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느냐?”“그는 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미친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겼겠느냐? 내가 왜 너를 그에게 돌려줘야 하느냐?”“이 모든 건 결국 그가 자초한 것이다.”침서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는 자신이 한 짓을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죽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낙청연이 왔다면 부진환을 죽이지 못했을 것이니 말이다.“입 닥치세요!”낙청연은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낙청연은 호통을 쳤다.“그의 시체는 돌려보내세요!”침서는 입꼬리를 당겼다.“알겠다.”낙청연은 너무 후회됐다. 미리 침서에게 부진환을 죽이지 말라고 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그녀는 부진환이 자신을 찾으러 여국까지 올 줄은 몰랐다.다시는 고개 돌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면서 그가 죽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숲속에서 나온 뒤 낙청연은 나무를 잡고 몸을 지탱하더니 피를 왈칵 토했다.“괜찮습니까?”구십칠은 깜짝 놀라 다급히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낙청연은 입가의 피를 닦은 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이 부진환의 시체를 들고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낙청연은 감히 더 보지 못했다.심장이 쥐어뜯기듯 아팠고 벌게진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낙청연은 주먹을 움켜쥐며 감정을 삼키려 했다.침서!언젠가는 꼭 자신의 두 손으로 그를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곧이어 낙청연은 구십칠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다.그녀는 침서와 동행하고 싶지 않았다.강한 바람에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허공으로 흩어졌다.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구십칠은 등 뒤에서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살짝 놀란 그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려는데 등 뒤에 있던 낙청연이 정신을 잃고 말에서 떨어졌다.“낙청연!”구십칠은 안색이 돌변하여 곧바로 말을 멈춰 세웠다.그는 곧장 말에서 뛰어내렸지만 낙청연의 몸은 산비탈을 따라 굴러떨어지고 있었다.구십칠은 빠른 속도로 그녀
구십칠은 걱정돼서 곧바로 말에 오른 뒤 약재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정신을 차렸을 때 낙청연은 마차 위에 있었다.입궁하는 마차였다.마차 안에는 그녀 혼자뿐이었다.가슴께가 여전히 아파 낙청연은 힘겹게 몸을 지탱해 자리에 앉았다.그녀는 발을 걷고 차부에게 물었다.“누가 분부한 것이지?”“침서 장군입니다.”낙청연은 차부에게 멈추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내 입궁하여 미처 그러지 못했다.잠깐 자리에 앉아 기운을 고르고서야 통증이 조금 가셨다.정신을 잃은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낙청연은 알지 못했다.침서는 왜 그녀를 입궁시킨 걸까?제사 일족의 거처는 궁 안에 있었지만 위치가 편벽하고 범위가 아주 넓기에 일반적인 상황에서 궁 안의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차부는 낙청연을 궁까지 데려다주었고 그녀는 마차에서 내린 뒤 긴 길을 걸었다.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서 푹 쉬고 싶었는데 정원 문을 연 순간 낙청연은 눈앞의 광경에 화들짝 놀랐다.방문이 열려 있었고 그녀의 물건은 마당에 마구 내동댕이쳐져서 엉망진창이었다.그날 이곳을 처소로 정한 뒤 낙청연은 출궁했다. 겨우 며칠 사이에 이 꼴이 되다니.그런데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살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이 몸을 홱 돌리자 큰 그물이 그녀를 덮쳐서 옭아맸다.그녀가 저항하기 전에 그물이 팽팽히 당겨졌고 낙청연은 마당 밖으로 끌려 나갔다.낙청연은 그물 안에 갇힌 채로 신속히 마당을 벗어났고 곧이어 귓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하하하하하...”“이렇게 연약하다니? 전 대제사장의 처소에서 지낸다고 해서 아주 강할 줄 알았건만.”낙청연은 바닥에 널브러져 일어날 수 없었다. 그물이 그녀를 꽁꽁 싸맨 탓이었다. 남녀 한 무리가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전부 제사 일족이었다.그들은 거만하게 낙청연을 내려다보며 그녀를 훑어봤다.“너 따위가 감히 대제사장의 처소에서 지내? 별것 아닌 것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 제대로 혼쭐 내야겠어!”“때리거라!”사람들은 저마다 몽둥이를 꺼내 낙청연을 때렸다.낙청
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맹수처럼 흉악했다.사람들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고 두려움마저 들었다.탁장동은 그녀를 쏘아봤다.“어디 한 번 날 죽여보지 그래? 네가 감히 이곳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느냐?”“시험해 보고 싶으냐?”낙청연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탁장동은 숨이 쉬어지지 않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낙청연은 온몸의 힘을 쥐어짜 내고 있었다. 몸이 너무 허약해서 그냥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처음 낙청연을 때리라고 명령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낙청연, 네가 이례적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거라.”“감히 그녀를 다치게 한다면 널 잔인하게 죽일 것이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그자를 바라보더니 경멸하듯 웃음을 터뜨렸다.“난 당연히 특권이 있다. 너처럼 쓸모없는 녀석보다는 특권이 훨씬 많지.”경멸에 찬 낙청연의 미소와 눈빛에 하령(夏翎)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낙청연을 노려보았다.“뭐라고 했느냐?”낙청연은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유유히 웃었다.“스물여덟이나 먹었으면서 부제사장도 하지 못한 놈이 쓸모없는 놈이 아니면 뭐지?”그 말에 주위 사람들은 바짝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이런 말을 하다니.나이는 제사 일족에게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릴 때 제사 일족의 선택을 받아 교육받았다. 그러나 그중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었다.일정한 나이가 된다면 실력이 출중한 이들은 도성에 남아 관직을 얻게 된다.보통 스물다섯 이상의 나이에 변변찮은 관직 하나 없이 제사 일족에 남아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이었다.그야말로 치욕이었다.다들 대놓고 말하지도, 몰래 뒤에서 의논하지도 못했다.그러나 연약하면서도 볼품없는 여인은 하령의 앞에서 거침없이 그를 조롱했다.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하령의 나이를 알고 있는 걸까?하령은 화가 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낙청연은 도발하듯 그를
신산이라고 해도 이렇게 모든 걸 꿰뚫을 수는 없었다.낙청연이 갑자기 도전장을 내밀자 탁장동은 잠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기세가 확 사그라들었다.“두고 보자고!”탁장동은 눈을 부라리더니 몸을 돌려 떠났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떠났다.사실 다들 곤혹스러웠다.“정말 이상한 일이네. 왜 다 알고 있는 거지? 이 세상에 저렇게 신기한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어떻게 단번에 다 아는 거지?”“누가 알겠어? 겉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데 3일 뒤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 우리는 그냥 지켜보자고.”사람들이 전부 떠난 뒤 낙청연은 몸을 지탱해 천천히 마당으로 향했다.마당 안에 들어간 순간, 낙청연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녀가 먼저 3일 뒤 취성대에서 만나자고 해서 주도권을 빼앗았다. 이렇게 해야 3일 동안 쉴 수 있었다.만약 지금 당장 싸운다면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잠깐 휴식한 뒤 몸을 일으켜 문을 닫으려는데 돌연 누군가 문밖에 나타나 낙청연의 움직임을 막았다.상대가 누군지 확인한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우유(於柔)가 손에 든 약병을 낙청연에게 건넸다.우유는 낙청연보다 키가 한 뼘 작고 아담했으며 외모도 수려하고 온화했다.“가지고 있어. 널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알고 있다.”낙청연은 약병을 받았다.우유는 살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낙청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안에 들어와 앉거라.”우유를 맞이한 뒤 낙청연은 문을 닫았다.방 안의 많은 물건이 바닥에 내팽개쳐졌지만 방 안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우유는 걸으면서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 탁자에 올려두었다.“그렇게 다쳤으면서 3일 뒤 탁장동과 겨루다니, 미친 거냐?”우유가 다소 놀란 듯 물었다.낙청연은 덤덤히 웃었다.“어차피 이 시합은 피할 수 없다.”“탁장동이 시간을 결정하길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기회를 잡는 것이 낫지. 적어도 3일이란 시간을 벌었으니 말이다.”낙청연은 평온하게 대답했다.우유는 그녀의 말에
온심동은 싸늘한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고 하령이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쫓았다.“심동아, 화가 난 것이냐?”하령은 무거운 어조로 변명했다.“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온심동은 짜증이 나서 걸음을 멈추었다.“저한테 그런 얘기를 해서 무슨 소용입니까? 어떻게 해결할지는 당신이 생각하세요.”온심동은 냉담한 어조로 대꾸한 뒤 몸을 돌렸다.하령이 초조한 듯 그녀를 따라잡았다.“네가 화가 났다는 건 알겠다. 걱정하지 말거라. 난 절대 그자가 네 자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내가 말했다시피 난 네가 대제사장의 자리에 앉게 도와줄 것이다. 그 약속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꼭 지키겠다!”하령은 진지하게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그러나 온심동은 미간을 구겼다.“그건 당신 일이니 전 신경 쓰지 않습니다.”“절 도와줬다고 해서 제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거로 생각하지 마세요. 제게서 뭘 얻을 생각은 더더욱 하지 말고요. 처음부터 말해뒀습니다.”“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걸 전 줄 수 없습니다.”온심동은 하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절 따라오지 마세요. 싫습니다.”냉담하게 말을 마친 뒤 온심동은 더 빨리 걸었다.하령은 그녀를 뒤쫓지 않았다. 그저 온심동의 떠나는 모습을 슬프게 바라볼 뿐이었다.-낙청연은 방 안에서 하루 동안 쉬었다.우유가 준 약이 효과가 있기는 했지만 낙청연의 몸에는 크게 효과가 없었고 중요한 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저녁이 되자 침서가 찾아왔다. 낙청연은 침상에 기대어 기침하고 있었고 침서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왜 몸이 아직도 낫지 않는 것이냐?”침서가 다가와 침상 옆에 앉았다.그는 손을 뻗어 낙청연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살짝 놀랐다.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스치자 핏자국이 보였다.“다쳤느냐? 누가 한 짓이냐?”침서는 마음 아픈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낙청연은 그의 손을 쳐냈다.“제가 원한 불전연은요?”침서는 난색을 드러냈다.“찾기 쉽지 않다.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그 말에 낙청연은 미간을
낙청연은 일어나서 재빨리 피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검은 그림자들이 이리저리 날뛰었다.낙청연은 소용돌이에 휘말린 낙엽처럼 바람에 휩쓸려 멈추지 못했다. 벽에 부딪히고 문에 부딪히고 나무에 부딪히면서 피를 마구 토했다.무척 볼품없는 모습이었다.어두운 곳에서 멀리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얼마나 대단하길래 취성대에서 탁장동과 겨루겠다고 한 건지 궁금했는데 저렇게 쓸모없다니.”“원래도 별 볼 일 없었지. 10대 악인이 왜 저자에게 굴복한 건지 알 수 없다니까.”“두 마리 더 풀 거라! 호되게 괴롭히면 이틀 뒤 취성대에서 바로 백기를 들지도 모르니 말이다.”그들은 팔괘부(八卦符)로 봉인되었던 상자를 열었고 부적 하나로 상자 안의 물건을 조종하여 상자에서 나오게 했다.바로 그때 발 하나가 나타나 상자를 엎었다.불쑥 튀어난 그것은 악에 받친 것처럼 소리를 질렀고 그들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너 어디 아프냐?”사람들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상자를 걷어찬 우유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일어서니 그들은 우유보다 키가 컸고 우유는 아담하여 만만해 보였다.우유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적당히 해!”“저러다 죽기라도 하면 침서가 너희들을 어떻게 처리할까?”말을 마친 뒤 우유는 몸을 돌려 떠났다.그들은 화가 났지만 침서를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누군가 말했다.“그만하자. 어차피 무공을 시험하려 한 것이 아니냐? 맥도 추리지 못하는데 더 괴롭히다가 진짜 죽으면 어떡하느냐?”그들은 곧바로 물건을 정리하고 재빨리 그곳을 떠났다.낙청연은 무기력하게 마당 벽에 기대어 앉아 입가의 피를 닦았다.검은 그림자들이 도망치는 방향을 바라보는 낙청연의 눈빛이 서늘했다.-어두운 밤, 숲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가 가슴께를 누른 채로 재빨리 도망치고 있었다.그의 뒤에서 그를 뒤쫓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부진환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온몸은 더 심했다. 그는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도저히 추격자들을 따
부진환은 놀랍지 않았다. 이곳에 나타날 수 있는 사람은 절대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부진환은 대답하지 않고 생각하고 있었다.진익이 계속해 말했다.“침서의 사람은 이미 산 전체를 둘러쌌소. 당신은 상처가 심각하니 도망치지 못할 것이오.”“날 따라간다면 내가 당신을 데리고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소.”“게다가 침서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오. 당신도 느꼈겠지. 당신이 살아서 이 산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도성에는 들어갈 수 없소. 낙청연도 만나지 못할 것이고.”“여국에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나뿐이오.”부진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조건은?”“이렇게 먼 곳까지 날 구하러 왔으니 조건이 있겠지.”진익은 웃었다.“역시 똑똑한 사람과 거래하는 것이 좋소!”“내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오. 바로 침서를 죽이는 것이지!”진익의 눈동자에 강렬한 살기가 들끓었다.침서는 병권을 장악해 제멋대로 날뛰었다.비록 겉으로는 황실에 복종하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상 황실의 구속을 받지 않고 안하무인처럼 굴었다.게다가 황자인 그도 안중에 두지 않았고 항상 그를 조롱했다.진익이 가장 원하는 것이 바로 침서를 죽이는 것이었다.부진환은 진익이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란 걸 보아냈다. 그의 눈동자에서 증오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좋소. 내가 당신을 도와 침서를 죽이겠소.”“난 낙청연만 원하오!”그 말에 진익은 또 웃었다.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천궐국의 전쟁의 신이라 불리는 왕야가 이런 순정파일 줄은 몰랐소.”“하지만 낙청연을 데려가는 건 어려울 것 같소.”부진환의 눈빛은 평온했다. 그는 살짝 가라앉은 표정으로 덤덤히 대꾸했다.“난 낙청연을 데려가려는 게 아니오.”“그러면 뭘 할 생각이오?”진익은 이해할 수 없었다.“남은 시간 동안 그녀를 돕고 그녀의 곁에 있고 싶소.”그건 지금 부진환이 바라는 유일한 소망이었다.진익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음, 감동적이군.”“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소.”“대신 내 말을 들어야 하오. 때가 되어야 당신
”감히 난향을 써? 네 주제에!”그 흉악한 눈빛과 온몸 가득한 살기에, 난희(蘭姬)는 겁에 질려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다.“장…… 장군, 장군께서 허락하신 겁니다.”침서는 눈빛이 돌연 차가워지더니, 난희를 힘껏 방문 밖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앞으로 다시는 난향을 쓰지 말거라. 꺼져라!”난희는 호되게 방문 밖으로 내팽개쳐져,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피를 왈칵 토했으며 그 모습은 그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난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장군의 성격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예전에 그녀의 춤사위를 가장 즐겼으며, 그녀 몸에서 나는 난향 냄새를 좋아했다.그런데 왜 갑자기……난희는 힘겹게 땅에서 기어 일어나, 방안에서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는 침서를 쳐다보며 물었다. “장군, 무슨 고민거리가 있으십니까? 난희가 장군님의 걱정을 덜어 들리겠습니다!”바로 이때, 그녀 뒤에서 누군가 걸어와, 그녀 곁에 멈춰 서더니, 호되게 뺨을 후려갈겼다.난희는 또다시 땅바닥에 엎어졌다.“꺼지라고 했는데 아직도 꺼지지 않는 건, 설마 내가 너의 가죽을 벗기길 기다리는 것이냐?” 고묘묘의 눈빛은 매서웠으며 다소 의기양양했다.난희는 분노의 눈빛으로 고묘묘를 노려보았다.고묘묘는 난희의 눈빛을 보더니, 화가 나서 난희의 멱살을 덥석 잡고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감히 나를 노려봐? 눈알을 뽑아버릴까?” 말을 하며 난희의 눈을 뽑으려고 했다방안에서 술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짜증 섞인 침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하거라!”“당장 꺼져!”고묘묘는 그제야 난희를 풀어주었다.차가운 눈빛으로 난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예전에는 침서가 너를 지켜주었으나, 앞으로 그는 더 이상 너를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본 공주에게 무례하게 굴면, 본 공주는 너를 죽고 싶어질 정도로 괴롭힐 것이다!”난희는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눈시울을 붉히며 방안의 침서를 힐끗 쳐다보더니, 급히 걸음을 옮기며 설움에 눈물을 훔쳤다.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