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Chapter 661 - Chapter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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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1화

코를 찌르는 향수냄새에 허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허태준은 그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꺼져.” 여자들을 옆에 끼고 좋아하던 다른 사람들도 허태준의 목소리에 숨을 죽였다. 대표는 잠시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내 기억 좀 봐.” 그는 아가씨들을 내보내고 직원을 불러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 크고 마른 체형의 젊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20대 정도 돼보였는데 값싼 정장을 입고 화장을 진하게 한 모습이 무척 느끼했다. 그들은 아까 들어온 여자들처럼 허태준에게 들러붙었다. 허태준은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그들이 자신에게 달라붙고 나서야 화가 나서 몸을 일으켰다. 허태준은 주변사람들의 만류에도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왔다. 허태준은 화장실부터 갔다. 그는 수도꼭지를 틀고 아까 남자들이 입을 맞춘 얼굴을 벅벅 씻어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아까의 그 구역질 나는 상황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지만 허태준은 얼굴을 씻느라 고개를 들지 않았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대표님?” 놀란듯한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세요?” 허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김욱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태준이 급히 피했다. 그는 휴지를 뽑아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냈다. “언제 귀국하셨어요?” 허태준이 침착한 척하며 김욱에게 물었다. 하지만 심장은 계속 거세게 뛰고 있었다. 긴장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머니에 꽂은 두 손이 떨리고 있었다. “어제요.” 김욱이 손을 씻으며 대답했다. “비약회사와의 합작을 논하려고 들어왔어요.” 비약은 무역회사였는데 CY 그룹과도 합작한 적이 있었기에 허태준도 낯설지 않았다. “그렇군요.” 허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유진의 상황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심유진의 일에 관해서 허태준은 직접 들은 사실만 믿을 수 있었다. 직접 들은 것이 없다면 그는 계속 자신을 속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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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무슨 일인데?” 허태준이 물었다. 여형민은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말했다. “어제 킹 호텔에서 유진 씨를 만났어.” 허태준은 심장이 덜컹했다. 잠시 뇌가 멈춘 것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온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허태준은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여형민은 한번 더 방금 했던 말을 중복했다. “어제 고객님 한 분을 킹 호텔에 모셔다 드렸는데 체크인할 때 유진 씨 오빠를 만났어. 이름이 뭐더라? 김... “김욱.” 허태준이 먼저 대답했다. “그래, 맞아! 그래서 내가 인사를 하려는데 자세히 보니까 옆에 누굴 부축하고 있더라고.” 여형민이 뒤의 말을 이어가지 않아도 허태준은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허태준은 손발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심유진이 귀국한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김욱과 만났지만 그 역시도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거리감은 허태준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그는 이 원인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의자에 걸린 외투를 들고 허태준이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몸을 일으켜서인지 아니면 너무 불안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행히 얼른 테이블을 붙잡았기에 여형민 앞에서 주저앉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여형민이 얼른 달려와서 부축했다. “괜찮아. 나 나갔다 올게. 오늘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비서한테 대신 전달해 줘. 중요한 일은 일단 부대표한테 전달하고 급하지 않은 건 나 돌아와서 다시 보자고.” “지금 킹 호텔로 갈 거야?” 여형민이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 시밖에 안 됐어. 유진 씨가 일어나지도 않았겠다.” “집에 가서 씻으려고.” 허태준은 지금 온몸에 술냄새와 향수냄새가 가득했다. 일에 집중할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왠지 그 코를 찌르는 냄새가 너무 불편했다. 여형민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같이 갈까?”여형민은 허태준이 순간 흥분해서 심유진을 자극할만한 말을 내뱉을까 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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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허태준의 집은 킹 호텔과 매우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호텔 주변을 몇 바퀴 빙빙 돌면서 긴장이 조금 가시고 나서야 킹 호텔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호텔 로비로 들어가고 난 뒤에도 그는 여전히 심장이 뛰었다. 허태준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직원들의 환영을 거부하고 혼자 휴게실 소파에 앉았다. 그는 일부러 시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사용하는 모든 손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렇게 무작정 기다린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허태준에게는 더욱 쉽지 않았다. 그의 손을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온몸의 근육은 경직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마다 허태준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살펴봤다.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익숙한 두 얼굴이 보였다. 허태준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다가갔다. 김욱은 심유진보다 먼저 그를 발견하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허대표님?” 심유진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허태준을 보는 순간 심유진은 얼굴이 굳어졌다.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허태준은 그 반응을 보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 “좋은 아침입니다.” 허태준이 억지로 웃었다. “좋은 아침이네요.” 대답한 건 김욱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세요?” 당연히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출근할 때 마침 킹 호텔을 지나고 있는데 어제 여형민이 여기에서 두 분을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제 운을 테스트해 보고자 들어와 봤어요.” 김욱이 장난을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희를 만난 게 행운인가요 불행인가요?” 허태준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히 행운이죠.” 허태준에게는 엄청 큰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어디 가세요?” 허태준이 화제를 돌렸다. “병원이요.” 김욱이 대답하자 허태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심유진의 다리로 갔다. “무슨 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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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사영은이 죽고 난 후 허태준은 병원의 감시인원들을 다 철수했기에 이 중요한 소식을 놓친 것이었다. 허태준은 자신이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사영은의 후사는 대충 사람을 붙여서 처리하면 되는 거였기에 심유진이 아픈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은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잠시 멈칫하다가 조금의 기대를 품은 채 물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을까요?””아니요.” 심유진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심유진은 한시라도 빨리 허태준을 떼여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태준은 그 냉정한 말투에 온몸이 얼어붙은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입을 뗄 수 있었다. “알겠어요.” 김욱은 허태준을 살피다가 자리를 뜨면서 낮게 그에게 말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유진이는 강한 애이니까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기 싫어서 그런 거예요.” 심유진의 다리는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었지만 저번에 미국에서 만났을 때에 비하면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이제는 혼자 걸을 수 있었지만 걸음걸이가 조금 어색했고 오래 걸으려면 아직도 부축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김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태준을 거절한 건 이 원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욱은 몰랐지만 허태준은 잘 알고 있었다. 김욱의 따뜻한 배려에 허태준은 씁쓸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주차장까지 같이 가서 그들이 차에 오르는 걸 보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김욱도 차 안에서 허태준이 가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했다. 심유진은 여전히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다가 차 시동을 걸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혹시 대표님이랑 싸웠어?” 김욱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실 김욱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심유진이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멍을 때리고 있기도 했고 의사의 권유는 듣지도 않은 채 재활운동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으며 말수도 훨씬 적어졌다. 허태준이 그리워서 얼른 회복한 후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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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하지만 심유진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사영은은 어쨌든 자신의 친엄마이기에 아무리 그녀를 증오한다한들 그녀의 마지막을 배웅해주지 않는 건 도리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빨리 끝내고 돌아가자.” 심유진은 추워서 몸이 떨리는데도 나가지 않았다. 김욱은 한숨을 쉬며 심유진을 따랐다.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뒀기에 영안실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사영은 씨 가족 되시죠?” 흰색 가운을 입은 젊은 남성이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인지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느라 그런 건지 말투나 태도에서 귀찮음이 묻어 나왔다. “맞아요.” 심유진이 얼른 사과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남성이 심유진과 김욱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서 사영은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분이 오래 기다리셨죠.” 사영은이 세상을 뜬 지도 보름이나 지났다. 심유진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세상을 뜨기 전 한동안 수액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았었기에 사영은은 뼈밖에 남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유진은 보고 있기가 힘들어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남성은 그런 심유진을 비웃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그때 김욱이 나서서 말했다. 남성은 잠시 멈칫하다가 김욱의 의도를 알았는지 거만한 태도로 자신의 이름표를 보여주며 말했다. “고소라도 하시게요? 하세요.” 김욱이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입을 열기도 전에 심유진이 그를 말렸다. “죄송해요, 저희 오빠가 좀 충동적이라.” 심유진은 김욱에게 눈치를 줬다. “저희가 어떤 절차를 밟으면 될까요?” 심유진은 여전히 공손한 태도로 그를 대했다. 남성은 복수를 하려는 건지 일부러 그들을 이리저리 뛰게 만들며 여러 복잡한 자료들을 요구했다. 심유진은 거동이 불편했기에 대부분 자료들은 김욱이 가져왔고 심유진은 지하 1층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에는 한기가 맴돌았다. 심유진은 한참을 추운 복도에 있은 탓인지 나오자마자 재채기를 했다. “감기 걸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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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방에 보일러가 틀어져 있는 상태였다. 김욱이 나가기 전에 틀어놓고 간 것이었다. 열기에 심유진이 몸을 뒤척였다. 머리가 띵했고 몸이 불덩이 같았다. 열이 나고 있었다. 몸이 너무 무거웠기에 심유진은 겨우 침대맡의 휴대폰에 손이 닿았다. 언제 알람을 꺼놨는지 김욱과 육윤엽에게 각각 전화가 한통씩 왔었는데 받지 못했다. 김욱은 메시지까지 남겼다. “저녁에 고객과 약속이 있어. 배고프면 나 기다리지 말고 혼자 시켜 먹어.” 시간을 보니 지금 식사자리에 참석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심유진은 김욱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혼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룸서비스를 불렀다. “해열제 좀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심유진은 직원에게 비상용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지금의 몸상태로는 문을 열어주는 것도 버거웠다. 전화를 끊고 심유진은 다시 누웠다. 기다리는 내내 졸음이 밀려왔다. 심유진은 잠시만 눈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잠에 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인 가운데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이 올려지는 게 느껴졌다. 순간 몸이 많이 편안해졌다. 순식간에 냉기가 가시자 심유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 봐요 유진 씨.” 머리가 아무리 아픈 상태여도 이 목소리가 누군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허태준이었다. 심유진이 당황해하며 눈을 힘겹게 떴다. 허태준이 걱정 어린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여기에 있어요?” 심유진은 말을 할 때마다 목이 아팠다. 허태준은 대답 없이 체온계를 들이댔다. “일단 체온부터 재봐요.” 심유진은 몸에 힘이 다 빠진 상태였기에 체온계를 놓치고 말았다. “미안해요.” 심유진이 저도 모르게 사과부터 했다. 체온계를 다시 주워 든 허태준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졌다. “제가 재드릴게요.” 허태준은 그녀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돼요?” “제가 할게요.” 심유진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허태준도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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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허태준은 체온계를 다시 받아 들고는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39도네요.” 심유진도 예상보다 높은 체온에 깜짝 놀랐다. “의사 불러올게요.” 킹 호텔 내부에는 유명한 의사들이 진료를 보고 있는 의료실이 있었다. 의사는 심유진에게 수액을 놔주고는 간호사를 한 명 붙여줬다. 간호사는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았다. 심유진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나서 심유진은 그녀가 S대학병원에서 2년간 일하다가 얼마 전에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심유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S대학병원이라면 전국에서 1,2위를 다투는 대형병원이었다. 수많은 의대생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이니 그런 곳에서 일했다는 건 굉장한 엘리트라는 뜻이었다. “병원에서 계속 일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니에요?” “저희 간호사들은 의사들이랑 달라요.” 간호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시중이나 드는 입장이니까 큰 병원에서 일단 경험이 있어도 큰 쓸모는 없어요. 차라리 조금 더 편안한 직장이 낫죠. 그럼 황당한 환자들이나 보호자분들을 상대할 필요도 없으니까.” 간호사는 병원에서 있었던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심유진은 흥미진진하게 그녀가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사영은 씨라고 혹시 아세요?” 간호사가 갑자기 물었다. 심유진은 순간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알죠. 자기 딸이 호흡기를 떼서 돌아가신 분 맞죠?” “맞아요!” 간호사는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제가 그 병실을 맡았었거든요. 근데 사실 뉴스에 나온 것처럼 간단한 사건이 아니에요.” “네?” 심유진이 주의력을 집중했다. “호흡기를 떼기 전에 사영은 씨가 깨어날 기미를 보이셔서 저희 모두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며 기대했었거든요. 근데 따님이 그렇게 독하게 호흡기를 뽑아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요?” 간호사가 속상해했다. “돌아가시던 그날에 마침 제가 당직이라 새벽에 돌아가신 걸 발견했어요.” 그녀는 아직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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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심유진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사영은이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딸 때문에 돌아가게 되었으니 속이 시원한 게 맞았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났다. 이게 사영은 때문인지 아니면 펄펄 끓는 몸뚱이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사영은이 죽기 전 자신을 생각했을지, 죽기 전 흘린 그 눈물이 아주 조금이라도 자신을 생각하며 흘린 것일지... 자꾸 이런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들은 영원히 그 해답을 얻지 못할 것이다. 심유진은 금방 잠에 들었다. 허태준이 방안에 들어오자 심유진 곁을 지키던 간호사는 벌떡 일어나며 우물쭈물 말했다. “대표님.” 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차가운 말투로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간호사는 휴식일에 이렇게 추가 근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에요.” 처음 허태준과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니 간호사는 기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인걸요.” 허태준은 시선이 심유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나가 계세요. 도움이 필요하면 부를게요.” 허태준은 심유진이 깨기라도 할까 봐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간호사는 둘이 무슨 사이인지 몰랐다. 당시 사촌형의 혼인에 끼어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나서 허태준은 여자와 엮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궁금증이 생겨도 물어볼 수 있는 건 없었다. 혹시나 허태준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앞으로의 삶이 편치 않을 테니 말이다. 허태준은 간호사가 앉아있었던 의자를 치우고 새 의자를 가져다가 옆에 앉았다. 방안은 너무 조용해서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허태준은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심유진을 지켜봤다. 심유진은 코로 숨을 쉬기가 너무 힘들어 입으로 숨을 쉬다가 건조한 공기에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깼다. 기침이 심했기에 심유진은 몹시 힘들어했다. “많이 힘들어요?” 허태준은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물 좀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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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고마워요.” 심유진은 목소리도 아까보다 많이 나아졌다. “아니에요.” 허태준은 빈 컵을 바라보며 심유진을 일으키느라 허리에 댔던 손을 거뒀다. “물 좀 더 떠올게요.” 분명 허태준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싫었는데 막상 손을 떼니 심유진은 왠지 마음이 복잡했다. 심유진은 시선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요.” 허태준은 몸을 돌리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간호사는요?” “거실에서 쉬고 있어요.” “들어오라고 해줘요. 간호사가 지키면 되니까 태준 씨는 이만 가보세요.” 심유진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었지만 지금 두 사람 중에 골라라고 하면 당연히 간호사가 옆에 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 적어도 간호사와는 어색하지 않았고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지도 않았다. 이대로 허태준과 있다가는 열은 내려도 심장이 남아날것 같지 않았다.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아무 말없이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심유진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면서도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깼어요?” 간호사가 웃으며 물었다. “물 좀 더 드릴까요?” 간호사의 손에 허태준이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컵이 들려져 있었다. “괜찮아요.” 심유진이 고개를 젓자 간호사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열이 날 땐 원래 물을 많이 마셔야 돼요. 또 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심유진은 들은 척 만 척하며 대충 대꾸했다. 간호사는 수액병을 바꿔주며 말했다. “방금 들었는데 예전 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제 동기가 오늘 해고 당했대요.” 심유진은 간호사가 이런 얘기를 하며 은근히 자신의 반응을 살핀다는 걸 눈치챘다. “왜요?” “누구 원망을 살 일을 했다나 봐요.” 간호사는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평소에는 영안실 쪽에서 일해서 다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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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간호사님.” 전화를 끊고 심유진이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막 방으로 들어오려는데 심유진이 물었다. “혹시 밖에 아직도 사람이 있나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허태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허태준을 보고 간호사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밖에 없어요.” 심유진은 억지로 곧게 피고 있던 몸에 힘을 풀며 침대머리에 기댔다.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다가 허태준과 나눴던 채팅기록을 보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 출국하게 된 후 연락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연락을 안 했음에도 허태준은 여전히 채팅기록의 위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유진은 허태준 프사에 있는 별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채팅기록에 들어갔다. “수액을 맞기전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하신 것 같아요.” 간호사는 밖에서 허태준과 있을 때 경직된 채 한마디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심유진과 둘이 있으니 긴장이 풀렸는지 말이 많아졌다. 심유진은 간호사를 무시할 수가 없어 일단 휴대폰을 껐다. “그래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심유진은 짧게 대답했지만 간호사는 그녀가 매 순간 진심을 담아 대화를 나눠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다시 병원에서 해고를 당한 그 동기에 관한 말을 꺼내게 되었다. “너무 불쌍해요.” 간호사가 말했다. “집안 상황이 좋지 못하거든요. 아버지는 옛날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약값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대요. 병원에서 받는 월급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이제 직장까지 잃었으니 어머니 다음 달 약값을 낼 돈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원장실에 찾아가서 무릎까지 꿇었대요. 다 큰 남자가 엉엉 울면서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일어나지 않았다지 뭐예요. 그래서 지금 다들 돈을 좀 모아서 어머님 약값이라도 대드릴 생각이에요.” “정말 안타깝네요.” 수액을 다 맞고 간호사는 뒷정리를 하고 떠나면서 굉장히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간호사가 떠나자 방안이 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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