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의 모든 챕터: 챕터 621 - 챕터 630

2270 챕터

제621화 개자식

성혜인은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밖으로 나가 다른 잠옷을 꺼냈다. 이번에 반승제는 장난치지 않고 얌전히 잠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그녀를 향해 머리를 까딱하며 말했다.“들어가서 씻어.”에어컨이 켜져 있었기 때문에 성혜인은 춥지 않았다. 그래도 반승제가 건네는 셔츠를 받아서 들며 욕실로 들어갔다.혹시라도 반승제가 갑자기 쳐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던 성혜인은 꼼꼼하게 문까지 잠그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그가 자신의 욕실을 남에게 내어준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도 모르고 말이다.반승제의 결벽은 병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심했다. 하지만 성혜인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지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성혜인은 반 시간 정도 지난 후에야 욕실을 나섰다. 거실에서는 반승제가 회의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반승제의 셔츠를 걸쳤다. 그녀의 옷은 속옷을 포함해 샤워하면서 씻은 탓에 셔츠 안은 텅 비어 있었다.성혜인이 나온 것을 발견한 반승제는 그녀에게 가까이 오라는 눈치를 줬다. 노트북 곁에는 반승제가 직접 정리한 회의 내용이 있었다. 이는 원래 비서의 업무였지만 그녀는 샤워하느라 놓쳐버리고 말았다.약간 미안한 감이 들었던 성혜인은 빠르게 자리를 잡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의 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따로 정리해 심인우에게 메일로 보내주고 나서 반승제에게 말했다.“네이처 빌리지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서요. 저는 내일 오전에 BK사의 대표님과 만나야 해요. 그리고 공사가 끝나는 날짜도 확인해야 해요.”성혜인은 손으로 한쪽 팔을 잡은 채로 말했다. 속옷을 입지 않은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말이다. 반승제는 물론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대표님은 같이 가실 필요는 없어요. 공사가 끝나는 날짜는 제가 따로 전달해 드릴게요. 그리고 결과물도 제가 먼저 확인한 다음에 보여드릴게요.”“아니, 나도 같이 갈래.”반승제는 덤덤하게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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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넌 나한테 특별한 존재야

왠지는 모르겠지만 반승제는 성혜인과 끌어안을 때마다 심신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편안하고, 만족스럽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런 느낌 말이다.두 사람은 같은 바디 워시를 썼기 때문에 체향 또한 비슷했다. 비록 이런 상황에서 한데 끌어안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둘 다 이혼한 몸이었기 때문에 괜히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성혜인이 무릎에 앉자마자 반승제는 그녀의 옷자락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침향 팔찌가 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몸을 흠칫흠칫 떨었다.그녀의 몸매는 아주 뛰어났다. 평소 보수적인 옷만 입은 탓에 티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살이 있을 곳은 있고 없을 곳은 없는 것이 반승제는 첫날밤부터 엄청난 만족감을 느꼈다. 비록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깊어진 밤, 환한 전등이 호텔 방을 비췄다. 거실에는 한 쌍의 남녀가 부둥켜안고 있었다. 남자의 몸집이 너무 큰 탓에 여자는 어느 때보다도 작아 보였다.반승제는 그 자세대로 한참 키스하다가 머리를 들었다. 눈가에는 말로 이루 설명하지 못할 부드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의 눈빛에 깜짝 놀란 성혜인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창밖의 풍경을 바라봤다.“페니야, 네 가족들은 어때? 너한테 잘해줘?”‘만약 좋은 사람들이라면 서민규와 같은 불륜 상습범한테 시집보내지 않았겠지...’반승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물었다. 처음으로 성혜인의 가족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성혜인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나름대로 잘해줘요.”“그건 부족한 부분도 있다는 말인가?”“제가 말하고 싶을 때 다시 알려드릴게요.”반승제는 갑자기 성혜인을 안은 채로 몸을 일으키더니 침실로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성혜인은 몸부림을 치면서 물었다.“키스만 한다면서요?”“오늘은 나랑 같이 자자. 그냥 잠만 자는 거야.”“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요.”손만 잡고 자자는 유형의 남자의 말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주 전형적인 거짓말이기 때문이다.반승제는 머리를 숙여 당황한 기색의 성혜인을 바라보더니 그녀를 더욱 힘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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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분위기 깨기 고수

같은 시각, 교외의 별장에는 몇 명의 남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보스, 저희가 갖은 방법을 써봤는데도 침입하지 못했습니다. 반태승 회장님이 직접 배치한 경호원이 너무 치밀해서 애초에 돌파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반태승은 사령관으로 부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가 직접 배치한 경호는 완벽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전문가도 감히 침입할 엄두를 못 낼 정도로 말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포레스트에 도우미가 아주 적다는 것이다. 대부분 도우미가 삼 년 이상 근무했을 뿐만 아니라 유경아가 매일 체크하기 때문에 도우미를 이용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10여 명의 도우미를 제외하고 난 나머지 사람은 전부 경호원이었다. 그것도 반태승이 직접 교육한 충성스러운 경호원 말이다. 그들이 찾는 물건이 포레스트에 있다고 해도 침입은 불가능하고 성혜인이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려야 했다.가면을 쓴 남자는 가장 중간에 있는 빨간 의자에 앉아 괴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들을 바라봤다.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쨍그랑 깨져버렸다.가면남의 손에서는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남자들을 직시했다. 싸늘한 눈빛에 남자들은 너나없이 머리를 숙였다. 이때 한 사람이 용기 내서 말했다.“보스, 성혜인 씨를 납치하는 건 어떨까요?”말을 마치자마자 총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제안한 남자가 힘없이 툭 쓰러졌다. 가면남은 연기가 나고 있는 총구를 닦으면서 가볍게 말했다.“그게 가능하면 진작 물건을 찾아왔겠지. 당하고만 있는 게 아니라.”가면남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시체 곁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오만한 자태로 미간의 정중앙을 명중당하고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성혜인 씨가 다치지 않는 전제하에서 조사해 줘. 서주혁이 벌써 노트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지난번의 노트는 성혜인이 보냈다는 걸 가면남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서주혁을 속이기 위해 모든 흔적을 지웠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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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

반희월은 차가운 눈빛으로 성혜인을 쏘아봤다. 마치 그녀가 희대의 구미호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페니 양은 잠깐 나가줄래? 내가 승제랑 할 말이 있어서.”성혜인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사무실 문을 닫기도 전에 반희월의 속사포 질문을 들었다.“너 정말 저 디자이너랑 계속 만날 생각이니? 설씨 가문의 딸은 어떡하고?”반승제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어이없는 기분도 들었다. 지난번 설우현도 설씨 가문의 딸에 대해 언급한 적 있었지만 그는 그녀와 아예 모르는 사이였다.“난 어제 우현이랑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너 설씨 가문의 딸이랑 연락하고 지낸다며? 설씨 가문의 딸이 얼마나 사랑받고 자란 줄 알아? 성혜인처럼 대했다가는 설씨 가문에서 너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성혜인은 여기까지 듣고 문을 닫았다. 반승제의 생일 파티에 그녀도 함께 있었기에 당연히 설우현이 어떤 말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설씨 가문은 반씨 가문도 비하지 못할 정도의 재벌가이니 그런 집안의 딸을 소홀히 대했다가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몰랐다.사무실의 방음 효과가 아주 좋았기에 성혜인은 더 이상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반대로 반승제는 자신이 설씨 가문의 딸과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나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고모, 저 이제 회의하러 가야 해요.”“승제야, 페니를 잘 관찰해. 시커먼 속내가 있는 여자가 분명하니까. 너를 위해 이혼한 것도 분명 네 재력과 권력을 탐내서일 거야.”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반승제는 서류를 들면서 또다시 화제를 돌렸다.“회의가 끝난 다음에는 BK사도 다녀와야 해요.”반승제의 방어적인 태도에 반희월은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선 다음은 성혜인만 죽어라 노려봤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성혜인은 반희월이 나온 것을 보고 금방 다가갔다. 그러자 반희월이 분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뺨이라도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잡혀 허공에 멈춘 손은 아무리 기를 써도 움직이지 않았다.비서실 직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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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포기를 모르는 윤단미

서민규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반승제의 속셈을 똑똑히 알고 있기에 일부러 더 조용히 배경 역할을 해줬다.반승제가 느긋느긋 과자를 다 먹은 다음에야 성혜인은 서민규에게 물었다.“혹시 커피 있어요?”“그럼요, 제가 내려올게요.”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고 빈 과자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러자 반승제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러다가 그녀를 확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너한테 비서 일이 아주 잘 맞는 것 같아...”반승제가 말을 끝내기 바쁘게 문 앞에서 컵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성혜인은 황급히 그를 밀어냈다.손에서 커피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문 앞에 멈춰 선 서민규의 얼굴에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조금 전의 장면을 보고 많이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는 사과하면서 머리를 푹 숙이더니 깨진 컵을 정리하고 나서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성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쩐지 반승제가 일부러 키스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참 쓸모없는 경쟁의식이다 싶기도 했다.머리를 돌려보니 어느샌가 손안의 서류에 집중한 반승제가 보였다. 마치 서민규가 갑자기 나타날 줄 몰랐다는 듯이 말이다.어찌 됐든 이선과의 만남은 아주 순조로웠다. 인테리어는 네이처 빌리지에 인력을 더해준 덕분에 보름 안에 완공할 수 있다고도 했다.“그럼 우리는 포름알데히드를 테스트할 때 다시 만나요. 페니 씨가 직접 고른 목재로 인테리어 한 거라 큰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테스트를 준비했어요.”성혜인은 머리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더니 이선과 악수했다. 이선은 그녀를 바라보다 말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반승제를 힐끗 봤다.BH그룹으로 돌아간 다음 두 사람은 대표이사실 앞에서 윤단미와 마주쳤다. 윤단미의 모습은 아주 초췌했다. 그녀는 몇억 원의 돈으로 만족하지 못했고 아직도 김경자를 이용해 반승제와 결혼하기를 꿈꾸고 있었다.“승제야...”성혜인은 빠르게 뒤로 물러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반승제가 말릴 새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혼자 남은 반승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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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반씨 가문에서 배운 것

반승제는 아직도 성혜인이 먼저 떠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질 듯한 불만이었다. 하지만 감정 숨기기에 능했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에 집중했다. 복수는 일단 저녁으로 미뤄두고 말이다.그렇게 고대하던 퇴근 시간이 된 다음 반승제는 성혜인에게 복수할 새도 없이 반씨 저택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김경자는 잔뜩 힘 빠진 걸걸한 목소리로 전화 건너편에서 말했다.“승제야,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했다. 내가 이렇게 사과하마.”반승제는 당연히 김경자의 사과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반승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반승우가 사고를 당한 다음에는 단호하게 집을 나가 6년이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그런 사람이 잘못한 줄을 알 턱이 있나.’“나한테 네 형이 남긴 물건이 있다. 물건도 볼 겸 오늘 식사를 함께하자꾸나.”김경자의 말에 반승제는 약간 솔깃했다. 그래도 감정 하나 없는 남보다 못한 가족이었기에 직접 만나러 가는 것이 찝찝했다. 이때 전화 건너편에서 백연서의 목소리도 들려왔다.“승제야, 어머님이 너한테 사과하고 싶으시대.”이 말을 들은 반승제의 머릿속에는 오래전의 한 사건이 떠올랐다. 반승우가 납치당하고 반씨 가문이 난리가 났을 적 김경자와 백연서는 울부짖으면서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왜 둘째 놈이 아닌 승우를 데려간 거야! 승우 없이 난 어떻게 살라고...!”특히 김경자가 목 놓아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납치범한테 얘기해서 승제랑 승우를 바꾸자고 해봐! 어차피 둘 다 우리 집안사람이니 값은 같을 거 아니야!”어린 나이의 반승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쪽에 있었다. 그를 발견한 김경자는 귀가 찢어질 정도의 울음소리를 냈다.“아이고, 승우야! 우리 승우를 어떡하니!”이후 반씨 가문에서는 진짜 납치범과 거래해서 반승제와 반승우를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납치범이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허락할 리가 난무했다.반씨 가문은 난리가 났지만 상황을 파악하기에 반승제는 너무 어렸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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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혼전임신을 장려하다

이 말을 듣자마자 성혜인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뭐라고요?”도라희는 피식 웃는 한편 성혜인의 반응에 시름을 놓은 듯 한숨을 쉬었다.“난 충분히 참아줬어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내 시간을 낭비할 줄은 몰랐죠. 당신만 아니었어도 당신 아버지가 이 개고생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성혜인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빛에 서린 악의는 더욱 선명해졌다. 성휘의 장례식 날 그녀가 조심스럽게 들고 있던 유골함이 떠올라서 말이다.“아무튼 당신 아버지의 유골은 나한테 있어요. 장례식 직원이 빼돌려 줬거든요. 당신이 가져간 유골은 들개 몇 마리의 유골일 거예요. 다행히 때려잡은 만큼 무게가 딱 나왔죠. 누가 알았겠어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고집스러울 줄은요. 이제는 나랑 얘기해 볼 마음이 좀 생겼나요?”도라희는 아주 가벼운 말투로 물었다. 그래도 성혜인은 빠르게 진정했다. 그녀의 함정에 빠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어디에서 얘기할까요?”도라희는 문자로 성혜인에게 주소를 보내줬다.“여기서 만나요. 유하는 식물인간이 돼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요. 그러니 이쯤하고 넘어가 주죠. 당신은 성휘 씨의 친딸도 아니라면서요? 100억 원이나 받고 나면 돈도 벌고 좋죠, 뭐. 너무 답답하게 굴지 말자고요.”성혜인은 말없이 핸드폰을 꺼버렸다.도라희는 콧방귀를 뀌더니 자리로 돌아가 일을 계속했다. 마치 조금 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반대로 성혜인은 가만히 앉아서 숨을 돌렸다. 도라희가 돌아이일 줄은 알았지만 유골을 바꿀 생각을 할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같은 시각, 반승제는 드디어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 안에서는 식사 시간대 특유의 향긋한 밤 냄새가 났다. 문을 열고 거실을 통해 들어가자, 식탁 한가득 차려진 저녁 식사가 보였다.김경자와 백연서는 이미 자리에 앉아 반승제를 기다리고 있었다.“승제야, 아직 밥 안 먹었지? 얼른 와서 앉으렴.”반승제는 외투를 벗어 도우미에게 건네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백연서는 그가 끼고 있는 침향 팔찌를 보고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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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믿었기 때문에

반승제는 바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머리가 핑 돌아서 금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머릿속에는 조금 전 먹었던 음식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김경자와 백연서가 태어나서 처음 차린 지각한 생일상에 약을 탔을 줄은 물론 전혀 예상치 못했다.심장이 찔린 듯이 아팠던 반승제는 옷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겨우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저는 윤단미를 좋아하지 않아요. 결혼도 절대 안 할 거예요. 그리고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반승제가 말을 끝까지 하기도 전에 김경자가 말머리를 잘랐다.“거짓말하지 말거라. 내가 아직도 모를 것 같더냐? 승우는 절대 살아있을 리가 없어. 이 세상에서 가장 승우가 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인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그러니 이만 포기하고 단미한테 도움받아.”반승제는 눈앞이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윤단미와 함께하는 미래가 마치 환각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있는 힘껏 가까이 다가온 윤단미를 쳐내면서 외쳤다.“꺼져!”윤단미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김경자는 눈을 부릅뜨면서 반승제의 멱살을 잡았다.“지금 이게 무슨 뜻이니? 내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거니? 네 놈 자식은 나를 할머니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이구나!”반승제는 김경자도 쳐내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았다. 그녀의 몸이 충격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저는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저를 단 한 번도 손자라고 생각한 적 없죠? 그러니까 승우 형의 그림자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겠죠. 저도 살아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요?!”반승제는 김경자와 더 이상 얘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표정도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단호하게 몸을 돌리며 이만 떠나려고 했다.“앞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반승제의 말에 흥분한 김경자는 조용히 의자를 쳐들고 그의 뒤통수를 향해 내리쳤다.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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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페니의 정체

“닥쳐!”반기훈이 뿜어낸 위압감에 백연서는 어깨를 움츠리더니 눈물만 줄줄 흘렸다.병원 복도의 분위기는 아주 무거웠다. 반기훈이 백연서에 대한 증오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이르렀고 그녀가 얼마나 서럽게 울든 악어의 눈물로 느껴졌다. 지금도 그는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여보, 미안해요. 근데 난 절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백연서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번만큼은 진짜 잘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녀는 반기훈을 사랑했다. 한평생 사랑해 본 유일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하지만 반기훈은 백연서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꼴도 보기 싫은 듯 눈을 감으면서 싸늘하게 말했다.“울 거면 다른 곳에 가서 울어. 시끄러워 죽겠으니까.”백연서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렸다. 수술실의 전등은 여전히 밝혀져 있었고 정적이 휩싸인 복도에는 부지런히 오가는 간호사의 발걸음 소리만 들려왔다.얼마 후 반태승이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지팡이를 탁 내리치면서 말했다.“아주 황당하기 짝이 없군! 짝이 없어!”반씨 가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반태승은 너무나도 황당했다. 웃어른이라는 사람이 이런 짓을 벌였으니, 내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랫사람을 엄히 다루던 그만 우스워진 셈이다....같은 시각, 성혜인은 도라희와의 약속 장소에 거의 도착했다. 하지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쉽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성혜인은 핸드폰을 힐끗 봤다. 반승제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반승제는 오늘 백연서와 식사하기 위해 반씨 저택으로 돌아간 모양이었기에 그녀는 애써 신경을 거두며 약속 장소인 카페 안에 들어가려고 했다.이때 심인우가 전화를 걸어온 것을 보고 그녀는 우뚝 멈춰 섰다.“페니 씨, 대표님께서 지금 응급 수술을 받고 있다는데...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아요.”“대표님 가족들과 식사하러 가신거 아니였나요?”성혜인은 자기 귀를 의심할지언정 심인우의 말을 단번에 믿지 못했다. 그러자 심인우는 잠깐 침묵하다가 자초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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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기억 상실

반태승은 진지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반승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승혜야, 넌 먼저 돌아가거라. 그리고 승제는 휴식이 필요하니 아무도 병문안을 오지 말도록 일러두거라.”반승혜는 머리를 끄덕였다. 단순했던 그녀는 자신이 쫓겨났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백연서는 진작 경호원에게 끌려갔기에 병원에는 반태승, 반기훈, 그리고 성혜인만 남게 되었다.반태승은 이제야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진세운에게 물었다.“승제한테 어떤 후유증이 남을 것 같나?”진세운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대답했다.“아직은 모릅니다. 그것도 승제가 깨어나야 알 수 있습니다.”반승제는 병실로 올라갔다. 과다 출혈로 인해 안색은 송장처럼 창백했다.반승제의 침대 곁으로 가서 멈춰 선 성혜인은 어쩔 줄을 몰랐다.“혜인아...”반태승은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병실 안에 들어섰다. 입을 열어 성혜인을 부르기는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세 사람은 오후가 될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반승제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반태승은 따듯한 수건으로 반승제의 이마에 맺힌 땀을 정성껏 닦아주는 성혜인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이런 아내를 못 알아본 그도 참 복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오후 네 시, 반승제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의사는 반승제를 검사하다 말고 반태승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무엇이든 먹지 않는다면 반승제가 깨어나기 전에 그가 먼저 쓰러질 것이라면서 말이다.반태승은 의사의 말을 듣기나 했는지 동상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했다. 다행히 반승제는 늦지 않게 깨어났다. 머리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은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예리한 눈빛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극심한 두통 때문에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었다.반태승은 빠르게 다가가 반승제에게 물었다.“승제야, 괜찮니?”두통이 심했던 반승제는 인상을 쓴 채로 반태승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목소리를 겨우 짜내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반태승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급기야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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