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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6화

구십칠은 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오만방자한 말을 지껄이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제사장 일족은 황실과 동등한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며, 대제사장은 황제마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제사장 일족이 먼저 자신에게 손을 내밀 거라 장담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일까!

일행은 함께 한 객잔으로 들어갔다.

무리의 재정 상태를 담당하고 있는 구십칠은 대범하게 비싼 술과 고기를 주문했다. 그들을 위한 축하 의식을 치르기 위함이었다.

땡전 한 푼 가진 게 없는 낙청연도 그들 사이에 끼어서 거하게 한 끼 얻어먹었다.

낙청연이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앉자 구십칠이 그녀에게 술 한 잔을 따랐다.

“앞으로 잘 부탁해.”

낙청연은 담담한 미소를 짓고는 술잔을 집어 그의 잔에 부딪히며 말했다.

“당연한 말씀을. 너와 나 모두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거잖아.”

말을 마친 낙청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얼굴에 지어진 의미심장한 미소와 투명한 눈망울은 영혼이라도 꿰뚫을 것 같았다.

그 순간 구십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는 당황함을 감추려 제사부전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제 당신에게 필요 없을지는 모르지만 나한테도 필요가 없어졌어.”

아마 십중팔구 이 책도 구십칠이 훔쳐 온 장물 중 하나일 것이다.

진법으로 둘러싸인 제사장 서고에서 책을 훔쳐 도망쳐 나온 구십칠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신도라는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는 자였다.

낙청연은 제사부전을 집어 몇 장 펼쳐보고는 다시 내려놓았다. 오래된 익숙한 감정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사부님의 압박에 못 이겨 제사부전을 암기하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사부님이 제시한 임무를 완성하지 못하면 그날 밥은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팠기에 하루 만에 이 두꺼운 책을 전부 암기했다.

사부님은 보상으로 그녀에게 맛있는 반찬을 사주었다.

그때의 그녀는 자신이 또래 아이들과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재능이 얼마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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