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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심유진은 뜻밖의 욕설에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건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고객도 겪어왔었다.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서우연 씨. 아마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막 호텔로 돌아온지라 아직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실례지만 잠시만 저한테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내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와 동시에 그녀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로열 호텔은 정규적인 호텔이었다. 이와 같이 사업 규모가 크고 사무가 번잡한 호텔에서 멋대로 사람을 내쫓을 리가 없었다.

보안 요원과 청소부까지 모여있는 걸 보니 그녀를 쫓아내는 일이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심유진은 호텔을 통틀어 권력 있고 고객을 쫓아낼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총지배인을 제외하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막 총지배인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으려고 할 때 복도 끝 쪽에 있는 방 문이 열렸다.

여형민이 잠옷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

그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주위로 허태준과 비슷한 싸늘한 기운이 느껴겼다. 아침에 친절하기 그지없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그의 휴식을 방해한 줄 알고 황급히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여형민 씨. 현재 이쪽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소란스럽게 했다면 저희가 다른 방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

여형민이 손을 내젓더니 그녀를 향해 씩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심유진이 당황했다.

이게 괜찮으면 그는 도대체 왜 저렇게 저기압인 거지?

여형민은 곧바로 서우연의 앞으로 다가갔다.

서우연은 그를 알고 있는 듯했다.

“여, 여 변호사님?”

이전에 보였던 오만방자함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서우연 씨.”

그녀를 대하는 여형민의 태도는 심유진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말투도 각박하기 그지없었다.

“당신한테 퇴실을 요구한 건 허 대표님의 뜻이었습니다. 원인은……”

그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당신이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우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얼굴에 남아있던 핏기가 점점 가시는 것 같았다.

여형민이 말을 보충했다.

“일을 크게 만들어 우스운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퇴실하세요.”

서우연이 입술을 깨물더니 몇 초간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 두 명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그녀는 쓰고 있던 캡 모자를 푹 눌러썼다. 알이 큰 선글라스와 마스크가 그녀의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한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서둘러 앞으로 걸었다. 그녀의 매니저들이 각각 트렁크 하나씩 끌고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임무를 마치자 보안 요원들은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고 청소부들이 남아 서우연의 방을 청소했다.

이제 복도에는 심유진과 여형민 두 사람만 남아있었다.

“휴가 아니었어요?”

여형민이 심유진에게 물었다.

심유진은 더 이상 그가 어떻게 그녀의 휴가를 알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그한테 달려가 묻고 싶었던 일을 물었다.

“지금 시간 돼요? 당신을 제 변호사로 고용하고 싶어요.”

여형민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가 답했다.

**

심유진은 여형민을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형민은 심유진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하고 물었다.

“물 마실래요?”

심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됐습니다.”

여형민은 옆에 놓인 일인용 소파에 앉았다.

“이혼하시려고요?”

그가 물었다.

일전에 그는 자신을 “이혼 전문 변호사”라고 소개했었다. 때문에 심유진의 목적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다.

“네.”

마치 만 천하에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것처럼 심유진은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허리를 꼿꼿이 폈다. 그리고 다리 위에 올려진 두 손을 꽉 쥐었다.

여형민은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전문가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물을뿐이었다.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는 협상을 마치셨나요?”

심유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협상이 잘되지 않아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여형민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당신의 전 남편은 어떻게 나눌 생각이던가요?”

심유진은 이혼 협의서의 내용을 대체적으로 한번 알려줬다.

여형민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그게 다예요? 집은요? 나누지 않나요?”

“바로 그게 문제에요.”

집이라는 말에 심유진이 더욱 분노했다. 그녀는 애써 화를 참고 있었다. 어찌나 참았던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이 손톱 모양으로 움푹 패어 들어갈 정도로.

“네?”

여형민이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은 결혼 후에 산 집이에요. 계약금도 제가 물었고 대출도 제가 갚고 있었어요. 하지만 집문서에는 저와 전 남편 두 사람의 공동 명의였죠.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전, 제 전 남편이 제 사인과 지장이 찍힌 《주택 증여 계약서》를 꺼내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고는 제가 그 집을 자기한테 증여했대요. 거기다 이미 명의 이전을 마치고 본인 혼자만의 집으로 집문서를 고쳤더라고요.”

여형민이 눈살을 찌푸렸다.

“계약서의 서명은 본인이 직접 사인한 건가요?”

그가 물었다.

심유진이 답했다.

“확실히 제 필체가 맞았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계약서에 사인을 한 기억이 없어요.”

여형민이 잠깐 침묵했다.

“우선 필적 감정을 해봐도 됩니다. 그래서 진짜 본인이 사인한 게 아니면 그나마 쉬운데, 만약 정말로 직접 사인한 거라면…… 매니저님 본인은 그 계약서에 대해 아무런 인지를 못 하고 있었다고 해도, 전 남편이 매니저님한테 사기를 쳤다는 증거를 내놓지 않는 이상 그 계약서는 법률적 효력을 가지게 될 겁니다.”

심유진은 마치 커다란 구렁텅이에 빠진 것처럼 아무런 희망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 계약서를 언제 사인한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고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린 다른 방면으로 접근할 수도 있거든요.”

그녀의 기분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낀 여형민이 위로의 뜻으로 미소 지었다.

“그 계약서가 진짜든 가짜든, 그가 명의 이전을 한 절차는 분명 불법적인 루트를 통했을 겁니다. 저희는 그쪽으로 파고들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아마 뒷거래를 했던 사람들을 엮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매니저님의 전 남편을 문제 삼을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생기게 되죠. 그때부터는 저희가 손을 쓸 필요도 없을 겁니다.”

그건 좋은 방법이자 현재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심유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들까지 엮어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녀는 조건웅이 잘 지내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신과 여형민의 안전을 포기하면서까지 뭔가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걱정 마세요.”

여형민이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심지어 약간 자랑스럽다는 듯이 턱을 치켜올리기까지 했다.

“그 사람들은 저를 건드릴 수 없을 테니까요.”

심유진은 그에 대한 신임이 더욱 높아졌다.

“이 일은 저한테 맡기시고 매니저님은 아무 걱정 말고 본인의 일을 하시면 됩니다.”

여형민이 말했다.

이렇게 든든한 방패가 생기자 심유진은 확실히 많이 안심되었다. 마음이 안정되자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생겼다. 예를 들면 가십거리 같은 것들을.

“허 대표님은 왜 서우연 씨를 로열에서 쫓아냈나요?”

서우연은 인기 있는 연예인이었다. 그런 그녀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광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공개적으로 로열 호텔을 폄하하면 호텔 투숙객이 적어지는 건 물론이고 이미지도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일부러 와서 소란을 일으킬 사람들까지 수두룩하게 생길지도 몰랐다.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결코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

여형민이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그 여자 간땡이가 부어오르다 못해 태준이의 술에 약을 타기까지 했죠. 그 틈을 타서 자신이 그를 침대 위로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망상을 하면서 말입니다…… 나 참 그녀의 용기에 감탄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허태준에게 약을 탄 사람이 서우연이었다니!

이 사실은 심유진을 충분히 놀라게 했다.

“서우연이…… 다른 사람의 술에 약까지 탈 필요가 있었을까요?”

서우연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남자들이라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심유진은 그녀가 이런 일로 자신의 몸값을 깎아내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가장 그럴듯한 이유라면……

“혹시 허 대표님……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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