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섭정왕의 왕비로 환생하다: Chapter 1251 - Chapter 1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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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1화

하지만 이곳에는 홍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남은 악인들도 있었다.그들이 다 같이 달려든다면 아무리 낙청연이라도 당해낼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다시 홍해에게 잡혀서 바닥에 제압당했다.홍해가 칼을 꺼내 들었다. 위에는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손부터 자를까?”말을 마친 홍해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었다.예리한 칼끝이 그녀의 손목 관절 근처에서 배회했다.“여기가 좋겠군.”홍해의 잘 벼린 칼이 공중으로 치솟은 순간, 낙청연은 조급한 마음에 몸을 바둥거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녀의 눈길이 구십칠에게 닿았다. 그가 드디어 책을 덮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낙청연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책이었다.제사부전(祭司符典)!홍해의 칼이 내려앉던 순간, 낙쳥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나 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어!”순간 구십칠의 표정이 바뀌더니 다급히 소리쳤다.“그만!”홍해는 그녀의 손목과 한 치 차이를 남겨놓고 칼을 버렸다.칼을 내던진 홍해가 차갑게 낙청연을 노려보며 물었다.“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다고? 네가?”“딱 봐도 경험도 없는 제사장 같은데 무슨 수로?”“금혼부 때문에 수많은 제사장을 잡아들였지만,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었어.”“또 우리 가지고 장난치는 거라면 당장 그 입부터 도려낼 거야!”낙청연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나 정말 할 수 있어. 나는 그들과 다르니까.”과거 대제사장까지 했던 몸이었다.낙청연은 구십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네가 들고 있는 책, 나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할 수 있어. 내가 너희랑 다른 점은 너희는 책을 읽을 뿐이지만 나는 그 책과 오래전에 일심동체가 되었어.”구십칠이 천천히 낙청연에게 다가갔다.“풀어줘.”홍해가 낙청연을 풀어주었다.낙청연은 땅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달빛 아래 반짝이는 창백한 피부와 아름다운 이목구비, 그리고 입가에 머금은 붉은 피는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했다.구십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제사장과 다르다는 그녀의 말을 믿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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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2화

구십칠은 잠시 머뭇거리나 싶더니 상의를 벗고 그녀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낙청연은 부적을 꺼내 낙인 위에 붙였다.그러자 낙인 주변에 부문과 금빛이 나타났다.“이거 보이지? 이게 금혼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이야.”“금혼부가 해제되면 이곳에는 낙인과 흉터만 남을 거야. 금빛으로 번쩍이는 부문이 사라질 거라고.”낙청연은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설명했다.만약 그들과 평화롭게 담판을 지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녀는 이들과 다시 무력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이들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설명을 알아들은 홍해 일행이 고민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시작해! 일단 내가 보는 앞에서 해제해 보라고.”그러고 보면 낙청연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세상에 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가 그 소수 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내력 소모가 너무 컸다.그녀는 부적을 꺼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부문을 그린 뒤, 구십칠의 어깨에 붙였다. 금빛의 진법이 나타나더니 금혼부를 새긴 흉터에 스며들었다.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이제 됐어.”낙청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구십칠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살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이러면 다 된 거야?”낙청연은 다시 부적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금혼부가 새겨진 낙인에서 더 이상 부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흉터로 남았을 뿐이다.“정말 사라졌다고?”홍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대단하네!”홍해는 구십칠을 자리에서 일으키고는 자신이 상의를 벗고 낙청연의 앞에 앉았다.“나도 해줘!”낙청연은 동일한 방법으로 금혼부를 해제했다.하지만 세 번째 의식을 행하게 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좀 쉬어야겠어. 내력 소모가 엄청나거든.”낙청연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달빛 아래 핏기 한 점 없는 채로 쓰러진 여자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구슬 같았다.구십칠이 다가가서 그녀의 맥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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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3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내가 도성에 남으려면 너희들을 길들여야만 해.”구십칠이 냉소를 지었다.“길들여? 우린 사람이야. 가축이 아니라고. 설마 금혼부 해제해 줬다고 우리한테 얌전히 네 명령에 따르라는 헛소리는 하지 않을 거지?”낙청연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아니.”“난 너희들을 데리고 노예 감옥을 나갈 거야.”그 말에 구십칠은 큰 충격을 받았다.노예 감옥은 곳곳에 수많은 진법을 쳐놓은 곳이다. 이곳을 살아서 나간 노예는 한 명도 없었다.게다가 간수들의 경비도 삼엄했다.“그 몸으로 우리를 데리고 노예 감옥을 탈출하겠다고? 네가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그걸 믿지?”낙청연은 구십칠이 그녀와 손을 잡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한가하게 잡담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금혼부를 해제하고 싶은 사람은 너희뿐이 아니잖아. 너희의 친구, 가족들도 내가 필요하잖아.”그 말에 구십칠은 반박할 수 없었다.그의 반응을 살피던 낙청연은 자신의 방법이 성공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금혼부에 묶여 있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구십칠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우리는 노예곡(奴隸谷)에서 도망쳐 나왔어.”“노예곡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어. 노예곡에서 태어난 아이는 다섯 살이 되면 등에 금혼부 낙인을 새기고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해.”“그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지만 태어났다는 자체가 죄가 된 거야.”“맨 처음에는 아무도 노예곡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어. 다들 그들에게 개과천선하고 다시 시작할 터전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나중에야 알았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그들에게는 노예가 필요했어. 공을 들여 노예를 가르치기도 했고 약한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죄명을 씌워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그런데 그 많은 노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제사장 일족에게 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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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4화

그 말에 구십칠이 충격에 빠진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대제사장?”낙청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내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이 불공정한 법과 질서를 파괴할 수 있고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너희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이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노예로 전락할 거야.”그녀의 설명을 들은 구십칠은 동요하는 눈빛을 보였다.그러다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듯, 미심쩍은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네가 지금 했던 말 다 지킬 수 있어?”“당연하지.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구십칠은 눈앞의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그녀와 손을 잡으면 대업을 이루기 전에 그녀가 먼저 죽어버릴까 봐 걱정도 되었다.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는 묘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구십칠이 여전히 결정을 못 내리자 낙청연은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두풍진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저 남자의 과거를 봤어. 노예의 존재 이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 그의 가족들이 수모를 당했다고 해서 그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건 정당화될 수 없어. 그 가해자들과 다를 게 뭔데? 심지어 더 악랄했지. 그래서 저 자를 죽인 건 후회하지 않아.”“하지만 구십칠, 당신은 달라. 물건을 훔치기만 했지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 너는 끝까지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는 거야. 무고한 피를 보기 싫었던 거겠지. 내 말 틀렸어?”“그래서 나는 당신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저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어.”말을 마친 낙청연은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그 모습은 전혀 약자로 보이지 않았다.구십칠의 눈빛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작은 몸집안에 숨은 강직한 영혼을 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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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5화

검은 망토를 뒤집어쓴 검은 인영이 마당으로 나왔다. 안색은 어제처럼 초췌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창백했다.그녀는 마당을 둘러보다가 눈을 살짝 찌푸리고 고개를 들었다.아직도 햇살이 적응되지 않는다.바로 눈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나왔다.밀실에서 나온 뒤로 더는 강한 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나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구십칠이 나머지 일행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안색이 많이 좋아졌네.”그가 낙청연의 얼굴을 관찰하며 인사를 건넸다.낙청연도 대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금혼부를 해제해도 될 것 같아.”그렇게 한 명, 또 한 명, 낙청연은 단숨에 모든 악인들의 금혼부를 해제했다.낙인의 흉터만 남은 곳에 부문의 흔적이 사라지자 모두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이는 그들의 자유를 의미했으니까!홍해는 아예 칼을 들어 어깨에 있는 흉터까지 말끔히 도려냈다.“앞으로 더 이상 노예가 아니야!”“평생 노예로 살지 않을 거야!”“아무도 내 몸에 이따위 흔적을 새기게 하지 않겠어!”분명 피가 튕기고 잔혹한 행위였지만 그들이 삶을 향한 희망과 희열에 불타오르고 있음을 낙청연은 느낄 수 있었다.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낙청연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제 너희들을 데리고 나갈 거야.”말을 마친 그녀가 대문 쪽으로 다가가서 천명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금색의 법진이 그려지더니 그녀가 손짓하자 거대한 힘이 땅에 내리쳤다. 이곳을 감싸고 있던 진법들이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거친 바람이 불어와서 대문을 열었다.“가자!”구십칠은 서둘러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사람을 죽이면 안 돼. 안 그러면 다시 잡혀 올 거야.”그렇게 일행은 천자호 노예 감옥을 뛰쳐나갔다.소동에 놀란 병사들이 달려와서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상당한 병력이 모였기에 다들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사람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뚫고 나가?”“그냥 다 죽이고 나가자!”홍해는 저들의 목을 칠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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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구십칠은 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말을 지껄이는 여자는 처음이었다.제사장 일족은 황실과 동등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며, 대제사장은 황제마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제사장 일족이 먼저 자신에게 손을 내밀 거라 장담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일행은 함께 한 객잔으로 들어갔다.무리의 재정 상태를 담당하고 있는 구십칠은 대범하게 비싼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그들을 위한 축하 의식을 치르기 위함이었다.땡전 한 푼 가진 게 없는 낙청연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거하게 한 끼 얻어먹었다.낙청연이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구십칠이 그녀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앞으로 잘 부탁해.”낙청연은 담담한 미소를 짓고는 술잔을 집어 그의 잔에 부딪히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너와 나 모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잖아.”말을 마친 낙청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얼굴에 지어진 의미심장한 미소와 투명한 눈망울은 영혼이라도 꿰뚫을 것 같았다.그 순간 구십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그는 당황함을 감추려 제사부전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제 당신에게 필요 없을지는 모르지만 나한테도 필요가 없어졌어.”아마 십중팔구 이 책도 구십칠이 훔쳐 온 장물 중 하나일 것이다.진법으로 둘러싸인 제사장 서고에서 책을 훔쳐 도망쳐 나온 구십칠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신도라는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는 자였다.낙청연은 제사부전을 집어 몇 장 펼쳐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오래된 익숙한 감정들이 살아나고 있었다.사부님의 압박에 못 이겨 제사부전을 암기하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사부님이 제시한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날 밥은 없었다.너무 배가 고팠기에 하루 만에 이 두꺼운 책을 전부 암기했다.사부님은 보상으로 그녀에게 맛있는 반찬을 사주었다.그때의 그녀는 자신이 또래 아이들과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그리고 자신이 재능이 얼마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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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7화

그 다음으로 홍해 역시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남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낙청연은 느긋한 자세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햇살이 창가로 비쳐 들어와서 그녀의 가녀린 몸을 감쌌다.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처럼 신성하고 아름다웠으며, 또한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사악하고 매력적이었다.그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진익에게는 이런 표정 하나하나가 도발이고 모욕이었다.십대 악인이 스스로 주인으로 모시겠다며 무릎을 꿇었다.한주먹이면 목숨을 잃을 것처럼 연약한 여자의 앞에!놀란 건 진익뿐이 아니었다.현장에 있던 무장 금위군 역시 충격에 빠진 듯, 입만 뻐금거렸다.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세간에 이름을 날린 십대 악인. 그중에서 홍해는 사람만 보면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놈이었다!그런데 그들 모두가 일제히 한 여자 앞에 무릎을 꿇다니.충격적인 장면에 객잔 전체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숨 막히는 고요 속에 낙청연이 제사부전을 집어 들더니 진익에게 던졌다.“이건 돌려드리죠.”날아오는 서책을 한 손에 받은 진익은 손등에 핏줄이 선명하게 살아나도록 그것을 힘껏 틀어쥐었다.황자가 분노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아무리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너희를 돌려보낼 수는 없어.”“너는 노예 감옥의 진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어. 그 진법은 전 대제사장께서 직접 설치한 거라 복원하기 아주 힘들거든. 그에 대한 죄를 물을 것이다!”홍해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홍해가 진익을 향해 칼을 겨누며 으르렁거렸다.“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우리가 두려워할 것 같아?”“노예 감옥에서 사람 안 죽이고 얌전히 있던 것만 해도 우리는 예의를 지켰어! 여기서 더 뭘 어쩌라는 거야!”진익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들이 반항한다면 저들을 죽일 명분이 생긴다.낙청연은 여전히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일단 칼 좀 내려봐. 황자님, 이런 생각은 혹시 안 해보셨는지요….”“제가 진법을 변동했으니 복원도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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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8화

날카로운 눈빛과 경계심 가득한 말투에 낙청연은 오히려 상대가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힘없이 식탁으로 쓰러지며 멍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왜지?”온심동이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했다.“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으니까.”온심동은 품에서 비수를 꺼내더니 천천히 낙청연에게 다가왔다.“천궐국에서 굴러온 자가 진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면 제사장 일족은 무슨 수로 이 나라에서 얼굴을 들고 살겠니?”“나는 힘겹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단다. 내 위치를 위협하는 인간은 절대 살려둘 수 없어. 너에게 진법을 복원할 능력이 정말 있든, 그냥 죄를 모면하고자 했던 변명이든 난 너를 살려둘 생각이 없어!”온심동 역시 허약한 겉모습만 보고 쉽게 죽일 수 있다고 마음먹은 것이다.말을 마친 그녀는 낙청연의 목덜미를 향해 비수를 치켜들었다.한 방에 죽일 생각이었다.하지만 비수가 떨어지던 순간, 낙청연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순간 놀란 온심동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독에 당한 게 아니었어?’낙청연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 온심동의 손에 들었던 비수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하지만 온심동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손으로 비수를 잡고 다시 낙청연을 향해 휘둘렀다.낙청연은 그것을 가볍게 피하고 식탁을 발로 걷어차서 상대와 거리를 벌렸다.힘없이 뒤로 물러난 온심동이 살기 어린 눈빛을 하고 그녀를 쏘아보았다.겉보기에 불면 날아갈 것처럼 허약한 여자의 실력이 이 정도였다니!‘안 돼! 죽여야 해!’온심동은 다시 비수를 잡고 달려들었다.전부 상대의 급소만 노린 공격이었다.그녀 역시 십대 악인을 길들이려 노력한 적 있었다. 하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만약 낙청연이 그들을 거두었다는 소문이 돌면 대제사장 자리 역시 위협을 받게 된다!그러니 절대 이 여자를 살려둘 수 없었다.낙청연은 처음에는 유연하게 상대의 공격을 피했다. 같은 스승을 모시던 제자라서 온심동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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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9화

낙청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힘없이 의자에 가서 앉았다.온심동은 힘들게 대제사장 위치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그녀의 존재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에 목숨을 빼앗겠다고 제 입으로 말했다.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사매는 어디로 간 걸까.그녀보다 타고난 재능은 부족해도 부지런한 편이었고 놀기도 좋아하고 잘 웃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하지만 오늘 만난 온심동은 그녀가 기억하던 그 사람이랑 완전히 달랐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침서가 다가왔다.“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해결했네. 역시 낙요야. 여국 제일의 대제사장!”침서는 의자를 두 손으로 짚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하지만 낙청연은 그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했습니다. 이제 장군 차례입니다.”침서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앞으로 넌 도성에서 명성을 떨치게 될 테니까. 대제사장 자리는 시간문제야.”그 말에 낙청연이 고개를 돌리고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오심동을 해치지는 마세요.”“지금 대제사장은 오심동이야. 너를 대제사장으로 올리려면 그 애를 죽일 수밖에 없어.”침서는 잔인한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그 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가 잘 압니다. 그 애는 제 상대도 되지 않는데 목숨까지 거둘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아이 가만히 내버려 두세요!”낙청연의 목소리가 순간 차가워졌다.침서는 결국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그래. 네 말을 들어야지 어쩌겠어. 미래의 대제사장님.”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낙청연의 이름은 도성 곳곳에 퍼졌다. 황실과 제사장 일족도 소란스러웠다.십대 악인이 어떤 인물들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그들을 굴복시킨 자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그 힘든 일을 낙청연이 해낸 것이다.게다가 그들을 데리고 노예 감옥을 탈출하면서 진법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니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이 일을 전해들은 고묘묘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방 안에서 물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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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0화

낙정은 부진환이 자신을 본다면 분명 자신을 구하러 올 것이라고 믿었다.하지만 처마 밑에 서 있던 그림자는 담벼락을 짚고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부진환은 고통을 억누르며 창백한 얼굴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왕야, 이제 돌아가시지요. 여기서 봐봤자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소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부진환은 굳은 표정으로 고통스럽게 말했다.“그냥 시름이 놓이지 않아서 그런다. 낙정은 무조건 없애야 해! 저 여자를 살려둘 수는 없어!”소유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야. 제가 부근 삼거리의 출입구에 사람을 더 보냈습니다. 낙정은 날개가 달려도 도망가지 못해요! 그러니 이제 돌아가시지요.”부진환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걸음을 돌렸다.낙정은 기를 쓰고 포위를 뚫으려고 발악하고 있었다.하지만 어마어마한 병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잡히고 말았다.봉쇄한 거리 양켠에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 있었다.낙청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옥으로 압송되었다.황궁에서는 치열한 언쟁이 벌어지고 있었다.“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나요? 약속을 어기겠다는 말씀이십니까?”엄내심이 분노를 억누르며 따지고 물었다.황후로 책봉된 후, 그녀가 이렇게 속내를 다 드러내는 경우는 드물었다.부운주가 차갑게 말했다.“그렇다.”그 말에 엄내심은 차갑게 등을 돌렸다.“낙정이 부황을 시해하려 한 증거가 수두룩하다. 이런 자를 살려둘 수는 없어. 황후에게 억한 마음으로 이러는 거 아니야.”엄내심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원망에 찬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그래서 제가 이렇게 사정해도 소용이 없단 말씀이십니까? 꼭 죽여야만 하나요?”부운주는 여전히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엄내심은 씩씩거리며 황제의 서재를 나갔다.낙정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여국에는 풍수사가 많지만 그녀의 신변에는 믿을만한 풍수사가 없었다. 그건 그녀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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