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Chapter 1 -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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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심유진은 조건웅의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한가득 쌓인 임산부 용품을 발견하고서야 그가 바람을 피웠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예전에 조건웅이 한창 그녀를 쫓아다녔을 때 심유진은 그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말했었다. 그녀는 이번 생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그녀의 말에 조건웅은 이렇게 답했었다. “낳을 생각이 없으면 낳지 않으면 되지. 두 사람만의 생활을 즐기는 게 나도 더 좋아.”그 답에 심유진은 그와 만나보기로 결심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때문에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은 절대 조건웅이 그녀를 위해 사려는 게 아닐 것이다.심유진은 생각했다. 조건웅 주위의 친인척들과 친구들 중 최근 임신을 한 사람이 있었던지. 그녀의 기억속에 임산부는 그의 부하 여직원인 우정아뿐이었다.지난번 그의 부서에서 회식을 하던 날, 그녀가 키를 깜빡하고 챙기지 않아 그가 있는 곳으로 가지러 간 적이 있었다. 우정아는 볼록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그의 곁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다른 동료들 보다 확실히 더 가까워 보였었다.그 모습을 본 심유진은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우정아가 스스럼없이 자신한테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 자신이 예민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그녀는 조건웅의 이전 장바구니를 더 뒤져보았다.방금 보았던 임산부 용품과 비슷한 계열의 물건들을 제외하고도 각종 프리미엄 브랜드의 뷰티 제품과 기초화장품, 게다가 한정판 샤넬 핸드백까지 이미 구매한 목록에 담겨있었다.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회식 날 우정아가 곁에 두고 있던 백이 바로 이 백이었다.모든 단서가 하나로 이어졌다. 심유진은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것처럼 아찔해났다. 갑작스러운 사실에 순간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와 동시에 그녀의 마음 한편에서는 일말의 요행을 바라고도 있었다. 만약…… 만약 이 모든 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면?심유진은 당장 조건웅을 찾아가 따지지는 않았다.오늘은 이번 달의 마지막 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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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심유진은 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복도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었고 당연히 그중에는 조건웅의 부하들도 있었다.그들은 조건웅이 우정아를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도 놀라거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진즉 조건웅과 우정아의 간통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심유진은 방금 전 자신이 일부러 모든 사람들 앞에서 조건웅과의 애정을 과시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다.그 사람들은 속으로 그녀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심유진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아냈다. 그리고 홀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집안은 먹칠을 한 듯이 캄캄했다.손을 뻗어 불을 켰다. 모든 건 그녀가 나가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하지만 집안을 맴도는 공기만은 이전과는 다르게 차갑게 얼어붙어있었다.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집안의 모든 값나가는 물건들을 커다란 트렁크 두 개에 가득 채워 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로열 호텔로 향했다.그녀는 로열 호텔의 객실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업무상 야간 교대 근무가 잦았기에 호텔에 자신만의 전용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비록 그 방에는 침대 외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지만 그녀가 새로운 거처를 찾기 전까지 머물 곳으로는 충분했다.**심유진이 주로 책임진 곳이 객실이긴 했지만 로열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다 보니 로비나 프런트 쪽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심 매니저님? 오늘 휴가 아니었어요?”프런트에 있던 소미가 커다란 트렁크 두 개를 끌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놀라 물었다.“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돌아왔어요.”심유진은 적당히 몇 마디 둘러댔다.소미가 그녀의 등 뒤에 놓여있는 트렁크를 바라보았다.“그럼 저건?”“아 저희 호텔에 곧 엄청 귀한 손님이 오실 거거든요. 그분한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당분간 호텔에서 지내려고요.”심유진은 이틀 전 아침 회의에서 총지배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기지를 발휘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소미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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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침 회의에서 총지배인은 ‘귀한 손님’이 체크인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각 부문 매니저들한테 당분간 부하 직원 단속을 엄중히 할 것을 요구했다. “조심 또 조심하고 무슨 일이든 세심하고 또 세심하게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귀한 손님’과 가장 직접적으로 대면하게 될 객실 매니저인 심유진은 특별히 따로 남아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들어야 했다.“허 대표님은 심각한 결벽증이 있습니다. 무조건 방은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심 매니저가 프런트와 잘 말해서 일단 허 대표님이 밖으로 나가는 것만 확인하면 바로 청소팀을 부르세요. 그리고 청소팀더러 절대 허 대표님의 그 어떤 개인 물품도 만지면 안 된다고 당부하세요.”심유진은 총지배인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그럼 만약 청소할 때 허 대표님이 옷 같은 걸 침대 위에 던져두었으면 어쩝니까. 그러면 그분 옷을 만지지 않기 위해 침대 정리도 하지 말아야 하나요?”“첫째 허 대표님의 성격으로 볼 때 절대 함부로 옷을 침대 위에 두지 않을 겁니다. 둘째 만약 그분이 정말로 옷을 침대 위에 벗어두었다면 그분이 방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침대 정리를 마칠지언정 함부로 그분 옷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작년에 경주 로열 호텔 본부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청소부가 테이블을 닦으려고 허 대표님의 노트북을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 대표님이 그 일을 알게 된 후 그쪽 객실부의 매니저부터 청소부까지 전부 사직하는 일이 있었습니다.”총지배인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게 다 심 매니저를 위해 하는 말입니다. 절대 허투루 듣지 마세요.”“총지배인님께서 해주신 조언 잘 새겨듣겠습니다!”심유진은 돌아가자마자 객실부의 모든 사람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다. 그녀는 총지배인이 말해준 주의 사항들을 꼼꼼히 전달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모를 실수를 줄이기 위해 로열 스위트룸 청소는 전부 경력이 많고 세심한 두 아주머니한테 부탁했다.**허태준은 아침 일찍 나가서 심유진이 퇴근할 저녁 8시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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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누가 나한테 약을 먹였어. 원래는 그쪽한테 사람을 불러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계속 안 받더라고…… 당신이 왔을 때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상태였고.”허태준은 응당한 일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마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너무나 당당한 그의 말투에 순간할 말을 잃었다.허태준은 마주 보는 그녀의 시선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는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그가 협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갑을 꺼내들더니 카드 한 장을 빼냈다.“내 명의로 된 카드야. 금액 제한 없이 마음대로 긁어도 돼.”그가 카드를 그녀한테 건넸다.“어젯밤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지.”남자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저 침대 한쪽 끝을 바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심장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심유진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심유진은 진즉 그의 이상함을 눈치챘었다. 그와 함께 밤을 보낸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하지만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은 그녀의 화를 돋우기 충분했다.도대체 그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대표님께서는 씀씀이가 참으로 호탕하시네요.”그녀가 조롱하듯이 입꼬리를 올렸다.“하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다 큰 성인인데 함께 밤을 보낸 것 정도는 큰일도 아니잖아요. 하물며 어디 허 대표님과 같은 남자와 아무나 밤을 보낼 수 있나요? 따지고 보면 저는 손해 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본 거죠. 그러니까……”그녀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이 카드는 넣어두세요. 저는 필요 없으니까.”허태준의 알 수 없는 눈빛을 받으며 심유진이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용기로 삼고 그의 턱을 잡아올렸다. 그리고 경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만약 허 대표님께서 정말로 저에게 뭔가를 보상하려고 한다면, 저랑 몇 번 더 자던가요.”그녀는 허태준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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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여기 있는 심 매니저가 바로 내 며느리야.”“내 아들과 결혼한 지 이제 곧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태 임신을 못했어.”“그런데도 우리 식구들은 저애를 내치지 않았지. 함께 병원이라도 가보자고 해도 안 가고 버티기만 했었단 말이야. 그러고는 친척들 앞에서는 내 나쁜 말을 하면서 나를 쪽팔리게 만들었지!”“저런 애지만 내 바보 같은 아들은 지금껏 이혼하지 않고 저 애를 감싸기만 했어!”“저애가 임신을 못 하니까 내 아들은 다른 여자를 찾아서라도 아이를 낳으려고 했고 저 애도 그 일에 동의를 했었지. 그런데 그 여자애가 진짜 임신을 하니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야!”“어젯밤 샤부샤부 집에서는 임신 4개월 된 그 여자애를 밀치기까지 했어! 여자애는 그 뜨거운 샤부샤부 국물을 잔뜩 뒤집어쓰게 되었지! 하마터면 유산까지 할 뻔했어. 아직까지도 병원에 입원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란 말이야!”“여기 모여있는 당신들이 한번 말해 봐. 어쩜 여자가 저렇게도 지독할 수 있는지!”심유진은 자신의 시어머니가 사실을 왜곡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왜곡된 ‘진실’을 듣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어머님께서 이렇게까지 저를 깎아내리시니 저도 더 이상 당신과 당신 아들의 체면을 봐줄 필요 없겠네요.”심유진이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녀는 비굴하지도 그렇다고 거만하지도 않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첫째, 제 몸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아이를 안 낳은 건 순전히 제가 낳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당신 아들과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었어요. 아마 당신 아들이 부모님들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지금껏 말씀드리지 않았나 보죠. 둘째, 당신 아들은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아이를 낳은 게 아닙니다. 그 일에 대해 저한테 알린 적은 더더욱 없고요. 현재 임신 4개월인 그 젊은 아가씨는 그가 밖에서 간통한 여자입니다. 아니지, 이제 곧 당신 아들 와이프가 되겠네요. 왜냐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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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심유진의 사무실은 호텔 입구가 있는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그녀가 올라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층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창문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호텔 입구에 경찰차 한 대가 서있었다. 몇 분 후 두 명의 경찰이 조건웅의 부모님을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뜻밖에도 두 사람은 아무런 반항도, 심지어 억척스러운 악다구니도 없이 순순히 경찰차에 올라타는 것이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나중에 프런트 직원인 소미에게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글쎄 허 대표님께서 4억으로 그 두 사람 목숨을 사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에 잔뜩 겁을 먹은 두 사람이 경찰이 오자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기필코 경찰과 함께 가겠다고 우겨서 경찰의 보호하에 나갔어요.”소미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심 매니저님이 그때 그 두 사람의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겁먹은 강아지처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정말로 웃겼다니깐요.”심유진은 웃을 수가 없었다.두 사람이 벌인 소동은 그들 스스로의 얼굴을 깎았을 뿐만 아니라 심유진의 얼굴도 처참하게 깎아내렸다. 어쨌든 외부인의 눈에 그 두 사람은 그녀의 시부모님들이었다.**예상했던 대로 점심이 되기도 전에 심유진은 총지배인에게 직접 ‘소환’ 당했다.그녀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머리를 푹 수그렸다. 그렇게 그녀는 당장 자신에게 닥칠 ‘폭풍우’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그녀가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오히려 총지배인은 부드러운 어투로 그녀에게 물었다.“혹시 휴가 며칠 더 필요하지는 않아?”놀란 심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혹시 그의 몸에 귀신이라도 씐 건 아닌가 하는 의심에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전에는 그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당장 욕부터 하던 그였다.그녀의 의심을 알아차린 듯한 총지배인이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예전의 그 엄격한 모습으로 돌아갔다.그 모습에 심유진은 어쩐지 안심이 들었다.“비록 오늘 일은 심 매니저가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었기는 하지만 어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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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당신 그거 무슨 뜻이야?”심유진은 더 이상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음료수를 가져온 직원이 화들짝 놀랐다.“주, 주문하신 레몬티입니다.”직원이 레몬티를 테이블 위에 올놓더니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힐끔거렸다. 그는 돌아서면서도 몇 번이나 두 사람을 힐끔거리다가 그제야 자리를 떠났다.그의 어설픈 방해에 심유진은 그제야 자신이 현재 공공장소에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녀는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계약금 내가 냈어. 매 달마다 대출금을 갚고있는 것도 나였고. 그런 집이 나랑 상관이 없으면 대체 누구랑 상관있다는 거야?”그녀는 겨우 화를 참으며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조건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가 가방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확인해 봐.”서류 첫 페이지의 맨 꼭대기에 검은색 글자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주택 증여 계약서》심유진의 시선이 그 단어에서 2초가량 머무르다가 빠른 속도로 아래 내용을 확인했다.증여인: 심유진 (이하 “갑”이라 칭함)수증인: 조건웅 (이하 “을”이라 칭함)증여하는 주택은 결혼 후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바로 그 집이었다.“이걸 나한테 왜 보여주는데? 나더러 지금 여기에 사인하라고?”심유진이 계약서를 던지며 싸늘하게 웃었다.“똑똑히 들어 조건웅. 꿈도 꾸지 마!”조건웅의 얼굴에서 좌절이나 분노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승리의 미소가 걸려있었다.그가 계약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심유진에게 건넸다. 그리고 검지로 맨 마지막에 있는 서명란을 가리키며 말했다.“똑똑히 봐.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 말이야.”증여인이라는 세 글자 뒤에 있는 서명란에는 멋들어지게 쓴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심유진 세 글자가.그녀가 가장 익숙한 필체였다. 전혀 위조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사인 위에는 붉은색 지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마침 그녀의 오른손 엄지손가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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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유진은 뜻밖의 욕설에 머리가 띵해졌다.하지만 그녀 역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건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고객도 겪어왔었다.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죄송합니다 서우연 씨. 아마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막 호텔로 돌아온지라 아직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실례지만 잠시만 저한테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내어주시면 안 될까요?”그와 동시에 그녀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로열 호텔은 정규적인 호텔이었다. 이와 같이 사업 규모가 크고 사무가 번잡한 호텔에서 멋대로 사람을 내쫓을 리가 없었다.보안 요원과 청소부까지 모여있는 걸 보니 그녀를 쫓아내는 일이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심유진은 호텔을 통틀어 권력 있고 고객을 쫓아낼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총지배인을 제외하고는 떠오르지 않았다.그녀가 막 총지배인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으려고 할 때 복도 끝 쪽에 있는 방 문이 열렸다.여형민이 잠옷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그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주위로 허태준과 비슷한 싸늘한 기운이 느껴겼다. 아침에 친절하기 그지없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그의 휴식을 방해한 줄 알고 황급히 사죄했다.“죄송합니다 여형민 씨. 현재 이쪽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소란스럽게 했다면 저희가 다른 방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여형민이 손을 내젓더니 그녀를 향해 씩 미소 지었다.“괜찮습니다.”심유진이 당황했다.이게 괜찮으면 그는 도대체 왜 저렇게 저기압인 거지?여형민은 곧바로 서우연의 앞으로 다가갔다.서우연은 그를 알고 있는 듯했다.“여, 여 변호사님?”이전에 보였던 오만방자함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서우연 씨.”그녀를 대하는 여형민의 태도는 심유진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말투도 각박하기 그지없었다.“당신한테 퇴실을 요구한 건 허 대표님의 뜻이었습니다. 원인은……”그가 씩 입꼬리를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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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풉!”물을 마시던 여형민이 그녀의 말에 그대로 물을 뿜었다.그가 다급하게 일어나 휴지를 뽑아 서둘러 입 주위와 젖은 옷을 닦았다.“죄송합니다.”그는 조금 뻘쭘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눈매가 씰룩거리는 것이 어쩐지 웃음을 참고 있는듯했다.그가 다시 자리에 앉더니 짐짓 생각하는 척하며 턱을 만졌다. 잠시 후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문제라, 허 대표한테 정말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심유진이 두 귀를 쫑긋 세웠다.“심각한 결벽증이 있거든요.”여형민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눈에 보아도 그 일로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 같았다.그 ‘병명’이라면 심유진한테 신선감을 주지 못했다. 녀가 직접 그의 결벽증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눈앞의 남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결벽증과 서우연을 거절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허 대표의 결벽증이 심하다 못해 다른 사람과 그 어떤 신체적인 접촉을 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비즈니스를 할 때 협력 업체 사람들과 악수조차 하기 싫어할 정도죠.”여형민의 말에 심유진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허태준이 호텔에 와서 체크인하던 그날 밤. 분명 그녀와 악수를 나누지 않았던가. 심지어 어젯밤에 두 사람은……당연히 심유진은 자신이 허태준한테 특별한 “예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입으로 원래는 그녀한테 “사람”을 불러달라고 할 생각으로 전화했다고 했었다.때문에 그녀는 허태준의 괴상한 “결벽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부를지언정 서우연과는 자기 싫다니. 설마 그는 서우연이 돈만 주면 아무나 잘 수 있는 그런 “사람”보다도 불결하다고 생각하나?여형민은 심유진의 당혹감을 눈치챘지만 뭐라 더 설명하지는 않았다.그와 같은 외부인이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일도 있었다.심유진 역시 그 이상은 뻔뻔스럽게 묻지 못했다.본론은 다 끝났으니 그녀도 더 이상 그 방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하니 그녀는 예의상 그에게 물었다.“여 변호사님 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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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예를 들어……”여형민이 교활하게 씩 웃으며 허태준 쪽을 힐끗 보았다.“여기 있는 허 대표와 잘 지내봐요. 허 대표한테 뒤에서 그 인간들이 골탕 먹게 힘 좀 써달라고 해요.”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하늘 높이 치솟던 심유진의 기대가 바늘에 콕 찍힌 듯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그건……”그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고고하게 있는 허태준을 몰래 힐끔거렸다.“역시 허 대표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죠.”그때 허태준이 입을 열었다.“왜? 나 같은 건 쓸모없나?”그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심유진이 서둘러 해명했다.“절대 아닙니다. 공사 다망한 허 대표님한테 어떻게 이런 작은 일로 폐를 끼치겠어요? 더군다나 저와 대표님은 안지도 며칠 안 됐고……”그녀는 방금 자신이 말한 부분 어디에서 허태준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다고.”허태준이 한 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졌다.“그렇게 작은 일이 나한테 폐를 끼칠 수나 있겠어? 하지만……”갑자기 그가 화제를 돌렸다.“어제 심 매니저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응당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당신이 한번 말해 봐.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괜찮습니다.”심유진이 주저 않고 그를 거절했다.“대표님께서는 오늘 아침에도 이미 저를 크게 도우셨습니다. 그걸로 계산 끝내죠. 이제 서로 빚진 건 없습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잘 생각해 봐 심 매니저. 이런 기회는 다음에 오지 않아.”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심유진이 답했다.“충분히 생각해 봤습니다.”“그래.”허태준이 그녀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옮기고 와인잔을 들었다.그가 살짝 고개를 젖히자 검붉은 색 액체가 잔을 타고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꿀꺽.그의 목젖이 꿀렁거렸다.심유진은 그저 생각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허태준의 완벽한 옆선과 무심히 흘러나오는 퇴폐적인 섹시미에 눈을 떼지 못했다.그녀는 왠지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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