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너무 많아 서서히 흩어지기 시작했다.그들은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바빴다.바로 그때, 누군가 하늘에서 내려와 손에 든 장검으로 낙청연의 머리를 찌르려 했다.“낙청연, 죽어!”그 목소리에 낙청연은 살짝 흠칫했다.너무 익숙한 목소리였다.랑심!검광이 번뜩이자 눈이 시렸던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서 막으며 눈을 감았다.멀지 않은 곳에 있던 침서는 그 모습을 보고 살짝 의아해했다.“눈이 어떻게 된 거지?”위험이 덮쳐오자 낙청연은 신속히 몸을 피했고 검을 들어 랑심을 막아낸 뒤 거리를 벌렸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랑심을 바라봤다. 정말 그녀였다.랑심은 아직 낙청연을 죽이는 걸 포기하지 않았고 심지어 여국까지 쫓아왔다. 의지만큼은 참 대단했다.랑심은 증오로 가득 찬 눈빛으로 낙청연을 노려봤다.“오늘 절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내 손으로 죽이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들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걸 지켜볼 것이다!”랑심은 다시 한번 살기등등하게 낙청연을 공격했다.심지어 죽을 각오마저 한 듯했다.낙청연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지만 살기 때문에 머리카락과 치맛자락이 휘날렸다.“무릎 꿇거라!”서늘한 음성에는 약간의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거리를 뒤흔들었다.랑심은 손목을 떨다가 갑자기 무릎 한쪽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다음 순간, 거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싸우고 있던 홍해는 이제 막 검을 휘둘렀는데 그 광경에 겁을 먹고 다급히 멈췄다.하마터면 멈추지 못할뻔해서 연신 뒷걸음질 쳤다.10대 악인은 깜짝 놀랐다.그들은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무릎을 꿇는 걸 보고 넋이 나갔다.진익 또한 놀랐다. 그는 창문틀을 잡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장관을 보는 순간 그는 긴장하며 침을 삼켰다.부하가 옆에서 물었다.“황자님, 저희가... 그들을 구해야 합니까?”진익은 벽을 쾅 때렸다.“우리가 구할 필요가 있을 것
낙청연은 마차에 올라탔다.“입궁하지.”마차에 앉는 순간, 그녀가 앉은 곳은 마차가 아니라 왕위 같았다.구십칠은 열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가녀린 그녀를 보았다. 낙청연에게서 왕의 기질이 느껴졌다.마차는 서서히 출발해 입궁했다.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잇달아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마음속에 있던 원망과 증오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다들 흩어집시다.”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이 흩어졌다.10대 악인은 경악했다. 홍해는 들고 있던 칼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참 줏대 없는 사람들이야. 이렇게 쉽게 투항하다니.”홍해가 깔보듯 말했다.구십칠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우리가 사람을 잘 고른 것 같아.”홍해는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같이 입궁해야 하지 않아?”“그럴 필요 없어. 누구도 그녀를 다치게 하지 못해.”구십칠은 먼 곳을 바라보다가 사람들을 데리고 현무가를 벗어났다.현무가는 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은밀히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동안 충격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진익에게 있어서 그는 낯설지 않았다. 그건 역대 대제사장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대제사장은 존경받았고 사람들은 대제사장의 말을 따랐다.낙청연은 이제 막 여국에 도착했는데 10대 악인을 굴복시켰다. 한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조금 전 광경은 너무 충격적이었다.진익은 책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침서가 낙청연을 여국으로 데려온 건 아마도 그런 능력 때문일 것이다.그녀는 침서를 도와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만약 낙청연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다면...-마차는 궁으로 들어가 호월전(皓月殿) 밖에 멈춰 섰다.안으로 들어간 낙청연은 황위에 앉아있는 황제를 보았다.“폐하를 뵙습니다.”황제는 낙청연을 훑어보았다. 그는 낙청연이 이렇게 연약한 몸으로 어떻게 10대 악인을 굴복시켰는지 너무도 궁금했다.그녀는 10대 악인들의 공격을 한 번
궤 위의 장식품, 탁자 위에 펼쳐진 서권 모두 그녀가 죽기 전과 똑같았다.그저 방문과 창문이 꽉 닫혀서 답답할 뿐이었다.낙청연은 창문을 열고 연탑 위에 앉았고 펼쳐진 서권에 적힌 병기보(兵器譜)를 보았다.그녀는 당시 이것을 보면서 손에 맞는 무기를 고를 생각이었다.책은 여전히 그 장에 멈춰 있었다.설마 바람이 불어 그 장을 넘기는 일도 없었던 걸까?낙청연은 곧바로 그날, 그 시점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곧 궁녀가 입을 옷과 필요한 물건을 가져왔고 낙청연은 습관대로 물건을 놓은 뒤 방을 나섰다.방을 나서자마자 침서가 보였다.그는 팔짱을 두른 채로 다가왔다.“역시 낙요답더구나.”낙청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낙요라고 부르지 마세요.”그녀는 아직 사람들에게 그녀가 죽은 전 대제사장이라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녀를 죽인 범인을 아직 찾지 못했으니 먼저 신분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그래. 그러면 뭐라고 부를까? 청연?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침서는 사색하며 말했다.낙청연은 그를 힐끗 보고 말했다.“마음대로 하세요.”낙청연은 걸음을 옮겼고 침서는 그녀를 뒤따랐다.“그러면 낙요라고 부르마.”낙청연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제 말을 알아들은 겁니까?”침서는 웃었다.“장난이다.”낙청연의 눈빛은 차가웠다.“전 약재가 필요합니다. 불전연은 찾았습니까?”“없다. 도성 전체를 뒤졌는데 불전연은 없었다.”그 말에 낙청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요양해야 했고 불전연이 필요했다.그녀의 상처는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것이라 버티기 힘들었다. 지금은 속명단에 기대어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게다가 섭정왕부의 진법이 파괴되어 낙청연은 배가 되는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오직 불전연만이 극심한 고통을 그나마 줄일 수 있었다.“수하에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밖에 사람을 보내서 찾으면 되지 않습니까? 여국처럼 큰 곳에 불전연이 없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비록 보
하지만 진익은 낙청연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낙청연처럼 실력이 대단한 사람을 이용할 수 있다면 재능이 없고 평범하다는 평가를 바꿀 수 있었다.스스로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자기보다 열 배, 백 배 더 강한 사람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사람들을 탄복시킬 수 있었다.마치 낙청연처럼 말이다.“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보마.”진익은 덤덤히 대답했다.-약을 찾기 위해 낙청연은 도성 객잔에 며칠 머물렀다.그녀는 10대 악인에게 각 의관과 약재 점포에 가서 불전연을 찾으라고 했다.그러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구십칠이 말했다.“예전에는 찾기 어려운 약이 아니었는데 최근 어떻게 된 일인지 하나도 볼 수 없습니다.”“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아무도 불전연이 없다고 합니다. 훔칠 수도 없게 됐습니다.”구십칠은 처음으로 이런 무력감을 느껴봤다.낙청연은 표정이 심각했다. 불전연이 왜 갑자기 찾기 힘들어진 걸까?”“의관과 약재 점포에도 물어봤느냐?”구십칠이 심각한 어조로 대답했다.“물어봤지만 다들 없다고 했습니다. 언제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제가 보기에 지금 상태로는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있다고 해도 내놓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콜록콜록...”“몸 상태가 더 악화한 것 같군요.”구십칠이 걱정스레 그녀를 바라봤다.낙청연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당분간은 죽지 않을 것이다.”“누구에게 있는지 다시 알아보러 가겠습니다!”구십칠이 다시 떠났다.낙청연도 이곳저곳 다니며 불전연을 찾았다. 거리마다 낙청연이 10대 악인을 굴복시켰다는 소문이 돌았다.한 차루를 지날 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싸운다고 하더군. 이번에는 천궐국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다고 들었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대편이 고작 백 명이었다고 들었소.”그 말에 낙청연은 걸음을 멈췄다.“누구란 말이오? 백여 명이면 죽으러 온 것이 아니오? 싸우는 데 누가 백 명만 데려왔겠소? 선두가 아니겠소?”그 사람이 말했다.“아니오.
낙청연은 재빨리 그곳으로 향했다.갑옷을 입은 침서가 위풍당당하게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광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는 걸어가 낙청연을 품에 안으려 했다.“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냐?”낙청연에게 닿기 전, 낙청연의 손이 그의 가슴팍에 닿았다.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침서를 보았다.“부진환은요?”침서는 눈썹을 까딱였다.“그자를 위해서 온 것이었구나. 내가 그자에게 데려다주마.”숲은 아주 고요했다.낙청연은 침서를 뒤따라 숲을 지났다.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손바닥도 축축해졌다.낙청연은 왠지 결과를 알기가 두려웠다.부진환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침서가 걸음을 멈췄다.그는 길을 내주더니 몸을 살짝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며 웃었다.“보거라. 여기에 있다.”“낙요야, 내가 너 대신 복수를 했다.”시야에 들어온 건 피 칠갑을 한 채로 바닥에 누워있는 부진환의 모습이었다.그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몸과 얼굴에 베인 흔적이 가득했지만 낙청연은 그것이 부진환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 순간, 낙청연은 누군가에게 목을 졸리기라도 한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비틀거렸다.부진환이 죽었다.부진환이 죽다니?부진환이 죽었을 리가 없는데.낙청연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눈이 벌게진 채로 그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침서는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낙요야, 내가 널 대신해 복수했다. 너도 화풀이 좀 해볼 테냐? 내가 특별히 시체를 온전히 남겨두었다. 마음껏 화풀이하거라!”침서는 검 하나를 가져와 낙청연의 손에 쥐여줬다.그리고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부진환의 시체를 찌르려 했다.낙청연은 거부하듯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얼굴마저 볼 용기가 없었다.숨 막히는 느낌이 그녀를 천천히 집어삼켰다.“손 쓰거라, 낙요야. 이자가 널 어떻게 대한 건지 잊은 것이냐? 네 배 속에 있던 아이는 어떻고?”“자, 내가 어떻게 화풀이해야
낙청연의 치맛자락에 피가 튀었다.바닥에 누워있는 시체는 삽시에 피범벅이 되어 고깃덩이가 되어버렸다. 너무 잔인했다.낙청연의 눈앞은 순식간에 빨간색으로 물들었다. 심장이 조여왔다. 가슴에서 증오가 차오른 그녀는 장검을 뽑아 들더니 침서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침서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광기와 살기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왜? 마음이 아프냐? 마음을 접었다고 하지 않았느냐?”“이제 그와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느냐?”“왜 그렇게 화가 난 것이지? 시체조차 보지 못하는 것이냐?”침서는 날카로운 검날을 꽉 쥐고서 그녀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선혈이 그의 손목을 타고 뚝뚝 흘렀다.낙청연은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다가 장검을 빼내 침서의 가슴팍을 힘껏 찔렀다.낙청연은 호통을 쳤다.“전 그를 증오합니다. 전 제 손으로 직접 그를 죽일 생각이었습니다! 누가 당신더러 쓸데없이 참견하라고 했습니까?”침서는 깜짝 놀라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곧이어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 젖혔다.“하하하하...”“그런 것이냐?”침서는 털썩 무릎을 꿇으며 한없이 가볍게 말했다.“내가 잘못했구나.”“네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으니 날 때리거나 벌하거나 마음대로 하거라!”옆에 있던 구십칠은 깜짝 놀랐다. 침서가... 무릎을 꿇다니?침서가 무릎을 꿇자 숲속의 병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장군이 무릎을 꿇고 있는데 그들이 어찌 감히 서 있을 수 있겠는가?그들은 장군이 왜 이 여인에게 무릎을 꿇는 건지 알지 못했다.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침서는 실력이 막강했고 모두를 무시했다. 그는 황제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오늘, 그는 아주 과감하게 한 여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구십칠도 놀랐다.이 천하에 침서를 무릎 꿇릴 수 있는 것은 낙청연이 유일할 것이다.낙청연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낙청연은 검을 내던졌다. 침서의 득의양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그는 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미친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겼겠느냐? 내가 왜 너를 그에게 돌려줘야 하느냐?”“이 모든 건 결국 그가 자초한 것이다.”침서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한 짓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죽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낙청연이 왔다면 부진환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입 닥치세요!”낙청연은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낙청연은 호통을 쳤다.“그의 시체는 돌려보내세요!”침서는 입꼬리를 당겼다.“알겠다.”낙청연은 너무 후회됐다. 미리 침서에게 부진환을 죽이지 말라고 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그녀는 부진환이 자신을 찾으러 여국까지 올 줄은 몰랐다.다시는 고개 돌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그가 죽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숲속에서 나온 뒤 낙청연은 나무를 잡고 몸을 지탱하더니 피를 왈칵 토했다.“괜찮습니까?”구십칠은 깜짝 놀라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낙청연은 입가의 피를 닦은 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부진환의 시체를 들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낙청연은 감히 더 보지 못했다.심장이 쥐어뜯기듯 아팠고 벌게진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낙청연은 주먹을 움켜쥐며 감정을 삼키려 했다.침서!언젠가는 꼭 자신의 두 손으로 그를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곧이어 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그녀는 침서와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강한 바람에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허공으로 흩어졌다.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구십칠은 등 뒤에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살짝 놀란 그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려는데 등 뒤에 있던 낙청연이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낙청연!”구십칠은 안색이 돌변하여 곧바로 말을 멈춰 세웠다.그는 곧장 말에서 뛰어내렸지만 낙청연의 몸은 산비탈을 따라 굴러떨어지고 있었다.구십칠은 빠른 속도로 그녀
구십칠은 걱정돼서 곧바로 말에 오른 뒤 약재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정신을 차렸을 때 낙청연은 마차 위에 있었다.입궁하는 마차였다.마차 안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가슴께가 여전히 아파 낙청연은 힘겹게 몸을 지탱해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발을 걷고 차부에게 물었다.“누가 분부한 것이지?”“침서 장군입니다.”낙청연은 차부에게 멈추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내 입궁하여 미처 그러지 못했다.잠깐 자리에 앉아 기운을 고르고서야 통증이 조금 가셨다.정신을 잃은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낙청연은 알지 못했다.침서는 왜 그녀를 입궁시킨 걸까?제사 일족의 거처는 궁 안에 있었지만 위치가 편벽하고 범위가 아주 넓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궁 안의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차부는 낙청연을 궁까지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마차에서 내린 뒤 긴 길을 걸었다.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푹 쉬고 싶었는데 정원 문을 연 순간 낙청연은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방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의 물건은 마당에 마구 내동댕이쳐져서 엉망진창이었다.그날 이곳을 처소로 정한 뒤 낙청연은 출궁했다. 겨우 며칠 사이에 이 꼴이 되다니.그런데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이 몸을 홱 돌리자 큰 그물이 그녀를 덮쳐서 옭아맸다.그녀가 저항하기 전에 그물이 팽팽히 당겨졌고 낙청연은 마당 밖으로 끌려 나갔다.낙청연은 그물 안에 갇힌 채로 신속히 마당을 벗어났고 곧이어 귓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하하하하하...”“이렇게 연약하다니? 전 대제사장의 처소에서 지낸다고 해서 아주 강할 줄 알았건만.”낙청연은 바닥에 널브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그물이 그녀를 꽁꽁 싸맨 탓이었다. 남녀 한 무리가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전부 제사 일족이었다.그들은 거만하게 낙청연을 내려다보며 그녀를 훑어봤다.“너 따위가 감히 대제사장의 처소에서 지내? 별것 아닌 것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제대로 혼쭐 내야겠어!”“때리거라!”사람들은 저마다 몽둥이를 꺼내 낙청연을 때렸다.낙청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