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윤은 권씨 가문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아니다. 때문에 권씨 가문의 사상이 늘 이해되지 않았고 약혼남이 다른 여자와 뒹구는 걸 본 지금은 속이 메쓱거렸다. 민승현에게 살갑게 대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어제 민도준과 충동적으로 관계를 가진 것도 사실 보호막을 하나라도 만들어 놓고 싶은 마음에서였다.만약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민도준이 그나마 어제의 인연을 봐서 나서주기를 바라면서.그런데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알고 보니 구멍 난 우산이었을 줄이야.외투를 일부러 벗어두고 간 남자를 떠올리니 권하윤은 또다시 속이 뒤틀렸다.지난 반년 동안 권씨 집안 넷째 아가씨로 지내오면서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던 그녀였다. 상대에게 들킬까 두려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고 눈빛도 되도록이면 남들과 마주치지 않았다.만약 어제 민도준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평생 그렇게 가짜 신분으로 생활하려고 했었다.그런데 민도준이 나타나면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그는 권하윤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진짜 그녀를 밖으로 끄집어냈다.권하윤은 호흡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게 폈다.한평생 가짜로 살더라도 남한테 당하기만 할 수 없었다. 하필 민도준을 건드려서 일이 귀찮게 되긴 했지만.-민씨 저택.권하윤은 메이드들과 함께 가족 연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그리고 마침 와인잔을 테이블 위에 놓으려고 할 때 손 하나가 쑥 나와 잔 밑은 받들었다.“오늘 와인 안 마실 거라서 보르도 컵 놓으면 혼날걸요.”고개를 들어보니 우아한 여자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권하윤을 보고 있었다. 감탄을 자아내는 외모와 행동이었다.“저는 원혜정이라고 해요. 형님이라고 불러요.”“아, 형님.”자기소개를 끝낸 원혜정은 메이드더러 위스키 잔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더니 말없이 권하윤을 도왔다.하지만 갑자기 어디선가 느껴지는 미묘한 시선에 고개를 들어보니 강민정이 민승현 어머지, 즉 그녀의 이모 강수연의 팔짱을 낀 채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친하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 활짝 웃은 채 귓속말을 하는
민도준은 권하윤을 힐끗 바라봤다. ‘잤던 사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흘러나왔지만 도로 삼켰다.“만난 적 있어요.”들려오는 대답에 권하윤은 겨우 안도했다. 적어도 한고비는 넘긴 셈이니까.하지만 민상철은 의심을 떨쳐내지 않았다. 민도준 성격에 한 번 만난 적 있다고 인사를 건넬 성격은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시선을 권하윤 쪽으로 옮겼다.“승현 약혼녀라고 했나?”“네.”“이리 와서 술 한잔 따라 봐.”가문 어르신께 술을 붓는 건 무한한 영광이었다. 때문에 민승현마저 흥분한 눈치였다.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권하윤을 다그쳤다.“할아버지한테 잘 보여. 실수했다가 내 손에 죽을 줄 알아.”권하윤은 그런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할아버지가 뭔가 눈치챘을까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그리고 천천히 민상철의 뒤쪽으로 걸어가 메이드의 손에서 술을 받아 쥐고는 빈 잔에 술을 따랐다.“할아버지, 술 받으세요.”하지만 민상철은 술잔을 받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그녀를 훑었다. 마치 심사라도 하듯이.권하윤은 손이 저려왔지만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허리를 숙이고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그리고 그 시각 허리를 숙이고 있는 권하윤의 몸매를 훑던 민도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권하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릴 때쯤 민상철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네가 승현과 약혼할 때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내 서재에 있는 매화도를 선물로 주마. 약혼 선물이다 생각하고 받아 가.”권하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민승현이 먼저 흥분 가득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선물을 받은 것보다 그걸 할아버지한테서 받았다는 게 더 영광스러웠다. 곧이어 할아버지가 자기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자리라도 내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연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 권하윤은 고개를 숙인 채 자기 존재감을 최대한으로 낮췄다. 더 이상 눈에 띄지 않겠다는 노력이었다.중도에 셋째 숙부가 백제 그룹 대표직이 비었다고 은연중 자기 생각을 드러냈지만 가족 연회에서 회사 일을 말
“우리 오늘 저택에 머물 거야.”“왜?”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권하윤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오늘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큰 선물도 주셨다고 엄마가 남아서 이틀 정도 할아버지 말동무라도 해드리래. 나쁜 것도 아니잖아.”민승현은 오늘 권하윤의 행동에 꽤 마음에 들었는지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하지만 어딘가로 문자를 보내는지 눈가에 걸려 있던 미소는 고개를 드는 순간 사라졌다.“그만 좀 물어. 난 따로 볼 일이 있으니까 너 먼저 매원으로 가 있어.”민씨 저택은 민상철이 있는 본채와 남, 북 두 개의 별채 그리고 매원, 난원, 죽원, 국원으로 되어있다.남북 두 개의 별채는 본채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데 현재 첫째 민재혁네 가족이 남쪽 별채에 머물러 있고 다섯째인 민승현네 가족은 매원에 머물러 있다.메이드의 안내 하에 매원으로 가던 중 마침 죽원을 드나드는 메이드들이 권하윤의 눈에 들어왔다.“죽원은 비어있지 않나요?”“오늘 도준 도련님께서 죽원에 머무십니다.”도준이라는 이름 두 글자에 권하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민도준에게 몇 번 당하고 나니 이제 그의 이름만 들어도 민감하게 반응했다.“다섯째 작은 사모님?”메이드의 부름에 권하윤은 정신을 차리고 싱긋 웃었다.“아니에요. 가서 일 보세요.”“네.”메이드가 떠나간 후 권하윤은 죽원 쪽을 힐끗 살폈다.’‘저녁이니까 내가 매원 밖을 나서지만 않으면 마주칠 일 없을 거야.’그 시각.“뭐라고요? 경비원이 그만뒀다고요?”강민정은 전화 건너편 상대의 말에 의아했다.“그만두기 전 뭐라고 하던가요?”“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집에 일이 있다며 월급도 받지 않고 가버렸으니까요.”‘갑자기 왜 그만뒀지?’강민정은 가방 안에 든 고급 정장 외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그녀는 어제 외투에 적힌 브랜드를 알아봤었다. 그리고 브랜드 이름을 듣자마자 큰 충격에 빠졌다. 국내에서 구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주문 제작한 한정판이라서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게다가 경비원이 아무 연유도 없이 그만뒀다는 게 몹시
민도준은 조금도 내외하지 않고 온몸을 권하윤에게 기댔다.그녀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당장이라도 연약한 어깨에 금이 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게 방금 모른척하려던 벌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권하윤은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죽원으로 데려가면 돼요?”“나 죽으라고?”:민도준은 권하윤 어깨에 기대며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걱정 마. 오늘 나 죽으면 그쪽은 꼭 함께 데려갈 테니까.”연인 같은 자세에 그렇지 못한 말투에 권하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민씨 저택인데 저들은 어떻게 이런 짓까지 했대요?”“민씨 저택은 뭐 그렇게 안전한 줄 알아? 여기가 더 위험해.”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은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권하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심스럽게 민도준을 부축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솔직히 거실에 내버려 두고 싶었지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설명하기 귀찮아지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방안으로 옮겼다.민도준은 내외하지 않고 권하윤의 침대에 눕더니 손을 들고 옷을 벗기라는 시늉을 했다.외투를 벗기자 그제야 아랫배 쪽을 흥건하게 적신 피가 눈에 들어았다.“대체…….”권하윤이 놀라 어쩔 줄 몰라하던 그때 민도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손으로 셔츠 단추를 풀더니 배에 난 상처를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씨발, 개자식들.”탄탄한 복근과 근육을 덮고 있는 옅은 구릿빛 피부는 그야말로 야성미가 넘쳐흘렀다.권하윤은 깨끗한 수건 하나를 꺼내 상처 주위를 깨끗이 닦았다. 그제야 점점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흉기에 찔린 상처였지만 다행히도 너무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상처 소독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구급상자 찾아올게요.”권하윤은 다시 매원을 나섰다. 아까 본 사람들과 다시 마주칠까 봐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이상하게도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없던 저택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밖에서 경비를 서는 보다가드들도 마당을 청소하는 메이드들도 모두 다시 나타났다.
상처에 바르는 약 하나가 권하윤의 손에 놓였다.하지만 설명서에 쓰인 상처 부위를 보는 순간 권하윤의 얼굴은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 열기는 본채 정원에 도착해서야 겨우 식었다.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치고는 규모가 대단했다.휜 국과 꽃에 둘러싸인 중심에는 흑백으로 된 사진 두 장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사람은 다름 아닌 민도준의 부모님이었다.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건 크게 없었다. 그저 해외에서 폭동이 일어날 때 피습당했다는 것밖에는.권하윤이 자리에 서기 바쁘게 강수연이 아니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기도 뭣해 째려보고 홱 돌아섰다.그때 민승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일부러 나 망신 주려고 그래? 친척들 모두 아침 일찍 모였어. 민정이도 아침부터 엄마를 도와 제사 음식에 이것저것 일손을 도왔는데 넌 지금껏 잠이나 자다 난타나? 예의를 쌈 싸 먹었어?”권하윤은 눈을 들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어르신들께 차를 나르는 강민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밤낮으로 참 대단하네. 내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너 뭐라고 했어? 씨발 다시 한 번…….”화를 내던 민승현은 민상철과 민도준이 나타나자 다급히 말을 삼켰다. 멀리서 걸어오는 민도준은 간밤에 칼에 찔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주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냈고 그 사이에 권하윤도 속해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이 곁을 지날 때 몸에서 나는 담배연기와 시원한 향이 한데 섞여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권하윤은 심장이 요동쳤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때문에 앞에서 걸어가던 민상철도 뒤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래?”권하윤은 순간 머리가 찌근거렸다. 민도준이 또 이상한 말을 해댈까 봐 불안해났다.그런데 민도준의 눈빛은 권하윤의 몸을 슥 훑고는 민승현에게 멈췄다.“승현아.”민도준의 앞에 서자 민승현의 건방진 태도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목소리마저 미약하게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 들어와?”권하윤을 대하는 강수연의 태도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런 그녀 대신 제발 저리는 듯 눈을 피하는 강민정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왜 부르셨어요?”“그걸 내가 꼭 말로 해야겠어? 여자애가 행실이 그렇게 천박한 것도 모자라 감히 승현의 얼굴에 먹칠을 헤? 권씨 가문에서 그렇게 배워먹었어?”“어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언제 천박하게 굴었다고 그러세요?”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천진한 표정에 강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승현에게 매달려 몸에 그런 자국까지 남겨놓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밖에서 몸 파는 년들하고 뭐가 달라!”하지만 강수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권하윤이 아닌 강민정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한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수연을 위로했다.“이모, 심장도 안 좋으신데 화내지 마세요.”“언니도 얼른 이모한테 사과하세요.”뻔뻔한 태도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제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겠는데 어제 승현 씨와 같이 있은 사람 저 아니에요.”“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아니면 누군데?”“민정 씨 어머님이 묻잖아요. 어제 민승현이 누구랑 있었는지.”강민정은 훅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하더니 이내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제 저는 제 방에만 있었는데.”“민정 씨는 당연히 방에 있었겠죠. 민승현과 같이.”“닥쳐!”강수연은 화가 잔뜩 나서 권하윤의 말을 잘랐다.“민정과 승현은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야.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그런 누명을 씌워!”아주 적재적소에 눈물이 강민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아무리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요? 전 승현 오빠를 친오빠처럼 생각해요.”그녀는 강수연이 권하윤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어릴 적부터 두
“씨발, 살살 좀 해.”:“쏘리.”한민혁은 익숙한 동작으로 민도준의 복부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상처를 보아하니 그렇게 깊은 건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찢어졌어?”‘어제 그렇게 해댔는데 안 찢어지고 배겨?’민도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민도준이 옷을 입으려고 일어선 그때 한민혁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형, 등에 이거 뭐야? 이것도 민재혁 그놈이 보낸 사람이 그런 거야?”이상한 반응에 거울에 등을 비춰보는 순간 등에 난 손톱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민도준은 한심하다는 듯 한민혁의 손을 때렸다.“너 바보냐?”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한민혁이 이번에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달라붙었다.“혹시 여자야?”민도준은 그를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한민혁은 민도준의 싸늘한 반응에 나가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흥미진진한 얼굴로 꼬치꼬치 캐물었다.“설마 권씨 집안 그 여자야? 아닌데, 형 지금 막 본가 저택에서 돌아오는 거잖아. 그런데 본가 저택에 있는 권씨 집안 여자면…….”민도준이 말없이 눈빛을 보내자 한민혁은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낮췄다.본가 저택에 있는 권씨 집안 여자. 답은 뻔했다. 한민혁은 한 사람을 떠올리고는 민도준에게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역히 대단해. 놀 줄 안다니까. 평범한 건 취급 안 하고 스릴만 즐긴다 이거야?’“그런데 그 여자도 대단하긴 하네. 어떻게 형 등을 이렇게 만들어?”민도준은 외투를 입으며 낮게 웃었다.“대단하지는 않은데 손톱이 날카롭긴 해.”“형 설마 맛 들였어?”“새롭긴 하지.”‘와, 말투를 감겼네 감겼어.’그러던 그때 마침 민도준의 핸드폰이 울렸다.그의 번호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올 사람은 그중에서도 극소수다.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빛은 싸늘해졌다.-“쿵.”객실 바닥에 던져진 권하윤은 눈앞이 핑 돌았다.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이젠
“첫째 사모님. 지훈 도련님이 왔습니다.”“뭐?”‘민지훈이 왜 하필 이 시간에 왔지?’원혜정은 권하윤을 힐끗 흘켜보며 명령했다.“위층으로 데려가요. 절대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입이 틀어막힌 채 질질 끌려 계단을 오를 때 웃음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누가 왔어.’사람이 온 걸 확인 한 권하윤은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보디가드를 뿌리치려고 애썼다.그 때문에 보디가드는 소리를 막기 위해 하는 수없이 그녀를 바닥에 눌렀다.그 시각 아래층.원혜정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지훈을 맞이했다.“도련님, 여긴 웬일이에요?”“형 찾으러 왔어요. 형 집에 있어요?”“이걸 어쩌나. 형은 아까 나갔는데.”“그래요?”민지훈은 아무 일 없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마침 계단 아래에 떨어진 여자 신발에 눈이 고정되었다. 이내 고민되는 듯 주위를 서성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형한테 물건 빌리러 왔거든요. 급하게 쓸 데가 있어서.”“무슨 물건이요? 제가 찾아서 보내드릴게요.”“제가 어떻게 형수님께 막 시키고 그래요? 제가 형 방에서 직접 찾을게요.”원혜정의 대답을 듣기 전 민지훈은 이내 위층으로 올라갔다.“아, 지훈 도련님.”“…….”그리고 2층에 도착한 순간 보디가드들에게 입이 막힌 채로 잡혀 있는 권하윤과 맞닥뜨렸다.뒤에서 따라오던 원혜정의 낯빛은 순간 어두워졌다.권하윤은 깜빡깜빡 점등되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두 사람의 입모양을 살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순간 마치 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라도 된 듯 숨 막히고 목마르고 더웠다.간질간질한 느낌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와 고통스럽고 기분이 이상했다.흐릿한 의식 속에 권하윤은 누군가 자신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가는 걸 느꼈다.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목을 끌어안고 차가운 피부에 닿으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갖다 댔지만 상대가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안 돼요. 이러면 저 형한테 맞아 죽어요.”민지훈은 권하윤을 방 침대에 눕히고는 마치 농락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