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요.” 심유진은 목소리도 아까보다 많이 나아졌다. “아니에요.” 허태준은 빈 컵을 바라보며 심유진을 일으키느라 허리에 댔던 손을 거뒀다. “물 좀 더 떠올게요.” 분명 허태준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싫었는데 막상 손을 떼니 심유진은 왠지 마음이 복잡했다. 심유진은 시선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됐어요.” 허태준은 몸을 돌리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간호사는요?” “거실에서 쉬고 있어요.” “들어오라고 해줘요. 간호사가 지키면 되니까 태준 씨는 이만 가보세요.” 심유진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싫었지만 지금 두 사람 중에 골라라고 하면 당연히 간호사가 옆에 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 적어도 간호사와는 어색하지 않았고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지도 않았다. 이대로 허태준과 있다가는 열은 내려도 심장이 남아날것 같지 않았다. 허태준은 심유진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히며 아무 말없이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심유진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면서도 조금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깼어요?” 간호사가 웃으며 물었다. “물 좀 더 드릴까요?” 간호사의 손에 허태준이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컵이 들려져 있었다. “괜찮아요.” 심유진이 고개를 젓자 간호사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열이 날 땐 원래 물을 많이 마셔야 돼요. 또 땀도 많이 흘렸으니까...” 심유진은 들은 척 만 척하며 대충 대꾸했다. 간호사는 수액병을 바꿔주며 말했다. “방금 들었는데 예전 병원에서 같이 일하던 제 동기가 오늘 해고 당했대요.” 심유진은 간호사가 이런 얘기를 하며 은근히 자신의 반응을 살핀다는 걸 눈치챘다. “왜요?” “누구 원망을 살 일을 했다나 봐요.” 간호사는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실 괜찮은 사람이거든요. 평소에는 영안실 쪽에서 일해서 다른 사람들
“간호사님.” 전화를 끊고 심유진이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막 방으로 들어오려는데 심유진이 물었다. “혹시 밖에 아직도 사람이 있나요?”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허태준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고개를 젓는 허태준을 보고 간호사가 대답했다. “아니요, 저밖에 없어요.” 심유진은 억지로 곧게 피고 있던 몸에 힘을 풀며 침대머리에 기댔다. 아무 생각 없이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다가 허태준과 나눴던 채팅기록을 보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 출국하게 된 후 연락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그러니 오랫동안 연락을 안 했음에도 허태준은 여전히 채팅기록의 위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유진은 허태준 프사에 있는 별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채팅기록에 들어갔다. “수액을 맞기전보다 혈색이 많이 좋아하신 것 같아요.” 간호사는 밖에서 허태준과 있을 때 경직된 채 한마디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심유진과 둘이 있으니 긴장이 풀렸는지 말이 많아졌다. 심유진은 간호사를 무시할 수가 없어 일단 휴대폰을 껐다. “그래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심유진은 짧게 대답했지만 간호사는 그녀가 매 순간 진심을 담아 대화를 나눠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다시 병원에서 해고를 당한 그 동기에 관한 말을 꺼내게 되었다. “너무 불쌍해요.” 간호사가 말했다. “집안 상황이 좋지 못하거든요. 아버지는 옛날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편찮으셔서 약값이 어마어마하게 나온대요. 병원에서 받는 월급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는데 이제 직장까지 잃었으니 어머니 다음 달 약값을 낼 돈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원장실에 찾아가서 무릎까지 꿇었대요. 다 큰 남자가 엉엉 울면서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일어나지 않았다지 뭐예요. 그래서 지금 다들 돈을 좀 모아서 어머님 약값이라도 대드릴 생각이에요.” “정말 안타깝네요.” 수액을 다 맞고 간호사는 뒷정리를 하고 떠나면서 굉장히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간호사가 떠나자 방안이 순식
비록 계속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는 걸 심유진도 알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진상 고객들을 상대해 왔기에 심유진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답장이 빨리 왔다. “근데 지금 아프잖아요.” 심유진은 허태준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 직원이 시간을 끌었기에 추운 곳에 오래 있다가 감기에 걸렸다는 말이었다. “제가 몸이 약해서 그래요.” “요즘 경주가 추워서 병원에 안 갔더라도 몸이 안 좋았을 거예요.” 허태준은 또 한동안 답장이 없었다. “알겠어요.” 한참이 지나서야 허태준에게서 답장이 왔다. 심유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마워요.” 심유진은 자신 때문에 한 가정이 망가지는 건 원치 않았다. 감기약을 먹고 나니 금방 졸음이 밀려왔다. 잠결에 그녀는 누군가 방문을 여는 것이 느껴졌다. 억지로 눈을 뜨려고 했는데 희미하게 거대한 한 남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오빠?” 심유진이 겨우 말을 뱉었다.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이자 심유진은 다시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김욱이 침대맡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손이 이마에 닿았다. 왠지 익숙한 촉감이었으나 깊이 생각할 사이도 없이 그 사람은 손을 뗐다. 그리고 심유진은 완전히 잠에 들어 버렸다. 심유진은 일어나서 체온부터 쟀다. 37도 정도 되는 걸 보니 열이 대부분 내린 것 같았다. 어제보다 훨씬 기운도 생겼다. 김욱은 아침 일찍 아침밥을 들고 왔다. “어제 저녁도 안 먹었잖아. 일단 먹어.” 한동안 굶었더니 식욕이 돌았다. 김욱은 급하게 먹는 심유진을 보며 물을 떠다 줬다. “천천히 먹어. 그리고 어제 부탁한 일에 대해서 조사해 봤는데.” 김욱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심유진이 먼저 말했다. “누가 한 일인지 알았어.” 김욱은 원장이 직접 해고했다는 것만 알아냈다. 하지만 입사하고 나서 원장을 만난적도 없을 직원이 원장의 미움을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원장을 조종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대표
원래 순서대로라면 사영은에게 가족들이 찾아가서 향을 피우고 인사를 올려야 하는게 맞지만 이제 사영은의 가족은 심유진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김욱은 가지 말고 일단 아픈 몸부터 잘 치료하라고 했다. 묘지는 교외에 위치했으니 고층빌딩이 가득한 도심보다 훨씬 추울 것이다. 열도 다 안 내린 상태에서 찬 바람까지 맞으면 병이 더 심해질 수도 있었다. “그래도 갈래. 저녁에 떠나면 이제 다시는 기회가 없잖아.”김욱은 그래도 몇 번을 더 확인했다.“정말 잘 생각한 거야?”심유진은 망설이지 않았다.“그래도 나한테 생명을 안겨 준 사람이잖아.”사영은이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후 심유진은 많은 것을 용서했다. 심유진이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과 그렇게 많은 것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사영은의 마지막은 너무 처참했다. 그러니 이렇게 후사를 마무리하는 것은 낳아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함도 있었거니와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걸 묻는 게 아니야.”김욱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정말 오늘 저녁에 떠날 거야?”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애초에 올 때 왕복으로 끊었다. 심유진의 다리가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니 가장 짧은 시간에 이쪽의 일을 모두 다 처리해놓고 다시 돌아가서 치료에 전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귀국 소식이 어떻게 허태준의 귀에까지 들어 갔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알게 된 것도 그렇게 신기한 건 아니었다. 경주는 애초에 허태준의 구역이니 킹 호텔 내부에도 그가 심어놓은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었다.“비록 너랑 대표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작정 피하는 건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김욱은 심유진과 오랫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미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심유진이 허태준과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사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모르겠다는 뜻과 같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영은은 그저 평범한 묘지에, 그녀가 그토록 깔보던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잠들었다. 심유진이 아무렇게나 하라고 했기에 김욱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추천을 받은 대로 묫자리를 선택했는데 마침 호수를 마주 보는 자리여서 풍경이 좋았다. 하지만 산 중턱까지 올라야 하는 것이 단점이었다. 경주는 요새 관리가 더욱 엄격해졌기에 김욱이 가져온 많은 물건들은 산에 가지고 올라갈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김욱은 농담으로 심유진에게 말했다. “사영은 씨가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심유진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영은 씨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김욱이 물었다.“젊었을 때는 몸을 팔고 우월한 삶을 얻었는데 이렇게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집안에서 아무런 존중도 받지 못하고 마지막에 생명까지 잃었어. 죽은 후에도 이렇게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어. 오늘이 지나면 우리도 다시 못 올 것 같거든.”의미가 있을까? 심유진이 그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건 자신이 잘 알겠지.”산을 오르려면 계단을 많이 타야 했는데 다 비교적 낮은 계단이었다. 김욱은 심유진을 부축 한 채 20분 정도 걸어서야 묫자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묘비는 질량이 가장 좋다는 검은색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글씨는 금색으로 새겨 넣었다. 사진이 비교적 희미했는데 언젠가 드라마를 찍을 때 찍었던 사진이었다. 당시 사영은은 20 대였고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채 웃고 있는 모습이 유달리 청순해 보였다. 심유진이 기억하고 있는 그 신경질적인 중년 여성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사진은 삼촌이 골랐어.”김욱이 말했다.“난 알아. 사실 삼촌이 그동안 한 번도 사영은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는 걸.”육윤엽은 사영은에게 매정하게 굴기는 했지만 어쨌든 평생 동안 사랑 했었던 유일한 여인이었으니 그래도 아직 많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심유진은 사실 조금 뜻밖이었다.“우리랑 같이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심유진은 호텔에 돌아온 후 다시 열이 올랐다. 딱 보기에도 많이 아파 보이는 모습이 아니었더라면 김욱은 심유진이 국내에 조금 더 머무르려고 꾀병을 부리는 건 아닌지 오해했을 것이다. 김욱은 육윤엽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육윤엽은 조금 못마땅해했지만 그래도 심유진을 먼저 걱정했다. “유진이 몸상태가 먼저야. 잘 챙겨줘.” 김욱은 간호사를 불러 수액을 맞게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또 같은 간호사가 심유진을 찾아왔다. 그녀는 김욱을 본 적 없었기에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낯선 남성의 모습에 방을 잘못 들어온 줄 알고 사과하며 다시 나갔다. “저기요! 잠시만요!” 김욱이 나갔을때 간호사는 방 번호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김욱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간호사는 따뜻하게 웃으면서 듣기 좋은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김욱의 모습에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방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자 얼굴이 더 붉어져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심유진이 억지로 정신을 차리며 간호사와 인사를 나눴다. 간호사는 여전히 상태가 호전되지 않은 심유진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직도 열이 내리지 않은 거예요? 약은 잘 챙겨 먹었어요? 수액이 몸에 안 맞는 건가요?” 심유진이 몰아치는 질문에 정신을 못 차리자 김욱이 대신 대답했다. “아침에 나가서 찬바람을 맞았어요.” 심유진은 김욱을 째려봤다. 간호사가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몸상태가 이런데 무슨 외출이에요! 자기 건강부터 챙겨야죠.” 간호사는 잔소리를 쏟아냈고 김욱은 옆에서 팔짱을 낀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잔소리가 끝나고 나서야 심유진이 입을 열었다. “둘이 이러고 있으니까 부부 같네.” 아이를 교육하는 면에서 쿵짝이 잘 맞는 부부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귀가 빨개져서 말했다. “놀리지 마.” 김욱도 말했다. 심유진은 억울했다. 그냥 장난으로 한말인데 이렇게 반응이 셀 줄은 몰랐다. 이러고 보니
심유진은 김욱에게 관심을 가지는 여자들을 많이 만났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예 상대도 안 했겠지만 심유진은 이 간호사가 싫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 “제 친오빠 같은 존재예요. 만약에 여자친구가 있다 해도 이런 걸로 질투하지는 않겠죠.” 간호사가 안심하는 것이 보였다. “여자친구가 없으신 거예요? 저렇게 멋지신데 애인이 없다고요? 거짓말하는 거 아니죠?” 사실 심유진도 신기하게 생각했다. 김욱 같은 사람이 여자친구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심유진은 적당한 대답을 내놓았다. “일이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도 없나 보죠.” “무슨 일 하시길래 저렇게 바쁘신 거예요?” 간호사가 진지하게 물었다. “저희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심유진은 더 이상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아까만큼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럼 확실히 바쁘겠네요.” 그래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심유진이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다시 물었다. “근데 허대표님만큼 바쁜 건 아니시지 않을까요? 허대표님은 연애할 시간 있는 것 같던데...” 간호사가 말하는 허대표님은 당연히 허태준일 것이다. 간호사가 보기에는 허태준 같은 재벌이야말로 전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일 것 같았다. “어제 허대표님이 거실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는지 알아요? 제가 갈 때까지도 거기 앉아계셨어요.” 간호사가 부러워하면서 말했다. 심유진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제 말씀하신 그 동기분은 어떻게 됐어요?” 심유진이 화제를 돌렸다. “아직도 팀장님들한테 사정하고 있죠. 근데 원장님이 하신 결정에 누가 토를 달겠어요. 저라면 당장 다른 병원에 취직할 거예요. 영안실에서 일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럼 당연히 직장을 찾기도 쉬울 텐데 왜 굳이 저 병원에 매달리는지...” 간호사는 너무 순진했
허태준의 마음은 하루 종일 불안하였다. 미팅 중에도 핸드폰을 드문드문 들여다보곤 했다.심유진은 허태준을 찾지 않았다.허태준은 자신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는 심유진이 먼저 그와 얘기하기를 바랐지만 그녀가 자신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할까 봐 두려웠다.이틀 동안 심유진이 허태준에 대한 냉담함, 심지어 배척감은 허태준도 느꼈다.그가 지난 시간동안 했던 모든 노력은 그가 희망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왔다.하지만 허태준은 후회하지 않았다.언젠가는 별이의 출생에 대해 얘기해야만 했다.하루라도 일찍 해결하는 편이 질질 끄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그는 부하직원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심유진씨와 김욱씨는 산소에 갔습니다. 심유진씨와 김욱씨는 이미 호텔로 돌아갔고 김욱씨는 금일 저녁 항공권을 취소하였습니다...”마음속으로 기뻤다. 그는 생각했다. 심유진이 남게 되었다는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닐까?심유진의 카톡은 갑작스레 도착했다.허태준은 마침 사무실에서 오전에 묵혀뒀던 문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핸드폰의 진동이 울리자 허태준은 급히 카톡을 열어보았다. 심유진이 보낸 문자 내용을 확인한 후 허태준의 희열은 불안으로 변했다.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 별이에 관한 이야기? 아니면 심유진과 자신에 관한 이야기?심유진의 두 날 동안의 표현을 보면 허태준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녀가 한평생 자신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허태준은 난생처음으로 심유진을 만나는 것에 대해 반감 같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하지만 두 사람의 문제는 해결해야만 했다. 도망만 쳐서는 안 된다.일부러 한참을 꾸물거린 후 허태준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문자를 보냈다.“여섯 시쯔음 갈게.”회사에서 호텔로 떠나기 전 허태준은 자신한테 용기를 북돋워 주기 위해 와인 반병을 마셨다.하지만 전혀 쓸모가 없었다.심유진의 방문 앞에 도착하자 허태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그는 한참을 들여 안정을 취하고 심유진한테 전화 했다.“문을 열어줘. 지금 방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