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영은 침묵했다.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최선의 결과이기도 했다.정국진 쪽에서 힘썼다 한들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이건 모두 억울한 누명이 아닌 강서희가 저질러 놓은 일이었다.그녀가 그런 짓을 했으니 이제 그녀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강이한한테도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강이한도 삼촌이 손 봐준 거예요?”이유영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정도 들리지 않았다.“아니.”이유영은 정국진을 올려다보며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삼촌 쪽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강이한이 이리 쉽게 잡힌다고?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정국진은 이유영의 의심을 눈치채고 말했다.“그가 파리에서 돌아온 후 그 누구에게도 문 비서와 지현우의 수사를 막지 말라고 했어.”“그리고 파리에 왔다고요?”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이유영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그가 파리에 뭘 하려고 들어왔지?그녀는 돌아온 이후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고 매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바깥세상을 이해할 정신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정국진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알았다. 그녀가 와인 저택의 작은 방 한쪽에 있을 때 바깥세상의 모든 것이 뒤집혀 졌다는 사실!.정국진은 이유영에게 이 기간에 칭하시에서 발생했던 모든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이유영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랐다. 그날의 화재가 칭하시에 이렇게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강이한의 태도였다.정국진은 이때까지 이유영이 강이한과 더 이상 얽히는 것을 매우 반대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지금 이유영에게 강이한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화재 이후 강이한의 태도는 어땠는지, 강씨 가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강이한이 파리에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 돌아간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그는 이유영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털어놓았다.말이 끝나자!정국진은 이것 말고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듯이 깊고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저한테 이런 얘기 하죠?” 이
이것은 사람으로 하여금.정국진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말없이 그대로 뒤돌아 나갔다!정국진의 외롭고 차가운 뒷모습, 그리고 정유라에 관한 모든 질문을 회피하는 그를 바라보며 이유영은 더욱 의아해했다.큰 화재.그것은 모든 과거를 태워버렸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은 그녀에게는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삼촌이든 이모든, 칭하시의 강서희든 모두 베일을 쓴 것만 같았다.이전의 모든 것이 그녀로 하여금 강이한을 과소평가하게 만들었다!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정국진이 자리를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그의 곁에 있던 에이글 집사가 갑자기 소은지가 사라졌다며 통화를 걸었다.그 순간 이유영은 다시 한번 혼돈에 휩싸였고, 그녀의 사지는 다시 뻣뻣해지기 시작했으며 얼굴 또한 창백해졌다.같은 시각.칭하시에서는 강이한이 자신이 했던 모든 짓을 자백했다.그의 빠른 자백 덕에 진영숙이 찾아준 모든 관계는 헛수고가 되었다. 그리고 판결도 재빨리 끝을 맺었으며 결과 또한 매우 빨리 나왔다.감옥, 진영숙은 유리 건너편에 있는 죄수복 차림의 강이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이한은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왜 엄마를 두고 떠났어? 그깟 여자를 위해 자신을 괴롭히는 게 의미는 있어?”흐트러진 강이한을 바라보는 진영숙의 눈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유영을 대하는 태도가 전에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이유영이 아주 미웠다.그녀가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이미 알면서도 여전히 강서희의 삶을 뒤흔드는 사실이 진영숙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그녀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라 제 아내예요.”강이한은 냉정한 어조로 진영숙을 바로잡았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는 여전히 이유영을 옹호하고 있었다.다만 이런 옹호가 이젠 무의미해졌다.강이한의 옹호에 진영숙의 목은 더욱 아파 났고 그녀의 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아래로 흘러내렸다.그는 훙왕 글러벌 건설의 도련님
세월은 흘러가고!야속한 세월은 흘러가 화재에 관련된 사람들의 삶 궤적이 모두 크게 바뀌었다.2년 후.파리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비즈니스 연설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칭하시 감옥, 이시욱은 황급히 달아와 2년이라는 시간에 차갑고 침착한 사람으로 변해버린 강이한을 마주했다.세월은 그의 눈 밑에 흔적을 남겼다.“무슨 일이지?”이시욱을 본 강이한의 말투는 차가웠다.2년이 지났다!그날 진영숙이 떠난 후 회사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본 적이 없었다.그동안 진영숙은 더 많은 인맥을 찾아보았지만 모두 강이한에게 거절당했고, 심지어 파리 측에서 전화가 왔을 때도 거절당했다.그 기간 이시욱도 수없이 많은 면회를 신청했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우울한 얼굴은 처음이라 강이한은 회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거로 생각했다.이시욱이 말을 하지 않자 강이한이 물었다.“회사?”“아니요!”이시욱은 고개를 저었다.“….”그럼, 뭐지?강이한을 바라보는 이시욱의 눈빛은 매우 복잡해 보였다!예상치 못한 결과가 분명했고 또한 어떻게 알려야 할지도 몰랐다. 사실 이 소식은 진영숙이 먼저 알아챈 소식이었다.하지만 그녀 또한 어떻게 강이한한테 알려야 할지 몰랐다. 젠장! 이것은 더 이상 우연의 문제가 아니었다.이 2년 동안 강이한은 무기징역! 강서희도 그만큼의 큰 대가를 치렀지만! 죽은 사람은 결코!거짓, 이것은 적나라한 속임수였다!“말하지 않겠다면 그냥 가.”강이한은 바로 전화를 끊으려던 참이었다.“잠깐만요.”때마침 이시욱이 그를 말렸다.강이한의 표정에는 약간의 조바심이 묻어났다.이시욱은 잠시 생각한 후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이 아가씨, 아직 살아있어요!”“….”순식간에 공기는 조용해졌다.분명히 방음 유리였지만 길고 긴 시간의 적막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조용했습니다.강이한의 눈은 폭풍우에 휩쓸린 것처럼 혼란스러웠고, 한바탕의 소동 후 드디어 평정심을 찾았다.그러나 그가 이시욱을 바라보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의 뇌는
파리.우뚝 솟은 사무실 건물, 이유영의 몸은 여전히 작고 작은 뺨은 날카로우면서도 인생 전환이 가져온 피로가 섞어져 있었다.직업 복장 차림의 한 사람이 안경을 쓰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왔고, 그는 몹시도 조용하고 유능해 보였다.특별 조수 몇 명이 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고 조민정은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조민정은 하나하나 메모하고 있었다.비서는 이유영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 정중하게 앞으로 나아가 허리를 숙였다.“대표님, 박 선생님이 오셔서 한동안 기다렸어요, 대표님한테 전화를 또 걸지 말라 하셔서 차마 알리지 못했습니다.”이유영은 박연준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사무를 대하는 그녀의 엄격한 태도는 순식간에 변했고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팍!”이유영은 폴더를 닫으며 조민정에게 건넸다.“먼저 회의실로 가세요.”“네, 대표님.”조민정은 폴더를 들고 내려갔다.이유영은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로 걸어갔고, 뒤에 있던 비서들도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왔다.비서가 이유영을 위해 사무실 문을 열어주었다.이유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앞에 서있는 거대하고도 위엄있는 박연준의 뒤태였고 그녀의 입꼬리는 더욱 올라갔다.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자 남자는 돌아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아주 달콤하였다.“일 다 끝났나요?”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이유영을 바라보며 박연준은 습관적으로 그녀를 향해 팔을 벌렸다.2년이 지났지만, 남자의 따뜻하고 반가운 태도에 이유영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았다.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소파 쪽으로 걸어가 앉았고, 앞에 놓인 물을 집어 한 모금 마셨다.박연준은 평시처럼 그런 그녀의 반응에 더 귀여워할 뿐 머쓱해 하지 않았다.그는 그녀가 아무런 의심 없이 마시고 있는 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제가 마시고 있던 거예요.”“….”그 말에 컵을 들고 있던 손이 뻣뻣해졌다.그러고는 급히 컵을 내려놓고 박연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 마시지 않았어요. 당신이
이유영은 박연준의 말을 더 이상 이어가지 않고 손목을 들어 손목시계의 시간을 보며 입을 열었다.“급한 회의가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급하지 않으면 제가 올 때까지 기다려주실래요?”.“좋아요.”박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일어나서 박연준에게 몇 마디 더 던진 후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2년 전부터 그녀가 점차 회복하기 시작할 때쯤 진영숙은 천천히 그녀에게 로열 글로벌 그룹을 넘겨 그녀더러 돌보게 하였다.전업주부였던 이유영은 이 기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2년 동안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알 수 있었다!바쁜 나머지 삼촌과 이모가 왜 정유라의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는지, 멀리 떨어진 칭하시의 그 의미 없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조차 없었다.그녀는 매일 회사에서 눈을 떴다.잠자리에 들면 피곤함에 지쳐 잠이 들었고,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박연준이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것 외, 아니! 심지어 박연준에 대응할 시간조차도 많지 않았다.그녀는 로열 글러벌 그룹의 후계자였고 진영숙이 반평생 동안 관리해 가며 지탱해 온 소중한 그룹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결코 자연스레 하룻밤 사이에 모든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그 모든 뒤에는 박연준의 지도와 원로회의 공로도 있었다.회의는 두 시간 내내 열렸다.사무실에 다시 나타난 이유영은 박연준에게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죄송해요, 회의에서 의견 충돌이 좀 있었거든요.”30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누가 알았겠나.특히 박연준의 눈빛에 조급한 기색이 전혀 없는 것을 보자 이유영은 마음속으로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그러나 그녀의 사과에 대해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방금 에이글 관리자가 전화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어요.”“아, 그럼 서둘러요!”이유영은 저쪽에서 처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말했다.박연준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이유영의 안색은 굳어지며 잠시 얼어붙었다가, 안도하는
이유영이 처음 본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많은 직원들은 그녀의 작은 체구에 대해 불신이 많이 갔다.이유영의 능력이 어떤지를 떠나서 그의 체구는 사람에게 전혀 안전감을 줄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이렇게 작은 체구인 그녀는 첫해부터 사람들이 실망하게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보너스도 두 배로 되게 하겠다.그 이후로 회사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유영의 작은 체구에 대해 업신여기지 않았다.…이유영과 박연준이 백산 별장에 도착했을 때, 경비원은 박연준의 차를 알아보고 아주 공경하게 자동문을 열어드렸다.정국진과 임소미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임소미는 같이 들어오는 이유영과 박연준을 보고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국진도 웃고 있었지만, 눈 밑에는 그윽함이 반짝이였다.“외삼촌, 외숙모.”이유영과 박연준은 인사를 건넸다.근 2년 동안, 박연준이 다시 이유영의 삶에 나타난 이후부터, 그는 이유영을 따라 정국진을 외삼촌이라 불렀다.정국진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고 박연준을 보고 입을 열었다.“연준아, 잠깐 나랑 서재에서 보자.”“네.”연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두 사람은 원래 망년지교였다. 이유영과 친해지기 전에 이미 두 사람은 아주 사이좋은 친구였다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박연준이 외삼촌이라고 불렀을 때 정국진은 오히려 어색하다고 생각했다.임소미는 이유영의 손을 잡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이유영을 꾸짖었다.“에그 집사님한테서 다 들었어. 점심에 보낸 약 안 먹었다면서?”약 얘기가 나오자, 이유영은 멈칫했다.이유영은 약의 쓴맛을 정말 안 좋아했다. 하지만 임소미는 이런 방면에서 항상 엄청 꼼꼼하게 챙겼다.심지어 회사에 있다고 해도 절대로 봐주지 않았다.“점심에 공장 쪽에 있어서 우현이 헛걸음했어요.”“그건 에그 집사님이 소홀했네. 다음부터는 네 위치를 확인하고 보내라고 해야겠어.”“외숙모,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되세요.”“그걸 말이라고. 여자가 그럴 때 대 출혈하면 그 이후로도 몸 회복하기 힘들어.”“…”
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임소미의 말을 들은 이유영은 멈칫했다. 솔직히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이유영은 그저 정유라가 가족이랑 사이가 안 좋아 전화하면 싸움만 나서 자기한테 전화로 안부를 묻는 줄로 알고 있었다.근 2년 정유라가 집에 전화한 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이유영은 정말 깜짝 놀랐다.정유라 얘기를 꺼냈을 때 임소미의 실망과 차가움이 드러난 눈빛이 생각난 이유영은 임소미의 살짝 차가운 손을 붙잡았다. 이유영은 입을 열었다.“외숙모, 2년 전…”“그만 물어봐 줘. 응?”이유영의 말이 끝나기 전에 임소미는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전과 똑같이, 이유영이 2년 전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그들은 아예 말꼬리를 잘라버리고 더는 그 화제를 거부한다.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태도는 여전했다. 다시 그 얘기를 하기 꺼린다.이건 이유영한테 충격이기보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정유라, 외삼촌 외숙모의 유일한 딸. 2년 전에 심하준이 죽어서 정유라가 몹시 슬퍼한 게 아닌가?‘근데 왜 그 일로 외삼촌과 외숙모는 정유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거지?’“외숙모, 화내지 마세요.”무슨 일인지 몰라서 이유영도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임소미는 머리를 저었다.“난 화 난 게 아니야.”‘화 난 게 아니면, 도대체 뭐지?’이유영이 마저 물어보려고 하던 때, 임소미는 손을 내밀어 이유영의 손등을 토닥토닥하였다. 그리고 빈약 그릇을 들고 말했다.“올라가서 네 외삼촌이랑 연준이 얘기 언제 끝나는지 물어봐. 곧 식사 시간이야.”“네.”이유영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향해 걸어가는 임소미의 썰렁한 뒷모습을 보고 이유영 마음속에는 온통 걱정뿐이었다.2년 전 심하준이랑 정유라 사이가 설마 이유영이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는 건가?‘청하시에 있었을 때, 외삼촌은 나를 돌볼 틈이 없이 그저 정유라 곁을 지켰었는데.’‘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이 2년 사이에 그들 사이가 이렇게 차가워진 거지?’전에는 외삼촌만 그렇다고 쳤는데. 지
박연준은 이유영을 바라보며 아주 애지중지하는 듯이 손을 내밀어 이유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동작은 몹시 부드러웠다.“외삼촌이 당신을 걱정하시는 만큼 당신은 외삼촌한테 걱정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되죠? 그렇죠?”이유영은 말문이 막혔다.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박연준의 말이 맞았다. 이유영은 항상 외삼촌을 걱정시켰다.하지만 지금 코밑에…!박연준의 손을 끌어 잡고는 말했다.“연준 씨 말이 맞아요. 제가 더 노력할게요.”“그래요.”박연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그리고 입을 다물고 마저 식사하였다.이유영은 별문제 없어 보이는 박연준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내색하지 않고 정국진 쪽을 향해 바라보았다.하지만 그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외삼촌은 줄곧 박연준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리고 박연준이 자기를 잘 챙겨줄 거라고 믿고 2년 전부터 이유영과 박연준을 잘 되게 몰아주었다.최근 2년간…!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 보니 이상한 점은 정유라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외삼촌도 있었다.원래 그저 간단하고 편한 한 끼 식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런 찝찝함 속에서 끝났다.식사가 끝나고 이유영은 박연준을 바래다주었다.“아까 외삼촌이랑 서재에서 무슨 얘기 했어요?”여자의 촉이 말해주기를 외삼촌의 변화는 분명 서재에서 박연준이랑 얘기가 끝난 후부터였다.하지만 지금, 박연준은 이유영의 이런 물음에 그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별 얘기 안 했어요.”봐, 또 이런다니까!외삼촌이든 외숙모든, 지금 심지어 박연준마저 자기의 물음을 회피하고 있다.이유영은 입을 삐쭉하였다.“그래요.”이유영은 남의 프라이버시를 물고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박연준이 말을 안 하는 거면 자기한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아무리 두 사람 관계가 좋다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은 지켜야 했다.박연준은 실망하는 이유영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내 와이프라면 나도 자연스레 당신한테 다 털어놓았을 거예요.”“또
이유영이 집으로 돌아온 뒤, 임소미는 사람을 시켜 조사를 시작했고 이유영이 강이한 곁에서 결코 평온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지 못했다.며칠 동안 진영숙의 광기에 가까운 모습을 목격한 뒤에야 그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왜 서주로 떠나서 죽음을 가장했는지를.모두 이 여자 때문이었다. 진영숙이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다.남편뿐만 아니라 지금 강이한의 행방조차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여자로서 그 책임은 결코 작지 않았다.임소미는 감정을 가라앉힌 후에야 이유영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진영숙이 사실은 월이를 데려가려 했다는 것을.“며칠 동안 데려가겠다고 했다고요?”“그래서 내가 화가 났던 거야.”진영숙의 행동을 보면 며칠은 말뿐인 핑계였다.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임소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이제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손녀만 남았다고? 과연 손녀의 의미를 알고는 있는 사람인가?’이유영은 말없이 얼굴을 굳혔다.진영숙은 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유영아, 이번 일은 그녀에게 연민을 가질 필요 없어.”임소미의 목소리엔 단단한 결심과 냉기가 섞여 있었다.진영숙은 자신이 모든 걸 잃었기 때문에 아이라도 데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그런 상실에 대해 임소미는 전혀 동정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엄마. 제가 처리할게요.”이유영은 어머니를 안심시켰지만 그녀의 목소리 역시 차가웠다.“어떻게 처리할 거니?”‘어떻게 처리할까?’이유영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그녀는 당연히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임소미를 진정시킨 뒤, 이유영은 백산 별장을 나섰고 밖에선 지혁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가씨.”“풍산 그룹으로 가요.”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마음이 무거웠다. 가능하다면 평생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그곳은 과거가 덕지덕지 붙은 장소였고 이유영은 그것들과 멀어지고 싶었다.“윙윙윙.”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박연준이었고 이유영은 망설임
이유영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그녀는 임소미의 품에 파고들며 가느다란 팔로 어머니의 허리를 꼭 안았다.“엄마,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오래전 소은지는 이렇게 말했었다. 강이한은 연애 상대론 괜찮지만 결혼은 다르다고.그때 변호사였던 소은지는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 결혼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녀가 강이한과 결혼을 결심했을 때, 소은지는 그녀를 말렸었다. 소은지는 그녀의 결혼을 말렸던 유일한 사람이었다.결국 소은지의 말은 모두 옳았음이 증명됐다.끝났다고 믿었던 그 관계는 여전히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었다.그때, 등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앞으로는 아무도 너를 괴롭히지 못할 거야.”이유영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눈물이 눈가에 가득 차올랐다. 참으려 해도 눈물이 뺨을 따라 끝없이 흘러내렸다.예전에도 어머니는 그녀를 이렇게 품어주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모두 혼자 견뎌야만 했다.임소미가 감싸안아 주자 이유영의 마음은 다시금 따뜻함으로 물들어갔다.그리고 이 감정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앞으로는 아무도 엄마를 괴롭히지 못하게 할 거예요.”그녀가 말한 '아무도'는 명백히 진영숙을 가리키고 있었다.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사람에게서 다시 이런 고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임소미는 그 말을 반복하듯 속삭였다.오늘 밤, 임소미의 마음속에 일어난 파장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다.진영숙이 막말을 퍼붓고 손까지 쓰는 모습을 보며 이유영이 강씨 가문에서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를 임소미는 문득 깨달았다.사모님의 우아한 모습은 진영숙에게서 찾아보기 힘들었다.불편한 감정이 들 때마다 손부터 나가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과 살아야
이유영이 돌아오고 그녀는 진영숙과 임소미 사이에서 벌어진 격렬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두 명의 도우미가 진영숙을 붙잡아 끌어내고 있었다.임소미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슴은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그녀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솟구쳤다.임소미는 이유영을 보자마자 재빨리 붙잡고 말했다.“너 먼저 위로 올라가.”“무슨 일이 있었어?”이유영이 물었다.정씨 가문에 돌아온 지 오래된 만큼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우아하고 온화한 사람인 만큼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임소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영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유영, 넌 누가 너한테 눈을 기증해 줬는지 모르지? 강이한이 네게 빚을 졌다고 하지만 사실은...”“입 다물어!”진영숙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소미가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이유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서 있었고 진영숙은 여전히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이유영을 노려보았고 그 눈빛엔 전례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다.예전에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도 진영숙은 이유영을 이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한 번도 따뜻한 시선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금, 용성시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증오가 더욱 깊어진 듯했다.“유영아, 너 먼저 위로 올라가.”“엄마.”“올라가!”임소미는 이유영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격하게 소리쳤다.임소미가 이런 식으로 이유영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임소미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그대로 드러났다.이유영은 무언가 더 묻고 싶었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말문이 막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돌아 안으로 들어갔다.그 순간, 진영숙은 자신을 붙잡고 있던 도우미들의 손을 뿌리치고 이유영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쳤다.“이유영, 강이한은 너에게 빚진 게 없어. 강이한은 오히려 너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너야말로 가장 잔인한 사람이야. 네 눈조차..
임소미는 혈압이 치솟았고 화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내 말이 틀렸나요?”“틀렸냐고? 제대로 된 일을 한 적은 있고? 당신만 제대로 된 선택을 했더라면 유영이와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야.”임소미는 참았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격렬히 외쳤다.진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임소미의 말이 맞았다. 진영숙은 두 사람 관계에서 많은 잘못을 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강이한은 사라졌고 강서희도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월이 뿐이었다.오늘 이곳에 와서 월이를 보게 된 순간, 월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자리 잡았다.“사람 불러!”임소미가 크게 외치자 집사들과 도우미들이 급히 달려왔다.“이 여자를 당장 내쫓아!”“당신이 감히 그럴 수 있을까?”“뭐라고?”임소미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이 여자는 지금 도대체 뭐 하려는 걸까?’조금 전 아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아이에게 조금의 정이라도 남아 있는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결국 그녀는 후회라는 감정을 모르는 인간이었다.진영숙이 오늘 여기 온 것도, 월이에게 다정하게 굴었던 것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지막 발악이었다.그녀의 말은 그저 그럴싸한 포장일 뿐 사실은 월이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리고 뻔뻔하게도 무례하기까지 했다.진영숙은 임소미의 눈을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따뜻함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매서운 날카로움뿐이었다.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우리 아들이 왜 서주를 떠났는지 내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임소미, 당신들은 정말 단 한치의 양심 가책도 못 느꼈어?”왜 강이한이 서주를 떠났는지 시간대와 상황을 조합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추측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특히 떠나기 전, 시윤이 건넨 말이 결정적이었다. 이유영이 용성시에서 수술을 받았던 그 시기에 강이한은 서주에
강이한은 그렇게 어둠 속에서 절망의 고통을 몸소 겪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수술을 받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한때 이유영이 어둠 속에서 얼마나 무섭고 무력했는지를 그는 이제서야 조금씩 체감하고 있었다....파리에서 진영숙은 다시 백산 별장을 찾았다. 여전히 강이한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고 시윤은 강이한이 이정과 신시욱을 데리고 떠났다고 말했다.그 두 사람의 능력을 생각하면 강이한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진영숙은 어머니로서 절망에 가까운 마음으로 그를 수소문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그리고 알면 알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졌다.“정말이지, 당신은...”백산 별정까지 찾아온 진영숙의 뻔뻔함에 임소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응수했다.진영숙은 한때 유능한 여성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감히 저런 얼굴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녀에겐 익숙하지 않은 대우였다.“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 좀 봐주세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전에는 없던 고통이 서려 있었다.그렇다. 지금의 진영숙에겐 주변에 기댈 친척도 함께할 가족도 없었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건 손녀인 월이 뿐이었다.오늘도 그녀는 월이를 위해 여러 장난감을 준비해 왔지만 임소미는 그 모든 행동이 불쾌하게만 느껴졌다.“당신도 어머니였잖아요.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지 알잖아요.”임소미는 차가운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봐준다고? 당신이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이유영이 강이한과 결혼했을 때,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뱃속의 아이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이토록 헌신적인 할머니 행세를 하니 임소미는 화가 났다.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극으로밖에 안 보였다.진영숙의 눈엔 고통이 어렸다.“저는 정말 생각하지 못했어요.”임소미의 말에 그녀는 도무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아무리 자존심 강한 진영숙이라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지금, 과거
그녀는 어둠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강이한을 떠난 뒤 어둠 속에서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신시욱과 이정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침묵에 잠겼다. 그 질문은 그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이유영이 그때 얼마나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냈는지, 사실 그들조차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건 그녀가 깊은 괴로움 속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뿐이었다.그리고 그녀가 괴로워할수록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의 고독이 얼마나 잔혹한 감정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그녀는 깊은 절망 속에 빠져 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은 어쩌면 그때의 이유영보다 더한 심연 속에서 절망을 겪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벌하고 있었다. 그녀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겪기 위해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던졌다.“선생님. 각막 이식 수술 관련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신시욱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천시에 머무는 동안, 신시욱과 이정은 한 번도 수술 신청을 멈춘 적이 없었다.그들은 강이한을 잘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이유영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도 절대 강행하지 않았다.이유영이 시력을 잃었을 때, 그녀는 가족들이 몰래 준비했던 이식 수술조차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었다.그리고 지금의 강이한도 마찬가지였다.오랫동안 기다려 온 기회 앞에서 강이한은 조용히 거절했다.“필요 없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두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두 사람은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필요 없다고?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선생님.”신시욱의 목소리는 긴장감에 더욱 떨려왔다.그 어떤 강인한 남자라고 해도 이 순간 목소리에서 전해지는 떨림을 억누를 수 없었을 것이다.최근 며칠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 두 사람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강이한은 자신을 벌하며 살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정말 이미 충분했다.‘받아야 할 벌은 다 받았는데 왜 여전히 자신을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어둠 속에서 지낸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어둠 속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새들의 지저귐이 더 또렷하게 들리고 사소한 바람 소리 하나에도 감각이 예민해졌다.강이한은 우천시에 있는 주택 마당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천시에 오늘같이 이렇게 따스한 햇살이 비추던 때가 언제였던가?이정이 조심스레 다가와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햇살은 있어도 아직은 쌀쌀하네요.”말은 없었지만 강이한은 이정의 발걸음 소리와 숨소리로 그가 신시욱이 아님을 알아차렸다.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그때의 이유영도 지금처럼 감각이 예민했을까?“이정.”“네.”“유영이는 이 마당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보지 못했겠지?”“네.” 이정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유영은 이곳에서 몇 개월을 머물렀지만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 마당은 끝내 그녀에게 낯선 곳으로 남게 되었다.지금 그녀를 우천시로 다시 데려온다 한들 스스로 길을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강이한은 낮게 중얼거렸다.“하지만 유영이는 이 마당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그렇다. 보지 못했어도 그녀는 감각으로 모든 것을 구분했다. 마치 지금의 강이한처럼.이정이 조심스레 물었다.“이럴 가치가 있었습니까?”그가 이곳에 온 이후, 누군가가 처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가치가 있었는지는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그것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유영에게 진 빚은 결코 눈 한 쌍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예전에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던 이유영의 손짓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졌다. 지금 자신이 어둠 속에서 겪고 있는 공포는 당시 그녀가 느낀 감정에 닿을 수조차 없었다.점심 식사 시간.“쨍그랑.”강이한이 손을 뻗는 순간, 접시와 그릇이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공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이유영은 자신의 몸에 강이한과 관련된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남은 인생에서도 강이한과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얽히는 일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월이의 일로 인해 그녀는 너무도 깊은 상처를 입었고 강이한을 평생 용서할 수 없었다.그런 사람의 눈을 자신이 기증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그리고 강이한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술 전에 모든 철수 준비를 마친 것이고 이유영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말라고 지시했다.이미 많은 상처를 준 이후, 아무리 많은 것을 베푼다 해도 이유영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자신과 이유영 사이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과감하게 그녀의 손을 놓은 것이다.‘이렇게 되면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빚진 것이 없게 되는 걸까?’하지만 단순히 눈을 기증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유영아, 왜 강이한에 관해 묻는 거야? 혹시...”소은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결국 그녀는 언제나 이유영 편이었다.특히 수술 전, 마지막으로 강이한을 마주했을 때 그가 남긴 말을 들은 후로 그녀조차도 강이한을 용서할 수 없다고 느꼈다.“나랑 장난해?”소은지의 말에 이유영의 표정은 단숨에 싸늘해졌다.그 차가운 기색을 확인한 소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래, 그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소은지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나는 그냥 권력에 그토록 집착했던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서주를 내려놓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야.”“음모일지도 모르지.”소은지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화제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 했다.“...”‘음모’라는 단어에 이유영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소은지는 그녀의 웃음을 보고 또 한 번 안도했다.“ 월이 보러 왔을 때,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뭐라고 했는데?”“일어날 일은 언제든지 다시
강이한은 서주에서의 모든 일을 철수하고 사라졌다. 그와 함께하던 사람들도 함께 자취를 감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유영은 그저 강이한의 또 다른 속임수일 거라고 생각했다.강이한과 박연준, 두 사람은 누군가를 철저하게 속이는 데에 능숙한 사람들이었다.박연준은 진짜로 서주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었고 진영숙은 파리에서 집요하게 강이한의 행방을 묻고 다녔다. 그걸 보며 이유영은 강이한이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무슨 생각해?”반산월에서 소은지는 이유영의 어두운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이유영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은지야.”“응?”“어떻게 된 거라고 생각해?”서주의 현 상황은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이유영은 점점 확신에 가까워졌다.강이한은 정말 그의 사람들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듯했다.권력을 중시하던 인물이었기에 은둔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강이한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로 조용히 지낼 성격이 아니었다.“뭐라고?”소은지는 이유영의 갑작스러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이유영은 소은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강이한이... 정말 사라졌어.”“그래. 그 얘기 예전에도 했었잖아.”이유영이 이제서야 이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것을 소은지는 알아챌 수 있었다.예전엔 믿지 않았던 이유영의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강이한의 실종을 인정하고 있었다.강이한과 박연준은 이유영의 마음속에서 그리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연서의 사건이 터진 이후, 그녀는 두 사람을 음모로 가득 찬 사람들로 생각했고 그래서 처음 강이한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도 이유영은 그것을 단순한 음모의 연장이라 여겼다.두 사람은 늘 서로 무관한 척 행동했지만 그 뒤에는 누구도 상상 못 할 거대한 연관성이 있었던 것이다.신지수는 여러 번 전화를 걸어왔다.강이한이 서주를 떠난 후, 신씨 가문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보았고 그녀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