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바르는 약 하나가 권하윤의 손에 놓였다.하지만 설명서에 쓰인 상처 부위를 보는 순간 권하윤의 얼굴은 화르르 달아올랐다. 그 열기는 본채 정원에 도착해서야 겨우 식었다.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치고는 규모가 대단했다.휜 국과 꽃에 둘러싸인 중심에는 흑백으로 된 사진 두 장이 놓여있었다. 사진 속 사람은 다름 아닌 민도준의 부모님이었다.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알려진 건 크게 없었다. 그저 해외에서 폭동이 일어날 때 피습당했다는 것밖에는.권하윤이 자리에 서기 바쁘게 강수연이 아니꼬운 눈빛을 보내왔다. 그녀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기도 뭣해 째려보고 홱 돌아섰다.그때 민승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일부러 나 망신 주려고 그래? 친척들 모두 아침 일찍 모였어. 민정이도 아침부터 엄마를 도와 제사 음식에 이것저것 일손을 도왔는데 넌 지금껏 잠이나 자다 난타나? 예의를 쌈 싸 먹었어?”권하윤은 눈을 들어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어르신들께 차를 나르는 강민정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밤낮으로 참 대단하네. 내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너 뭐라고 했어? 씨발 다시 한 번…….”화를 내던 민승현은 민상철과 민도준이 나타나자 다급히 말을 삼켰다. 멀리서 걸어오는 민도준은 간밤에 칼에 찔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주위 사람들은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냈고 그 사이에 권하윤도 속해 있었다.하지만 민도준이 곁을 지날 때 몸에서 나는 담배연기와 시원한 향이 한데 섞여 코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권하윤은 심장이 요동쳤다.그러던 그때, 민도준이 갑자기 자리에 멈춰 섰다. 그 때문에 앞에서 걸어가던 민상철도 뒤를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왜 그래?”권하윤은 순간 머리가 찌근거렸다. 민도준이 또 이상한 말을 해댈까 봐 불안해났다.그런데 민도준의 눈빛은 권하윤의 몸을 슥 훑고는 민승현에게 멈췄다.“승현아.”민도준의 앞에 서자 민승현의 건방진 태도는 순간 사그라들었다. 목소리마저 미약하게
“부른 지가 언젠데 이제야 기어 들어와?”권하윤을 대하는 강수연의 태도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지만 권하윤은 그런 그녀 대신 제발 저리는 듯 눈을 피하는 강민정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왜 부르셨어요?”“그걸 내가 꼭 말로 해야겠어? 여자애가 행실이 그렇게 천박한 것도 모자라 감히 승현의 얼굴에 먹칠을 헤? 권씨 가문에서 그렇게 배워먹었어?”“어머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언제 천박하게 굴었다고 그러세요?”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천진한 표정에 강수연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승현에게 매달려 몸에 그런 자국까지 남겨놓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밖에서 몸 파는 년들하고 뭐가 달라!”하지만 강수연의 말이 끝나는 순간 권하윤이 아닌 강민정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듯한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표정을 숨기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강수연을 위로했다.“이모, 심장도 안 좋으신데 화내지 마세요.”“언니도 얼른 이모한테 사과하세요.”뻔뻔한 태도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제가 잘못했다면 사과하겠는데 어제 승현 씨와 같이 있은 사람 저 아니에요.”“그게 무슨 말이냐? 네가 아니면 누군데?”“민정 씨 어머님이 묻잖아요. 어제 민승현이 누구랑 있었는지.”강민정은 훅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하더니 이내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언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빠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어제 저는 제 방에만 있었는데.”“민정 씨는 당연히 방에 있었겠죠. 민승현과 같이.”“닥쳐!”강수연은 화가 잔뜩 나서 권하윤의 말을 잘랐다.“민정과 승현은 친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야.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에게 그런 누명을 씌워!”아주 적재적소에 눈물이 강민정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아무리 인정하기 싫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내요? 전 승현 오빠를 친오빠처럼 생각해요.”그녀는 강수연이 권하윤의 말을 믿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어릴 적부터 두
“씨발, 살살 좀 해.”:“쏘리.”한민혁은 익숙한 동작으로 민도준의 복부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상처를 치료하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상처를 보아하니 그렇게 깊은 건 같지 않은데 왜 이렇게 찢어졌어?”‘어제 그렇게 해댔는데 안 찢어지고 배겨?’민도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하지만 치료를 마치고 민도준이 옷을 입으려고 일어선 그때 한민혁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다가왔다.“형, 등에 이거 뭐야? 이것도 민재혁 그놈이 보낸 사람이 그런 거야?”이상한 반응에 거울에 등을 비춰보는 순간 등에 난 손톱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민도준은 한심하다는 듯 한민혁의 손을 때렸다.“너 바보냐?”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한민혁이 이번에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달라붙었다.“혹시 여자야?”민도준은 그를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한민혁은 민도준의 싸늘한 반응에 나가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흥미진진한 얼굴로 꼬치꼬치 캐물었다.“설마 권씨 집안 그 여자야? 아닌데, 형 지금 막 본가 저택에서 돌아오는 거잖아. 그런데 본가 저택에 있는 권씨 집안 여자면…….”민도준이 말없이 눈빛을 보내자 한민혁은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를 낮췄다.본가 저택에 있는 권씨 집안 여자. 답은 뻔했다. 한민혁은 한 사람을 떠올리고는 민도준에게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역히 대단해. 놀 줄 안다니까. 평범한 건 취급 안 하고 스릴만 즐긴다 이거야?’“그런데 그 여자도 대단하긴 하네. 어떻게 형 등을 이렇게 만들어?”민도준은 외투를 입으며 낮게 웃었다.“대단하지는 않은데 손톱이 날카롭긴 해.”“형 설마 맛 들였어?”“새롭긴 하지.”‘와, 말투를 감겼네 감겼어.’그러던 그때 마침 민도준의 핸드폰이 울렸다.그의 번호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에게 먼저 연락을 해올 사람은 그중에서도 극소수다.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눈빛은 싸늘해졌다.-“쿵.”객실 바닥에 던져진 권하윤은 눈앞이 핑 돌았다.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이젠
“첫째 사모님. 지훈 도련님이 왔습니다.”“뭐?”‘민지훈이 왜 하필 이 시간에 왔지?’원혜정은 권하윤을 힐끗 흘켜보며 명령했다.“위층으로 데려가요. 절대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못하게.”입이 틀어막힌 채 질질 끌려 계단을 오를 때 웃음 섞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수님.”‘누가 왔어.’사람이 온 걸 확인 한 권하윤은 있는 힘껏 버둥거리며 보디가드를 뿌리치려고 애썼다.그 때문에 보디가드는 소리를 막기 위해 하는 수없이 그녀를 바닥에 눌렀다.그 시각 아래층.원혜정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민지훈을 맞이했다.“도련님, 여긴 웬일이에요?”“형 찾으러 왔어요. 형 집에 있어요?”“이걸 어쩌나. 형은 아까 나갔는데.”“그래요?”민지훈은 아무 일 없는 듯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마침 계단 아래에 떨어진 여자 신발에 눈이 고정되었다. 이내 고민되는 듯 주위를 서성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사실 형한테 물건 빌리러 왔거든요. 급하게 쓸 데가 있어서.”“무슨 물건이요? 제가 찾아서 보내드릴게요.”“제가 어떻게 형수님께 막 시키고 그래요? 제가 형 방에서 직접 찾을게요.”원혜정의 대답을 듣기 전 민지훈은 이내 위층으로 올라갔다.“아, 지훈 도련님.”“…….”그리고 2층에 도착한 순간 보디가드들에게 입이 막힌 채로 잡혀 있는 권하윤과 맞닥뜨렸다.뒤에서 따라오던 원혜정의 낯빛은 순간 어두워졌다.권하윤은 깜빡깜빡 점등되는 눈을 애써 부릅뜨며 두 사람의 입모양을 살폈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순간 마치 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라도 된 듯 숨 막히고 목마르고 더웠다.간질간질한 느낌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와 고통스럽고 기분이 이상했다.흐릿한 의식 속에 권하윤은 누군가 자신을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가는 걸 느꼈다.무의식적으로 상대의 목을 끌어안고 차가운 피부에 닿으면 편안하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갖다 댔지만 상대가 먼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안 돼요. 이러면 저 형한테 맞아 죽어요.”민지훈은 권하윤을 방 침대에 눕히고는 마치 농락이라
갑자기 들려오는 호통에 권하윤은 억울했는지 나지막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그 목소리는 전화를 통해 민도준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씨발, 기다려.”곧이어 낮은 욕지거리가 입술 사이로 튀어나왔다.“민지훈!”“응, 형. 무슨 일이야?”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민지훈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권하윤 데리고 집에서 나와.”“뭐? 본가 저택이 어떤 곳인지 형도 알잖아. 보는 눈이 그렇게나 많은데 내가 무슨 수로 사람 하나를 빼돌려?”“흥. 뭐라도 얻어내겠다는 꼼수냐?”“에이, 내가 설마 그러겠어?”민지훈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그런데 내가 오늘 큰 형수님한테 원한을 산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남평 건물 네가 가져.”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오케이 콜. 사람은 걱정 마. 내가 무조건 빼돌릴게.”-돈이면 뭐든 가능하다는 말이 다른 사람한테는 어떨지 몰라도 민지훈한테는 그야말로 진리였다.반 시간 후, 마대에 꽁꽁 싸맨 사람 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민 씨 저택을 빠져나왔다.그리고 사람을 실은 순간 차는 쌩하고 떠나버렸다.미처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민지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헤실 거리며 떠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 시각 차 안.대충 맨 마대를 홱 풀어버리자 뜨거운 열기와 함께 습기가 얼굴을 뒤덮었다. 원래도 더워 미칠 지경이었는데 안에 묶여있은지라 권하윤은 이미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검은 머리칼은 젖은 채로 얼굴에 들러붙어 있고 눈은 흐릿했으며 양 볼은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런 그녀는 민도준을 보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품에 폭 안겨왔다.지금껏 긴장하고 부끄럼을 타며 어색해하던 모습과는 달리 주동적인 모습이었다.민도준은 권하윤을 자기 무릎에 눕히며 외투를 벗어 여자의 몸을 덮었다. 앞쪽에서 슬쩍슬쩍 보내는 시선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한 번 더 봤다가 눈알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민도준이 슬쩍 눈을 들며 경고하자 앞에서 운전하던 한민혁이 이내 고개를 돌리며 어색하게
권하윤은 무의식적으로 이불을 끌어 몸을 가렸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을 때 비로소 옷차림이 단정하고 온몸의 끈적거림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씻겨줬나 보네.’“그쪽…….”“저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전 계속 저쪽에서 게임했어요.”권하윤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민혁은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권하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 끝으로 가더니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일어서기 바쁘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한민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다시 거둬들이며 입을 열었다.“혼자 걸을 수 있겠어요?”“네.”권하윤은 힘들게 몸을 일으켰다.“가요.”그리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자기가 있었던 곳이 정원이 달린 단독 주택이라는 걸 발견했다. 환경은 아름다웠으나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썰렁했다.묻지도 않았는데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 한민혁이 입을 열었다.“이건 도준 형 별장이에요. 민씨 저택과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권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그 고요함은 한민혁이 그녀를 민씨 저택으로 데려갈 때까지 계속됐다.그리고 거의 도착할 무렵 한민혁은 의아한 듯 물었다.“왜 도준 형이 어디 갔는지 물어보지 않아요?”“그걸 저한테 알려주고 싶었다면 민혁 씨를 대신 보내진 않았겠죠.”돌아오는 대답에 한민혁은 말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그녀의 말을 묵인하기라도 하듯.권하윤은 창밖으로 고요한 거리를 바라봤다.민도준이 어렵사리 자기를 꺼내준 걸 생각하면 감동받지 않았다는 게 거짓말이다.하지만 이렇게 다시 집으로 보낸다는 건 뜻이 아주 명확했기에 더 이상 굴욕을 자초할 수 없었다.게다가 민도준이 사람을 시켜 원혜정 손에서 그녀를 구출하고 도와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호의를 베풀어 준거나 다름없었다.‘처음부터 지나가는 인연이었어. 상대가 이렇게 명확한 의사를 표현했으니 더 이상 얽히지 말자.’권하윤은 스스로를 충고했다. 민도준은 원래부터 건드리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이렇게 관계를 끝내는 것도
하지만 생각 밖의 일이 벌어졌다.이불을 걷은 순간 권하윤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느게 아니겠는가?소리에 놀란 그녀는 흐릿한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어머님, 형님, 왜 다들 여기 계세요?”권하윤은 잠옷을 입은 채 방금 잠에서 깬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불 아래 하반신은 여전히 들어올 때 입고 있던 바지를 입고 있었고 신발도 미처 벗지 못했다.원혜정은 놀란 눈으로 권하윤을 살피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아니에요. 동서가 갈 때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아 보여 보러 왔어요.”“흥, 잠이나 퍼자고 있었어?”강수연은 아니꼬운 말투로 권하윤을 쏘아붙이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두리번거렸다.“근데 왜 너 혼자뿐이니? 승현은?”“엄마, 저 여기 있어요.”얘기를 듣고 달려온 민승현은 뭔가 찔리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원혜정은 권하윤과 민승현을 번갈아 보면서 농담 섞인 말투로 말했다.“도련님, 어디 갔다 이제 오세요? 동서 혼자 외로웠겠어요.”“네? 아…… 그게, 민정이 보러 갔다 왔어요.”강수연은 민승현이 횡설수설하는 모습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이런 야밤에 민정이 방엔 무슨 일로 갔지?’“아까 민정 씨가 아파 보여서 제가 갔다 오라고 했어요.”생각지도 못한 권하윤의 말에 민승현은 이상함을 느낀 것도 잠시 곧바로 맞장구쳤다.“맞아요. 민정이가 구급상자를 찾지 못하겠다고 해서 찾아주고 오는 길이에요.”그리고 더 확실히 하기 위해 한 마디를 더 보탰다.“하윤이도 저랑 같이 가겠다고 했는데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 먼저 휴식하라고 했어요.”그 소리에 원혜정은 낮게 웅얼거리더니 활짝 웃었다.“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동서가 괜찮다니 다행이네요.”그 모습은 마치 권하윤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해하고 상냥했다.하지만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원혜정을 다시 보니 구역질이 났다.다행히 일은 머물다간 바람처럼 훅하고 지나갔다.원혜정이 간 뒤 강수연은 의외로 권하윤에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오히려 민승현을 따로
어머니의 말에 민승현은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공씨 가문 셋째의 오만하고 잔인한 성격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했다. 게다가 해원에서의 공씨 가문 세력은 경성에서 민씨 가문 세력에 맞먹기에 그 여자가 얼마나 막 나가는지 안 봐도 뻔했다.‘그런 여자와 결혼하면 남은 평생 잡혀살게 뻔해.’“원래도 제 차례가 오지 않거든요. 할아버지가 도준 형의 짝으로 그 여자를 점찍어 두셨잖아요.”“됐다 그래. 민도준이 어떤 사람인데 네 할아버지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할아버지 말을 듣겠어?”“하긴.”민도준의 얘기를 하자 갑자기 자기를 바라보던 민도준의 눈빛이 떠올라 민승현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깊은 밤 밖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한민혁이 권하윤을 데려다주고 돌아왔을 때 민도준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며 느긋하게 물었다.“잘 바래다줬어?”흐트러진 가운과 몸 이곳저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흔적에 나지막한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한민혁의 얼굴이 오히려 화끈 달아올랐다.“응. 지금쯤 매원에 있을 거야.”“음.”민도준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짧게 대답했다.하지만 그때 한민혁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사람을 빼냈으면서 왜 다시 돌려보냈는데? 이 기회에 확 낚아채면 좋았잖아.”“왜? 네가 낚아채고 싶어?”“하하하하.”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하는 민도준의 말에 한민혁은 자기 얼굴을 살짝 때리며 헤실 웃었다.“내가 막 말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그리고 민도준의 낯빛을 살폈다.“그런데 형. 아무리 그래도 권하윤 씨가 민승현 약혼녀인데 괜찮겠어? 민승현이 아무리 등신이라고 해도 민재혁이 만약 뭔가 눈치채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뭔 말이 하고 싶은데?”“내가 형 곁에 몇 년 있으면서 형이 밑지는 장사하는 건 처음 봐서 말이야.”다른 사람은 몰라도 민지훈처럼 이익을 따지는 놈이 민도준을 도와주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게다