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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구경민은 한참 동안 복잡한 시선으로 악몽을 꾸며 흐느끼는 고윤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는 함께한 6년 동안 한 번도 그녀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 없었다.

너무 온순해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구경민은 원래 여자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윤희를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흔들어서 깨워야 할지 착잡했다.

그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울던 고윤희가 잠에서 깼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그의 팔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꾸었던 꿈이 아직도 머리에 선했다.

꿈속에 나타난 건 금방 걸음마를 뗀 여자아이였다.

짧고 가냘픈 팔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아이는 그녀의 부름을 듣지 못한 것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걷던 아이는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수술이 끝난 뒤, 산부인과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이도 있으신데 이렇게 자꾸 중절 수술을 하시고 몇 년 지나면 정말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오늘 수술한 아이는 여자아이였어요. 환자분이 워낙 피부가 하얗고 예쁘시니 아이가 태어났으면 엄청 예뻤을 거예요. 참… 안타깝네요.”

그 말을 들었을 때 고윤희는 누군가가 칼로 가슴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예전에는 아이를 원치 않았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아이에게 행복을 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구경민과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가 갖고 싶어졌다. 그녀는 구경민과의 아이를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이 자신을 향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 없었다.

구경민은 그녀를 데리고 각종 모임에 참석했고 그의 지인들도 그녀를 친근하게 제수씨라고 불렀지만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구경민의 애정은 데리고 있는 애완동물을 향한 관심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걸.

그는 그녀에게 이 나라 어떤 여자도 누릴 수 없는 관심과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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