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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차차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심유진은 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복도에서 벌어진 사고 때문에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었었고 당연히 그중에는 조건웅의 부하들도 있었다.

그들은 조건웅이 우정아를 안고 나가는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도 놀라거나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진즉 조건웅과 우정아의 간통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심유진은 방금 전 자신이 일부러 모든 사람들 앞에서 조건웅과의 애정을 과시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은 속으로 그녀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심유진은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아냈다. 그리고 홀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은 먹칠을 한 듯이 캄캄했다.

손을 뻗어 불을 켰다. 모든 건 그녀가 나가기 전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집안을 맴도는 공기만은 이전과는 다르게 차갑게 얼어붙어있었다.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집안의 모든 값나가는 물건들을 커다란 트렁크 두 개에 가득 채워 담았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는 로열 호텔로 향했다.

그녀는 로열 호텔의 객실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업무상 야간 교대 근무가 잦았기에 호텔에 자신만의 전용 휴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그 방에는 침대 외에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지만 그녀가 새로운 거처를 찾기 전까지 머물 곳으로는 충분했다.

**

심유진이 주로 책임진 곳이 객실이긴 했지만 로열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다 보니 로비나 프런트 쪽과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심 매니저님? 오늘 휴가 아니었어요?”

프런트에 있던 소미가 커다란 트렁크 두 개를 끌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고 놀라 물었다.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돌아왔어요.”

심유진은 적당히 몇 마디 둘러댔다.

소미가 그녀의 등 뒤에 놓여있는 트렁크를 바라보았다.

“그럼 저건?”

“아 저희 호텔에 곧 엄청 귀한 손님이 오실 거거든요. 그분한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당분간 호텔에서 지내려고요.”

심유진은 이틀 전 아침 회의에서 총지배인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기지를 발휘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소미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저도 저희 매니저님한테서 들었어요. 듣기로 어떤 그룹의 고위층 인사라고 하던데요. 매니저님이 저희들한테 요 며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당부했거든요.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야 한다고 어찌나 으름장을 놓던지.”

그녀가 입을 삐쭉거렸다.

심유진은 ‘네’하고 짧게 답했다. 그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먼저 올라가 볼게요.”

그녀가 채 몇 걸음 옮기지 못했을 때, 등 뒤에서 일치하지는 않지만 묵직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고요하기만 한 늦은 밤 유달리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심유진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남자가 나란히 서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늘씬한 몸에 검은색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있었다.

심유진의 시선이 둘 중 키가 조금 더 큰 남자한테 쏠렸다.

그의 얼굴은 최근 가장 잘 나간다는 남자 연예인과 겨뤄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짙은 눈썹에 그윽한 눈매, 얇은 선분홍색 입술은 그의 새하얀 피부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스러운 건 아니었다.

그는 왼손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늘어뜨리고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느슨하게 꽂아 넣고 있었다. 우아한 외모에 왠지 모를 건달 기질이 느껴졌다.

심유진의 눈길을 느꼈던 걸까? 그의 깊은 눈동자가 서서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무해한 그의 외모와는 달리 눈빛이 매우 날카로웠다. 그 눈길에 심유진은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실례지만…… 손님분들은 체크인하실 건가요?”

소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시기적절하게 들려왔다.

남자가 그제야 시선을 거두었다. 심유진은 다급하게 몸을 돌렸다.

키가 조금 작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네.”

“예약하셨나요?”

소미가 또다시 물었다.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내밀었다.

“로열 스위트룸 하나, 일반 스위트룸 하나.”

로열 스위트룸이라는 말에 심유진은 다시 걸음을 멈췄다.

로열 호텔에는 로열 스위트룸이 딱 하나 있었다. 총지배인이 말하기를 그 방은 귀한 손님을 위해 남겼다고 했는데……

심유진은 자신의 짐을 프런트에 던져두고 몸을 돌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앞에 다가갔다.

그녀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막 입을 떼려고 하던 그때, 그녀는 순간 자신이 그의 성이 뭔지조차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미소가 1초 정도 굳어졌다가 곧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여기 로열 호텔의 객실 매니저 심유진이라고 합니다. 손님께서 머무르시는 동안 모든 사무는 제가 전담하게 될 겁니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몇 초간 머물렀다가 그녀가 내민 손에 이르렀다.

“안녕하세요.”

그의 목소리는 심유진이 예상했던 것처럼 듣기 좋았다. 마치 최상급 첼로를 켜는 것처럼 낮고 은은했다.

그녀가 한창 그 목소리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자신의 손 위로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다.

남자가 호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의 손은 그의 얼굴과 같은 색이었다. 손가락이 길쭉길쭉하게 뻗어있었고 군데군데 손가락뼈가 선명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심유진은 자신보다 흰 남자의 손을 확인하고 순간 자괴감을 느꼈다.

“허태준입니다.”

남자의 얇은 입술이 살짝 열리더니 낯선 이름을 내뱉었다.

심유진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몇 초간 얼어붙어 있다가 그제야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반갑습니다 허 대표님!”

그녀는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허태준의 잘생긴 눈동자가 반쯤 가늘어졌다. 그는 시시각각 그녀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곧이어 살짝 올라갔던 그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가고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가 손을 거두어 다시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다른 남자가 체크인을 마치고 카드 키를 그에게 건넸다.

“이제 올라가도 돼.”

허태준은 낮은 목소리로 ‘그래’ 하고 답하더니 그대로 심유진을 지나쳤다. 그가 카드 키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다른 남자 역시 심유진의 곁을 지나치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봤었다.

그의 눈빛에 제발 저린 심유진은 얼른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소미에게 물었다.

“혹시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소미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

심유진은 아침 일찍부터 조건웅의 전화를 받았다.

“너 어디 갔어?”

그가 따지는 말투로 물었다.

심유진은 그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그저 한마디만 뱉었다.

“우리 이혼해.”

휴대폰 너머로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조건웅이 다시 말을 꺼냈을 때에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어투였다.

“유진아 내 말 좀 들어봐……”

“좋아.”

심유진이 피식 웃었다.

“해명해 봐. 들어줄게.”

조건웅은 그녀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는지 오히려 당황해하고 있었다.

“나랑 우정아는…… 그저 술 먹고 실수 한번 한 거야. 그 일로 애가 생기게 될 줄 몰랐어.”

그가 이어서 말했다.

“나는 정리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쪽에서 계속 매달리며 어떻게든 책임지라고 해서……”

심유진은 장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머리에 물이 찬 건 더더욱 아니었다.

어제 그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우정아를 안던 모습은 전혀 우정아가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좋아.”

창문 밖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심유진의 눈빛이 싸늘했다.

“당신이 오늘 당장 우정아를 데리고 가서 아이를 지우고 그녀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잘라내면 이혼 이야기 철회해 줄게.”

“그건……”

조건웅은 우물쭈물거렸다.

“우정아는 이미 임신 4개월이라서 지금 수술하면 몸에 엄청난 무리가 갈 거야……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지난 설 이후로 한주에 한번 꼴로 전화하셔서 언제 애를 낳을 거냐고 재촉하고 계셔. 내가 당신 귀찮을까 봐 여태 말하지 않았었는데 사실 나도 스트레스가 심해서 터지기 직전이야…… 때마침 우정아가 임신을 했으니까 그녀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가 데려와서 키우면 되잖아. 그러면 우리 어머니한테도 할 말이 있고.”

심유진이 눈을 감았다. 그녀는 속에서 끓고 있는 분노와 실망을 애써 누르며 최선을 다해 차분하게 말했다.

“조건웅 난 분명히 말했었어. 난 평생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고.”

“네가 왜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지 알고 있어!”

자신이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생각한 조건웅이 어쩐지 우쭐거리기까지 하며 말을 이었다.

“그저 아이를 낳는 게 아프고, 낳고 난 후 몸매가 망가질까 봐 그러는 거잖아? 이제 넌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야. 넌 그저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기만 하면 돼. 얼마나 좋아?”

심유진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났다. 그녀가 참을성 있게 물었다.

“방금 네가 한 그 말들, 우정아도 동의한 거야?”

“걔 동의 같은 건 필요 없어!”

조건웅은 이번에는 제법 강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심유진은 그를 믿지 않았다.

“난 아이를 키울 생각 없어.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워줄 생각은 더더욱 없고.”

그녀는 미련 없이 그의 말을 거절했다.

“당신은 그냥 우정아와 함께 살아. 두 사람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으니까.”

두 사람의 지금 그 마음 영원히 변치 말기를 바래.

“더 생각해 볼 여지는 없는 거야?”

조건웅이 물었다.

“없어.”

심유진이 답했다.

“알았어.”

조건웅은 더 이상 비굴해지지 않았다. 그의 말투가 처음 전화를 걸었던 것처럼 싸늘하게 변해있었다.

“이혼 이야기는 네가 꺼냈으니까 내 재산 한 푼도 나눠가질 생각하지 마!”

방금 전 그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연기를 한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이미 식을 대로 식어버렸다고 생각한 심유진의 심장이 그 순간 더욱 차디찬 얼음 감옥에 처박혀버렸다.

“법대로 해. 정정당당하게.”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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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유진은 뜻밖의 욕설에 머리가 띵해졌다.하지만 그녀 역시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건 아니었다. 이보다 더한 고객도 겪어왔었다.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죄송합니다 서우연 씨. 아마 무슨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막 호텔로 돌아온지라 아직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실례지만 잠시만 저한테 상황을 파악할 시간을 내어주시면 안 될까요?”그와 동시에 그녀의 두뇌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로열 호텔은 정규적인 호텔이었다. 이와 같이 사업 규모가 크고 사무가 번잡한 호텔에서 멋대로 사람을 내쫓을 리가 없었다.보안 요원과 청소부까지 모여있는 걸 보니 그녀를 쫓아내는 일이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심유진은 호텔을 통틀어 권력 있고 고객을 쫓아낼 정도의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총지배인을 제외하고는 떠오르지 않았다.그녀가 막 총지배인한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으려고 할 때 복도 끝 쪽에 있는 방 문이 열렸다.여형민이 잠옷을 입은 채 걸어 나왔다.그는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주위로 허태준과 비슷한 싸늘한 기운이 느껴겼다. 아침에 친절하기 그지없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심유진은 그의 휴식을 방해한 줄 알고 황급히 사죄했다.“죄송합니다 여형민 씨. 현재 이쪽에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겨서요. 소란스럽게 했다면 저희가 다른 방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여형민이 손을 내젓더니 그녀를 향해 씩 미소 지었다.“괜찮습니다.”심유진이 당황했다.이게 괜찮으면 그는 도대체 왜 저렇게 저기압인 거지?여형민은 곧바로 서우연의 앞으로 다가갔다.서우연은 그를 알고 있는 듯했다.“여, 여 변호사님?”이전에 보였던 오만방자함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져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서우연 씨.”그녀를 대하는 여형민의 태도는 심유진을 대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말투도 각박하기 그지없었다.“당신한테 퇴실을 요구한 건 허 대표님의 뜻이었습니다. 원인은……”그가 씩 입꼬리를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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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풉!”물을 마시던 여형민이 그녀의 말에 그대로 물을 뿜었다.그가 다급하게 일어나 휴지를 뽑아 서둘러 입 주위와 젖은 옷을 닦았다.“죄송합니다.”그는 조금 뻘쭘해 보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눈매가 씰룩거리는 것이 어쩐지 웃음을 참고 있는듯했다.그가 다시 자리에 앉더니 짐짓 생각하는 척하며 턱을 만졌다. 잠시 후 그가 정색하며 말했다.“문제라, 허 대표한테 정말로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심유진이 두 귀를 쫑긋 세웠다.“심각한 결벽증이 있거든요.”여형민이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눈에 보아도 그 일로 꽤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 같았다.그 ‘병명’이라면 심유진한테 신선감을 주지 못했다. 녀가 직접 그의 결벽증을 겪어보지 못했기에 눈앞의 남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결벽증과 서우연을 거절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나요?”“허 대표의 결벽증이 심하다 못해 다른 사람과 그 어떤 신체적인 접촉을 할 수 없을 정도랍니다. 비즈니스를 할 때 협력 업체 사람들과 악수조차 하기 싫어할 정도죠.”여형민의 말에 심유진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허태준이 호텔에 와서 체크인하던 그날 밤. 분명 그녀와 악수를 나누지 않았던가. 심지어 어젯밤에 두 사람은……당연히 심유진은 자신이 허태준한테 특별한 “예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입으로 원래는 그녀한테 “사람”을 불러달라고 할 생각으로 전화했다고 했었다.때문에 그녀는 허태준의 괴상한 “결벽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부를지언정 서우연과는 자기 싫다니. 설마 그는 서우연이 돈만 주면 아무나 잘 수 있는 그런 “사람”보다도 불결하다고 생각하나?여형민은 심유진의 당혹감을 눈치챘지만 뭐라 더 설명하지는 않았다.그와 같은 외부인이 나서지 말아야 하는 일도 있었다.심유진 역시 그 이상은 뻔뻔스럽게 묻지 못했다.본론은 다 끝났으니 그녀도 더 이상 그 방에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기도 하니 그녀는 예의상 그에게 물었다.“여 변호사님 혹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화

    “예를 들어……”여형민이 교활하게 씩 웃으며 허태준 쪽을 힐끗 보았다.“여기 있는 허 대표와 잘 지내봐요. 허 대표한테 뒤에서 그 인간들이 골탕 먹게 힘 좀 써달라고 해요.”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하늘 높이 치솟던 심유진의 기대가 바늘에 콕 찍힌 듯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그건……”그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고고하게 있는 허태준을 몰래 힐끔거렸다.“역시 허 대표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죠.”그때 허태준이 입을 열었다.“왜? 나 같은 건 쓸모없나?”그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심유진이 서둘러 해명했다.“절대 아닙니다. 공사 다망한 허 대표님한테 어떻게 이런 작은 일로 폐를 끼치겠어요? 더군다나 저와 대표님은 안지도 며칠 안 됐고……”그녀는 방금 자신이 말한 부분 어디에서 허태준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다고.”허태준이 한 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졌다.“그렇게 작은 일이 나한테 폐를 끼칠 수나 있겠어? 하지만……”갑자기 그가 화제를 돌렸다.“어제 심 매니저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응당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당신이 한번 말해 봐.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괜찮습니다.”심유진이 주저 않고 그를 거절했다.“대표님께서는 오늘 아침에도 이미 저를 크게 도우셨습니다. 그걸로 계산 끝내죠. 이제 서로 빚진 건 없습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잘 생각해 봐 심 매니저. 이런 기회는 다음에 오지 않아.”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심유진이 답했다.“충분히 생각해 봤습니다.”“그래.”허태준이 그녀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옮기고 와인잔을 들었다.그가 살짝 고개를 젖히자 검붉은 색 액체가 잔을 타고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꿀꺽.그의 목젖이 꿀렁거렸다.심유진은 그저 생각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허태준의 완벽한 옆선과 무심히 흘러나오는 퇴폐적인 섹시미에 눈을 떼지 못했다.그녀는 왠지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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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9화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8화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7화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6화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5화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4화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3화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2화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1화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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