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처가 대표님과 결혼했어요: Chapter 271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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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이미 오전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고 심유진만 사무실에 남아 심청이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 사무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자 심유진이 고개를 들었다. 허택양이 미소를 지은 채 입구에 서있었다. “바빠요?” 심유진이 벌떡 일어섰다. “총 지배인님.” “아이고, 그렇게까지 예의 차릴 필요 없어요. 나이도 비슷하니까 그냥 택양 씨라고 불러요.” 심유진은 허택양의 살가운 모습에 깜짝 놀랐다. 갑자기 허태준이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직장 상사신데 그렇게 부를 순 없죠. 허 대표님이라고 부를게요.” 비록 이 호칭은 그를 허태준과 헷갈리게 했지만 심유진은 어떻게든 허택양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허택양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편하실 대로.” 허택양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 심유진을 불편하게 했다. 심유진은 딱딱한 어투로 말을 돌렸다. “근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허택양의 시선은 심유진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다. “혹시 구체적인 개선 방안이 있는지 물어보러 왔어요. 호텔 위생에 관한 일로 인터넷이 뜨겁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고 우리 호텔도 투숙객이 점점 줄어들어요. 심유진 씨가 회사 경영부문이랑 얘기해서 저희가 얼마나 열심히 개선하고 있는지 대외적으로 기사를 하나 냈으면 좋겠어요.” 심유진은 회사 일에는 항상 진심이었다. “네, 오후에 그쪽 책임자랑 얘기해 볼게요.” “전 오후에 바로 기사를 냈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니까 지금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해 보죠.” 허택양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심유진은 그걸 거절할 자격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허택양은 구내식당이 아니라 호텔의 식당에 있는 룸을 잡았다. 경영부문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심유진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침에 허택양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온 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심유진은 그들이 허택양의 비서들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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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침착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말은 신경 쓰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허택양은 이런 구설수에 휘말리는 걸 개의치 않아 했다. 오후에도 허택양은 두 번 더 심유진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일 때문에 온 것이긴 했으나 심유진은 밖에 여러 직원들이 이쪽을 자꾸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허택양은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은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얘기를 나눴다. 허택양은 심유진이 호텔에서 지낸다는 걸 알았기에 저녁식사도 함께 하자고 얘기했다. 심유진은 다이어트 때문에 저녁을 안 먹는다고 핑계를 대며 그 초대를 거절했다. 허택양은 그 변명을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무척 섭섭해했다.심유진은 지친 몸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허태준이 보였다. 소파에 기대앉은 채 투명한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와인 한 방울이 흰 셔츠에 튀었지만 허태준은 그걸 딱히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65인치짜리 초대형 TV에서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홈쇼핑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허태준은 TV를 응시하고 있기는 했지만 눈에 초점이 없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허태준의 그윽한 눈에 복잡한 감정들이 가득했다.“무슨 일 있어요?”심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허태준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어젯밤에 했던 얘기는 다 까먹었어?”심유진이 잠깐 멈칫했다가 그제야 상황 판단이 됐다. 아마도 허택양과 가깝게 지낸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그런 게 아니라 저랑 허 대표님, 아니 태준 씨 사촌동생분이랑은 그냥 일적으로 얘기만 나누는 사이에요.”“일 얘기를 하는데 둘이 같이 밥을 먹고 온 오후 사무실에 같이 있어?”허태준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목소리도 서리가 낀 듯 차가웠다. 누가 봐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은 모습에 심유진은 화가 나기도 했지만 맥이 빠지기도 했다.“그냥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세요.”심유진은 방으로 걸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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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허택양과 더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심유진은 며칠 동안 계속 객실 쪽에서 서성대다가 누군가 방으로 청소하러 들어갈 때가 되면 “기습”해 들어갔다. 습관을 기르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비록 직원들 모두 청소에 더욱 주의를 돌리고 있긴 했지만 잔 실수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심유진은 살짝 귀띔만 해주고 넘어갔지만 상황이 심각하다 싶으면 기록을 하고 일정한 벌금도 내렸다. 그 규정을 따르지 않거나 처벌에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심유진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단 일주일 만에 심유진은 “마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심유진은 이 별명에 딱히 반감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자신이 무서워서라도 일을 자각적으로 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일하게 부담스러운 점은 한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회의에서 허택양이 자신을 콕 짚어서 칭찬해 줬다는 점이다. 그러고는 “마녀”라는 별명을 비웃기도 했다.아마 원래의 의도는 다른 사람들도 심유진을 따라 배워서 직원들을 엄격히 교육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심유진은 그 말에 담긴 비웃음을 느꼈다.회의가 끝나고 심유진은 주방 쪽을 책임지고 있는 담당자 두 명이 험담을 하는 걸 듣기도 했다.“마녀라고 불리는 게 뭐가 자랑스럽다는 거지? 그냥 사람들한테 미운털 박혔다는 소리 아냐?”“그냥 아무 이유나 가져다 붙여서 칭찬해 주고 싶으신 거겠지!”“맞네... 지난번에 허 대표님이랑 단둘이 식사도 했다잖아. 내가 둘이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도 봤다니까.”심유진은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다 붙잡고 해명할 수도 없고 연예인들처럼 해명 기사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일주일만 있으면 이곳을 떠나게 될 테니 그때 가서 사람들이 뭐라 하건 딱히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심유진이 예상 못 한 부분이 있었다. 허택양이 본사에 심유진을 대구에서 이쪽으로 이직시켜 달라고 신청을 했다는 것이었다. 허택양은 이 일에 관해서 한 번도 심유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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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심유진이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 허택양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신청하면 무조건 통과되지 않을 거예요.” 허택양은 심유진과 협상을 하려고 했다. “아니면 이렇게 하죠. 일단 이쪽에서 일을 하다가 객실 쪽의 일이 다 순조로워질 때쯤에 한 번 더 신청할게요. 솔직히 대구보다 이쪽이 유진 씨를 더 필요로 해요. 부문을 개선한다는 게 두 주일 만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제가 유진 씨를 여기에 남기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허택양의 태도가 매우 진지해 보였다. 만약 허태준의 경고와 경주에 대한 나쁜 감정들이 없었다면 심유진은 이미 허택양에게 설득당했을지도 모른다. “죄송해요, 전 싫어요. 만약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시다면 제가 직접 본사에 연락할게요.” 허택양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기에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직접 상사를 찾아가 본사에 상황 설명을 부탁드리고 자신도 메일을 보내서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과 대구로 돌아가고 싶다는 사실 등을 설명했다. 하지만 본사는 이를 허락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인사발령 자료들도 이미 보내놓은 상태였다. 더 이상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걸 인식하자 심유진은 어쩔 수 없이 허태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번에 조금 유쾌하지 않은 일이 있고 나서 허태준은 평소보다 더 일찍 나가서는 더 늦게 집에 들어왔다. 심유진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나간 상태였고 심유진이 잠들고 나서 돌아온 탓에 일주일 동안 같은 방에 자면서도 한 번을 마주치지 못했다. 심유진은 거실에서 11시 반까지 안 자고 버텼고, 그제야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허태준은 심유진이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는지 잠시 멈칫하더니 먼저 말을 걸었다. “아직 안 잤어?” 목이 잠긴 탓에 말을 마치고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허태준이었다. 심유진은 하려던 말을 잠깐 미뤄둔 채 다급히 물었다. “감기 걸렸어요?” “심각해요? 약은 먹었어요? 지금이라도 감기약 사 올까요?” 몰아치는 질문에 담겨있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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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가능할까요?” “안될 건 없지.” 허태준은 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며 말했다. “도와주면 무슨 좋은 점이 있는데?” 심유진은 이럴 거라고 예상했다. 저번 제로 때 일만 해도 그랬다. 친구 사이에 그냥 서로 도와줄 법한 일들도 허태준은 일종의 거래로 받아들였다. 심유진도 맨입으로 도와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빚지고 사는 성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허태준이 원하는 대가들은 항상 난감했다. 이게 바로 심유진이 정말 급하지 않은 이상 허태준을 찾지 않는 원인이었다.“뭘 원하는데요?”심유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음...”허태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했다.“나 머리가 아픈데...”허태준의 시선이 심유진을 향했다.“좀 문질러줄래?”이 요구는 뽀뽀거나 포옹보다 훨씬 간단했다.“그래요.”심유진이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소파에 꿇었고, 몸을 살짝 허태준 쪽으로 기울여 태양혈 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줬다.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그 손길이 닿으니 허태준도 긴장감이 풀리면서 졸음이 밀려왔다.얼마나 지났을까, 허태준의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심유진이 나지막이 허태준을 불렀다. “태준 씨?” 대답이 없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허태준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수염도 조금 올라오고 눈 밑 다크서클도 심해진 모습이 항상 외모를 중요시 여기는 허태준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바빴을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유진이 마음이 아파 그 얼굴을 살짝 쓰다듬었다. 피부도 전보다 거칠어진 것 같았다. 거실에서 재울 수는 없었기에 심유진은 허태준을 살살 흔들었다. “태준 씨, 일어나 봐요.” 허태준은 살짝 움찔했으나 눈을 뜨진 않았다. “졸려...” 허태준이 웅얼거리며 팔을 올려 심유진의 허리를 감았다. “앗!” 심유진이 무방비하게 허태준의 품 안에 안겼다. “태준 씨.” 심유진은 허태준을 밀어내려고 했으나 허태준은 팔에 더 힘을 줄 뿐이었다. “가만히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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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회의는 오전 내내 지속됐다. 허태준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비서에게서 휴대폰부터 건네받았다. 휴대폰에 뜨는 건 호텔 인사팀 매니저와의 대화 기록이었다. 허태준의 요구에 따라 심유진을 다시 대구로 발령하려 했는데 거절당했다는 문자였다. “이번 발령이 회장님 명령이래요. 만약 대표님께서 다른 생각이 있으신 거라면 회장님이랑 잘 상의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아니면 저희 쪽도 많이 난감해지는 입장이에요.” 허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모든 것이 허택양의 계획인 줄 알았다. 기껏해야 둘째 삼촌네가 끼어들었을 줄 알았더니 할아버지까지 가담한 일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이 사건의 의미가 달라진다. “알겠습니다.” 허태준이 문자를 보내고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어르신은 전화를 받자마자 질문부터 던졌다. “유진이 일로 전화한 건가?” 이미 전화한 이유를 예측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허태준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이런 일을 벌이신 거죠?” “너네 집이며 사업 중심이며 다 경주에 있어. 그럼 아내 되는 사람도 언젠가는 너 따라서 경주로 올 것 아니냐. 난 그 시간을 좀 앞당겨준 것뿐이지.”“물론 사심도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가장 눈여겨보는 애가 너야. 그리고 유진 씨도 다른 손주며느리들이랑 다르고. 난 그 아이를 매우 좋아한다. 나이가 있으니 이젠 나도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너네가 다 경주에 있어야 자주 나한테도 들리지.” 이 말을 듣자 허태준도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그동안 사업만 살피느라 어쩌면 가족들 간의 정은 하나도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경주에 있고 싶지 않아 해요.” 허태준은 할아버지의 말을 따르고 싶긴 했지만 심유진의 감정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었다. “어릴 때 경주에서 안 좋은 일들을 많이 겪었었거든요.” “그럼 한번 물어보는 건 어떠냐. 이 노인네를 봐서라도 몇 년만 경주에 머물러달라고. 나한테 남은 시간도 얼마 없어. 내가 떠나거든 살고 싶은 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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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허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분간 대구로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아.” “왜요?” 심유진이 놀라서 물었다. 허태준이 해내지 못하는 일도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허택양의 지위가 더 높은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당신을 발령 낸 게 할아버지 뜻이었어.” 허태준은 변명할 방법이 없어 그냥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할아버지 몸 상태는 저번에 봤으니까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갈 거야. 남은 날이 얼마 없다고 여기시는데 혼자 너무 적적하셔서 우리가 자주 찾아뵙길 바라셔.” 심유진도 어르신을 매우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많이 못 받고 자라서인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어른들을 볼 때마다 더 정이 갔다. 그러니 만약 할아버지가 자신이 남길 바라신다면... “그럼 저 안 갈게요.” 심유진의 대답에 허태준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경주에 있기 싫어하잖아.” “경주를 싫어하는 이유는 저희 집안사람들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제 경주에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천천히 이 도시도 좋아해 보도록 노력할게요.” 심유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허태준은 심유진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그 반짝거리는 눈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그녀를 덥석 안았다. “고마워.” 허태준이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묻은 채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유진은 그런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태준 씨 안 바쁜 날에 같이 할아버지한테 가볼까요?” “그래.” 허태준이 그녀를 더욱 꽉 안았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으니 한평생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허택양은 누구에게서 들은 건지는 몰라도 아침부터 심유진을 찾아와서 물었다. “안 가기로 했어요?” 심유진은 진심으로 대꾸해 주고 싶지 않았다. 경주에 남게 된 것이 할아버지의 뜻이었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허택양이 동의도 거치지 않고 발령을 내버렸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허태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존중해하지 않는 상사는 심유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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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심유진은 멍해졌다. “데이트를... 해서 뭐 하시게요?” 허택양이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안 믿으실 수도 있지만...” 허택양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뭔가 큰 결심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사실 유진 씨가 직원들을 교육하는 걸 본 그날에 유진 씨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경주로 발령 낸 것도 사실 사심이었고요.” 심유진은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한참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줄을 잡고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대표님, 자꾸 이런 장난치지 마세요.” 허택양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안 믿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저 정말 유진 씨를 좋아해요.” 장난기가 하나도 없는 진중한 태도에 심유진도 조금 당황했다. 고백을 못 받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받았던 고백 중에 이번처럼 이렇게 당황스러운 적은 또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택양은 직장 상사였기에 너무 단칼에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났다. “죄송해요, 전 이미 결혼을 했어요.” 심유진은 허태준이 선물한 반지를 하고 오지 않은 걸 또 한 번 후회했다. 허택양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게 보였다. “정말 결혼한 거예요 아니면 절 속이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안 믿기시면 혼인 신고서라도 가지고 올게요.” 당연히 정말 가져올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허태준과의 관계가 폭로될 것이다. “그럴 필요는 없어요.” 허택양의 대답을 듣고 심유진은 한시름 놓였다. “결혼을 했건 말건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허택양이 사악하게 웃었다. “영원한 부부가 어디 있겠어요. 제가 노력하면 되죠.” 허택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심유진 앞의 책상을 짚은 채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제가 포기하지 않으면 돼요. 언젠가는 저한테 올 거라고 믿어요” 허택양은 말을 마치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심유진은 방금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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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처음 할아버지와 만났을 때는 허태준이 갑작스럽게 결정한 일이었기에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었다. 그게 아직까지도 마음에 걸렸기에 심유진은 아침 일찍부터 허태준을 깨워 같이 선물을 고르러 가달라고 했다. 허태준은 심유진을 말리지는 않았지만 선물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당신이 뭘 사던지 다 좋아하실 거야.” 심유진과 함께 백화점이란 백화점을 다 돌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자 허태준이 그녀를 타일렀다. “할아버지는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으셔. 그냥 성의만 표시하면 좋아하실 거야.” “성의...” 심유진은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허태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지난번에 할머니가 설날마다 만들어주시던 만두가 그립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허태준도 확실히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긴 했다. 항상 셰프님이 만두를 만들어주실 때마다 아버지가 할머니가 만든 게 훨씬 맛있었다며 추억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하지만 일찍 돌아가셨기에 허태준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 드리려고?” 허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괜히 힘 빼지 마. 할머니 돌아가신 후로 할아버지도 만두는 입에도 안 댔어. 다른 사람이 만든 건 그 맛이 안 난다고 하시더라.” “에이,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요.” 허태준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어쩌면 그 맛이 안 나더라도, 할아버지가 드시지 않더라도 그 마음만은 고맙게 받으실 것 같았다. 심유진과 허태준은 시장에 가서 만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사들고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니 할아버지는 의자에 앉은 채 돋보기를 쓰고 열심히 책을 읽고 계셨다. “손님 오셨습니다.” 손님을 맞으러 나온 집사가 방안을 향해 얘기하자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고 지팡이를 짚고 나오려 했다. 심유진은 다급히 달려가 할아버지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어르신은 심유진을 보며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놓기 아쉬워하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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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주방은 단독으로 작은집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허태준이 주방보조를 자처했기에 심유진도 거절하지 않았다. 요리를 시작하려는데 밖에서 집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서, 택양 도련님 오셨습니다.” 심유진은 택양이라는 이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허택양 씨요?” 심유진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당황해서 허태준에게 물었다. 허태준은 여전히 야채를 써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맞을걸.” “저 사람들이 여길 왜와요? 분명 저희 둘만 초대했다고 했는데?” 심유진은 매우 당황했다. 허태준이 시한폭탄이라면 허택양은 그 도화선 같은 존재였다. 그가 언제 폭발할지는 허택양이 어떻게 자극하냐에 달린 거나 다름없었다. “할아버지가 초대를 안 했다고 해서 오지 못하는 건 아니지.” 허태준의 눈빛에 순간 어둠이 깔렸다. 아마 저들은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오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허태준은 심유진과의 관계를 그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감추려 할수록 더욱 의심을 살게 뻔했다. 그러니 차라리 당당하게 공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일단 손 씻고 나가서 인사하자.” 허태준이 말했다. “전 안 가면 안 돼요?” 심유진은 누가 봐도 진심으로 가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왜 그래?” 허태준도 이런 반응은 조금 의외였다. “제가 낯을 가려서... 그리고 허택양 씨가 저희 둘의 관계를 알게 되면 저한테 불리하다면서요.” “여기까지 찾아온 거면 아마 이미 알고 있을걸.” 허태준이 식칼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더 이상 숨는 건 의미 없는 일이야.” 심유진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손에 묻은 밀가루를 물로 씻어냈다. “허택양이 저한테 어떻게 불리한데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어쩌면 허택양의 수단에 대해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잘 모르겠어.” 허태준이 앞치마를 풀며 말했다. 그는 줄곧 허태서와는 연락을 했으나 허택양은 해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고 그가 대구에 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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