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여형민이 교활하게 씩 웃으며 허태준 쪽을 힐끗 보았다.“여기 있는 허 대표와 잘 지내봐요. 허 대표한테 뒤에서 그 인간들이 골탕 먹게 힘 좀 써달라고 해요.”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하늘 높이 치솟던 심유진의 기대가 바늘에 콕 찍힌 듯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그건……”그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고고하게 있는 허태준을 몰래 힐끔거렸다.“역시 허 대표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죠.”그때 허태준이 입을 열었다.“왜? 나 같은 건 쓸모없나?”그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심유진이 서둘러 해명했다.“절대 아닙니다. 공사 다망한 허 대표님한테 어떻게 이런 작은 일로 폐를 끼치겠어요? 더군다나 저와 대표님은 안지도 며칠 안 됐고……”그녀는 방금 자신이 말한 부분 어디에서 허태준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다고.”허태준이 한 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졌다.“그렇게 작은 일이 나한테 폐를 끼칠 수나 있겠어? 하지만……”갑자기 그가 화제를 돌렸다.“어제 심 매니저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응당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당신이 한번 말해 봐.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괜찮습니다.”심유진이 주저 않고 그를 거절했다.“대표님께서는 오늘 아침에도 이미 저를 크게 도우셨습니다. 그걸로 계산 끝내죠. 이제 서로 빚진 건 없습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잘 생각해 봐 심 매니저. 이런 기회는 다음에 오지 않아.”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심유진이 답했다.“충분히 생각해 봤습니다.”“그래.”허태준이 그녀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옮기고 와인잔을 들었다.그가 살짝 고개를 젖히자 검붉은 색 액체가 잔을 타고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꿀꺽.그의 목젖이 꿀렁거렸다.심유진은 그저 생각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허태준의 완벽한 옆선과 무심히 흘러나오는 퇴폐적인 섹시미에 눈을 떼지 못했다.그녀는 왠지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잠에서 깬 심유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당황한 상태에서도 그곳이 어딘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지난번 그녀가 “운 좋게” 하룻밤 묵었던 8888호 방이었다.충격과 공포에 쏟아지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심유진이 이불을 슬쩍 들어보았다.이불 아래 있는 자신의 몸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만큼 처참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어제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은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호텔 VIP 고객을 위해 준비된 실크 가운이 걸쳐져 있었다.목 위로 두텁게 몇 번이나 덧발랐던 화장도 사라지고 그 대신 얼룩덜룩한 검붉은 색 키스마크가 남아있었다.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감히 기억을 찾을 용기도 없었다.2미터 침대에 현재 그녀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도 정갈하게 침대 머리에 놓여 있었다. 방금 그녀가 어지럽힌 이불을 제외하고 주름 하나 없을 정도였다.심유진은 허태준이 잠을 자고 깨나서 나간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자질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희망 대로 후자가 맞았으면 좋겠지만. 욕실 문은 열려있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빨래 바구니에는 옷이 한가득 담겨있었다.위에는 허태준의 옷이 있었고 아래에는 그녀의 옷이 깔려있었다.두 사람의 옷이 한데 엉켜 어쩐지 야릇한 느낌을 주었다.심유진은 곧바로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그녀는 간단히 씻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허태준의 옷을 입을 생각이었다.그녀가 막 옷장을 열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방 문이 열렸다.깜짝 놀란 심유진이 옷장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커다란 소리와 함께 옷장 문이 몇 번이나 열렸다 닫았다 하더니 겨우 닫혔다.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허태준이었다.그는 이번에는 간단한 캐주얼 차림이었고 머리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져있었다.심유진이 침대 옆에 서있는 모습을 본 그는 약간 놀랐지만 그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걸로 표현했다.“깼으면 옷 갈아입어.”그가 손에 들고 있
이혼에 관한 일은 전부 여형민한테 맡기니 당사자인 심유진은 오히려 너무나 한가할 정도였다.휴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아있었다. 심유진은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로열 근처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알아봤다.로열 호텔은 대구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에 있었다. 그 주위에는 온통 몇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 단지뿐이었다. 단지 내에 빈집이 매우 적었는데 있다고 해도 팔지는 않았다.결국 그녀는 차선택으로 세 개 정거장 이내거나 막히지 않는 상황에서 삼십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범위를 한정했다.중개인이 그녀를 데리고 하루 종일 다니며 여러 집을 보여줬지만 주변이 시끄럽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단지뿐이었다.결과적으로 그녀의 마음에 드는 집은 찾지 못했다.심유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가 막 침대에 누우려는데 조건웅 동생 조건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다짜고짜 자기 용건을 말했다.“나 다음 주에 아름이랑 대구에 갈 거니까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해 줘요.”조건이는 경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소아름은 그와 교제한지 2년이 되는 여자친구였다.심유진은 결혼식 그리고 이번 년 설에 조건이를 몇 번 본 게 다였기에 친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소아름은 본적도 없었다. 그저 조 씨 부모한테서 그녀가 경주 어디 사장님의 외동딸이라는 말만 들었었다.때문에 그녀는 조건이의 다짜고짜 한 “명령”에 얼떨떨하기만 했다.이런 일은 그녀를 찾을 게 아니지 않나?“네 형한테 예약해 달라고 해.”보아하니 조 씨 집안에서는 아직 그에게 그녀와 조건웅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또 다른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 역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조건이가 화를 내는 게 아닌가.“우리 형이 얼마나 바쁜데요. 어디 그런 걸 예약할 시간이 있다고 그래요!”그의 말투가 거칠었다.“형수님이 되서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그리고 형수님 로열 호텔에서 일하잖아요? 프런트
여형민은 업계에서 꽤나 이름난 변호사였다. 지난 몇 년간은 전문적으로 돈 많은 부자들의 이혼 전문 변호를 맡으며 변호 한 번에 2억 이상씩 받았었다. 거기다 CY 그룹 주주라는 신분까지 있었기에 대구에 집을 사는 건 그에게 식은 죽 먹기였다.“마침 저한테 빈집이 있거든요. 바로 이 근처에 있는 ‘리친시아’예요.”‘리친시아’는 대구에서 탑 급에 속하는 고급 단지 중 하나였는데 그곳을 살 수 있을 정도면 어마어마한 부자여야 했다.‘리친시아’는 로열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주택가였고 주변에는 모든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다.“정말로 제게 임대해 주시는 거예요?”심유진은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물론이죠.”여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 장난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임대하실 생각 있으시면 지금 저희랑 집 보러 가도 돼요.”“좋아요!”심유진이 바로 답했다.호텔 입구에는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허태준과 여형민이 다가가자 운전석에서 누군가가 내리더니 그들의 짐을 트렁크에 실어주었다.여형민이 심유진 보다 한발 앞서서 부 좌석의 문을 열었다.“제가 여기에 앉는 걸 좋아하거든요.”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심유진이 바로 자리를 내주었다.“타세요.”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사이에 허태준은 이미 차에 앉아있었다.그는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 싸늘한 음성이 심유진의 귓가에 똑똑히 들려왔다.“빨리.”심유진이 서둘러 뒷좌석에 올라탔다.허태준은 뒷좌석의 중간쯤에 앉아있었는데 혼자서 두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그의 몸에 닿지 않기 위해 심유진은 차 문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그녀의 그런 노력에도 그의 얼굴은 무서울 만큼 굳어있었다.심유진은 혹시 그의 화를 돋우기라도 할까 두려워 허리를 곧게 펴고 숨도 큰 소리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로열 호텔에서 리친시아까지 차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기에 나름 견딜만했다.차가 한 건물 아래에 멈춰 섰다.“여기에요.”여형민이 먼저 내리고 손으로 건
심유진과 허태준은 함께 아래로 내려갔다.그는 로열 호텔에 두고 온 물건이 있어 가지러 가야 한다고 했다.다리가 긴 편인 그는 보폭도 커서 그녀가 두 걸음 걸어야 그의 한 걸음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결국 심유진은 거의 뛰다시피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굽이 낮은 구두를 신긴 했지만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에 발도 아프고 다리 근육도 점점 저려왔다.그때 그녀의 종아리에서 강렬한 통증이 일었다. 심유진은 갑작스러운 고통에 이를 악물고 다급히 허리를 숙여 다리를 잡았다.허태준은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자 이상을 감지했다.그가 몸을 돌리자 그와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심유진이 이상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이야?”비록 심유진은 이미 그의 앞에서 여러 번 망신을 당했지만 결국 다시 또 얼굴이 화끈거렸다.“저……”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애써 자신의 얼굴을 어둠에 감췄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낮을 수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다리에 쥐가 났어요.”허태준은 그녀의 말을 똑똑히 알아들었다.그가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큰 손으로 그녀의 종아리를 잡았다.“이쪽 다리 맞아?”그의 말투는 평범했고 손으로 그녀의 종아리를 주무르는 동작에도 사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심유진은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그녀가 긴장하며 그의 손에서 다리를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움직이자마자 곧바로 다시 그의 손에 붙들렸다.“움직이지 마.”허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눈빛으로 그녀를 꾸짖고 있었다.심유진이 입술을 달싹이며 애써 미소 지었다.“곧 괜찮아질 거예요. 주무르실 필요 없어요.”허태준은 그녀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다리를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다른 한 손으로 천천히 쥐가 난 곳을 주물렀다.길 양쪽에 있는 가로등은 이미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스레한 가로등 불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는데 심유진은 그 모습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은 성공적으로 조건웅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조건웅은 한참이 지나서야 파래진 얼굴로 겨우 한 마디 했다.“뻔뻔한 놈.”허태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34년을 살면서 그보다 더한 말을 훨씬 많이 들어왔다. “뻔뻔한 놈” 같은 건 전혀 그에게 대미지를 주지 못했다.“순진하면 사는 데 도움이 되나?”그가 반대로 조건웅에게 물었다.“뻔뻔해야 더 잘 산다는 도리는 나보다 거기 두 분이 더 잘 알 것 같은데.”그의 말에서 선명한 비꼼이 느껴졌다. 조건웅이 그걸 놓질 리가 없었다.“너!”조건웅이 발끈하더니 우정아를 놓고 그에게 달려들었다.그가 주먹을 꽉 쥔 채 허태준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불과 몇 센티를 앞에 두고 오히려 허태준한테 저지당했다.“주제넘네.”허태준이 코웃음을 치더니 조건웅의 손목을 꺾어 그의 몸을 반대로 휙 돌렸다.그가 조건웅의 뒷무릎을 발로 찼다.“퍽”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조건웅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우정아가 손으로 입을 가리더니 처량한 비명을 내질렀다.“여기 사람 때려요. 살려주세요!”그녀의 날카롭고도 높은 비명 소리가 고요한 밤거리에 울려 퍼지며 유달리 귀를 찔렀다.허태준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협박했다.“닥쳐! 아니면 너도 같이 맞을 줄 알아!”우정아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감히 당신이!”그녀가 애써 독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지만 눈에 담긴 공포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내가 감히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따 보면 알게 되겠지.”허태준이 소름 끼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더니 조건웅의 머리채를 잡고 그의 종아리에 발을 디뎠다.그가 발끝에 힘을 실자 조건웅이 돼지 멱따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다.“정아야 경찰 불러!”그가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우정아가 번뜩 정신을 차리더니 손을 덜덜 떨며 가방을 한참이나 뒤적거려 겨우 휴대폰을 꺼냈다.그러나 그녀가 잠금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심유진이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렸다.“내 휴대폰!”우정아가 절망하며 소
조건웅은 절대 이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심유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의 통화를 마친 뒤, 여형민과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리친시아에 입주할 때까지 그와 그의 가족들은 한 번도 그녀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하지만 그래도 절대 방심할 순 없었다. 가까운 곳에 이사를 하고 출퇴근할 때에는 어떻게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다니려고 노력했다.이틀 후, 총지배인이 그녀를 사무실로 호출했다.총지배인의 표정은 아주 심각해 보였다.심유진은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실수할 만한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지 않은 것 같다.그때,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린 총지배인이 입을 열었다.“심유진 씨, YT 그룹의 우원정 대표와 아는 사이에요?”“YT 그룹 말씀이세요?”심유진은 몸에 있는 근육과 신경이 동시에 마비가 되는 느낌을 받았고,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우원정, 전 국민들조차 생소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70년대부터 부동산과 재개발을 통해 회사를 세우고 규모가 커짐에 따라 각 분야에 손을 뻗어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심유진이 경주에서 대구로 올 수 있었던 제일 큰 원인은 바로 YT 그룹... 아니, YT 그룹의 고위 임원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YT 그룹에서 있었던 불쾌한 기억들은 아직도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그런 YT 그룹과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지만 회사의 이름만 들어도 몸이 얼어붙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총지배인이 방금 말한 우원정은 그녀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우 씨는 우리나라에서 희귀한 성이라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모릅니다.”“무슨 일 있으세요?”그녀의 마음속에 적색 등이 깜빡거렸다.“진짜 모르는 사이 맞아요?”총지배인은 마치 심문하는 듯한 눈길로 캐물었다. 그는 눈빛 하나 만으로 그녀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어젯밤에 저한테 전화해서 아무 이유나 대고 심유진 씨를 자르라는 거죠?”총지배인은 객실 매니저
드디어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심유진은 그날 밤 오래간만에 달콤한 잠을 이뤘다.아침 회의를 마치고 총지배인은 그녀를 따로 불렀다.지금 당장 짐을 싸라고 할 줄 알았으나 총지배인의 입에서는 완전히 예상 밖의 말이 흘러나왔다.“유진 씨, 그냥 출근해도 돼요.”“네?”심유진은 그 결과가 마냥 기쁘지 않았고 갑자기 계속 출근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조건웅과 우정아가 절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우원정 대표가 총지배인에게 설득당했을 리가 없다.“허 대표님한테 말씀드렸더니 상관하지 말고 유진 씨 그냥 출근시키라고 했어.”“허 대표님? 허태준?”총지배인의 입에서 예상외의 인물이 나왔다.그는 서둘러 서유진의 입을 틀어막았다.“내 앞에서 허 대표님 이름 함부로 불러도 되는데 밖에 나가서 절대 그러면 안 돼요! 만약 허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당장 짐을 싸고 나가야 할지도 몰라요! 그땐 나도 유진 씨 편 못 들어요!”심유진은 속으로 YT 그룹의 인물관계도를 그렸다.‘그러니까 허태준이 우원정 대표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말이네?’‘허태준은 CY 그룹의 대표이자 YT 그룹의 고위 임원이란 말이겠지? 사람이 어떻게 두 회사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 쉬는 시간은 따로 있을까?’심유진은 불현듯 이런 고민을 하는 자신을 비웃고 싶었다.‘나랑 뭔 상관이지? 바쁘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잖아.’“아니요, 허 대표님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요.”“총지배인님 밑에서 이렇게 잘 배웠는데 설마 일자리 하나 못 찾겠어요?”“하지만 계속 호텔 매니저 일을 하고 싶다면 로열 호텔보다 더 좋은 호텔은 다시 찾지 못할 거야.”총지배인의 말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 흔들었다.그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에 있는 7성급 호텔 두 곳은 모두 로열 호텔이기 때문이다.근무 환경이나, 급여 및 복리후생, 미래의 발전 가능성도 모두 로열 호텔보다 더 좋은 호텔이 없기 때문이다.이곳을 나가면 더 좋은 직장을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