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준은 정재하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네."허태준은 짧은 대답만 하고 심유진한테 눈길을 돌렸다.하지만 허태준의 쌀쌀맞은 태도에도 정재하는 계속하여 말했다."여기서 허태준 대표님을 만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허 태표님은 저의 오래된 우상입니다."허태준은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심유진을 쳐다보며 재촉했다."안 갈 거야?"그가 몸을 돌리자 심유진은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병원 밖을 나서려고 하자 정재하도 빠른 걸음으로 심유진의 곁에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물었다."허태준 대표님이랑은 무슨 사이에요? 혹시 친구세요?"친구?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친구가 데리러 온다는 말을 했으니 빼도 박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형민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왜 허태준이 나타났을까? 허태준에게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는 심유진은 어쩔 바를 몰라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정재하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구세주라도 만난 듯 심유진의 손을 꽉 쥐었다."저도 허태준 대표님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다리 좀 놓아주실 수 있으세요? 제발요. 거절은 사양할게요.""그건..."심유진은 허태준의 커다란 등을 바라보며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허태준 대표님의 의견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뒤에서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허태준은 바로 자리에 멈춰 섰다.뒤를 돌아본 그는 심유진과 정재하 두 사람이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심유진은 얼굴이 따가운 느낌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허태준의 싸늘한 눈빛은 본 그녀는 몸을 흠칫 떨며 머리를 숙였다.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입꼬리가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어쩐지 심유진은 그의 기분이 언짢은 느낌을 받았다.아무 영문도 모르는 정재하는 입을 헤 벌리고 그를 향해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허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정재하는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그리
여형민은 심유진을 돌아보며 물었다."방금 부탁을 잊지 말라고 한 거 같은데, 무슨 부탁이에요?""그러니까..."심유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일단, 잠시 비밀이에요.""쳇!"여형민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벌써 다른 사람과 비밀을 주고받는 사이가 된 거예요? 흥! 심유진 씨 너무하네요."'그래서 허태준이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였어.'입술은 삐죽 내밀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멈출 수 없었다.차 키가 없는 허태준은 미리 주차장에 주차된 차를 찾고 그 곁에 가만히 서있었다.여형민이 차 문을 열자 그는 바로 조수석에 앉았다."음? 너 항상 뒷자리에만 앉았잖아? 왜 갑자기 조수석에 앉는 거야?"여형민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두 사람이 함께 이동할 때에도 허태준은 항상 뒷자리만 고집했다.여형민은 그런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나 불만을 말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너 진짜 나를 전용 기사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그런 여형민의 말에도 허태준은 줄곧 뒷자리만 고집하고 조수석에 앉지 않았다.허태준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더러워."그의 말에 여형민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너 조금 전까지 뒷자리에 앉아 병원에 오지 않았어?"심유진은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더러운 건 차가 아니다. 그러면 남은 건 그녀 밖에 없다.비록 매우 상처받는 말이지만 허태준의 결벽증을 알고 있는 심유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차 문을 닫았다.아마 이 세상 사람들 중에 그의 눈에는 더럽지 않은 사람이 몇 명 없을 것이다."유진 매니저님, 어디로 가시나요?"여형민은 차에 시동을 걸며 물었다."집으로 가면 돼요."그의 물음에 심유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여형민은 백미러로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차에 치일 뻔했던 건 어떻게 된 일이에요?"심유진은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고 말을 잘 정리하고 나서 말했다.“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예전 시부모님과 상간녀를 만났어요. 그들과 작은
심유진이 어깨의 상처를 모두 치료하고 다시 호텔에 출근한 것은 2주일 뒤였다.직장 동료들은 그녀의 복귀를 축하해 주기 위해 대구에서 제일 유명한 레스토랑의 VIP 룸을 빌려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룸에는 갖가지 예쁜 풍선들로 장식하고, 2단 케이크도 주문했으며 현수막도 걸었다.‘축! 심유진 매니저님 복귀!’동료들의 착한 마음을 아는 심유진도 기쁜 마음으로 동료들이 건네는 술을 모두 받아 마셨다.결국 얼마 가지 못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이현이 취한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려고 주소를 물었으나 다른 동료들도 그녀의 집 주소를 모른다고 했다. 다른 동료들도 심유진을 깨우며 그녀의 집 주소나 가족 전화번호를 물었으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술에 취해있었다.“어머!”그때, 한 동료가 테이블 위에 포크를 내려놓고 말했다.“저 유진 매니저님 남편 번호를 알아요! 지난번에 유진 매니저 휴대전화 배터리가 없어 저의 휴대전화로 남편한테 전화를 걸어 제가 저장해 두었어요.”“빨리 전화 걸어보세요!”다른 한 동료가 재촉하며 말하자, 곁에 있던 동료가 작은 목소리가 물었다.“심유진 매니저 남편이랑 이혼하지 않았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처음 듣는 소식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심유진을 쳐다보았다.“정말이에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진짜 몰랐어요! 심 매니저 평소와 똑같지 않았어요? 이혼한 사람 같지 않았어요.”“그러니까요! 이혼했다는 소문, 진짜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동료들의 질문 폭격에 심유진의 이혼을 폭로한 사람은 자신도 이 소식의 진실성을 확신하지 못했다.“저도 데스크 직원한테 들었어요. 한 달 전 즘에 심 매니저 시부모님이 호텔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자 심 매니저가 남편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곧 이혼한다고 말했어요.”“심 매니저 같은 와이프를 두고 바람을 피운다고요?”“진짜 얼마나 대단한 여자랑 불륜을 저지르고 있을까요?”“그러니까요. 정말 그 남자 미친 거 아니에
그는 입술을 핥고 조금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주소 찍어주시면 바로 갈게요.”이현은 카메라를 끄고 레스토랑 주소를 메시지로 전송했다.조건웅이 바로 심유진을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이혼 여부를 열렬하게 토론했다.“진짜 이혼한 건 아닌가 봐요!”“심 매니저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 남편이 바람피웠는데 아직도 이혼하지 않고 같이 살고 있다니.”“그럼 어떡해요? 요즘 사회 현상이 딱 이래요. 이혼한 여자는 남자보다 좋은 상대를 만나기 훨씬 바쁘다고 했어요.”“두 사람 아직 아기도 없는데, 차라리 이혼했으면 좋겠어요. 심 매니저님 이혼하면 쫓아다니는 남자들이 엄청 많을 것 같은데요?”“그만해요. 오늘 우리끼리 한 말은 절대 비밀이에요.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회사에 소문나면 진짜 큰일이에요.”이현은 손을 저으며 동료들의 수다를 제지했다.**그 시각, 조건웅은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지난번 샤부샤부 가게에서 사고가 난 후, 우정아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몸조리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조건웅도 우정아가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하며 우정아의 몸조리에 신경을 썼다.두 사람은 각자의 집에서 생활할 때 사이가 아주 좋았다. 다툼도 거의 없었고, 서로의 온기에 취해 현실을 잊었다. 하지만 우정아의 집에서 함께 지낸 이후로 두 사람은 매일 같이 말다툼을 했다.조건웅과 심유진이 함께 생활했을 때, 두 사람은 집안일을 분담하기로 약속하고 가끔 조건웅이 프로젝트에 참석해 집에 빨리 돌아오지 못하는 날에는 심유진이 더 많이 분담하기도 했다.그러나 우정아는 사회 초년생이자 어려서부터 고생은 모르고 지냈다. 온실 속 화초인 그녀는 집안일은 할 줄 모른다고 선전포고를 했다.조건웅이 처음 우정아의 집에 갔던 날, 도둑이 든 줄로만 알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거실 소파에는 그녀의 옷들이 쌓여 있어 소파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입었던 옷 안 입었던 옷, 속옷, 겉옷이 모두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그녀가 즐겨보는 패션
우정아가 퇴원을 한 후, 조건웅은 자신의 부모님을 고향 집으로 모셔가지 않고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러면 부모님도 우정아를 더 많이 신경 쓸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는 매일 퇴근하는 시간이 늦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 모든 업무를 끝내더라도 그는 우정아의 히스테리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 야근도 자발적으로 했다.오늘도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가기 싫은 밤이다.**조건웅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심유진의 직장 동료들은 거의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정신이 말짱한 몇 명만 남아 심유진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조건웅은 자신이 생각이 많았는지 아니면 예민했던 탓인지, 룸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마치 자신을 경멸하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매니저님 데리러 오셨어요? 여기요!”그를 발견한 이현이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심유진을 가리켰다.조건웅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바로 심유진의 상체를 일으켰다.브이넥의 얇은 스웨터를 입고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그녀의 하얀 목이 드러났다.조건웅은 심유진을 빤히 쳐다보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었다.심유진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아름다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그녀와 결혼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녀의 예쁜 얼굴, 그녀의 농염한 몸에 마치 자석이라도 있는 것 마냥 그의 마음을 빼앗았다. 하지만 그녀가 침대에서 하는 행동은 조금도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녀와 잠자리를 하는 날이면, 항상 만족하지 못했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대에서 뜨거운 불나방과 같은 우정아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와 달리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심유진한테서 더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면 우정아의 화려한 말재주와 아양을 떠는 목소리가 생각나, 심유진을 보면 역겨운 마음마저 들었다.조건웅은 가까스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손을 뻗어 심유
조건웅은 우정아와 싸우지 않고 싶지 않았기에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나 아직 회사야. 무슨 용건있어?”“건웅 씨,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죠? 방금 당신 직장동료에게 물어봤는데 한 시간 전에 회사에서 나갔다는데?”“……”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어디에 있는지 당장 사실대로 말하라고! 설마…… 그 여자랑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거라면……”“아니야.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오늘 일이 좀 힘들어서 친구랑 술 한잔 하기로 한것 뿐이야.”“아? 그럼 왜 나한테는 회사라고 거짓말을 한거죠?”우정아는 조건웅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조건웅이 누구겠는가. 심유진 몰래 우정아와 만났던 조건웅 아니겠는가? “내가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다고 하면 네가 괜히 걱정할까봐 그런거야. 넌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임기응변에 능한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정아의 물음에 답했다.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조건웅이 뛰는 놈이면 우정아는 나는 놈이었다.그녀는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하, 그래요? 그럼 같이 술 마신다는 친구 좀 바꿔줘봐요.”조건웅은 예상하지 못한 그녀의 반응에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그는 잠시 후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정아가 너보고 전화 좀 받으래!”3초 후 그는 목소리를 변조해 답했다.“무슨 전화로 보고까지 해?”“에이, 그러지 말고 형님 좀 살려줘라!”“아 싫어! 나 이런거 싫어해.”“미안 정아야. 친구가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전화는 힘들 것 같아.”우정아는 핸드폰 넘어로 들려오는 그의 발연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하…… 조건웅, 넌 지금 나를 심유진 취급 하는 거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지금 그 발연기를 믿을 것 같아?”“누가 연기를 한다고 그래?”“내가 30분 줄테니까 그 시간 안에 내 눈앞에 나
심유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건웅에게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고, 퇴근한 심유진이 아파트 대문을 지나가려던 찰나 어떤 사람이 그녀의 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끽—“그녀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차 헤드라이트에 비친 갸냘픈 두 팔이 뛰어든 사람의 성별을 알려주었다.심유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차를 갓길에 세우고 고개를 돌려 여자가 있던 쪽을 보았다. “어라?”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헛것을 봤나?”그 순간 갑자기 조수석 문을 강하게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잠겨있자 여자는 더욱 흥분한듯 창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문 열어! 문 열라고!” 여자는 목에서 쇳소리가 날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가로등 빛도 어둡고 길게 풀어헤친 여자의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저거 뭐야…… 설마 귀신이야?’심유진은 섬뜩한 여자의 모습에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도대체 누구세요!” 심유진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여자를 보았다.그 여자는 심유진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창문을 더욱 거세게 두드렸다.“문 열라고! 문 열어!”여자가 어찌나 힘이 좋은지 차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심유진은 여자와 말이 통하지 않자 시동을 다시 걸고 이 자리를 뜨려고 했다. 차가 움직이자 밖에 있던 여자는 더욱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끈질기게 그녀의 차를 쫓았다.“문 열어! 문 열라고! 내 말 안 들려?”심유진은 계속해서 따라오는 여자를 무시하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대문이 열리지 않았고,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경비원을 보았다.“죄송합니다. 입주자님, 현재 차 옆에 서계신 여성분이 아파트 주민이 아니셔서 대문을 열 수 없습니다. 문을 열면 뛰어들어갈게 뻔하기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10분 전에 경찰을 불렀으니 금방 도착할 겁니다.”리친시아에는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 프라이버시를
경비원의 완강한 태도에 우정아는 어쩔 수 없이 노선을 틀었다.“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제발 저를 들여보내 주세요! 정말 생사가 걸린 중대한 일이라니까요? 오늘 꼭 삼촌을 만나야 해요. 저 정말 죽어요!”우정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경비원에게 애원했다.경비원은 그런 우정아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규정은 규정이기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우정아는 들고 있던 가방을 경비실에 던져넣더니 경비원에게 다가와 큰 소리로 말했다.“정말 빡빡하게구네! 가방 안에 내 핸드폰, 지갑, 신분증이 다 들어있다고! 됐지? 나 진짜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니까?”경비원은 그녀의 가방을 집어와 다시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죄송하지만, 규정은 어길 수 없습니다.”마침 심유진의 차 뒤로 다른 차가 왔다.“빵빵—”심유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숨만 푹 내쉬었다.심지어 경비원은 우정아에게 붙잡혀서 심유진 뒷차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도 없었다.잠시 후 심유진의 백미러에 한 남자의 모습이 비쳤다.그 남자는 경비실과 심유진의 차 사이에 멈춰 섰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냉담한 목소리에는 짜증이 많이 섞여 있었다.‘저 목소리는……’심유진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허 대표님, 오셨습니까!”경비원은 경직된 표정으로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우정아 역시 허태준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어떻게 당신이?!”“여기서 이렇게 뵙네요."허태준의 입꼬리가 한쪽만 싱긋 올라갔다.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 경비원이 허태준에게 다가가 물었다.“두 분 서로 아는 사이십니까?”“그렇다고 볼 수 있죠.”허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우정아는 이때다 싶어서 허태준의 팔에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다.“여기 허 태표님하고 나하고는 잘 아는 사이라고! 이제 그만하고 대문을 열어주지?”허태준은 우정아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녀를 밀어냈다.경비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보더니 허태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