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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차차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누가 나한테 약을 먹였어. 원래는 그쪽한테 사람을 불러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전화를 계속 안 받더라고…… 당신이 왔을 때는 이미 참을 수 없는 상태였고.”

허태준은 응당한 일을 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한 마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심유진은 너무나 당당한 그의 말투에 순간할 말을 잃었다.

허태준은 마주 보는 그녀의 시선에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는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협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갑을 꺼내들더니 카드 한 장을 빼냈다.

“내 명의로 된 카드야. 금액 제한 없이 마음대로 긁어도 돼.”

그가 카드를 그녀한테 건넸다.

“어젯밤 일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두지.”

남자는 그 말을 하면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저 침대 한쪽 끝을 바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심장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심유진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유진은 진즉 그의 이상함을 눈치챘었다. 그와 함께 밤을 보낸 건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방금 그가 내뱉은 말은 그녀의 화를 돋우기 충분했다.

도대체 그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대표님께서는 씀씀이가 참으로 호탕하시네요.”

그녀가 조롱하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 모두 다 큰 성인인데 함께 밤을 보낸 것 정도는 큰일도 아니잖아요. 하물며 어디 허 대표님과 같은 남자와 아무나 밤을 보낼 수 있나요? 따지고 보면 저는 손해 본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득을 본 거죠. 그러니까……”

그녀가 잠깐 말을 멈추었다.

“이 카드는 넣어두세요. 저는 필요 없으니까.”

허태준의 알 수 없는 눈빛을 받으며 심유진이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를 용기로 삼고 그의 턱을 잡아올렸다. 그리고 경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만약 허 대표님께서 정말로 저에게 뭔가를 보상하려고 한다면, 저랑 몇 번 더 자던가요.”

그녀는 허태준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그가 당장 그녀를 해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뜻밖의 그녀의 행동에 그가 잠깐 멍해졌다. 곧바로 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재밌다는 듯이 씩 웃었다.

“좋아.”

그가 이어서 말했다.

“당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함께해 주지.”

**

당황한 심유진은 도망치다시피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감히 자신이 뻔뻔함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것이다.

급히 ‘8888’호 방에서 나오던 그녀는 하마터면 누군가와 부딪칠뻔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황급히 사과했다.

“어라?”

상대방의 말투에서 흥분과 호기심이 느껴졌는데 유독 불만은 느껴지지 않았다.

심유진은 그제야 눈앞의 남자가 그저께 허태준과 함께 체크인 한 남자임을 알아보았다.

핸섬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눈매는 허태준보다 부드러웠는데 쉽게 사람과 친해질 법한 인상이었다. 오뚝한 콧날 위로 금테 안경을 끼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에게서 전문적인 엘리트 기질이 느껴졌다.

“지난번에는 태준이가 재촉해서 인사도 제대로 못했네요. 안녕하세요.”

남자가 주동적으로 그녀에게 악수를 건넸다.

“여형민입니다. 변호사에요. 이혼 전문 변호사죠.”

그가 유독 ‘이혼’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말했다. 심유진은 순간 솔깃했다.

지금 그녀가 허태준의 커다란 셔츠를 입고 있지만 않았다면, 목에 울긋불긋한 어젯밤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당장 여형민을 잡아두고 자리에 앉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여 변호사님.”

그녀가 여형민의 손을 마주 잡았다가 2초 후 다시 놓아주었다.

“그럼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여형민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심유진이 걸음을 멈췄다.

여형민이 정장 바지 호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 드릴게요.”

“화상 연고?”

심유진이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거죠?”

여형민이 그녀의 오른쪽 발목을 가리켰다.

“화상 입으셨잖아요. 이거 바르면 빨리 아물 겁니다.”

그저께 밤 화상을 입었던 발목에서는 이미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검붉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심유진은 여형민이 그 상처를 주시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그저 호텔 로비에서 짧은 만남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부러 그녀를 위해 약을 사 왔을 줄이야.

“고마워요 여 변호사님.”

그녀는 뜻밖의 호의에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여형민이 말을 이었다.

“인사는 허 대표한테 하세요. 그 연고는 걔가 어제 산 건데 제 차에 두고 내렸더라고요. 마침 허 대표한테 볼 일이 있어서 온김에 가져다주러 온 것뿐이에요.”

놀란 심유진이 멍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허태준이 그녀를 위해 약을 샀다고? 왜?

심유진은 연고를 손에 쥐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휴게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새로운 정장 스커트를 갈아입었다. 긴 머리는 깔끔하게 올려 고정하고 당황스러운 어젯밤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목 위에 컨실러를 몇 번이고 덧발랐다. 그렇게 하면 마치 어젯밤의 일들이 전부 가려지기라도 할 것처럼.

허태준의 셔츠와 화상 연고는 침대 위에 무심하게 던져두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며 저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어젯밤의 교훈이 있었기에 심유진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 너머로 프런트 직원 소미의 당황스럽고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 매니저님 빨리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심유진은 신경이 곤두섰다.

“매니저님의 시부모님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매니저님을 찾고 있어요. 서 매니저님이 확인을 할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에요. 억지로 들어오려고 하셔서 지금 보안팀과 싸우고 있어요……”

저쪽에서 누군가가 싸우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런 행동을 할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괴짜 시부모님들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아래층으로 향했다.

로비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몇몇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있었다. 아니 몇몇 호텔 보안 요원들이 나이 지긋한 두 노인한테 붙들려 맞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두 사람은 보안 요원들을 때리며 욕하고 있었다.

“망할 놈들! 문이나 지키는 잡것들 주제에!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감히 내 앞을 막아!”

로비 매니저인 서연지가 어린 직원 두 명을 데리고 곁에서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그만 때리세요. 제가 이미 심 매니저한테 연락했어요. 곧 내려올 거예요!”

심유진이 걸음을 빨리했다.

“아버님 어머님.”

그녀가 그들을 불렀다.

조건웅의 부모는 그제야 행동을 멈췄다.

조건웅의 어머니가 방금 자신이 때렸던 보안 요원을 노려보며 마저 욕했다.

“뭘 봐? 당장 꺼지지 못해! 평생 남의 집 문지기나 할 놈!”

욕을 먹은 보안 요원은 혈기왕성한 젊은 남자였다. 그가 그녀의 말에 벌컥 화를 냈다.

“말 가려서 하세요 할머니!”

“왜? 그렇게 보면 내가 못 욕할 것 같아?”

그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남의 집 문이나 지키는 개놈! 내가 아주 끝까지 욕할 거야! 죽을 때까지 욕할 거야!”

젊은 보안 요원이 손을 들어 올렸다.

“왜 때리려고?”

조건웅의 어머니는 얼굴을 남자 앞에 들이대며 소리쳤다.

“자신 있으면 때려! 때릴 수 있나 없나 내가 똑똑히 지켜볼 거야!”

젊은 보안 요원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너무나 화가 나 입술이 다 부르르 떨렸다.

그의 동료가 얼른 그를 잡아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

“됐어 그만해. 때리면 일만 더 복잡해져.”

심유진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머님, 아버님과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조건웅의 어머니는 군말하지 않고 눈을 부릅 뜨더니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뻔뻔스럽게 그걸 물어?”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심유진의 얼굴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그에 따라 가냘픈 그녀의 몸도 휘청거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귓가에 ‘윙윙’거리는 이명 빼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비정상적으로 시끄럽던 호텔 로비가 순식간에 괴이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리를 벗어나려던 보안 요원들 마저도.

심유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애써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했다.

“어머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제 사무실로 가서 얘기하시죠.”

그녀가 손을 뻗어 조건웅의 어머니를 잡으려 했지만 시어머니는 모질게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왜? 네가 저지른 악랄한 일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질까 겁이라도 나?”

조건웅 어머니의 얼굴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표독스러운 눈빛이 잔인한 칼날이 되어 유진의 몸에 박히는 것 같았다.

“네 사무실 따위 갈 생각 없다. 난 여기서 말할 거야! 네 동료들한테 네가 어떤 인간인지 똑똑히 알려줄 거야!”

심유진은 억지로 분노를 삼키고 있는 중이었다. 어쨌든 상대는 자신의 웃어른이었고 이런 일로 다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았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껏 정중한 태도로 그들을 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건웅의 어머니는 결국 그녀를 완전히 화나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여기서 말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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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어……”여형민이 교활하게 씩 웃으며 허태준 쪽을 힐끗 보았다.“여기 있는 허 대표와 잘 지내봐요. 허 대표한테 뒤에서 그 인간들이 골탕 먹게 힘 좀 써달라고 해요.”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하늘 높이 치솟던 심유진의 기대가 바늘에 콕 찍힌 듯이 펑 하고 터져버렸다.“그건……”그녀는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양 고고하게 있는 허태준을 몰래 힐끔거렸다.“역시 허 대표님한테 폐를 끼칠 수는 없죠.”그때 허태준이 입을 열었다.“왜? 나 같은 건 쓸모없나?”그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심유진이 서둘러 해명했다.“절대 아닙니다. 공사 다망한 허 대표님한테 어떻게 이런 작은 일로 폐를 끼치겠어요? 더군다나 저와 대표님은 안지도 며칠 안 됐고……”그녀는 방금 자신이 말한 부분 어디에서 허태준의 역린을 건드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다고.”허태준이 한 쪽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졌다.“그렇게 작은 일이 나한테 폐를 끼칠 수나 있겠어? 하지만……”갑자기 그가 화제를 돌렸다.“어제 심 매니저가 나를 도왔으니 나도 응당 보답을 해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당신이 한번 말해 봐.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는지.”“괜찮습니다.”심유진이 주저 않고 그를 거절했다.“대표님께서는 오늘 아침에도 이미 저를 크게 도우셨습니다. 그걸로 계산 끝내죠. 이제 서로 빚진 건 없습니다.”허태준은 여전히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잘 생각해 봐 심 매니저. 이런 기회는 다음에 오지 않아.”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심유진이 답했다.“충분히 생각해 봤습니다.”“그래.”허태준이 그녀에게 머물렀던 시선을 옮기고 와인잔을 들었다.그가 살짝 고개를 젖히자 검붉은 색 액체가 잔을 타고 그의 입안으로 흘러들어갔다.꿀꺽.그의 목젖이 꿀렁거렸다.심유진은 그저 생각 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허태준의 완벽한 옆선과 무심히 흘러나오는 퇴폐적인 섹시미에 눈을 떼지 못했다.그녀는 왠지 목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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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서 깬 심유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당황한 상태에서도 그곳이 어딘지는 똑똑히 알 수 있었다. 그곳은 지난번 그녀가 “운 좋게” 하룻밤 묵었던 8888호 방이었다.충격과 공포에 쏟아지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심유진이 이불을 슬쩍 들어보았다.이불 아래 있는 자신의 몸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만큼 처참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어제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은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호텔 VIP 고객을 위해 준비된 실크 가운이 걸쳐져 있었다.목 위로 두텁게 몇 번이나 덧발랐던 화장도 사라지고 그 대신 얼룩덜룩한 검붉은 색 키스마크가 남아있었다.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녀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지만 감히 기억을 찾을 용기도 없었다.2미터 침대에 현재 그녀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도 정갈하게 침대 머리에 놓여 있었다. 방금 그녀가 어지럽힌 이불을 제외하고 주름 하나 없을 정도였다.심유진은 허태준이 잠을 자고 깨나서 나간 건지, 아니면 이곳에서 자질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희망 대로 후자가 맞았으면 좋겠지만. 욕실 문은 열려있었는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빨래 바구니에는 옷이 한가득 담겨있었다.위에는 허태준의 옷이 있었고 아래에는 그녀의 옷이 깔려있었다.두 사람의 옷이 한데 엉켜 어쩐지 야릇한 느낌을 주었다.심유진은 곧바로 어제 입었던 옷을 다시 입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다.그녀는 간단히 씻고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허태준의 옷을 입을 생각이었다.그녀가 막 옷장을 열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방 문이 열렸다.깜짝 놀란 심유진이 옷장 문을 쾅 하고 닫아버렸다.커다란 소리와 함께 옷장 문이 몇 번이나 열렸다 닫았다 하더니 겨우 닫혔다.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허태준이었다.그는 이번에는 간단한 캐주얼 차림이었고 머리도 자연스럽게 흐트러져있었다.심유진이 침대 옆에 서있는 모습을 본 그는 약간 놀랐지만 그저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걸로 표현했다.“깼으면 옷 갈아입어.”그가 손에 들고 있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2화

    이혼에 관한 일은 전부 여형민한테 맡기니 당사자인 심유진은 오히려 너무나 한가할 정도였다.휴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아있었다. 심유진은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로열 근처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알아봤다.로열 호텔은 대구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에 있었다. 그 주위에는 온통 몇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 단지뿐이었다. 단지 내에 빈집이 매우 적었는데 있다고 해도 팔지는 않았다.결국 그녀는 차선택으로 세 개 정거장 이내거나 막히지 않는 상황에서 삼십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범위를 한정했다.중개인이 그녀를 데리고 하루 종일 다니며 여러 집을 보여줬지만 주변이 시끄럽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단지뿐이었다.결과적으로 그녀의 마음에 드는 집은 찾지 못했다.심유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가 막 침대에 누우려는데 조건웅 동생 조건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다짜고짜 자기 용건을 말했다.“나 다음 주에 아름이랑 대구에 갈 거니까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해 줘요.”조건이는 경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소아름은 그와 교제한지 2년이 되는 여자친구였다.심유진은 결혼식 그리고 이번 년 설에 조건이를 몇 번 본 게 다였기에 친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소아름은 본적도 없었다. 그저 조 씨 부모한테서 그녀가 경주 어디 사장님의 외동딸이라는 말만 들었었다.때문에 그녀는 조건이의 다짜고짜 한 “명령”에 얼떨떨하기만 했다.이런 일은 그녀를 찾을 게 아니지 않나?“네 형한테 예약해 달라고 해.”보아하니 조 씨 집안에서는 아직 그에게 그녀와 조건웅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또 다른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 역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조건이가 화를 내는 게 아닌가.“우리 형이 얼마나 바쁜데요. 어디 그런 걸 예약할 시간이 있다고 그래요!”그의 말투가 거칠었다.“형수님이 되서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그리고 형수님 로열 호텔에서 일하잖아요? 프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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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9화

    하은설은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시간 없어, 빨리 가자! 너 기다리다 네 남편 목 빠지겠네!”심유진은 빨리 걷기 위해 두 손으로 얼른 웨딩드레스를 들어 올렸다.“응, 그래.”화창한 날씨에 황금빛 햇살이 꽃잎 사이로 레드카펫을 비추고 있었다.심유진은 아름다운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온실 문 앞까지 걸어왔다.온실 대문 앞에는 육윤엽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은 별이의 손을 잡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별이는 심유진의 등장에 잡고 있던 육윤엽의 손을 떼고 그녀에게로 달려왔다.“엄마, 오늘 천사 같아요!”심유진도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웃었다.“고마워, 우리 별이!”오늘 결혼식의 화동인 별이는 정장 차림에 작은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고 앙증맞은 손에는 형형색색의 꽃잎이 들어있는 바구니가 들려있었다.온실 안에서 곧이어 결혼 행진곡이 울려 퍼졌고 육윤엽은 심유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가자.”심유진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물이 맺힌 육윤엽을 보고 갑자기 꼬끝이 찡해졌다.하은설은 그녀가 울려고 하자, 옆에서 한마디 했다.“참아, 울면 안 돼!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화장 번지면 안 예쁘잖아.”심유진은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면서 패딩 점퍼를 벗어 옆에 있던 스타일리스트에게 건넸고 육윤엽의 팔짱을 끼고 천천히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별이도 앞에 서서 두 사람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면서 바구니 속의 꽃잎들을 한 웅큼씩 집어서 하늘로 흩뿌렸다.신부의 등장에 하객들은 잇달아 박수를 쳤고 심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허태준은 예식장 단상 앞에서 자신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오는 심유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결혼식장이 크지 않은 탓에, 육윤엽과 심유진은 2분도 안 되어 예식장 단상 앞까지 걸어왔다.행복함에 싱글벙글하던 허태준은 육윤엽이 굳은 얼굴로 헛기침을 몇 번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공손히 인사했다.“아버님.”육윤엽은 심유진을 한 번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8화

    육운영과 김욱은 블루 항공이 설 연휴에도 쉬지 않은 탓에 경주에서 이틀을 보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다만 심유진은 보름 정도 되는 설 연휴 중 절반 시간을 허씨 가문의 별장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로 인해 많은 공공장소가 문을 닫은 상황이라 밖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육운영과 김욱은 짧은 휴가가 끝난 뒤, 업무에 복귀했다.별이도 설 연휴가 끝난 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허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별이의 유치원 픽업을 위해 일부러 허태준과 심유진이 사는 동네에 집까지 샀다.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지나, 블루 항공 경주 지사의 재건축도 이제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김욱은 몇 명의 핵심 직원들을 경주 지사 쪽으로 파견시켜 심유진과 함께 회사 초반 운영을 하도록 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운영은 정상 궤도에 올랐고 일부 본사의 업무도 경주 지사 쪽으로 넘어왔다.회사가 눈코 뜰 새 바빠지자, 심유진은 5월 예정이었던 결혼식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하지만 허태준이 결혼식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바쁜 일정 속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디자이너들을 만나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면서 결혼식 준비를 했다....5월이 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코로나는 국내에서 유럽과 미국으로 퍼졌다.블루 항공은 다행히 코로나가 N시티에서 유행하기 전, 대부분의 부서를 이동한 상황이라 큰 타격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성그룹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의 여러 의료기기 공장을 설립하고 마스크 등 의료 물자를 전 세계로 운송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반면 모어 항공은 블루 항공과의 소송에서 패한 뒤, 입소문이 나쁘게 퍼져서 고객들을 블루 항공에 뺏긴 신세가 되었다.게다가 이번 사건의 주역이었던 마리아는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았다.모든 일이 잘 풀리는 중, 심유진과 허태준의 결혼식 날도 다가왔다.심유진은 결혼식 날이면 해방감이 들 줄 알았지만, 날이 다가올수록 기대감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쳤다....YT 그룹이 부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7화

    허아주머니는 특별히 심유진을 위해 아침밥을 남겨두었다.심유진은 허아주머니의 정성에 감동했고 맛있게 아침을 먹었다.허태준과 별이는 그녀가 아침을 다 먹자,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때마침 허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만두가 가득 담긴 도시락통을 허태준에게 건넸다.“자, 이거 잊지 마.”“고맙습니다.”허태준은 심유진을 바라보며 물었다.“떠나도 될까요?”심유진은 어젯밤의 일로 토라져서 답도 하기 싫었지만, 허아주머니 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짧게 답했다.“네, 가죠.”그녀는 답을 하고 나서 별이의 손을 잡고는 허아주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대문을 나섰다.허태준도 귀여운 그녀의 행동에 웃음을 머금으며 두 사람을 뒤따랐다....허태준이 별이에게 미리 증조할아버지를 뵈러 간다고 말했고, 별이는 가는 내내 차 안에서 폭풍 질문을 던졌다.“증조할아버지는 왜 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른 거예요?”“증조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아빠인 건가요?”“증조할아버지는 무서워요?”“증조할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만두를 먹을 수 있어요?”...허태준은 별이의 모든 질문에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대답했다.그동안 심유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허태준은 냉랭한 심유진의 태도에 어젯밤 자기의 행동이 과한 것 같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하지만 허태준은 그녀가 거부할수록 점점 더 야만적으로 변하는 자기를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허태준은 어젯밤 생각에 몸이 반응해 오면서 또 피가 끓기 시작했다....허태준은 별이를 안고 묘지 입구에서 산 꽃다발을 무덤 앞에 놓았고, 몸을 굽혀 물티슈로 쌓인 먼지를 꼼꼼히 닦아냈다.“할아버지, 저 왔습니다.”심유진도 허태준의 할아버지를 보자, 화가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녀는 별이와 함께 무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렸다.심유진은 사진 속의 자상한 노인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할아버지, 저 기억하세요? 태준 씨 아내 심유진이에요.”그러고는 별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6화

    심유진이 혼자 방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엄청난 질문 세례를 했다.“태준이는? 왜 같이 내려오지 않았어?”“아빠는 어디 있어요? 불꽃놀이 시켜준다고 저랑 약속했단 말이에요.”심유진은 방에서 나오면서 침착하게 둘러댔다.“샤워하고는 피곤하다고 일찍 잠들었어요.”어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고 김욱만이 그녀를 몇 초 동안 주시했다.별이는 실망한 듯 입을 삐쭉거렸다.“아빠 미워! 오늘 같은 날 왜 이렇게 빨리 주무시는 거죠?”심유진은 그런 별이가 사랑스러운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피곤해서 일찍 잠들었어. 내일 아빠가 우리 별이랑 같이 불꽃놀이 해주실 거야, 그때까지 참을 수 있지?”그녀의 말이 끝나고 허태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세뱃돈을 심유진과 별이에게 건넸다.허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면서 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유진아,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심유진은 허아주머니에게 다가가더니 뜨겁게 포옹했다.“어머님, 고마워요.”허아주머니는 심유진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그녀를 더욱 꽉 껴안았다.“우리 유진이는 너무 착해.”이어 육운엽과 김욱도 세뱃돈을 건넸고, 별이는 많은 세뱃돈을 받은 것에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늦은 시간 탓에 몇몇 어른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때마침 허아주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늦었는데 다들 이만 들어가서 쉬지.”심유진도 별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허태민, 너도 이제 자야지.”별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 손에는 두툼한 돈봉투를 꼭 쥐고 다른 한 손은 심유진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심유진은 별이를 재운 뒤에도 허태준의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아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으로 향했다.다들 잠들었는지 온 집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고 심유진이 조심스레 방문을 열자, 그녀가 켜놓았던 무드등조차 꺼져 있어 칠흑같이 어두웠다.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고, 놀라서 비명을 지르려고 할 때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더니 발끝으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5화

    “새해 복 많이 받아요.”왜인지 심유진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왜 그래요?”허태준은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어쩔 줄 몰랐다. 그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불꽃놀이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심유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완전 좋았어요!”“근데 왜 우는 거예요?”허태준은 그녀가 우는 게 싫었다.심유진이 울면 허태준도 덩달아 마음이 아팠다.“너무 감동적이어서요.”심유진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훌쩍거렸다.“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새해를 보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사랑하는 사람...”허태준의 입꼬리가 점점 귀에 걸리더니 심유진의 허리를 더 꼭 껴안았다.“저도 사랑해요, 유진 씨.”그는 머리를 숙이고 심유진의 이마에 키스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고 다급히 그를 밀어냈다.하지만 워낙 세게 껴안아 밀어 지지 않았다.“모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어요.”심유진은 이성을 잃은 허태준을 일깨워 줬다.김욱은 그녀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불꽃 쇼도 끝난 상황에 허태준과 위에 오래 무르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다.심유진은 그 의심을 피할 수 있을 만큼 낯이 두껍지 못했다. 허태준은 그녀를 화나게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것을 알기에 그녀를 놓아줬다.“잠시 후에 꼭 보충해야 해요.”허태준은 위협적으로 말했다.“어떻게 때울까요?”심유진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서둘러 내려가지 않았다.그녀는 까치발을 들고 허태준의 턱으로부터 그의 얼굴 곳곳에 키스했다.“이러면 돼요?”심유진은 허태준의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웃음치며 그를 유혹했다.“아니면 이렇게?”그녀는 허태준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를 달아오르게 했다.허태준의 검은 눈동자는 반짝 빛났고 몸에 뜨거운 피가 흘렀다.하지만 그는 꾹꾹 참으며 인내심 있게 심유진의 다음 유혹을 기다렸다.“우리... 스릴 넘치게 놀아 볼래요?”심유진은 허태준의 턱을 잡으며 그의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마치 섹시한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4화

    설날에 모처럼 대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니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들 모두 약주를 하자 허 아주머니는 육윤엽과 김욱을 모두 집에 못 가게 막았다.아침 일찍 일어나 쉴 새 없이 바빴던 심유진은 저녁이 되자 졸음이 쏟아졌다.허 아주머니는 피곤해하는 심유진을 발견하고 먼저 올라가서 쉬라고 했다.하지만 심유진은 주먹을 꽉 쥐며 졸음을 떨쳐내려 애썼다.“조금만 더 버텨볼게요.”심유진은 격식을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기도 전에 잠에 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먼저 자고 싶지 않았다.올해 그녀는 더 이상 떠돌이 처지가 아닌 가족과 함께였기에 더욱 이 소중한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고 싶었다.허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그녀를 극구 말렸다.“먼저 올라가서 눈 붙이고 있어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기 전에 깨워줄게요.”허태준은 심유진이 무슨 마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마음이 아프고 미안해졌다.허태준이 말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그녀를 말리기 시작했다.별이 마저도 심유진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잠을 권했다.결국 심유진은 그들의 의견을 꺾지 못하고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그러고는 하품하며 침실로 향했다....“유진아! 심유진! 빨리 일어나! 12시야!”누군가 심유진의 뺨을 툭툭 치면서 깨웠다.심유진이 눈을 뜨자 눈앞에는 장난꾸러기처럼 웃는 김욱이 있었다.심유진은 김욱의 손을 치우고 그를 세게 때렸다.복수를 마친 심유진은 그제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왜 오빠가 날 깨우러 온 거야? 태준 씨는?”“아래층에 있어. 별이가 태준 씨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올라왔지.”김욱은 방금 맞은 곳을 문지르며 투덜거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깨우지 않는 건데.”“오빠가 먼저 날 때렸잖아! 내 탓 하지 마!”심유진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켰다.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지금 몇분이야?” 김욱은 휴대폰 화면을 켜고 말했다.“11시 59분이야. 이미 카운트 다운 시작됐어.”“이렇게 빨리?”조금만 잔줄 알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3화

    심유진은 생각을 되짚어보고는 문득 허태준이 유럽으로 갔었던 일이 떠올랐다.하지만 허태준은 허택양의 일을 처리하러 유럽으로 가는 거라 핑계를 댔었다.“허태준은 너보다도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어.”육윤엽은 코웃음 치고는 투덜거리기 시작했다.“너는 참 결혼하기 전부터 남편 생각밖에 안 하네.”“아이참...”심유진은 헛웃음 지으며 이를 꼭 깨물었다.그녀는 이미 들킨 바에 모든 사실을 다 털어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사실, 저와 태준 씨 이혼한 적 없어요. 저 이미 6년 전에 태준 씨와 결혼 했었어요.”허태준은 이 사실을 육윤엽한테 말한 적 없었다.심유진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육윤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너희 둘...”육윤엽은 가슴을 쥐어 잡고 괴로워했다.심유진과 김욱은 급히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요? 심장이 아파요?”육윤엽은 심유진의 뒤통수를 공격한 후에야 표정이 온화해졌다.그의 손이 너무 매웠는지 심유진은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앞으로 또 이런 중요한 일을 숨겼다간 더 아프게 때릴 줄 알아.”육윤엽은 험상궂은 얼굴로 겁을 주었다.심유진은 뒤통수를 쥐어 잡으며 대답했다.“다시는 안 숨길게요!”허태준의 부모님은 육윤엽과 김욱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이 별장에 들어서서부터 허 아주머니는 차를 따라주고 과일을 내오며 쉬지도 않고 대접했다.육윤엽은 젠틀하게 허태준의 부모님을 대했다. 아무래도 오는 길에 심유진을 실컷 욕한 덕분일 수 있다.게다가 육윤엽은 두 사람의 선물도 준비해 왔다.그는 허 아주버님한테 비싼 브랜드 시계를, 허 아주머니한테는 경매에서 낙찰받은 비싼 보석 세트를 선물로 줬다.두 사람은 한참 거절하다가 끝내 심유진의 설득에 못 이겨 선물을 받았다.양쪽 부모님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이번에 여기에 온 것은 아이들과 같이 설을 보내고 싶어서 이기도 하지만 두 분과 결혼식에 대해 상의하려고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그들이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허태준과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2화

    심유진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육윤엽과 김욱을 데리러 가야 했다. 그녀는 저녁밥을 먹은 후 방으로 올라가 샤워하고 잘 준비를 했다.하지만 침대에 누워 한참을 뒤척였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그때 허태준은 별이를 재우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는 방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심유진은 이불을 들춰 몸을 일으켰다.“저 지금 너무 걱정돼요.”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뭐가 걱정돼요?”허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내일 저의 아버지가 여기에 오시잖아요... 만약 어머니와 아버님과 트러블이라도 생기면 어떡하죠?”심유진은 내일 육윤엽과 허태준의 부모님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생각만 해도 머리가 뻐근했다.“아버님은 현명하신 분이니 걱정하지 말아요.”허태준은 심유진을 다독였다.“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눈치 보게 하는 분은 아니잖아요.”허태준의 말에 심유진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준 씨가 아버지 눈치를 많이 보던데요?”허태준은 마른기침하며 핑계를 둘러댔다.“그것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요.”허태준은 이미 겁에 잔뜩 질려 육윤엽이 없어도 감히 그의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심유진은 이를 이미 알아차렸다.“아무래도 오빠한테 전화해서 신신당부해야겠어요.”그녀가 충전 케이블을 뽑자 휴재폰 충전이 중단되었다.허태준은 다급하게 그녀를 뜯어말렸다.“두 분 이미 잠에 드셨을 거예요. 할 말은 내일 아침에 데리러 갈 때 해도 늦지 않았어요.”심유진은 고민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하긴. 그렇긴 하네요.”허태준은 심유진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주었다.“됐어요. 얼른 자요.”허태준은 방안의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뒀다.“내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쪽잠을 잘 시간도 없을 거예요.”심유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태준을 쳐다봤다.그녀는 갑자기 장난꾸러기같이 웃었다.“저 잠 좀 재워주지 않을래요? 아무 이야기를 해

  •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제1001화

    “네.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심유진은 들고 온 가방을 챙기고 허태준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내일 아침 제가 데리러 올게요. 설날이어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 거예요.”육윤엽은 거절 대신 한가지 요구를 말했다.“그럼 너 혼자와.”심유진은 멈칫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육윤엽은 변하지 않았다.“알겠어요.”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저는 아버지가 다 받아들인 줄 알았어요.”현관문이 닫히자마자 심유진은 투덜거렸다.“아직도 태준 씨를 싫어하시는 거였어요.”허태준은 심유진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띠었다.“우리 천천히 해요.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죠.”허태준은 육윤엽이 하루아침에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를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는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심유진의 입술은 삐죽 튀어나왔다.“뭐 아버지가 저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태준 씨가 괜찮다면 저도 괜찮아요.”허태준은 그런 심유진이 마냥 귀여웠다.“그럼 제가 마음이 급했다면 어쩔 생각이에요?”그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러운 눈길로 심유진을 놀렸다.“저는...”심유진은 육윤엽의 태도를 바꿀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천천히 하죠. 천천히 해!”육윤엽과의 부녀 관계를 끊을 수도 없으니 그녀는 결국 자포자기하며 외쳤다....심유진과 허태준 별장으로 돌아오자 허 아주머니는 적잖게 놀란 동시에 조금 심술이 났다.“너희 둘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야? 왜 사돈이랑 더 같이 있어 주지 않고!”허 아주머니는 물어보면서 허태준을 탓했다.“사돈께서 멀리서 오셨는데 잘 모셔야 할 것 아니야!”심유진은 허태준의 편을 들어줬다.“태준 씨가 모시고 싶지 않아서 온 건 아니에요. 저의 아버지와 오빠가 오랜 비행으로 잠을 못 자서 많이 피곤해하셨어요. 대꾸할 맥도 없어서 저희를 내쫓으셨어요.”“아... 그랬구나.”육윤엽의 거친 성격을 잘 몰랐던 허 아주머니는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어쩔 수 없지.”심유진과 허태준이 밖에 나갔다가 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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