식 웃었다.“오냐오냐 하니까 점점 기어오르네? 먹고 싶다고 굳이 가져다 달라고 했으면서 가져오니 먹기 싫다고?”하윤은 속이 답답하고 서러워 볼멘 소리로 투덜거렸다.“먹기 싫다고요. 차라리 때려요.”“짝!”제 엉덩이를 내리치는 때리는 남자의 모습에 하유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도준은 미첨 힘을 줄이지 않은 탓에 엉덩이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소파에서 벌떡 일어선 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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