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Chapter 1981 - Chapter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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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1화

무대 위의 쨍한 조명은 그녀의 얼굴로 비춰졌지만 그녀의 온 몸은 어두운 그림자 아래에서 마치 무언의 암시를 하는 것 같아보였다. 장면은 30년 전으로 돌아가 독을 탄 그 손을 자세히 보여줬다. 그 손은 꽤나 크기가 컸고 손등에는 혈관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손목에는 여성의 머리끈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끼워져 있었고 그 머리끈은 옅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옅은 노란색의 머리끈, 그것은 그녀들이 마지막에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출 때 끼는 머리끈과 일치했다. 화면은 거기서 뚝 멈춰버려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 독을 탔는지에 대해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었다. 관중들은 이미 마지막에 독을 탄 사람에 대해 토론 중이었는데 어떤 사람은 그 손의 주인이 진상현이라는 역할을 맡은 한열이라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이사라 역을 맡은 한현진이라는 주장을 했다. 왜냐하면 한현진의 손은 여자에 비해 꽤나 큰 크기였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의 주장에 한현진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보며 갸우뚱했다. ‘내 손이 크다고?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하지만 마지막 그 손은 사실 감독의 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손이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을 하든지 다 비슷하게 보이는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안창수는 미스터리 영화계에서 상을 수도 없이 받은 사람이라 관중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관중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났지만 한현진은 그들이 다 떠나기를 기다려서야 몸을 일으켰다. ‘이러면 사람들이랑 마주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사람들이 채 나가기도 전, 정명석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오랜 친구가 우연히 만났으면 인사라도 해야지. 너는 왜 이렇게 양심도 없냐?” 한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정명석에게 대답했다. “가만히 있어. 시비 걸지 말고.” “쯧.” 정명석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너한테 준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실시하다니, 강을 건너 다리까지 해체할 수 있는 자식이 왜 이러지? 지금 혹시 찔리는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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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2화

‘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한현진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정명석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대체품은 아니었나 보네.’ 정명석이 입을 떼기도 전, 한현진은 먼저 말을 꺼냈다. “도대체 누가 너한테 이런 자신감을 불어넣은 거지? 넌 진짜로 네가 강한서 씨만큼 잘생겼다고 생각해?” 그녀의 정명석은 또 다시 표정이 굳더니 언성이 높아졌다. “너 눈이 어디 잘못 됐어? 내가 왜 강한서 씨보다 못생긴 건데? 잘생긴건 둘째 치고 난 그 사람보다 젊어! 나 좋다는 여자들이 줄을 서있다고.” 한현진은 그의 말에 피식 웃더니 말했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사람이 왜 지금 내 앞에서 강한서 씨랑 비교하는 거지? 내 마음속에는 강한서가 제일 잘생겼어. 나랑 장난해 지금? 네 여자 친구한테도 물어봐. 네가 잘생겼는지 아니면 한서 씨가 잘생겼는지, 당연히 너를 고를걸? 똑같은 도리 아니야?” 정명석은 얼굴이 벌개진 채로 대답했다. “그냥 내가 졌다는게 어이가 없어 그런다! 그런 늙은이한테 지다니.” 한현진은 그의 말에 펄쩍 뛰며 물었다. “늙은이라니? 너는 30살도 채 못 돼서 죽는 병이라도 걸렸어?” “이런 시*!” 정명석은 화가 잔뜩 난 채로 소리 질렀다. “학교 다닐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는 순간에도 너는 가만히 있었어. 강한서 씨랑 나 둘 다 너랑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는데 왜 우리 둘은 이렇게 대우가 다른 거야?” “말을 그런 식으로 하니까 사람들이 너를 욕하는건 아주 정상적인 일 아니야? 그때 나는 유현아 때문에 가뜩이나 인간관계가 바닥을 칠 때였어. 근데 나한테 다른 사람 욕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었지 네가? 네가 보기에 그때 내가 따돌림을 덜 당하는 것 같아 보였나보지?”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그런 자식들을 상대나 했을 것 같아?” 한현진은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져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정명석은 한현진을 나무라는 말들을 마구 내뱉었다. “역시 머리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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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3화

한현진은 은서가 낯선 사람도 살갑게 대하는 모습에 조용히 아이를 지켜보았다. 정명석도 어린 아이를 많이 좋아하는지 한현진과 인사도 없이 은서의 손을 잡고 나가려고 했고 은서를 말리지 못한 한현진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따라나섰다. 영화관이 있는 층에는 어린 아이들이 놀만한 인형 뽑기와 각종 오락기기 그리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은서는 이런 곳에 많이 와본 적이 없어 무엇을 봐도 신기해했고 다 놀고싶어 했다. 한현진은 핸드폰을 들고 오락기기에 쓸 동전을 뽑으러 향했고 큐알 코드를 스캔하려는 순간, 정명석이 스캔하는 카메라를 손으로 가려버렸다. 그리고는 직원에게 손짓을 하고 다가오라고 하더니 직원에게 귓속말로 뭐라 말을 했다. 직원은 전혀 당황하거나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많은 양들의 동전을 들고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한현진이 어리둥절해하며 정명석에게 물었다. “너희 집에서 연 가게야?” 정명석은 묻는 한현진을 쳐다보며 콧방귀를 끼더니 대답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을 때도 너한테 계산하라고 한 적은 없었어. 지금 내가 벌어서 내가 쓰는데 어떻게 너한테 계산을 하라고 하겠냐? 내가 그렇게 능력 없는 놈으로 보여?” 한현진이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난 남편이 있어서.”“닥쳐.” 정명석은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 한현진은 그의 말에 입을 꾹 닫아버렸고 조금 잇다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돌려줄지 고민했다. 은서는 아주 신나서 폴짝폴짝 뛰며 인형 뽑기 기계로 꽤나 많은 인형을 쉽게 뽑았다. 그리고는 정명석의 손을 잡아 끌면서 각종 오락기기를 놀러 떠났다. 한현진은 은서의 손에 이끌려 이러 저리 끌려 다니는 정명석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명석이는 아직 젊어서 은서랑 놀아줘도 정력이 넘치는 구나. 하지만 은서가 나중에 크면 강한서 씨는 40이 거의 되는 나이겠네? 애랑 놀아줄 수 있겠어?’ 한현진은 나중에 강한서에게 꼭 열심히 헬스를 하고 체력을 키우라는 잔소리를 매일 하겠노라고 다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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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4화

오전에 금방 결혼서류를 떼고 저녁에 전 남자친구와 부둥켜안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다니. 한현진은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기 짝이 없게 느껴져 죽고만 싶었다. ‘매번 정명석이랑 만나면 좋은 일이 없다니까! 이 새*가 나한테 안 좋은 기운을 넘기는게 확실해.’ 한현진이 필사적으로 정명석의 품에서 벗어났고 강한서를 부르려는 순간, 송가람이 그에게로 다가가 물을 건네주는 모습을 발견했다. “...” 오전에 결혼서류를 떼고 저녁에 한현진 몰래 의붓언니와 나와서 영화를 보다니? 지금 보니 변명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하는 사람은 한현진이 아닌 강한서였다. 송가람은 강한서가 어느 한곳을 뚫어져라 보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의 시선을 따라 그쪽을 쳐다보았고 한현진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잘생긴 남자와 친밀한 행동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현진 씨?” 송가람은 깜짝 놀라며 강한서에게 물었다. “한서 오빠, 저거 한현지 씨 아니에요?” 그녀는 물으며 강한서의 눈치를 살폈다. 강한서는 생각보다 아주 담담한 반응을 보였지만 눈빛에는 분노와 당황함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송가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한서 오빠, 우리 가서 인사라도 해요.” 정명석은 한현진의 몸이 굳어버리는 것을 느끼고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가보았고 당연하게도 가만히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강한서를 발견했다. 그는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한현진을 잡고 있던 손에 서서히 힘을 풀었고 그녀를 놓아주었다. 정명석은 전에 몇 번 만났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강한서를 발견했다. 전에는 아주 선명하게 강한서가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하고 강하게 싫어하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는데 현재는 마치 자신이 안았던 여자가 강한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인냥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분했다. ‘기억을 잃었다고는 들었는데... 저 정도라고?’ “현진 씨!” 송가람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에게 다가오더니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다 만나고 정말 반갑네요. 친구 분이랑 영화 보러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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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5화

한현진은 송가람을 슥 훑어보았고 속으로 내심 그녀의 참을성을 감탄했다. 저번에 송씨 가문에서 그녀의 뺨을 두 번이나 쳤었지만 강한서의 앞에서 자신과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나누는 모습에 조금 놀란 것은 사실이다. 강한서는 잘생긴 얼굴을 이용을 해 매력은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속도는 아주 느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송가람의 입에서 관건적인 소식 하나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송가람의 말에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좋고요. 마침 저희도 밥을 먹으러 가려고 했어요.” 그러자 가만히 있는 강한서는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회사에 일이 더 있어서 바빠. 그럴 필요 없어.” 한현진과 송가람은 눈이 마주쳤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다 물음표 하나가 쳐져있는 것 같았다. 이내 한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강한서에게 말을 했다. “일이 있으면 먼저 가보세요. 저랑 제 동창은 가람 언니랑 밥 먹으로 갈 거예요.” 강한서는 침묵했다. ‘정 씨 동창?’ 그는 한성우가 전에 고중시절 사귀었던 여자에게도 친구 혹은 동창이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학창시절 때 그들 사이에서 이성 지간이 동창, 혹은 친한 친구라고 소개하면 애매하고도 뭔가 낌새가 이상한 티가 났었다. 송가람은 이 기회를 놓칠 세라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강한서에게 말했다. “한서 오빠, 온 오후 돌아다니느라 배고플 텐데 뭐 좀 드시고 가셔아죠. 몸도 아직 성하지 않은데 잘 먹어야 영양도 보충되고 그러는거 아니겠어요?” 강한서는 한현진을 슬쩍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송가람은 강한서가 자신을 거절할 수가 없어 수락을 했다고 생각해 얼굴에는 더 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정명석은 그런 두 사람을 조용히 관찰하더니 고개를 숙여 한현진에게 물었다. “네 전 남편이랑 의붓언니라는 사람은 무슨 사이야?” 한현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해줬다. “묻지 말아야 할 문제는 묻지마. 모르는게 약이고 알면 독이야.” “...” 강민서는 화장실에 나오고 나서 민경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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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6화

한현진은 웃음을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고 차마 고개를 들어 송가람의 얼굴을 볼 용기도 안 났다. 그녀는 강한서의 행동이 참 어이가 없다고 생각을 해야 할지 아니면 송가람이 멍청하다고 생각해야 할지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한주 강씨 가문의 저택으로 갔었던 한현진이라 강한서가 은서의 의견을 얼마나 잘 따라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애를 써가며 강한서와 그의 가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송가람이었지만 한주 강씨 가문에서 은서의 지위도 낮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어린 아이랑 다른 의견을 내며 다투려 하다니, 한현진은 송가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송가람의 입은 옷을 쭉 훑어보았고 오늘 왜 그녀가 일식을 먹고 싶어 하는지 대충 눈치를 챘다. 송가람은 늘 강한서의 앞에서 완벽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 했고 추한 모습들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평생 동안 완벽하게만 살아가겠는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려면 상대방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 사랑해줘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산다는 사실을 송가람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강한서는 많은 사람들과 접촉해보고 만나봤었기에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있는지 아닌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었다. 정명석은 매번 고기가 다 구워지면 은서의 접시에 놓아주며 아이를 살갑게 챙겼고 은서 다음은 한현진에게 먼저 놓아주었다. 그리고 불판에 남겨진 다른 고기는 당연하게도 정명석 본인과 강한서의 몫이었다. 강한서는 이런 것쯤이야 아무렇지 않은 건지 정명석과 신나게 대화도 나누었다. 그는 정씨 가문과 일적으로 만난 적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많이 서먹하지는 않았다. 강한서는 밥을 먹는 동안 정명석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물었고 덕분에 그들의 식사 자리는 아주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송가람은 밥을 먹는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현진과 정명석도 함께 밥을 먹자고 요청을 한 이유는 바로 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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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7화

정명석은 갑작스레 술을 찾는 한현진의 말에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기분이 좋은가 보네? 술까지 찾는거 보면.” 한현진은 그런 그를 슬쩍 쳐다보고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쓸데없는 말 참 많다.” 하지만 송가람은 강한서의 몸이 무척이나 걱정되는지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서 오빠, 오빠는 마시지마요. 가뜩이나 몸도 천천히 회복중인데 술이나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게 좋지 않겠어요? 그래야 더 빨리 건강한 몸이 되죠.” 강한서는 무뚝뚝한 말투로 답했다. “괜찮아. 명석 씨랑 좀 같이 마셔보지 뭐.” 장명석은 그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잠간 당황을 헀다. ‘명석 씨?’ “한서 오빠, 몸이 중요하지 술이 문제예요 지금? 왜 이래요. 걱정되게?” 송가람은 걱정돼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강한서를 보며 다시 말렸다. 그러자 강한서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 다정해진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조금만 마실게. 네가 나 대신 명석 씨랑 좀 마셔줘. 나랑 명석 씨 아버지 사이가 꽤나 좋거든? 나한테 그 일이 생겼을 때도 정씨 가문에서 참 많이 도와줬었어.” 송가람은 그의 말에 속으로 내심 좋아했다. ‘그래도 현진 씨 말고 나한테 대신 마셔달라고 하네? 내가 이젠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현진을 쳐다보았고 한현진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송가람은 강한서에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가 말까지 꺼냈는데 제가 거절할 수가 있겠어요?” 한현진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최고인가? 역시 강한서 씨 얼굴은 믿고 본다니까.’ 그녀는 송가람의 사뭇 다른 반응에 강한서의 “미남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명석은 고개를 숙여 나지막한 소리로 한현진에게 말을 걸었다. “음, 네가 그토록 바라는 남자는 이미 물 건너 간 것 같은데? 나랑 둘이서 먼 곳까지 도망이라도 칠까?” “도망은 개뿔. 닥치라고!” 장명석은 한현진의 말에 짜증이 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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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8화

“얘한테 내 이름을 기억시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냥 현진이의 관심을 끌고 싶었던 건지는 저도 아직까지 모르겠어요. 근데 매 수업이 끝날 때마다 현진이한테 선생님이 배워주셨던 중점 내용들을 알면서도 한 번 더 물어봤었어요.” “처음에는 현진이도 제가 수업내용을 물어보니까 깜짝 놀라더라고요. 나 같이 매일 잠만 자는 열등생이 갑자기 공부를 하려고 하니까 그랬나 봐요.” “그래서 댄 핑계가 바로 그거였어요. 우리 아빠가 매 시험 때마다 성적이 오르면 오른 점수만큼 2만원씩 주기로 했다고. 내가 봐둔 모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당시 가격이 1200만원인가 그랬어요. 그래서 나는 꼭 600점 이상의 점수를 받고 싶다고.” “제 얘기를 들은 현진이가 생각 외로 되게 열정적으로 저한테 공부를 가르쳐줬어요. 막 자기가 직접 쓴 필기 책도 저한테 넘겨주면서. 특히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나서는 수업도 빡세고 친구들도 다 이기적으로 변하더라고요. 자기가 공부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알고 있는 지식을 전파하려고 하지도 않고...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면서 남을 도운 친구는 정말 몇 안 됐어요. 그중 한명이 현진이었고.” “그때 현진이는 제가 기초가 되게 약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하나하나 가르칠 때마다 저한테 물었어요. 알아들을 만하냐고 혹은 이해할만 하냐고. 내가 못 알아듣는 거는 다시 가르쳐 주기도 했죠.” “남자들만 사는 숙소에서 늘 현진이에 대한 소문을 들었어요. 걔들이 그러더라고요. 처음에는 집 조건도 좋은데다가 부모님은 자선 사업을 한다면서 부러워했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복지 센터에서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했는데 현진이가 늘 그 아이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음식을 일부로 먹이면서 괴롭히고 때리고 욕하는 바람에 입양당한 여자애가 집에서 불행한 삶을 산다고. 그래서 친구들이 현진이를 따돌렸대요. 얘 인성이 너무 안 좋아서 같이 놀고 싶지 않아서.” “근데 그때도 전 걔들 말을 하나도 안 믿었어요. 속으로는 나한테 자기 소중한 시간까지 허비하며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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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9화

“그 사실을 알고 너무 화가 나서 막 웃음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현진이가 나한테 관심이 왜 없는가에 대해 많은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그게 내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학교에서 교복을 입으라고 하면 저는 딱 하얀 셔츠만 고집하고 다른 사람이랑 대화를 나눌 때나 현진이랑 대화를 나눌 때나 다 제일 잘생겨 보이는 각도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는 현진이랑 말할 때 목소리도 조절해가며 잘생겨 보이려고 애를 썼죠. 그러다가 어느 날, 현진이가 저한테 공부를 가르칠 때 가끔 갑자기 멍을 때리더라고요? 그래서 전 얘가 드디어 나한테 반응을 하는가 생각했어요.” “학창시절 현진이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하나도 숨기지 않는 아이였어요. 다른 여자애들은 몰래몰래 숨어서 저를 보곤 했는데 현진이는 당당하게 제 앞에서 제 눈을 보더라고요. 만약 다른 사람이었으면 경찰에 신고도 했을 거예요. 얘가 참 외유내강이었죠.” 정명석은 말을 하며 껄껄 웃더니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수능 시험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일인데 제가 딱 말을 걸려고 하는 순간에 저한테 연애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전 참 못난 놈이었죠. 그 말 한마디에 얼굴이랑 귀까지 다 빨개지고... 전 진짜 연애경험이 없었으니 당연히 없다고 했고 아직까지 제 마음을 흔든 사람이 없었다고 솔직하게 말해줬어요.” “그러더니 현진이가 그럼 우리 둘이 한번 만나보겠냐고, 연애라는게 뭔지 한번 경험해보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전 당연히 좋다고 했죠.” “진짜 하늘을 날 듯이 기뻤어요. 그날 뒤돌아서 갈 때 현진이는 아마 몰랐을 거예요. 제가 속으로 얼마나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는지.” “저녁이 돼도 잠도 안 와서 한달음에 우리 집에서 현진이 집까지 달려갔었어요. 현진이 방 불이 켜져 있었지만 얘를 부를 용기가 안 나서 혼자 바보처럼 두 시간 가까이 밖에 서 있다가 불이 꺼지는거 확인하고 돌아갔어요.” “전 진짜 한 번도 그 정도로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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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0화

“저 출국하는 일은 우리 가족들 빼고 아무한테도 안 말했거든요? 근데 현진이가 어떻게 아는지 몰라서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굳어버렸어요.” “그러다가 딱 한 사람이 떠올랐는데 그게 우리 아빠였어요. 설마 했는데 진짜 아빠더라고요. 그들이 현진이한테 찾아가서 딱 드라마에 나올 법한 말들을 막 했었나 봐요. 뭐 집안끼리 안 맞는다는 둥 이 연애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둥 이런 말들이요.” “그날부터 해외로 나가는 날까지 집안에 감금됐었어요. 현진이 소식도 모르고 현진이한테 연락 한 통 못했죠.” “유학하는 동안 그 시간들은 제 인생에서 제일 재미없는 시간들이었어요. 금방 도착해서 몇 년 동안은 아무와도 연락 안했죠, 근데 가끔 단체 방에서 누가 말을 하나는 조용히 봤었어요.” “현진이가 제일 우수한 성적, 즉 일등 장학금을 받고 태주 대학에 갔다는 소식이 단체 방에 쫙 퍼졌고요. 고등학교 때의 사람들을 떠나 대학교에 가서는 아주 잘 지낸다고 들었어요. 걔가 만든 작품 또한 학교 친구들에 의해 전시되었었고 화장까지 하니 전 리어은이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이 현진이 인줄도 몰랐어요. 이목구비도 고등학생일 때보다 더 뚜렷해져서 너무 예쁘더라고요. 얘는 진짜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고 있었어요.” “나중에 현진이가 졸업을 앞둔 시점에 단체 방에서 누가 그러더라고요. 술집에서 현진이를 봤는데 얘가 자기 아버지 손에 이끌려서 어떤 남자에게 술을 따르고 있었다고. 현진이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회사까지 망할 위기에 처하자 현진이 아버지가 현진이한테 그런 행동을 강박한다고 친구가 알려줬어요.” “그 병신 같은 새*! 현진이 빨리 시집보내려고 막 애를 쓰면서 중간에 돈이 들어오면 슥 가져가는 짓을 반복했어요. 그 사람은 현진이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 생각했죠. 이왕 결혼할거 나는 안 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그래서 우리 아빠 손을 다 피해 귀국했지만 결국 늦어버렸어요.”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두 눈을 가려버리더니 씁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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