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의 모든 챕터: 챕터 1961 - 챕터 1970

2283 챕터

제1961화

한현진이 웃음을 참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렸을 땐 티가 안 나. 나도 어렸을 땐 밖에서 많이 놀아서 하얗지도 않았어. 크면서 점점 하얘질 거야. 피부가 하얗지 않아도 괜찮아. 건강하고 자신감만 있으면 어떤 피부색이든 예뻐.”은서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기분 좋게 한현진과 약속 시간을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서는 은서가 보내준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었다. 사실 은서가 누굴 닮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주강운은 닮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강한서의 “장례식”에서 주강운은 은서를 봤었지만 그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정말 내가 괜한 착각을 한 건가?’——“민희 언니, 오늘 감이 좋으시네요. 얼마나 딴 거예요?”같이 카드를 하던 여자가 송민희에게 물었다. 송민희가 웃으며 말했다. “따기는 뭘. 조금 전 졌던 것만큼 다시 이긴 거야. 오늘 다들 집 가지 마. 조금 이따 여기서 야식 먹자고.”한 여자가 장난스레 말했다. “저희야 괜찮지만 단해 오빠 휴식하시는데 방해될까 봐 그러죠.”떠들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송민희는 자주 사람을 불러들여 집에서 카드를 놀았다. 그러나 강단해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기에 그는 송민희와 카드를 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오면 인사는커녕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니 그들도 새벽까지 카드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쉬고, 우리는 우리대로 놀면 돼. 서로 방해되는 것도 아니잖아.”송민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재의 방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강단해가 외투를 걸치고 급히 밖을 나섰다. 깜짝 놀란 송민희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당신, 이 저녁에 어딜 가요?”강단해가 신을 갈아신으며 대답했다.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처리하러 가야 할 것 같아.”“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요?”“말해도 모르잖아.”말하며 강단해는 문을 열고 그대로 집을 나섰다. 몇 마디 중얼거리던 송민희는 다시 카드에 집중했다.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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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2화

“난 또 누구라고. 우리 집안 큰도련님이셨네. 이 늦은 시간에 잠은 안 자고 왜 나한테 전화한 거야?”덤덤한 말투였지만 자세히 들으면 비아냥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강한서가 강현우를 경찰에 신고한 일로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비록 강현우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그때의 분노를 삼킬 수가 없었다. 강단해가 계속 충동적으로 일을 만들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진작 친정집을 동원해 강한서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이다. 비꼬는 송민희에 강한서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퍽 다정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작은어머니, 저희 엄마가 경찰서에 연행됐어요.”송민희가 하하 웃더니 말했다. “하늘이 무심하시지는 않구나.”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삼촌 집에 안 계시죠?”멈칫하던 송민희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 거니?”강한서가 말했다. “엄마가 도움을 청할 곳이 저희 집안 삼촌 말고는 없잖아요.”송민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전화해서 날 모욕하려는 거니?”“아뇨. 전 작은어머니를 모시러 온 겁니다.”그 말에 송민희가 멍해졌다. “뭐라고?”강한서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도련님과 형수 사이가 유별한데, 엄마가 일이 생겼으니 삼촌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있죠. 하지만 삼촌 혼자 가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작은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주먹을 꽉 움켜쥔 송민희가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 지금 어디니?”“작은어머니 댁 앞이요.”“...”강한서가 말을 이었다. “나오세요. 사모님들 모두 가셨어요. 오늘 밤 일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강한서는 송민희의 체면까지 모두 고려한 것 같았다. 송민희가 심호흡을 내뱉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한서는 아들인 강현우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신미정 그 멍청이는 무슨 재간으로 이런 아들을 낳은 거야?’강한서가 기다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송민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렬한 레드 외투로 갈아입은 그녀는 생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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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3화

송민희는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도 강단해가 신미정을 도와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생각한 송민희가 휴대폰을 꺼내 두 형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전송한 그녀가 고개를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네가 네 엄마에게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굴 줄은 몰랐네.”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엄마도 저에게 특별히 따뜻한 분은 아니셨잖아요. 작은어머니, 아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유산을 나누는 일에만 급급한 엄마를 보신 적 있으세요?”송민희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송민희는 강한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었다. 만약 신미정이 매번 정인월 앞에서 강한서의 성적을 자랑하며 강현우를 무시하지만 않았다면 송민희는 강현우에게 강한서를 따라 배우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신미정은 인정머리가 없는 인간이었다. 신미정은 늘 송민희 앞에서 강현우의 성적이 낮다는 얘기를 언급했다. 그녀는 심지어 일부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강현우에게 성적을 묻고는 강한서는 만점을 몇 개를 맞았느니, 한 번도 한서의 공부를 걱정해 본 적이 없다느니 하면서 자랑했다. 강한서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본인은 아무것도 도와준 것이 없으면서도 신미정은 모든 것이 전부 자기 덕분인 듯 말했다. 부모에 자식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귀한 보물이었다. 그러니 그런 귀에 거슬리는 비교를 듣고 싶어 하는 엄마는 없었다. 그러니 신미정은 진작 송민희에게 미운털이 박혔던 것이다. 강한서가 실종되었을 당시, 회사 경영권 분쟁을 떠나서 송민희는 진심으로 강한서를 걱정했고 또 그의 생사를 알 수 없어 슬퍼했었다. 신미정이 그토록 다급하게 강한서의 유산을 노릴 것이라고는 송민희 역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들 가족이 무슨 난리를 피우든 그건 송민희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단해가 그 일에 끼어든 건 송민희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늘 남편인 강단해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일에서 강단해가 보인 행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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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4화

강단해는 송민희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투정 그만 부리고 차에 가서 기다려.”송민희가 강단해의 옷을 잡고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된다고 했잖아요. 형님은 아들이 없어요, 딸이 없어요? 당신이 왜요?”“한서와 민서가 오겠다고 했으면 왜 나한테 전화했겠어? 어쩔 수 없으니까 날 찾은 게 분명하잖아.”화가 난 송민희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자기 아들딸도 풀어주지 않으려는 사람을 당신이 뭔데 도와주려는 건데요? 게네들이 안 온다고 해도 친정집 식구들도 있잖아요. 형님은 동생도 있는데 왜 당신이 나서서 나대는 거예요?”강단해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말을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나서서 나대다니? 형수님도 우리 강씨 가문 식구잖아. 형수님에게 일이 생기면 우리 가문은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니라는 거야?”“강씨 가문 체면을 생각하기는 한 거예요?”송민희가 냉소 지었다. “그럼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어서 형님이 경찰서에 잡혀 왔는지 알기는 해요?”강단해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든 우리가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는 없잖아.”“검찰이 전 의원을 데려갔어요. 형님은 전 의원을 딸과 장씨 가문을 맺어줬고요. 지금 검찰에서 전 의원의 비리를 캐고 있어요. 만약 형님이 정말 전 의원과 어떤 관련이 있다면 우리 가문도 같이 휘말리는 거라고요. 그런데도 형님을 풀어주는 일에 힘쓰고 싶어요? 사람들이 이 일을 빌미로 공격할까 봐 두렵지는 않아요?”강단해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짓이겼다. “형수님께서는 전 의원과 경제적 거래가 없다고 하셨어. 이번 일은 형수님관 관련 없을 거야.”“형님 말이면 다 믿는 거예요? 형님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이렇게 부랴부랴 달려와 형님을 감싸주려고 했겠어요?”강단해가 입술을 짓이겼다. “아무리 그래도 한 가족이잖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내버려둘 수 없으면요? 어떻게 할 건데요? 우리 가문 이미지 전부를 걸기라도 할 거예요? 아주버님이 돌아가시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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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5화

말하며 송민희는 휴대폰으로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다. “형사님, 오해예요. 저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얘들은 우리 조카들이고요. 설이라 조카들이 고모부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해주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식당까지 빌려 설 인사를 하려고 했거든요. 술을 마시기 싫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강단해의 얼굴이 분노로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 여자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거예요.”경찰은 강단해를 힐끔 쳐다보더니 송민희가 보여준 사진을 자세히 관찰하고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손을 흔들었다. “입구 막지 마시고 차는 옆으로 빼주세요.”“알겠어요. 얼른 갈게요.”경찰에게 사과한 송민희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웃음을 거두고 조수석에 올라타 차갑게 말했다. “가자.”뒷좌석의 강단해는 직업 군인 출신인 두 조카 사이에 앉았다. 강단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는 지금 차에서 내리기는커녕 조금만 움직여도 손목을 꽉 잡혔다. 한평생 이런 창피는 당해본 적이 없는 강단해가 어두운 얼굴로 송민희에게 소리쳤다. “넌 정말 대단한 여자야. 내일 당장 이혼 서류 제출해.”송민희가 그런 강단해를 힐끔 쳐다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안 할 거예요.”스포츠카가 강한서가 타고 있던 차량을 지나치자 강한서는 갑자기 차창을 내려 덤덤한 시선을 보냈다. 멈칫, 행동을 멈춘 강단해는 그제야 송민희가 이곳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들이 경찰서를 나서자 강한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단해는 송민희에 의해 잡혀갔지만 그가 데려온 변호사는 아직 경찰서에 있었다. 그 변호사는 지금 강단해의 비서와 연락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상의하려고 했다. 소리 없이 그 변호사에게 다가간 강한서가 상대방의 휴대폰을 쓱 가져갔다. 그에 변호사가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강한서가 휴대폰을 돌려주며 태연하게 말했다. “돌아가세요.”“하지만—”“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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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6화

멈칫하던 강민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미정을 불렀다. “엄마...”신미정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민서야, 엄마가 오늘 일부러 너한테 그렇게 못되게 대한 거 아니야. 네가 한현진을 도와 날 속인 게 정말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 그래서 그런 거야. 너 어렸을 때 엄마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뭐든 좋은 건 전부 너에게 줬어. 네가 경찰서에 들어갔을 때도 내가 여기저기 부탁해서 겨우 꺼내줬는데, 네가 엄마를 나 몰라라 하면 안 되지.”강민서가 시선을 내리고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전 못 도와드려요. 오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그럼 넌 그렇게 두 눈 멀쩡히 뜨고 엄마가 들어가는 걸 보고 있을 거야? 넌 이 안에 어떤 상황인지 알기는 해? 7, 8명이 한방을 쓰고 있어. 침대도 없고 악취도 심하다고. 보일러도 없어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어. 민서야, 엄마 몸이 안 좋아서 정말 못 견디겠어. 엄마 좀 도와줘.”강민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저도 어떤 곳인지 알아요. 거기선 엄마 성질 좀 죽여요. 안에 있는 사람들, 전부 범죄의 벼랑 끝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최대한 건드리지 마셔야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강민서의 말에 신미정은 울던 것도 멈추고 그만 멍해졌다. 살려달라고 전화한 것이지 설교나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불쌍한 척해도 통하지 않자 연기는 아예 집어치운 신미정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강민서! 이 배은망덕한 것. 내가 널 괜히 예뻐했어. 사인하고 돈 좀 내면 되는 건데, 그것도 못 해줘? 내가 이 나이에 여기서 이러고 있으라니, 네가 사람이니? 네가 이런 애인 줄 진작 알았다면 애초부터 태어나자마자 널 목 졸라 죽여야 했어.”“내가 여기 있으면 너에겐 뭐 좋은 일이라고! 나에게 이런 오점이 생기는 한, 다른 사람이 넌 안 헐뜯을 것 같아? 고고한 재벌집 자제들이 너와 계속 친구 해줄 것 같냐고. 네가 그동안 한 짓들 때문에 넌 제대로 된 집안과는 결혼도 할 수 없을 거야. 너—”강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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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7화

사실 강민서는 민경하가 무슨 일이냐며 물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오늘 밤 있었던 일이든, 조금 전 신미정과의 통화 내용이든 그 어떤 것도. 한참 동안 화장을 닦던 강민서의 배가 꼬르륵 소리 냈다. 침묵을 깨는 소리에 강민서는 괜히 뻘쭘해졌다. 오늘 하루 종일 신미정이 결혼식에서 한현진에게 무슨 짓을 벌일지 몰라 마음을 졸이고 있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했었다. 배가 신호를 보내서야 그녀는 배고프다는 것을 인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배고픔보다는 창피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민경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있던 보온 도시락을 열어 강민서에게 건넸다. 향긋한 호빵 향이 물씬 풍겨오자 강민서는 그만 멍해졌다. 민경하가 말했다. “엄마가 민서 씨 드시라고 만들어주신 고구마 호빵이에요. 조금 식었을 거예요. 드시기 싫으면 다른 거 먹으러 가요.”“아뇨.”강민서가 도시락을 품으로 확 당기며 시선을 내렸다. 그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충분히 좋은걸요.”민경하가 차창을 비스듬히 열고는 물을 강민서에게 건넸다. “드세요. 다 드시면 집에 데려다줄게요.”강한서가 고개를 숙여 작게 대답하고는 고구마 호빵을 들어 한 입 한 입 먹기 시작했다. “고구마 호빵도 만들 줄 아시고, 아주머니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민경하가 말했다. “맛있어요? 엄마도 얼마 전에 배운 거예요. 지난번 같이 식사할 때 민서 씨가 계속 고구마 호빵을 드셨다면서 배워보신 거라고 하더라고요. 대표님께서 민서 씨를 데리러 가라고 하셔서 엄마가 드셔보라고 조금 담아주셨어요.”그 말에 강민서가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었다. 코끝이 찡해오더니 후드득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똑같이 자식을 둔 어머니였다. 강민서는 심지어 민경하의 여자친구도 아니었지만 고윤은 강민서를 위해 한 번도 만들어 본 적 없는 호빵 만드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친엄마인 신미정은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고 그녀는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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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8화

한현진이 홱 손을 거두며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왜 내 이불을 덮고 있는 거야?”몸을 일으키던 강한서가 한현진의 말에 멈칫했다. “누구 이불인지 잘 봐요.”고개를 숙여 덮고 있던 이불을 확인한 한현진이 입을 닫았다. 그녀는 조용히 강한서의 이불에서 빠져나와 자기 이불을 가져와 다시 덮었다. “나 예전엔 얌전히 잤어.”한현진이 애써 해명했다. “임신해서 그런 게 분명해. 배 속의 아기 때문이야.”강한서가 침대에서 내려와 잠옷을 벗고는 셔츠를 걸치더니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괜찮아요. 먼저 몸정이라도 쌓자면서요. 이해해요.”말하며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엔 그냥 한 이불 덮자고 얘기해요. 빙빙 돌려 말할 필요 없어요.”“...”‘난 그런 적 없거든.’요즘은 정말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분명 잠들기 전엔 각자 자기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녀는 늘 강한서의 이불 속에서 눈을 떴다. 처음 몇 번은 강한서가 일찍 일어난 덕에 뻘쭘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얼굴을 마주 보며 눈을 뜬 탓에 강한서는 한현진이 그의 몸을 탐해 한밤중에 기어들어 온 것이라고 오해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한현진은 정말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임신한 후로 한현진은 눈을 감기만 하면 깊은 잠에 빠졌다. 어떨 땐 강한서를 유혹해볼까 생각하다가도 강한서가 침대에 올라오기도 전에 먼저 잠에 들곤 했다. ‘설마 내가 이 정도로 잠버릇이 심해졌다는 거야?’강한서는 침대에 앉아 괴로운 얼굴을 한 한현진을 힐끔 쳐다보았다. 기분이 꽤 상쾌해졌다. “병원 가게 이젠 일어나서 준비해요.”머리를 움켜쥔 한현진이 멍한 채로 대답했다. 그녀가 방에서 내려왔을 땐 테이블에 꽃 한 다발이 놓여있었다. 꽃잎에 이슬까지 맺혀 있는 싱싱한 꽃이었다. 꽃다발 앞으로 다가온 한현진은 옆에 하늘색 보석함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멈칫하던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넥타이를 매고 있던 강한서가 한현진이 돌아보자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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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9화

“꽃도 민 실장님이 고르신 거지?”한현진이 꽃을 만지며 물었다. “역시 민 실장님 안목이 좋아. 싱그러운 것 좀 봐.”강한서가 그만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꽃은 제가 산 거예요.”한현진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꽃은 왜 샀어?”“전—”강한서가 한현진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꽃 파는 여자아이가 불쌍해 보이길래 전부 사 왔어요.”‘개자식, 한번 답답해 보라지.’한현진이 콧방귀 뀌었다. “어쩐지 시들시들하더라니, 땡처리하는 걸 사 온 거네.”그녀의 말에 강한서는 어리둥절해졌다. ‘민 실장이 사 온 줄 알았을 땐 싱그럽다고 하더니, 내가 사 온 거라니까 시들시들하다고?’강한서는 꽃다발을 노려보며 화가 난 듯 꽃망울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곤 차에 탈 때까지 한현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강한서의 모습에 한현진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땐 겨우겨우 참았지만 아무도 없이 단 둘뿐이자 그는 온 얼굴로 기분을 드러냈다. ‘이런 같잖은 연기력으로 무슨 기억 잃은 척을 해.’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곳은 한성대학병원이었다. 이곳에서 검진과 진료를 받는 사람은 대부분 퇴직한 공무원이거나 연예계의 배우들이었다. 개인 정보 보호와 기밀성이 좋은 병원이었다. 한현진의 주치의는 한준우의 선배였고 전에 이미 진료를 보인 적이 있던 터라 한현진의 몸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강한서는 검진 내내 한현진 옆에 붙어있었다. 검진 결과를 받을 때마다 그는 한참을 들여다보며 확인하곤 했다. 그 모습에 한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의사도 아니고, 보면 알아?”강한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직도 아침 일 때문에 화가 난 듯했다. 한현진이 입을 삐죽이며 마음속으로 욕을 지껄였다. ‘쪼잔하긴.’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던 의사가 갑자기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곧 미간을 찌푸리고 모니터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표정이 조금 굳어져 있었다. 한현진의 심장도 같이 덜컹 내려앉았다. 매번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의사의 갑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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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0화

한현진에게 식단을 다시 짜준 의사는 그녀에게 혈당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쌍둥이는 아무래도 한 명을 임신한 것보다 위험 부담이 높았다. 그러니 태아의 성장 속도를 엄격하게 조절해야 했다. 태아가 작아야 발육도 잘 되고 건강했다. 그리고 훨씬 수월하게 출산할 수 있었고 산후 회복도 더 빠를 수 있었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꺼내 의사가 알려준 모든 것을 메모장에 기록했다. 열심히 듣고 있던 한현진은 물컵을 가지려다 메모장에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는 강한서의 모습을 보고는 괜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회사의 나이 지긋한 임원이 정색하며 회의 기록을 작성하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혀 의사의 말을 받아적는 모습 같지 않았다. 진료실에서 나온 후 강한서는 줄곧 한현진의 손을 잡고 있었다. 한현진은 그런 그에게 기억 잃은 연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흥분되고 걱정스러움이 섞인 강한서의 감정을 한현진은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꽉 맞잡은 손가락 사이로 강한서의 마음이 조금씩 전해졌다. 사실, 그녀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한현진은 하늘이 가엽게 여겨준 것이라 생각했었다. 쌍둥이라니, 감히 꿈 꿔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갑작스러운 일도 아닌 듯했다. 그녀는 얼마 전 꿨었던 해파리 꿈을 떠올렸다. 꿈속의 예쁜 물방울은 두 개로 갈라졌었는데 어쩌면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던 태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의 식욕 역시 같은 개월 수의 임산부보다 더 왕성했다. 게다가 너무 쉽게 배고픔을 느꼈다. 이제 보니 쌍둥이를 임신했으니 식욕이 좋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쌍둥이... 교수님 말처럼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면 얼마나 좋겠어.’‘물론 딸이든 아들이든 내 새끼면 다 좋지.’혼자만의 생각에 푹 빠져있던 한현진은 앞을 제대로 보지 않아 남자에게 부딪혀 그의 손에 들려있던 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깜짝 놀란 한현진이 사과하며 허리를 숙여 그 남자의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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