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순결을 가져간 남자가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881 - 챕터 890

2823 챕터

제881화

고윤희는 한 번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달라고 조르지 않았다.여자는 적금이 있어야 한다며 그가 건넨 돈도 전부 거절했다.그때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경민 씨, 나 손발 멀쩡해. 스스로를 먹여 살릴 힘 정도는 있다고. 나 요리도 잘해. 마사지도 잘하고. 그래서 당신 돈은 필요 없어.”그녀가 매번 거절했기에 그도 더 이상 그녀에게 억지로 돈을 건네지 않았다.사실 남자도 사심이 있었다.그녀를 오랜 시간 옆에 데리고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진심이 무엇인지 헷갈렸다.사랑일까?아닐 것이다.그는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그냥 서로의 존재에 습관이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그는 그녀에게 돈을 주었다가 그녀가 정말 다른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애를 낳을까 봐 두려웠다. 구경민은 그녀의 남자를 살려둘 자신이 없었다.그래서 그녀가 돈을 거절하면 억지로 쥐여주지는 않았다.어차피 그에게는 그녀를 평생 먹여 살릴 만한 돈이 있었다. 그녀는 평생 그의 곁에서 안락한 삶을 살면 된다. 그의 옆에서 애교를 부리고 싶으면 부리고 자기라고 불러도 받아줄 수 있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만족해 줄 수 있다.두 사람이 함께한 세월이 오래되면서 피임에 주의한다고 했지만 원치 않은 아이가 두 번이나 찾아왔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에게 매달리는 대신 혼자서 처리했다.그렇게 사려 깊은 그녀의 모습이 구경민은 마음에 들었다.그들이 함께한 시간이 벌써 6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한 달 전, 고윤희는 세 번째 아이를 지웠다.그녀는 이번에도 수술 뒤에 그에게 사실을 고했다.그날 그녀가 미치도록 안고 싶어서 침대에 쓰러뜨리자 창백해진 얼굴로 힘없이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경민 씨, 오늘은 그냥 하지 말까?”“왜, 어디 아파?”그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꾸했다.“미… 미안해. 내가 부주의해서… 일 끝나고 바로 약을 먹었어야 했는데… 또 임신했거든. 오늘 오후에 수술하고 오는 길이야.”그렇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는 건 그의 착각일까.구경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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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구경민은 한참 동안 복잡한 시선으로 악몽을 꾸며 흐느끼는 고윤희를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면 그는 함께한 6년 동안 한 번도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 없었다.너무 온순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구경민은 원래 여자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고윤희를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흔들어서 깨워야 할지 착잡했다.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울던 고윤희가 잠에서 깼다.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그의 팔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을 바라보았다.조금 전 꾸었던 꿈이 아직도 머리에 선했다.꿈속에 나타난 건 금방 걸음마를 뗀 여자아이였다.짧고 가냘픈 팔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는 그녀의 부름을 듣지 못한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그렇게 정처 없이 걷던 아이는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수술이 끝난 뒤, 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이도 있으신데 이렇게 자꾸 중절 수술을 하시고 몇 년 지나면 정말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오늘 수술한 아이는 여자아이였어요. 환자분이 워낙 피부가 하얗고 예쁘시니 아이가 태어났으면 엄청 예뻤을 거예요. 참… 안타깝네요.”그 말을 들었을 때 고윤희는 누군가가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예전에는 아이를 원치 않았던 적이 있었다.자신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아이에게 행복을 줄 자신이 없었다.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구경민과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그녀는 구경민과의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하지만 그의 사랑이 자신을 향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그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 없었다.구경민은 그녀를 데리고 각종 모임에 참석했고 그의 지인들도 그녀를 친근하게 제수씨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구경민의 애정은 데리고 있는 애완동물을 향한 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걸.그는 그녀에게 이 나라 어떤 여자도 누릴 수 없는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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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3화

구경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이가 갖고 싶었어?”고윤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거 아니야! 난 아이 같은 거 원한 적 없어!”“진심이야?”남자가 다시 물었다.고윤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경민 씨, 나도 여자야. 아이를 지운 지 얼마나 됐다고… 속상한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나는 성인이야. 내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 아이를 낳으려면 그 아이의 미래도 책임질 수 있어야 해.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될 수 없어. 경민 씨 옆에서 6년이나 살았던 것만으로 만족해. 당신은 나한테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행복을 주었어. 난 욕심 부리지 않아, 경민 씨.”말을 마친 그녀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당신 옆에서 당신을 보살피고 매일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나는 큰 은혜를 입은 거야. 절대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복에 겨워 눈앞의 행복을 망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구경민은 그제야 시름이 놓였다.그는 여자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고개를 숙여 여자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었다.“당신은 내가 만났던 여자 중 가장 착한 여자야.”그가 부드럽게 말했다.고윤희는 그의 품에서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사랑한다는 말 듣고 싶지 않아?”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세 글자가 듣고 싶어서 허락한 건 아니었다.매번 그 말을 할 때마다 수줍게 애교를 부리던 그녀의 표정이 보고 싶었다.구경민보다 6개월 연상인 고윤희는 그의 앞에서 애교를 부리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그래서 그녀의 애교가 보고 싶었다.“자기야… 사랑해!”그녀는 수줍게 달아오른 볼을 들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그 표정 하나가 구경민의 몸에 불을 지폈다.그는 그녀를 거칠게 밀치고 욕실로 들어갔다.한 시간 뒤, 욕실에서 나온 그가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방에 돌아가서 자!”고윤희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것 역시 자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그의 서툰 배려라는 것을 잘 알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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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또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한 달 전쯤에 아이를 지운 뒤로 아이는 자주 꿈에서 나왔다. 하지만 문밖에서 작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앳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아이의 음성은 꿈이 아니었다.도대체 이 시간에 누가 아이를 밖에 내보낸 걸까?고윤희는 옷장에서 대충 가운을 찾아 걸치고 나가서 문을 열었다.지금도 꿈인지 현실인지 약간 헷갈렸지만 아이의 얼굴이 궁금했다.문이 열리자 핑크색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아이가 그녀를 향해 생긋 미소 지었다.“이모, 너무 예쁘시네요. 우리 엄마보다는 아주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예뻐요.”아이는 투명한 눈망울을 깜빡이며 고윤희를 올려다보았다.눈앞의 예쁜 이모를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1위의 자리를 엄마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고윤희는 또다시 가슴이 뭉클했다.그녀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누가 왔나 했더니 너구나. 미인인 네 엄마를 닮아서 너도 예쁘고 똑똑하구나. 네 엄마보다는 예쁘지 않지만 너는 네 엄마보다 더 예쁜걸.”“이모,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알아요?”아이는 문에 기댄 채,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자신의 엄마가 무척 자랑스럽다는 표정이었다!고윤희는 눈을 곱게 휘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그래. 너희 엄마 이름이 신세희지? 어디 보자…. 너는 신유리구나!”신유리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떨구었다.“쳇! 놀래켜주려고 했는데 이미 들통이 나버렸네요.”“하지만 이모는 예쁜 너를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아.”아이도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도 이모가 좋아요.”“나도 네가 좋아.”“우리 엄마도 이모가 좋다고 그랬어요. 우리 아빠한테 하는 얘기를 제가 들었거든요. 오늘 이모랑 같이 백화점 쇼핑하고 싶다고 하길래 제가 이모 보고 싶다고 엄마한테 졸랐거든요. 이모, 오늘 우리랑 쇼핑하러 가요. 엄마의 다른 두 친구분도 오신다고 했어요.”아이는 쉬지도 않고 종알종알 열심히 떠들었다.그러면서 통통한 손으로 고윤희의 손을 잡았다.부드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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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5화

세상에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을까!그녀는 구경민이 평소에 하던 말이 떠울랐다.“부소경 그 녀석은 요즘 아주 딸바보가 따로 없어! 예전에 단호하고 냉철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다니까. 아무한테도 정을 안 주고 잘 웃지도 않던 놈이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 딸내미가 보고 싶다고 말이야.”‘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집에 있는데 당연한 게 아닐까?’“가요, 이모. 엄마가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고윤희가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신유리는 그녀의 손을 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어젯밤 엄마에게서 예쁜 이모와 백화점 쇼핑을 갈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신유리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 너무 좋았다.물론 유치원에도 친구가 많았다.하지만 엄마의 친구라면 자신에게도 친구라고 생각했다.그렇게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와 고윤희가 아래층 거실로 내려왔다.고윤희는 구경민과 함께 나갈 때면 항상 정숙하고 단아한 차림을 고수했다.유독 오늘만 신유리의 성화에 못 이겨 어린애들이나 입을 법한 귀여운 차림을 했다.여자 나이 서른넷이면 적지 않은 나이건만, 구경민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스트레스도 없이 지내다 보니 그녀는 신세희와 또래 나이로 보였다.한편, 신세희는 거실에서 구경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구경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지만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신세희는 들어주는 편에 속했다. 거실에서 고윤희를 기다린 지도 시간이 꽤 흘렀지만 구경민이 질문하고 신세희는 대답을 간단하게 해주는 정도였다.“어제 사격 연습 안 힘들었어요?”“괜찮았어요.”“건축 설계도는….”신세희가 물었다.“설계도가 왜요?”“일은 순조롭죠?”“네.”구경민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부소경이랑 두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상상이 가네요.”신세희도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사실 평범해요.”지금 부소경과 함께 있을 때면 신세희도 전보다 말이 많아졌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지낼 때도 말수가 너무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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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6화

솔직히 요즘 그는 고윤희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예전의 그녀라면 항상 성숙하고 섹시한 스타일을 고수했다. 그건 구경민의 취향이었다.그런데 오늘은 아주 발랄한 옷을 입었음에도 전혀 위화감이 없고 오히려 생기 있고 청순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성숙한 매력과 섹시함은 여전히 잃지 않았다.평소에도 자기 관리를 잘하는 여자라서 그런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옷을 입으니 전혀 30대 같지 않았다.곧 피어날 사랑스러운 꽃봉오리 같았다.구경민은 가슴 한쪽이 살짝 두근거렸다.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신은 뭘 입어도 예뻐.”고윤희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경민 씨, 나 세희 씨랑 같이 쇼핑 나갈 거야.”구경민은 약간 의외라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평소에 외출을 극도로 꺼리는 그녀였다. 서울에 있을 때도 많은 재벌 사모님들이 그녀와 쇼핑을 하거나 차를 마시자고 졸라도 매번 에둘러서 거절했던 고윤희였다. 구경민이 나가자고 했을 때만 문밖을 나서던 그녀가 신세희와 같이 외출하겠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윤희가 그만큼 신세희에게 호감을 느낀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비슷한 사람끼리 끌리는 것일까?고윤희도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그건 신세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로 끌렸던 걸까.구경민은 호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고윤희에게 건넸다.“내가 소경이보다 형이니까 세희 씨한테는 당신이 형님이야. 쇼핑할 때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사고 세희 씨 거도 당신이 계산해 줘.”“알았어.”고윤희도 사양하지 않고 카드를 받았다.“너무 늦게까지 있지 말고 일찍 돌아와. 요즘 몸도 안 좋잖아.”그가 당부하듯 말했다.어쩐지 그녀가 이런 옷을 입고 밖에 나가면 남자들이 꼬일 것 같아서 불안했다.“알았어!”고윤희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신유리는 고윤희와 구경민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아저씨.”“그래! 귀여운 것, 또 사고 칠 궁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구경민이 아이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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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7화

“그렇구나….”고윤희는 고개를 들고 신세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세희 씨, 지인들 만나는데 저까지 껴서 불편하지 않겠어요?”“불편할 게 뭐가 있나요? 한 명은 민정아 씨라고 어차피 구씨 가문이랑 혼약이 있고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텐데 이참에 얼굴 익혀두는 것도 나쁘지 않죠. 또 한 명은 제 직장 동료예요. 언니도 만나보면 좋아하게 될 거예요.”신세희의 예상이 맞았다. 고윤희는 생기발랄한 엄선희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엄선희와 같이 나온 민정아는 비교적 쑥스러워하는 눈치였다.고윤희가 작은 소리로 신세희에게 물었다.“이 아가씨도 꽤 성격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정아 씨요?”신세희는 민정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낯을 좀 가리는 편이라 친한 사람들한테만 본 모습을 보여줘요.”그 말을 들은 고윤희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저기….”민정아가 어색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여기 오기 전에 서준 씨한테 말씀 들었어요. 숙모님이라면서요…. 그럼 저도 숙모님이라고 부를게요. 만나서 반가워요.”고윤희도 대범하게 인사를 받았다.“정아 씨 맞지? 사람이 왜 이렇게 착해.”고윤희는 저도 모르게 민정아가 걱정되었다.구경민의 조카인 구서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구서준이 어떻게 이렇게 순수하고 착하기만 한 여자를 마음에 두었는지는 모르나, 외모로만 보면 둘은 무척 잘 어울렸다.눈앞의 이 순진한 아가씨도 구서준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구씨 가문은 보통 가문이 아니었다.워낙 수도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대기업 가문이었고 내부에서도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았다. 고윤희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구씨 가문 모두의 세력을 합쳐도 구경민 한 명을 당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남은 사람들은 서로 은연중에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래서 착하고 순수하게만 보이는 민정아가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윤희의 칭찬에 민정아의 얼굴이 수줍음으로 물들었다.“사실…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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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8화

그 여자는 다름 아닌 구선예였다.구선예가 서울 구씨 가문에서 남성 서씨 가문에 시집을 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구씨 가문은 서울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명문가였기에 서도영은 구선예의 눈에 찰 리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스무 살 때부터 따로 만나는 외국인 남자친구가 있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남자가 산업 스파이였을 줄이야.그는 구성훈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일부러 구선예에게 접근했다.남자는 얼마 되지 않아 잡혔지만 구선예는 그때 이미 배 속에 남자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구씨 가문은 인맥과 권력으로 겨우 이 사실을 은폐하고 비밀리에 덮었다.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만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였다. 손발이 이미 형성이 되었지만 아이는 허무하게 살아갈 기회를 빼앗겼다.구성훈이 사람들 입단속을 철저히 시켰다고는 하지만 상류사회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스캔들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구씨 가문을 등에 업었다고는 하지만 구선예에게는 적당한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다.결국 구선예는 친정과는 거리가 있는 남성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마침 서도영은 해외에서 오래 공부하다가 귀국했기에 국내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가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구선예가 구씨 가문이 버린 자식이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구선예는 친정에 거의 가는 일이 없었고 구씨 가문 사람들도 그녀와 왕래를 하지 않았다. 구씨 가문의 세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던 서도영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그래서 구선예는 시댁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구선예는 어떻게든 시댁을 위해 뭔가 하려고 애썼고 친정과의 관계도 회복하려고 애를 썼다. 다행인 건 아버지가 아직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는 점이었다.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신세희와 고윤희, 민정아 세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모습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구경민과 부소경이 막역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여자들까지 언제 저렇게 가까워진 걸까?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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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9화

‘가장 교양 없는 건 민정아야!’‘성격도 더럽고 학력도 집안도 특출나지 않은 주제에! 감히 구씨 가문 장손과 결혼을 해?’‘네가 뭔데! 저속하고 역겨운 년이!’‘고윤희 저년도 마음에 안 들어! 거지 같은 년이, 상품처럼 팔려 다니던 년이! 운 좋게 구경민을 만나서 팔자가 폈잖아!’‘구경민이 뒤를 봐주지 않았으면 상류 사회에 발도 못 들였을 것이!’구선예는 거리를 방랑하던 여자, 하마터면 굶어 죽을 뻔했던 여자가 자신보다 더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배알이 뒤틀렸다!그녀는 아직도 웃고 있는 여자들을 보다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다.‘천한 것들!’옥살이를 했던 신세희!감방을 나와서도 방랑 생활을 했던 여자!고윤희도 사실 옥살이보다 나을 게 없었다. 남은 두 사람의 삶은 그들보다 나았지만 그래도 고작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끼리끼리 모인다더니!’민정아와 고윤희가 정식으로 구씨 가문에 시집을 온다면 가문은 이 두 사람 손에 망해버릴 것 같았다.구선예는 이런 생각을 하며 또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평생 귀국하지 않을 것 같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네?”구선예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상대가 작은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나야 항상 돌아오고 싶었지. 하지만 그만큼 바빴으니까….”“지금 안 돌아오면 구경민이 그 여자랑 정말 결혼해 버릴지도 몰라.”구선예가 말했다.“그… 그게 사실이야?”상대는 무척 당황한 듯,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구선예는 여자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냉소를 지으며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나섰다.한편, 네 여자들은 백화점 커피숍에서 즐거운 수다 중이었다.“윤희 언니, 오늘 너무 과소비한 거 아니에요? 첫 만남인데 돈을 너무 쓰게 한 것 같아서 제가 다 미안하네요.”엄선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민정아도 거들었다.“그래요, 숙모! 오늘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제가 사드려도 모자랄 판에!”고윤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구경민이 건넨 카드에는 2억이나 되는 거금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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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0화

발신자가 조의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니나 다를까, 수화기 너머로 부드럽고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희 씨, 나예요. 조의찬….”“알고 있어요.”신세희는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저한테 화 많이 났어요?”조의찬이 물었다.“조의찬 씨, 제가 뭐라고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은데요. 저를 위해서 가성섬에 직접 가신 건 알아요. 하지만 이건 저를 돕는 게 아니라고요!”신세희는 말할수록 분노가 치솟았다.옆에서 그녀의 가방을 대신 들어주던 신유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엄마, 누구랑 싸워? 누가 엄마 화나게 했어? 엄마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유리한테 말해. 유리가 혼내줄게!”부소경의 집에 들어와서 산 지도 반년이나 지났건만, 신유리는 여전히 엄마를 지켜주려고 했다.그만큼 아이에게는 엄마가 소중했다.옆에서 지켜보던 고윤희는 문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녀는 신유리를 품에 안고 신세희에게 말했다.“세희 씨, 목소리 낮춰요. 화 나는 일이 있어도 좋게 해요. 애가 놀라겠어요.”신세희는 고마운 눈빛으로 고윤희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휴대폰 스피커를 손으로 가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유리랑 윤희 언니 데리고 레스토랑에 먼저 가 있을래? 나는 통화만 끝내고 바로 따라갈게.”세 여자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인 뒤, 신유리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신세희는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으며 차갑게 말했다.“조의찬 씨, 의찬 씨 부모님께서 의찬 씨가 가성섬에 간 일로 소경 씨를 찾아갔어요.”조의찬은 다급히 해명했다.“세희 씨, 내가 가성섬에 온 건 세희 씨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아무도 나한테 가라고 등 떠밀지 않았고 내가 자진해서 온 거라고요!”“알아요! 하지만 의찬 씨 부모님은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분들은 제가 의찬 씨를 유혹했고 의찬 씨는 못된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 여자를 위해 위험한 곳으로 떠났다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적 없어요!”신세희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털어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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