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의 목소리가 로비에 울리자 모든 손님들의 주의를 끌었다.“내가 어쩌다 한번 여자친구와 함께 대구에 왔는데, 호텔 비용도 못해줘? 그 돈 얼마나 한다고? 월급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도 시동생한테 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그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심유진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었다.로열 스위트룸 하룻밤의 가격은 100만 원, 조건이는 모두 이틀 밤을 예약했으니 200만 원이다.200만 원은 심유진 월급의 반이였고, 눈 깜빡하지 않고 펑펑 쓸 수 있는 금액도 아니었다.조건이가 형수 대접을 해주면서 태도가 좋았다면 눈 한번 딱 감고 호텔 비용을 내줬을 것이다. 조건이의 막무가내인 태도를 보고 심유진은 조금 후회를 했다.처음부터 너의 형과 이혼을 했으니 이제 찾아오지 말라고 말했다면 이런 곤란한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 말을 하려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호텔 비용도 결제하지 않았다. 이제 동료 직원들한테 쪼잔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그때, 한껏 꾸민 모습을 하고 트렁크 두 개를 손에 쥔 여자가 나타났다.그 여자는 조건이 옆에 다가와 심유진과 데스크 직원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아직도 체크인을 못했어?”여자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조건이를 쳐다보며 말했다.“왜 이렇게 오래 결려? 형수가 이곳에 출근한다고 하지 않았어? 미리 방도 예약해 주지 않았던 거야?”이 젊은 여자는 아마 조건이의 여자친구일 것이다.‘역시, 잘 어울리는 바퀴벌레 한 쌍이야. 싹수없는 것도 꼭 닮았네.’젊은 여자의 말에 조건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순한 표정으로 변했다.그가 여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어르고 달래며 여자의 기분을 풀어주었다.심유진은 조건이가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비로소 오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방은 마련되어 있는데 돈을 먼저 내야 한다고...”조건이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그럼 돈을 주면 되잖아.”그러자 조
“매니저님, 긴급 상황입니다. 빨리 직접 오셔서 처리해 주세요.”이현의 목소리가 아주 다급해 보이자 심유진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호텔로 향했다.이현은 이미 주차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오자 바로 운전석 문을 열어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에요?”심유진은 차에서 미처 내리지도 못하고 물었다.“어젯밤에 2510호에 입주한 손님께서 한 시간 전에 저희 안내 데스크에 전화를 걸어와 목걸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희 청소 직원이 가져간 거 아니냐고 해서 제가 아주머니들한테 물어보니 청소할 때 목걸이는 아예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지금 손님께서 경찰에 신고까지 한 상황이고 매니저님보다 일찍 도착한 경찰관들이 지금 호텔방에서 상황을 알아보고 있습니다.”이현은 심유진의 바로 뒤에 붙어 걸으며 상황을 설명했다.“2510호?”심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2510호는 조건이와 그의 여자친구가 묵고 있는 방이다.25층에 도착한 심유진은 바로 두 사람을 발견했다.3명의 경찰관과 호텔 객실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 2명과 함께 있었다.심유진이 방 문을 노크하자 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그녀는 먼저 자기소개를 했다.“죄송합니다 여러분. 저는 로열 호텔의 매니저 심유진입니다.”어젯밤 안내 데스크에서 심유진을 만난 적 있는 소아름은 바로 그녀를 기억해 냈다.“로열 호텔 매니저? 조건이의 형수?”소아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더니 바로 씩 웃음을 지었다.“잘 됐네요.”그녀가 호텔 청소 아주머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몸 수색을 해봐야겠어요. 사물함도 같이 뒤져보면 더 좋고요.”“네, 가능합니다.”소아름의 제안에 심유진은 바로 동의했다.“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그녀는 바로 동의를 했으나 조건이 있다고 말했다.“무슨 조건이죠?”“몸 수색을 하고 사물함도 뒤졌는데 손님 목걸이를 찾지 못했다면 저희 직원들한테 사과하세요.”객실에 꼿꼿한 자세로 서있는 심유진
조건이의 이런 반응을 심유진은 미리 예상하고 있어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너희들의 요구를 우린 충분히 만족시켰어. 목걸이는 우리 청소 직원이 훔친 게 아니야. 그러니까 모든 비난은 모욕과 비방이 되었지. 우리 호텔의 명성과 우리 직원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니 우린 너희 두 사람을 모욕죄로 기소할 거야.”그녀의 말에 소아름과 조건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러자 심유진은 바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 너희들이 그렇게 악질 고객이 아니라 교도소까지는 아니고 그냥 배상 정도만 하게 될 거야.”조건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지고 이를 갈았다.갑자기 그가 탁자 위에 놓인 유리로 만들어진 재떨이를 심유진한테 집어던졌고 심유진은 날아오는 재떨이에 오른쪽 어깨가 부딪쳤다.“아!”어깨에서 극심한 통증이 전해지자 그녀는 숨을 한 모금 들이켰다.“매니저님!”이현과 청소 아주머니가 서둘러 달려와 그녀의 어깨를 살폈다.“매니저님, 많이 다치셨어요? 빨리 병원에 가요!”유리로 만들어진 재떨이는 아무 살점이 없는 심유진의 어깨에 부딪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뼈가 고스란히 감당했다.심하게 다쳤는지 뼈가 부러졌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오른쪽 어깨를 조금도 들지 못할 뿐이다.조건이의 잘못을 따질 시간조차 없었던 그들은 바로 심유진을 부축하고 병원으로 향했다.“빨리, 빨리 병원으로 가요!”응급실에 도착하자 의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라고 했다.토요일 저녁의 응급실은 여전히 사람이 많다.엑스레이 대기실에서 심유진은 30분을 기다려야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었고 모든 검사를 마치고 다시 응급실에 돌아온 심유진은 눈이 너무 내려왔다.의사는 심유진의 엑스레이를 보며 그녀의 오른쪽 어깨를 가리켰다.“뼈가 조금 부러졌어요. 간단하게 고정할게요.”의사는 심유진의 어깨를 고정하는 기기를 가져와 당부했다.“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최대한 오른쪽 어깨를 쓰지 마세요. 잠을 잘 때도 각별히 조심해야 돼요.”너무 졸려...심유진은 어깨에 전해지
“매일 배달 음식이나 시켜 먹는 거야?”야단을 치는 듯한 그의 말투에 심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어깨가 불편해서 어쩔 수 없이 배달시켜 먹는 거예요.”“어깨를 다쳤어?”허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의 어깨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그녀가 입고 있는 겉옷을 통해 그녀의 어깨를 투시할 수 있는 사람처럼.“오른쪽 어깨 뼈가 조금 다쳤어요.”심유진은 자신의 다친 어깨를 조심스럽게 가리켰다.“괜찮아요. 며칠 쉬면 괜찮아진다고 했어요.”“어쩌다 다쳤어요?”여형민도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평소의 부드러운 모습인 그와 전혀 상반되는 표정이었다.심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거짓말이 튀어나왔다.“벽에 부딪쳤어요.”하지만 여형민은 그녀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것 같았다.“진짜 혼자 부딪쳤어요? 아니면 전 남편 가족들과 상관있는 일이에요?”심유진은 그의 물음에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자신을 수상하게 쳐다보는 눈빛과 심문하듯이 몰아붙이는 말투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가 이미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사실대로 말해요. 진짜 전 남편 가족이 그랬다면 폭행으로 증거를 남겨 배상금을 물게 할 거예요.”조건이는 조건웅의 친동생이 맞지만, 이번 일은 조건웅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저도 더 많은 배상금을 받고 싶지만 아쉽게도 저의 부주의로 다쳤어요.”심유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그래요.” 여형민은 더 캐묻지 않고 심유진의 손에 쥐어진 배달 주머니를 쳐다보았다.“매일 배달 음식을 먹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저와 태준이가 집에 아주머니를 고용했어요. 매일 저녁마다 밥을 차리고 돌아가는데 저녁이라도 같이 먹는 건 어때요?”심유진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매일 기름진 음식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음식들을 먹으니 집밥이 사무치게 그리웠다.하지만 이렇게 높으신 분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사레에 들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밀려왔다.“아니요. 이제 거의 괜찮아졌어요. 조금만 더 괜찮아지면 배달음식
병원에서 검사를 마친 심유진은 바로 택시를 타러 길가에 나갔다.병원 앞에 있는 큰 길은 항상 꽉 막힌 상태여서 택시들도 이곳에 잘 오려고 하지 않는다.심유진은 앱으로 겨우 택시를 잡고 조수석의 문을 열려고 할 때,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반대편 택시 뒷자리 문을 열었다.“빨리빨리! 여기야! 빨리 타!”그 사람은 목이 찢어지게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심유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 뒷좌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그 사람은 그녀의 전 시아버지이자 조건웅의 아버지였다!시아버지가 아직 대구에 남아 있다면 전 시어머니도...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조건웅의 어머니가 한 손에 짐을 챙겨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우정아를 부축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우정아는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짜증을 내며 말했다.“좀 천천히 가요! 아직 몸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아 빨리 걸으면 아픈 거 몰라요?”그러자 조건웅의 어머니는 바로 발걸음을 늦추고 우정아를 돌아보며 사과했다.“미안해! 미안해! 아버지가 재촉하시잖아! 나도 마음이 급해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졌어. 아프면 천천히 걸어도 돼. 택시도 이미 저기서 기다리고 있으니 천천히 가도 돼.”그 모습을 본 심유진은 마음이 씁쓸했다.조건웅의 어머니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조 씨 가문에서 그의 어머니는 절대적인 권력자였다.그들은 한순간도 심유진을 자신들의 며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가 조건웅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고 말하며 항상 그녀를 비하했다.조건웅이 그녀를 처음 집에 데려간 날, 그녀는 평소 엄두도 내지 못했던 영양제를 가득 샀다. 결국 조건웅이 부모님은 자신이 사 온 영양제를 다락방에 쑤셔 넣고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하물며, 그녀의 외모부터 지적하기 시작하더니 가정 환경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혀를 끌끌 찼다.그러더니 처음 집에 방문하는 심유진을 흘겨보며 가정부 대하듯이 대했다.손님인 그녀한테 과일을 깎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바닥을 밀고 세탁
심유진의 최대 약점은 바로 마음이 너그러운 것이다.조건웅이 무릎을 꿇고 맹세를 하자 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으면 너무 냉혈인처럼 보일 것 같았다.사실, 그녀도 그와 헤어지고 너무 가슴이 아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두 사람은 결국 결혼식까지 올렸으며 그녀가 모아 놓은 돈으로 대구에 집을 마련했다.조건웅의 부모님이 같이 지내자고 제안을 했으나 조건웅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부모님은 가문에 여자가 잘못 들어와 자신들의 아들을 나쁜 길로 인도했다고 소리를 질렀으며 결혼 후, 심유진이 계속하여 임신을 하지 못하자 조건웅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의사한테 병을 보이자고 말했다. 그 제안마저 거절당하자 조건웅의 부모님은 두 사람을 이혼하게 만들고 조건웅을 다른 여자와 결혼시키려는 마음이 더욱 커져갔다.그날, 조건웅은 자신의 부모님에게 버럭 화를 내며 다시 이런 일로 심유진한테 압력을 넣으면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그 모습을 본 심유진은 조건웅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그와 우정아가 이미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너, 이 미친년이 왜 여기에 있어? 아직도 우리 며느리 괴롭히려고?”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목소리가 심유진을 오랜 추억에서 깨웠다.택시 뒷자리에 앉은 조건웅의 아버지가 머리를 내밀고 그녀를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쳐다보고 있었다.심유진은 정신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했다.“이 택시 제가 불렀어요. 내려주세요.”“어떻게 네가 부른 택시야? 택시에 너의 이름이라도 적혀 있어?”조건웅의 아버지는 택시에 앉아 마구 행패를 부렸다.조건웅의 아버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심유진은 바로 택시 운전사를 보며 말했다.“기사님, 제가 택시를 앱으로 불렀어요.”택시 운전사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었다.“아저씨, 이 아가씨가 부른 택시 맞아요. 그러니까 얼른 내리세요.”“내가 왜 이 택시에 못 앉아?”조건웅의 아버지는 두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그 모습이 마
움직이지 못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거리에 주저앉은 심유진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차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머릿속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말이 울리고 있지만 그녀의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끼익!!!!!!!!!"고막이 찢어질듯한 브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길가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막으며 심유진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몇 초 ... 몇 분... 십 분... 사람들의 목소리와 도시의 소음이 그녀의 귀에 조금씩 들려왔다.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차에 치여 날아가지 않았다. 위험한 순간에 차는 그녀의 바로 코앞에서 멈춰 다행히 큰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이 사고로 지나가는 차들도 모두 속도를 줄이고 길가에 있던 사람들은 심유진을 에워쌌다."아가씨, 괜찮아요?""일어날 수 있겠어요?""아가씨, 저 보여요?"“아가씨, 어디 다친 곳은 없어요?”......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걱정하며 물었다.심유진은 눈을 깜박거렸다. 충격으로 인해 멈췄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그때, 한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심유진은 남자의 손을 잡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감사합니다."겨우 감사 인사를 전한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아픈 건지 놀란 건지 목소리가 떨리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녀를 향해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빨리 병원에 갑시다. 모두 저의 책임이니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남자의 진솔한 태도에 심유진은 멍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쳐다보며 물었다."왜 당신이 책임을 지는 거죠?"그러자 남자는 몸을 돌려 심유진이 주저앉았던 자리에 급하게 멈춰 선 자신의 은색 고급 외제차를 가리키며 말했다."아가씨, 하마터면 제 차에 치일 뻔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 거예요?"심유진은 두 눈을 깜박이며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에게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차만 확인하고 운
"네, 괜찮아요."심유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했다."어깨에 붕대는..."남자는 그녀의 부풀어 오른 오른쪽 어깨를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이건 일주일 전에 이미 다친 상처에요. 상처가 다시 벌어져서 붕대를 새로 감았어요. 차에 치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다칠 수 있겠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심유진의 설명에도 남자의 굳은 얼굴은 풀어지지 않았다."약은 처방했나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남자는 심유진을 걱정하며 물었지만, 심유진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러면 걸을 수 있겠어요? 제가 부축해 줄까요? 지금 밖에 차가 심하게 막히고 있어요. 택시 잡기 힘들 것 같으니까 제가 집으로 데려다줄게요."남자의 과분한 친절에 심유진은 남자를 경계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아니요. 친구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하면 돼요." 그녀는 아무 핑계나 댔다.심유진이 강하게 경계하며 말하자 남자는 재빨리 눈치채고 해명에 나섰다."오해하지 마세요. 저 다른 의도는 없어요. 아가씨 혼자 불편할까 봐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친구가 데리러 올 때까지 같이 있어 드릴게요."'휴... 어떡하지?'심유진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를 데리러 올 친구는 없었다. 심유진과 제일 친한 친구 하은설은 2년 전 해외연수를 떠났다.심지어 그녀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심유진은 한참 고민을 하다 여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여형민은 새 로펌을 설립하는 단계라고 했으며 아직 정식으로 개업하지 않고 수중에 새로운 사건을 맡지 않아 매우 한가하다고 했다. 게다가 CY 그룹은 병원에서 두 정거장 건너에 있어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유진 매니저님?" 여형민은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에요?"심유진은 머뭇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 변호사님 혹시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S 대학병원에 와주실 수 있어요?"여형민의 얼굴에 남았던 웃음기가 바로 사라졌다."S 대학병원에는 어쩐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